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 초고입니다.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음날, 『암동』 2일째.
하늘은 쾌청하고, 창으로 산뜻한 햇볕이 방 안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조금 늦게 일어난 코노에는, 작게 하품을 하며 아사토의 침대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혼자서 어딘가로 나간 것일까.
조금이라도 바깥에 흥미를 가졌다는 것이라면 기쁘지만, 여러 의미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상태임에도, 코노에는 침대를 빠져나왔다.
털다듬기를 하고서 몸차림을 가다듬고, 방을 나온다.
계단을 내려가자, 대합실에는 몇 마리의 고양이들이 각각의 대화에 꽃을 피우고 있었다.
축제 첫날이었던 어제보다는 수가 줄어 있다.
「잘 잤나」
목소리가 들려 시선을 돌린다. 소파에 라젤이 앉아 있었다.
「다른 녀석들은」
「밖으로 나갔다」
「걸어서 나간 거야?」
그만, 생각지도 않은 것을 무심코 입 밖에 내고 말았다.
악마들이 모여서 대열을 지어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왜인지 우스웠기 때문이다.
그 의도를 파악한 것인지, 라젤은 아주 미미하게 입술에 미소를 띄우고,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힘을 빼앗겼다고는 해도, 공중부양이나 단거리 공간이동 정도는 할 수 있다. 게다가, 호출되면 그곳으로 떠나지」
「떠나?」
「우리들의 주된 역할 중 하나다. 자신의 무언가를 희생하더라도 이루고 싶은 소원을 가진 자가 의식을 행하고, 우리들을 소환한다」
「전원이, 소환되는 거야?」
「아니, 전원이 아니다. 저마다가 관장하는 감정에 강하게 접해 있는 자의 곁으로 소환되지.
예를 들면, 『분노』에 미쳐 날뛰는 자가 있다면, 내가 간다. 손에 들어오는 보수는 미미한 것이지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힘을 얻어 보충할 필요가 있다」
「희생이라면, 뭘 희생하는 거야」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관 없다. 머리카락도, 팔도, 영혼도, 혈연자도」
「혈연자……. 그렇게까지 해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가」
「대부분은, 원한이나 모략의 종류가 많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방해꾼을 없애고 싶다는 소원이다. 인간에 비한다면, 고양이는 아직 적은 편이지만」
──인간.
익숙해지지 않는 그 말은, 확실히 「두 지팡이」의 별칭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두 지팡이」는 이 세계를 창조해낸 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다.
리비카들은 모두, 서적을 통해 「두 지팡이」에 대해 배우고, 동경하고, 숭배해 왔다.
좋은 일을 하면, 죽은 후에는 「두 지팡이」로 환생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까지 은밀히 퍼질 정도다.
그러나, 서적 이외에는 그들을 알 방법이 없었다.
모습조차, 확실히 알지 못한다.
호기심이 돋구어져, 코노에는 라젤이 앉은 소파의 곁에 섰다.
「당신들은, 『두 지팡이』를 본 적이 있는 거야?」
라젤이 끄덕인다.
더욱더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어떤 느낌이었는지, 듣고 싶어」
「…………」
그러나, 라젤은 코노에의 기대를 받아넘기듯이 시선을 돌리고,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연다.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만큼, 좋은 게 아니다」
「……?」
의미를 알 수 없어 질문을 던지는 시선을 보냈지만, 대답은 없었다.
라젤이 소파에서 일어나, 가볍게 어깨를 움츠린다.
「아무래도 호출된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이런 식으로 사라질 수 있지」
말과 함께 돌연, 한 줄기의 강한 바람이 대합실을 빠져나갔다.
너무나 강한 기세에 얼굴을 돌리고 눈을 감는다.
코노에가 다음으로 얼굴을 들었을 때에는, 라젤의 모습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꼼짝 없이 그 자리에 붙박인다.
대체 뭐였지…… 그런 생각이 오도카니 남았다.
번쩍 정신이 들어 주위의 고양이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만약 이 광경을 보였다면, 수상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이도 고양이들은 각각의 이야기에 몰두해, 돌풍에는 놀란 것 같았지만, 이쪽을 주목하는 기색은 없다.
안도의 숨을 쉰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머리가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라젤은, 필시 「두 지팡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한 것이겠지.
말을 얼버무리고 자신을 따돌린 것이다.
베르그도 그렇지만, 악마들은 「두 지팡이」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리비카의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단편적인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서는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진실이 있거나 하는 것일까.
작게 숨을 내쉬고, 코노에는 다시금 주위로 시선을 돌린다.
라이나 아사토는 없는 것 같았다.
기분전환으로 밖으로 나갈까 하는 생각에, 문을 향해 걸어가려던 참에, 시야의 끄트머리에 무언가가 스쳤다.
시선을 돌리고, 흠칫 놀란다.
대합실의 창에서 갈색의 피부가…… 거꾸로 매달린 아사토의 상반신이 보이고 있었다.
「아사토……!?」
「잘 잤어?」
「……아아」
당황한 코노에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사토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다.
「축제를 보러 나갔던 거야?」
「아니, 조금 신경 쓰이는 장소가 있어서, 찾아보고 있었어」
「신경 쓰이는 장소?」
「아아」
거꾸로 매달린 채, 아사토가 끄덕인다.
「지금부터 갈 생각이야. 너도, 올래」
질문을 듣고 조금 생각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특별히 없었다.
「데려가 줘」
그렇게 대답하자, 아사토는 기쁜 듯이 귀를 쫑긋 세웠다.
「지붕 위로 와줘」
「지붕?」
「별로, 큰길을 곧장 나아가면 되는 거 아냐?」
코노에의 말에, 아사토는 눈썹을 찡그렸다.
「……큰길은 소란스러워」
과연.
그래서 지붕을 건너서 간다는 건가.
「알았어」
끄덕이자, 아사토는 거침없이 척척 요령 좋게 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고서, 코노에는 무의식적으로 어깨의 힘을 빼듯이 숨을 내쉬었다.
설마 지붕에서 나타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니 놀라는 일이 많다.
아사토가 신경 쓰인다는 장소는, 대체 어디를 말하는 걸까.
코노에는 여관을 나와서 옆길로 들어가, 뒤쪽에 심어져 있는 나무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붕을 따라 걸어서, 코노에와 아사토는 란센의 동쪽에 있는 숲으로 나왔다.
지붕에서 바라보는 큰길의 번화한 모습은 꽤 볼 만한 것이라, 이것은 이것대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란센의 동쪽 숲이라 한다면, 이전에 이야기를 들으러 갔던 주술사의 사당이 있을 것이다.
기억과 똑같이 외줄기 길을 걸어가며, 옆에 선 아사토를 아사토를 곁눈으로 살핀다.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코노에로서는 전혀 알 수 없기에, 마치 비밀의 장소로 인도되는 때와 같은 고양감이 있었다.
도중에 왼쪽의 나무숲 안으로 발을 들여넣고, 얼마 동안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돌연 눈앞이 훤히 트였다.
바람이 스쳐지나가고, 시야를 완전히 메우는 색채가 수런거린다.
흰색, 노란색, 빨간색, 주황색…… 코노에들을 맞이한 것은, 전면에 색이 어우러져 만발한 꽃밭이었다.
[ 꽃밭 ]
「…………」
설마 숲 속에 이런 장소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지라, 코노에는 꼬리가 찌르르 저려올 정도로 놀랐다.
꽃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굉장하네」
「나도, 처음 봤을 땐 놀랐어」
코노에의 반응에, 아사토가 희미하게 입술을 느슨히 푼다.
「키라에서 들은 거야?」
「아아. 카가리한테」
「카가리?」
「키라에서 단 한 마리뿐인 암컷이야. 카가리만은, 줄곧 나를 돌봐줬어」
그렇게 말하고, 아사토는 두 눈을 가늘게 좁히고 꽃밭을 바라보며, 그리운 듯이 중얼거렸다.
「카가리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아사토의 혼잣말에는 언제나의 꾸밈 없는 어눌한 울림이 없고, 대신에 자연스러운 온화함이 깃들어 있었다.
분명 그 상대는 아사토에게는 소중한 존재인 것이겠지.
「좋아하는 거야?」
별달리 무언가를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사토의 모습이 평상시와는 달라서, 이렇다 할 까닭 없이 물어본 것 뿐이다.
아사토는 조금 놀란 듯이 코노에를 보고, 생각에 잠기면서도 입을 열었다.
「좋아한다……, 는 거랑은, 조금 달라. 가족 같은 느낌이야. 카가리가 없었으면, 나는, 그 마을에서 죽임 당했을 거야. 아이였을 때에」
「…………」
생각지도 못한 말에, 코노에는 눈썹을 찡그린다.
확실히, 키라의 고양이들은 아사토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찾지 못한 채, 코노에는 말 없이 꽃밭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마을에서 죽임 당했을 것이다──그러나, 분명 거기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아사토 그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닌, 예를 들면 코노에의 몸에 나타난 저주나 미신 같은 것이라도, 어쨌든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마을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배제하려고 든다.
폐쇄된 마을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 겹쳐져, 희미한 분노에 뱃속에 응어리가 진다.
기분을 전환시키려, 코노에는 천천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눈앞에는 변함 없이 선명한 색채가 흔들리고 있다.
가련한 꽃잎을 달고 있는 꽃들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그 색이 스며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기 넘치고, 아름다웠다.
코노에가 복잡한 마음을 어찌 할지 몰라 곤란해하고 있자, 불현듯 아사토가 팔을 내밀어 왔다.
손바닥에 꽃잎이 올려져 있다.
「그건?」
「유품이야. 어머니의」
그런 건가 하고 납득 하려다가, 코노에의 뇌리에 의문이 스친다.
유품? 꽃잎이?
무심코 물끄러미 꽃잎을 바라본다.
그것은 지금 따온 것인가 싶을 정도로 신선한 것으로, 낡거나, 메마르거나 하는 낌새는 전혀 없었다.
「아사토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건 요 근래의 일이야?」
「아니」
「그럼,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던 꽃, 이라는 건가」
「아냐. 이 꽃잎이, 어머니의 유품이야」
──어떻게 된 일이지.
아무리 최근의 것이라 해도, 뜯어낸 꽃잎 한 장이 이 정도로 싱싱할 리는 없다.
「……시들지 않는 건가. 이 꽃잎」
선선히 아사토가 고개를 끄덕인다.
시들지 않는 꽃잎.
그런 이상한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확실히 마술 등을 사용하면 가능한 건지도 모르지만, 아사토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만져봐도 돼?」
아사토가 끄덕인다.
의식하고서 만지면, 기억을 읽을 수 있겠지.
그러나,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순수한 호기심에서다.
아무리 불가해한 것이라고는 해도, 유품이라고 하는 이상은 아사토와 모친의 소중한 추억이 가득 차 있을 터다.
그것을 일부러 엿보면서까지, 수수께끼를 해명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음을 억누른 상태로, 꽃잎을 살며시 손가락으로 집는다.
「……윽!?」
그러나, 손을 댄 순간, 안구의 안쪽 부근에서 불꽃이 튀는 감각이 들어, 코노에는 당황스러움에 손가락을 뗐다.
──뭐지, 지금 건.
멍하니 꽃잎을 바라본다.
「……? 무슨 일 있어?」
아사토가 의아한 듯한 얼굴로 눈을 깜박인다.
순간, 기억이 머릿속에서 번쩍였다.
……자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내용까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무언가가 보인 것이다.
「…………」
불길한 예감이 들어, 코노에는 눈썹을 찡그렸다.
문득, 농밀한 향기가 살포시 코끝을 스쳤다.
꽃밭에서 풍겨오는 것이 아니라──아사토의 손바닥에 놓인, 꽃잎으로부터다.
아찔 하고 시야가 흔들리는 것 같은, 고혹적인 향기가 느껴졌다.
「……슬슬, 돌아갈까」
아사토에게 그렇게 말을 걸었다.
왜인지, 이 이상 이곳에 있어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꽃잎을 품 안에 넣고, 아사토가 끄덕였다.
그리고서, 코노에와 아사토는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숲의 길을 다시금 나아갔다.
숲을 빠져나왔을 즈음에는, 하늘은 해질 녘을 지나 슬슬 밤이 되려는 색조로 물들어 있었다.
전혀 식을 기미가 없는 큰길의 번잡함을 헤치고, 여관으로 가는 길을 더듬어 간다.
때때로 아사토와 가볍게 말을 주고 받으며, 코노에는 곰곰히 어떤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아사토의 아버지에 대해서다.
코노에와 아사토는 처지가 굉장히 비슷했기에, 어쩌면 어머니와 똑같이,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의 유품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에도, 아사토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것이 특별히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신경이 쓰인다고 하면 쓰였다.
아니,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건지도 모른다.
코노에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데다 기억도 없지만, 어머니와는 동등한 위치에 있는 존재였다.
똑같이, 소중하다.
아사토는, 그렇지 않은 걸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이야기는 그리 간단하게 가볍게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작은 의문을 가슴 속으로 밀어넣으며, 코노에는 아사토와 함께 여관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걸터앉아 장비를 풀기 시작한다.
코노에가 얼굴을 들자, 창가의 침대에 앉아 있던 아사토와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지그시 이쪽을 보고 있다.
「왜 그래?」
「……아니」
아사토는 시선을 돌리고, 무언가 말하고 싶어하는 듯하면서도 입을 닫았다.
의아하게 여기며, 코노에는 멈추고 있던 손을 움직인다.
그러나, 잠시 그러고 있자, 아사토가 돌연 결심을 굳히기라도 한 것처럼 눈썹에 힘을 모으고 일어나, 코노에 쪽으로 다가왔다.
그 기세에, 코노에는 약간 당황한다.
아사토는 몹시도 진중한 얼굴로, 불쑥 무언가를 내밀어 왔다.
아사토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몇 송이의 꽃이었다.
엷은 향기가 코 끝을 스친다.
이 냄새는, 좀 전에 꽃밭에서 맡았던 것과 같다.
「……?」
「이거, 너한테 줄게」
긴장하고 있는 것인지, 평소보다도 조금 무뚝뚝한 목소리로 한 차례 더 꽃다발이 내밀어졌다.
「꽃, 예뻤으니까」
그 기세에 압도되는 모양으로, 코노에는 꽃다발을 받아든다. 아사토가 고개를 숙이고, 까만 꼬리를 조급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어째서 갑자기 꽃을 준 것인지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코노에는 머뭇거린다.
그러나…… 이유 따위 전혀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미친다.
꽃이 예쁘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아사토는 꽃을 꺾어 온 것이겠지.
필시 그 마음에 다른 뜻은 없다.
이 꽃들은 아사토가 솔직하게 느꼈던 감정 그 자체로, 그것을 코노에에게도 나눠주려 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왜인지 기뻐져서, 코노에는 작게 미소를 띄웠다.
「……고마워」
코노에의 대답을 듣고, 아사토는 안도한 듯이 숨을 내쉬고서, 자신의 침대로 돌아갔다.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는 없는데,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기뻤다.
아사토에게 받은 꽃다발을 코 끝에 대고 향기를 즐긴다.
이 중에 하나는 건조시켜서, 가지고 다니자는 생각이 들었다.
손 안에 있는 꽃들은 꽃밭에 피어있던 것들과 같은 종류일 것임에도, 왜인지 한층 더 아름다운 꽃인 것처럼 느껴졌다.
바르도가 차려준 저녁을 식당에서 가볍게 집어 먹은 후, 코노에와 아사토는 방에서 밤의 털다듬기를 하고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축제 구경차 이곳저곳 돌아다닌 것도 있어서,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어 있었다.
침대 위에 몸을 둥글게 말고 있으니, 진흙에 잠겨가는 듯한 잠기운에 끌려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음의 달이 휘황찬란히 캄캄한 밤을 비출 즈음.
깊게 잠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노에는 갑자기 눈이 떠졌다.
귀를 세우고, 주위의 소리와 기척을 탐색한다.
누군가 있다.
억누르고는 있지만, 희미한 살기가 전해져 온다.
아사토도 똑같이 눈을 뜬 모양으로, 가만히 웅크리며 귀로 기색을 살피고 있다.
아사토가 이쪽을 본다.
코노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온다.
살기가 강해진다.
그렇게 느낀 순간, 코노에와 아사토는 동시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옆에 놓아두었던 무기를 제각기 손에 들었다.
창 밖에 나타난 그림자가, 눈 깜박할 틈도 없이 탄환처럼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윽」
달빛에 빛나는 검이, 은색의 궤적을 그리며 아사토를 덮친다.
아사토가 재빨리 물러서서 검을 피했다.
사냥감을 처치하는 데 실패한 그림자는, 공중에서 그 몸을 비틀어 바닥에 착지한다.
그림자는, 회색 천을 두른 마른 몸의 고양이였다.
천의 자락으로부터 살짝 보이는 오른손에 단검이 쥐어져 있다.
틈입자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아사토가 벽에 세워져 있던 검을 집어든다.
희미한 달빛을 반사하는 짙은 감색의 눈동자가 고요하게 흔들린다.
그 순간, 아사토로부터 전해져오는 감정이 전부 차단되고, 느껴지는 것은 그저──살기 밖에는 없게 되었다.
코노에는 등골이 얼어붙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전투 시, 아사토는 마치 다른 고양이 같아진다.
침입해온 고양이와 대치하는 옆얼굴에서 동요나 공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장해물을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변화한다.
그것이 진심으로, 공포스러웠다.
아사토가 움직인다.
동시에, 마른 몸의 고양이도 움직였다.
모두가 잠들어 고요해진 밤의 어둠 속에, 검과 검이 튕기는 소리가 울린다.
연이어 검을 질러대고 있는 것은 마른 몸의 고양이 쪽이었다.
아사토는, 어떠냐 하면 공격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일단 틈을 타 자세를 고쳐잡은 아사토가, 다시 검을 쳐들고 반격에 들어간다.
이번에도 역시, 적극적으로 공격해나가는 것은 마른 몸의 고양이로, 아사토는 방어에 치중할 뿐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런 생각이 들어, 숨을 죽이고 전황을 지켜보는 동안에, 코노에는 점차로 상황이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마른 몸의 고양이는, 계속해서 아사토의 공격에 따라 생겨나는 틈을 미리 파악해, 노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의도를 간파한 아사토가, 잇달아 내질러지는 칼날을 아슬아슬한 선에서 방어로 전환해, 적의 공격을 튕겨내고 있는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아사토의 무거운 검 쪽이 유리하겠지만, 마른 몸의 고양이는, 단검 특유의 민첩함으로 아사토의 공격을 봉쇄하고 있다.
아사토는 상당히 강하다.
그것은, 코노에가 몸으로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마른 몸의 고양이의 기량에 그저 경악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다.
지원하지 않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 코노에는 검을 집으려 하다가 그만두었다. 섣부르게 자신이 끼어들어도, 상황은 악화될 뿐이겠지.
그렇다면, 하는 생각에 눈을 감는다.
천천히 호흡을 하고 가슴 안에서 선율이 솟아오르는 것을 기다려, 한가득 차오른 빛을 아사토를 향해 발산했다.
빛의 다발이 아사토의 몸을 휘감는다.
넘쳐 흐르는 힘을 감지한 것인지, 아사토가 검을 쥔 자세를 대담하게 바꾼다. 세 번째, 싸움이 시작된다.
마른 몸의 고양이는 다시금 날카롭게 아사토의 틈을 노리는 듯했지만, 찬아의 지지를 얻은 힘까지는 채 읽어내지 못한 것 같았다.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속도로 발을 내딛은 아사토의 검이, 마침내 목표를 포착한다.
둔탁하게 막힌 소리가 나고, 마른 몸의 고양이가 튕겨진 것처럼 뒤쪽으로 물러선다.
마른 몸의 고양이는, 손으로 어깨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검붉은 액체가, 달빛을 반사한다.
그러나, 마른 몸의 고양이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그저 거친 호흡에 가슴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여전히 투지를 띤 눈으로 아사토를 보고 있다.
찬아의 지원을 받은 아사토라면, 필시 다음의 일격으로 처치할 수 있겠지.
코노에의 예상대로, 아사토가 용서 없이 검을 쳐들었다.
「……안돼, 죽이지 마!」
순간적으로,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리치고 있었다.
그 바람에 노래도 멈추고 만다.
아사토가 검을 쳐든 자세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고, 당황한 듯이 뒤돌아보았다.
그 일순간에, 마른 몸의 고양이는 낮게 몸을 웅크리고 단숨에 도약하여, 창 밖으로 몸을 던졌다.
코노에는 당황스러움에 창 쪽으로 달려들어, 아래로 시선을 떨어트린다.
골목의 어둠을 새카만 그림자가 뒤흔드는 느낌이 들었지만, 곧바로 적의 기척은 사라졌다.
불온한 침입자가 사라진 뒤, 방 안에는 기묘하게 긴장이 감도는 침묵이 들어차 있었다.
「지금 그건……」
「저건……, ……키라의 고양이다」
「……에?」
깜작 놀라 돌아본다.
아사토는 칼집에 검을 넣고 벽에 기대어 세운 뒤,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 표정은 그늘에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을에서부터 줄곧, 추적하고 있어. 키라는, 규칙을 깨트린 고양이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
코노에는 할 말을 잃었다.
설마 란센 안까지 들어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지금은, 축제가 한창인 것이다.
평소의 몇 배나 되는 수의 고양이들이 모여 있다.
만에 하나 큰길 같은 곳에서 습격받거나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자, 소름이 끼친다.
「키라는 다툼을 싫어해, 주목 당하는 것을 싫어해. 그러니까, 눈에 띄는 장소에서 습격당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치만……」
코노에의 불안에 답을 주듯이 말하고, 아사토는 올곧은 시선을 코노에에게 보냈다.
「너한테는, 폐를 끼치게 돼. 미안해」
「……아냐」
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도 코노에가 놀란 것은, 키라의 터무니없는 체제 쪽이었다.
고작 고양이 한 마리, 규칙을 어겼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아넣고 싶은 것일까.
게다가 아사토는 마을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았으니, 없어지는 편이 키라로서도 수지가 맞는 것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본보기인 것인가.
마을의 고양이가 탈주를 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데리고 나오길 잘 했어」
「……?」
「나, 너를 그 마을에서 데리고 나오길 잘 한 거라고…… 지금, 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런 곳에 있으면, 틀림없이 산송장이 되어버릴 것이다.
「나는, 너를 따라가기로 정했어. 그러니까, 키라로는 돌아가지 않아. 절대로」
「아아」
「그치만, 만약 폐라고 여겨지면 언제든 얘기해줘. 너한테는,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런 생각 하지 마. 안 그럼, 내가 널 데리고 나온 의미가 없어지잖아」
「……그래」
거기서 아사토는 가까스로 안심한 듯이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코노에도 작게 숨을 내쉰다.
정말이지, 축제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기에 걸맞는 야단스러운 밤이다.
검을 두고, 침대로 올라간다.
아사토는 여전히 선 채로, 누우려는 기색이 없다.
「안 자?」
「잠이 안 와. 좀, 바깥 공기를 쐬고 올게」
「알았어」
같은 고향의 고양이가 목숨을 노리고 공격해온 것이다.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아사토가 조용히 방을 나서는 기척을 좇으며, 코노에는 모포에 몸을 감싸고 웅크렸다.
눈을 감는다.
방금 전 회색의 천을 두른 고양이와 맞붙었던 때의 광경이 멋대로 되살아났다.
그 고양이…… 확실히 의지가 있었던데다, 생기도 살기도 물론 느껴졌다.
그렇지만, 마치 모조품 같았다.
그런 부분만 따지고 보면, 리크스 수하의 추격자들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것은 또──아사토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다.
적을 눈앞에 둔 때의 비정하기까지 한 냉혹함…… 아니, 그것은 오히려 무감정의 부류인 것인지도 모른다.
죽이는 것을 뭐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느껴지는 눈을 하는 것이다.
유각의 계곡에서 처음 만났을 때에도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한데 묶어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눈을 보면 아무래도──아사토는 키라의 고양이라는 사실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부분도, 없애 가면 된다.
세계를 알고서, 다양한 것을 알고서.
불안을 지워내듯이, 코노에는 일부러 크게 천이 스치는 소리를 내고 몸을 뒤척였다.
그리고 그 밖에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는 동안에, 어느 사이엔가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다음날은 『암동』 마지막 날임에도 불구하고, 공교롭게도 하늘에는 옅은 구름이 덮여져 있었다.
그럼에도 축제의 매듭을 짓기 위해, 창에서 엿본 거리는 이전의 이틀 동안 이상으로 북적거리고, 들떠있는 듯했다.
어젯밤, 키라의 고양이와 맞붙었던 탓인지, 코노에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곤히 정신없이 자버렸다.
눈을 뜨니 아사토가 침대 위에서 털다듬기를 하고 있었다.
몸차림을 가다듬고서 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 1층의 대합실을 지나가니, 다른 손님 고양이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엿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탓에 듣고 싶지 않아도 귀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마물 목격담 같았다. 동틀 녘, 큰길에서 어슬렁대고 있었다고 하는.
그런 바보 같은, 하고 야유하는 목소리와, 이 눈으로 보았다고 필사적으로 주장하는 목소리가 뒤섞이고 있다.
마물…… 숲 속에서라면 몰라도, 도시 안에 나타난다는 따위 있을 법한 일일까.
카로우 같은 변방의 마을에서도, 마물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분명 잔뜩 술에 취한 고양이가 본 환상이거나, 누군가의 가장을 잘못 본 것이겠지 하고 코노에는 생각했다.
해질 무렵, 코노에, 라이, 아사토와 악마들은 식당에 모였다.
사전에 바르도에게 부탁해, 대절해놓았다.
「드디어 축제 3일째인가. 이제 슬슬 가장무도회가 시작할 쯤일까. 도서관은 개방됐으려나」
「놀러가는 게 아니니까 말야. 좀 진정해. 고양이가 비웃는다고」
코노에를 비롯한 고양이들은 테이블을 둘러싸고 의자에 앉고, 악마들은 제각각, 자기 좋을 대로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프라우드는 몸을 가볍게 공중에 띄우며, 아이처럼 침착성 없이 안절부절못하며, 식당 안에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왔다갔다 하고 있다.
베르그는 접시 따위의 식기 종류가 수납된 선반에 기대어 있고, 카르츠는 창가에, 라젤은 벽의 가장자리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아무리 가장무도회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 모습으로는 역시 눈에 띄겠지」
카르츠가 다소 불안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코노에는 식당에 모인 각자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본다.
코노에나 라이는 그렇다 쳐도, 악마 네 마리에 키라의 고양이가 한 마리.
확실히, 약간 불길한 조합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축제 마지막 날이다. 다른 고양이를 그렇게까지 신경 쓸 패거리가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데」
「……그러고 보니」
아사토가 얼굴을 들고, 무언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꼬리를 가볍게 세웠다.
「지붕 위에서 거리를 구경하고 있을 때, 신경 쓰이는 이야기가 들렸어. 도서관이 개방되는 건, 전체 가운데 극히 일부분인 것 같아」
「에?」
반사적으로, 아사토의 얼굴로 시선이 갔다.
「일부분이라니, 어떻게 된 거야」
「중요한 문헌이 있는 서고는 비공개라고, 나도 거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요컨대, 모든 서적을 열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러면, 정보수집의 폭이 한층 좁아진다.
자칫 잘못하면, 헛걸음만 치게 될지도 모른다.
눈앞에 다가와 있던 희망이 갑자기 차단된 기분에, 코노에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내맡겼다.
「……절망적이군」
「리크스에 관련된 서적이라면, 비공개 구역 쪽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네」
「쳐부수고 들어가면 되는 거 아냐. 비공개건 어쨌건, 상관 없이」
「소란을 피우는 건 좋지 않아. 란센에 있을 수 없게 돼」
모두, 똑같이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긴다.
식당은 축제 마지막 날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몹시 조용해졌다.
그런 침묵을 깨트리듯이 성큼성큼 걷는 발소리가 나고, 나무 쟁반에 그릇을 얹은 바르도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여어, 뭘 그리 시들어빠진 얼굴들을 하고 있는 거야. 하늘이 흐리다고 당신들까지 우울해질 건 없잖아. 과실수라도 마시라고」
말과는 정반대로 노곤한 듯한 어조로 말을 내뱉으며, 바르도는 음료수가 든 그릇을 테이블로 가져간다.
라이가 언짢은 듯이 얼굴을 돌렸다.
코노에는 그릇을 끌어당겨, 냄새를 맡아보았다.
희미하게 새콤달콤한 과일 냄새가 났다.
「근데 말야, 그렇네. 첫날이나 둘째 날이 흐린 때는 있었어도, 여지껏 마지막 날은 대체로 쾌청했는데 말야. 당신들도 참 운이 없네」
쟁반을 겨드랑이에 낀 바르도가, 창 밖을 보며 한숨을 쉰다.
「당신은 여기 온 지, 오래된 거야?」
「그렇네, 겨울 축제도 봄 축제도, 다섯 번 정도 봤네. 건 그렇고 오늘 무도회, 가는 거야?」
「그럴 생각인데」
대답하며, 슬쩍 주위로 시선을 돌린다.
프라우드가 좌우로 고개를 젓고, 베르그는 어깨를 움츠렸다.
「도서관은, 전부 다 공개되는 게 아닌 건가」
「아아. 역사책 같은 중요한 게 있는 쪽은 들어갈 수 없는 거 아니었나」
「그런가」
무심결에 낙담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음료수 그릇에 입을 대고, 혀 끝으로 과실수를 조금 퍼올린다.
산뜻하게 느껴질 정도의 달콤함이, 목구멍을 미끄러져 내려간다.
「뭐야? 도서관에 볼일이 있는 건가」
「조금」
거기서, 바르도는 마치 좋은 장난거리가 생각난 아이처럼 가볍게 눈썹을 들어올리고,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들어갈 방법, 없는 것도 아냐」
다음 순간.
식당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전부, 일시에 바르도 쪽을 향했다.
싸, 하고 기묘한 정적이 찾아온다.
「아?」
살기에 가까운 진지한 시선을 한꺼번에 받고, 바르도는 곤혹스러운 듯이 목덜미에 한쪽 손을 댔다.
「그 방법을 알고 싶어」
「뭘 그리 무섭게 보는 거야」
「사정이 있어. 괜찮다면, 가르쳐주지 않겠어」
「가르쳐준다 해도, 우선은 그 사정인지 하는 걸 듣지 않으면 말야」
「시간이 없어. 일이 끝나고 나서는, 안될까」
「그렇다곤 해도 말야……. 별로 당신들이랑 나랑, 사이가 가까운 것도 아니고」
「아----- 성가셔 죽겠네- 진짜-!!! 감전시켜버린다!!」
가장 먼저 인내심의 한계를 넘긴 듯한 베르그가, 테이블의 다리를 걷어차고 한쪽 팔을 앞쪽으로 쳐들었다.
순식간에, 가느다란 선형의 창백한 빛이 팔을 뒤덮는다.
주먹을 쥐자 파직파직 하는 소리가 났다.
「베르그!」
「하하하하하, 바보구나 너란 녀석은. 우리들, 악마 가장을 한 고양이라는 설정이었는데, 전부 쓸모없게 됐잖아」
「알까 보냐! 들통나는 게 위험하다면 거짓말 같은 거 처음부터 안 하면 되잖아!」
「…………, 거짓말?」
바르도가 있는 힘껏 눈썹을 찌푸리고, 베르그를 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당신들……」
──일을 내고 말았다.
악마 가장을 하고 있는 고양이가, 어떻게 하면 그런 기술을 내보일 수 있단 말인가.
얼버무리기도, 굉장히 힘들다.
즉각 쫓겨나는 것을 각오하고서 변명거리를 생각하고 있자. 바르도는 베르그를 노려보듯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들, 어디서 온 길거리 기예단 고양이들이지?」
순간, 휑하니 정적이 흘렀다.
공기가 빠져나가기라도 한 듯한 탈력감이 감돈다.
일종의 살기를 띠고 있던 시선들이 전부, 얼어붙었다.
이윽고 아사토가 고개를 숙이고, 불쑥 중얼거렸다.
「길거리 기예단 고양이……」
「……길거리 기예단이든 뭐든 상관 없잖아, 별로」
「어이어이, 고양이의 저질 재주랑 똑같이 보지 말라고!!」
「넌 너무 고양이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어」
「시끄럽네, 그치만 고양이라고!?」
「슬슬 도서관으로 가지 않으면, 시간이……」
「축제 마지막 날의 무도회다. 하룻밤 내내 하는 것 아닌가」
「근데, 길거리 기예단 고양이, 라니 또 새로운 표현이네」
「……어이」
바르도의 반응에 긴장이 풀린 것인지, 모두 저마다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두서없는 분위기에 신물이 난다.
아무래도 이제부터 하나의 목표를 이루려는 집단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제멋대로인 것은 고양이의 습성이다.
악마들도 프라이드가 높으니, 비슷한 것이겠지.
그러나,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런 생각에, 코노에는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쥔다.
어느 정도의 수의 문헌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시간이 허용되는 한, 찾아보고 싶다.
혼자로는 무리다.
여럿이 한꺼번에 떠들어대니, 다짜고짜로 평온치 못한 코노에의 신경을 거스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식당은 손톱 갈기 금지인 거야?」
「내 진짜 힘은 이 정도가 아니라고!!」
「고양이도 악마도, 바보는 역시 바보로군」
「너도 꽤나 편견이 심한 거 같네. 뭔가 바보의 정의라는 게 있는 거야?」
「정의고 뭐고 없어. 바보는 바보다.」
「우리들의 가장, 있을 거라 생각하나」
「글쎄. 우리들은 가장을 한 고양이, 라는 설정이 된 것 같지만」
「귀 대신에 뿔을, 이라는 건가」
「의자 다리 정도면, 괜찮은 거야……?」
「……시끄러워!!」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코노에는 양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치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꼬리의 털이 짜증으로 부풀어오른다. 테이블에는 손톱 자국이 남고 말았다.
전원이 움직임을 멈추고 코노에를 주목했다.
코노에는 당장이라도 이빨을 드러낼 듯한 기세로, 주변을 노려보았다.
「……한꺼번에 떠들지 마. 알겠어? 이러고 있을 여유는 없다고. ……바르도」
「옙」
「우리들은 이유가 있어서, 어떻게든 도서관의 서적을 조사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러니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 이유는 가르쳐줄게. 그리고, 당신이 알고 싶은 것도, 전부」
바르도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코노에를 바라보았지만, 잠시 후 숨을 내쉬고, 기가 질린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이런 이런. 뭔지 모르겠지만, 심각한 사정이 있는 것 같군. 알았어. 이유나 궁금한 건, 일단락되고 나서 알려주라고」
「아아」
「그럼, 그림으로 그려서 간략하게 설명해주지. 잘 그리진 못하지만 말야. 잠깐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 바르도는 느릿하게 꼬리를 흔들고서 식당에서 나갔다.
사라져가는 바르도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은 뒤, 코노에는 맥이 빠진 것처럼 털썩 의자에 앉았다.
오른쪽에 있는 아사토를 곁눈으로 보니, 갑자기 그릉그릉 하고 희미하게 목을 울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다.
「뭐야」
「……아냐」
베르그가 테이블에 바로 걸터앉아, 팔짱을 끼고 코웃음을 쳤다.
「쳇, 고양이 주제에」
「후후후. 어린 고양이인 줄 알았더니, 무지하게 까칠하구나. 너」
빙글 하고 한 바퀴를 돌고서, 프라우드가 즐거운 듯이 웃는다.
문득 시선을 느끼고, 코노에는 얼굴을 돌렸다.
좌측, 조금 떨어진 위치에 앉아있는 라이가, 한쪽 팔꿈치를 괴고 지그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왜 그러냐는 듯이 희미하게 고개를 기울이자, 라이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 고양이도 이빨을 드러내면 일단은 고양이, 란 건가」
「…………」
아무래도 바보 취급 당한 것 같지만, 이젠 화낼 마음도 들지 않는다.
「……이를 드러내고 맞서는 마음은 필요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혼잣말처럼 불쑥, 카르츠가 중얼거린다.
그 말이 굉장히 쓸쓸하게 느껴져서, 시선을 돌린다.
「비애를 관장하는 악마님은, 늘 흥미가 없으신 것 같네」
농을 던지는 베르그를 카르츠는 날카롭게 노려보았지만, 반론은 하지 않고 말 없이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깥에는 밤의 어둠이 찾아와 있었지만, 고양이들의 들뜬 모양은 클라이맥스에 달한 것 같았다.
다양한 악기의 음색과 환성, 노랫소리 같은 것이 부단히 들려온다.
코노에는 문득, 카르츠의 등을 바라보았다.
늘 홀로, 슬픈 듯해보인다.
「비애」를 관장하는 악마.
그러나, 베르그나 라젤, 프라우드와 조금 분위기가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생각이 지나친 것일까.
「좋아. 잠깐 모여봐」
종이와 펜을 든 바르도가 식당에 나타난다.
지체 없이 명랑한 기미의 간결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이런 게 있어서 말야, 그래서, 벽을 따라서 이렇게 나아가면……」
「…………」
「왜 그래?」
「……아니」
「그림, 못 그리네」
「…………」
솔직히, 바르도의 그림은 정말로 형편없어서,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질문을 거듭해, 머리에 깊이 새겼을 즈음에는 바르도의 심기가 나빠졌지만, 몸차림을 가다듬고, 코노에들은 마침내 여관을 떠났다.
줄을 지어 함께 걸어가는 것은 역시 눈에 띄리란 생각에, 코노에, 라이, 아사토 세 마리는 지상으로, 악마들은 공중으로 도서관을 향해 나갔다.
여관에 있을 때에 창으로 전해져왔던 떠들썩함도 충분히 대단했지만, 실제로 큰길로 나가보니, 그 성황은 열광적이라고 밖엔 말할 수가 없었다.
노점의 주인들은 축제 한정 상품을 팔아 치우기 위해 목소리를 드높이고, 음악단은 최후의 중대사라는 기세로 곡예단까지 끌어들여, 성대한 연주를 피로하고 있다.
큰길 위를 걸어가는 고양이들의 물결은, 대체로 똑바로 북쪽을 향하고 있다.
북쪽에는 도서관이 있다.
대부분의 고양이가 가장을 하고 있으니, 모두 무도회에 가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탓인지, 코노에도 조금 가슴이 두근거렸다.
「리크스는 지금, 뭘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좌우에서 걷고 있는 라이와 아사토가 시선을 보내온다.
우선, 축제 삼 일 동안은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자신의 몸에도, 지금으로서는 저주의 증표가 다시금 나타나는 듯한 일은 없다.
그래도, 리크스는 반드시 어딘가에 있다.
숨을 죽이고, 호시탐탐 다음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계략을 꾸미고 있다.
이유도 동기도, 알 수 없지만.
「몰라」
「……뭐야 그게. 건성이네」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일이야」
「되는 대로 될 수 밖에 없어. 보이지 않는 녀석에 대해 생각해도 의미가 없어」
거기서, 무심코 좌우의 얼굴을 교차로 보고 말았다.
──이 두 마리의 의견이 합치한 것은, 처음이 아닐까.
「뭐지」
「아니……, 너희들, 의외로 마음이 맞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 순간, 두 마리의 귀가 우스울 정도로 똑같은 타이밍에 숙여졌다.
「언젠가 죽일 대상이다」
「노예와 똑같이 취급되고 싶진 않군」
옅은 청색과 짙은 청색의 눈빛이 차가운 불꽃을 튀긴다.
내심 쓴웃음을 지으며, 코노에는 얼굴을 든다.
전방에 커다란 건물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도서관인가……」
무미건조한 상자──그것이, 첫인상이다.
도서관은, 말끔하게 남아 있던 「두 지팡이」의 유적을 사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천연의 바위 따위와는 달리, 매끈매끈하고 평평한 회색의 벽이 네모꼴로 잘린, 이상한 건물이다.
군데군데 썩어 일그러져 있거나, 부서져있기도 하지만, 달빛을 받아도 그 표면에는 단조로운 음영밖에는 생기지 않고, 밤하늘을 등지고 선 모양은 묘한 박력이 있었다.
「두 지팡이」 시대에는 이런 건물밖에 없었던 것 같지만, 저 벽은 손톱도 갈 수 없고, 통풍이 잘 되지 않을 듯하니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울 것 같고, 틀림없이 살기 불편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면에는 또 한 번 네모꼴로 입구가 잘려져 있어서, 고양이들이 그 안으로 점점 빨려들어간다.
입구 주변엔 축제의 장식이 설치되어 있었다.
고양이의들 물결을 타고, 코노에들도 도서관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들어가보고 놀란 것은, 천장의 높이였다.
그 밖에도 「두 지팡이」의 유적을 재이용한 건물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높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올려다보니, 아득한 상공에 가늘고 긴 막대와 갓 같은 것이 매달려 있다.
「『두 지팡이』는 저것에 동그란 유리 구체를 동여매서, 불 대신에 썼던 것 같군」
「헤에……」
유리는 시사에도 있지만, 상당한 귀중품이다.
「두 지팡이」의 유적에서 발굴하는 것 외에는 입수할 방법이 없다.
비슷한 성질의 돌도 있기는 있지만, 투명도가 낮은데다 깨지기 쉬워서, 쓸 만한 물건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불 대용이 되는 거지. 유리 안에 뭔가 넣는 거야?」
「그럴지도.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길잡이의 잎이라든지」
「그건 무리겠지」
정말이지 「두 지팡이」는 묘하다.
내장은 다소 손질이 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역시 원래부터 매끈매끈한 벽이었던 모양으로, 살풍경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선뜩한 공기가 희미하게 몸에 달라붙는다.
바깥보다도 안쪽이, 밤의 냉기가 늘어난 듯한 느낌이 든다.
생각했던 대로, 지내기에 불편할 것 같다.
입구에서 이어지는 큰 방의 바로 정면에는 커다란 쌍바라지문이 있고, 좌우에도 약간 작은 문이 하나씩 있다.
정면의 문은 활짝 열려 있어, 가장을 한 고양이들이 경쾌한 무도곡에 맞춰 춤을 추거나, 몇 마리가 한데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코노에들이 향해가는 곳은, 도서관으로 이어져 있는 오른쪽의 문이다.
라이와 아사토에게 눈길로 신호를 주고, 다가간다.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건물 주변은 죽 늘어선 나무로 둘러싸여있고, 똑바로 난 좁은 길이 안쪽으로 이어져 있다.
도서관은 무도회장과는 다른 건물로, 두 건물이 나란하게 세워져 있는 것 같다.
무언가 이야기 소리가 들린 듯한 느낌에 하늘을 올려보니, 악마들이 있었다.
무도회장의 평평한 지붕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
프라우드가 싱글벙글 하며 손을 흔들었다.
「저러고 있으면, 조금은 악마다워 보이는군」
라이가 질린 듯한 어조로 중얼거린다.
바르도의 이야기에 의하면, 도서관은 두 건물 가운데, 오른쪽이 개방되어 있고 왼쪽이 봉쇄되어 있다.
그리고 제각기, 건물 앞에 파수꾼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반 개방되고 있는 건물에 수납되어 있는 것은 소설이나 우화 따위의 종류로, 시사의 역사나 「두 지팡이」에 관한 문헌은 봉쇄된 건물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경우, 왼쪽 건물의 서적만을 조사하자고 이야기를 맞추었다.
「도서관은 어느쪽에도 뒷문이 있어. 먼 옛날 『두 지팡이』가 썼던 거겠지만 말야, 지금은 엄청 큰 자물쇠로 잠겨서 열리지 않게 돼있어. 그치만, 실은 왼쪽은 고장이 났지」
「고장이 나?」
「아아. 자물쇠로 잠겨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풀려 있어. 이전에, 꼬마 녀석들이 장난을 쳐서 말야. 그 소문은 알고 있었으니까, 다음 해 축제 때 장난삼아 만져봤더니, 열려버려서」
「누군가에게 알려주거나 하지는 않은 거야?」
「내가 고장냈다고 의심받으면 곤란하잖아」
「……최악이네」
「뭐어. 덕분에 당신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근데, 자물쇠를 푸는 방법 말인데, 힘으로만 끌어당기려 하면 안 돼. 매달려 있는 부분을 한 번 밀어넣은 다음에, 오른쪽으로 비틀면서 잡아당기라고. 그럼, 열리지」
「알았어」
「망 보는 고양이는 주의하라고. 중대사니까 말야」
무도회장에서부터 쭉 나있는 길을 잠시 동안 걷자, 눈앞에 새로운 두 개의 「상자」가 나타났다.
작다고 들었지만, 충분히 커다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도회장과 비교해 보았을 때 높이는 그대로인데, 가로폭만 좁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안에 얼마나 되는 책이 들어차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현기증이 난다.
높은 위치에 매달린 램프의 빛이,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며 흔들리고 있다.
주위에는 몇 마리 정도 구경하러 온 고양이의 모습이 보이고, 망을 보는 고양이가 문 옆에 한 마리씩 서 있었다.
역시 봉쇄된 쪽보다도, 개방된 건물 주변에 구경꾼이 많다.
생각했던 것 보다도 건물의 가로폭이 넓어서, 구경꾼들 틈에 섞여 오른쪽 건물 옆에서부터 간다면, 이럭저럭 뒤쪽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파수꾼의 눈치를 살피며, 그러면서도 태연한 동작으로 옆쪽으로 들어간다.
당연히 길은 없었고, 무성하게 우거진 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건물의 뒤쪽으로 나온다.
옅은 달빛이 비치는 가운데, 거무스름한 벽에 푹 꺼진 것처럼 문이 들어맞추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자, 손잡이 부분에는 크고 네모진 자물쇠가 설치되어 있었다.
본래는 튼튼했겠지만, 꽤나 낡아버린 상태다.
「다 낡아빠졌네. 어린 아이가 만지고 싶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냐」
「『두 지팡이』 시기의 것을 그대로 쓰고 있는 거겠지」
벽을 따라 시선을 던지자, 평행선상에 좌측 건물의 뒷문이 보였다.
「서두르자」
언제 누가 올지도 모른다.
파수꾼 고양이가 아니어도, 호기심에서나 산보를 하는 김에 뒤쪽으로 가볼까 하고 생각하는 고양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발빠르게 봉쇄된 건물의 뒤쪽으로 이동해, 문의 자물쇠에 손을 댔다.
푸는 방법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갑자기 긴장감이 증폭되어서, 코노에는 미미하게 귀를 눕혔다.
공연히 나무로 손톱을 갈고 싶어진다.
「매달려 있는 부분을 밀어넣고, 왼쪽으로 비틀면서 당긴다, 였다」
귓전에 라이의 냉정한 목소리가 지시해 온다.
머릿속에서 복창하고서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조용히 내쉰다.
코노에가 자물쇠에 손을 댄, 그때였다.
「……!」
도서관의 좌측, 코노에 일행이 보기에 오른쪽의 벽에서, 바스락바스락 하고 풀을 밟는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누군가 온다.
등 뒤에 있는 라이와 아사토를 돌아본다.
두 마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가 나는 쪽을 지그시 바라보며 낮게 자세를 취한다.
발소리는, 확실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죽여서는 안된다.
소동이 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모습을 들켜서도 안된다.
가능하다면, 소리내지 않고 기절시키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구경꾼이라면 몰라도, 파수꾼 고양이라면 완전히 무방비하지도 않을 테지.
그렇게 일이 잘 풀려갈 것인가.
풀숲에 몸을 낮추며, 코노에는 숨을 죽였다.
발소리가 벽의 모퉁이, 바로 옆까지 다가온다.
「……!?」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돌연, 창백한 빛과 소리가 작렬했다.
코노에는 순간적으로 털을 곤두세우고, 뒤쪽으로 재빨리 몸을 피했다.
옅은 어둠 속, 눈부심에 눈을 감는다.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희미하게 열린 시야로, 커다란 뒷모습이 비쳤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어깨 너머로 돌아본 얼굴이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띄웠다.
「……베르그!?」
「여어」
베르그는, 팔을 축 늘어트린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파수꾼 고양이다.
「죽인 거야?」
「큭, 바보 같은 소리 마! 가벼운 쇼크로 기절시킨 것 뿐이라고」
「너라면 죽일지도 모르지」
베르그의 등 뒤에서, 몹시 언짢은 듯이 미간을 찡그린 카르츠가 나타났다.
「내가 그런 야만인으로 보이는 거냐고, 아아?」
베르그가 카르츠 쪽으로 팔을 뻗자, 카르츠는 그 팔을 세게 뿌리쳤다.
「만지지 마」
「예이예이. 미움 받았네, 정말이지」
어깨를 움츠리며, 베르그는 재밌다는 듯이 히죽 하고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다른 두 마리는?」
「우리들한테 두 마리라는 말, 위화감 있는 걸……. 지금 오잖아」
그 말이 신호이기라도 한 것처럼, 프라우드와 라젤이 상공에서 내려왔다.
「후후. 중요한 비밀을 가르쳐 주지. 실은 나와 라젤은 말야, 근거리 공격은 별로 잘 하지 못 해. 베르그나 카르츠가 적임자지」
「베르그 혼자로 충분했을 텐데」
「만약을 위해서야」
프라우드가 싱긋 웃고서, 카르츠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이쪽의 파수꾼이 돌아오지 않는 걸 깨닫는다면, 또 다른 한 마리가 시끄럽게 구는 거 아닌가」
「괜찮다니까. 일어나면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고개 갸웃거리면서 원래 있던 위치로 돌아간다고」
그렇게 말하며, 베르그는 팔에 안고 있던 파수꾼을 모퉁이 저편으로 거리낌 없이 내팽개쳤다.
「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프라우드가 독촉해 와, 코노에는 조바심을 느끼면서도 이럭저럭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시야가 하얗게 물들고, 케케묵은 냄새가 일시에 넘쳐났다.
순간적으로 얼굴을 돌렸지만, 조금 들이마시고 말았다.
「콜록, 쿨럭, ……엄청나네」
「키라의 보물 창고 같아……」
「빨리 들어가」
코노에를 비롯한 고양이들 다음으로 악마들이 뒤를 잇고, 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