오래 기다리셨죠? ^_T
클리어 & 노이즈 공통은 이걸로 끝!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내가 감금되었던 빌딩이 있는 장소는 북쪽 지구였다는 사실을, 밖으로 나와서야 알았다.
나는 밍크와 함께 빌딩에서 빠져나가, 동쪽 지구로 향했다.
어둑한 건물 안에서는 시간을 잘 알 수 없었지만, 밖은 아직 해가 높이 떠있었다.
밍크는 대로변이 아닌 뒷길을 이리저리 누비며 걸어갔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게끔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본인의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남의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두통은 꽤 많이 가라앉았지만, 아직 본래의 컨디션을 되찾지 못한 탓에 걸음이 느려져 밍크와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그 뒷모습을 놓칠 뻔한다.
[ 말을 건다 ] → 선택
[ 가만히 있는다 ]
“잠깐 기, ……앗.”
밍크의 뒤를 쫓아 모퉁이를 돌려 하다가……, 깜짝 놀란다.
모퉁이를 돌아서 바로 나오는 곳에, 밍크가 이쪽을 내려다보는 듯이 서있었다.
밍크는 곧바로 내게서 시선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일절 대화를 나누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자, 주변의 경치가 낯익은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평범’이 나온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그리움이 가득 차올라서, 서서히 가슴이 뜨거워졌다.
‘평범’의 외관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곳에서, 돌연 머리 위로 그림자가 스쳤다.
“마스터----!!!”
“크, 클리어!?”
있는 힘껏 나를 부르는 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떨어져 내린 것은……, 클리어였다.
클리어는 얼굴부터 지면에 격돌했지만, 곧바로 벌떡 일어나 나에게 매달려왔다.
“마스터-! 다행이다! 어디에 가셨던 거예요!?”
“아, 그게…….”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어젯밤엔 마스터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와서 걱정했었어요!”
“내 목소리가?”
“네!”
어젯밤이라니……. 나, 밍크한테 붙잡혀서 그 빌딩에 있었는데 말이지…….
[ 다른 화제로 돌린다 ]
[ 정말로 들렸어? ] → 선택
“정말로 들렸던 거야?”
“네, 정말이에요! 마스터의 목소리라면 어떤 상황 아래에 있다 하더라도 제가 잘못 들을 리가 없습니다!”
“……하하, 그래. 그거 고맙네.”
“어라?”
클리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고는, 또 양손으로 내 볼을 잡아당겼다.
“그렇지만 역시 어딘지 똑 부러지지 못한 듯한 느낌이랄까……. 왜 그럴까요? 명색이 마스터라는 분이, 이래서는 안 되겠네요.”
“우앗! ……너 말야!”
볼을 꼬집는 손에서 벗어나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
그때 밍크가 우리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어쩐지 밍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거북한 분위기…….
“자, 가게 안으로 들어오세요. 마스터.”
“……아오바!”
“아오바 군!”
우리들이 ‘평범’ 안으로 들어가니, 코우자쿠와 하가 씨가 낯빛을 바꾸고 달려왔다.
“괜찮은 거야? 너.”
“그럭저럭.”
“다행이다. 안심했어요.”
‘오우, 그 강아지도 무사히 있는 거야?’
‘여기에 있어.’
렌이 가방에서 얼굴을 내밀고, 코우자쿠의 품속에 들어가 있는 베니를 올려다본다.
“이 가스마스크가, 네가 어딘가로 끌려갔다고 엄청 허둥거리면서 나를 찾아와서 말야.”
“처음엔 안 믿었는데, 진짜로 너랑 연락도 안 되지.”
“그래서 너 어디 갔는지 타에 씨한테 물어보려고 연락하니까, 그쪽도 연락이 안 되고. 분명 코일 쓰는 걸 싫어했다는 걸 떠올리…….”
코우자쿠가 내 뒤로 시선을 보내고, 노골적으로 눈썹을 찌푸린다.
“어이, 그 녀석…….”
“아-, 그게.”
“너……, 스크래치의 보스지.”
스크래치?
그거라면 분명, 형무소의 죄수들이 만든 리브 팀 이름…….
“……에?”
“눈치 못 챘었냐고.”
“아니……. 스크래치의 태그아트 같은 거 별로 본 적이 없으니까.”
“……흥.”
밍크가 명백하게 깔보는 듯한 느낌으로 코웃음을 친다.
그 빌딩, 어둡고 지저분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태그아트가 그려져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스크래치는 리브라고 해도, 표면적으로는 형무소에 수감되어있는 죄수들의 모임인 것 같다.
즉 형무소에서 탈출해 난동을 부린다는 것이다.
경찰 따위 전혀 제 기능을 하지 않는데다, 소란을 길게 끌지만 않으면 그게 탈옥수가 되었건 어쨌건 딱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 그래서 그 ‘제재’라는 걸…….
형무소에 들어갈 정도의 녀석들을 단결시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우선 무법지대에서는 무리다.
그렇지만 팀이라면 규율이 존재하는 것도 수긍이 된다.
‘너, 신참인가.’
베니가 밍크의 앵무새를 매섭게 노려본다.
앵무새는 베니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식으로 옆을 보았다.
“예쁜 앵무새네요.”
“그러네요. 예쁜 앵무새예요.”
‘흥, 잘난 척 하기는. 맘에 안 드는 녀석.’
‘꽤나 시끄럽군. 참새라면 좀 더 귀엽게 우는 게 어때?’
‘너! 까불지 마 이 자식-!!’
베니의 털이 순간 확 부풀어 올라 온몸이 둥글게 변한다. 같은 새끼리라 더, 적대심 같은 것도 싹트기 쉬운 것일까.
“최악이로군. 별 인간 같지도 않은 버러지랑 맞닥뜨리고 말았어. 뒷골목 기생충은 얌전히 감방으로 돌아가라고.”
“너한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군.”
“뭐라고? 왜 네가 아오바랑 같이 있는 거야. 아오바한테 무슨 짓 해봐. 가만 두지 않겠어.”
“그것도 너랑은 관계없을 텐데.”
“아? 어이, 깔보는 건가?”
어쩐지 밍크와 코우자쿠의 분위기가 위험하다…….
“코, 코우자쿠 군. 진정해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고. 여긴 사람 드나드는 데잖아.”
“……칫.”
코우자쿠가 밍크를 노려보고 혀를 찬다. 밍크는 딱히 표정이 변하진 않지만, 코우자쿠가 있는 곳을 계속 응시하고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눈앞에 그려지는구나…….
한 것도 없이 벌써 피로감을 느끼며, 나는 모두와 함께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평범’의 지하에는 창고가 있고, 거기에는 가볍게 모여앉아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있다. 우리들은 그쪽으로 이동했다.
하가 씨는 눈치를 보고서 신경을 써주신 듯, 우리들을 자리로 안내해주시고는 가게 쪽으로 되돌아갔다.
소파에 코우자쿠, 클리어, 밍크, 내가 앉는다.
“……그러니까, 좀 전의 이야기를 계속하자고. 타에 씨는 어떻게 된 거야. 연락도 안 되고, 너도 이렇게 한참 잠수 타다가 불쑥 나타나고.”
“타에 씨가 코일 쓰는 걸 싫어하는 건 알고 있어. 연락이 안 되는 이유가 그거라면 딱히 문제가 없지만 말야.”
“그게…….”
내가 말을 머뭇거리자, 코우자쿠는 역시 그런 거냐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끌려갔어.”
“누구한테!?”
“모르핀이다.”
밍크의 말을 듣고, 코우자쿠가 코웃음을 친다.
“하아? 어이, 농담도 정도껏 하라고. 모르핀이라고? 신령의 유괴라도 당했다는 건가? 타에 씨는 리브가 아니래도.”
“……코우자쿠. 나도 봤어. 모르핀의, 태그.”
“…………진짜야?”
거기서 나는, 집에 돌아가 보니 할머니가 없어졌던 일, 밍크와 만난 일, 모르핀……, 드라이주스의 녀석들에 대한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밍크에게 납치되었었다는 이야기는 쓸데없는 불씨를 낳을 것이기에, 그 부분만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코우자쿠는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서는 작게 숨을 내쉬고, 앞으로 숙이고 있던 몸을 소파의 등받이에 기댔다.
“하,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 그 모르핀의 태그 어쩌고 하는 것도, 혹시 이 녀석이 널 속이기 위해서 나중에 그려 넣은 거 아냐?”
코우자쿠가 적의를 그대로 드러낸 시선을 밍크에게 던진다.
“이 녀석들, 범죄자라고?”
“안 믿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다.”
“아아? 왜 너한테 그런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고.”
“어차피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이 이야기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건 네가 아냐, 저 녀석이다.”
밍크가 담뱃대 끝으로 나를 가리킨다.
“할머니 찾는 일을 도와주는 대신에, 저 녀석은 이쪽의 조건을 받아들인다. 그게 저 녀석과 나 사이에 성립된 거래다.”
“뭐야 그게……. 네 조건이란 건 뭐냐고, 어이.”
“너한테 이야기할 이유는 없다고 했잖아. 다만, 나는 할머니가 어디로 갔는지 대충 짐작은 하고 있다.”
“팀 멤버들에게 할머니를 유괴한 녀석들의 뒤를 쫓게 해서, 그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 상태다. 그것도 믿지 않는다면 너희들끼리 좋을 대로 해라.”
“……윽.”
코우자쿠가 나를 본다. 그 눈은 어떻게 할 거야? 라고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코우자쿠가 불안과 의심을 품는 것도 아주 잘 이해가 된다. 나라고 정말로 밍크를 신뢰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밍크 외에 할머니의 행방을 알고 있는 녀석은 없다.
닥치는 대로 찾아서는 찾게 될지 어떨지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도박을 해보는 수밖에는 없다.
“……코우자쿠, 부탁해. 할머니를 구하고 싶어.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아.”
“………….”
“힘을 빌려줘.”
“아오바…….”
코우자쿠의 표정에서 서서히 분노가 사라지고, 그 눈동자에 강한 빛이 깃든다.
“……알았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썩 마음이 내키진 않지만, 믿을 수밖엔 없군.”
“고마워,”
“상관없어. 너를 위해서라면 말야.”
코우자쿠가 다시 한 번 밍크를 노려본다.
밍크는 흰 연기를 내뿜으며 계단 쪽을 보고 있다.
“……?”
처음엔 코우자쿠의 열을 부추기기 위해서 일부러 눈을 돌리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그쪽에 주목을 하고 있다.
뭐가 있는 건가?
“어이.”
밍크가 앵무새에게 턱을 까딱해 보인다.
앵무새가 푸드덕 날갯짓을 하고, 1층으로 이어지는 문으로 향했다.
덜컹덜컹 소리가 나고, 무언가를 움켜쥐고서 돌아온다.
‘P!’
“뭐야 이거.”
“블록, 일까요.”
“이거…….”
앵무새가 쥐고 있는 것은 네모난 큐브 블록이었다.
건 그렇고, 이거 아무리 봐도…….
“노이즈다. 그 녀석 또.”
“버릇이 없군.”
“또냐고. 도청이 취미인 거 아냐, 그 녀석.”
“방금 문 쪽에서 소리가 났던 건 이거였네요.”
“아는 사인가?”
“아는 사이랄까, 뭐어.”
“정보수집에 여념이 없는 타입인가. 그럭저럭 쓸 만할 것 같군.”
밍크가 내 팔을 잡고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댄다.
“끌어들여라.”
“에?”
“가게에서 상품 권유 전화를 하는 거랑 똑같아. 그때랑 똑같은 음색을 써라.”
“끌어들여서 어쩔 거야……!”
“머리를 잘 굴리는 녀석이 있으면 유리해진다. 카드는 많은 편이 좋지.”
“어이, 뭘 소곤소곤 거리는 거야.”
코우자쿠가 이쪽의 낌새를 눈치 채, 밍크가 내게서 떨어진다.
아마도……. 밍크는 내 목소리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끌어들이라고 해도…….
상품 권유 전화? 그럼, 늘 가게에서 손님에게 이야기했던 식으로 하면 되는 걸까……?
나는 앵무새가 움켜쥐고 있는 큐브 앞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솔직히, 노이즈도 밍크도 어떤 녀석들인지 잘 모르겠고 썩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지만…….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서다. 해보는 수밖에는 없다.
상품 권유 전화를 할 때처럼 의식해서, 음색을 조금 차분하게 만든다.
“……노이즈, 맞지. 들려?”
“………….”
“이런저런 일이 좀 있어서, 지금 꽤 애를 먹고 있어.”
“솔직히, 우리들만으론 힘들지도 몰라. 그러니까……, 힘을 빌려주지 않을래. 전부 끝나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할 테니까.”
“아오바……!?”
“……부탁해. 네 힘을 빌려줘.”
……내 목소리가 위력을 발휘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분 후.
노이즈가 ‘평범’에 모습을 드러냈다.
코우자쿠, 클리어, 밍크, 노이즈.
통일성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녀석들이 쭉 집합해있으니……. 뭐랄까, 압권이다.
노이즈까지 와서 코우자쿠의 표정이 더더욱 언짢게 변했지만, 뭐 이건 별수 없다.
상황 정리도 겸해서,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간결하게 이야기했다.
“드라이주스면 리브에서 제일 큰 팀이잖아.”
“아아.”
“머릿수가 꽤 많았을 텐데 말이지. 이 섬에 그 녀석들을 통째로 데리고 갈 수 있는 장소 같은 건 별로 없지 않나.”
“그렇지…….”
“우리 팀 멤버들한테도 찾아보게 했지만, 좀처럼 걸리는 게 없네.”
“저도 지붕 위에서 찾아봤지만, 전혀 무리였습니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장소란 거잖아.”
“무슨 뜻이야?”
“출입금지 구역도 시야에 집어넣을 필요가 있어.”
“말 그대로다. 과연 정보 수집 마니아라 할 만하군.”
“마니아가 아니라고.”
밍크가 가볍게 담뱃대를 턴다.
“할머니가 끌려간 곳은 북쪽의 ‘케이센’이다.”
“‘케이센’…….”
“확실히 그 부근에는 사용되지 않는 빌딩이나 창고가 산처럼 쌓여있지.”
“조사해라.”
밍크의 담뱃대 끝이 노이즈를 향한다.
“너한테 명령받을 짓을 한 적은 없는데.”
“교환 조건을 걸고서 이 녀석의 이야기에 응한 걸 텐데. 귀찮은 일은 빨리 처리하고 싶겠지, 서로.”
“……칫.”
노이즈는 짜증이 치미는 듯이 혀를 찼지만, 이내 코일로 키보드와 모니터를 출력시키고 조작을 시작했다.
“……것보다, 왜 네 녀석이 우두머리 행세를 하는 거야.”
“그럼 네가 솔선해서 하면 될 텐데.”
“아아!?”
코우자쿠가 당장이라도 뛰어들 기세로 몸을 내밀자, 밍크의 어깨 위에서 털 다듬기를 하고 있던 앵무새가 얼굴을 들었다.
‘여기서 서로 으르렁거려봤자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모할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는 나대지 말라고!’
코우자쿠의 어깨 위에 앉아있던 베니가 앵무새를 노려보고, 털을 확 부풀린다.
‘올메이트는 주인을 닮는 말은 틀리지 않군.’
‘지금 뭐랬어 너! 이 자식!!’
“짹짹거리고 시끄러워 죽겠네.”
올메이트들의 불꽃 튀는 싸움을 가로막고, 노이즈가 모니터를 우리들에게 보이게끔 반전시켰다.
모니터에는 구 주민구의 지도가 표시되어있고, 가장자리 쪽에 세모 모양의 빨간 마크가 깜박거리고 있다.
“여기가 ‘케이센’이다. 이 부근의 네트워크에 접속하면 에러가 뜨지.”
“출입금지 구역은 보통, 네트워크가 기능을 하지 않아. 그렇지만, 여기만 에러 데이터에 부자연스러운 공백이 섞여있다.”
“다시 말해 이건 페이크다. 기능하지 않는 것처럼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꾸미고 있지.”
“예상 적중인가.”
“그럴지도. 이 부근은 원래는 쓰레기 처리시설이 들어서있던 장소다.”
“몇 년 전에 폐쇄되어서 출입금지 처리되었다고 했던 곳이네.”
“지금도 불법투기가 이어져서 이제는 지역 전체가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되었다는 데잖아. 단속하는 녀석도 없고 말이지.”
“할머니는 이곳에…….”
“방향으로는 내가 받은 보고와 거의 일치한다.”
이곳임에 틀림이 없다는 확신은 없다. 그렇지만, 가 볼 만한 가치는 있을 것 같다.
“단 여기에 타에 씨를 납치한 녀석들이 있다고 쳐도 말야, 이 주변의 길 같은 거 전혀 모르잖아. 무턱대고 돌격하는 건 위험한 거 아냐?”
“아, 그거라면 제가 알고 있습니다.”
“……너 말야, 우린 지금 놀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곳의 길을 알고 있어요. 저, 예전에 이 부근을 자주 산책했었어요.”
“………….”
“………….”
“………….”
“………….”
“엣? 왜 그러시는 거예요? 여러분. 왜 갑자기 조용해지시는 거죠? 혹시 저를 의심하고 계신 겁니까?”
“의심은 그만둬주세요, 정말! 정말로 알고 있다고요? 제대로 지도도 그릴 수 있으니까 말예요?”
우리들의 반응에 분개한 클리어가 겉옷의 포켓에 손을 찔러 넣고, 종이와 펜을 꺼냈다.
“사사사사사삭~.”
클리어가 막힘없이 종이 위로 펜을 놀린다.
“……네! 완성했습니다!”
“……어이어이, 진짜 맞는 거야? 이 지도.”
“대조해봐라.”
밍크가 클리어의 지도를 들고서 노이즈 쪽으로 던진다.
“……확실히 외관도와 일치한다.”
“그럼 그 지도가 맞다는 건가.”
“그러니까 제가 알고 있다고 했잖습니까! 여러분 너무해요.”
“……뭐, 이걸로 길을 헤맬 일도 없어졌고, 다음은 쳐들어갈 일만 남았네.”
“쳐들어간다고 해도 말이지. 이런 녀석들뿐이잖아?”
코우자쿠가 정말 싫다는 듯한 얼굴로 다른 녀석들을 본다.
“하필이면 이렇게 이상한 녀석들만 잔뜩 모였으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너도 남 말할 처지가 아니잖아.”
“시끄러워.”
“나는 너희들과 협력할 생각 없어. 내가 편한 대로 한다. 그 편이 효율이 좋아.”
“그럼 따로따로 놀게 되잖아.”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는 편이 좋아. 아무리 계획을 면밀하게 세운다 해도, 전원이 그대로 움직일 거란 보장은 없지. 이 오합지졸들에 한해서는 더더욱.”
“그러니까 그거야말로 네가 할 말이냐고!”
“너랑 거기 있는 가스마스크한테 말하는 거다.”
“뭐라고!?”
“에, 저도 포함입니까? 너무해요~~~. 저는 여러분과 사이좋게 해나가고 싶다고요~~~~.”
“농담은 얼굴에서 끝내라고.”
“에~~~~~.”
………….
……틀렸다.
절대 무리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역시 전혀 단합이 되지 않는다.
단합하려고 하는 시늉도 안 보여…….
“어이 가스마스크. 네가 입을 열면 성가셔지니까 넌 조용히 하고 있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런 말을~ 너무해요, 정말~! 안 성가셔진다고요~~!”
“네 존재 자체가 성가셔.”
“너무해요~~~. 언어폭력이에요~~~.”
“애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내 입장에선, 가스마스크보다도 너희들 쪽이 더 신뢰가 안 간다고.”
“계속 지껄여보시지.”
“애당초 신뢰를 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 자체가 바보 같아.”
“너희들 말야!”
“싸움은 하지마세요~~~~.”
내가 머리를 감싸고 있는 사이에도, 다른 녀석들은 시끌시끌 제멋대로 말을 지껄인다.
이러고 있을 상황이 아닌데도…….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할머니에게는 신변의 위험이 닥쳐오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디서 행동을 개시할지도 감이 잡혀서, 정말로 이제부터 뭔가를 시작해야할 때인데…….
이 녀석들은 진짜…….
정말이지 더 이상은………….
“……너희들, 작작 좀 하라고!!!”
……참지 못하고, 그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래봤자 어차피 이 녀석들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는데.
“……어, 어라?”
지금껏 실컷 떠들어대던 것이 뚝 그쳤다.
“에……, 왜……?”
“아오바 말대로야. 농담 따먹기도 슬슬 그만하지 않으면 말이지.”
“애초에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고.”
“빨리 가자고.”
“그러네요. 그렇게 합시다.”
갑자기 마음이 싹 변하기라도 한 듯이, 모두가 일제히 소파에서 일어섰다.
왠진 모르겠지만, 의기투합하고 있다…….
……뭐, 별 상관없나. 어쨌든 결과가 좋으니 만사 오케이인 걸로 해두지 뭐.
“……좋아, 가자.”
마음을 새로 잡고, 나도 일어선다.
할머니……. 꼭 구해줄 테니까.
그리고, 미즈키와 드라이주스의 멤버들도.
우리들은 ‘평범’에서 나와, 북쪽 지구로 향했다.
북쪽 지구의 ‘케이센’은 고스트타운 같은 느낌으로, 완전히 황폐해진 상태였다.
원래는 커다란 창고나 빌딩이 서있었지만,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되고부터는 쓰레기를 불법으로 투기하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안이 텅 비어있는 건물을 치장이라도 하는 듯이, 망가진 트럭에서부터 낡아빠진 가구까지 온갖 종류의 쓰레기들이 버려져있다.
물론 사람의 모습은 없고, 꽤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신중하게 주의를 하면서, 우리들은 클리어를 선두로 앞으로 나아갔다.
높게 쌓아올려진 쓰레기의 산을 쳐다보다가, 어떤 사실을 떠올린다.
“여기……, 그 게임이랑 비슷해.”
“게임?”
“실수로 한 번 다운로드한 이후로 계속해서 송신 받게 된 게임인데…….”
“송신돼서 오는 게 어째선지 게임이 아니라 데모 무비야.”
“얼마 전에 온 게, 할머니 캐릭터가 까마귀한테 끌려가는 내용이라서. 그렇게 끌려가서 도착한 곳이 쓰레기 산이었어.”
“확실히 이곳은 쓰레기 산이네요.”
“우연이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쩐지 묘하다 싶어서.”
“이 앞에 쓰레기를 처리하는 공장이 있지.”
노이즈가 코일로 띄운 지도를 모두에게 보여준다.
“있네요.”
“그 공장이 이 주변에선 제일 큰 건물이다.”
“거기가 의심스럽단 건가.”
“이대로 쭉 가면 됩니다.”
클리어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간다.
이런 데서 산보를 했다고 하니, 저 녀석 정말로 엉뚱하단 말이지…….
쓰레기가 굴러다녀 발을 내딛기 힘든 길을 걸어가자, 거대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공장이겠지.
“……기다려주세요.”
클리어가 팔을 들어 우리들을 제지한다.
“왜 그래?”
“들립니다. 있습니다. 저 안에.”
“들린다니……,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귀를 기울여 봐도 바람에 쓰레기가 바스락바스락 흔들리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클리어의 분위기는 꽤나 진중해서 농담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들립니다. 저 안입니다.”
“……가자.”
자연히 숨을 죽이고, 우리들은 공장으로 접근했다.
공장 벽에 딱 달라붙자, 안에서 미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클리어가 말한 대로다.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
드디어 시작인가…….
나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가방에 손을 댔다. 렌은 슬립모드로 해뒀다.
렌의 존재를 확인하는 듯이, 가방 위로 살며시 어루만진다.
이곳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올메이트로부터 발산되는 신호가 감지되지 않도록, 만약을 위해 모두 각자의 올메이트를 기동시키지 않기로 해뒀다.
벽을 따라서 시선을 옮기면 희미하게 열린 뒷문 같은 문이 보인다. 코우자쿠가 그 문 바로 옆에 달라붙어, 신중하게 안을 엿본다.
“……누가 있네.”
“한 번에 간다.”
“일단, 우리 팀원 녀석들도 이 근처에 대기시켜놨어. 저쪽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니까 말야.”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이야기를 나눈 결과, 코우자쿠, 밍크, 클리어, 내가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노이즈에게는 이 주변의 네트워크 감시와 실시간 침입이력 삭제를 부탁했다.
노이즈는 조금 뒤쪽으로 물러나, 코일로 모니터와 키보드를 열고서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쪽은 딱히 문제없음.”
[ 노이즈의 곁에 선다 ] → 선택
[ 노이즈의 낌새를 살핀다 ]
나는 노이즈의 곁으로 다가가, 바쁘게 움직이는 노이즈의 손을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노이즈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손을 움직이고 있다.
“……뭐야?”
“……아니, 어떤 식으로 하고 있나 싶어서.”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건가.”
“아니야. 긴장해서 그래. ……집중하고 있는데 간섭해서 미안.”
“나는 실패 따위 안 하니까 별로 상관없지만. 너야말로 중간에 넘어지지 마.”
“……알고 있어.”
“어련하겠어.”
……귀염성 없어.
그렇지만 집중하고 있는 참에 방해를 한 것은 내 잘못이다. 여기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서기로 했다.
“두근두근하네요.”
“노는 게 아니라니까.”
“……간다.”
밍크의 말을 신호로, 코우자쿠가 문을 연다.
……속이 텅 빈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검은 옷을 입은 집단이 있었다.
이 녀석들이……, 모르핀인 건가?
검은 옷을 입은 패거리 전원이 이쪽을 돌아본다.
……라고 생각한 순간, 일제히 이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갑자기 온다고!”
“이렇게 나오지 않으면 재미없지! 어이! 덤벼!!”
“………….”
“와아~!”
코우자쿠와 밍크가 가장 먼저 시커먼 무리 속으로 뛰어든다.
나도 엉거주춤한 자세의 클리어와 함께 그 뒤를 따랐다.
“코우자쿠 씨!”
우리들 뒤로 몇 명이 들어오는 발소리가 났다. 베니시구레 멤버들인가.
“으럇!”
코우자쿠는 팀 멤버들에게 눈짓을 하며, 검은 옷 무리를 차례로 때려눕혔다.
밍크도 묵묵히 주먹을 휘둘러, 두세 명을 한꺼번에 날려버린다.
“으잇차! ……윽!”
내게도 검은 옷을 입은 녀석이 달려 들어와서 재빨리 피했지만, 상대방의 팔꿈치가 가볍게 턱에 맞았다.
“아야야, ……우왓, 이 녀석!”
곧바로 상대방이 다음 펀치를 날려서, 한쪽 팔로 막는다.
그러나, 반대쪽 주먹, 또 반대쪽 주먹이 잇달아 쳐들어왔다.
”아 진짜, 끈덕져 죽겠네, ……응!?“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서, 등줄기에 차가운 것이 흐른다.
……뭐지, 이 녀석의 눈.
마치 인형 안구처럼 공허하다.
게다가 이 녀석의 얼굴, 어디서 본 기억이 있다.
설마 또 드라이주스의……!?
“……윽!?”
잠시 주의를 뺏긴 틈에 어깨를 맞았다. 극심한 통증이 손끝까지 저릿저릿 전해진다.
“……아프다고, 이 자식!”
반사적으로 몸을 뒤집어 돌려차기를 날린다.
검은 옷 녀석이 배를 맞고 앞으로 고꾸라져, 땅바닥에 쓰러졌다.
여기에 있는 녀석들은……. 전부 드라이주스인 건가?
“…………, ……우왓!”
옆쪽에서 다른 녀석의 주먹이 날아와서, 허둥지둥 피하고 발차기를 먹인다.
……그렇지. 클리어는?
[ 눈으로 클리어를 찾는다 ]
[ 클리어의 이름을 부른다 ] → 선택
“클리어! 괜찮아?!”
“네! 클리어입니다! 괜찮습니다, 마스터!”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검은 옷 무리와 마주보고 서있는 클리어가 있었다.
“폭력은…….”
“그만둬주세요~~~!!”
클리어의 펀치를 맞은 검은 옷 녀석이 위를 향하고 풀썩 쓰러진다.
………….
……뭐, 저건 저것대로 있을 법한 건가.
것보다 이 녀석들, 뭔가 이상하다.
좀 전부터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내가 발로 찬 녀석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우리들에게 덤벼들어올 뿐이다.
방금 전에 봤던, 그 인형 같은 눈…….
모두가 그런 걸까 싶어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니, 여러 명의 검은 옷 무리와 맞붙고 있는 코우자쿠의 모습이 보였다.
[ 코우자쿠의 적을 유인한다 ]
[ 코우자쿠에게 다가간다 ] → 선택
“코우자쿠!”
곁으로 달려가, 코우자쿠와 서로 등을 맞대고 선다.
떼를 지어 덤벼오는 검은 옷 녀석들을 내가 발로 차서 날려버리고, 코우자쿠가 검을 휘둘렀다. 검을 휘두른다곤 해도 칼등으로 치는 정도다.
“아오바, 이 녀석들……, 드라이주스 멤버들이지.”
코우자쿠의 말을 듣고, 의혹이 확신으로 변한다.
“아아.”
“뭐 때문에 이 녀석들이 우리를……!”
“마스터! 여기가 아닌 장소, 좀 더 안쪽에서 엄청난 수의 소리가 들립니다! 모여 있습니다!”
“이쪽은 미끼인가.”
밍크가 맨 먼저 공장 안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어이, 멋대로……, ……칫!”
코우자쿠가 그 뒤를 쫓으려 했을 때, 한 번 쓰러졌었던 검은 옷 녀석들이 좀비처럼 일어서기 시작했다.
검은 옷 무리를 칼등으로 후려치며, 코우자쿠가 소리를 친다.
“끝이 안 보여! 여기는 우리들이 어떻게든 할 테니까 먼저 가!”
“……알았어! 고마워!”
지금은 머뭇대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나는 밍크, 클리어와 함께 공장의 안쪽을 향해 달렸다.
정면에 보이는 통로……. 저기로 가면 되는 건가?
그 통로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그 앞을 가로막는 듯이 검은 옷을 입은 녀석 셋이 서 있었다.
“어쩔 수 없군.”
“히에에~~.”
“어이, 먼저 가라.”
“에?”
이쪽을 향해 달려든 검은 옷 녀석들을 향해 밍크가 주먹을 날린다.
“빨리 움직여. 가스마스크, 너는 이쪽이다.”
“어째서입니까!? 저도 마스터랑 함께 가고 싶습니다!”
밍크가 클리어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자기 옆으로 확 잡아당긴다. 그 날카로운 눈초리가 나를 포착했다.
[ 망설인다 ] → 선택
[ 밍크의 말에 따른다 ]
“먼저 이 녀석들을 쓰러뜨리고 가는 편이…….”
“……칫.”
밍크가 짜증스럽게 혀를 찬다.
“종알종알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냐.”
그때 검은 옷 중 한 명이 들이닥쳤다.
“히에-! 그만둬주세요!!”
“괜찮으니까 빨리 가라.”
“……알았어!”
검은 옷 무리와 밍크, 클리어로 줄줄이 꼬치상태가 된 통로의 가장자리로 빠져나가, 나는 안쪽의 문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왔다.
눈앞에는 주차장 같은 넓은 공간이 펼쳐져있고, 검은색 밴과 승용차가 세워져있다.
그 주변에 검은 옷을 입은 녀석이 몇 명 서있었다.
승용차 뒷좌석에서 세 명 정도가 나와서, 문이 열려있는 벤으로 이동하려 한다.
그 정가운데에 있는 인물을 보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
양쪽 팔을 붙잡혀 억지로 걸어가는 자그마한 실루엣은, 어떻게 보아도 할머니다……!
검은 옷 녀석들이 내 존재를 눈치 채고, 당장이라도 이쪽으로 달려올 기세를 보인다.
“……기다려.”
그것을 검은 옷 중 한 명이 막았다.
그 녀석은 후드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후드를 쓴 녀석이 앞으로 나와, 내게서 조금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양손으로 후드를 잡고, 천천히 벗는다.
그 아래로 나타난 얼굴을 보고……. 나는 심장이 멈출 뻔했다.
“………….”
“설마 여기까지 냄새를 맡고 찾아올 줄은 말이지. 과연 아오바라고 할까.”
“미즈키……, 너, 왜……, 할머니는…….”
미즈키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는 나를 보고, 모조품과도 같은 미소를 떠올렸다.
“너를 찾아오라고 시켰던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대신에 네가 직접 여기에 왔다는 건……. 그 녀석들, 잡히고 만 걸까나.”
……다르다.
내가 알고 있는 미즈키는 이런 얼굴을 하는 녀석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비웃는 듯한 말투를 쓰는 녀석도 아니다.
“너…….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드라이주스가 갑자기 전부 사라져서, 나도 코우자쿠도 엄청 걱정이 돼서…….”
“아아, 그건가. 있지, 잘 들어 아오바. 굉장하다고. 우리들 드라이주스는 말이지, 그 모르핀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모르핀……?”
“그래. 전설의 팀에게 인정받았다고? 다른 리브 따위는 발끝만큼도 못 따라온다고. 모르핀은 신 같은 존재니까 말야.”
“……그 말, 진심으로 하는 거야?”
“당연하잖아? 농담으로 들려? 이걸로 드라이주스는 절대적인 존재가 됐다고.”
“모르핀 외에, 어떤 팀도 우리들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야. 하하, 하하하하하.”
미즈키가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다. 그 표정이 어쩐지 섬뜩해서……,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녀석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모두 그 인형 같은 눈을 하고 있는 건가.
그,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듯한…….
“미즈키, 정신 차려. 너, 하는 말이 이상해.”
“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상한 건 네 쪽이잖아, 아오바.”
“너, 내가 아무리 권유해도 절대로 팀에 안 들어왔었지. 나는 꽤나 진지하게 너한테 그런 말을 한 건데 말이지.”
“리브 따위 시시하다는 생각이었나?”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왜 팀에 안 들어왔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있단 걸 알고 있었으면서.”
“………….”
“아오바,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어. 게다가 팀으로서는 지금 쪽이 훨씬 격이 높지. 우리들의 동료가 되라고. 신생 드라이주스의 일원이.”
“………….”
“…………, 절대로 안 해.”
미즈키가 품고 있는 리브에 대한 열정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나는 일부러 힘을 실어서 미즈키에게 대답했다.
지금의 미즈키는 이상하다. 본디 이런 말을 할 녀석이 아니다.
미즈키는 내 말을 듣고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곧바로 다시 엷은 웃음을 띠었다.
“……아, 그래. 그러셔. 뭐 좋아. 그렇다면 좋은 생각이 있지.”
“아오바, 너 할머니를 엄청 소중하게 여겼었지.”
“!”
미즈키가 할머니의 팔을 잡아 끌어당기고, 할머니의 목에 무언가를 들이댔다.
……나이프다. 불쾌한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
“……미즈키, 그만해.”
“네가 팀에 들어온다면 그만하지.”
“……윽.”
할머니는 뻣뻣하게 경직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
그 얼굴이 체념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여서, 내 안에서 초조함이 더해져간다.
“할머니를 놔줘.”
“말길을 한 번에 못 알아먹는 녀석이네. 그러니까 말했잖아. 우리들의 동료가 되라고.
“싫다고 했지.”
“아?”
미즈키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짜증이 드러난다.
“단순한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차피 말로만 그러는 거라고? ……좋아, 그렇다면 행동으로 보여주지.”
“어이…….”
“여기서 우리들의 동료가 되지 않았던 것, 나를 깔보는 태도를 취했던 것, 후회하지 말라고.”
“어이, 미즈키. 그만해!”
미즈키가 나이프의 끝을 할머니의 목으로 밀어붙인다.
싫어…….
그만해…….
할머니…….
할머니!!!
“…………윽!”
다리가 멋대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미즈키에게 달려들어, 그 눈을 보고…….
……그리고.
……갑자기, 시야가 구부정하게 일그러졌다.
이 감각, 바로 얼마 전에 어디선가…….
그래, 이건…….
……라임.
노이즈가 라임으로 싸움을 걸어왔을 때의, 그 감각.
……아니.
나는 훨씬 전부터 이 감각을 알고 있다.
좀 더…….
훨씬 전부터…….
………….
뭐, 지……? 여기는…….
여기는 미즈키의 가게다.
그렇지만, 뭔가 다르다.
가게 안에는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수없이 많은 손님이 있다.
그 녀석들은 전부…….
얼굴이, 없다.
새빨간 입만이 즐거운 듯이 뻐끔 열려서는, 미끈미끈 꿈틀거린다.
더 이상한 것은, 가기 안에 있는 녀석들이 주고받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부 귀로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에-, 리브 같은 거 촌스럽잖아.”
“역시 라임 쪽이 훨씬 낫지.”
“다들 하고 있고.”
“맞아 맞아, 이제 슬슬 리브는 질리기 시작했다고.”
“이제부터는 역시 라임이지.”
“리브 같은 거 때려치우자고.”
“…………윽.”
어수선하게 뒤섞인 목소리와 말이 머릿속에서 마구 날뛴다.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뭐야, 이건……. 윽!”
이런 건, 현실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꿈인 건가?
나는, 꿈을 꾸고 있나……?
그렇지만……, 이 감각.
역시 라임에 끌려들어갔을 때와 비슷하다.
게다가, 나는…….
훨씬 전부터 이 감각을 알고 있다……?
훨씬 더, 훨씬 전부터…….
“……윽.”
무언가 생각해내려고 해도 귓속으로 들어오는 목소리에 흩어져버린다.
시끄러워, 시끄러워…….
머리가 아프다. 목소리에 두통이 유발되어 지끈지끈 울린다.
제길……!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아……!
귓가에 묘한 열을 느끼고 손을 가져다대자, 무언가가 끈적끈적 흘러나왔다.
“……?”
까맣고 미끈미끈한, 콜타르처럼 점착성이 있는 액체다.
액체 안에는 수없이 많은 문자들이 뒤섞여서 떠올라있었다.
이거…….
“윽!”
머릿속으로 들어왔던 말……!?
그것들이 질척질척한 검은 액체가 되어, 귀에서 흘러내린다.
죽은 말들이 안쪽에서부터 거꾸로 솟아나와, 양쪽 귀에서 넘쳐흐른다…….
“어떻게 된 거야……, 윽.”
꿈이라면 어서 깨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이 리얼한 감각.
도저히 꿈이라고는…….
여하튼 어떻게든 해서 여기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출구를 찾으려 하다가, 문득 시선을 느꼈다.
지금……, 누가 나를 본 건가?
뒤를 돌아보니, 낯익은 얼굴이 지나갔다.
……얼굴이다. 얼굴이 있다.
달걀귀신들만 잔뜩 늘어서있는 가운데, 방금 전의 녀석에겐 얼굴이 있었다.
“……윽.”
그 녀석의 뒤를 쫓아서,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종알종알 지껄여대는 달걀귀신들을 양손으로 헤치고, 가게 안쪽으로 향한다.
이 끝에는 타투 시술실이 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든다.
……내가 뛰어 들어간 곳은, 드라이주스의 집합소였다.
어째서지?
분명 가게 안에 있었는데.
마치 공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
드라이주스의 태그가 거창하게 그려진 골목 안쪽에, 조금 전에 내가 보았던 녀석이 고개를 숙이고 서있다.
나는 천천히 그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그 녀석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미즈키.”
미즈키가 천천히 얼굴을 든다.
그 표정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엉망으로 일그러져있었다.
“아오바…….”
“나 좀 도와줘, 아오바.”
그 순간, 벽에 그려져 있었던 드라이주스의 태그아트가 새카맣게 칠해지고는 촥 하고 피가 튀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너…….”
“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뭘 말야……?”
“드라이주스 말이야.”
“나는 리브 하는 게 엄청 즐거워서, 정말로 리브가 좋아서……. 그래서 드라이주스에 대해서도 엄청 진지하게 생각해왔어.”
“어떻게 하면서 팀원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을지. 안 좋은 일을 겪지 않고 끝날지. 줄곧 그런 걸 생각하면서 팀을 이끌어왔어.”
“가족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마음에서.”
“알고 있어. 그래서 드라이주스는 리브에서 제일 큰 팀이 됐잖아.”
“그치만……. 이제 그걸론 안 된다고.”
미즈키가 분하다는 듯이 고개를 떨구고, 양손으로 주먹을 쥔다.
“라임이 유행하고서부터는 다 틀렸어. 모두 새로운 것에 빠져서 리브에는 싫증을 내고, 그렇게 되면……, 간단하게 버리고 마는 거야.”
“결국 리브도 라임도 게임이지. 모두, 더 새롭고 재밌는 것을 원해. 그렇지만 난…….”
“정말로 리브가, 드라이주스가, 동료들이 소중했으니까 여기서 떠나지 않기를 바랐어.”
“고작 게임 따위에 진심을 쏟는 쪽이 바보겠지만, 그렇게 간단하게는 받아들일 수 없었어.”
“우리 멤버들도 점점 라임 쪽으로 흘러가고, 새로 들어오는 녀석도 줄어들고……. 내가 쌓아올렸다고 생각했던 유대가 조각조각 흩어져가고…….”
모든 것을 게워내는 듯이 이야기하는 미즈키를 보고 있는 것이 괴로워서……, 나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미즈키가 드라이주스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임에도, 나는 미즈키가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스스로의 무능력함이 너무나도 분하다.
만약 조금 더 깊게 미즈키와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그래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이 나오진 않고……. 그러다가, 모르핀의 멤버라고 자칭하는 녀석이 나타난 거야.”
“모르핀…….”
“드라이주스는 리브에서 제일 힘이 있는 팀이니까, 모르핀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처음엔 너무 수상쩍고 무슨 같잖은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실제로 모르핀 팀원 녀석들과도 만나서……. 그래서 난, 이걸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 모르핀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면, 모두 라임으로 가버리는 일도 없어질 거라고.”
“드라이주스에 자긍심을 지닐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럼, 정말로 모르핀에…….”
“아아. 그치만 역시 잘못된 생각이었어. 모르핀은 내가 생각했던 것 같은 팀이 아니었어. 모르핀은, 그 녀석들은…….”
“으악, 크윽…….”
“미즈키, 씨…….”
“그런……, 거짓말이지…….”
“드라이주스는 모르핀의 일원이 된다고, 그런 이야기였던 거잖아!? 그런데 어째서…….”
“……웃기지 마……, 제기랄……!!”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미즈키의 표정이 변했다.
괴로운 듯이 가슴을 부여잡고, 몸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땅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미즈키?”
“으, 으윽, 아악……, 으아아아아아악…….”
미즈키의 머리가 뚝 부러지는 듯이 위를 향한다.
눈동자가 바쁘게 좌우로 흔들리고, 크게 벌려진 입에서 잔뜩 쉰 소리의 비명이 새어나온다. 대량의 땀이 턱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어이, 미즈키!”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미즈키!”
미즈키의 곁으로 달려가, 양쪽 어깨를 붙잡는다.
“……!?”
뭐지? 지금.
지금 그건…….
“……윽.”
머리가 아프다…….
무언가가, 보인다.
이 영상은…….
이……, 기억은.
이것은…….
나의………….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미즈키!!”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 번쩍 정신이 든다.
여기는…….
모르는 장소다.
……아니, 아니다.
분명, 그 검은 벤과 승용차가 세워져있던 장소다.
그럼, 미즈키는…….
“이제야 일어났니.”
“에?”
어라?
이 목소리…….
“……할머니!?”
왜 여기에 할머니가……!?
몸을 일으키려 하다가, 내가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할머니, 왜, 어떻게, 에?”
“뭘 혼란스러워 하는 거야. 네가 여기까지 왔잖냐.”
“아…….”
……맞다.
여기서 미즈키를 비롯한 검은 옷 무리가 할머니를 차에 태우려 해서, 그걸 막으려고…….
“……미즈키는.”
“거기에 있어.”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을 보니, 미즈키가 엎드린 채로 쓰러져있었다.
그 곁에는 코우자쿠, 노이즈, 밍크, 클리어도 있다.
“괜찮은 거야, 아오바.”
“마스터!”
“………….”
……다행이다. 모두가 있다.
그런 생각에 안심했더니, 갑자기 몸이 무거워졌다.
“할머니…….”
“뭐냐.”
“머리, 아파…….”
“나중에 약 먹어라. 이제 집으로 돌아갈 거다.”
“응…….”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지금까지는 당연하기 그지없었던 할머니의 그 말이, 지금은 몹시도 기쁘다.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집으로.
다행이다…….
……몸의 힘이 점차로 빠져나가는 가운데, 나는 어느 사이엔가 의식에서 손을 놓았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시야에 들어온 것은 천장이었다.
“………….”
내, 방…….
몇 번 눈을 깜박이는 사이에, 천천히 현실감이 되돌아온다.
아야야…….
머리가 아프다. 지끈지끈 울린다.
약, 먹지 않으면…….
양팔로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니, 이불 가장자리에 렌이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평소와 똑같은……. 일상의, 지극히 평범한 풍경.
그것을 보고, 아아, 돌아왔구나, 라고 실감한다.
천신만고 끝에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렌의 머리로 손을 뻗어, 가볍게 쓰다듬고서 기동시켰다.
‘아오바.’
“안녕, 렌.”
‘안녕. 몸 상태는 어때.’
“머리 아파.”
‘그래.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되겠군.’
“아아. 아래로 내려가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렌을 안아들고서 방에서 나왔다.
아야야…….
몸의 진동이 머리에까지 울려서 깨질 듯이 아프다. 꽤나 심하다.
그러나, 복도에 가득 찬 음식 냄새를 맡으니 아픈 것도 조금 잊혔다.
할머니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할머니. 정말로 무사해서 다행이다.
지금 이렇게 공복감을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의미를 곱씹으며,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로 들어가자, 코우자쿠, 노이즈, 클리어가 식탁에 앉아있었다.
밍크만 혼자 떨어져서 안방의 소파에 앉아있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할머니의 요리가 가득 늘어서있어서, 당장이라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것만 같다.
“아오바, 일어난 거야?”
“마스터!”
‘여어, 렌. 신세 좀 지겠다고.’
‘아아.’
“컨디션은 어때?”
“그럭저럭. 썩 좋지는 않아.”
“그렇겠지.”
코우자쿠가 가볍게 한숨이 뒤섞인 말을 내뱉고 고개를 끄덕인다.
자리에 모인 모두들 사이에 감도는 공기에 어딘지 모르게 피로감이 스며있는 것 같다.
뭐 무리도 아니겠지……. 꽤나 얼토당토않은 일을 했으니까.
“미즈키는?”
“미즈키도 드라이주스의 다른 멤버들도, 병원으로 실려 가서 그대로 입원했어.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아.”
“그래.”
그때…….
할머니를 차에 태우려했던 미즈키와 마주했을 때.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일어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미즈키도 쓰러져있었다.
우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것일까? 딱 하나,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나의 과거다.
무슨 이유에선지 지금까지 잊고 있었지만, 기억해냈다.
나는 예전에, 라임에 참가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노이즈의 무차별 살인 라임에 말려들었을 때도 어렴풋이 싸우는 방법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어째서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일까.
싸우는 방법을 잊었다든지 기억이 애매해졌다든지 하는 게 아니라, ‘라임에 참가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내 기억 속에서 누락되어 있었다.
그렇게 정확하게 한 지점을 깨끗이 잊어버리는 일 따위, 있을 수 있는 건가……?
“일어났니.”
“할머니.”
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고는 코로 소리를 내며 숨을 내쉬고는, 요리가 담긴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도 도울게.”
“이걸로 끝이야. 너도 얼른 앉아라.”
“그래, 알았어.”
나는 순순히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 이제 괜찮은 거야?”
“남 걱정하기 전에 너 자신부터 걱정해라. 픽 쓰러졌던 건 내가 아니라 너잖니.”
“………….”
할머니의 말에 어디 하나 틀린 구석이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할머니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지만, 결국 걱정을 끼치고 말았다…….
겸연쩍은 마음으로 내 접시를 든다.
처음엔 우울한 기분이 가시질 않아 잠시 어디에 젓가락을 둬야할지 망설였지만, 반찬을 한 입 먹으니 그런 건 단번에 날아갔다.
맛있다. 돌연, 식욕이 솟아오른다.
식탁에 둘러앉은 나머지도 할머니가 차린 밥이 정말 맛있어서 젓가락을 멈출 수 없는 지경인 듯, 테이블 위에 가득 놓여있던 접시는 눈 깜짝할 새에 텅텅 비어갔다.
클리어는 또 수수께끼의 광속 섭취였고, 밍크만은 끝까지 식탁에 오지 않았지만.
두통약까지 먹고서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힌 시점에서, 나는 할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입 밖에 냈다.
“……할머니. 뭐 좀 물어봐도 돼?”
“뭐냐.”
“할머니를 끌고 갔던 건……, 정말로 미즈키였던 거야?”
할머니가 손 안의 찻잔으로 시선을 떨어트린다.
“그렇단다.”
“………….”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지. 너랑 관련해서 용건이 있으니까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말이지.”
“처음부터 조금 눈치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랬더니 갑자기 내 입을 틀어막고는 강제로 차에 싣더구나.”
“그랬구나……. 근데 왜 할머니를.”
“………….”
할머니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는 입을 다물고, 잠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오바. 그리고 너희들도.”
“우선, 고맙다는 말을 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지. 너희들 덕분에 살았다. 고맙다.”
“할머니…….”
“지금부터 정말로 중대한 이야기를 하마. 과연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망설였지만 말이지……. 실은 지금도 아직 망설이고 있단다.”
“그렇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이야기를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그러니까 모두들, 정신 차리고 잘 들어라.”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조용히 할머니를 바라본다.
“우선, 미즈키가 어째서 나를 납치했는지의 이야기인데……. 그 애는 조종당하고 있었다.”
“모르핀이, 그런 거겠지.”
“그래. 그치만, 그 모르핀이라는 건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조금 달라. 이건 내 추측이지만, 녀석들에게는 필시 토우에 재벌의 입김이 미치고 있어.”
“토우에의……?”
“이 섬을 매입해서 플라티나 제일을 만든 아저씬가.”
“그치만 모르핀이랑 토우에라니,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할머니는 조금 이야기하기 껄끄러운 듯이 우리들을 보고서는, 또 찻잔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나는 말이다, 원래 토우에가 소유한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단다. 이럭저럭 2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할머니가……, 연구원? 토우에의?”
“아아. 그때는 본토에 있어서 말이지. 연구소와 토우에가 연결되어 있었던 걸 안 건 한참 후의 일이었지만.”
“토우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뇌에 대한 연구를 해왔지. 내가 참가했던 건, 간단하게 말하자면 뇌의 가소성에 관한 것이었어.”
*가소성: 고체에 어떤 한도 이상의 힘을 가했을 때, 고체가 부서지지 않고 모양이 달라져 그 힘을 없앤 후에도 달라진 모양 그대로 남아있는 성질.
“뇌기능이 상실되었을 경우의 재배열 가능성, 약물 투여에 의한 영향과 변화 등을 조사했었지.”
“그것들은 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의 회복을 돕기 위한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는, 훌륭한 연구가 될 것이었단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지.”
“그렇지만 말이다, 그게 아니었던 거다.”
“토우에의 진짜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조정하는 온갖 방법을 찾는 거였어. 모두, 그걸 위한 연구였던 거다.”
“가끔 의도가 애매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 의문이 쌓이고 쌓여서 말이지. 조사를 해보니, 어느 논문이 나오더구나.”
“거기에는 인간의 의식을 완전히 뒤바꿔놓기 위한 방법론이 줄줄이 적혀있었다.”
“그걸 봤을 때, 나는 살아있는 기분이 아니었지.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믿으며 해왔던 일이, 실은 사람들에게 재앙을 끼치는 것이었다니.”
“그걸로 나는 모든 연구를 내버리고, 연구소를 그만두었지. 그 뒤로는 토우에와 관계되는 일 없이, 고향인 이 섬에서 조용히 인생을 마치자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연락이 오게 되었지. 토우에로부터 말이다.”
“……!”
“급히 연구소로 돌아오라는 요청이었지.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거부했다. 토우에와 얽히는 일은 이제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내가 그렇게 나오니 속이 탔던 게지. 녀석들은 강경한 수단을 취했다. 그게 그 모르핀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째서 미즈키가……, 드라이주스가 말려든 거야?”
“요즘, 이 섬에서 이따금 젊은이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지. 그리고 약물 중독자 같은 게 길거리를 어슬렁어슬렁거리게 되었어.”
“그건 토우에가 하고 있는 연구의 희생자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어딘가가 조작된 인간을 모르모트로 삼아서 거리에 풀고,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면 실패한 인간을 유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말이지.”
“실패한 인간……?”
“마음을 조종하는 데에 실패해 망가트렸다는 의미다. 정신이 파괴되니, 폐인이 되지.”
“그럼 성공한 녀석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 녀석들은 회수되어서, 새로운 실험이 대상이 되지. 예를 들면 방금 말한 의식의 바꿔치기 같은 것……,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말이야.”
“미즈키 대해서는, 나와 안면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했겠지. 내가 방심하기 쉬울 거라 예상했을 거다.”
“그런 연구를 해서, 토우에는 무슨 짓을 할 작정인 거야? 이대로 가면 이 섬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아마도 이 섬에 있는 모든 인간의 의식을 조작할 생각인 거겠지. 그러면 토우에가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왕국’을 만들 수 있지.”
“마음을 조종하는 기술을 누구보다 먼저 확립하면, 다른 나라에 판매할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
“이 구 주민구는 그런 목적으로, 토우에의 갖가지 어둠의 손길이 뻗어 들어와 있는 거다.”
“요 몇 년간은 조용히 있었던 것 같지만……, 마침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려는 건지도 모르겠구나.”
그럼, 구 주민구의 모든 인간이 그 중독 환자처럼 되고 마는 건가?
하가 씨도 악동 형제들도 요시에 씨도, 모두…….
“……막지 않으면.”
“싫어. 그런 건 절대로, 싫어.”
내가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자, 할머니는 괴로워 보이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아직 더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어. 아오바, 네 이야기다.”
“나?”
“너, 나를 구하러 왔을 때 도중에 정신을 잃었었지.”
“아아, 응. 어쩐지 엄청 리얼한 꿈을 꿨었어……. 그 꿈속에서 미즈키랑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건 꿈이 아냐. 네가 본 건 미즈키의 머릿속이다.”
“……에? ……머릿, 속?”
할머니가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이,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지금부터 네가 상상도 못 해봤을 이야기를 하마.”
“그렇게 간단히는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자신의 의식을 개입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뭐? 뭐, 라고?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자신의 의식을……?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 능력을 ‘스크랩(폭로)’이라 부르고 있지.”
“스크랩…….”
“네 경우, 스크랩을 발생시키는 건 목소리다.”
“!”
“자신이 조금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이 어째서인지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 너, 그런 경험이 많은 거 아니냐?”
“……확실히, 그런 일은 있었지만.”
“네 목소리에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조금 의식해서 사용하면, 그 목소리가 상대방의 머리에 작용하기 시작해 자신이 뜻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지.”
“그리고 네가 상대방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싶다거나, 혹은 상대방이 깊은 곳까지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면, 너는 상대방의 머릿속에 자신의 의식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
“단, 머릿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인간의 육체라는 ‘갑옷’을 사이에 두지 않고, 무방비한 상대방의 의식과 마주하는 일이 되지.”
“그때 너의 행동, 발언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의식을 ‘부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론상으로는 말이지.”
“………….”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사고정지 상태에 빠진다.
내가 의식해서 목소리를 내면, 다른 사람이 내 생각대로 움직인다고……?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의식과 마주해? 부수는 것도 가능?
뭐가 뭔지 전혀 알 수 없다.
모르는 나라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렇군.”
안쪽에 있었던 밍크가 어느 사이엔가 이쪽으로 와서,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있었다.
“스크랩은 목소리 그 자체에 강제력이 작용하니까 말이다.”
“그럼, 그 이상한 꿈 같은 세계는 미즈키의 머릿속이었다는 말이야……?”
“너 말고, 그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뭐라 말은 못하겠다만. 아마도 그럴 거다.”
“나, 그때 미즈키랑 이야기를 했었어. 미즈키는 평소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이래저래…….”
“미즈키가 지금까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드라이주스와 리브 일로 고민해왔는지를 이야기해줬어.”
“그 녀석, 그 정도로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네가 이야기를 나눈 것은 미즈키의 의식 그 자체일 거다. 단 한 조각의 거짓도 없는, 무방비한 본심만 남게 된 미즈키지. 너는 뭐라고 대답을 해주었지?”
“나……. 왜인지 그때, 갑자기 예전에 있었던 일이 기억나서……. 라임을 했었다는 사실을,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깨끗이 잊고 있어서.”
코우자쿠와 노이즈가 나를 본다. 그야 그렇겠지…….
나, 지금까지 라임 따위 참가한 적 없다고 말했으니까…….
“그런데 그……, 미즈키의 본심과 이야기했을 때, 라임과는 또 어딘가 다른 공간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라……, 잘 모르겠어. 뭐가 뭔지…….”
“미즈키……. 그때, 무언가 말하려고 했었어. 모르핀은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듯한 그런 게 아니라고.”
“그치만 그 다음 말을 하려다 갑자기 괴로워하기 시작해서…….”
“………….”
“흐응…….”
할머니는 미간을 잔뜩 좁히고, 코로 숨소리가 뒤섞인 소리를 내고서는 깊게 생각에 잠기는 듯이 침묵했다.
이야기의 내용이 내용인 만큼, 할머니의 침묵은 무겁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할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건 결과론이니까, 절대로 너를 책망하는 건 아니다. 다만…….”
“만약 그때 네가 적확한 말을 던져주었다면, 미즈키의 의식은 원래대로 돌아왔을지도 모르겠구나.”
“에, 그 말은…….”
“심한 말을 하는 것 같지만, 네가 한 일은 어중간하게 미즈키의 본심을 억지로 끌어내서 방치한 거다.”
“있는 그대로의 의식은, 비유를 한다면 껍질이 벗겨져 안이 훤히 드러난 살점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아주 연약하지.”
“그래서……, 미즈키는 지금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거다. 그렇지?”
“아아, 그렇다고 들었어.”
“토우에 쪽에서 미즈키에게 덫이라고 할 만한 일종의 각인을 새겨두었을 거다. 예를 들면 핵심에 근접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머리가 쪼개지는 듯이 아파온다, 라든지.”
“억지로 끌어내지고 방치된 시점에서, 토우에의 덫이 작동했다. 그 탓에 미즈키의 의식은 부서져버리고 만 거겠지.”
“다시 이쪽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본인의 기력에 달린 문제다.”
“! 그런……!”
나 때문에 미즈키의 의식이……, 부서지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나 때문에, 그런……. 미즈키가…….
“아오바. 네 힘은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는 사람을 파괴하고 말지. 그렇기에 더욱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언젠가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
“지금까지는 내가 있었지. 나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너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안 돼.”
“나의 보호 아래 놓인 채로는, 그 힘은 언젠가 폭주해서 불행을 불러들일 거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결국 토우에는 너를 찾아내겠지.”
“토우에가 계속하고 연구하고 있는 것이 너에게는 처음부터 갖추어져있으니 말이지. 녀석 입장에서는, 너의 힘은 침이 꿀꺽꿀꺽 넘어갈 정도로 몹시 탐이 날 거다.”
“요번의 강행 수단도 그렇지만, 앞으로 토우에가 네게 무슨 짓을 해올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아오바, 너는 이제부터 자기 자신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
한꺼번에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모든 것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미 내 허용량을 초과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이상, 토우에가 자기 좋을 대로 하게끔 했다간 위험하다는 것만은 잘 알겠다.
토우에를 그냥 내버려뒀다간, 이 섬은 통째로 이상하게 되고 만다.
“얼마 안 있어 플라티나 제일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열릴 게다. 무슨 내용인지는 당일까지 밝혀지지 않는 것 같지만, 이벤트 중계는 구 주민구에서도 방영되지.”
“어째서 구 주민구에서도 중계되는 겁니까? 보통 플라티나 제일에서 나오는 정보는 차단되지 않나요?”
“전체 공개로 해두면, 구 주민구까지 공공연하게 실험을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겠지.”
“그 말대로다. 표면상으로는 그런 연구를 하고 있다는 발표는 안 되어있어.”
“그렇지만, 이벤트라는 명목이 있으면 대대적으로 연구의 성과를 시험해볼 수 있지.”
“성과를 시험한다니, 어떻게…….”
“노래, 연설, 빛, 영상……. 사람을 조종하는 장치라는 건, 하려는 마음만 먹으면 어떤 것으로든 만들 수 있지.”
그 말은, 그 이벤트가 개최되기 전까지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가…….
“빨리 플라티나 제일로 쳐들어가는 편이 좋은 거 아냐? 당장 내일이라도 말이지.”
“그치만, 어떻게.”
“게이트까지라면 갈 방법은 있다.”
“그래?”
“아아. 다만 나는 움직일 수 없으니까 말이지. 대신에 안내를 부탁해둘까. 하가 씨한테.”
“하가 씨한테?”
“여기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세한 건 내일 물어보면 된다.”
그렇게 말하고, 할머니는 조금 괴로운 듯한 숨을 내쉬었다.
“그럼……, 꽤나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말았구나. 너희들로서는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조금이라도 연구에 관계되고 말았던 몸으로서……, 너희들에게 진실을 전하고 싶었단다. 말려들게 하고 말아서 정말로 미안하구나.”
할머니가 우리들을 향해 깊숙이 머리를 숙인다.
“할머니…….”
“타에 씨, 그런…….”
“할머님…….”
몇 초 정도 머리를 숙이고 나서, 할머니는 자리에 모인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자아, 오늘은 다들 많이 피곤하겠지. 집 꼴이 이러니 부족한 것 없이 푹 쉬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몸을 좀 쉬게 하는 편이 좋을 거다.”
할머니가 그렇게 말한 뒤로, 입을 여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얌전한 얼굴로 거실에서 나간다.
클리어는 2층으로, 노이즈는 복도로 간 것 같다.
모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안쪽으로 이동했다.
소파에 앉아, 천천히 긴 숨을 내쉰다.
나는 그 곁으로 다가갔다.
“……할머니.”
“왜 그러니.”
“조금만 더, 이야기해도 돼?”
대답은 없었지만, 할머니의 곁에 앉는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산처럼 쌓여있다. 그렇지만……, 뭘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터질 듯이 가득 차서,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나는 무릎 위에 올려둔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있잖아, 나……. 지금까지 줄곧 할머니한테 걱정만 끼치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고. 방금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그게 너무 미안해서…….”
“그런 바보 같은 소리 하는 거 아니다.”
“아오바, 네가 별 탈 없이 이렇게 장성해준 것에 감사하지 않은 날은 없었단다.”
“너의 일은 내 책임이기도 하지. ……나는 네 할머니니까 말이야.”
“할머니…….”
할머니는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너, 과거에 라임에 참가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고 했지.”
“응.”
“너는 말이다, 예전에 라임에서 사고를 일으키고 입원한 적이 있었어.”
“에? 라임에서, 사고?”
“아아. 지금이니까 하는 이야기지만. 내가 부랴부랴 달려갔을 때, 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지. 의사랑 경찰한테는 싸움에 휘말렸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급소를 다쳐서, 일시적인 기억장애가 일어났을 뿐이라고. 그렇지만……. 내가 문병하러 갔던 날의 일이다.”
“아오바?”
“……!”
“……놀랐나?”
“!”
“……아오바…….”
“그때, 네 곁에는 간호사가 쓰러져있었고…….”
“너는 그로부터 꼬박 이틀을, 계속해서 잠만 잤지. 기절했었던 간호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검사를 하러 네 방에 가고서부터 눈을 뜰 때까지의 기억이 쏙 빠져있었던 것 같더구나.”
“………….”
“네가 두통을 호소하게 된 건 그 후다.”
“그건……, 기억하고 있어. 거기서부터는 대충. 흐릿하긴 하지만.”
“그 간호사는 너에게 가벼운 스크랩을 당했었지. 네가 간호사의 의식으로 들어가, 기억의 일부를 파괴한 거다.”
“두통, 스크랩, 인격 변화……. 이런 것들을 위험을 초래하는 방아쇠라고 느꼈던 나는, 너에게 약을 처방해주기로 했다.”
“네 의식의 안정과 강화를 꾀하고, 그 힘이 폭주하지 않도록 말이다. 결과적으로, 두통은 가라앉았지?”
“응.”
“약의 효험이 나빠진 것은, 네 힘을 억지로 억눌러온 것의 반동인지도 모르겠구나.”
“………….”
“스크랩의 근본은 파괴다. 부수고, 죽이는 힘. ……그렇지만, 힘이라는 것은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지.”
“그렇기에 더욱, 나는 네가 너 자신과 제대로 대면하기를 바라는 거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춰 서지 마라. 자신이 정한 길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힘차게 말하고, 할머니는 내 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꼭 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할머니의 손. 다정한 할머니의 온도.
그것은 지금까지 쭉 나를 지켜봐준, 소중한 사람의 온도다.
“할머니.”
“응?”
“나, 꼭 돌아올 테니까.”
“……아아.”
할머니는 약간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할머니는 소파에서 일어나 선반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가지고 가거라. 새로 처방한 두통약이다.”
“고마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아아.”
나는 할머니로부터 받은 두통약 케이스를 조용히 움켜쥐었다.
방으로 돌아오고 나서,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런저런 이야기가 소용돌이쳐서, 도저히 잠잘 기분은 들지 않았다.
미즈키 일행이 모르핀에게 조종당했다는 것.
할머니가 토우에의 연구소에서 연구를 했었다는 사실.
토우에의 진짜 목적.
라임을 했었다는 과거를 떠올린 것.
나의 힘, 스크랩에 대한 것.
미즈키의 의식을……, 부숴버리고 말았는지도 모른다는 것.
“………….”
몸을 뒤척이고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어도, 무거운 기분이 걷히지는 않는다.
내가, 미즈키를…….
그때, 만약 내가 미즈키에게 적확한 말을 해주었다면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몰랐다고는 하지만……,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내 행동 하나로 미즈키의 인생이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
천장을 올려다보아도 베개에 얼굴을 파묻어도 안 된다. 마음이 점점 가라앉아간다.
지금껏 기대고 있었던 팔이 갑자기 나를 뿌리친 듯한 불안감이 계속 사라지지 않는다.
“……제길.”
……이 이상, 혼자서 생각에 빠져있고 싶지 않다.
[ 노이즈를 떠올린다 ] → 노이즈 루트로 계속
[ 클리어를 떠올린다 ] → 클리어 루트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