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 초고입니다.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공간을 차단하는 소리와 함께, 갑작스런 정적이 주변에 차오른다.
창문으로 들이비치는 달빛에, 주위의 윤곽이 어두움의 농담(濃淡)으로 떠올랐다.
부들, 하고 작게 몸을 떤다.
이곳은, 무도회장보다도 더 온도가 내려가 있다.
전방에 책장인 듯한 그림자가 같은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이지만, 그 외에 빛을 가리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
조금씩, 신중하게 걷기 시작한다.
바닥의 매끈매끈하고 딱딱한 감촉이 발을 통해 전해졌다.
「어둡네」
아무리 밤눈이 밝다고 해도, 이래서는 문자를 읽을 수 없다.
그러나, 문득 등 뒤에서 빛이 느껴졌다.
돌아보자, 라젤이 내밀고 있는 한쪽 손에 옅은 불꽃이 붙어, 도서관 안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당신은, 불을 조정할 수 있는 거야?」
「본래의 용도와는 다르지만, 지금은 특별 케이스다」
「……덕분에 살았어」
솔직히, 불을 보고 경직될 뻔했지만, 마음 약한 상태로 있을 상황이 아니다.
가능한 한 보지 않으려 하면서, 코노에는 약간 밝아진 도서관 안을 다시금 둘러보았다.
무도회장과 똑같이, 천장이 높다.
그리고 벽이란 벽은 다 서가로 되어 있어서, 빽빽하게 책이 들어차 있었다.
실내의 중심에는 진열된 서가 외엔, 아무것도 없다.
몇 개의 서가에는 긴 사다리가 기대어져 있어, 높은 위치의 책도 볼 수 있게끔 되어 있다.
바르도가 말한 대로, 확실히 압권이었다.
리비카의 평소 생활에서는 책 자체를 그다지 찾아볼 수 없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뱉어 본다.
익숙해진 케케묵은 냄새와, 건초와도 비슷한,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건조한 냄새가 난다.
쥐 죽은 듯 조용해진 공간에 울려퍼지는 신발 소리는, 심장 고동과도 같다.
라젤이 불꽃을 피워올린 탓도 있어, 마치 도서관 전체가 살아서 호흡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우리들은 위쪽부터 시작할까」
라젤 외의 악마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코노에와 라이, 아사토도 제각기 서가로 향한다.
책등을 죽 훑어보았다.
다행이도 리비카의 언어로 쓰여 있어서, 나란히 놓여있는 책의 카테고리를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한 열씩 옆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동안, 책등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책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스무 권 정도는 있었지만, 가장자리 쪽에 모여 있다.
어쩐지 신경이 쓰여서, 한 권을 빼내어 보았다.
표지에도, 역시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다.
「뭔가, 찾아낸 거야?」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려 얼굴을 돌린다.
옅은 어둠에 뒤섞인 채로, 눈동자에 희미한 불꽃의 붉은빛이 비친 아사토가 서 있었다.
「이거. 이 일대의 책만, 책등에 아무것도 안 적혀있어」
아사토가 얼굴을 가까이 대듯이 하고 코노에의 손을 들여다본다.
표지를 펼치고, 몇 페이지를 넘겼다.
「……뭐라고 적혀 있는지, 못 읽겠어」
아사토가 곤혹스러움이 스민 얼굴로 불쑥 중얼댄다.
코노에도 결코 문자를 읽는 것에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눈으로 쫓아가 보았다.
「……찬아. 찬아(贊牙)라고 적혀 있어」
눈에 들어온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해본다.
그대로, 빨려들어가듯이 다음의 문장을 읽는다.
거기에는, 어느 찬아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선천적으로 찬아로서 특출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능력을 지녀, 찬아의 혈통 『쿠루이(來威)』는 아니었지만, 그 능력으로 인해 특례로 차기 찬아장 후보가 되었던 고양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고양이는 쿠루이 고양이들의 시기에 의해, 몇 년 전에 암살되어버린 듯하다.
그 고양이가 걸어가면 그 발자국에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나고, 바람은 부드럽게 그 뺨을 쓰다듬었다.
그 고양이의 노래는 투아 만이 아니라, 듣는 이의 마음을 송두리째 휘저으며, 한편으로는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한, 넉넉하고 신비한 힘이 있었다.
그 고양이의 노래는 온갖 생명을 사랑하며, 또 사랑받으며, 어둠 속에서 꿈틀대는 마물의 마음에조차 평온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다른 페이지도 팔랑팔랑 넘겨 본다.
아무래도 이것은, 란센을 중심으로 한 시사의 사건들을 정리한 기록장인 것 같다.
마물의 마음에조차 평온을 가져다 주었다는 찬아.
암살당했다고는 하지만, 어떤 고양이고, 어떤 노래를 불렀던 것일까.
노래를 울려퍼지게 한다는 것.
말과 선율에, 마음을 싣는다는 것.
찬아가 되고서 처음으로, 그 어려움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젠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지만, 이 고양이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능력을 가진 찬아라……」
감탄의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내뱉는다.
「아사토는, 이 찬아, 어떻게 생각해?」
옆에서 열심히 책을 들여다 보고 있는 얼굴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능력이 좋고 나쁘고 보다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찬아랑 같이 있고 싶어」
「……아아, 그건 그렇네」
아사토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에 대해선 같은 의견이었다.
찬아도 투아도,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사이가 좋지 않으면 힘을 충분히 발휘하는 일 따위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의외로, 힘만을 추구하다가, 망각해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조금 더 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것을 꺼내들어 본다.
이번에는 리비카에 대해서 쓰여 있는 듯하다.
멀고 먼 옛날의 이야기.
위대한 존재인 「신들」에 의해 탄생된 「두 지팡이」는 눈부신 진화를 이루어, 문명을 발달시켰지만, 어느날 「신들」에 의해 멸망되어 버린다.
「신들」은 「두 지팡이」와 함께 살아온, 생명 있는 것 모두를 흔적 없이 제거하려 했다.
멸망을 예감하고 있던 「두 지팡이」는, 모든 종족의 암컷과 수컷을 한 쌍씩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우리」에 격리시켰다.
그러나 「신들」의 분노가 가라앉은 후, 결국 살아남은 것은 「두 지팡이」의 수컷과 「고양이」의 암컷 뿐이었고, 이 두 마리도 거의 죽음에 다다른 상태였다.
「신들」 가운데, 이 사태를 몹시도 슬프게 여기는 자가 있었다.
그것은 자비심이 깊고, 생명을 귀히 여기던 여신 「리비카」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여신은 「고양이」의 안으로 들어가, 「두 지팡이」와 관계를 맺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켰다.
그 위에, 한번 멸종했던 모든 종족의 생명을 소환하여, 다시금 대지 위에서 숨쉬게 하였다.
이 일로 여신 「리비카」는 영원의 생명을 잃고, 「고양이」로서의 생을 살았다.
「리비카에 관련된 전설……. 그건 키라에서도, 촌장님께 들은 적이 있어」
「여신 리비카는 태양을 채 지탱해내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트려
달을 둘로 나누었다. 때문에 지금, 두 개의 달이 있는 것이다, 라고」
「그건, 나도 들은 적이 있어. 여러가지 설이 있어서 어느 게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설이 제일 좋아」
어린아이가 좋아할 법한 동화 같지만, 그렇기에 더욱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까다로운 가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었다.
「이 뒤는, 『두 지팡이』의 문명에 대한 거야」
「두 지팡이」의 문명에 대해서는, 수수께끼인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어지는 페이지에는 그림에 의한 해설이 덧붙은 설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두 지팡이」는 허다한 생명들 가운데 가장 지능이 높고, 종족별로 다른 언어를 지니며, 온갖 물건을 만들어 내어,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는 지극히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하늘을 비행하거나, 땅 속으로 잠복하거나, 바다 위에서 몇 일을 지낼 수 있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미적 감각도 뛰어나, 회화나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거나,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리비카의 선조이기도 한 「고양이」를 위시한 종족은, 「두 지팡이」에게 순종하고 있었다.
사실상, 「신들」을 잇는 대지의 「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였지만……
적혀 있는 이야기는, 리비카들이 잘 알고 있는 전설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이 그림, 도서관하고 무도회장이랑 똑같아. 게다가 잔뜩 있어」
얼굴을 들고, 도서관의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왜인지 방금 전 올려다 보았을 때보다도 훨씬 높아진 듯한 느낌이 들어, 희미하게 한기가 더해졌다.
「이런 건물보다, 땅 쪽이 따뜻한데. 이 그림에 보이는 이상은, 숲도 찾아볼 수 없어」
「그림 안에는, 확실히 없어」
「……『두 지팡이』는, 어째서 멸종된 거라고 생각해?」
쓰여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다지도 우수했는데.
신들은, 대체 무엇이 불만이었던 것일까.
「그건 분명…… 신들을 화나게 한 거야」
「무슨 이유로?」
「모르겠어. 그치만, 신들은 슬퍼했겠지」
「슬퍼했다?」
「자애로운 여신으로부터 태어난 것을 없애다니, 즐거워하면서 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그렇네」
아사토의 말은 어딘지 어설펐지만, 한편으로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리비카들은 모두, 마음 속 어딘가에 「두 지팡이」에 대해 동경을 품고 있다.
코노에도 그 중 하나였다.
리비카들을 탄생시킨 존재이기에 「신」이기도 했고, 그 다채로운 능력에도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수의 언어를 구사하고, 하늘과 바다, 땅 속을 오가고, 수많은 물건을 만들어 냈다.
「두 지팡이」의 모습에 관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 같지만, 기다란 두 개의 지팡이와도 같은 다리라는 말을 들으면 우스운 모양밖에는 상상되지 않는다.
그만큼 두뇌가 발달되어 있었다는 것은, 터무니없이 머리가 큰 것이 아닐까라든지,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된다.
「고양이」에 대해서는 문헌 외에 몇 장의 그림이 발굴되어, 귀나 꼬리 따위가, 지금의 리비카들과 비슷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도, 소위 일반 고양이들은 대부분 「두 지팡이」의 문자를 읽을 수 없다.
문헌도 이렇게 리비카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면 읽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모든 고양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뒤의 페이지에는, 란센과 다른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는 듯했다.
책을 덮고, 본래 있던 장소에 돌려놓는다.
지금 것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기록이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리크스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이 제목 없는 책들 가운데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열에서, 다른 책을 꺼내들려 했던 때였다.
별안간 도서관 안의 빛이 사라졌다.
「……라젤?」
「조용히」
어둠 속, 불길한 공기가 팽팽히 조여든다.
숨을 죽이고, 귀를 세우고, 똑똑히 눈을 뜨고서 주위의 낌새를 살핀다.
……목소리가 들린다.
시끄러운 목소리.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윽, ……」
욱신, 하고 가슴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스쳤다.
의복의 가슴께를 내리누르고 이를 악문다.
심장이 고통스러운 고동의 속도를 높여간다.
이 느낌, 설마──
「……온 건가」
「이제야 행차하신 건가. 그치만 본체가 아닌 것 같군」
「본체?」
둥실 하고 공기가 흔들리고, 악마들이 허공에서 내려왔다.
「리크스가 아니란 말이라고. 말단이야 말단. 자 얼른 나가. 안 그럼 구경하러 온 고양이들이 말려든다고」
리크스가 아니다.
그것은, 코노에가 가장 잘 체감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가슴의 통증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없이 비슷한 이 통증은, 적어도 리크스의 부하가 가까이 다가온 상태라는 것이겠지.
곧바로 뒷문으로 가,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막힌 소리로 들려왔던 혼란이, 확실한 소리가 되어 귓속으로 날아들었다.
도서관의 정면까지 돌아간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무도회장 쪽에서 울려퍼져 온다.
도망친 것인지, 주변에 있었을 구경꾼이나 파수꾼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상대는 네 마리, 인가. 찬아와 투아인지는 모르겠군」
「우리는 둘씩, 고양이는 두 마리랑 한 마리로 각각 나눠지자. 고양이 한 마리는 힘에 부칠 테니까 상대는 하지 말고, 우리들 중 누군가가 있는 곳까지 유도해주면 돼」
곁에 서 있던 아사토가 눈치를 살피는 듯이 얼굴을 들여다봐 왔다.
「코노에, 괜찮아?」
「아아」
「같이 가자. 너는, 내가 지켜」
「…………」
너무나도 스트레이트한 말에, 코노에는 순간 할 말을 잃는다.
물론 아사토는 진지함 그 자체지만, 도리어 코노에 쪽이 부끄러워졌다.
게다가 수컷끼리, 그다지 보호를 받을 필요는 없다.
정면으로 대놓고 지켜준다는 말을 들어서는, 마치 자신이 약하다고 단정지어진 것 같아, 코노에는 조금 울컥 했다.
확실히 아사토 쪽이 훨씬 강하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단언되는 것은 싫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있자, 등 뒤에서 돌연 팔을 붙잡혔다.
놀라서 돌아본다.
「라이……!」
「너는 나하고 간다」
라이가, 차가운 푸른 눈동자로 지그시 코노에를 응시하고 있었다.
강인한 태도에 약간 괘씸함을 느끼며, 팔을 뿌리친다.
아사토가 라이를 노려보고 낮게 으르렁댄다.
「어째서 내가 너랑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네 힘을 잘 끌어낼 수 있는 건 나다」
「……윽」
그 말에, 코노에는 더욱더 분노를 느꼈다.
이래서야──흡사 물건 취급이 아닌가.
「명령하지 마. 그건 코노에가 결정할 일이야」
아사토가 위협하듯이 턱을 당기고, 짧게 고한다.
「너는 나서지 마」
「너……」
「난 아사토랑 갈 거야」
일촉즉발의 공기에 틈을 두지 않고 말을 내뱉는다.
라이가 코노에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시선에, 한 순간 오싹 하고 한기를 느꼈다.
「힘을 발휘할 자신이 있는 건가」
「……아아」
「변변히 노래해본 적도 없고, 전투력이라고 해도 어중간한 네가 말인가」
「…………」
「대단한 일이네. 그렇다면, 두고 보지」
두 눈을 날카롭게 좁히고 고압적으로 말을 내뱉고는, 라이는 코노에와 아사토에게 등을 돌렸다.
털을 곤두세운 아사토가, 그 뒷모습에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높인다.
코노에의 머릿속에서는, 라이의 말이 아득한 귀울음과도 같이 반향되고 있었다.
……노래할 수 있을까?
만약 찬아의 노래가 필요하게 됐을 때
──혼자서도, 제대로 노래할 수 있을 것인가.
알 수 없다.
급격한 불안에 내몰린다.
코노에의 형색을 눈치챈 아사토가 얼굴을 가까이 댔다.
기색을 살피는 것인지, 아사토의 코끝이 코노에의 뺨에 닿는다.
「불안해하지 마. 넌 내가 지켜. 노래를 잘 못해도 괜찮아. 코노에가 노래해 준다면, 나는, 반드시 강해질 수 있어」
「…………」
아사토가 말을 할 때마다, 아주 가까이에서 숨기운이 뺨을 간지럽힌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라이와의 다툼으로 약간 흥분된 상태였던 탓도 있어, 그런 반항적인 기분이 된다.
추궁하려고 얼굴을 들자, 짙은 감색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올곧고 한 점의 티도 없는, 강한 빛의 눈동자였다.
아사토는──믿고 있는 것이다.
코노에의 노래를, 코노에의 존재를, 그리고, 코노에를 믿는 자기 자신을 믿고 있다.
무엇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렇게 강할 수 있는 것일까.
문득 가슴 속에서 응어리져 있던 분노가 가라앉아 가는 것을 느끼고, 코노에는 희미하게 미소를 띠웠다.
「……아아」
「네네네. 거기까지. 그런 짓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니까」
「쳇, 고양이 주제에 야하게 노닥거리지 말라고」
베르그가 언짢은 듯이 콧방귀를 뀐다.
「그럼, 하얀 고양이는 우리들 중 누군가가 있는 곳까지, 한 마리를 끌고와 줘」
「……마음이 내키면 말이지」
「큰길로 나가면 소란스러워 진다. 저쪽으로 끌어들여」
라젤이 턱으로 가리킨 것은, 두 도서관 건물 사이로부터 이어진 길이었다.
폭이 좁고, 양쪽에 늘어선 나무들의 가지와 잎이 지붕처럼 서로 겹쳐져 있다.
안쪽에는, 숲이 펼쳐져 있었다.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무도회장의 문이 난폭하게 열린다.
허둥지둥거리는 구경꾼들이 몇 마리인가 귀를 숙이고, 꼬리를 내린 채로 바닥을 기는 듯이 비어져 나왔다.
그 뒤로, 네 개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림자는 제각기 색이 바랜 누더기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후드를 뒤집어 쓴 눈 언저리는 어둡게 그늘져 있지만, 눈동자만이 번뜩번뜩 하고 빛을 내고 있다.
그 쌍둥이 고양이들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그러나, 다르다.
네 마리의 고양이들은 발을 멈추고, 다시 코노에 쪽을 향했다.
잠깐 사이의 대치.
그것은 몹시도 근소한, 그러나 팽팽하게 긴장된 시간이었다.
한 마리가 전방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어서,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째도.
「어이!! 가자고!!!」
베르그가 웃으며 소리치고, 등 뒤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다른 악마와 고양이들도, 뒤를 이었다.
좁은 길을 빠져나간다.
한밤중, 오로지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나무들의 틈으로 음의 달이 나타났다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등 뒤로 네 마리의 살기를 느꼈다.
다가오고 있다.
달려나가는 자들을 비웃는 듯이, 나무들이 가지와 잎을 흔들며 수런거린다.
숲에 발을 들임과 동시에, 코노에와 악마들은 제각기,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프라우드와 카르츠, 라젤과 베르그, 라이가 나무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이어서 코노에도, 아사토와 함께 숲 속으로 달려갔다.
그치지 않는 공감의 통증에 이따금 가슴을 내리누른다.
통증은 강해져 있었다.
등 뒤로 다가오는 기척은 한 마리.
페어는 아닌 것 같다.
달려가면서, 아사토가 거리를 좁혀온다.
귓가에, 바람과 뒤얽힌 말소리가 울린다.
「그대로 달려. 신호 보낼게」
「!?」
말소리가, 정말로 바람이 된다.
아사토가 전진하는 것을 멈추고 몸을 돌려, 이번에는 후방으로 달려간다.
깜작 놀란 코노에도 발을 멈추려 했지만, 아사토의 말이 떠올랐다.
──그대로 달려.
하마터면 멈출 뻔한 것을 가까스로 중지하고, 그대로 계속 달린다.
등 뒤에서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아사토가 싸우고 있는 것이다.
땅을 차고, 도약하는 소리.
긴장에 완전히 신경이 날카로워진 귀에는, 칼을 내칠 때 발생하는 호흡마저 들려온다.
그에 아울러, 심장의 고동이 가속되어 간다.
가슴의 통증도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정말로 이대로 달려가도 좋은 걸까.
아사토는 괜찮은 것일까.
이런저런 의문과 불안이 발을 내딛을 때의 진동과 함께 머릿속에서 뒤섞인다.
「코노에!」
목소리가 들려서, 뒤꿈치로 가속을 멈추고 돌아본다.
아사토가 이쪽에 등을 지고, 높게 뛰어오르고 있었다.
바로 아래에는, 사냥감을 붙잡는 데 실패해 자세를 흐트러트린 적의 모습이 있었다.
머리보다도 먼저 본능이 판단하고 있었다.
추격자에게 돌진한다.
검을 가로쥐고, 뒤로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추격자 고양이에게 옆쪽에서 베어치는 일격을 먹였다.
「……큭」
아슬아슬한 순간에 고양이의 모습이 사라진다.
공격이 먹힌 느낌은, 있었다.
그러나, 치명상은 아니다.
기껏해야 다리를 내려친 정도다.
작게 혀를 차고, 코노에도 곧바로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둔다.
추격자 고양이는 비틀거리면서도 나무 줄기를 발판으로 삼아 비스듬하게 뛰어올라, 코노에의 등 뒤에 착지했다.
코노에는 곧바로 돌아본다.
아사토가 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방금 전 코노에의 공격은 고양이의 오른쪽 무릎 부근에 명중한 것 같았다.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고, 피가 뚝뚝 흘러내려 지면에 작은 얼룩을 형성하고 있다.
추격자 고양이는 거친 숨에 어깨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코노에와 아사토를 노려보고 있다. 상처를 입은 탓인지 살기가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제 덤벼들어 온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아사토가 척 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 얼굴을 곁눈으로 보고, 코노에는 오한을 느낀다.
사납게 굳어진 갈색의 뺨이, 마치 인공물처럼 보였다.
눈동자에는 불순물 없는 살기가 깃들어 있다.
분노도 증오도 아니다. 그저 눈앞에 있는 적을 배제한다.
그것을 위한 살기다.
부스럭 하고, 아사토가 목에 감겨 있던 천을 왼손으로 털어냈다.
왜인지 그것이 불길한 동작처럼 느껴져, 코노에는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다음 순간, 아사토는 맹렬히 땅을 박찼다.
타이밍을 읽거나 상대의 태도를 보는, 그런 의도는 전혀 없는 무방비한 돌진이었다.
추격자 고양이는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아사토에게 머리 위쪽에서 검을 내치려 했다.
그럼에도, 아사토는 피하려고도 멈추려고도 하지 않는다.
마치 스스로 뛰어드는 것처럼, 오른쪽 어깨부터 곧바로 파고들어 간다.
갈색의 어깨에 흰 칼날이 박힌다.
「……아사, ……!」
코노에는 말을 잃었다.
예측했던 불쾌한 소리도, 핏방울도, 없었다.
아사토의 어깨를 노린 추격자의 검이, 불측하게도 어깨에서 등으로 미끄러져 내려간 것이다.
그것은, 검이 내리쳐진 순간에 아사토가 몸을 비틀어, 각도를 빗나가게 한 까닭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검이 미끄러질 리는 없다.
──천이다.
아사토가 목에 두르고 있는 천이, 검에 휘감겨 있다.
방금 전 코노에가 묘하게 느꼈던, 천을 손으로 털어내는 그 동작.
설마 그것은, 이것을 예측하고서 했던 행동이 아니었을까.
아사토가 왼쪽 손으로 털어낸 천은, 그 여세로 휙 하고 오른쪽 어깨 쪽으로 나부끼고 있었다.
돌진해오는 아사토를 검으로 내치려고, 추격자 고양이가 노렸던 것은 바로 그곳이었다.
──그래서, 오른쪽 어깨부터 들어간 것인가.
일부러 고양이의 공격을 유도했던 것이다.
추격자 고양이의 검은 어깨가 아니라 목의 천을 포착했고, 거기다 아사토가 몸을 비튼 탓에, 그대로 천에 휘감겼다.
결국, 검의 기세도 날카로움도 무용지물이 되고, 잘 단련된 아사토의 등을 미끄러지는 것에 그친 것이다.
요령 좋게 추격자의 요격을 제친 아사토는, 곧바로 상대를 지면으로 깔아눕혔다.
너무나도 능란한 그 움직임에, 코노에는 그저 넋을 잃을 수밖에는 없다.
지금의 수법은, 한 치의 오차라도 있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죽지 않더라도, 부상을 면할 수 없었으리라.
죽느냐 죽이느냐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아사토는 냉정하게 파악하고, 마치 기계처럼 정확하게 승부를 걸었던 것이다.
상당한 각오가 없다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목숨이 아깝지는 않은 것일까.
──아깝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다르다.
뭐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필시, 목숨을 뺏는다는 행위에 대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전투에 있어서, 아사토는 눈동자에 냉혹한 살기를 띠고, 그저 적을 배제할 뿐인 존재가 된다.
감정의 흔들림이 없기 때문에 더욱, 냉정한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서는 너무나──
「……아사토!」
순간적으로 외쳤지만, 이번에는 멈출 틈도 없었다.
아사토는 오른쪽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상대의 가슴 깊숙히 찔러넣고 있었다.
마치──기계 장치의 사냥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미한 공포마저 느낀다.
아사토는 고양이의 가슴에서 검을 뽑아내고는 가볍게 피를 털어내고, 천천히 코노에 쪽을 돌아본다.
그 눈동자에서는 서서히 살기가 옅어지고 있었지만, 코노에는 여전히 속박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아사토는, 강하다.
그렇지만, 그 강함은…….
「……왜 그래?」
「…………」
말을 잃고, 그럼에도 무언가를 말하고자 코노에가 입을 열었던 때였다.
「아하하하!」
돌연, 정적을 찢는 듯한 드높은 웃음 소리가 메아리쳤다.
당장 얼굴을 들어, 주위로 시선을 돌린다.
머리 위의 공간이 일그러져, 알이 생성되는 듯이 자그마한 덩어리가 나타났다.
그 덩어리는 빙그르르 회전을 하고서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펼쳐, 공중에 멈춘 채로 양팔을 벌렸다.
작은 입술의 끝이, 부드럽게 치켜 올라간다.
「얏호-, 오랜만. 잘 지냈어? 재미는 있었나?」
「……너……!」
리크스의 찬아──휘리.
코노에는 전신의 털을 살기로 곤두세웠다.
「……무슨 용건이야, 너」
아사토가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를 내고 휘리를 노려본다.
「무슨 용건이냐니, 뻔하잖아. 너희들의 상황을 보러 온 거라고. 애쓰고 있을까나- 해서」
「사라져」
아사토가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천천히 검을 고쳐쥔다.
「리크스는, 어디 있지」
휘리는 콧노래라도 흥얼거릴 듯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보네, 말할 리가 없잖아. 그치만, 리크스 님이 어떻게 하고 계신지는 알려주지. 왜냐면, 이건 그 분의 놀이에 지나지 않으니까」
「놀이……?」
「그래, 놀이야. 리크스 님은 즐거워하고 계셔. 네가 의외로 맷집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래서, 와야 할 때가 올 때까지, 너에게도 최후의 자유를 즐기게 해주는 것 뿐이야」
「……!? 무슨 말이지」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휘리는 공중을 차고 한 바퀴 회전했다.
하늘에서 헤엄을 치는 듯 둥실 하고 몸을 뒤집어, 돌연 코노에의 눈앞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그 분은 네가 필사적으로 살고자 해서, 그 분이 계신 곳까지 오기를 기다리고 계셔. 지금 이 순간, 리크스 님이 너를 살려두고 계시는 거야. 그러니까 말야……」
거기서 말이 끊기고, 휘리의 입술이 싸늘한 미소로 벌려진다.
「너, 그 분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서, 더 발버둥치란 말야」
「……윽」
몸속 깊은 곳에 열이라고도 한기라고도 할 수 없는 탁류가 솟아오른다.
동시에 검을 빼들고, 덤벼들었다.
휘리의 몸이 가뿐하게 젖혀져, 검의 날 끝은 공허하게 바람을 가른다.
「그래 그래, 그 기세. 구경거리는 물이 좋지 않으면 안되지. 자, 좀 더 와보라고. 더 소리치지 않으면. 그 분께 닿지 않잖아?」
「닥쳐! 리크스는 어디에 있지!」
「아하핫」
휘리는 익살을 부리듯 오른쪽 왼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야단스러운 동작으로 천천히 한쪽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그럼, 나랑 같이 놀까. 이기면 알려주지」
「……윽!!」
충격 대신에 찾아든 것은, 빛이었다.
방대한, 눈을 감고 있어도 따가울 정도로 눈부신 빛이 작렬했다.
「……뭐야!?」
휘리의 곤혹스러운 목소리가 울린다.
코노에도 팔로 눈가를 가리며 얼굴을 찡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빛은 잠시 동안 주위를 뒤덮고, 이윽고 서서히 약해져 갔다.
눈꺼풀 너머로 빛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때, 코노에는 조심조심 눈을 떴다.
몇 번 깜박여 본다.
초목에 녹아든 어둠이, 시야에 비쳤다.
곁에는 아사토가 무릎을 꿇고 몸을 굽히고 있다.
방금 전의 빛은, 대체…….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놀란다.
그곳에는, 그──음유시인 고양이가 서 있었다.
더 이상 눈부신 빛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음유시인의 몸 자체는 희미하게 발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르고 있던 기다란 천의 자락을 나부끼며, 음유시인이 코노에와 아사토를 돌아본다.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쓴 천의 그림자로 표정은 여전히 엿볼 수 없었지만, 문득 안도와도 같은 것을 느꼈다.
지켜주고 있다.
돌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길, 뭐야, 갑자기……」
휘리가 일어나, 음유시인을 노려본다.
「이 녀석, 너희들이랑 같은 패거리? 이런 게 있다고는, 들은 적 없어」
음유시인은 조용히 다시금 휘리를 향하고, 두르고 있던 천의 아래에 감춰졌던 꼬리를 크게 흔들었다.
말도 으르렁대는 소리도 없다.
그렇지만, 음유시인으로부터는 저항하기 힘든 위압의 공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휘리는 질 수 없다는 듯이 턱을 당기고, 음유시인을 한층 더 매섭게 노려보았지만, 이내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뭐야, 뭐야 너. 리크스 님께 일러주겠어!」
아이 같은 대사를 내뱉고서, 휘리는 땅을 박차고 높이 도약했다.
「거기 서!」
휘리의 몸은 공중에서 빙그르르 회전하고서, 어둠에 뒤섞이듯이 사라졌다.
코노에도 아사토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잠시 그곳에 붙박여 있었다.
밤의 정적이 달빛과 함께 내려와 땅 위에 쌓인다.
의식은 유달리 선명한데도, 현실감 없이 들뜬 느낌이 든다.
시야에는, 긴 천자락을 두른 환상과도 같은 뒷모습이 비치고 있다.
또, 나타났다.
그 음유시인이다.
아사토가 경계에 귀를 숙이고, 음유시인을 노려보며 낮게 으르렁댄다.
「……저 녀석, 적인가」
「적이 아냐」
「알고 있는 거야?」
고개를 끄덕이자, 아사토는 약간 놀란 듯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다시금 미간을 찌푸리고 음유시인을 곁눈으로 노려본다.
「몇 번이고 날 도와줬어」
「……믿을 수 있는 녀석이야?」
「아아」
코노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사토에게 강한 눈빛을 보냈다.
「믿을 수 있어」
「……그래」
아사토는 무언가를 삼키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는, 조금 납득이 가지 않는 듯하면서도 희미하게 끄덕였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믿어」
그 대답에, 코노에는 무심결에 안도의 숨을 흘렸다.
코노에는 다시금, 음유시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의 빛, 당신이었지. ……덕분에 살았어」
솔직한 마음으로 그렇게 전한다.
반응이 없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어째서인지 늘 자신을 이끌어 준다.
도움을 준다.
확실히 그것은 불가사의한 일인데다, 얼마든지 의심할 여지는 있다.
그래도, 의심하고자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음유시인의 주위를 감도는 공기와 연주하는 음악의 탓인지도 모른다.
음유시인이 손톱으로 악기를 탄다.
하나, 둘.
튕겨져 나온 음이 흐름이 되어, 고요하게 공기를 진동시킨다.
무심결에 넋을 잃고 그것을 들었다.
온몸의 통증이나 삐걱임, 거칠어진 마음마저도 어루만져주는 듯한, 상냥하고 애절한 음율이었다.
가사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애도의 곡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율은 하늘로 올라가, 영혼이 헤매지 않도록 이끌어 간다.
귀로 직접 스며드는 기분 좋은 소리에 몸을 맡기고 있자, 돌연 뚝 하고 연주가 그쳤다.
어느샌가 감고 있었던 눈을 뜨고, 음유시인을 본다.
천의 그림자에 가려진 얼굴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보이는 입술이, 희미하게 움직인다.
──따라.
──와.
그렇게 말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따라오라는 거야?……?」
『공허』의 숲에서 헤맸던, 그때처럼.
당연히 대답은 없이, 음유시인은 조용히 발길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일어서려 하다가, 몸을 관통하는 아픔에 얼굴을 찡그린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멀어져 있었던 감각이 되돌아 왔다.
그만 무릎이 꺾인다. 아사토가 곧바로 곁으로 와 몸을 웅크리고, 걱정스러운 듯이 코노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괜찮아?」
「뒤를 따라가지 않으면……」
「저 녀석의 뒤를? 어디로 갈지, 알고 있어?」
「몰라. 그치만, 따라오라고 했어」
아사토는 주저하는 듯이 입을 다물었지만, 이윽고 천천히 꼬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알았어. 그치만, 위험해지면 곧바로 피해」
「그러니까, 저 고양이는 믿어도 괜찮다고 말했잖아」
「그게 아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알았어」
고개를 그덕이자, 아사토는 진중한 손놀림으로 코노에가 일어서는 것을 도왔다.
「이제 괜찮아. 가자」
어둠에 묻혀가는 음유시인의 뒷모습을 향해, 코노에는 아사토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숲의 밤에, 흔들리는 가지와 잎이 어둠의 농도를 휘젓고 있다.
횃불도 없이, 미덥지 않은 달빛만이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음유시인은 희미하게 옷이 스치는 소리를 남기며 길을 걸어간다.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이따금 불안이 가슴 속을 스쳤지만, 그때마다 애써 그것을 지워냈다.
분명 음유시인 고양이는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랬다.
그러니까, 반드시.
음유시인은 등 뒤를 돌아보는 일도 없이, 미끄러지듯이 밤의 어둠 속을 걸어간다.
머리 위로 시선을 던진다. 도려내진 그림자 인형처럼 나무들의 가지와 수풀이 하늘에 걸려있다.
같은 광경임에도, 이곳은 『공허』에 침식되어 있지 않다.
문득, 카로우의 숲이 생각났다.
그 숲에, 자신의 영역은 아직 살아있는 것일까.
다른 고양이에게 뺏겼다든지 그런 것이 아니라, 발을 들이는 것이 가능할까.
오늘도 누군가가 제물이 되어서, 누군가의 양식이 됐을까.
란센에 있으면, 그런 것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착실히 『공허』는 이 땅을 침식하고 있다.
언젠가 모든 것이 『공허』에 삼켜지고, 고양이들이 「실구」로 멸종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좀 전에 휘리는, 「와야할 때」가 올 때까지, 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까지, 코노에에게는 최후의 자유를 즐기게 해주고 있을 뿐이라고.
「와야할 때」──
모든 것이 멸망하는 때가, 그것일까.
리크스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그때,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걸어가면서 생각에 몰두하고 있자, 문득 전방에서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
털이 곤두서고, 귀를 숙이고 뒤쪽으로 몇 걸음 달아난다.
등에 무언가가 부딪쳐서 더욱더 놀라, 곧바로 뒤를 돌아봤다.
부딪친 것은 아사토였다.
「괜찮아?」
「잠깐, 생각에 빠져 있었어」
과민하게 반응해버린 것이 겸연쩍어, 작게 쓴웃음을 짓는다.
마음을 고쳐잡고 다시금 걷기 시작하려 했을 때, 나무숲 사이에서 그림자가 흔들렸다.
은백색이 시야를 스친다.
나타난 것은, 라이였다.
「꽤나 긴 여행이었던 것 같군」
라이는 코노에와 아사토를 보자마자, 깔보는 듯한 눈초리로 입을 열고는 그런 말을 제일 먼저 입에 올렸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정말이지, 네녀석들은」
라이의 뒤에서 악마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어쩌면, 음유시인이 서로 만나게끔 이끌어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확실히 그 자리에 있었을 긴 천을 두른 뒷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근처에 있는 나무숲에도 눈을 돌려보지만, 없다.
「음유시인은?」
「모르겠어」
아주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사라진 것인가.
그러나, 그리 이상하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그런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이쪽은 정리가 됐지만. 그쪽은 잘 된거야?」
「그럭저럭」
「코노에, 상처가 났어」
아사토가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오른손 중지가 붉게 물들어 있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딘가에 걸린 것인지, 손가락 안쪽에 기다랗게 베인 상처가 나 있었다.
인식한 순간, 느닷없이 상처가 따끔 하고 아픔을 호소해 온다.
「아파?」
「아니」
피만이라도 훔쳐내자고 생각하고 있자, 아사토가 다친 쪽의 손을 조심히 붙잡았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아사토가 상처입은 손가락에 혀를 미끄러트렸다.
「……앗!?」
놀라서 손가락을 뒤로 뺀다.
아사토는 자신의 윗입술을 낼름 핥고는, 멍한 얼굴을 했다.
「뭐 하는 거야……!」
「피를 닦으려 했을 뿐이야」
「그렇다고 해서, 핥을 필요는……」
「상처가 나면 핥는 거잖아?」
「……자기 상처는 말이지」
그만 멍하니 눈동자를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나 참, 고양이들이란 정말이지, 어느 때고 어디서고 끈적끈적 달라붙어서는, 적당히들 하라고, 너희들」
베르그가 있는 대로 깔보는 말투로 혀를 찼다.
「그런 말을 하고, 사실은 부러운 거지」
「바보 아냐?」
코노에는 상처 입은 손을 물리고는, 작게 숨을 내쉬고서 아사토를 보았다.
「일단, 물어보겠는데」
「?」
「'다쳤으니까'라고, 다른 녀석한테도 했던 거야?」
「뭘 말야?」
「그러니까, 그……, ……핥는다거나」
「아니. 다른 고양이에게 한 건, 네가 처음이야」
「……그래」
이전부터 생각했지만, 아사토는 타인과의 접촉이 서툰 주제에 이따금 놀랄 정도로 스트레이트하게 부딪쳐오는 때가 있다.
물론 본인으로선 다른 뜻은 없고, 그저 진지한 것일 뿐이겠지.
그러나, 알고 있으면서도 코노에도 그만 착각해버릴 것만 같아진다.
다른 고양이에게도 똑같은 행동을 취했었다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지금처럼 암컷이 귀중하지 않고 넘칠 만큼 많던 시대였다면, 틀림없이 인기가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고양이한테는 하지 마」
「어째서?」
「어쨌든 안 돼」
오해를 야기해서 번거로운 일에라도 말려든다면 귀찮아진다.
「알았어. 그치만, 너한테는 해도 되는 거지?」
「…………」
아사토의 말을 듣고, 코노에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니까-! 적당히 좀 하라고!!」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듯한 베르그가 고함을 쳤다.
라이는 조금 전부터 몹시도 싸늘한 눈초리로 코노에와 아사토를 바라보고 있다.
그것과는 또 별개로, 줄곧 이쪽을 향해 쏠려지고 있는 시선이 있음을 코노에는 감지하고 있었다.
「비애」를 관장하는 악마──카르츠다.
괴로운 빛을 띤 눈동자가 보고 있는 것은, 아사토였다.
카르츠와 아사토의 사이에 접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터다.
이전에도 이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카르츠의 눈빛은 애처롭고, 또한 안타까운 것이기도 했다.
거절이나 혐오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여관으로 돌아간다」
라젤이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다.
다시금 카르츠 쪽을 살펴보니, 더 이상 아사토를 주시하고 있지 않았다.
지나치게 신경을 쓴 것일까.
그저 흥미가 있어서 보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석연치 않은 마음에 내심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코노에는 다른 일행들과 함께 마을을 향해 숲의 길을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숲을 빠져나가니, 도서관과 무도회장 쪽에서는 가벼운 소동이 일어나 있었다.
그 떠들썩함에 뒤섞이며, 코노에 일행은 발빠르게 큰길로 나와 여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돌아왔나. 뭔가 소동이 일었던 것 같은데, 괜찮았던 거야……
에, 무슨 일 있었던 건가. 그 낯짝」
대합실에 들어가자마자, 바르도가 웬일로 걱정스러운 듯한 얼굴로 카운터에서 몸을 내밀어 왔다.
「바로 쉬고 싶어. 미안하지만, 이야기는 내일 해도 될까」
「그건 별로 상관 없는데. 얼굴, 새파랗다고」
「하룻밤 자면, 괜찮아질 거야」
「그래」
바르도는 의아한 듯이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솔직히, 정말 지금 당장 잠자리로 기어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온 몸이, 먼지와 흙과 상처 투성이다.
내일, 목욕을 하자.
아사토랑 라이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간다.
악마들은 또 제각각의 목적을 위해 이동한 것 같았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장비를 풀고, 코노에는 재빨리 모포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꼬리로 단단히 몸을 감싼다.
서서히 몸 전체가 나른함으로 에워싸였다.
가까스로 한숨 놓았다는 안도감이 찾아와, 눈 깜박할 새에 사고가 둔해져 간다.
모포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은, 이런 때에 깊이 스며들어 오는 것처럼 실감된다.
「코노에」
모포 너머로 우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답을 하지 않는 대신에, 코노에는 모포에서 꼬리를 내밀어 가볍게 흔든다.
「만약,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게 있다면, 말해줘. 나는, 네 말을 따를 거야」
「……아아」
작게 대답한다.
아사토의 기척이 멀어지고, 옆쪽의 침대가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코노에의 마음 속은 복잡했다.
추격자 고양이를 물리쳤던 때의 아사토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눈.
적을 배제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둔 살기는──그것은 죽이는 것에 어떤 망설임도 없는 자의 눈이다.
거기에는 악의도, 죄의식도 없다.
죽이는 것은, 배제하는 것.
마치 잡초를 뽑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사토는──죽이는 것을 뭐라고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순수한 것이다.
순수하기에, 무섭다.
키라의 규칙인 걸까.
그렇게 해서, 키라의 고양이들은 강해져 가는 것일까.
그것도 확실히 '강함'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사토는 그것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싶다는, 강한 바람이 들었다.
키라라는 주박에 단단히 얽어매인 영혼을.
그런 생각을 하며, 코노에는 잠이 찾아들 때까지의 시간을 보냈다.
성대한 겨울 축제가 끝나고, 날이 밝았다.
다음날은 길거리나 노점에서 장식이 철거되어서, 마치 요 3일 간의 축제가 꿈이기라도 해던 것처럼 평상시의 광경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나, 큰길을 가득 메운 채 흘러가는 고양이의 물결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껏 흥취를 즐긴 축제의 여운이 아직 희미하게 감돌고 있었다.
코노에는 라이, 아사토와 함께 여관의 식당에 있었다.
악마들은, 이미 제각각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위해 흩어져 있었다.
식당에 모습을 나타낸 바르도에게, 약속대로 어젯밤에 있었던 일과 자신들의 목적, 악마들에 대한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일의 전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 바르도는 복잡한 얼굴로 턱수염을 문지르고 꼬리를 흔들며, 발치의 바닥을 노려보았다.
「……그 밖에, 묻고 싶은 건?」
「……아니, 딱히 없어. 다만, 음, 세상 일이란 건 참 묘한 거로군……」
바르도가 얼굴을 위쪽으로 향한 채, 긴 한숨을 내쉰다.
「……저기, 싫다거나 하지는 않은 거야?」
「싫어?」
「당신 입장에서는, 우리들은 성가신 손님이잖아. 그러니까……」
「아아」
보통 같았으면 내쫓을 것이 분명하다.
코노에의 질문에, 바르도는 느릿느릿 한쪽 손을 저었다.
「그런 거 일일이 신경쓰지 말라고. 그런 사정이 있는 걸 가차없이 내쫓을 정도로 마음이 좁은 것도 아니고, 결벽증이 있는 것도 아냐. 물건만 안 부순다면 괜찮아」
「말은 잘 하지」
벽에 기대고 있던 라이가, 얼굴을 돌린 채 불쑥 중얼거렸다.
바르도는 곁눈으로 라이를 흘긋 보았지만, 딱히 무슨 말을 하지는 않고, 다시금 코노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리크스란 말이지. 그래서 도서관에 가고 싶어 했던 건가. 찾는 물건은 발견한 거야?」
「아아, 일단. 그치만, 지금의 상황에 힌트가 될 만한 건, 결국 알 수 없었어」
「그래」
결국 코노에는 시사와 리비카에 관련된 이야기밖에는 읽지 못했지만, 악마들이 몇 가지를 찾아냈다.
소문대로, 리크스는 아주 먼 옛날부터 실력 있는 마술사로서 알려졌던 것 같다.
란센이 만들어졌을 즈음에는, 근처의 숲에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지만,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문헌을 찾아본 한,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른 고양이들이 기분 나쁘게 여겼던 것 같긴 하지만, 지금처럼 악명이 높았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느 한 시점부터 돌변해서, 재앙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고 한다.
아사토가 작게 꼬리를 흔들며, 발치의 한 점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리크스는, 오랜 시간을 혼자 살아서……,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거겠지」
「……그런 걸지도 몰라」
그때, 희미하게 열려 있던 창문의 틈으로부터 불꽃의 입자가 흩날려 들어왔다.
「불꽃 입자? 왜 바깥에서……」
바르도가 고개를 갸웃거림과 동시에, 돌연 불꽃 입자가 천장을 그을릴 정도로 높게 치솟아올랐다.
「……이런」
바르도가 재빨리 물러선다. 코노에도, 반사적으로 귀를 숙이고 뒷걸음을 쳤다.
불을 싫어하는 코노에가 활활 타오르는 불을 목전에 두고도 달아나지 않고 있었던 것은, 그 정체가 대충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머리 나쁜 연출이로군」
라이가 질렸다는 듯이 혼잣말을 내뱉는다.
불꽃 속에 검은 그림자가 일어난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생각했던 대로, 베르그였다.
「여어여어 고양이들, 이렇게 집합을 해서는. 이 베르그 님을 마중나온 건가?」
어깨를 추켜 올리면서 앞으로 나오며, 베르그는 히죽 하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등 뒤에서 불꽃이 스륵 하고 사라진다.
「우연히겠지」
「귀염성 없네, 고양이 주제에」
콧잔등을 찡그리며, 베르그가 양손을 허리에 댄다.
「악마는 진짜로 뭐든 할 수 있네. 대단해 대단해」
짝짝 하고 맥아리 없는 박수 소리가 울린다.
「……너, 지금 날 바보 취급한 거지」
「뭐 하러 온 거지, 너」
「특별히 의미는 없어. 평범하게 돌아온 것 뿐이라고. 랄-까 말야, 나름대로 리크스의 낌새며 동향이며, 찾아봤는데 말이지」
베르그가 꽤나 무거운 한숨을 호쾌하게 내뱉는다.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 일단, 우리들은 고양이보다 알아채기 쉬우니까 말야, 머리카락 한 올 정도라도 느껴지거나 할 텐데, 이상하리만치 아무것도 없어」
「사라진 거야?」
「그럴 리가 없지-. 녀석,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나 본데……」
혀를 차며, 베르그가 짜증스럽게 꼬리를 흔들었다.
철사와도 같은 그것은 리비카들의 꼬리와는 다르다. 신기한 광경에 그만 눈으로 쫓고 만다.
「리비카와 악마의 협력 플레이인가. 어지간해서는 볼 수 없는 일이로군」
바르도가 웃으면서 불쑥 말을 뱉자, 베르그가 눈을 부릅떴다.
「하아!?!?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호피!! 우리들, ……아니지, 나는 나를 위해서 행동하고 있어. 협력 같은 말 하지 말라고, 기분 나쁘게」
「고양이랑은 어쩌다 목적이 일치했을 뿐이야. 힘만 되찾으면, 저 녀석은 내가 먹을 거니까」
불쑥 내밀어진 기다란 팔의 끝, 검지손가락이 똑바로 코노에를 가리킨다.
코노에의 꼬리가 희미하게 경직되었다.
먹힐까보냐.
아사토가 조용히 털을 곤두세우고, 베르그를 노려본다.
「그러면 나는, 널 죽인다」
「아아? 뭣하면 그 김에 너도 먹어버릴까?」
도발적인 미소를 띄운 입술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베르그가 아사토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댄다.
아사토가 낮게 으르렁댄다.
「예 예, 내가 잘못했다고」
바르도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두 마리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베르그의 가슴을 한쪽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제지했다.
「당신도, 고양이를 깔볼 거라면 너무 진지해지지 마. 약자를 괴롭히는 것 같다고」
「쳇, 시끄러」
베르그는 거칠게 말을 뱉으며 바르도의 팔을 밀쳐내고, 성큼성큼 걸어서 식당에서 나간다.
아무래도 2층으로 올라간 듯,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천장에서 울려퍼졌다.
「이런 이런……」
눈을 위로 뜨고 천장을 보던 바르도가 눈썹 꼬리를 축 내리고, 작게 한숨을 쉬고서 시선을 아사토에게로 옮겼다.
「당신도 꽤나 저 녀석한테 홀딱 빠져 있네」
「……코노에는, 특별해」
「호오. 잘도 길들였네」
바르도가 수상쩍게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 코노에를 본다.
「어디의 누구랑 똑같은 말 하지 마」
곁눈으로 라이 쪽에 시선을 던진다. 라이는 좀 전부터 줄곧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어서, 이쪽의 이야기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근데 악마들은 다, 저런 식으로 이유 없이 고양이를 싫어하나?」
「……글쎄」
적어도 베르그 외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말하지 않는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정색하고 싫어하는 쪽도 좀 그런 것 같지만 말야. 우리들이 그렇게 미운 걸까나. ……뭐어, 어찌 되든 상관 없어」
능청을 떨듯이 어깨를 움츠리고서, 바르도는 양팔을 넓게 펼쳐 기지개를 켰다.
줄무늬 꼬리의 끝 부분이 작게 진동한다.
「건 그렇고, 일 하지 않으면 접수처가 계속 비게 돼. 그럼 이만, 어제는 수고가 많았다고」
한쪽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바르도가 접수처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서, 코노에는 아사토와 라이 쪽을 돌아본다.
「……리크스의 낌새가 없다, 라」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한 채로, 라이가 불쑥 중얼거린다.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찡그린 험악한 표정을 하고 있다.
확실히, 코노에도 신경은 쓰였다.
악마들이 손을 들었다면, 코노에를 비롯한 고양이들도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리크스는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인가──
어쩐지 선뜩해지는 듯한 막연한 예감을 끌어안으며, 코노에 일행은 그 상태로 잠시 식당에서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결국 복잡한 얼굴을 한 채로, 라이는 여관 밖으로 나가버렸다.
몸차림을 정리하기 위해, 코노에는 아사토와 함께 한 차례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 다음에 무엇을 할지는 특별히 생각해놓지 않았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딱히 없어」
침대에서 털다듬기를 하고 있던 아사토가 얼굴을 든다.
「그럼, 또 잠깐 거리에 나가보지 않을래. 축제도 끝났으니까, 고양이 수도 많이 줄었을 거야」
그 김에 소모품 따위를 사러 나가자는 생각을 했다.
아사토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듯이 입을 다물었지만,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결정한 거다」
채비를 마치고, 코노에와 아사토는 여관에서 큰길로 나갔다.
축제의 분위기가 옅어지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리는, 전체적으로 소극적인 분위기에 감싸여 있었다.
떠들썩하게 노는 데에 지쳤다는 것도 있을 것이다. 고양이들 가운데에는 하품을 하거나, 등을 둥글게 굽히고 느릿느릿 걷거나 하는 이도 있었다.
코노에는 아사토와 함께, 뒷골목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가능한 한 고양이가 적은 길을 다니려는 코노에 나름의 배려이기도 했다.
게다가 혼자서 뒷골목 쪽으로 가는 것은 약간 불안하지만, 두 마리라면 그리 쉽게 위험한 일을 당하지도 않을 테지.
물론 방심은 할 수 없으니, 귀로 끊임없이 주위의 낌새를 살피고는 있었지만.
뒷골목은 축제가 있든 없든, 변함 없이 조금 어둡고 습기를 띤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좁고 길게 이어지는 골목을 오로지 걷기만 해, 분기점에서 왼쪽으로 꺾어진다.
이대로 큰길로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던 때, 불현듯 눈앞에 부자연스러운 바람이 스쳤다.
「……!?」
바람은 커다란 그림자를 동반해, 코노에와 아사토의 사이를 가르듯이 빠져나간다.
코노에는 즉시 옆으로 피했다.
아사토도 똑같이 반대편으로 피한다.
그림자는 훌쩍 몸을 돌리고, 발바닥을 땅에 문지르듯이 해서 멈추었다.
회색의 천을 두른 고양이──키라의 추격자다.
「또인가……」
크르르, 하고 목을 울리고 아사토가 추격자 고양이를 노려본다.
칼집에서 검을 빼들고, 고요한 살기를 끓어올려 간다.
「……마물의 자식 녀석」
나직이, 팽팽하게 긴장이 감도는 공간에 목소리가 울렸다.
키라의 고양이가 내던진 말이었다.
아사토가 갑자기 으르렁거리던 것을 멈추고 침묵한다.
코노에는 눈썹을 찡그렸다.
마물의 자식──아사토가?
의미를 잘 알 수 없다.
아사토의 몸이 가볍게 앞으로 구부려진다.
순간, 코노에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맹렬한 오한을 느꼈다.
숨을 삼키고,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본다.
「……아사토?」
「…………」
아사토가 천천히 어깨를 크게 들어올리고 내렸다.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다.
그리고.
「크아아아아아아!!」
짐승처럼 포효하며, 아사토가 키라 고양이에게 돌진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코노에의 곁을 스쳐 지나간 한 순간의 광경이, 망막에 뚜렷하게 남는다.
이빨을 드러내고, 사납게 날뛰는 짙은 청색의 눈동자에──본정신의 빛은 없었다.
그것은, 실로 몇 초의 일이었다.
코노에의 눈에는, 움직임 하나 하나가 개별의 이미지처럼 비쳤다.
키라 고양이가 검을 들어 자세를 취하고, 아사토를 요격한다.
그러나, 아사토는 타이밍이고 뭐고 무시하고 쏜살같이 파고들어, 무서운 기세로 덮쳤다.
들이밀쳐진 상대 고양이가 지면에 쓰러진다.
검이, 그 손에서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아!」
아사토가 다시 격렬하게 울부짖고, 거친 호흡을 흩뿌리며 상대의 얼굴과 어깨를 억눌렀다.
확실하게 사냥감의 급소를 물기 위해 이빨을 드러낸다.
──위험하다.
「아사토!!」
순간적으로 외치며, 코노에는 달려나갔다.
키라 고양이를 물어뜯으려 하는 그 등을 노려서, 자신의 몸을 부딪친다.
아사토가 코노에의 체중을 받고서, 지면으로 넘어진다.
「흐, 히익!」
공포에 내몰린 키라 고양이가 허둥거리며 일어나, 즉시 뒤쪽으로 물러섰다.
「……윽」
아사토의 몸을 타고 올라서, 다시금 뛰어든 코노에는 지면에 어깨를 부딪쳤다.
지잉 하고 저려오는 듯한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일어서서 아사토의 곁으로 달려간다.
아사토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웅크리고 있었다.
코노에의 기척을 느낀 것인지, 눈이 희미하게 뜨인다.
「……어이」
「……코노에?」
그 눈동자에는 제정신의 빛이 돌아와 있었다.
코노에는 휴우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다행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사토가 원래대로 돌아와서 다행이다.
키라 고양이는 공포와 두려움에 찬 표정으로 한발 한발 뒷걸음질을 치며 입을 열었다.
「……기억해 둬. 그 고양이는 저주 받은 아이, 마귀로부터 태어난 금기의 자식이다. 곁에 있으면, 반드시 불행해 진다고」
저주와도 같이 그런 말을 내뱉고는, 키라 고양이는 도약했다.
벽을 차고서 더욱더 높이 올라가, 지붕 저편으로 모습을 감춘다.
발소리도 없이, 기척은 사라졌다.
키라 고양이가 사라져 간 지붕을 노려보며, 코노에는 곤혹과 분노를 느꼈다.
저주 받은 아이?
마귀로부터 태어난 금기의 자식…… 무슨 말일까.
뒤를 돌아본다. 아사토는 자리에 눌러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생각해내지 못한 채, 코노에도 말없이 아사토를 바라본다.
아사토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뺨이 경직되어 있는 것 같다.
거기에 겹쳐지듯이, 방금 전 이성을 잃은 아사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모습은, 확실히 심상치 않았다.
번뜩이는 살기를 머금은 눈동자, 있는 대로 드러난 이빨──마치, 짐승과도 같았다.
마치……
……마물과도 같은?
「…………」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고개를 저으며 사고를 차단한다.
마음을 고쳐 잡고, 코노에는 떨어져 있던 아사토의 검을 주워들었다. 손잡이를 아사토 쪽으로 향하게 하여 내민다.
「…………」
아사토는 받아들지 않고 말없이 얼굴을 들었다.
괴로움으로 가득 찬 애절한 시선이 코노에를 향한다.
「……들었, 겠지」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한 채, 코노에는 그저 눈썹을 찡그린다.
무언가를 눌러죽이는 것처럼, 아사토가 조용히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 ……어떻게 된, 일이야」
가까스로 생각이 미친 것만을 입에 담는다.
「모르겠어…… 그저, 줄곧 그런 말을 계속 들어왔어. 너는 마물의 자식이다, 그러니까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
그것이──키라의 고양이들이 아사토를 혐오한 이유인가.
경악스럽다.
……무엇이?
아사토가 마물로부터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사토가 마치 마물과도 같이 발광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좀 더.
좀 더……
코노에는 이를 악물고, 굳세게 주먹을 쥔다.
「키라 고양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나를 노리는 건, 그 탓이야. 내가,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니까……」
「그런 거, 상관 없어」
힘 없는 아사토의 말을 가로막듯이, 코노에는 목소리를 쥐어짜낸다.
「마물이라든지, 그런 건 어찌 되든 상관 없잖아. 내 눈앞에 있는 건, 아사토니까」
아사토의 눈이 희미하게 커진다.
「역시, 이상해. 너희 마을, 이상하다고. 카로우도 이상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이상해. ……아사토, 키라에 대한 건 잊어버려. 전부, 모조리 다」
「코노에……」
코노에는 몸을 웅크리고, 아사토의 얼굴을 바로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았다.
마음을 전하기 위해, 눈동자를 강하게 응시한다.
그 시선으로부터 도망치듯이, 아사토는 아래쪽으로 눈을 돌린다.
「……너는, 싫지 않아? 만약, 키라 고양이들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싫지 않아?」
「그러니까, 상관 없다고 말하잖아. 내가 알고 있는 아사토는, 마물도 무엇도 아니야」
한 순간, 짐승과도 같은 아사토의 형상이 뇌리를 스친다.
그러나, 곧바로 떨쳐냈다.
「나랑 같이 가겠다고 결정했으면, 그렇게 해. 너는 이미, 키라의 아사토가 아냐」
「……코노에」
마치 자신의 일처럼, 코노에는 알 수 있었다.
기억에 없는 일로 비난을 받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를.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부정해도, 신뢰받지 못할 때의 분함을.
자신은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역시 아사토를 그 마을에서 데리고 나오길 잘했다고, 다시금 확신한다.
「알았지?」
다짐을 받아내듯이 물어도, 아사토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망설이고 있는 것이리라.
아무리 마을에서 나왔다고는 해도, 고향을 잊어버리라는 말을 듣고 간단히 수긍할 리가 없다.
키라가 세계의 전부였다고 하면,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아사토는 눈꺼풀을 한번 내리깔고서, 결의를 굳힌 듯이 코노에의 시선을 되받아 보았다.
「……알았어. 나는, 코노에를 위해서 키라를 버릴 거야. 그냥 아사토가 될 거야」
「……아아」
그 말과 똑같은, 강한 의지를 짙은 감색의 눈동자에서 찾아내며 코노에는 끄덕인다.
아사토가 희미하게 목을 울리며, 코노에의 어깨에 코 끝을 세차게 부딪쳐 왔다.
만약──키라 고양이가 했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아사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때는 자신이 저지한다.
반드시.
그렇게, 굳게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