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으아...
이틀 사이에 여기저기에 많은 덧글이 달려서 깜짝 놀랐어요. 감사합니다. 자고 일어나서 답신하겠습니다! ㅠㅠ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바로 팀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코우자쿠와 헤어져, 나는 미즈키의 가게에 가보기로 했다.
응? 메일이다.
‘[새 메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제목 없음) / 코우자쿠’
‘최신형 올메이트가 드디어 / ***’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저번에 / 코우자쿠’
‘저녁밥 / 할머니’
“……스팸인가.”
제목은 ‘도와주세요.’ 발신인은 ‘납치된 공주.’
……납치된 공주?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그런 이름의 스팸메일이 왔던 것 같은데.
그렇다는 건, 이것도 똑같은 거겠지.
“넌, 삭제.”
응? 또 메일이다.
‘[새 메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제목 없음) / 코우자쿠’
‘최신형 올메이트가 드디어 / ***’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저번에 / 코우자쿠’
‘저녁밥 / 할머니’
“……하아?”
또 똑같은 게 왔다. 바로 메일을 지우고자 삭제 버튼에 손을 올린다.
‘[새 메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제목 없음) / 코우자쿠’
‘최신형 올메이트가 드디어 / ***’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하?”
‘[새 메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에? 잠…….”
뭔가 위험한 냄새가 난다고…….
건 그렇고 자꾸자꾸 온다. 뭐지 이거.
나는 당황해서 가방을 열고 렌을 기동시켰다.
‘아오바.’
“렌, 메일이 이상해. 뭐야 이거, 바이러스?”
‘잠깐 기다려줘. 조사해보겠다.’
그렇게 말하고 렌이 침묵한다.
그 사이에도 계속해서 메일 착신 음이 울려대서 초조해진다.
“렌, 아직이야~?”
‘해석 완료. 바이러스는 아니야. 만에 하나 바이러스였을 경우의 대책도 실행했어.’
“이 메일의 수신 자체를 멈추게 하는 건 무리인 거야?”
‘발신인의 메일 주소가 불분명해.’
“뭐야 그거, 진짜 어떻게 된 거야!”
‘만약을 위해서 내용을 확인해보는 편이 좋다.’
“괜찮은 거야……?”
그렇지만 그냥 내버려뒀다가는 영원히 메일 수신이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착신음을 듣는 것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알았다고! 보면 되잖아 보면!”
나는 반은 자포자기 기미로 메일의 내용을 표시시켰다.
……어라?
메일 수신이 뚝 그쳤다.
뭐였던 거지?
의아하게 여기며, 본문을 본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역시 스팸인가……?
또 코일이 울렸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메일이 아니다.
‘게임 송신이다.’
“게임 송신……,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시험 삼아 플레이했던 게임이 있었지. 그 속편인 것일까.
다운로드가 끝나자, 모니터에 타이틀 화면이 떠올랐다.
역시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타이틀이다.
“……응?”
플레이하려고 했지만, 스타트 버튼이 없다. 어떻게 시작하지?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화면이 바뀌고, 갑자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컨트롤에 대응되어있는 코일의 키를 눌러보아도 움직이지 않는다.
“렌, 왠지 이거 안 움직이는데.”
‘데모 플레이 버전인 게 아닐까?’
“데모 플레이? 그런 걸 보내서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고.”
몇 번이고 컨트롤 키를 눌러대고 있으니, 주인공이 슥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작할 수 있게 된 건가?
그런 줄 알았더니, 키에서 손을 떼도 주인공은 멋대로 걸어간다.
“……뭐야 이거?”
게임은 꽤나 어중간한 데서 끝이 났다. 게다가 정말로 데모 플레이 버전이었다.
이런 걸 송신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실수로 그랬나?
내용도 잘 파악이 되지 않았고…….
“완전히 의미 불명 게임이네.”
‘그래.’
“방금 전의 대량 메일도 역시 스팸이었던 것 같고. 완전 시간만 날렸어. 얼른 집에나 가자.”
나는 게임을 종료시키고,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해질녘을 지난 시간 탓일까, 거리에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하고 있다.
벌써 저녁을 먹을 시간인가. 그러고 보니 할머니, 집에 있는 걸까.
이 시간이면, 가끔 아는 분 댁에 가는 일도 있지.
할머니…….
“………….”
……대체 뭘까.
그 게임을 보았을 때부터 불쾌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그 게임, 웬 노파가 새카만 박쥐들에게 끌려가는 내용이었지.
………….
왜 그 타이밍에서 그런 이상한 게임이 송신되어온 거지?
우연인가?
………….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서, 나는 코일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연결되지 않는다.
집으로도 전화를 걸어본다.
받지 않는다.
한 번 더, 할머니의 코일로 전화를 해본다.
……안 받네.
그렇지만 할머니는 원래 코일을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메시지를 전할 때도 메일이 아니라 현관에 쪽지를 써두거나 할 정도다.
그러니까 지금은 마침 아는 분 댁에라도 간 것이겠지.
아마도, 그럴 거다.
분명…….
“……젠장!”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릿속에는 드라이주스 집합소의 참상이……, 여기저기 튀어있는 혈흔이 되살아난다.
그 탓에 조금 신경질적인 상태가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그 일과 할머니를 연결시키는 건 아무리 그래도 지나친 생각이다.
그렇지만…….
……안되겠다. 집으로 돌아가자.
집으로 돌아가서 할머니가 안전하다는 걸 알면 마음이 풀린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는 집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달려 대로를 빠져나갔다.
“하, ……하악, 하아.”
“할머니!”
허둥지둥 현관문을 열고 뛰어 들어간 집 안은 몹시도 캄캄했다.
불이 켜져 있지 않다. 사람의 기척도 없다.
할머니……, 없는 건가?
“할머니?”
한 번 더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다.
……위험하다.
피가 역류하는 듯한 감각이 들고, 차가움과 뜨거움이 한꺼번에 몸을 관통하고 지나간다.
드라이주스의 집합소에서 보았던, 벽의 혈흔. 새카만 박쥐에게 끌려가는 게임의 노파.
그것들이 교대로 머릿속에서 명멸한다.
어쩌지. 어떻게, 할머니까지…….
“할머니!!”
어쨌든 할머니를 찾아보자는 생각에, 나는 신발도 벗지 않고 복도로 올라갔다.
“윽!? 우왓!”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뭐지?
이런 데에 뭔가 커다란 물건이…….
……에.
……사람?
……복도에, 사람이 쓰러져있다.
설마…….
…………할머니?
그 사람은 엎드린 채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다. 안쪽에도 한 명 더 쓰러져있는 것 같다.
떨리는 호흡을 삼키고, 나는 조심조심 몸을 수그리고 그 사람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전체적으로 할머니보다도 몸이 크다. 분명, 남자다.
조금 안심한다. 그렇지만…….
그럼, 이 녀석들은 누구지?
시선을 모으니, 목에 타투 같은 것이 보였다.
이거……, 분명, 태그아트다.
그건 그렇고…….
“………….”
이 태그는…….
“…………, 모르핀.”
“!”
인기척이 들어 그쪽을 돌아본다.
어두운 복도를 등에 지고,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올려다봐야할 정도로 몸집이 커서, 그 위압감에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렇지만, 이 녀석이 할머니에게 무슨 짓을 한 게 아닐까 생각하니 두려움과 공포는 싹 날아갔다.
“……할머니는 어디 있지.”
“………….”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어둠속에서, 두 개의 차가운 눈이 지그시 나를 보고 있다.
“할머니는 어디 있냐고, ……윽!?”
재차 추궁하려 했을 때, 뒤에서 누군가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한 사람이 아니다. 몇 명이 합세해서 나를 억누르려 한다.
“윽, 이거 놔, 까불지 말라고, 이거 놔, ……윽! ……우, 욱.”
갑자기 배에 무거운 충격이 가해져, 숨이 멈췄다.
“………….”
“윽, ……욱.”
……마치 그림자 덩어리와도 같은 커다란 남자의 주먹이, 내 배에 박혀있었다.
몸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숨을 쉴 수 없다. 시야가 조금씩 어둠에 잠겨 들어간다.
제길……. 이런 데서…….
할머니…….
……할머니…….
“…………윽.”
……으. 머리, 아파…….
………….
나……. 정신을 잃었던 건가……?
눈을 떠도 희뿌연 시야에는 빛이 거의 들지 않아서, 뭐가 뭔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좀 전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비라도 내리는 건가?
뺨 아래가 차가운 것은 콘크리트 바닥이라 그런 것이겠지.
것보다, 여기, 어디지……?
일어나려고 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
팔이 삐걱거린다. 무언가에 묶여 있는 상태다.
나는 엎드린 상태에서 무리하게 얼굴을 들려고 하다가……, 움찔 하고 놀랐다.
눈앞에 신발의 부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신발에서 위로, 시선을 천천히 이동시켜간다.
“………….”
이 위압감…….
분명, 그 덩치 큰 남자다.
내 집에 멋대로 들어와, 갑자기 배에 주먹을 날려 온 그 녀석…….
남자는 나를 보면서 손에 들고 있던 담뱃대를 입으로 가져갔다.
내뿜어진 연기가 어둑한 공간 속으로 흩어져간다.
……그래. 기억났다.
이 녀석이 할머니를……!
“……할머니는 어디 있지.”
“………….”
“할머니한테 무슨 짓 했지. 대답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분노를 억누르고, 나는 낮은 소리로 신음하는 듯이 말을 전했다.
남자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이윽고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소파에서 일어났다.
뭘 하는 걸까 했더니, 내 앞으로 몸을 굽히고는 앞머리를 움켜쥐었다.
“! 아, 아파……!”
통각이 있는 머리카락에 엄청난 아픔이 스쳐, 얼굴을 찌푸린다.
“……큭.”
남자가 고통을 참는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 녀석의 눈……, 그곳에만 빛이 푹 꺼져 들어간 듯이 어둡다.
“자신이 처한 상황, 알고 있는 건가?”
남자가 앞머리를 움켜쥔 채로, 내 얼굴을 옆으로 돌린다.
그곳에는 지저분한 차림을 한 남자가 두 명, 머신 건 같은 것을 들고서 그것을 내게 겨냥한 채로 서 있었다.
“내가 손을 올리면, 너는 벌집이 되어서 즉시 이 세상과는 작별이다. 딱 5초 정도로 끝나지.
“………….”
내 침묵을 자기 말을 알아들은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남자가 앞머리에서 손을 뗀다.
“……앗!”
쿵 하는 소리가 나고, 턱이 땅바닥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아파…….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
것보다, 본격적으로 난처하게 됐군…….
“어이.”
남자가 옆에 있는 부하로 보이는 녀석을 불러서 가까이 오게 하고,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전했다. 부하가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절체절명의 핀치에,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회전시켰다.
우선, 손을 구속하고 있는 걸 풀지 않으면…….
양손을 마구잡이로 움직여본다. 아주 조금 느슨해진 듯한 느낌이 들지만, 아직 손을 뺄 수는 없다.
발치에 뭔가 떨어져있지 않은 건가? 발끝을 움직여본다.
신발의 끝부분이 땅바닥을 슥슥 스칠 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기랄……. 어떻게 좀 안 되는 건가…….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으니, 여러 명이 내는 신발소리가 지면의 진동으로 전해져왔다.
방으로 들어온 것은 머신 건을 들고 있는 녀석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남자들이었다.
“해라.”
덩치 큰 사내가 턱으로 나를 가리킨다.
뭐지……? 집단 린치라도 시작할 생각인가?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들을 보고, 나는 흠씬 두들겨 맞게 될 것을 각오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미 어찌할 방도가 없다.
참담한 몰골로 널브러진 나를 남자들이 에워싼다.
언제 맞게 되더라도 몸에 심한 타격이 가지 않도록, 나는 배에 힘을 모았다.
누군가가 내 겉옷을 잡는다.
다른 누군가가 팔과 다리를 붙들고…….
…………?
뭘 하는 거지?
나를 둘러싼 남자들을 보니, 모두 왜인지 야릇하게 흥분된 얼굴을 하고 있다.
숨결이 거친데다, 눈이 충혈 되어있다.
“단단히 붙잡아두라고.”
“………….”
……그 표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는 내장에까지 소름이 끼치는 듯한 한기를 느꼈다.
어이, 농담이지……!
“큭, 이거 놔!”
방금 전에 내가 몸부림을 쳐서 아주 조금 느슨해졌던 팔의 구속을 풀어내고자 버둥거린다. 조금씩, 서서히 팔이 움직이는 범위가 넓어진다.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 빠졌다!
“……윽, ……!”
모처럼 양팔이 자유로워졌음에도, 곧바로 다시 억눌려서 꼼짝 못하게 되었다.
“어이, 뭐 하는 거야. 꽉 붙잡아두라고.”
“이거, 놔!”
내게 엉겨 붙는 남자들 너머로, 그 덩치 큰 사내가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덩치 큰 사내는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하는 식으로 여유만만하게 이쪽을 보고 있다.
저 녀석…….
“헤헤,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밍크 씨의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거야.”
밍크……? 그게 저 덩치 큰 사내의 이름인가?
한 순간 밍크라는 남자 쪽으로 신경이 쏠렸지만, 이내 나를 둘러싼 남자들의 뜨뜻미지근한 숨이 뺨에 닿아 몸서리가 쳐진다.
“이거 놓으라고 했잖아! 기분 나쁘다고!”
“시끄러!”
“윽!”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이 내 뺨을 있는 힘껏 후려쳐, 찌릿한 아픔과 피 맛이 입안에 번진다.
“그렇다곤 해도 남자라는 점이 말이지. 뭐, 박기만 하면 되지만.”
울툭불툭한 손이 셔츠 너머로 이리저리 내 가슴을 매만진다.
“그치만 이 녀석, 살도 하얗고 머리도 기니까 말야. 눈 좀 흐릿하게 뜨면 여자로 보이는 거 아냐?”
“글쎄, 역시 남자는 남자고 말이지.”
……그래, 남자는 남자니까 나도 토 나올 정도로 싫다고!
농담이라 해도 전혀 웃기지 않는 대화에, 나는 입 안에 고인 피를 옆에 있는 남자에게 내뱉었다.
“큭, 이 녀석!”
“저리 비켜! 이 손 치우라고!!”
“크헉!”
얼굴에 침을 맞고 발끈한 남자의 배를 있는 힘을 다해서 발로 차자, 남자가 괴로운 듯이 신음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꼴좋다.
“……윽, 크흑…….”
받은 건 배로 돌려준다는 듯이 뺨을 호되게 얻어맞는다.
제기랄…….
“붙잡아둘 테니까 빨리 벗겨버려.”
“오-케이.”
“! 만지지 마, 그만둬……! 윽!”
난폭하게 벨트가 풀리고, 단추도 끌러진다.
옆쪽에서 뻗어진 다른 손이 윗도리를 붙잡고, 잡아 찢을 듯한 기세로 가슴까지 걷어 올린다.
“……윽, 이거 놔!”
“시끄럽네. 입 좀 막아.”
“웁, 우웁!”
입안에 천 조각이 밀어 넣어지고, 바싹 마른 점막에 천의 섬유조직이 들러붙어 토기가 치밀어 오른다.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개구리처럼 뒤집어진 소리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아-, 어쩌면 의외로 꽤 맛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어쩐지 슬슬 서기 시작했어.”
“빨리 하고 교대하라고.”
“다음은 나야.”
소름이 끼치는 말을 지껄여대며, 남자들 중 한 명이 내 바지와 속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웁, 우윽, ~~~으윽!”
발을 버둥거려보아도 양쪽 겨드랑이 아래로 팔이 들어와 단단히 결박한 상태에서는 이렇다 할 저항도 되지 않고, 하반신이 완전히 드러난다.
“우웁……!!“
“아-아, 역시 남자긴 남자네. 직접 보니까 조금 깨는 걸.”
“난 그렇지도 않을지도.”
“진짜냐? 것보다 너, 뒤로 해본 적 있는 거야?”
“여자도 간혹 뒤쪽을 더 좋아하는 녀석이 있잖아.”
“우욱, 웁, ……!!”
꺼슬꺼슬한 손이 허벅지에서 엉덩이까지를 쓸어 올리고, 그 틈새로 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이성을 잃어버릴 듯한 정도의 혐오감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섭다거나 열 받는다기보다도……, 여하튼 기분 나빠……!
왜 내가 이런 꼴을…….
난 그저, 할머니를 찾고 싶을 뿐인데…….
저 밍크인지 뭔지 하는 남자…….
저 녀석 탓이다……!
저 녀석은 지금도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내가 이 녀석들에게 능욕당하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하는 건가?
뭐 때문에.
왜.
어째서.
왜…….
어째서냐고……!!
“어쩐지 갑자기 얌전해졌는데.”
“포기한 거 아냐?”
“이 틈에 빨리 먹어버리라고.”
“내 앞에서, 없어져라.”
“어이, 이 녀석 괜찮은 건가?”
“……?”
“어이, ……어이, 에? 뭐야…….”
“사라져라, 전부 사라져라. 사라져라, 사라져라. ……사라져라.”
“뭐, 뭐야? 왠지…….”
“아아아…….”
“……사라져라.”
………….
……………….
응…….
……이 냄새, 뭐지…….
어디선가 맡아본 적이 있다. 향신료 가운데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은데…….
허브?
시나몬……?
멍하니 눈을 뜨자, 조금 떨어진 곳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것은……, 그 덩치 큰 사내다.
이름이 밍크라고 했나…….
저 녀석…….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렴풋이 빛을 발하는 촛불을 앞에 두고, 밍크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뭔가, 말하고 있다?
뭐라고 말하는지는 들리지 않는다.
뭐라고 말하는 걸까…….
저 녀석…….
뭘…….
………….
……………….
…………아야.
아야야야.
머리, 아파…….
“………….”
둔탁한 두통에 잠이 깨서 눈을 뜨자, 여기저기 금이 간 지저분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어디지? 난, 어떻게 된 거지…….
……그래. 강간당할 뻔해서…….
……그 뒤로, 결국 어떻게 된 거지? 위쪽도 아래쪽도 옷은 입고 있는데…….
게다가 분명, 이곳은 아까 있었던 곳과는 다른 방이다.
“아야야야…….”
약, 먹지 않으면……. 아, 가방.
가방은 어디 갔지? 렌도 거기에 들어있는데…….
“!”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몸이 욱신거리는 것도 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지. 밍크인가?
“……이제야 잠에서 깬 건가.”
녹이 슨 철문에서 얼굴을 내민 것은, 비쩍 마르고 등이 구부정한 남자였다.
남자는 나를 보고 히죽 웃고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누구지? 이 녀석…….
“기분은 어때? 꽤나 고생이었지, 당신. 느닷없이 레이프라니 말야.”
“밍크 씨 말은 아무도 거역할 수 없으니까 말이지. 거기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
남자는 혼자서 중얼중얼 지껄이면서 방으로 들어와서는, 내가 거칠게 노려보자 당황한 듯이 손을 저었다.
“지금은 밍크 씨 명령으로 온 게 아니니까, 그렇게 무서운 얼굴 하지 말라고. 응? ……아오바, 맞지? 당신.”
“! 왜 내 이름을.”
“역시. 아오바지? 정크숍 ‘평범’ 점원.”
“‘평범’을 알고 있는 건가.”
“아아. 예전에는 이것저것 사러 자주 거기에 갔었다고.”
내 반응을 보고, 남자가 기쁘다는 듯이 웃는다.
상황이 이런 탓인지, 가게의 이름이 몹시도 그리운 울림으로 귓가에 닿는다.
이 남자가 가게에 손님으로 왔었다는 것만으로도 친근감을 느끼고, 그대로 경계심을 풀게 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렇게 바로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어딘지 이상해, 이 녀석.
교무실에 불려온 학생처럼 머뭇머뭇 거리는데다, 거동이 수상하달까…….
“설마 이런 데서 당신을 만나게 되다니, 나 좀 감동했다고.”
“아, 아아. 그렇네.”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당신이 붙잡혀있다는 말을 듣고, 나 어-엄청 좋은 걸 생각해냈는데 말야.”
“여기서 나가게 해줄까 해서.”
“……정말이야?”
“물론이지. 응? 솔깃한 이야기지?”
“그치만……. 여기는 그 밍크라는 녀석이 모든 일을 처리하잖아?”
“괜찮아, 괜찮아. 어떻게든 된다니까.”
“어떻게든 된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어쩔 건데.”
“괜찮대도.”
“그러니까, 어떻게 할 거냐고.”
“……참 끈질기네.”
“괜찮다고 하잖아.”
“!”
내가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남자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총을 들이밀었다.
남자가 눈을 부릅뜨고, 입으로만 크게 웃는다.
“이봐, 괜찮다고. 여기서 꺼내 줄 테니까, 그러니까 말야, 당신 목소리를 좀 더 들려줘, 응?”
“목소리……?”
“그래, ‘평범’에 전화하면 대체로 늘 당신이 받잖아?”
“당신 목소리, 처음 들었을 때 완전히 반해버려서 말야. 그 뒤로 자주 전화했었다고, 당신 목소리를 들으려고.”
“………….”
가게에는 나를 목적으로……, 정확하게는 내 목소리를 목적으로 전화를 해오는 손님이 몇 명 있다.
이 녀석도 그 중 한 명이었다는 말인가.
“좀 더 말야, 날 위해서 이런저런 목소리를 들려줘. 듣고 싶단 말이야. 응?”
남자가 총구를 내게 겨눈 채로, 무릎으로 기어서 침대 위로 올라온다. 내가 내려가려 하자 총구를 바싹 들이댔다.
“움직이지 마! 도망치려 하면 쏘겠어.”
“……윽.”
“별로 상관없잖아, 닳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을 뿐이라고.”
하악하악 하고 거친 숨을 내쉬는 남자의 손이 내 뺨에 착 달라붙는다.
기분 나빠……!
것보다, 어째서 이런 개 같은 일들을 연속으로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고……!
아야야……. 머리가…….
제길……. 이렇게 된 거 확 발로 차버릴까……!
“!”
“……히익!”
방의 문이 기세 좋게 열리고, 뒤를 돌아 문 쪽을 본 남자가 새파랗게 질려서 총을 내팽개쳤다.
그곳에 서있는 것은……, 밍크였다.
“……뭘 하고 있나.”
“죄, 죄송합니다!!!”
밍크는 방 안으로 들어와, 정신없이 허둥대는 남자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히익!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너도 와라.”
“에? 윽, 아파앗……!!”
나는 밍크에게 팔을 붙잡혀, 침대에서 억지로 끌어내려졌다.
밍크는 남자와 나를 거세게 잡아끌고는 방에서 나갔다.
복도에 있는 다른 녀석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진다.
복도의 막다른 곳에 열려 있는 문을 빠져나가자, 내가 처음에 쓰러져있었던 방이 나왔다.
아까부터 있었던 녀석들과 우리들의 뒤를 따라서 온 녀석들로, 순식간에 방 안이 소란스러워진다.
“윽.”
밍크가 난폭하게 내 팔을 놓고, 목덜미를 잡아끌고 왔던 남자를 바닥에 내던졌다.
“윽! 미, 밍크씨,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낯빛이 창백해진 남자가 밍크를 올려다보고, 슬금슬금 엉덩이를 뒤로 뺀다.
[ 밍크! ]
양손잡이
키: 189cm
혈액형: O형
생일: 9월 26일
별자리: 천칭자리
올메이트: 새
팀: 스크래치
“‘제재’인가.”
“그렇겠지. 근데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저 녀석.”
“글쎄? 바보짓을 한 건 확실하겠지. 밍크 씨를 화나게 했으니까.”
“저 밖에서 끌려온 다른 한 녀석도 포함인 건가?”
“그런 거 아냐?”
주변에 모여든 녀석들이 바닥에 들러붙어 벌벌 떠는 남자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낮은 소리로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는다.
제재……?
그 단어에서 불길한 것밖에는 연상되지 않는다.
“히익!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밍크는 계속해서 사과하는 남자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그의 멱살을 잡았다.
“크악!”
뼈와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남자의 몸이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한 대 얻어맞은 남자가 움찔움찔 경련하며 흰 자위를 드러낸다.
남자의 입 주변에 자그마한 피 웅덩이가 생기고, 쌀알 같은 흰 덩어리가 두, 세 개 정도 그 위에 떠올라있었다.
이빨이 부러진 것이겠지.
단 한 방으로 기절시키다니……. 저 녀석, 대체 얼마나 힘이 센 거지.
눈앞의 광경에 아연실색하고 있으니, 주변의 시선이 어느 사이엔가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밍크도 한 대 날려서 기절시킨 남자가 아니라, 나를 보고 있다.
……어쩐지 엄청나게 흉흉한 아우라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녀석들 중에는 히죽히죽 웃고 있는 녀석도 있다.
설마 다음 차례가 나라고 하지는 않겠지.
남자한테 강간당할 뻔한 데다가 무식하게 센 힘으로 얻어맞는다니, 농담도 정도껏 하라고……!
“……윽.”
마지막 쐐기를 박기라도 하는 듯이 머리까지 심하게 아파온다.
젠장…….
가방이 없으니 약도 없는데다 렌도 없고, 상황이 이래선 도망쳐도 곧바로 붙잡힐 테고…….
……최악이다.
밍크가 한 발짝, 내 쪽으로 발을 내딛는다.
“허튼 수작 말라고……, 저리 가.”
내가 몸을 뒤로 빼자, 밍크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 거리를 좁혀왔다.
방금 전 기절한 남자와 피 웅덩이가 시야의 가장자리에 비친다.
저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 순간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
“너는 이쪽이다.”
각오했던 충격은 가해지지 않고, 밍크는 내 팔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통과했던 문 쪽으로 향한다.
“……저 녀석은 제재 면제? 진짜냐고.”
“하? 어째서지? 밖에서 끌고 오는 녀석은 대부분 밟아주는 게 목적이잖아?”
“이해가 안 돼……. 저런 비리비리한 녀석,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은데 말이지.”
방 안에 모여든 녀석들의 옆을 지나가려 하자 가시 박힌 말과 시선이 나를 향해 내던져진다.
내가 여기로 끌려왔을 때부터 모두가 틀림없이 나에게 ‘제재’가 가해질 거라고 생각했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주변 녀석들이 주고받는 말은 밍크의 귀에도 충분히 들렸을 텐데도, 밍크가 그에 반응하는 기색은 없다.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 거지……?
불길한 예감도 불안도 그 무엇 하나 해소되는 일 없이, 나는 밍크의 손에 이끌려 방에서 나왔다.
밍크의 발길이 향한 것은 내가 방금 전에 잠에서 깼던 방이었다.
“이거 놔, ……윽!”
방에 들어가자마자, 세차게 팔을 흔들어 밍크의 손을 뿌리친다.
밍크는 나에게서 떨어지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읽어낼 수 없는 눈이 나를 응시한다.
약간 기가 꺾일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그 눈을 마주 노려보았다.
이 남자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사람을 칠 수 있다. 그런 남자다.
그런 탓인지, 지극히 냉정하게 자신의 눈앞에 선 상대방을 관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인간인지……. 그런 것들을 꿰뚫어보고자 한다.
먹잇감과 눈을 마주한 맹수처럼.
그렇기에, 그것이 허세라 할지라도 절대 약점을 내보여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신의 목적은 뭐지. 왜 날 이곳으로 데려온 거야. 할머니는 어디 있지.”
“………….”
“방금 전도, 왜 그 녀석을 쳤지? 어차피 그 녀석도 당신이 나를 덮치도록 명령한 거잖아? 그런데 왜 그런 거지.”
“그 녀석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일은 없다. 이 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말해뒀어. 그것을 어긴 벌이다.”
“그런 명령 내린 일이 없다니……. 어느 쪽이든 내 입장에선 다를 게 없다고. 당신은 날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능욕당하는 걸 보고 싶은 건가?”
“……자각이 없는 게 제일 성가시군.”
“……하?”
“한 번 더 말하지만, 방금 한 방 먹였던 녀석은 내가 부추겨서 그런 게 아냐. 그 녀석이 자주적으로 저지른 일이다.”
“네 목소리에 홀려서 말이지.”
“……목소리?”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반문하려 하다가, 말을 삼킨다.
그 남자는 확실히 내 목소리에 집착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사실을 이 녀석이 알고 있지?
“그러나, 무엇이 이유가 되었건 결과적으로 그 녀석은 내 명령을 어겼다. 그걸 용서할 수는 없지. 그것이 이곳의 룰이니까 말이다.”
“………….”
어쩐지 상황이 점점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내 목소리가 어떻다든지……, 왜 당신이 그걸 알고 있지.”
“………….”
“대답하라고. 그리고 할머니를 어떻게 했는지도 대답해.”
“난 모른다. 내 목적은 처음부터 너였다.”
“하……?”
목적은 처음부터 나였다고? 그럼 할머니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 내 앞에서, 밍크는 코트의 가슴 포켓에서 무언가를 꺼내 가볍게 흔들었다.
“이건 뭐지.”
“!”
밍크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내가 복용하고 있는 두통약이었다.
그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손을 뻗자, 밍크는 가볍게 내 손을 피했다.
“이리 내놔!”
“질문에 대답해라.”
“단순한 두통약이라고.”
“시중에 나도는 물건이 아니군.”
“할머니가 약제라라서 직접……. 그 외엔 나도 몰라.”
“꼭 약물 중독자 같군.”
“하……?”
밍크는 약을 코트의 가슴 포켓에 다시 집어넣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복도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
잠시 후, 방에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저마다 무언가를 질질 끌고 들어와, 방의 정중앙에 털썩 놓아두고서 밖으로 나간다.
……그곳에 놓인 것은, 사람이다.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사람이, 엎드린 채로 나뒹굴고 있다.
잘 보니, 양쪽 다 희미하게 호흡을 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의 목, 잘 보라고.”
목……?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두 사람의 목 부근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
모르핀의 태그아트…….
게다가 이거……, 다른 태그를 시커멓게 칠하고 그 위에 새로 그린 건가?
가장자리에 다른 모양이 불거져 나와 있다.
근데, 이거……. 기분 탓으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면…….
“드라이주스…….”
나는 널브러져있는 둘 중의 한 명의 어깨를 일으켜, 그 얼굴을 보았다.
……아는 얼굴이다. 이 녀석, 드라이주스의 멤버다.
“우리들보다 먼저 네 집에 와있었던 게 그 녀석들이다. 대부분은 철수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남아있던 것은 그 둘이다.”
“이제 알았나. 네 할머니와 나는 관계없다.”
“그렇지만 어째서 할머니가…….”
“몰라. 단, 우리 멤버들에게 먼저 철수했던 녀석들의 자취를 쫓게끔 명령은 해뒀다.”
“정말이야? 그러면…….”
“그 전에 교환조건이다. 방금 말한 대로, 내 목적은 너다.”
“………….”
“네 녀석에 대해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리로 데려왔지만, 대강의 파악은 끝났다.”
“너는 내 말에 따라서 움직여라. 그 대신, 교환조건으로 우선 네 성가신 용건에 동행해주지.”
“내 용건……?”
“할머니를 찾아준다는 말이다.”
“!”
갑자기 그런 말을 들어도, 믿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 한 이야기도 대강 끼워맞춘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이런 지독한 꼴을 당하게 만들고서는, 믿으라고 하는 건 역시 무리다.
그렇지만, 정말로 끼워 맞춘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모르핀의……, 드라이주스의 일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태그아트를 시커멓게 칠하고서 그 위에 다시 태그를 그린다든지……, 확실히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까지 준비를 할 수는 없겠지.
“만약 나를 신용할 수 없다고 한다면 혼자서 할머니를 찾으면 된다. 좋을 대로 말이지.”
“………….”
분한 일이지만, 나 혼자로서는 할머니를 찾아낼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모르핀이 관련되어 있는 거라면, 완전히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찾는 것과도 같은 상태다.
“당신은 내가 목적이라고 했지만, 어쩔 생각인 거지.”
“그걸 지금 말할 필요는 없어. 조건을 받아들일지 아닐지만 빨리 정해라.”
[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따를 수는 없다 ] → 선택
[ 지금은 참는 수밖에는 없다 ]
이런 녀석이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
“……칫.”
내가 계속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발치를 바라보고 있자, 밍크가 내 멱살을 잡았다.
“네 녀석이 우물쭈물거리는 만큼 시간이 낭비된다고. 할머니가 어떻게 되든 좋은 건가.”
“……그건, ……싫어.”
“그렇다면 답은 하나일 텐데. 꾸물대지 말라고.”
“……윽.”
“바로 나간다. 준비해라.”
밍크가 나를 들이 밀치고, 두통약 케이스를 바닥에 내던졌다. 이리저리 나뒹구는 그것을 허둥지둥 줍는다.
방에서 나가는 밍크와 교대하는 것처럼, 문틈으로 컬러풀한 앵무새가 날아들어 왔다.
발로 무언가를 움켜쥐고서 질질 끌고 있다.
……아. 내 가방!
‘네 짐이다, 받아라.’
앵무새는 날개를 퍼덕이며 댄디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물론 진짜 새가 아니라 올메이트겠지.
이 앵무새, 어디서 봤었는데. 분명 밍크의 어깨 위에 앉아있었다…….
“너, 밍크의 올메이트야?”
‘그렇다.’
대답과 동시에 날개를 퍼덕이고, 앵무새는 문의 틈새를 지나 재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저게 밍크의…….
조금 의외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가방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가방의 지퍼가 열려있어서, 약간의 초조함을 느끼며 내용물을 확인한다.
안에는 파란 털 뭉치와 코일이 제대로 들어있었다.
코일과 렌, 어느 쪽도 이렇다 할 외부 손상은 없는 것 같다.
우선 코일을 꺼내서 팔에 장착한다.
화면에는 착신이 왔었던 것을 알리는 아이콘이 잔뜩 깜박이고 있었다.
“우와…….”
폭풍이라도 몰아친 듯이 착신이력이 가득 메워져있다. 대부분이 코우자쿠로부터다.
허둥지둥 통화 버튼을 누른다.
“아오바야!?”
“아아.”
“너……, 어디서 뭘 했던 거야.”
“미안.”
“연락이 전혀 안 돼서 걱정했다고.”
“조금 이래저래 일이 있어서……. 지금 돌아갈 거니까, 가서 자세하게 이야기할게.”
“알았어. 지금 ‘평범’에 있으니까 거기서 봐.”
“아아.”
코우자쿠의 목소리를 듣고서, 어딘가 먼 곳에 있었던 현실감이 한 순간에 제 자리로 돌아왔다.
할머니도 드라이주스도 없어지고, 나도 이런 곳에 끌려와서…….
터무니없는 일들의 연속이라 감각이 마비되어가고 있었지만, 이것은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가자.
나는 두통약을 입에 털어넣고, 가방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