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어 귀여워요 클리어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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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산을? ] → 선택
[ 마술사? ]
“우산 같은 걸 꺼내서 어쩌려는 거야?”
“네, 뭐가 말이죠?”
“아니, 그거 우산이지? 네가 들고 있는 거.”
“그러네요.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요?”
“지금 딱히, 비도 안 오고. 왜 그걸 꺼낸 거야?”
“비……. 아아! 확실히 비가 오는 날은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니까, 우산을 쓰면 젖지 않겠네요!”
“다음부터는 그렇게 해볼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
“그럼 이만.”
비도 오지 않는데 우산을 쓰고서, 가스마스크는 턴을 빙글 돌고는 사라져갔다.
“…………, ……뭐였지.”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가스마스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게로, 돌아가자.”
뭐랄까……, 너구리나 여우 같은 것에 홀린 듯한 기분이다.
난 아무것도 못 봤어. ……응, 못 봤어.
그런 걸로 해두고, 나는 가게로 돌아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범인군이 허둥지둥 거리고 있었다.
‘청소……, 청소……?’
……그랬다.
가스마스크 탓에 이쪽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가게 안은 꼬맹이들이 날뛴 탓에 엉망진창이고…….
“아-, 아…….”
꼬맹이들에 가스마스크에……. 오늘은 정말이지 재수가 없는 날이다.
갑작스럽게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끼고, 나는 가게 안 이곳저곳에 널브러진 상품들을 느릿느릿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날의 일을 마치고 밤이 되어, 나는 미즈키에게 배달할 물건을 들고 가게를 나왔다.
마침 미즈키의 가게에서 주문이 들어와 있었던지라, 집에 가는 길에 물건도 전해줄 겸 미즈키의 얼굴도 보자는 생각이었다.
‘평범’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가면, 미즈키의 가게 ‘블랙니들(Black Needle)’이 있다.
본디는 타투를 새기는 스튜디오지만, 대합실에 바가 있어서 사람을 만나는 곳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타투는 리브가 팀의 태그아트를 새기는 것 외에도 캐주얼한 패션으로서 유행하고 있어서, 미즈키의 가게도 꽤나 번성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미즈키도 타투이스트니까 부탁하면 문신을 새겨준다. 나는 흥미가 없으니까 안 하지만.
해가 저물기 시작한 거리를 걸어, ‘블랙니들’ 부근까지 왔다.
이 근방은 드라이주스의 영역이다. 멤버들의 모습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미즈키랑 같이 있으면 팀의 멤버들과도 안면을 트게 되어서, 영역을 지나가도 딱히 누가 시비를 거는 일은 없다.
“아아, 아오바 씨.”
“오, 오랜만.”
“미즈키 씨한테 볼일이 있으신가요?”
“우리 가게에 주문이 들어왔어서. 전해주러 왔어.”
“미즈키 씨, 지금 팀 집합소에 있어요.”
“그래. 그럼 그쪽으로 가볼게.”
집합소는 여기에서 그리 멀지 않다. 나는 그쪽을 향해 가기로 했다.
드라이주스의 집합소는 몇 개의 골목길에 걸쳐져 있는 대규모의 장소다. 사람 수가 많으니까 자연히 면적이 넓어졌다.
각각의 골목에서 멤버들이 떼를 지어 모이는 가운데, 미즈키가 있는 장소는 늘 같은 곳으로 정해져 있다.
태그아트가 커다랗게 그려진 계단 앞에서, 미즈키는 다른 멤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의 존재를 눈치 챈 미즈키가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한다.
“매번 감사합니다~. ‘평범’ 택배입니다~.”
“아아, 부탁했던 물건인가. 땡큐.”
봉투를 건네고 코일로 수령증명을 보낸다. 미즈키에게서 확인 완료 답신을 받으면 배달 종료다.
“일부러 여기까지 와주고, 고마워. 너희 가게는 마이너한 파츠도 취급하니까 의지가 된다고.”
“점장님께 말해둘게.”
“이 다음은 이제 집으로 가는 거야?”
“아아.”
“수고가 많아. 지금부터 가게로 돌아갈 거니까, 뭐라도 좀 마시고 가라고.”
“그럼, 사양 않고.”
미즈키가 벽에서 떨어져 걷기 시작한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주변의 무리들이 그 옆을 지나가면서 미즈키에게 인사를 한다.
그 중에는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이는 녀석도 있어서, 미즈키가 약간 쓴웃음을 지었다.
‘블랙니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작은 간판이 걸린 검은 건물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산뜻한 템포의 음악이 맞아준다.
대합실을 겸한 바는 외관에서 상상되는 것보다도 넓다.
조금 어둑한 조명 가운데, 몇 명이 소파에 편하게 앉고서 잡지를 읽거나 소곤소곤 잡담을 하고 있다.
좌측에 접수처, 우측에 바 형태로 되어있는 카운터, 안쪽에 있는 문을 열면 시술로 이어지는 구성이다.
미즈키가 접수처의 나이 어린 아르바이트생에게 말을 건다. 그 사이, 나는 가게 안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왠지 오늘, 손님이 적네?”
아르바이트생과의 이야기를 마친 미즈키에게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묻자, 미즈키의 표정에 씁쓸한 빛이 떠올랐다.
“그렇네…….”
“무슨 일이야?”
“아니, 있잖아. 어제 이야기했었잖아? ‘신령의 유괴.’”
“아아.”
“그 탓도 있는 것 같아, 손님이 줄어든 거.”
“에? 다들 겁이 나서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게 된 건가?”
“아직 그 정도로까지 영향이 미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다운되었달까, 분위기가 그런 느낌.”
“과연.”
“그 후로, 또 정보가 들어와서 말야. 진짜인지 거짓말인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미즈키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귀를 가까이 대보라고 재촉한다. 나는 미즈키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댔다.
“팀을 납치하고 있는 거, 역시 모르핀의 짓이라는 거야.”
“그럴 리 없잖아. 그러니까 모르핀은…….”
“모르핀을 봤다는 녀석도 나온 것 같아.”
“어차피 관심 받고 싶은 바보가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말이겠지. 그런 걸 믿는 거야?”
“그러니까 정말인지 거짓말인지는 모른다고 했잖아. 나도 남한테 들었을 뿐이고.”
“어쨌든 지금, 리브 팀은 습격을 받을 위험이 있어서 다들 살기가 장난이 아니라고. 뭐, 그래도.”
거기서 미즈키가 도전적으로 입 꼬리를 올린다.
“모르핀이네 어쩌네 해도 우리랑은 관계없지만 말야. 적도 아니고.”
“그렇겠지.”
미즈키의 말에 웃음으로 대답을 하며, 나는 어렴풋한 불안을 느꼈다.
최근 미즈키는 리브 일에 대해 조금 지나치게 열을 쏟고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쓰러지거나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참, 뭐 좀 마실래? 저쪽으로 가자고.”
미즈키와 함께 바 쪽으로 가려다가, 접수처 옆에 장식된 타투의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소중한 그림이라도 되는 듯 고이 액자에 넣어져있다.
“이거, 전에도 있었나?”
“아아 그거. 아니, 내가 존경하는 타투이스트에게 받은 거야. 멋있지.”
“신의 솜씨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가게 같은 걸 운영하지 않아서 말야. 아는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면 그 사람한테서 문신을 새길 수 없지.”
“단골손님이 아니면 사양한다는 건가.”
“맞아 맞아. 얼마 전에 우연히 이 가게로 와서, 그때 받은 거야. 뭐랄까 역시 심상치 않은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람이었지.”
미즈키는 정말로 기뻐보였다.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대단하다면 나도 한 번 보고 싶네.”
“넌 문신 안 새기잖아.”
“응.”
“그럼 안 돼.”
“에에~.”
“어떻게 해서든 만나고 싶으시다면 100만 엔이 되겠습니다.”
“비싸! 바가지잖아.”
“하하.”
서로 농담을 던지며 웃고 있으니, 코일의 착신음이 울렸다.
“……응?”
‘델리버리 웍스’로부터의 전화다.
“여보세요?”
“아, 다행이다 받았다! 아오바쨩!?”
“네.”
“나야 나! 요시에!”
“무슨 일이세요?”
“정말이지, 큰일! 큰일이야! 있지, 내 말을 침착하게 들어줘.”
“……네.”
“타에 씨가……!”
“! 할머니가!?”
할머니가 쓰러졌다.
요시에 씨의 연락을 받은 나는 미즈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델리버리 웍스’를 향해 곧장 뛰쳐나갔다.
할머니는 처방한 약을 건네주러 환자 분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쓰러져서, 마침 그 근처에 있었던 ‘델리버리 웍스’로 운반되었던 것 같다.
어쨌든……. 전속력으로 달렸다.
심장이 부서질 듯이 소리를 내고 숨이 차오른다.
온몸이 극도로 긴장되어서, 손끝과 발끝이 따끔따끔거린다.
할머니는 전에도 과로로 쓰러진 적이 있다.
원인은……, 나다. 내가 걱정만 끼쳤던 탓이다.
그때, 진심으로 후회했다.
만약 할머니가 없어지면 어떨지 생각하니,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무서웠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다. 이제, 두 번 다시.
“……큭, ……, ……!”
빨리, 빨리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할머니……!
“정말이지 너무 호들갑을 떨어댄다니까, 너희들은.”
……입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델리버리 웍스’로 뛰어 들어가서 보니, 할머니는 상체를 뒤로 크게 젖히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할머니는 확실히 쓰러졌었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었다……, 즉 요통이었다.
연락을 주었던 요시에 씨는 할머니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 같다.
요시에 씨는 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미안해~’라고 말하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사과해왔다.
솔직히, 맥이 빠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큰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할머니가 자기 힘으로 걷는 것은 무리여서 내가 할머니를 업은 채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정말이지 너무 호들갑을 떨어댄다니까 너희들은.”
“………….”
할머니가 내 등에서 방금 전과 똑같은 말을 투덜거린다.
나는 진동이 할머니에게 미치지 않도록 천천히 집을 향해서 걸었다.
“어쩔 수 없잖아. 다들 걱정이 되는 거야, 할머니가. 나도 그래.”
“나는 아직 팔팔하다고.”
“그건 잘 알고 있지만 말야.”
뒤에서는 렌이 타박타박 따라오고 있다.
“좀 움직이지 못하게 된 걸 가지고 바로 할머니 죽네! 이런 취급이나 해대고.”
“아야얏. 차지 말라니까. 어쨌든 내일은 병원에 가는 거야? 응?”
할머니가 고령자의 체면도 없이 날뛰어서, 떨어질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것보다……. 할머니, 가볍네.
원래도 몸이 커다란 이미지는 아니지만, 이렇게 작았었나?
게다가 나, 할머니를 업는 건 처음이다.
“옛날에는 할머니가 자주 날 업어줬었지.”
“응?”
“아니, 옛날 일. 어쩐지 기억이 나서.”
“……흥. 너는 노상 혼자서 어디로 나가버렸으니까.”
“혼자서?”
“그래. 좀만 눈을 떼면 눈 깜짝할 새에 없어져버리고.”
“그랬나. 전혀 기억 안 나.”
“외로웠던 거야.”
“외로워? 왜?”
“네가 혼자서 밖으로 나돌게 된 건, 네 부모가 종적을 감추고 나서부터였으니까.”
“아아…….”
그런가.
흐릿한 윤곽으로밖에는 기억나지 않는, 내 부모님.
그렇지만, 할머니가 날 업어주던 때의 일은 기억하고 있다.
따뜻하고 할머니의 냄새가 나서, 안심되었다.
“뭐 너도 아직 어렸으니까 말이지, 무리도 아니지. 그게 지금은 바보 같이 크기만 커져가지고는.”
“그건 뭐. 이 나이가 돼서도 어릴 때랑 변함이 없으면 역시 그렇잖아.”
“누가 그런 얘기를 하고 있대!”
“할머니, 예전처럼 나 업을 수 있어? 팔팔할 때 도전해 볼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날 죽일 셈이냐?”
“농담이라니까.”
“흥.”
“……할머니.”
“뭐야.”
“가볍네.”
“시끄럽대도!”
“아얏!”
할머니가 있는 힘껏 내 머리를 때렸다.
그렇지만 왜인지 기쁜 마음이 솟아올라서, 나는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가 무사해서 정말로 다행이다.
이런 식으로 내게 주먹을 행사하는 소란스러움이 없어질 걸 생각하면 쓸쓸하다.
등으로 전해지는 할머니의 온도를 느끼며, 나는 어두워져가는 길을 조용히 걸어갔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할머니를 업고서 근처의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오늘 아르바이트는 만약을 위해 쉬자는 생각에, 하가 씨에게 연락을 했다.
병원이라고는 해도 이곳은 구 주민구다. 설비는 낡아빠지고 볼품없는데다, 의사의 수도 적어서 언제나 혼잡을 이루고 있다.
여기저기서 기계가 덜거덕거리고 빈말로도 위생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병원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다.
할머니에 대해서도 전부터 잘 알고 있어서, 연락을 하니 바로 오라는 말을 해줬다.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다며 할머니는 언제나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했지만, 오늘은 얌전히 진찰을 받았다.
어쩌면 아픈 것을 오기로 참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허리는 그렇게 심하게 안 좋은 건 아니니 자택 요양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해서, 나는 진찰을 끝낸 할머니를 업고 집으로 돌아갔다.
할머니를 이부자리에 눕히고 한숨 돌리고 있으니, 이제 나는 잠만 자면 되니까 냉큼 아르바이트하러 가! 라는 호통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여전히 걱정은 들었지만, 할머니는 자기가 한 번 말을 꺼내면 남의 말은 듣지 않는다.
하가 씨에게 전화로 상담하니, 일단 지금 와서 일찍 돌아가면 된다고 말해주셔서, 나는 가게에 가기로 했다.
‘[새 메일] (제목 없음) / 코우자쿠’
‘최신형 올메이트가 드디어 / ***’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저번에 / 코우자쿠’
‘저녁밥 / 할머니’
‘잘 지내? / 미즈키’
어쩐지 진정되지 않는 마음으로 가게를 보고 있으니, 메일이 왔다.
코우자쿠로부터다.
-
코우자쿠 / (제목 없음)
미즈키랑 만났는데, 왠지 낌새가 이상했다고. 말을 걸어도 멍하니 있고 반응이 돌아오질 않아. 만약 고민이라도 있는 거라면 나보다 아오바 쪽이 더 물어보기 쉬울 것 같아.
시간이 있으면 연락이라도 좀 해줘.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러 갈게.
-
“미즈키…….”
코우자쿠가 이런 메일을 보낼 정도니, 무척이나 낌새가 이상했던 것이겠지.
그 녀석, 역시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카운터에서 나와 화장실 쪽으로 가서, 미즈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미즈키?”
“……아오바인가. 무슨 일이야?”
다행이다. 전화를 받았다. 일단 한숨 놓았다.
“아, 아니, 딱히 일이 있는 건 아닌데, 왠지 이야기가 하고 싶어져서.”
“뭐야, 어제도 만났는데. 이상한 녀석이네.”
“응~, 아니. 잘 있나 싶어서.”
“물론이지, 왜?”
“어제 만났을 때, 좀 기운이 없었던 것 같아서.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걱정이 돼서 전화해준 거야? 고마워. 그치만 괜찮아.”
“정말로?”
“아아.”
“그래. 그럼 다음에 또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그래. 그럼 이만.”
“………….”
통화를 마치고, 나는 카운터로 돌아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미즈키, 역시 목소리에 패기가 없었지.
괜찮다고 말하니 그렇게 깊게는 물어보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쓰러진 것도 있고, 괜히 더 걱정이 쌓인다.
단순한 기우로 끝나기를…….
미즈키와 할머니가 신경 쓰여서 일에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는 채로, 나는 오후의 시간을 보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도착해, 나는 조금 안절부절못하면서 현관문을 열고자 했다.
할머니, 얌전히 자고 있는 걸까.
……그러나, 도중에 손을 멈췄다.
뭔가 이상하다.
“어라?”
열쇠를 꽂는 감촉이 뭔가 다르다. ……혹시.
“……열렸다.”
현관문에는 자물쇠가 잠겨져있지 않았다.
나, 또 문을 안 잠그고 외출하고 만 건가…….
“너무 위험하잖아, 안에 할머니가 있는데……. 무슨 일이 있으면 어쩔 거냐고.”
이 부근은 지역 주민들 간의 유대가 강하지만, 치안이 나빠서 도둑이 드는 일도 꽤 많다.
스스로의 건망증에 진심으로 혐오를 느끼며,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 귀를 기울였다.
……딱히 사람이 있는 기척은 없는 것 같다.
신발을 벗고 복도로 올라가, 곧바로 할머니의 방으로 간다.
조용히 문을 열고 안을 살펴보니, 이불에 파묻힌 듯이 잠을 자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다…….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나는 복도로 돌아갔다.
“……응?”
계단을 올라가려 하다가, 발을 멈춘다.
뭔가……, 묘한 느낌이 든다.
집안은 할머니가 자고 있어 조용한데다, 딱히 이상한 점은 없다.
기분 탓인가?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계단을 올라가 내 방의 문을 연다.
……거기서 나는 방금 전의 위화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뭐, 야, 이거…….”
자랑은 아니지만, 내 방은 결코 깨끗하지 않다.
책이나 잡지가 바닥에 대충 쌓여있고, 정리하기 귀찮아서 꺼낸 채로 내버려둔 것도 잔뜩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어지른 기억은 없다.
방 안은 폭풍이 몰아쳤던 것처럼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말 그대로 발을 디딜 틈이 없다. 방 안에 있는 물건이 전부 밖으로 나와 있고, 테이블도 뒤집혀져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한층 더 강한 위화감을 내뿜는 것이 있었다.
……컴퓨터의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낯선 사람이 뒷모습이 보인다. 그것도 보란 듯이 당당하게.
이 상황에서 떠오르는 것은, 그것밖엔 없다.
방금 전에 그에 대해 걱정을 했던, 바로 그것이다.
“이 도둑-!”
“남의 방에서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컴퓨터 앞의 인영은, 지금 막 내 존재를 눈치 챈 것처럼 느릿느릿 고개를 들었다.
전혀 모르는, 본 적 없는 얼굴이다. 나랑 비슷한 또래일까.
“어서 오라고.”
“하……!? 누구야, 너. 왜 내 방에…….”
“근데 말야.”
그 녀석은 분노에 떠는 나를 무시하고, 중지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어이! 맘대로 만지지 마!”
“이 안의 데이터, 뭔지 전혀 모르겠는데. 어떻게 돼있는 거야 이거.”
“여기에 들어있는 올메이트 개조 프로그램도 복잡하고. 너 대체 뭐지.”
“알까보냐! 됐으니까 나가라고!”
“………….”
남자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는 일어선다.
“너 말야, 날 모르는 거야?”
“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몰라. 사람을 잘못 본 거겠지.”
“………….”
남자가 내 눈을 응시하고, 천천히 입을 연다.
“금번에는, 찾아와주셔서 지극히 영광.”
“그러면, 즐거운 게임을 시작하지.”
“……!?”
……이 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뭐지? 어디서지. 굉장히 불쾌한 느낌이…….
“이래도 몰라?”
남자가 바지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치켜든다.
토끼의 머리만 있는 자그마한……, 키홀더다.
“……!”
이 녀석…….
내 반응에 만족한 것인지, 남자는 키홀더를 그 근처에 휙 던지고 나를 보았다.
“연출로서는 꽤나 재밌었겠지. 수신인이 잘못된 택배라든지.”
“! 너, 그때 무차별 살인 라임을 걸었던 녀석인가. 게다가 택배라니…….”
“우리 가게에 주문을 넣은 것도 너냐.”
“아아. 이래저래 조사해보니 네가 그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네가 찾아와줬으면 해서 말이지.”
“딱히 돈을 안 낸 것도 아니고, 그쪽 가게로서는 특별히 손해를 보지도 않았겠지.”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전전긍긍하던 하가 씨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것보다 너 말야. 전에도 그랬지만……, 나랑 라임에서 싸웠을 때, 뭘 한 거지.”
“무슨 말이야.”
“시치미 떼지 마. 어떻게 나한테 이겼는지 묻고 있다.”
“……이겼다고?”
그 무차별 살인 라임 때, 나는 이 녀석에게 이겼던 건가? 기억에 없다…….
“묵비권 행사인가, 말하라고.”
“아냐. ……기억이 안 나.”
“하?”
“그때 라임에서, 마지막엔 결국 어떻게 된 건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
남자는 미간을 약간 좁히고, 곧바로 정색을 했다.
“그런 식으로, 도망치는군.”
“……윽!”
갑자기 멱살을 붙잡혀 벽으로 밀쳐진다.
이 녀석, 보기에 비해서 힘이 세다……!
“그렇다면 무력행사다. 너한테는 이러는 편이 먹힐 것 같고 말이지.”
“……윽, 이거 놔.”
“그런데 말야, 정말로 기억 못하는 건가.”
“나는 모른다고!”
“………….”
남자가 무언가 캐내려는 듯이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너, 한 번 더 라임에서 나랑 싸워라.”
“하? 라임 같은 거, 모른다니까, ……윽.”
더욱더 강한 힘으로 벽에 밀어붙여진다.
“또 그 소린가?”
“그렇다면 네 소중한 것을 부수겠다.”
“!”
“네가 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정확하게 말야.”
남자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컴퓨터 쪽을 본다.
이 녀석이 말하고 있는 건, 분명……, 렌이다.
협박이 아니다. 내가 응하지 않으면 이 녀석은 정말로 그럴 작정이다.
그런 위태로운 공기가 피부를 찌르는 듯이 전해져온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 녀석과 라임에서 싸울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
게다가, 이 녀석의 영문을 알 수 없는 행패에 쓸쓸 뚜껑이 열릴 것만 같았다.
[ 반격한다 ]
[ 애송이가! ] → 선택
……근데, 이런 건 그저 애송이가 날뛰는 것뿐이잖아!
“……너 말야, 남의 말도 좀 들어! 나는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게 아니라고!”
상대의 눈을 똑똑히 쳐다보고, 진지하게 내 뜻을 전달하고자 한다.
“너한테 이겼는지 어쨌는지 진짜로 기억도 안 나고, 라임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고. 그러니까…….”
그러나, 내가 말을 하는 도중에 남자가 난폭하게 나를 넘어뜨렸다.
“아파…….”
정면으로 바닥에 부딪친 등에 아픔이 번지는 것을 참고 있자, 남자가 내 배 위로 휙 올라탔다.
“어이! 뭐 하는 거야!”
“시끄러워.”
남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내 팔을 붙잡고, 갑자기 비틀어댔다.
“아야야야!”
“팔 하나 정도 없어도 라임은 할 수 있어.”
“윽!”
이 녀석……!
“이 팔을 부러뜨리고 싶지 않다면 싸워라.”
비틀려서 심하게 휘어진 팔의 관절이 삐걱거린다.
라임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렌이 해코지를 당하는 것도 곤란하다.
어떻게 하면 좋냐고……!
[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
[ 지붕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 → 선택
어디선가 뭔가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아, 파-……!”
비틀린 팔에 강한 통증이 스쳐, 이를 악문다.
“……?”
“마스터에게서 떨어져주세요.”
“!”
갑자기 누군가 다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흠칫 놀란다.
“너…….”
“안녕하세요, 마스터.”
어느 틈에 들어온 것인지, 남자의 옆에는 ‘평범’ 앞에서 만났던 그 가스마스크가 서 있었다.
남자가 고슴도치처럼 전신에 경계 태세를 띠고 일어나, 가스마스크와 거리를 둔다.
해방된 나는 욱신대는 팔을 문지르고, 몸을 일으켰다.
“너……, 언제 들어왔지.”
“좀 전에, 저쪽의 창문으로 들어왔습니다. 마스터, 이쪽 분은 친구신가요?”
“아니……, ……응? 창문으로?”
그 말을 듣고 베란다를 보니…….
……창문이 열려 있다.
그것도 잠금쇠 부분이 동그랗게 뚫려있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창문이 닫혀있어서 열었습니다.”
“그런 걸 물어보는 게 아니고 말야…….”
“마스터?”
“네. 마스터는 저의 마스터입니다.”
“……장난 치냐.”
남자가 험악한 표정으로 가스마스크와 나를 차례로 노려본다.
그런 눈으로 노려봐도, 나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렇다기보다는 이제, 모든 게 다 너무 엉망진창이라…….
“어쨌든 마스터를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제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
“하찮군.”
……이 녀석, 혹시 꽤 진심으로 화를 내는 건가?
남자가 가스마스크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 뒷모습에서 살기가 물씬 피어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이…….”
……말리지 않으면.
이 이상, 방이 엉망진창이 되면 내가 곤란하다고……!
“아오바!”
“에!?”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코우자쿠가 뛰어 들어왔다.
“괜찮아!?”
“코우자쿠……!? 네가 왜.”
“미즈키 일로 얘기하러 간다고 메일 보냈잖아. 그래서 왔더니 가스마스크 쓴 이상한 게 베란다에서 들어가는 게 보였다고.”
“그래서 허둥지둥 와봤더니…….”
“아무래도 가스마스크한테는 동료가 한 명 더 있는 것 같군.”
코우자쿠가 가스마스크와 남자를 응시한다.
“내 쪽에선 너희들 쪽이 훼방꾼인데.”
“이 녀석이랑 한 패가 아닌 건가.”
“동류 취급하지 말라고.”
“아직 친구라는 카테고리에는 서로 소속되어 있지 않네요.”
“어쨌든 너희들, 지금 당장 나가. 안 그럼 내쫓는다.”
“어떻게 해서.”
“그거야 힘으로 하는 수밖에 없지.”
“해 보시지? 할 수 있다면 말야.”
남자가 도발적으로 입 꼬리를 올린다.
“뭔가 무식하게 큰 걸 등에 지고 있는데, 그런 게 필요할 정도로 약한 건가? 너.”
“………….”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알기 쉬운 도발에 넘어가거나 하진 않겠지. 설마…….
조마조마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내 앞에, 코우자쿠가 양손을 모으고 관절에서 뚜둑뚜둑 소리를 냈다.
아아……, 망했다.
“그 주둥이……, 지금 당장 놀리지 못하게 만들어주겠어!”
“어이 잠깐!”
말이 끝나자마자 코우자쿠는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바싹 거리를 좁혀, 남자의 몸을 붙잡으려 한다.
“……윽.”
남자가 재빠르게 피하고, 허리를 낮추고서 코우자쿠에게 한 방 먹이려 한다.
남자의 주먹이 뺨을 강타하기 일보직전에 코우자쿠가 피한다.
……아니, 냉정하게 관전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잖아!
“그만하라니까! 여기 내 방이야!”
“둘 다 강하네요.”
“태평하게 그런 말을 할 상황이냐고!”
남자는 그렇다고 해도 코우자쿠 녀석, 평소엔 느긋한 주제에 이상한 데에 순식간에 꼭지가 도는 스위치가 있는 것 좀 어떻게 하라고……!
게다가 한 번 스위치가 켜지면 주변에서 하는 말 따위 전혀 귀에 안 들어오게 돼버리고…….
두 사람이 야단스럽게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놓여있는 잡지와 쓰레기통이 걷어 채이거나 밟혀서 뭉개지거나 한다.
아아아…….
다른 물건은 이제 됐으니까, 어쨌든 컴퓨터 주변에만은 가지 말아줘…….
“너희들 진짜 적당히 좀……!”
두 사람이 날뛰는 소리의 틈으로, 문 저편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우악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럽다고 너희들! 작작 좀 해!!!”
난폭하게 문이 열리고, 할머니의 호통이 온 방 안에 울려퍼졌다.
코우자쿠도 남자도 가스마스크도 나도 움직임을 멈추고, 병아리처럼 할머니 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너희들……!”
할머니는 쪼글쪼글한 피부 위로 엄청나게 굵은 혈관을 드러내고, 분노에 불타오르는 눈으로 우리들을 둘러보았다.
“전원 아래로 내려와! 지금 당장!”
“………….”
“………….”
“아야…….”
할머니의 말대로, 1층으로 내려간 우리들은 말없이 식탁에 모여있었다.
머리가 아프다. ……할머니한테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원이.
우리들은 싸움질을 하면 잘잘못의 여부를 떠나서 다 응징을 받아야한다며 용서 없이 두들겨 맞고, 저마다 머리에 커다란 혹을 달았다.
불법침입남까지 할머니의 주먹에 맞는 것을 보았을 때는 반격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당황했지만, 남자는 언짢은 심기를 그대로 내보이면서도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째서지? 상대방이 약한 노인이라 그런 건가? 아니 안 약한가…….
애당초 무엇 때문에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 할머니가 물어보아서, 나는 또 현관문 잠그는 걸 잊어버린 것을 자백했다.
그랬더니 혹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현관문 잠그는 거 잊지 말자…….
“설마 저까지 공범 취급을 받을 줄은.”
그러고 보니 이 가스마스크, 분명 전에 클리어라고 이름을 댔던 것 같다.
불법침입남이랑 똑같이 수상쩍은 존재다…….
“아오바, 잠깐 이리 와!”
“예 예,”
부엌에 있는 할머니에게 호출당해, 나는 머리의 혹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부터 무언가를 튀기는 듯한 소리와 달콤한 냄새가 감돌고 있다.
할머니의 옆을 들여다보니, 갓 튀긴 도넛이 키친타월을 깐 바구니에 가득 담겨있었다.
역시 이걸 만들었던 건가.
“가지고 가라. 음료수는 전부 차면 되겠지.”
“네 네. 아, 맞다 할머니.”
“뭐야.”
“벌써 일어나도 괜찮은 거야? 허리는?”
“보면 알잖냐. 쓸데없는 거 묻지 말고 얼른 가라고.”
할머니에게 내쫓겨, 나는 도넛이 든 바구니를 테이블로 날랐다. 차를 따른 찻잔도 나르고서는 자리로 돌아온다.
잠시 후 할머니도 자리에 앉았다.
“인간은, 배가 부르면 자연히 화도 가라앉는 법이다. 냉큼 먹어치워라.”
“역시 만들고 있었던 건 이건가. 냄새로 알았다고. 타에 씨의 도넛은 격이 다르다니까.”
“됐으니까 빨리 먹어라.”
할머니의 도넛 맛을 잘 알고 있는 코우자쿠가 재빨리 바구니로 손을 뻗는다.
남자와 가스마스크는 뭔가 신기한 물건이라도 보는 듯이 도넛을 바라보고 있다.
“먹을 거면 먹고, 안 먹을 거면 안 먹는다고 확실히 하라고.”
가스마스크는 마스크를 벗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데다, 남자는 애당초 먹을 것 같지가 않다.
라고 생각했더니, 의외로 남자가 도넛을 손에 들었다. 부루퉁한 얼굴로 우물우물 먹기 시작한다.
“달아.”
“그야 그렇겠지. 원래 이런 음식이야.”
“그렇다고 해도 달아.”
“무리해서 안 먹어도 된다고!”
“………….”
할머니가 언짢은 듯이 콧방귀를 뀐다. 남자는 계속해서 도넛을 베어 먹는다.
이 녀석……,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읽을 수가 없다니까.
시선을 가스마스크……, 클리어에게로 옮기니, 이쪽은 전혀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안 먹어? 맛있어, 할머니가 만든 도넛.”
“먹을 거예요.”
“얼른 먹지?”
“네, 먹겠습니다.”
클리어는 꿈쩍 않고 가만히 있다.
마스크를 벗지 않으면 먹을 수 없겠지만, 벗는 걸까나?
약간 기대하면서, 나는 내 차를 조금 마시고는 다시 클리어를 보았다.
“……어라?”
바구니에서 클리어 쪽의 도넛 하나가 사라졌다.
게다가……, 마스크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너……, 혹시, 지금 먹은 거야?”
“네 먹었습니다. 맛있습니다.”
“…………, 신기의 경지잖아.”
가스마스크를 쓴 채로 먹은 건가? 어떻게?
……뭐, 그 부분은 파고들지 말자.
어쨌든 나도 도넛을 손에 들고 베어 먹는다.
할머니의 도넛은 식어도 맛있지만, 갓 만들어진 것은 따끈따끈하게 은은한 단맛이 서서히 번진다.
내가 도넛을 맛보고 있으니, 먼저 다 먹은 코우자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로 나가기 직전에 이쪽을 돌아보고, 나를 향해서 이리 와보라고 손짓을 한다.
나?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니, 코우자쿠가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나는 먹다 만 도넛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코우자쿠와 복도로 나왔다.
“……후우. 왠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일이 돼버렸네.”
거실의 기묘한 공간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복도로 나와서 조금 마음이 편해진 것인지, 코우자쿠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그렇네…….”
“그건 그렇고, 미즈키 말이다. 연락 해봤어? 아니면 만나러 갔다든가.”
“아아. 전화했어.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역시 조금 기운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래…….”
“미즈키한테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아니 말야, 미즈키가 이상하다고 너한테 메일 보냈었잖아. 그때, 우리 팀의 녀석들이랑 드라이주스의 녀석들 사이에 좀 실랑이가 일었었어.”
“그 자리에 미즈키도 있었는데 말이지. 그 녀석, 평소 같으면 그런 경우에는 반드시 중재에 들어가잖아?”
“그런데, 왠지 멍하니 넋이 빠진 느낌으로, 싸움도 보기만 할 뿐 말리려고 하질 않는 거야. 결국, 내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지만.”
“아무래도 미즈키의 낌새가 이상한 것 같아서, 괜찮냐고 말을 걸었지. 그랬더니, 내버려두라고! 라면서 나를 노려보는 거야.”
“미즈키가?”
“아아. 그 녀석 답지 않달까,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얼굴을 했었지.”
“………….”
“아오바, 짐작 가는 거 없는 거야? 그 녀석이 최근 고민했던 거라든지.”
“……요전에, 미즈키의 가게에 갔을 때 ‘신령의 유괴’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아아. 그 리브 팀이 통째로 사라진다는 그건가.”
“그걸 꽤나 신경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
“확실히 최근에 ‘신령의 유괴’를 당한 팀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모르핀! 모르핀!’
“!”
“아!?”
갑자기 새된 목소리가 울려서, 나도 코우자쿠도 깜짝 놀란다.
등 부근에서 무언가가 꿈지럭대는 느낌이 들더니, 그것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거……, 그 녀석의!”
바닥에 떨어진 것은, 그 토끼 머리의 남자가 허리에 차고 있었던 큐브다. 내 자켓 후드에 들어가 있었던 건가……!
큐브가 통통 튀어서 거실 쪽으로 돌아간다.
“저 녀석……!”
“……윽.”
코우자쿠가 큐브의 뒤를 쫓아 거실로 돌아간다.
“어이 망할 애송이. 지금 내 얘기를 엿들었지.”
“딱히 누가 들으면 곤란해질 만한 내용도 아니었잖아.”
“너…….”
“‘신령의 유괴’인지 뭔지. 리브 따위 요즘에는 유행하지도 않고, 어쨌든 들끓을 만한 이벤트를 벌여두자는 식인 거 아닌가?”
“뭐라고?”
코우자쿠의 목소리가 명백하게 노기를 띤다.
“어이, 농담으로라도 그딴 소리 지껄이는 거 아냐. 실제로 돌아오지 않는 녀석들도 있다고.”
“몰라, 그런 거. 겁나면 리브 때려치우면 될 뿐인 이야기 아닌가.”
“이 녀석…….”
코우자쿠가 분노를 드러내고, 남자도 한층 더 냉랭하게 코우자쿠를 마주본다.
“너, 이름은 뭐냐.”
“먼저 이름을 대는 게 예의잖아.”
“너 같은 녀석한테 예의고 나발이고 있을까보냐.”
“그럼 묻지 마.”
“잠깐 기다려. 너무 험악하게 굴지 말라니까들. 이쪽은 코우자쿠. 너는?”
“……노이즈.”
[ 노이즈! ]
오른손잡이
키: 179cm
혈액형: B형
생일: 6월 13일
별자리: 쌍둥이자리
올메이트: 모조토끼
팀: 러프래빗(Ruff Rabbit)
“너 같은 녀석은 주는 것 없이 맘에 안 든다고.”
“별로 네 마음에 들려는 생각 따위 없어.”
“이 녀석…….”
“거기까지 해라.”
그때까지 말없이 있었던 할머니가 두 사람의 신경전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싸울 거면 밖에 나가서 하고 와라. 시끄러워서 살 수가 있어야지.”
“……미안해, 타에 씨.”
“………….”
미안한 듯이 사과를 하는 코우자쿠를 한 번 흘낏 보고서, 노이즈가 말없이 일어선다.
“어이, 어디 가는 거야.”
“돌아간다.”
노이즈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거실에서 나가버렸다.
“너희들도 먹을 거 다 먹었으면 돌아가라.”
할머니의 목소리에 클리어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했습니다. 그럼 마스터, 안녕히 계세요.”
“아, 잠깐 기다려.”
거실에서 나가는 클리어의 뒤를 쫓아 복도로 나온다.
“네, 왜 그러시죠?”
“또 만날지 어쩔지는 모른다고 해도……. 만약 다음에 또 올 일이 있으면, 그때는 평범하게 들어오라고.”
“평범이라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거나 베란다로 들어오거나 이런 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게 현관으로 들어오라는 얘기야.”
“하늘이랑 베란다는 왜 안 되는 겁니까?”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것보다 깜짝 놀란다고. 심장에 안 좋아.”
“심장에 안 좋다……. 과연. 알겠습니다.”
클리어가 예! 하고 손을 올리고, 그 손을 자신의 가슴에 댄다.
“여기에 있는 하트를 말하시는 거지요.”
“아아……, 뭐 그렇지만…….”
“마스터와 함께 있으면 좋은 공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이만.”
“오우…….”
한 번 더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고, 클리어는 현관에서 나갔다.
“뭐야, 저 가스마스크…….”
거실에서 복도로 나온 코우자쿠가 혼잣말을 내뱉는다.
“나도 잘 모르겠어…….”
“아는 사이 아니었어?”
“아는 사이, 랄까……. 아니라고 생각해. 역시 잘 모르겠어.”
“어이어이, 말을 확실하게 해달라고.”
코우자쿠가 맥 빠진 얼굴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겸연쩍은 듯이 자신의 목덜미를 한쪽 손으로 문질렀다.
“좀 전엔 미안했어. 그만 열이 올라버려서. 타에 씨한테도 꼭 전해줘.”
“아까도 사과했고, 괜찮을 거야.”
“그리고 네 방에서 날뛴 것도……, 미안했어.”
“아아, 뭐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는 거고. 네가 그렇게까지 화내는 건 오랜만에 봤지만.”
“나, 참을 수가 없다고. 저런 꺾일 줄 모르는 듯한 녀석.”
코우자쿠는 질린다는 듯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것보다 지금 생각난 건데……. 그 녀석, 라임 팀에 들어가 있을 거야.”
“라임 팀?”
“아아. 분명 ‘러프래빗’이라는 이름이었어. 전에 우리 멤버가 그쪽 팀 멤버랑 싸움이 붙어서, 그때 저 녀석을 봤던 기억이 있어.”
“저 녀석도 내가 리브 하고 있는 걸 알고 있는 것 같고, 아마 그럴 거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짜증이 솟구치는군.”
“라임에도 팀 같은 게 있었네. 몰랐어.”
“팀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인 것 같지만 말야. 그렇다곤 해도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 공모하고 있을 뿐인 것 같다고. 정말 따분한 녀석들이지.”
리브는 팀의 동료는 곧 가족과 같다는 식의 생각을 지니고 있는 녀석들이 많으니, 라임은 그와는 다르다는 이야기겠지.
무미건조하고 효율적. 노이즈를 보고 있으면 그게 어떤 건지 잘 알 수 있다.
“뭐 저 녀석은 그렇다 쳐도, 미즈키는 나도 서포트할 수 있게끔 해둘게. 너도 뭘 좀 알게 되면 연락해줘.”
“아아.”
“그럼 이만.”
코우자쿠는 한쪽 손을 올리고, 현관에서 나갔다.
“……후우.”
코우자쿠의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하고서, 나는 약간 탈력감이 느껴지는 상태로 내 방으로 돌아갔다.
한꺼번에 이런저런 일이 일어난 탓인지, 피곤했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라임을 걸어왔던 게 노이즈였다는 것, 코우자쿠에게 말할 기회를 놓쳤네…….
그렇지만, 그 이야기를 하면 코우자쿠는 그때야말로 노이즈에게 싸움을 걸겠지.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내 방의 문을 열고는……. 탈력감이 증가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방 안이 엉망진창이다…….
“제길…….”
왠지 요즘 들어 이런 일들 뿐이다. 뻔뻔스러운 노이즈의 태도를 떠올리고는 화가 치민다.
일단 바닥에 떨어져있는 것들만 대충 정리를 하고, 침대에 드러눕는다.
나머지는 내일이다, 내일. 오늘은 이미 지쳤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응?
어디에선가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눈을 뜨니, 베란다 창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그 가스마스크…….
……그치만, 뭐 이젠 아무래도 좋다. 일어나고 싶지 않다.
결국, 나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