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기
전통과 혈통을 중시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키라의 촌장도 필시 마을을 지키기 위해,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해 온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종, 폐쇄된 사회를 형성한다.
작은 마을 안이 세계의 전부가 되어,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죽어간다.
극단적으로 적은 군중 가운데에서 나타나는 지도자는 절대적이다.
──그렇기에 더욱.
거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라는 존재가 소멸되어 버린다.
키라의 고양이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애당초 그 이전의 문제일 것이리라.
오한과 분노를 느낀다.
어떤 마을이 있든 전혀 상관 없지만, 그 때문에 죽게 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네가」
코노에는 물러섰던 거리에서부터, 아사토에게로 한 발짝 다가간다.
「네가 진심으로 나를 죽이고 싶다면, 상대해 줄게. 그치만, 키라를 나가면 살아갈 수 없다느니, 그런 건 그저 신념이야」
아사토의 눈동자에 순간, 당황의 빛이 흔들린다.
그 눈을 강하게 응시하며 코노에는 말을 잇는다.
「촌장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 키라의 바깥에도, 세계는 잔뜩 펼쳐져 있어. 그걸…… 알고 싶지 않아?」
「……키라의, 바깥의 세계」
「아아」
아사토는 명백히 동요하고 있었다.
분명, 키라에서 나온다는 것 따위 생각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물론, 촌장을 의심해본 적도 없을 테지.
코노에의 말이, 아사토의 모든 것을 뒤흔들고 있다.
「……게다가」
코노에는 시선을 내리고, 다시 입을 열였다.
「너는, 내 모습을 보고도 싫은 얼굴 한번 하지 않았어. 내, 이런 모습을 보고도」
「코노에……」
거기서, 코노에는 얼굴을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아. 어떤 일이 있어도 날 죽이고 싶다면, 촌장이 오면 되는 거야. 네가 촌장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어」
「…………」
아사토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이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은 눈을 가늘게 좁히고는 말을 삼키고, 고개를 숙였다.
잠시 침묵이 찾아든다.
아사토는 지금,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서 사고를 정리하려고 있는 것이겠지.
살아왔던 세계의 모든 것이 뒤엎어지는 것과 같은 일일 것이다.
코노에는 아사토가 말을 밖으로 낼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우거진 나무들의 틈새로부터 들여다보이는 하늘을 올려보며, 음의 달에 눈을 가늘게 뜬다.
겹쳐진 나뭇잎에 가로막힌 빛은 가늘고 여려서, 어두운 숲에는 미미한 광명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매료당한다.
동이 틀 때까지, 앞으로 얼마나 남은 것일까.
「……처음, 이었어」
불쑥, 아사토가 말을 뱉었다.
의지할 데 없는 음성이었다.
「예쁘다는 말, 들은 건」
──예쁘다?
그런 말, 했었던 건가.
기억을 더듬어, 문득 생각해 낸다.
분명…… 아사토의 집에서, 털의 결이 예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사토 쪽이 예쁘다고 생각했기에, 별 생각 없이 대답한 것이다.
「……나는, 미움 받고 있으니까」
「미움 받아?」
「…………」
되물었지만, 아사토는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숙이고, 귀를 내렸다.
그 이상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눈치였다.
「가족이라든지, 없는 거야? 아니면…… 뭔가 소중한 건」
「없어. 소중한 것 따위, 아무것도」
되돌아온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아사토의 손이 느슨하게 주먹을 쥔다.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똑같다.
코노에는 아사토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움 받고 있다──고도 말했다.
타자와의 접촉이 서투른 것도, 그 탓일까.
그러나, 마음을 알겠기 때문에 더욱 화가 가증되는 것도 있었다.
「기뻤어. ……그러니까, 코노에는, 죽이고 싶지 않아」
코노에는 천천히 아사토의 곁으로 다가가, 지면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러니까, 몇 번이고 말하잖아. 싫으면, 따르지 않으면 되는 거야」
「……겁이 나」
코노에의 시선을 피하듯이 아사토는 더욱더 고개를 숙이고, 한쪽 손의 손톱으로 지면을 긁어댔다.
「키라를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어. ……무서워」
무섭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돌연 머리의 심지가 뜨거워졌다. 그래서, 억양 없는 음성으로 낮게 대답했다.
「……그건, 누구든 똑같애」
그래, 누구든 마찬가지다.
자신도 그렇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라고 해서,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가라앉히고서, 보이지 않는 척을 하고서 걸어온 것이다.
보면, 그야말로 다리가 얼어붙어 버릴 테니까.
그런데도, 아사토의 말은 그것을 굳이 건져올려서, 들이내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너도 무서운 거지, 라고.
──아사토에게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인가.
자기혐오에 내몰려, 코노에는 조용히 숨을 내쉬고는 얼굴을 돌렸다.
「……좋을 대로 하면 돼. 나를 죽이고 마을로 돌아가고 싶다면, 그래도 괜찮아」
아사토는 시선을 발치로 떨어트리고, 약간의 사이를 두고서 다시 얼굴을 들었다.
귀는 여전히 내려간 그대로다.
「……코노에도, 마을을 나온 거지」
「아아. 나도, 이제 돌아갈 수 없어」
자신의 꼬리를 아사토의 그것에 닿을락말락한 거리까지 가까이 대본다.
같은 색인데도, 자신 쪽이 거칠고 불길하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지고 싶지 않아」
「……무엇에」
그것은 자연히 입에서 흘러나온 말로, 질문을 받아도 구체적으로는 어떤 건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느낀 것을 입에 담았다.
「……모르겠어. 무엇에 지고 싶지 앟은 건지, 무엇과 싸우고 있는건지도. 그저, 포기하면 진다. 거기서, 끝나는 느낌이 들어. 그것만큼은, 싫어」
포기하면 진다.
포기하는 것은 누구인가.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다.
「포기하면……, 진다?」
혼잣말처럼 아사토가 중얼거리고, 손 쪽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땅에 뚜렷하게, 방금 전 할퀴어댔던 손톱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촌장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게 무서워. 마을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게, 무서워. 그치만, 코노에를 죽이고 싶지 않은 걸, 포기하고 싶지도, 않아. 코노에는, 무서운 건 없는 거야?」
더듬더듬 말을 풀어가면서, 아사토의 푸른 눈동자가 똑바로 코노에를 향한다.
달빛을 받아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밤하늘 같은, 짙은 청색이다.
그 눈동자의 깊숙한 안쪽까지 닿도록, 코노에도 똑똑히 마주본다.
「없을 리가 없잖아. 그치만, 무서운 건, 무서워하지 않게 되면 그걸로 이미 끄떡없게 돼.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건, 이루어내지 않고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야. 그 다음이 없어」
「그런가……」
아사토가 끄덕인다.
내려가 있던 귀가, 아주 약간 일어선다.
코노에는 꼬리의 끝을 뻗어서, 그 갈색 팔을 스르륵 어루만져 보았다.
놀라서 깜박거리는 눈동자에, 장난기를 섞어 희미하게 웃어보인다.
「약한 녀석이라면 몰라도, 너, 꽤 강하니까. 키라 밖으로 나간대봤자, 어지간해선 아무렇지도 않아. 키라의 바깥은, 지옥도 마계도 아니야. 그저, 숲과, 물과, 흙과, 하늘과, 고양이다」
「……그런가」
줄곧 근심을 띠고 있었던 아사토의 뺨이, 약간 누그러진다.
──웃었다.
무심결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사토는 귀를 세우고, 꼬리를 느긋이 흔들며 눈을 내리떴다.
「코노에를 죽이면, 나는 분명 평생,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촌장님의 명령이어도…… 싫어. 그러니까……, 나는, 코노에를 죽이고 싶지 않은 것을, 포기하지 않아」
「왠지, 그거…… 좀 이상해」
「……그런가?」
「그래」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얼굴에, 웃음이 터져나온다.
목 안쪽에서 꾹 눌러 참고, 코노에는 대신에 눈가를 조금 가늘게 좁혔다.
「이상한 녀석이다」
그리고서 지면에 한쪽 손을 짚고, 상반신을 아사토에게로 기울였다.
놀라서 몸을 빼는 아사토의 어깨에, 코 끝을 가볍게 부딪친다.
친한 고양이 사이에 나누는, 친애의 증표다.
「…………」
아사토는 눈을 크게 뜨고서, 얼떨떨하게 굳어져 있다.
그렇게까지 놀래키리라고는 생각지 못해서, 코노에는 조금 당황했다.
아사토는 돌연 등 뒤의 나무를 돌아보고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득득 손톱을 갈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손톱 갈기……」
「…………, 그건, 보면 알아」
「그런가……」
「…………」
나무를 깎는 건조한 소리가 잠시 동안 계속된다.
그다지 멈출 생각도 들지 않고, 코노에는 당황스러움 반, 어이없음 반을 느끼며 불거져 나온 커다란 나무 뿌리에 기대어, 곁눈으로 아사토를 바라보았다.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그 붉은 그림자…… 어째서 습격해왔던 것일까.
목적은 분명히 자신이었다.
또, 휘리가 말한 제3자의 소행인 걸까.
애시당초, 그것이 그림자라고 한다면, 악마의 본체가 따로 있다는 것이 된다.
……영문을 모르겠다.
초조와 의문만이 더해져 간다.
자신은 그저, 카로우에 사는 한 마리 고양이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째서.
「졸린 거야?」
아사토가 말을 걸어와서 눈을 뜬다.
어느 사이엔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듯하다.
머릿속 한쪽 구석에서 몽롱한 졸음을 느낀다.
아사토는 손톱 갈기를 끝낸 듯, 발치에는 벗겨진 나무 껍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희생물이 된 나무는 보는 것도 무참하게, 완전히 초라해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을 위로 뜨고 하늘을 바라보니, 어렴풋이 흰색을 띠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일출이 멀지 않다.
그렇지만, 조금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어떻게 할 거야」
「?」
「앞으로 말야」
「마을에는 돌아갈 수 없어.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이번에는 나를 처리하기 위한 추격자가 따라붙을 거다」
「쫓기는 고양이가 두 마리, 인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아사토가 꼼질꼼질 움직여서, 몸을 이쪽으로 돌렸다.
쌓여있던 나무 껍질이 의지할 데 없이 허물어진다.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나는……, 코노에와 함께가, 좋아」
아사토가 나직나직이 중얼거린다.
코노에보다도 체격이 큰 주제에, 흠칫흠칫 떠는 태도가 조금 우습다.
그렇지만, 아사토의 의견에는 찬성이었다.
촌장의 명령을 뿌리친 것이라면, 적대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방금 전의 붉은 그림자처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뭉쳐있는 편이 전력도 더한다.
솔직히, 무엇보다 혼자서 여행하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도 있었다.
아사토가 쭈뼛쭈뼛 무언가를 묻는 듯한 시선을 향해 온다.
[ 일부러 한숨을 쉰다 ]
[ 그럼, 결정된 거네 ] → 선택
「그럼, 결정된 거네」
아사토가 귀를 쫑긋 세우고, 코노에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꼬리가 꼿꼿이 서있다.
그리고는 뜻밖에도, 또 뒤로 돌아 나무 줄기에 손톱을 세우려 했다.
이 이상 억센 손톱으로 학대당하면, 나무가 너무 불쌍하다.
아사토의 주변에 쌓인 톱밥을 꼬리로 쳐서, 코노에는 넌지시 그만두라는 뜻을 전했다.
「이것 봐」
「미안. 그만……」
어깨를 늘어트린 모습에, 일부러 크게 숨을 내쉬고 기가 막힌 얼굴을 한다.
그래도, 왜인지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끌어안고 있던 시커멓고 커다란 덩어리가 반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단지 그것만으로 속이 편해진다.
혼자인 편이 성가시지 않아서 훨씬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데, 이상했다.
그 뒤, 교대로 나무에 올라 상황을 살피면서 몸을 쉬이기로 했다.
음의 달이 왼쪽 하늘로 가라앉으려 하고 있으니, 란센으로 향하는 방향은 바로 정면이다.
음의 달이 머리 꼭대기에 올 무렵에는, 움직이고 싶다.
먼저 망을 보겠다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아사토를 설득해, 코노에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싶다, 그런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굵게 뻗어나간 가지의 밑부분에 걸터앉아, 줄기에 몸을 기댄다.
눈 아래에는, 장대한 숲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 별개의 생물처럼 수런수런 꿈틀거리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중에, 조금씩 졸음이 밀려 왔다.
아사토는 자고 있는 걸까.
일어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생각하며, 코노에의 의식은 잠으로 깊이 가라앉고 있었다.
눈부심에 잠을 깬다.
코노에는 눈썹을 찌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틀 녘의 빛이 코노에의 얼굴에 닿아 있었다.
그 때문에 눈을 뜬 것이다.
어느 사이엔가 잠들어버렸던 것 같다.
크게 기지개를 켜고서 아래쪽을 들여다본다.
도중에 아사토와 불침번의 교대를 하기로 약속했다. 코노에가 잠들어버려서, 깨우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아사토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로 간 것일까.
문득, 코노에의 뇌리에 안 좋은 예감이 스친다.
설마……
동이 트기 전에, 키라에서 온 추격자가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아사토는 분명 추격자를 유인하기 위해 이곳을 떠났겠지.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코노에는 작게 혀를 차고, 정신없이 잠들어버린 자신의 우둔함을 저주했다.
동시에, 죄악감에도 내몰린다.
바로 찾아 나서려 하다가, 단념한다.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이 아니다. 어쩌면, 돌아올지도 모른다.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고, 코노에는 나무 줄기에 몸을 기댔다.
그러나, 얼마나 시간이 경과해도 아사토가 돌아오는 낌새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무에서 내려온다.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가능하면 아사토를 찾고 싶었지만, 이런 숲 속에서는 어찌할 수도 없다. 이름을 부르며 돌아다닐 수도 없다.
괜찮다.
아사토는 강하다.
그렇게 자신에게 타이른다.
다시 만나기를 강하게 기원하며, 코노에는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겹겹의 가지와 잎의 틈새에서, 희미한 빛이 내리비친다.
양의 달은 열두 시 방향을 조금 지난 위치에 떠 있었다.
나무 줄기에 남겨뒀던 마킹은,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탓에 완전히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결국 길을 잃은 셈이 된다.
죽는다면 굶어 죽는 것일까, 아니면 마물이나 강도에게 당하는 것일까.
그런 체념을 품으며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쭈뼛 하고 신경이 곤두섰다.
코노에는 발을 멈추고, 재빨리 주위를 돌아본다.
뭔가가 있다.
기척을 억누르고는 있지만, 느껴진다.
공기로부터 전해지는, 희미한 살기.
천천히 허리를 낮추고, 검으로 손을 뻗는다.
이 느낌…… 처음 느끼는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구지.
귀를 숙이고, 꼬리를 곤두세우며 검을 가로쥔다.
바람이 한 차례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긴장의 끈이 끊어진다.
「……!」
머리 위로 날카로운 빛이 번쩍인다.
불꽃이 튀고, 뼈까지 울리는 듯한 묵직한 저림이 팔을 스친다.
교차한 검의 건너편으로 다가오는 것은, 차갑게 비쳐 보이는 푸른 눈동자였다.
그──은발의 고양이다.
「…………」
충격이 등골을 스쳐지나갔다.
그 여세로 힘이 느슨해져, 은발 고양이의 검이 강하게 밀어붙여진다.
은발의 고양이는 무표정으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크윽, ……」
코노에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대체 몸의 어디에 숨겨놓고 다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힘이다.
「이…… 큭!」
압도당할 것 같아져서, 코노에는 하복부에 힘을 실어 강하게 검을 튕겨내었다.
그 상태로 뒤쪽으로 재빨리 물러선다.
어깨로 거칠게 숨을 쉬면서, 코노에는 은발의 고양이를 노려보았다.
아직 팔이 찌릿찌릿 하고 저리다.
긴장을 늦추면 검을 놓쳐버릴 것 같았다.
은발의 고양이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다.
그 용모는 이전과 똑같이, 의연히 얼어붙을 듯한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것을 꿰뚫는 눈빛에 숨을 삼킨다.
가슴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하고 세차게 맥박치기 시작한다.
설마──이것은, 공감?
이 고양이의 감정인 걸까.
두근, 두근.
몸 속에 고동이 울린다.
속도가 높아져 간다.
으깨지는 듯한 아픔.
치밀어 오르는 토기.
두통.
몸을 괴롭히는 모든 것은 눈앞의 고양이로부터 발산되고 있다.
이마에 스미는 땀이 관자놀이에서 뺨으로 흘러내려 떨어진다.
그때, 돌연 뇌리에 뱀의 형체가 스쳤다.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감촉이 느껴진다.
은발의 고양이가 천천히 검을 가로쥐었다.
그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엿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흘러 들어오는 것은 격렬한 투지, 분노, 살기, 그리고──기묘한 희열의 파동이었다.
즐기고 있는 것인가?
싸움을.
눈으로 아무리 살펴보아도, 은발의 고양이로부터는 무엇도 간파할 수 없다.
[ 기묘한 희열의 감각이 강하게 느껴진다 ]
[ 슬픔이 북받쳐 올라왔다 ] → 선택
[ 오히려 유쾌해졌다 ]
공감으로부터 오는 고통은 계속되었지만, 이 이상 마음이 뒤흔들리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참는다.
아무리 표면적으로는 냉정하게 보인다고 해도, 감정이 없는 것 따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왜인지 공연히 슬픔이 북받쳐 올라왔다.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으윽, ……큭」
시야가 흔들린다.
아픔에 신경이 달구어져 끊어질 것 같다.
그 자리에 꼼짝 없이 서 있던 은발 고양이의 그림자가, 살랑 하고 흔들린다.
──움직인다.
귀를 거스르는 소리가 강하게 울리며 나무숲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진다.
그 뒤, 어쩐지 으스스할 정도로 정적이 찾아들었다.
검과 검이 서로 다툰다.
코노에의 검 위로 바싹 눌려지고 있는 것은, 날의 길이가 짧은 검이었다.
은발의 고양이가 다른 한쪽 손을 등 뒤로 뻗어, 지니고 있던 장검을 스르륵 뽑아낸다.
아차, 싶었을 때에는 이미 늦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고양이는 이도류(二刀流)였던 것이다.
공감의 고통을 참는 데에 온 정신이 팔려서, 잊고 있었다.
장검이 높게 치켜올려진다.
코노에의 검은 아직도 단검의 날에 붙들린 채다.
은발 고양이의 입가가 희미하게──기쁜 빛을 띤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으아아아아!!」
삐걱이는 몸을 무시하고, 코노에는 있는 힘껏 소리지른다.
근육이 터져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힘으로 단검을 튕겨내고, 상체를 낮게 뒤튼다.
동시에 돌려진 검으로, 장검의 일격을 받아들였다.
고막에 날카로운 소리가 작렬한다.
은발의 고양이는 한 발 물러서, 이번에는 단검을 방패로 삼아 돌진해왔다.
상대가 잇달아 가해오는 공격을 피하고 튕겨내면서, 코노에도 뒤쪽으로 뛰어간다.
공격을 잇는 속도가 빠르다.
발이 엉켜서 뒤로 쓰러질 것 같다.
역시, 강하다.
물이 흐르는 듯한 움직임은 아름다워서, 눈을 뺏겨버릴 듯하다.
공감에 의한 몸의 고통은 극심해지기만 할 뿐이라, 코노에는 억지로 방어전에 내몰린다.
어떻게든 해서 이 상황을 타파하지 않으면, 진다.
은발의 고양이는 동공이 단단히 조여진 푸른 눈동자로 코노에를 응시하며, 담담히 공세를 취해 온다.
내려쳐진 검을 피해 깊숙이 몸을 숙이고, 코노에는 은발의 고양이에게로 파고들었다.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의 소리를 높이며, 검을 들고 있는 쪽과는 반대쪽 손의 손톱을 옆으로 휘두르며 튀어나온다.
상대가 옆으로 몸을 돌려 손톱을 피한다.
그러나, 코노에는 그 상태로 땅을 차서 나무숲으로 돌진해, 한번 더 나무 줄기를 차고 높게 도약했다.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이 스쳐지나갔지만, 상관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눈 아래에는, 은발의 고양이의 등이 있다.
상대가 곧바로 이쪽을 돌아본다.
필시 요격 당할 것이다.
게다가,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지 어쩔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밀리기만 할 따름이다.
가망이 희박한 도박이었다.
양의 달을 등지고, 검을 머리 위로 높게 치켜 올린다.
눈앞으로 은백의 머리칼이 가까워진다.
붙잡았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그 형체가 이미 사라져 있었다.
혀를 차고 착지한다.
등 뒤에서 기척이 들었다.
돌아봄과 동시에, 바람과 섬광이 달겨든다.
「──윽!」
천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나고, 팔에 열이 스쳤다.
──베였다.
코노에는 은발 고양이의 검을 튕겨내고, 재빨리 물러섰다.
팔을 누른다.
저릿저릿 하고 뜨겁다.
혼란과 초조에 사고가 흐트러진다.
은발의 고양이는, 그 이상의 공격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제법 하는데」
은발의 고양이가 입을 연다.
의연한 목소리가 귓속을 관통한다.
그럼에도 코노에가 털을 곤두세우고 있자, 은발의 고양이는 희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단검을 허리의 칼집에 넣고, 코트를 걷어올린다.
맨살이 드러난 팔에, 뚜렷하게 붉은 선이 떠올라 있었다.
──접근했을 때, 칼날이 닿았던 것인가.
정신없이 싸움에 열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공감의 통증이 사라진 코노에의 가슴에는, 기묘한 달성감과 고양감이 감돌고 있었다.
은발의 고양이.
한번 더,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 이런 형태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은발의 고양이는 흰 손가락으로 생채기를 덧그리고, 방울져 떨어지는 피를 덜어내 핥았다.
머리칼도 피부도 색소가 옅은 탓인지, 피와 혀의 붉은색이 유달리 선명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너, 어느 곳의 고양이냐. 이름은」
고양이는 바로 정면에서 코노에를 응시했다.
거만한 말투에 약간 울컥 한다.
「……그쪽이 먼저 이름을 대시지」
「묻고 있는 건 나다」
──뭐지, 이 녀석.
오만한 말씨에, 코노에는 눈썹을 찌푸린다.
「너, 요전번의 고양이지? 감사의 말 하나도 없이 그 태도인가. 대단한 배짱인데」
「……윽, 아무도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
「말은 잘 하네」
은발의 고양이는 장검을 지면에 꽂고는, 바보 취급하는 듯이 웃었다.
확 하고 위가 뜨거워진다.
이전에 만났을 때는 그 은백의 풍채에 동경마저 느꼈는데, 그런 자신이 바보 같아진다.
「그때, 내가 끼어들지 않았으면 너는 그 녀석들에게 당했을 거다. 아니면 죽고 싶었던 건가」
「…………」
악문 어금니가 삐걱인다.
꼬리가 두텁게 부풀어, 코노에는 목 안쪽에서 낮게 으르렁거렸다.
은발의 고양이가 우스운 듯이 얇은 입술로 미소짓는다.
「그렇게 열 올리지 마. 금방 머리에 피가 몰리는 고양이는 일찍 죽는다고. 주변이 보이지 않게 되기 십상이다」
「시끄러워. 당신, 대체 뭐야. 나한테 무슨 용건이라도 있는 건가」
「물고 늘어지는 습관까지 있음, 인가」
……대체 뭐야, 이 녀석.
도발당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닥쳐!」
팔의 상처도 개의치 않고, 코노에는 다시 은발의 고양이를 향해 돌진했다.
잇달아 내지른 공격은 간단히 간파당한다.
스텝을 밟는 듯한 움직임은, 본심이 담겨져 있지 않는 것이 훤히 보였다.
그것이 더욱더 코노에의 화를 부추긴다.
쉴 틈도 무엇도 없이 무턱대고 검을 들고 쳐들어간다.
코노에가 내지른 검을 은발의 고양이가 강하게 받아넘겨 밸런스가 무너진다.
자세를 바로 세우려 한 잠깐 사이에, 발치에 부자연스러운 충격을 받았다.
「!? ……큭!」
몸이 공중에 떴다는 느낌이 들자, 어깨부터 지면으로 넘어지고 있었다.
다리를 걸린 것이다.
일어서려고 하자,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 옆을 지나간다.
둔탁한 소리가 이어진다. 땅에 박힌 검이 시야의 끝에 비쳤다.
「이런 빤히 보이는 공격에 걸려드는 건가. 방금 말했잖아. 머리에 피가 몰리기 쉬운 고양이는 일찍 죽는다고」
「너……!」
꽂아 세운 검의 자루에 양손을 얹고, 은발의 고양이가 코노에를 내려다본다.
「한번 더 묻겠다. 넌 어디의 고양이고, 이름은 뭐지」
「…………」
「고집불통이군」
「……어째서 그런 거, 알고 싶어 하는 거야」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고양이에 대해서다. 알고 싶어 해도, 별로 이상할 건 없지」
「그렇게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가」
「내 이야기는 어찌 되든 상관 없어. 지금은 너에 대해서 물어보고 있다. 말해」
코노에를 내려다보는 고양이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깃든다.
고요한 위압감에 짓눌려 코노에는 입을 다문다.
햇살에 반짝이는 은색의 머리칼이 한 가닥, 어깨로부터 흘러 떨어졌다.
「나는 그리 성미가 느긋한 타입이 아냐. 얼굴에 구멍을 뚫고 싶다면, 그대로 입 다물고 있어라」
「……윽」
지금 당장 몸을 일으켜 물어뜯고 싶은 충동에 내몰린다.
정말이지 어떻게 되먹은 거야, 이 녀석.
느닷없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이 따위 처사다.
영문을 알 수 없다.
강요당하면 당할수록, 입을 열기 싫어진다.
그렇지만, 은발의 고양이가 농담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도 안다.
대답하지 않으면, 정말로 검을 메다꽂을 기세다.
머리를 쳐드는 반발심을 가까스로 삼킨다.
지금은 반항하지 말자──지금은.
「……코노에. 카로우의, 고양이다」
「카로우인가」
「대답했잖아. 이 검 치워」
내뱉듯이 말하자, 점차로 시야에서 은발의 고양이가 사라졌다.
팔꿈치로 지탱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어깨에 둔한 통증이 스친다.
넘어졌을 때 부딪친 것이겠지.
아픔을 참으며 일어나, 그 김에 검에 베인 상처를 확인한다.
생각했던 만큼 깊지는 않아서, 피가 굳기 시작하고 있었다.
긴장으로부터 해방되어, 코노에는 짜증이 나는 나머지 짧은 한숨을 내쉰다.
눈앞에 선 은발의 고양이에게로 매서운 시선을 부딪뜨린다.
「이번엔 당신 차례야. 이름은」
「라이다」
「출신은」
「세츠라(刹羅)」
세츠라라고 하면, 대형종의 혈통이다.
하얀 꼬리로 시선을 보낸다.
코노에의 그것과는 명백히 달라, 크고 두껍다.
귀의 모양도 약간 다르다.
「어째서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거야. 느닷없이 공격해 온 이유는」
「시끄러운 고양이로군. 질문이 많아. ……그렇지만, 느긋하게 대답하고 있을 시간은 없는 것 같군」
그렇게 말하고, 라이의 동공이 순식간에 조여진다.
──누군가의 기척.
수풀을 달려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귀를 세우고 살핀다.
아마도, 두 마리.
이쪽을 향해 오고 있다.
코노에도 기척이 느껴지는 쪽으로 의식을 집중시키고, 검을 가로쥔다.
꼬리의 밑동에 힘이 모여, 털이 서서히 곤두선다.
초목이 사락거리는 소리가 커진다.
이윽고 나무숲의 건너편에 두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는 눈 깜작할 새에 가까이 다가온다.
순간, 라이가 내달렸다.
칼집에 넣어두고 있던 단검도 뽑아들어, 두 그림자를 겨냥해 돌진해 간다.
「……어이!」
코노에의 목소리와 날카롭고 드높은 소리가 겹쳐져, 숲에 메아리쳤다.
일순간의 침묵.
줄지어 선 나무들의 틈새에, 누군가의 공격을 검으로 받아들이는 라이의 모습이 있었다.
검이 튕겨지는 소리를 신호로, 침묵은 깨진다.
라이가 몇 발짝 크게 후퇴한다.
뒤쫓듯이, 두 마리의 고양이가 나무숲에서 뛰어나왔다.
한쪽은 검은 얼룩무늬 꼬리에, 다른 한쪽은 검은색과 갈색의 줄무늬다.
「칫! 뭐-야. 젠장. 이번에야말로 잡은 줄 알았는데 말야-」
「좀처럼 죽지를 않네, 너. 이쯤에서 어지간히 뒈져줘도 좋지 않아?」
희룽거리는 장단의 말에, 라이가 비웃듯이 코웃음을 쳤다.
아무래도 안면이 있는 고양이인 것 같다.
코노에는 그저 멍하니 세 마리가 말을 주고받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포기하시지」
「포기하시지? 포기하라고! 그딴 말 들어봤자 예 그렇습니까- 따위 말할 것 같냐고」
「예 그렇습니까-」
「닥쳐 멍청이」
두 마리가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라이가 천천히 검을 가로쥔다.
「슬슬 그 경박한 주둥이를 다무는 게 어때」
「그런 너야말로, 이 정도에서 사라져 주는 게 어때. 눈에 거슬려서 돌아버리겠다고. 우리들 주변에서 촐랑촐랑거리니까 말야. 네 탓에 밥벌이를 몇 건이나 실패한 줄 아는 거야? 어지간히, 열 받는다고」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뭐- 마침 따-악 잘 됐으니까 말야- 여기서 해치운다. 요전번에 말야, 새로운 걸 배웠단 말야, 나. 그걸로 한 방이라고」
검은 얼룩무늬 고양이가 희미하게 웃음을 띄우며, 무슨 생각인지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줄무늬 고양이는 양손으로 검을 들고, 허리를 낮추었다.
한 마리씩 싸울 작정인가?
코노에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오른다.
검은 얼룩무늬 고양이는 가슴 쪽 안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피리를 꺼내들었다.
입술을 대고, 눈을 감는다.
──설마.
「가라」
코노에의 동요를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이, 라이가 낮게 말을 내뱉는다.
「거추장스럽다. 죽는 게 싫으면 빨리 사라져라」
「저 녀석들, 혹시」
그 이상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줄무늬 고양이가 칼을 빼들고 쳐들어 온다.
라이도 코노에도, 그 즉시 옆쪽으로 물러섰다.
줄무늬 고양이는 애초부터 코노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인지, 오로지 라이에게로 검을 내질러 간다.
라이는 가라고 했지만, 코노에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두 번씩이나 내빼는 듯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 싸움의 행방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다.
칼싸움은, 라이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처럼 보였다.
단검을 능숙하게 이용해서 반격해 간다.
줄무늬 고양이가 밀려서, 후퇴하기 시작한다.
「빨리 해! 빌어먹을 고양이! 꼬리를 확 뽑아버릴테다!」
「알-겠다고 거 되게 시끄럽네!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고! 닥치고 있어!」
검은 얼룩무늬 고양이가 피리를 분다.
숲 안쪽까지 관통하는 듯한 소리가 공기를 진동시킨다.
순간적으로, 검은 얼룩무늬 고양이의 몸이 희미하게 발광했다.
물 속을 떠다니는 듯이, 머리카락과 꼬리가 일렁일렁 흔들린다.
피리 소리가 선율을 이루기 시작한다.
드높고 덧없는 음색이 주위를 에워싼다.
저 고양이──
찬아인 건가.
이것은, 노래다.
노래하고 있다.
검은 얼룩무늬 고양이의 몸에서 가느다란 빛의 입자가 생겨나, 줄무늬 고양이에게로 흘러간다.
줄무늬 고양이가 히죽 웃었다.
「느려 터졌다고, 바-보」
후퇴하고 있었던 줄무늬 고양이가 그 자리에 서서는, 단숨에 라이 쪽으로 발을 내딛어 간다.
마치 물을 만난 고기 같다.
생기가 넘쳐서, 코노에의 눈에도 힘이 가득 찬 것이 보인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라이의 검이 성난 목소리와 함께 튕겨진다.
눈 깜짝할 새도 없이, 무서운 속도로 줄무늬 고양이가 검을 휘둘러오기 시작했다.
「……윽」
라이가 이를 악물고, 양손의 검으로 잇단 공격을 튕겨낸다.
반격할 틈이 없다.
줄무늬 고양이는 끊임없이 검을 휘두른다.
어이없을 정도로 전세는 뒤집혀 있었다.
반향하는 피리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벌써 미약한 승리의 기운마저 감도는 음색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지? 새로운 노래다. 투아에게, 바람의 힘을 주는 노래. 좋은 느낌이지-」
바람의 힘을 주는, 노래?
코노에는 주의 깊게 눈을 집중시킨다.
확실히 줄무늬 고양이의 움직임은 바람을 타고, 바람을 조종하고, 바람의 지원을 받고 있는 듯이 보였다.
「너 좀 더 힘이 솟게 노래할 수는 없냐고!」
「시끄럽네- 절호조잖아! 네 실력이 나쁜 거라고, 빨리 죽여버려!」
서로 옥신각신 하며 싸우는 모양새는, 여유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라이는 오로지 방어만 할 뿐이다.
거리를 두어도 보이지 않는 실로 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줄무늬 고양이가 뒤를 쫓는다.
「놓칠까보냐!」
나무숲의 안쪽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라이의 꼬리를 줄무늬 고양이가 붙잡는다.
「큭……!」
자세를 무너뜨린 라이에 줄무늬 고양이까지 뒤엉켜 넘어진다.
두 마리는 맹렬한 위협의 소리를 높이며, 지면에서 격하게 몸싸움을 벌였다.
흙먼지가 날린다.
흐르는 피리 소리는, 높게 격렬하게 고조되어 간다.
검을 내던지고, 손톱과 이빨로 계속 응수한다.
라이의 흰 피부 이곳저곳에, 희미하게 피가 번진다.
격렬히 목을 울리는 소리, 눌러 죽인 고통의 신음 소리.
이대로라면──라이가 지는 게 아닐까.
「……제길」
작게 소리치고, 검은 얼룩무늬 고양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투아에게 힘을 부여하고 있는 저 고양이, 찬아다.
찬아를 쓰러뜨리면──승산이 보인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째서 이렇게 필사적인지, 자신도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한번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는 것이다.
내팽개치고 떠나는 일은 아무리 해도 할 수 없었다.
──찬아를 노려라.
귀를 숙이고 동공을 팽팽하게 조이며, 코노에는 검은 얼룩무늬 고양이에게로 뛰어들었다.
어쨌든, 이 노래를 멈추게 한다.
머릿속에는 그것 밖에는 없었다.
검은 얼룩무늬 고양이가 경악스레 눈을 크게 뜬다.
그 얼굴에 있는 힘껏 손톱을 휘둘렀다.
「으아아아아악!!」
「어이!」
줄무늬 고양이가 돌아보더니, 곧바로 코노에를 향해 뛰어들어 왔다.
「……이, 바보 고양이!!」
상체를 일으킨 라이가 소리친다.
시야의 끄트머리에, 줄무늬 고양이가 덤벼들어 오는 것이 보였다.
눈앞에는, 검은 얼룩무늬 고양이가 손톱을 치켜드는 모습이.
어깨에 뜨거운 충격이 스친다.
꼬리에도.
아프다고 느낄 여유도 없다.
뭐가 어떻게 되어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시야에 비치면 달려들어 물고, 손에 닿는 것에는 손톱을 세웠다.
울려퍼지는 비명은, 자신의 것인지 두 마리의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갑자기, 가슴에 탁류가 흘러 넘쳤다.
공감의 작용──감정이 흘러들어 온다.
소용돌이 치는 감정이 빨려드는 듯이 가슴 안쪽으로 잠겨들어 간다.
맹렬한 구토감이 치밀어 오른다.
괴롭다.
삼켜진다.
숨을 쉴 수 없다.
시야, 사고, 의식이 갑작스레 가라앉는다.
감정에 빠져 가는 중에, 돌연 빛이 생겨나는 감각이 솟아올랐다.
하얀 빛이 몸을 가득히 채워, 흘러넘쳐 간다.
희미하게, 무언가의 소리가 들렸다.
온화한 선율.
기분 좋은 흐름.
이것은, 노래다.
대체 어떤 노래인 걸까.
그 음유시인 고양이를 떠올린다.
노래와 빛이──풀어져 나간다.
「크악!?」
「캬악!!」
귀로 부딪쳐 오는 비명에, 하얗게 날아가 있던 의식이 현실로 돌아온다.
일진(一陣)의 바람처럼, 라이가 시야를 가로지른다.
코노에는 땅에 쓰러진 채로, 그 모습을 눈으로 쫓는다.
방금 전까지 밀리고 있었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라이는 공격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두 마리의 고양이를 교대로 상대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기색은 조금도 없이, 담담히 검을 내질러 간다.
피리 소리는 그쳐 있었다. 대신에,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린다.
라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
상대 쪽의 찬아를 쓰러트렸기 때문인가?
아니, 그 이상의 힘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라이의 표정이 바뀐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집중시킨다.
──웃고 있다?
오싹 하고,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은 채로, 코노에는 일어서려고 했다.
온몸 이곳저곳에 아픔이 스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괴롭지는 않았다.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힘을 느끼고 있었다.
무심히 자신의 몸을 둘러보고는, 놀란다.
──빛이.
하얗고 가느다란 빛의 줄기가 몸을 에워싸고 있었다.
잘 보니, 라이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코노에의 귓가에 희미하게 노래가 들렸다.
정확하게는, 노래가 몸 속에서부터 울려 퍼지고 있었다.
부드럽고 연한 선율로 가득 채워져, 뻣뻣이 굳어 있던 꼬리에서 힘이 빠진다.
라이가 두 마리의 고양이를 상대로 재빠르게 뛰어다닌다.
연동하는 듯이 몸 안쪽에서 빛이 한층 더 솟아올라, 방출된다.
귀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강해진다.
──이것은, 전투의 노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각적인 가사가 머릿속을 분주히 돌아다닌다.
노래하고 있다.
소리 아닌 소리로.
라이의 움직임은 마치 질풍과도 같았다.
눈 깜짝할 새에 일련의 동작이 흐르고, 얽혀드는 잡다한 소리가 뒤에서부터 따라온다.
막힘이 없는 모양은, 눈을 이끌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윽고, 두 번의 드높은 소리를 마지막으로 시간이 멈춘다.
두 마리의 고양이는 무기를 잃고, 분한 듯이 이를 악물고 라이를 노려보았다.
「……제길」
「한 패였나…… 들어본 적 없다고……」
「이걸로 끝내주지」
라이가 단검을 칼집에 넣고, 장검을 가로쥔다.
「……그렇게 될까보냐」
「도망치자!」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마리는 동시에 몸을 돌려 나무숲으로 뛰어들었다.
「거기 서!」
도약할 작정으로, 라이가 자세를 낮춘다.
그러나, 라이는 움직임을 멈추고 코노에 쪽을 돌아보았다.
두 마리의 기척은 순식간에 멀어져 간다.
「……쫓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
「너는……」
라이가 코노에를 바라본다.
푸른 눈동자가, 약간의 당혹감으로 흔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노래가, 들렸다. 너에게서」
「……노래?」
노래──
전투의 노래.
그러고 보니, 어느 사이엔가 그 선율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몸을 휘감은 빛의 줄기도 엷어져서 사라져 간다.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는 듯한, 말이 없는 노래다. 순간적으로, 힘이 가득 차올랐다. 잠들어있던 기력을 일으켜 세우는 듯한 감각이다」
「……이 정도의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다」
라이의 눈이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이 가늘어진다.
「너……. 설마, 찬아일 줄이야」
찬아?
──내가?
당장은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사이를 두고서 이해하고, 코노에는 아연실색한다.
찬아.
「……내가, 찬아?」
「그렇다. 혹시, 노래했던 적이 없는 건가」
얼토당토 않은 일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채로,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라이가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꽤나 절급한 순간에 발현된 거로군. 그럼, 잘라 말해주지. 투아로서 느낀 거다. 너는, 찬아다」
「…………」
말이 안 나왔다.
기쁘다든지 무섭다든지, 그런 감정도 없었다.
믿겨지지 않는다. 실감도 안 난다.
자신이, 찬아라니?
귀와 꼬리의 끝이 흠칫흠칫 저렸다.
「……거짓말이지」
「흥」
무심결에 중얼거리자, 라이가 코웃음을 쳤다.
「결국은 절감하게 될 거다. 모처럼 발현된 그 힘, 사용하지 않으면 손해다. 손에 넣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녀석들은 잔뜩 있다」
「사용한다니, 어떻게……」
「노래했던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나」
노래했던 때──
그 두마리가 덤벼들어 왔던 것은 기억난다. 그렇지만,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애매하다.
정신이 들자 라이가 싸우고 있었다.
코노에는 좌우로 고개를 흔든다. 라이가 장검을 칼집에 넣고, 꼬리를 느리게 흔든다.
「그런가. 그렇다면 이번은 우연이었다는 게 된다. 안정될 때까지는 훈련이 필요하겠군」
「훈련……」
라이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자, 돌연 라이에게 강하게 어깨를 잡혔다.
몸이 끌어당겨져, 푸른 눈동자가 가까이로 다가온다.
놀라서, 반사적으로 눈을 피한다.
「……이거 놔」
「나와 함께 와라」
「……에?」
갑작스레 들이밀어진 말에 당황한다.
「거들어주지. 찬아로서의 능력을 높이기 위한 것」
「……윽」
강한 반발심이 치밀어 올라, 어깨를 잡는 팔을 힘껏 뿌리쳤다.
[ 아무런 말 없이 노려본다 ]
[ 적당히 좀 해 ] → 선택
바로 정면에서 라이를 노려본다.
「아까부터,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아무도 거들어달라고 부탁한 적 없는데다, 같이 간다고도 말한 적 없어. 멋대로 결정하지 마」
「그럼, 넌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코노에는 입을 다물었다.
너무나도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난 탓에, 머릿속이 아직도 새하얬다.
시선을 발치로 떨어트린다.
라이의 눈빛이 날카롭게 박혀드는 것만 같아서, 배겨낼 수가 없다.
「……조금 전의 일, 질문에 대답하라고. 그러면 생각해보지」
「……나쁘지 않겠지」
「우선……, 내가 강도에게 습격당했을 때, 당신은 날 도망치게 해주려고 했어. 그런데도, 오늘은 만나자마자, 갑자기 공격해 왔어. ……대체, 무슨 꿍꿍이야」
「강도들의 때는 단순한 변덕이다. 송사리들을 일소하고 싶었다. 단지 그것뿐이다. 오늘은 너의 힘을 시험해 봤다.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인지를」
「힘을 시험해 봤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있는 거야」
「실력이 있는 녀석이라면 즐길 수 있다. 만약 이렇다 할 실력도 없는 녀석이라면, 어차피 강도나 마물에게 죽고 끝난다. 내가 먼저 벤다고 해서, 그리 달라질 건 없다」
「……그럼, 그냥 악한이잖아」
「그럴 법하군. 그렇게 불린다 해도, 나는 조금도 상관 없지만」
「…………」
뻔뻔스레 단언하는 태도에 혐오를 느낀다.
자기만 괜찮다면, 그 외에는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건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을 잇는다.
「방금 전의, 그 두 마리는」
「동업자다. 사업 경쟁자라고도 할까」
「사업 경쟁자……?」
「란센 부근의 숲에 은신처를 지닌 현상수배범의 정보가 떠돌고 있다. 그 밖에도 숲에 들어와 있는 녀석이 있을 테다. 현상수배범을 망보고 있던 참에, 네가 나타났다」
「현상수배범……. 당신, 현상금 사냥꾼인 건가」
자신의 힘이 돈이 되는 세계인가.
그렇다면, 코노에의 힘을 시험해 보았다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잠깐 기다려.
란센 부근?
무의식중에 매달리는 듯이 라이를 보고 있었다.
「란센은, 이곳에서 가까운 건가」
「멀지는 않다」
「길은」
라이가 끄덕인다.
귀가, 흠칫 하고 움직이고 말았다.
「란센에 가고 싶은 건가」
「아아」
「이유는」
「…………」
코노에가 침묵을 지키자, 라이는 깔보는 듯한 웃음을 입 끝에 띄웠다.
「들을 것만 들어두고서, 자기는 침묵인가. 제멋대로인 건 어느 쪽이냐」
「……윽」
자극 받고서 발끈했지만, 라이가 하는 말도 일리가 있다.
입술을 굳게 닫고, 사나워진 감정을 눌러 죽인다.
「됐다. 결국 어쩔 생각이냐. 같이 갈 건지 아닌지, 확실히 해라」
「……당신은, 란센으로 가는 건가」
「아아. 일단 다시 태세를 정비한다」
라이의 태도는 진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같이 간다고 해도, 과연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여기서 오기를 부리고 헤어져도, 다시금 숲을 헤매게 될 뿐이다.
그건 사양이다.
란센으로, 갈 수 있다면.
「……나도 간다」
강한 결의를 눈동자에 실어 고한다.
라이는 잠시 코노에를 응시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따라와라」
라이가 걷기 시작한다. 그 등을 쫓아가려 하다가, 코노에는 발을 멈췄다.
아사토를 떠올리고, 숲을 돌아본다.
아사토는…… 무사한 걸까.
마음에 걸리지만, 지금은 어찌할 수도 없다. 숲을 뒤지며 돌아다닐 수도 없다.
역시, 포기하는 수밖에는 없는 걸까.
「무슨 일이냐」
라이의 목소리에 마음을 정한다.
코노에는 좌우로 고개를 흔들고, 후드를 쓰고 걷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다.
또 어딘가에서 만나기를 바라는 수밖에는 없다.
양의 달은 조금씩 기울기 시작해, 하늘을 황혼의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코노에는 멍하니 생각한다.
자신은──찬아인 건가.
아직 실감이 들지 않는다.
노래로 투아를 지원해,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존재.
정말로, 자신이 그런 것일까.
수많은 석연치 않은 생각들을 가슴에 품고서, 코노에는 라이와 함께 주홍빛으로 물든 숲 속을 나아갔다.
얼마 동안 걷자, 초목에 덮여있던 길이 정비된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아주 근소한 차이였지만, 줄곧 비슷한 광경이 계속되었던 탓인지, 코노에의 눈에는 뚜렷하게 보였다.
이유도 없이, 심장 고동이 빨라진다.
발걸음도 그렇게 생각한 탓인지 가벼워진다.
이윽고 서로 부대끼며 늘어서 있던 나무들의 사이가 벌어지더니, 전방에 타원형의 거대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저게 란센의 시가지다」
「저게……?」
전방을 걸어가는 라이의 말에 눈을 깜박인다.
황혼의 빛을 받아 짙은 음영을 늘어뜨린 거리는, 마치 도깨비 같았다.
무기질적이고 고풍스러운 색채와 질감.
금욕적이고, 어딘지 으스스하다.
[ 란센 ]
「『두 지팡이』의 물건이 잔뜩 남겨져있는 도시다. 건물도, 역사도, 지식도 말이지. 그래서 시사 전체의 고양이들이 이곳에 모인다」
란센은 『두 지팡이』의 도시의 유적을 이용해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그것이, 이 상태인 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도시의 전모가 드러난다.
언뜻 보아 드는 인상은, 잡다한데다 복잡함.
온갖 것들의 혼동과 공존.
정체불명의 박력이 있었다.
조금씩, 오가는 고양이의 모습이 늘어 간다.
카로우밖에 모르는 코노에에게, 란센은 거대한 기호(記號)의 덩어리로 보였다.
이것저것 어수선해서, 어떤 것이라고 명확히 이해할 수가 없다.
란센을 설명하라고 해도, 아마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침내, 시가지 안으로 발을 들여넣는다.
코노에는 떡하니 입을 벌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밖에 보이지 않는다. 왁자지껄하다.
「떨어지지 마라」
라이가 어깨 너머로 코노에를 돌아보고, 꼬리를 살짝 세워 흔든다.
그 하얀 털을 놓치지 않도록 나아간다.
이 정도로 많은 고양이를 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라, 솔직히 조금 겁이 난다.
이렇게나 보는 눈이 많으면, 몸의 어딘가를 들켜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불안에 내몰렸지만, 곧바로 지나친 생각임을 깨닫는다.
스쳐가는 고양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빠른 걸음걸이로 지나간다.
누구도, 주변의 일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이상한 곳이다.
늘어선 건물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좁은 길에 빽빽이 늘어선, 각양각색의 간판과 노점의 경합.
손님을 불러들이는 소리가 지나치게 힘이 넘쳐서, 귀가 따갑다.
활기가 있다.
색도 있다.
그런데도, 전체적으로는 색채가 어둡다.
살아있지만 죽어있다.
그런 느낌이다.
그럼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부가 신기해서, 코노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라이와는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노점의 간판에는 그림문자…… 리비카들의 문자가 크게 그려져 있다.
무기, 과일, 약초, 의복…….
이곳에서는, 무엇이든 손에 들어온다.
그런데도, 죽어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정말로 이상한 곳이다.
거리에 소용돌이치는 잡음의 탁류가 성가시다.
조만간 익숙해질까.
혼잡 속에 파묻힌 코노에의 귀에, 이질적인 소리가 닿는다.
어디서라고도 할 수 없이 선율이 들려왔다.
주위로 시선을 돌린다.
고양이와 고양이의 틈새기, 길의 옆쪽에 서 있는 그림자는──
「……아……」
정신이 들자, 발은 멋대로 뛰어나가고 있었다.
──그, 음유시인 고양이다.
길가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경쾌하게 현을 타고 있다.
말을 걸려고 하다가, 단념한다.
아이들은 기쁜 듯이, 음유시인의 노래를 듣고 있다.
흐르는 음색은 부드러워서, 귀의 솜털을 살그머니 간지럽힌다.
음유시인과 아이들이 있는 장소만이, 마치 다른 공간인 것 같다.
노랫말이 흘러넘친다.
그것은 황혼의 밫을 받아, 지면으로 흩어져 간다.
자그마한 손이 내밀어진다.
아이들이, 노래의 파편을 움켜잡으려고 열심히 손을 뻗는다.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떠들어대며, 노래의 파편을 뒤쫓아간다.
음유시인의 목소리가, 얇은 막처럼 아이들을 감싼다.
그 모습을, 무심코 넋을 잃은 채로 바라보고 만다.
정신이 들자 그렁그렁 목을 울리고 있었다.
굳어있던 꼬리가 긴장에서 해방된다.
지금 눈으로 보고있는 광경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어느쪽이든 좋았다.
가득히 채워져가는, 온화한 시간.
그것은, 등 뒤에서 뻗어나온 팔에 의해 부서져버렸다.
「!?」
손이 입가를 덮는다.
그 상태로 강하게 포박당해, 코노에는 질질 끌려갔다.
큰 거리의 도처에는 어둠의 무법지대가 있다.
뒷골목이다.
이만큼이나 고양이가 있으면, 끌려가도 눈치채이지 못한다.
앞만을 보고있는 고양이들은 신경쓰려고도 하지 않는다.
큰길의 혼잡함이 멀어진다.
바로 옆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계속해서, 혀로 핥는 소리가.
순간, 오싹 하고 한기가 스쳤다.
코노에를 끌고 온 누군가의 손이, 옷 너머로 하반신을 더듬는다.
거기서, 무엇이 목적인지를 확실히 이해했다.
「……이, 자식!」
혼신의 힘을 실어서, 코노에는 등 뒤의 고양이에게 있는 힘껏 박치기를 먹였다.
틀어막힌 소리와 함께, 몸을 붙잡는 힘이 느슨해진다.
곧바로 재빨리 물러서서 떨어지고는, 괴로운 듯이 몸을 숙인 고양이의 몸뚱이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고양이가 신음 소리를 흘리며 웅크린다.
코노에는 숨을 헐떡이며 고양이를 노려보고는, 즉시 거리로 향했다.
「……어이!」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다.
고양이들의 사이를 누비듯이, 라이가 발빠르게 다가왔다.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다.
「뭐하는 거야. 떨어지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아니……」
「아마, 뒷골목에 끌려가기라도 했겠지」
정곡을 찔려서, 무의식적으로 라이의 눈을 보았다.
푸른 눈동자에 희미한 짜증이 스며있다.
「이곳은 카로우나 근처의 마을과는 다르다. 너보다도 체격이 좋은 고양이 따위 몇 마리고 있어. 너무 무방비해지지 마라」
「…………」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묘하게 억울해져서, 코노에는 뾰로통하게 얼굴을 돌렸다.
「간다. 또 떨어지지 말라고. 다음은 모른다」
부모 같은 말씨에 점점 더 울컥했지만, 라이는 재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뒤를 쫓으며, 방금 전 음유시인이 있었던 부근을 곁눈으로 본다.
그곳에는 아이들의 모습도 아무것도 없었다.
역시 환상이었던 걸까──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고개를 흔든다.
이번에야말로 라이를 놓치지 않도록 발을 움직였다.
큰 길에 늘어선 것들 중에는, 간혹 이상한 재질의 건물이 있다.
아마도 「두 지팡이」의 유적이겠지.
반들반들한 회색의 표면에서는,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안에 들어가보고 싶다는 따위를 생각하며, 지나쳐 간다.
얼마 동안 걷고서, 어느 건물 한 채 앞에 라이가 멈춰섰다.
「두 지팡이」의 유적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건물이다.
높은 위치에 동여매인 간판에는 「여관」의 문자가 적혀있다.
「들어간다」
라이의 뒤를 이어 문을 힘주어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고서 바로 접수처가 있었다. 카운터 안에는 아무도 없다.
그곳은 접수처를 겸한 대합실이란 느낌이었다. 작고 아담한 소파와 테이블이 두 세트 정도 놓아져있다.
안쪽에는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그렇게 큰 여관은 아닌 것 같다.
라이의 뒤를 따라 접수처로 다가간다.
카운터에 무언가를 적어 둔 종이와 책 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지금 외출중. 요금은 후불제. 숙박 희망자는 숙박 장부에서 적당히 비어있는 방을 골라서, 사인해놓기 바람」
「……꽤나 엉망인 여관이로군」
「다른 데로 갈까?」
「아니, 됐어. 이런 쪽이 오히려 편하다」
라이는 미간에 주름을 모으고, 숙박 장부를 펼쳤다.
바로 옆에 놓인 작은 접시에는 주홍색의 잉크가 담겨 있다.
검지손가락에 잉크를 묻혀서, 비어있는 방의 칸에 내리누른다.
「간다」
라이가 계단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코노에도 따라가려 하다가, 발을 멈췄다.
현관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이다.
기분 탓이려나?
낌새를 살펴본다. 소리는 점점 커져 간다.
현관문이 흔들리고 있다.
깜짝 놀라서 꼬리의 털이 약간 곤두선다.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자, 우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누구 없나. 이거 열어주면 고맙겠는데……. 손에 든 게 많아서 어쩔 수가 없네」
문은 계속해서 소리를 내고 있다.
무시할 수도 없어서, 코노에는 하는 수 없이 문으로 다가갔다.
후드를 다시 깊숙이 눌러쓰고, 쭈뼛쭈뼛 문을 연다.
「아-, 미안. 덕분에 살았어. 그만 너무 많이 사버려서」
노곤한 듯한 목소리가 들리고, 코노에의 옆에 털썩 하고 무언가가 놓였다.
천에 싸인 커다란 짐이었다.
기가 눌리는 것을 느끼며 시선을 돌린다. 어깨가 다부진 키 큰 고양이가 서 있었다.
「……에, 어? 뭐야, 겐 씨가 아니었던 건가」
수고양이가 놀란 듯이 눈을 깜박인다.
귀가 둥글다. 꼬리는 금색과 검은색의 줄무늬가 들어간 털이다.
이 고양이도 라이와 같은 대형종의 혈통이겠지.
필시, 코노에보다 훨씬 연상이다.
「……겐 씨?」
「우리집의 단골 손님이야. 그것보다 당신은 뭐지. 여기에 묵으려고 온 건가」
「……그런데」
「그래」
단박에 되받아쳐서, 코노에는 살짝 맥빠진 기분이 된다.
우리집, 이라고 말하는 걸 봐서는 여관의 관계자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식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당신, 엄청 껴입고 있네. 확실히 이제 곧 겨울이지만, 아직 그럴 정도로 춥지는 않잖아」
「…………」
「게다가 말수도 없네」
어딘가 비꼬는 듯하게도 들리는 말에, 코노에는 조금 기분이 언짢아진다.
그러나, 수고양이는 코노에의 눈치 따위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노곤한 듯이 목을 기울였다.
「아아, 인사가 늦었군. 나는 바르도. 이 여관 주인이다. 조촐한데다, 대단한 대접도 못 해주지만, 뭐 있기에 불편하지는 않아. 내키는 만큼 느긋하게 있다 가라고」
「겨울 축제가 가까워졌으니까 말야. 여관도 한창 붐비는 시기야. 당신, 겨울 축제에 가본 적은 있나」
좌우로 고개를 흔든다.
「한번 보는 게 좋다고. 봄이랑은 다르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볼 만한 축제야.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겨울 쪽이 좋지만」
아무도 당신의 취향 따위 물어보지 않았어.
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라, 순간적으로 눌러 삼킨다.
「축제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때까지 있다가 가는 게 어때. ……아-, 그럼, 참. 그리고 말야」
자기 할 말만 떠들고는, 바르도는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것인지 눈썹을 치켜올렸다.
뚜, 뚜, 뚜, 하고 시선이 코노에 쪽으로 내려온다.
「뭣 좀 부탁해도 될까. 손님과 여관 주인 관계로서」
언짢음을 넘어서, 점점 어이가 없어진다.
란센의 고양이들은 다 이런 걸까.
[ 굉장히 싫은 얼굴을 한다 ] → 선택
[ 일단 이야기를 듣는다 ]
코노에는 시선을 모아 바르도를 노려보았다.
그렇지만, 그런 시선도 바르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그만 싫다고 내뱉어버리고 싶어졌지만, 직전에 말을 삼킨다.
붙임성이 있다기보단 무람없는 경지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었지만, 여기서 거절해서 관계를 거북하게 만드는 것도 상책은 아니다.
「……일단, 이야기만이라면」
「아니, 뭐, 간단한 일이야. 가게를 좀 봐줬으면 좋겠어」
「가게를 봐?」
「난 여기에 짐을 갖다놓으려고 돌아온 것 뿐이라서. 뭘 좀 사러 이제부터 조금 먼 데로 나가야 해. 일단 대신 가게를 봐줄 고양이가 오기로 되어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 오랫동안 접수처 부재라는 것도 보기 좋지 않잖아. 대신 가게 볼 녀석이 올 때까지만이라도 괜찮아」
「언제 오는 거야」
「이제 슬슬 오지 않으면 이상한데 말야. 지정한 시간은 옛날에 지났어」
「…………」
「어때?」
눈치 보는 일도 없이, 남의 일처럼 선뜻 말해버리는 모습은 부탁을 하는 태도가 아니다.
대체 어떤 신경을 지니고 있는 걸까.
「아-, 뭐 거절한다고 해도 별로 상관 없다고. 다른 여관에 가도」
코노에의 마음을 헤아린 것인지, 바르도는 태연하게 말을 잇는다.
「빈 방이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신 말야……」
「응?」
바르도가 도발적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이 녀석.
「손님을 위협할 작정이야?」
「나는 어느 쪽이든 괜찮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야. 선택하는 건 그쪽이잖아」
「…………」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지만, 코노에는 냉정히 사고를 회전시킨다. 확실히 여기서 바르도의 부탁을 거절하고 다른 여관을 찾아도, 비어있는 방이 없을지도 모른다.
「……알았어」
「……고마워」
바르도가 씩 웃었다.
그것이 의기양양한 승리의 미소처럼 보여서, 코노에는 기분 나쁜 패배감을 맛본다.
「……뭘 하면 되는 거야, 가게 보는 거」
「접수처에 손님이 오면 숙박 장부에 이름을 쓰라고 말하면 돼. 당신, 이름은」
「……코노에」
「코노에인가. 내가 돌아왔을 때 아직 머물고 있으면, 식사를 대접해주지. 우리집 음식은 제법 평판이 좋아」
「그런 거 필요 없어, 별로……」
「자 그럼, 맡겨뒀다」
한쪽 손을 들어올리고서, 바르도는 여관을 나갔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후 같다.
코노에는 묘하게 맥이 빠진 기분으로, 바르도가 떠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완전히 바르도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고 있었다.
즉, 부림 당한 것이다.
지나고 나서 괘씸함을 느끼며, 코노에는 카운터를 곁눈으로 본다.
별로, 무리하게 따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연히 들어갔을 뿐인 여관에서 억지로 떠맡겨진 약속 따위……
──정말이지 바보로군, 나는.
코노에는 마지못해 카운터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기본적으로, 약속을 깨는 일은 내키지 않는다.
머리부터 후드를 푹 눌러쓴 접수인 따위, 이 이상 으스스할 수 없을 것이다.
대신 가게를 볼 고양이가 빨리 오면 된다.
더는 배겨낼 수 없어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자,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울렸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다지 다른 고양이의 눈에 띄고 싶지 않다.
「……어이」
귀에 익은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다.
라이가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그런 곳에서 뭘 하고 있지」
그 목소리에는 어이가 없다는 기색이 배어 있다.
「좀……, 부탁 받아서」
「누구한테」
「여기 주인」
「그 녀석은 어쩐 거야」
「볼일이 있다느니 해서, 나갔어」
「…………, 정말이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는 듯이, 라이는 얼굴을 돌리고 한숨을 쉬었다.
「바보 고양이로군. 너도, 여기 주인도」
「…………」
받아칠 말도 없다. 확실히 그 말 그대로라고 생각한다.
라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싸늘하게 코노에를 본다.
「벌레를 씹은 듯한 얼굴이로군」
「……그렇게 이상한가」
「이상하다」
「…………」
이제 어떻게든 좀 해줘, 라는 기분이었다.
그 뒤, 그리 시간을 두지 않고 대신 가게를 볼 고양이가 와서, 코노에는 접수처를 벗어났다.
그저 아주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몹시 피로했다. 코노에는 가까스로 숙박할 방으로 향했다.
방은 두 마리 용으로,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방이었다. 침대가 두 개, 그리고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한 세트로 갖추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선반에는 램프가 놓여있다.
방의 귀퉁이에는 물이 들어있는 나무통이 있었다.
볼일을 보는 등의 오물처리는, 전용실이 있는 것 같다.
2층 복도의 구석에 모래 언덕의 그림이, 그려진 문이 있었다.
창문을 연다. 밖은 완전히 밤이 되어 있었다.
거리는 여전히 번잡해서, 노점에는 등불이 켜져 있다.
코노에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가까스로 안정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라이는 코노에에게 베인 상처를 확인하고 있다.
「대단한 건 아니네. 네 것도 보여줘 봐」
「나는, ……됐어」
코트를 벗으려던 손을 멈추고, 코노에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귀와 꼬리는 보였지만, 라이는 몸의 반점까지는 알지 못한다.
어차피 보이게 될 것이었지만, 역시 망설여진다.
고개를 숙이고 귀를 내린다. 라이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뭐야」
「…………」
「괜찮으니까 이리 내 봐」
성큼성큼 걸어서 다가온 라이에게 팔을 붙잡힌다.
「싫어…… 읏」
「……윽」
반사적으로 손톱이 나가 있었다.
그 여세로 후드가 벗겨진다.
라이의 얼굴에, 희미하게 붉은 선이 번졌다.
그럴 생각은 없었기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라이는 말 없이 뺨을 훔치고, 손에 묻은 피를 보았다.
「두 번이나 같은 녀석에게 상처를 입을 줄은 말이지」
담담한 목소리는, 분노도 살기도 품고 있지 않았다.
그 푸른 눈동자처럼 차갑다.
코노에는 주먹을 쥐고, 고개를 숙이고서 입술을 깨물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 거지」
「…………」
「그 귀와 꼬리인가」
「……!」
「검은색이 불길하다고는 해도, 네 숨기는 형색은 심상치 않아. 혼자서 숲을 빠져나가려 했던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잖아」
눈을 맞추지 않아도, 라이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끝까지 숨길 수는 없는 건가.
어떻게 생각되든, 그때는 그때다.
될 대로 되는 수밖에는 없다.
각오를 다지고, 코노에는 얼굴을 들었다.
경직된 손가락으로 코트를 벗는다.
손의 아머를 풀고, 신발도 벗었다.
푸른 눈이, 약간 가늘어진다.
「그것은……」
다시 봐도, 뚜렷이 떠오른 반점은 그로테스크하고 꺼림칙했다.
램프의 불꽃의 그림자와 얽혀, 지금이라도 움직일 것처럼 보인다.
회한스런 마음이 북받쳐, 코노에는 라이에게서 눈을 돌린다.
어떻게 보이고 있는 걸까──그것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달아나버리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라이는 그저 코노에의 팔을 잡고, 반점을 차분히 바라볼 뿐이었다.
「예전부터 이랬던 건가」
「아니. 갑자기 이렇게 됐어. 귀랑 꼬리도」
「검은 반점, 귀와 꼬리……. 전해내려오는 저주의 증표, 인가」
라이가 중얼거린 말에 가슴이 몹시 괴로워져, 라이에게 잡혀있던 팔을 뺀다.
「카로우를 나온 건 그 탓인가. 란센을 목적지로 뒀었다는 건, 뭔가 해결책이라도 찾았던 건가」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마을에는 더 이상 있을 수 없었어. ……그래서, 란센으로 향하는 수밖에는 없었어」
「그런가」
라이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선다.
「저주에 걸린 경우에는, 저주를 풀 방법도 있을 테지」
「에?」
코노에는 라이의 얼굴을 본다.
그 옆얼굴은, 램프의 빛이 비쳐 날카로운 인상이 누그러져 있었다.
시선만이 맑게 코노에를 포착하고 있다.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야. 틀린가?」
「……그럴지도 몰라. 그치만,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가능성이 있다면, 찾으면 돼. 호락호락하게 저주 받아 죽을 생각은 없겠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지금 네가 들은 대로다. 아니면, 찾는 건 성가시다고 말할 생각인가?」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나열된 말에, 초조함이 더해진다.
언성을 높인 결에 꼬리의 털이 곤두선다.
덤벼들듯이 라이를 사납게 노려본다.
「가능성을 살피면 된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딴 거, 일부러 말 안 해도 알고 있어! 당장 찾으러 나가라는 건가」
라이는 말없이 코노에를 응시하고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너, 정말로 바보 고양이로군」
「……뭐라고?」
「나는 너한테 따라오라고 말했어. 너는 동의했다.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거겠지.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너 한 마리를 내쫓을 필요가 있지?」
「…………?」
묘하게 맥이 풀린 숨이 입술에서 흘러나온다.
「……당신도, 내 저주를 풀 방법을 찾는다는 건가」
「당연하지」
「어째서」
「너는 찬아다. 가르칠 거라고 말했을 텐데」
「……세상에 재앙을 가져온다고 전해지는 저주와 똑같아도 말인가」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네게 닿자마자, 날아가 버린다든지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말야」
「그렇게까지 해서……, 찬아를 갖고 싶은 건가」
「갖고 싶지 않다고는 말 못 해. 나에게는 힘이 필요하다. 그치만 그 전에 고작 저주 따위로, 호들갑 떨 것도 없잖아」
「…………」
어안이 벙벙해진다.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선, 눈앞에 있는 이 오만한 고양이가, 동기는 어쨌든 누군가를 위해서 움직인다는 따위의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주를 「따위」로 취급할 줄은.
라이는 지금까지 코노에가 보았던 그 어떤 고양이보다도 별나다.
「왜 그러냐」
「아니……. ……별나구나, 당신. 보통은 기분 나빠하면서 가까이 오지 않잖아」
「겉보기만으로 전부를 판단하는 것이 보통인가」
「어차피, 그런 녀석들이 신경쓰는 건 주변의 눈이다. 남들과 다른 짓을 해서, 무리에서 튕겨져 나와서, 소외당하는 게 무서울 뿐이다. 대다수의 일부가 되면, 상처를 받는 일은 없으니까」
잘라 말해져서, 코노에 쪽이 압도된다.
동시에, 라이에 대해서 품고 있었던 불신과 불만이 조금 엷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태도는 불손하지만──라이는, 적어도 다른 고양이보다는 신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처난 곳을 보여봐라」
망설이면서도, 이번에는 고분고분히 팔을 내밀었다.
상처는 이미 피가 말라서, 딱지가 앉아 있었다.
통증도 가볍게 피부가 당기는 정도로, 심하지는 않다.
「이 정도라면, 괜찮겠군」
고개를 끄덕이고, 라이가 손을 뗀다.
「일단 오늘은 몸을 쉬게 해라. 이제부터의 일은 내일 생각한다」
코노에는 옆에 있는 침대에 주저앉았다.
시선을 창 쪽으로 돌린다.
가까스로, 란센에 도착했다.
처음 눈으로 본 시사 최대의 도시는, 불가사의함이 넘치고 있었다.
몸에 피로가 퍼져가는 것을 느끼며, 코노에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지고 왔던 삼베 자루를 끌어당겨, 나무 대롱을 꺼내들고 목을 축인다.
멍하니 있으니, 라이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뭔가 용건이 있냐고 눈으로 묻는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라이는 갑자기 코노에의 꼬리를 집어들었다.
「! ……윽, 뭐 하는 거야, 이거 놔!」
꼬리는 급소다.
몸에 아프다고도 가렵다고도 할 수 없는 충격이 스친다.
몸을 경직시키고, 반사적으로 이빨을 드러낸다.
라이는 코노에를 한번 흘낏 보고, 검은 꼬리를 바라보았다.
뿌리부터 털을 거꾸로 세우듯이 어루만져져서, 한기가 든다.
「이거 놔……!」
「갈고리 꼬리인가」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무표정해서 알기 힘들지만, 라이는 아무래도 코노에의 꼬리를 주시하고 있는 듯했다.
부끄러워져서, 꼬리를 억지로 움직여서 라이의 손을 뿌리친다.
「……당신 쪽이 멋진 꼬리, 가지고 있잖아」
얼굴을 돌리고 내뱉듯이 중얼거리자, 크고 두꺼운 꼬리가 출렁 하고 흔들렸다.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방 안에는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거리의 혼잡한 소음만이 조용히 울려퍼진다.
라이는 말없이 창가의 침대에 걸터앉아, 우아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몸짓으로 털다듬기를 시작했다.
대체 뭐였던 걸까.
의미불명의 행동에 라이를 노려보고서는, 코노에는 주의를 돌려 삼베 자루를 뒤졌다.
생각해보면, 다른 고양이와 같은 방에서 지냈던 일 따위는 거의 없다.
게다가 라이는 이제 막 아는 사이가 되었을 뿐이다.
아무래도 진정되지 않는다.
부모님께 받았던 자루가 보여서, 끄집어낸다.
아버지의 노래가 적힌 편지를 꺼내들고, 펼쳤다.
엮어져있는 가사는, 몇 번 보아도 읽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카로우의 집을 떠올린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그립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서, 코노에는 돌연 어떤 것을 생각해냈다.
──반지.
그렇다, 반지.
부모님의 유품이었지만, 다른 자루에 넣어뒀던 것이다. 선반에 내버려둔 채로 와버렸다.
지금부터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보다는 돌아가지 못한다.
……포기하는 수밖에는 없는 건가. 어쩔 수 없다. 아쉬운 마음에 귀를 숙이며, 코노에는 옆 침대로 시선을 돌린다.
라이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하얀 꼬리의 끝이 느릿하게 흔들린다.
──진정되지 않는 건, 자신 뿐인가.
코노에는 모포를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렸다.
그 속에서, 살금살금 털다듬기를 시작한다.
홀로 틀어박혀 있으면, 조금 안심이 된다.
자신의 체온으로 따뜻해진 모포가 기분 좋다.
조금씩 졸음이 몰려온다. 꼬리를 반 정도 핥았을 즈음에, 코노에의 의식은 부드럽게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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