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클리어 루트의 첫 번역 포스트인데 적어도 클리어가 나오는 데까지는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힘을 내 보았습니다 ^q^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 뿌리친다 ] → 선택
[ 주저한다 ]
그만하라고……!
“꺅!”
“아……!”
……위험하다. 일을 치고 말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말았다.
“아파~아…….”
“잠깐 뭐야 당신! 실례잖아!”
“……미안.”
“여자한테 손찌검하고서 미안하단 말로 끝날 것 같아!?”
“이봐 이봐 이봐, 잠깐 기다리라니까. 내가 대신 사과할 테니까. 미안해, 응? 이게 내 마음이야.”
코우자쿠가 여자들 사이에 끼어들어, 내가 손을 뿌리친 여자의 손을 양손으로 꼭 움켜쥐었다.
“그치만……!”
“실은 이 녀석, 별로 여자랑 사귀어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아가씨들처럼 귀여운 여자아이가 곁으로 다가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패닉 상태가 된다고?”
코우자쿠가 동의를 구하는 듯이 나를 본다. 그 눈은 말을 맞추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 일은 나를 보아서 용서해주지 않겠어?”
“뭐, 그런 거라면…….”
“그렇네…….”
여자들이 동정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본다.
조금 비위에 거슬리긴 하지만, 확실히 그 덕에 살았다.
뭐랄까……, 지금 건 코우자쿠가 날 도와준 거로군.
내가 남이 머리카락을 만지는 걸 제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내 시선을 눈치 챈 코우자쿠가 미소를 짓는다.
“왜, 무슨 일이야. 멋진 남자라서 홀딱 반했나?”
“뚫린 입이라고 말은. 바보가.”
“잠깐! 코우자쿠 씨한테 바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농담을 지껄이고, 나도 웃음을 짓는 것으로 코우자쿠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코우자쿠로부터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윙크가 돌아왔다.
이런 건 좀……, 메슥거린단 말이지.
“그럼, 이제 갈 테니까.”
“오우. 조심해서 가라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코우자쿠와 헤어지고는, 나는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배달 목적지는 이 길을 왼쪽으로 돌아, 똑바로 나아간 곳이다.
모퉁이를 돌려고 하니, 길가에 남자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고 있지만, 내용은 잘 알 수 없다.
최근, 이런 녀석을 길거리에서 자주 본다.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이런 식으로 벽을 향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한다.
원래도 그런 녀석들은 있었지만, 갑자기 수가 늘어난 느낌이 든다.
뭐, 나한테 접근하지만 않으면 더 바랄 건 없다.
나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는 남자의 옆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이 부근의 골목은 조금 전에 있었던 곳보다도 길이 좁다. 햇볕도 들지 않으니 골목 전체가 눅눅하다.
거기다 음식점이 많아서, 구수한 냄새와 연기가 끊임없이 감돌고 있다.
“왠지 급속도로 배가 고파졌어.”
‘이대로 방치하면 약 한 시간 후에는 위산과다로 인한 위의 통증이 일어날 거야.’
“뭐야 그거. 내 위장, 상한 거야?”
‘어제의 식사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수면 부족의 영향도 다소 있어.’
“아아, 요시에 씨의…….”
짐작이 가는 것은 배달 일로 운반책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 생크림 듬뿍듬뿍 케이크가…….
“……응?”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발을 멈춘다.
방금, 누군가가 이쪽을 가만히 보고 있었던 것 같은…….
그렇지만, 딱히 수상한 녀석은 눈에 띄지 않는다.
……기분 탓일까.
‘! 아오바!’
“에? ……윽!?”
돌연, 덜컹 하고 계단을 헛디딘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에 비치는 것의 움직임이 뚝 그치고, 그 직후에 엄청난 속도로 내 발치로 흘러간다.
“앗…….”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날카로운 두통이 스쳐 얼굴을 찡그린다.
“뭐……, 야……!?”
사고가 흙탕물처럼 혼탁해지고, 팔다리가 찌릿찌릿 저린다.
전신을 세차게 흔드는 듯한 감각이 스쳐지나간 후, 갑자기 시야가 열렸다.
“…………!?”
“뭐야, 여기…….”
그곳은…….
마치 게임 속에 들어와 버린 것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
와이어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바닥이 빛을 발하며 끝없이 펼쳐져있다.
‘라임 필드 세팅 중, 라임 필드 세팅 중.’
“라임이라니……, 그 라임인가!?”
놀라서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으니, 눈앞의 공간이 창백하게 빛났다.
그 빛이 발치에서부터 사람의 형상을 이루어간다.
그곳에 나타난 인물을 보고, 나는 뒤로 넘어질 뻔했다.
“렌!?”
“아오바, 괜찮아?”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것보다 너 왜 그런 모습인 거야.”
“이곳에서는 올메이트가 온라인모드 상태로 반영되는 것 같아.”
“온라인모드라니 기본적으로 라임에서 쓰는 거잖아? 나, 네 그런 모습, 설정화면에서밖에 본 적 없다고.”
“건 그렇고 방금 방송으로 라임이 어쩌고 했었는데…….”
“그런 것 같아. 단 지도상의 현재 위치는 이곳으로 오기 전과 똑같아.”
‘라임 필드, 셋업 완료했습니다. 필드, 전개합니다.’
“아오바!”
“윽!!”
렌이 갑자기 나를 밀쳐서 바닥으로 넘어지자, 엄청난 바람이 내 머리에 닿을락말락하게 스쳐지나갔다.
“뭐야 지금……!?”
“아오바, 이곳은 라임의 퍼블릭 필드다. 우리들은 강제적으로 라임에 끌려 들어온 것 같아.”
“하……!? 그런 일…….”
“아오바, 뭔가 온다.”
렌의 시선을 따라가 보고는, 흠칫 놀랐다.
토끼의 머리.
……를 뒤집어쓴 사람이, 그곳에 서있었다.
“이미 라임이 시작되었다는 건가…….”
“……금번에는.”
“……금번에는, 찾아와주셔서 지극히 영광.”
“그러면, 즐거운 게임을 시작하지.”
“아오바, 온다.”
“온다고 해도 어떻게 하면…….”
“‘망(亡)’ 세팅!”
“라져-!”
“에!? 우와……앗!”
“엄마야……! 어이, 잠깐 기다리라고!”
“난 라임 같은 거 전혀 관계없다고! 그만하라니까!”
“라임 네임, 슬라이블루(sly blue).”
“하?”
“세라가키 아오바(瀬良垣蒼葉).”
“어떻게 내 이름을……, 것보다 뭐야 그 슬라이 어쩌고 하는 건.”
“싸워라.”
“라임 같은 거 해본 적 없어!”
“싸워라.”
“그러니까, 해본 적 없다니까……!”
“……싸워라.”
“틀렸어, 말이 안 통해!”
“도망친다!”
“렌, 어떻게 좀 안 되는 거야!?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라든지.”
“시행하고 있지만, 로그아웃 자체가 무효화되어있는 것 같다.”
“진짜로 뭐냐고 라임이라니!!”
“으아악!”
“아얏~……!”
“아오바, 괜찮아?”
“……꽤 진지하게 아픈데.”
“라임에서는 실제의 육체에 데미지를 받는 일은 없어. 모두 뇌내 착각이다. 그 이상의 영향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되고 있지.”
“그러나, 이 필드는 데미지 수치의 제어가 어떤 이유로 풀려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즉…….”
“여기서 데미지를 받으면, 육체에도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
“최악이잖아……!”
“도망쳐도 소용없어.”
고개를 들자, 바로 근처에 있는 블록에서 토끼의 모습이 엿보였다.
“‘실(失)’ 세팅!”
“라져-!”
위험해……!
도망칠 타이밍을 놓친 내 앞에 렌이 뛰어들었다.
“……윽.”
“렌, 괜찮아!?”
“…………!?”
“윽, ……으, 아……악!”
“머리, 가…….”
“……으, ……윽.”
“……렌. ‘경(慶)’ 세팅이다.”
“아오바?”
“괜찮으니까, 어서.”
“………….”
“……알았다.”
“………….”
PLAYER > SLY BLUE
ALLMATE >> REN
ATTRIBUTE (속성) > 축복
“……칫. 놀고 있군.”
“올메이트는 방어구도 없고 구형. ……깔보고 있는 건가.”
“맨몸이라니 완전히 까불고 있네!”
“……후딱 해치울까.”
“………….”
“……?”
“……뭐야?”
“!”
“P!”
“적의 공격을 확인! 3기 손실! 내구도 12 저하!”
“……저 녀석.”
“……!”
“나, 지금……. 뭘……?”
“렌, 뭐야 방금…….”
“아오바가 내게 공격 지시를 내렸다.”
“공격? 뭐야 그거. 그런 거 모른다고…….”
“그치만 좀 전에……. 왠지 입이 멋대로 움직인 것 같은 느낌이…….”
“아오바, 또 온다.”
“지시를.”
“지시라고 해도…….”
“………….”
“그치만 안 하면 위험하겠지…….”
“방금 전처럼…….”
“……윽.”
“…………으윽.”
“……렌, ……방어다.”
“알았다.”
“‘붕(崩)’ 세팅!”
“라져-!”
“……윽.”
“……! 윽, 위험해!”
“적의 본체 방어벽, 100% 손상!”
“……. 기대해봤자 허사였군.”
“가자.”
“철수! 철수!”
“……가 아냐! 잠깐!”
“적의 본체 방어벽, 엄청난 기세로 회복!”
“40, 50……, 70, 90!”
“……무슨 일이야.”
“……!”
“어떻게 된 거지……?”
“경보! 경보! 위험! 위험!”
“!?”
“……파괴와, 죽음을.”
“…………, ……윽.”
……윽. 머리 아파…….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아야야, ……으”
나는……, 아무래도 땅바닥에 쓰러져있는 것 같다.
온몸의 아픔을 참고, 양손에 힘을 실어 천천히 일어난다.
다리가 휘청거려서 또 넘어질 뻔해져서, 어떻게든 벋디디고 선다.
“아파, ……아니, ……어떻게 된 거야…….”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고, 혼란스러운 기억을 정리하고자 한다.
확실히…….
배달하러 가던 도중에 갑자기 라임에 끌려들어가서, 이상한 토끼 머리가…….
“………….”
“……가게 앞.”
매일같이 보고 있으니 잘못 볼 리도 없다.
나는……, ‘평범’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지? 배달을 하러 나갔을 텐데…….
주위를 둘러보니, 땅바닥에 파란 털 뭉치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렌!”
곧장 달려가 안아든다. 반응이 없다.
렌의 머리를 가볍게 누르고,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러본다.
“렌, 어이!”
‘……아오바.’
잠깐의 사이를 두고서, 렌의 눈이 반짝 떠졌다.
그것을 보고 진심으로 안심한다.
“괜찮아?”
‘특별히 큰 문제는 없다.’
“정말로? 어딘가 부서졌다든지.”
‘일부, 데이터가 파손되어 있다.’
“그건 충분히 큰 문제잖아!”
토끼 머리와의 라임으로 렌도 데미지를 입었을 것이다.
“집에 가면 진찰해줄테니까.”
‘만약을 위해 부탁한다.’
“아아. 뭐랄까 내 뇌내 데이터도 파손된 것 같단 말이지~…….”
“토끼 머리랑 싸운 건 기억나지만, 결국 어떻게 된 건지는.”
‘내 데이터가 파손되어 있는 것도 거기서부터다.’
“그래……. 잠깐 기다려, 생각해볼 테니까.”
나는 두통을 참고, 눈을 감고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기억이 멀어져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틀렸어. 전혀 기억이 안 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 어째서?”
‘일반 남성의 기억 용량을 임시로 100이라고 하면, 아오바의 경우는…….’
“지금 여기서 그 이야기냐고. 잠깐, ……아…….”
‘아오바?’
“어, ……어라? 왠지, 눈이 핑글핑글 돌아…….”
“……렌, 너……, 언제부터 다리, 여덟 개가…….”
‘아오바!’
“………….”
뭐야 이거…….
눈앞이 빙글빙글 돌고…….
어디가 바닥, 인지…….
‘잠깐 기다리고 있어.’
렌이 어딘가로 달려간다.
그 뒷모습이 세 개로 보여서,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하하, 이상해-…….
렌이, 세, 마리…….
……거기서, 내 기억은 끊겼다.
내가 가게 앞에서 의식을 잃고 만 뒤…….
렌이 하가 씨를 불러와줘서, 나는 가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배달했어야 할 물건을 잃어버리고 말았는데도, 하가 씨는 평소의 상냥한 웃는 얼굴로 오늘은 돌아가도 좋다고 말해주셨다.
나는 순순히 하가 씨의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고, 집 안은 몹시 캄캄했다.
어두운 현관에 불을 켜고 복도로 올라가, 주방으로 향한다. 선반에서 두통약을 꺼내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약을 먹었다.
실은 식후에 먹는 편이 좋겠지만, 어쨌든 두통을 억누르는 것이 먼저였다.
집으로 돌아와 안심한 탓인지, 걷는 것도 귀찮을 정도의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 당장 침대 위로 쓰러지고픈 기분으로, 2층의 내 방으로 올라간다.
가방에서 렌을 꺼내 침대에 내려놓고, 나도 겉옷을 벗고 바로 침대 위에 누웠다.
하아…….
배달할 물건을 잃어버리고, 끝에 가서는 조퇴인가…….
하가 씨의 웃는 얼굴과 배려에 몹시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밀려든다.
“뭐 하는 거야, 나…….”
그렇지만, 이렇게 된 것도 그 이상한 토끼 머리 탓이다.
그리고……, 라임.
다들 그런 거에 빠져서 열광하고 있는 거냐고…….
그 비현실적인 공간을 떠올리자 또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아서, 나는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약이 아직 듣지 않은 것인지, 좀처럼 두통이 가라앉지 않는다. 이럴 때는…….
방금 전 겉옷과 함께 내팽개쳤던 헤드폰을 집어 들고, 귀에 댄다.
코일로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하고, 흘러들어오는 멜로디에 몸을 맡기는 듯이 눈을 감았다.
오래전부터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자주 하는 릴랙스법이다.
자신과 음악만이 있는 세계로 잠겨든다.
“……음.”
음악의 리듬과 템포, 자신의 호흡과 심장의 고동.
그것들이 조금씩 동조하여 녹아들어, 이윽고 하나의 커다란 물결이 된다.
“하, …….”
선율의 소용돌이가 내 몸을 감싸고, 부드럽게 어루만져간다.
소리가 피부에 스며들어 혈액과 뒤섞여, 안쪽에서 온화하게 움직인다.
“……후……, 우.”
머릿속에서는 가지각색의 엷은 색의 빛이 둥실둥실, 부드러운 필름처럼 춤춘다.
굉장히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다. 이곳은 나에게만 허락된, 나만의 장소라는 생각에 안심한다.
“아…….”
두통의 불협화음도 몸의 잡음도 멀어지고, 몸 안에서 울리는 조용한 소리만이 전해져온다.
전신으로 퍼지는 물결에 떠밀려 나오는 것처럼, 입술에서 희미한 숨결이 몇 번이고 새어나온다.
기분 좋아…….
왜인지 오늘은 다른 때보다도 더 깊게 잠겨든 듯한 느낌이 든다.
고통 같은 것은 전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이대로 잠으로 빠져들면, 그 다음은 평온한 기상이 찾아오는 것을 기다릴 뿐이다.
이대로 잠들어버리면…….
“…………?”
소리……?
희미하게 눈을 뜬다. 그렇지만, 의식이 부예진 탓에 눈에 비치는 것을 잘 분간할 수 없다.
…………. ……뭐 상관없지.
제대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나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이곳은…….
본 적이 있는 광경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이 해변에 앉아,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람의 말이 나에게 있어서는 보물처럼 소중해서……, 말 자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
“…………, ………….”
“…………, ………….”
……뭐라고 말했었지. 기억나지 않는다.
소중한, 말…….
……………….
아얏. 뭔가 아파.
날카로운 물건으로 얼굴을 찔리고 있는 듯한…….
‘일어나 잠꾸러기! 어이 빨리!’
“윽, 아파, …….”
‘일어나랬잖아 어이! 패버린다 멍청이!’
“…………, 아프잖아!”
너무 끈덕져서 벌떡 일어나니, 얼굴을 찌르고 있던 무언가가 휙 굴러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손으로 잡는다.
“어라, 베니.”
‘어이 이거 놔! 손님한테 이게 무슨 대우야!’
베니가 손 안에서 날개를 파닥이고, 나를 똑바로 노려본다.
“그렇다면 코우자쿠 와있는 거야?”
‘당연하잖아! 이거 놔!’
나는 큰소리로 떠드는 베니를 붙잡은 채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라? 렌은?
렌의 모습을 찾으니, 침대의 한 구석에서 슬립 모드 상태로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데이터가 날아갔다고 했었지. 이따 수리해주지 않으면.
그렇지만 그 전에 무언가 먹고 싶다.
한바탕 푹 잔 탓에 몸 상태는 꽤나 좋아졌다. 두통도 없어졌다.
아직 몸의 마디마디에 통증이 있지만, 움직일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방에서 나오자, 1층에서 좋은 냄새가 풍겨왔다.
할머니가 돌아왔다. 밥을 짓고 있겠지.
코일을 보니, 완전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벌써 이런 시간인가.”
‘네가 좀처럼 일어나질 않으니까 내가 널 깨우는 지경이 됐었다고. 알긴 아는 거야, 아아?’
베니의 불평을 흘려들으며, 나는 계단을 내려가 거실을 엿보았다.
맛있는 냄새가 가득 들어찬 가운데, 거실의 테이블에 코우자쿠가 재바르게 앉아 있었다.
할머니도 부엌에 서 있다.
코우자쿠는 나를 보자마자, 싱긋 웃었다.
“여어, 잘 잤어?”
“……안녕.”
“그 얼굴, 오늘도 최상의 컨디션이로군.”
“……덕분에.”
무심결에 하품이 새어나온다.
“이거.”
나는 꼭 움켜쥐고 있던 베니를 코우자쿠 쪽으로 휙 던졌다. 코우자쿠가 요령 좋게 캐치한다.
‘깨워줬는데도 대접이 이게 뭐야! 깔보지 말라고 아오바!’
“불평은 주인님한테 말하라고, 것보다, 계속 이 녀석만 부려먹지 말라고.”
“별수 없잖아. 너 한 번 깨우려면 하루가 다 가는데.”
“내가 언제.”
“아오바, 일어났으면 좀 도와! 밥은 이미 다 했으니까 젓가락이랑 차다.”
“네 네-.”
할머니의 재촉에 선반으로 향한다. 할머니와 내 이야기를 들은 코우자쿠가 즐거운 듯이 웃었다.
“언제 와도 변함이 없네, 타에 씨. 그 활기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면 안심된다고.”
“매일 호통 치는 걸 들어봐. 꽤 힘들다고?”
“하하하.”
선반에서 꺼낸 젓가락을 테이블에 놓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코우자쿠가 더욱더 즐거운 듯이 웃었다.
내가 3인분의 차를 찻잔에 따르는 사이에, 할머니가 갓 완성된 요리의 접시를 테이블에 늘어놓았다.
저녁식사 준비가 모두 끝나고, 모두가 식탁에 모인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오늘 저녁식사 메뉴는 생선을 소금으로 조린 것과 다시마 볶음, 돼지고기조림이다.
우선 돼지고기조림을 입에 넣고서 감동한다.
맛있다.
완전히 피로에 절어서 푹 자고난 후에 먹는 밥은 맛있다. 정말로 맛있다.
내가 그 사실을 절실히 실감하고 있으니, 코우자쿠도 우물우물 입을 움직이면서 웃는 얼굴로 할머니를 보았다.
“맛있어. 역시 타에 씨의 요리는 최고야.”
“흥. 갑자기 들이닥친 주제에 말은.”
“나는 제대로 말해뒀다고? 아오바한테.‘
갑자기 화살이 나한테 돌아와서, 코우자쿠를 가볍게 노려본다.
“‘머잖아’라고 했었잖아.”
“그러는 너도 쿨쿨 잠만 자고 있었잖아. 아무리 불러도 꿈쩍도 안 했다고.”
“그건……, 뭐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제대로 밥해주는 거, 정말 고맙다고.”
“착각하지 말라니까. 유통기한이 다 끝나가는 게 있었으니까 어쩌다 타이밍이 맞았을 뿐이라고.”
“이래서 타에 씨가 좋다니까.”
“시끄러워.”
할머니가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다시마를 한입 가득 넣는다. 코우자쿠는 그런 할머니를 싱글싱글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다.
할머니, 의외로 코우자쿠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지.
코우자쿠는 어머니와 함께 이 섬에 왔지만, 평소엔 혼자 있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나랑도 자주 놀았고, 집에도 찾아왔었다. 물론 할머니의 요리도 잔뜩 먹곤 했다.
할머니 관점에서 보면, 또 한명의 손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자고 가는 거냐?”
할머니가 미간을 좁히고 묻자, 코우자쿠는 밥을 입 안으로 밀어넣던 손을 멈추고 미안한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인데.”
“정말이지, 너는 후안무치라는 말도 모르는 거냐.”
“뭐 늘 그래왔으니까. 단 나는 아르바이트가 있으니까, 아침엔 네가 곤히 자고 있어도 깨울 거야.”
“그 반대잖아? 좀처럼 안 일어나는 너를 내가 언제나 상냥하게 깨워주고 있잖아.”
‘그렇지~.’
“……너희들…….”
짜증날 정도로 해사하게 웃는 얼굴을 보이며, 코우자쿠가 다시 밥공기의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러고서 다시 셋이서 소소한 잡담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 시간을 보냈다.
“……후우.”
저녁을 먹은 후에 목욕을 마친 나는, 머리카락의 물기가 덜 말라서 어깨에 수건을 걸치고 거실로 갔다.
거실을 살펴보자, 할머니가 차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코우자쿠의 모습은 없다.
“코우자쿠는?”
“2층으로 갔어. 네 방에 있겠지.”
“그래. ……아, 맞다 할머니.”
“왜.”
“지난번에 말야, 어-엄청 머리가 아파서 약을 먹었는데, 잘 듣지를 않았었어.”
“……흠.”
계속 TV를 보고 있던 할머니가 내 쪽을 돌아본다.
두통 때문에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보고하라는 이야기를 예전부터 할머니에게 듣고 있다.
“전혀 듣질 않았던 거냐?”
“으-응, 그렇진 않았는데, 평소만큼은 안 들었던 것 같아.”
“그래. 그럼 약의 배합을 조금 바꿔볼까.”
“부탁할게요.”
내가 과장된 움직임으로 머리를 숙이자, 할머니는 콧방귀를 뀌고서는 다시 TV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러면……. 코우자쿠는 내 방에 간 것 같다.
나는 거실에서 나와 계단을 올라갔다.
발을 들 때마다, 몸 이곳저곳이 욱신욱신 아프다.
“아야야.”
겉으로 보기에는 상처나 멍이 생긴 건 아니었지만, 몸의 심지가 둔탁하게 욱신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임에서 데미지를 받은 탓인가…….
“머릿속에서 싸우네 어쩌네 해도, 역시 아프잖아…….”
그 이상한 토끼 머리와 라임에서 싸웠을 때, 데미지 수치의 제어가 풀려있다고 렌이 말했었다.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몸 이곳저곳이 아픈 것을 참으며 계단 끝까지 다 올라가, 내 방으로 들어간다.
……어라.
코우자쿠가 없다. 렌도다.
그런 줄 알았더니, 베란다로 나가는 창이 아주 조금 열려있었다.
베란다를 엿보자, 코우자쿠가 난간에 기대어있었다.
멍한 얼굴로 밤의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손에는 가느다란 담배가 끼워져 있고, 살짝 오므라든 입술에서 하얀 연기가 후욱 내뱉어진다.
코우자쿠는 왜인지 내 방……, 그것도 베란다에서밖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여자 앞이나 일하는 중에는 물론, 술을 마시러 가거나 해도 피우지 않으면서, 여기에서만 담배를 피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여기에 있으면 긴장이 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코우자쿠가 바깥에서 이런 멍한 얼굴을 하는 일은 없다. 늘 웃는 얼굴에 자신만만한 표정. 그것이 코우자쿠의 이미지다.
평소엔 여자들이랑 즐거운 듯이 왁자지껄 떠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그건 그거대로 힘이 드는 것일까.
코우자쿠의 손이 입에 물린 담배를 옮긴다. 어둑한 공간 안에서, 그 손가락이 유달리 기다랗고 예쁘게 보였다.
미용사를 직업으로 삼을 정도고, 손재주는 참 좋지.
뼈가 도드라져 남자다운 손인데도 예쁘다는 느낌이 드니 신기하다.
코우자쿠는 렌을 안고 있고, 렌의 머리 위에는 베니도 올라타 있다. 둘 다 슬립모드인 것 같다.
난간에 올려두는 듯이 해서 안고 있으니 어쩐지 떨어질 것 같지만, 코우자쿠니까 별일은 없겠지.
나는 방에 놓아둔 재떨이를 들고, 베란다의 창을 열었다.
“……응?”
멍한 코우자쿠의 눈이 나를 응시하고는, 입가에 느슨한 미소가 떠오른다.
“오우. 목욕 다 했어?”
“거실에 있는 줄 알았어.”
“아아. 잠깐 이거, 피우러.”
코우자쿠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가볍게 들어 올려서 보여준다.
“너 여기에 있는 거 정말 좋아하네.”
“그래? 그럴지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도.”
“뭐어, 그렇지. 그치만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 좋지 않아?”
“? 그래? 난 잘 모르겠지만.”
코우자쿠가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는다.
“자.”
재떨이를 내밀자, 짧게 줄어든 담배가 그 위로 짓눌러진다. 그것을 발치에 두고, 나도 베란다의 난간에 기댄다.
“아-.”
곁에 선 나를 보자마자, 코우자쿠가 눈썹을 찌푸린다.
“아오바, 너 또…….”
“응?”
“머리카락 말야. 좀 더 제대로 말리라니까.”
코우자쿠가 내 쪽으로 손을 뻗는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건가……?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린다.
그러나, 코우자쿠의 손이 잡은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코였다.
“으앗!”
“정말이지 네 머리, 직업병 때문에 신경 쓰여서 견딜 수가 없다고.”
“그만해.”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피하자, 코우자쿠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머리, 꽤 많이 자랐네. 또 혼자서 조금 조금씩 자르고 있는 거야?”
“아-, 뭐 그렇지. 그치만 별로 전문가한테는 보이고 싶지 않은데. 대충 자른 거니까.”
“아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제대로 정돈되어 있어.”
“정말? 꺄-, 코우자쿠 씨한테 칭찬받다니 너무 좋아-.”
“뭐야 그 국어책 읽기는.”
“네 팬 성대모사.”
“너 말야-.”
코우자쿠가 작게 웃는 소리를 낸다.
내가 머리를 자르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째서인지 선천적으로, 머리카락에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위를 대려고 해도 아파서 자를 수가 없다.
어깨 아래까지 자라면 감각이 둔해져서, 어떻게든 자르는 것도 가능하지만.
어릴 적에는 이 머리카락 때문에 여자 같다고 엄청 놀림을 받았었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자극이 발생하니까, 장난으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하면……, 정말이지 지옥 같았다.
다른 아이들이 그걸 재미있게 여겨서 괴롭힘을 당했던 적도 있었다. 그럴 때, 늘 코우자쿠가 나를 도와주었다.
뭐랄까, 코우자쿠는 처음에는 나를 여자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상당히 놀랐었지. 그래도, 그 뒤로도 코우자쿠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로서는, 그것이 꽤나 기뻤다.
“너, 모처럼 예쁜 머리카락을 갖고 있으니까 소중하게 관리하라고.”
“……늘 생각하는 건데 말야. 너 잘도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네. 그런 점은 정말 예전부터 변하질 않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렇게 말할 뿐이야. 너도, 옛날에는 내가 칭찬해주면 부끄러워하면서 좋아했는데 말이지…….”
코우자쿠가 여봐란 듯이 먼눈을 해서, 있는 힘을 다해 질렸다는 시선을 던진다.
“꼬마였을 때잖아. 기억도 안 나고.”
아직 젖어있는 머리카락 끝을 수건으로 살짝 훔치고 있으니, 어깨에 둔탁한 통증이 스쳤다.
“앗…….”
이 통증……. 라임의 후유증인가…….
“왜 그래.”
“아니, 좀.”
“좀이 아냐. 그러고 보니 아까도 녹초가 돼서 축 늘어졌었지.”
“아~.”
“뭐야, 엄청 비싸게 구네.”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쩌지. 라임에 대한 이야기, 코우자쿠에게 이야기해야 할까?
내 안에서 약간의 망설임이 일어난다.
코우자쿠는 이런 때, 묘하게 촉이 날카롭다. 이미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얼버무리려 해도 완전히 넘어갈 수 없겠지…….
“아니, 오늘 말야. 이상한 일을 겪어서. 그, 뭐지? 라임에 말려들었달까.”
“라임에 말려들어?”
“그게 갑작스럽게 말야. 배달하는 중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라임의 필드 안에 있었다고.”
“꿈 이야기는 아니겠지.”
“아니야.”
“그 말은……, 근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야?”
“나도 잘 몰랐는데 말이지, 너희 팀 영역 근처라고. 그 이상한 좁은 골목길.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없지만 말이지…….”
“그 외에도 뭔가 이상했어. 우스이가 없었다고.”
“그건 이상하네. 그 녀석이 라임을 개최하는 거잖아. 이상한 장치도 그 녀석이랑 같이 나오고.”
“그렇지. 그래서…….”
나는 코우자쿠에게 토끼 머리에 대한 것……, 내 이름을 토끼 머리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포함해서 이야기했다.
코우자쿠는 미간을 좁히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서는, 낮게 신음했다.
“너 그거, 어쩌면……, ‘무차별 살인 라임’인 거 아냐?”
“무차별 살인 라임?”
“나도 팀원 녀석들에게 들었을 뿐이고,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우스이 없이 일방적으로 라임을 걸어오는 녀석들이 있는 것 같아.”
“그 녀석들의 라임은 룰도 제한도 없는 상태라, 걸려든 상대는 반죽음이 되는 일도 있다고 해.”
“그럼, 내가 당한 것도 그 무차별 살인 라임이란 건가?”
“가능성은 있겠지. 하지만…….”
“……마음에 안 드네.”
“뭐가?”
“이번에는 어떻게든 피할 수 있었으니까 다행이지만. 만약 또 걸려들면 어쩌나 생각하면 말야. 엄청 위험하잖아, 그거.”
“근데 나, 라임 해본 적 없는데 왜……. 나랑 다른 사람을 혼동한 건가?”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아니면, 누군가에게 엄청난 원한을 샀다거나.”
“그런 일 없어. 내가 너도 아니고.”
“너무하네. 그치만 상대는 네 이름, 알고 있었잖아?”
“뭐……, 그랬지.”
“………….”
“코우자쿠?”
코우자쿠가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입을 다문다.
잠시 사이를 두고서,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 역시 오늘은 돌아갈래. 할 일이 좀 생각났어.”
“어? 어어, 그래.”
코우자쿠는 난간에서 떨어져, 내 정면에 섰다.
“몸, 정말로 괜찮은 거지?”
“아아.”
“그렇다면 믿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하라고.”
“알고 있어.”
“좋아.”
코우자쿠가 납득한 듯이 웃고서, 살며시 렌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렌의 머리 위에 올라탄 베니만 집어 들어서, 자신의 품속에 넣는다.
“그럼. 잘 자.”
“아아.”
코우자쿠는 손을 휙 들어 올리고서, 방에서 나갔다.
베란다 창을 닫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렌을 침대에 내려놓고 그 옆에 드러누웠다.
“라임……인가.”
결국, 내가 조우했던 것은 무차별 살인 라임이었던 것일까.
라임에 말려들었을 때, 렌은 온라인모드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내 지시를 따라서 싸웠다.
“……무슨, 세팅. ……뭐였더라.”
그때, 누군가에게 몸을 빼앗긴 것처럼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렇지만 그 느낌……, 잘 알고 있는 것인 듯한 느낌이 든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가게에서 손님에게 권유를 할 때의 감각과 조금 비슷한 것 같은…….
다음으로 무슨 말을 해야 상대방의 마음이 이쪽으로 기울어질 것인지 알겠는, 그 감각이다.
무차별 살인 라임이란 건 평소에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일까. 잠깐 조사해볼까.
그다지 깊게 들어가고 싶지는 않지만…….
……메일이다.
‘[새 메일] 최신형 올메이트가 드디어 / ***’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저번에 / 코우자쿠’
‘저녁밥 / 할머니’
‘잘 지내? / 미즈키’
‘이번 주 일요일 / 코우자쿠’
“최신형 올메이트, 인가.”
다이렉트메일이다.
그건 그렇고, 올메이트도 잇달아서 새로운 게 나오는군.
내용을 대충 쓱 훑어보고, 코일의 화면을 닫는다.
나는 예전부터 사용하는 물건에는 애착이 생겨서 내버릴 수 없게 되는 편이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은 것이겠지.
……그렇지. 렌의 상태를 봐주지 않으면. 라임에서 입은 데미지도 신경 쓰이고.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 위에 자세를 고쳐 앉고, 파란 털 뭉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기동시켰다.
‘아오바.’
“안녕.”
‘안녕.’
“지금부터 잠깐 진찰할게.”
렌은 구형이라, 본격적으로 고장이 나면 복구하는 것도 일이다.
부지런히 보수를 하고 상태를 봐주지 않으면.
나는 데스크탑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케이블을 붙잡고, 렌의 목 부근의 털을 헤치고 플러그에 접속시켰다.
코일로 터치 브라우저를 기동시키고, 렌의 엔진을 감시하는 인터페이스를 표시한다.
“응……. 반사 반응 속도가 좀 떨어졌나.”
바닥에 내팽개쳐진 공구함을 집고, 다시금 렌의 목 부근의 털을 헤치고 사방 10cm의 뚜껑의 나사를 드라이버로 푼다.
올메이트는 기본적으로 터치 브라우저의 컨트롤 판넬만으로 정비가 가능하지만, 렌은 구형이라 몸체 안쪽으로도 직접 손을 쓸 필요가 있다.
공구함에서 새 칩 스톡을 꺼내들어, 핀셋으로 렌의 목에 꽂혀있는 칩과 교환한다.
“이걸로 끝, 이네.”
뚜껑을 닫고, 컨트롤 판넬을 종료시키고서 케이블을 빼고 렌을 안아든다.
“어때? 어디 안 좋은 데는 없어?”
‘………….’
“응?”
‘약간 위화감이 들어. 그렇지만, 허용 범위 내다.’
“그래. 막 칩을 갈아끼운 참이니까. 만약 상태가 안 좋아지면 바로 말해.”
‘알았다.’
고분고분 대답을 하는 렌의 등을 쓰다듬고, 그 자그마한 이마에 내 이마를 댄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렌의 보수를 해준 뒤에는 꼭 이걸 한다. 주술 같은 것이다.
“늘 고마워.”
‘나야말로.’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야말로.’
“……너, 맨날 대답은 그거네.”
‘뭔가 이상한가?’
“아니? 전혀. 렌다워서 좋다고 생각해.”
‘그 발언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게 맞는 걸까.’
“그렇지, 칭찬이니까.”
‘고맙다.’
“아하하. ……나야말로.”
나는 한 번 더 이마를 맞대고서, 렌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렌은 늘 변함이 없다. 어떤 때에도 내 곁에 있어준다.
그 후로도 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공구를 정리하거나 하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입니다.”
다음날, 평소대로 ‘평범’에 출근하니, 하가 씨가 재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카운터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렌을 내려두고서 곧바로 하가 씨 쪽으로 갔다.
어제 일,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점장님.”
“네?”
“어제는 배달 일이 그렇게 되어서, 죄송했습니다.”
“에? 아아 아뇨 아뇨, 그 일은 이미…….”
그렇게 말하며, 하가 씨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것을 보고서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그 후에, 연락이 닿은 손님이 엄청나게 화를 냈다든가?
그렇다면 내 탓이다.
“저,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저도 직접 손님께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만…….”
“아아, 응. 그 일 말인데요.”
하가 씨가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안경을 치켜 올린다.
“어제 그 물건, 사전 결제가 이미 끝난 상태라 어쨌든 환불이나 재배달을 원하시는지 여쭈어보려고, 그 뒤로도 연락을 취하려고 이것저것 해보았어요.”
“컨트롤 센터에도 문의해봤습니다만, 전부 허사라.”
“허사?”
“네. 통 연락이 되질 않아요. 배송지와 주문자의 이름이 같아서 주소를 조사해보았습니다만, 거기에 살고 있는 건 다른 이름의 사람이라…….”
“물건에 대해서도, 전혀 주문한 기억이 없다고 말을 해서.”
“그렇다는 건 결국, 장난이었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네요.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히…….
장난이라고는 해도 이미 돈을 낸데다, 상대방에게 있어서는 그저 손해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가 씨와 함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고 만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습니다만……. 어쩐지 찝찝하네요.”
“그렇네요…….”
게다가 나는……, 그 물건을 전해주러 가던 도중에 라임에 말려든 것이다.
석연찮은 공기가 감도는 가운데, 어느 사이엔가 개점 시간이 다가왔다.
“어이쿠, 일하자 일.”
하가 씨가 허둥지둥 가게 밖으로 나간다.
어쩐지 기분 나쁜 느낌은 들지만……, 조사 해봐도 알 수 없었으니 어쩔 수 없다.
“자 그럼. 나도 일 하자 일.”
기분을 전환해 일에 열중하기로 하고, 나는 카운터로 돌아갔다.
딱히 별일 없이 오전중의 시간이 지나가,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의 근무가 시작되었다.
하가 씨가 외출해서, 가게 안에는 나 혼자다.
“네, ……네. 그럼, 또 저희 가게를 이용해주세요.”
손님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끝내고, 한숨 돌린다.
또 평소의 패턴대로 내 목소리에 반응해서, 이번에도 이래저래 매상을 올렸다.
전에도 전화했었던 사람인 듯, 좀처럼 전화를 끊으려 하지를 않아서 조금 애를 먹었지만.
귓가에 맴도는 흥분된 목소리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자, 도어 벨이 울렸다.
아, 손님인가?
카운터에 괴고 있던 팔꿈치를 떼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여-어, 아오바.”
“아오바, 놀러왔다고-.”
“흥.”
“……너희들이냐.”
손님인가 했더니, 들어온 것은 악동 형제들이었다.
나는 일부러 한숨을 쉬고, 카운터에 팔꿈치를 괴고 매서운 눈초리로 꼬맹이들을 노려보았다.
이 녀석들이 오면 늘 변변찮은 일이 일어난다.
“어차피 나쁜 짓 하러 온 거겠지. 돌아가, 돌아가.”
“아오바 짜증나.”
“짜-증-.”
“넌 조용히 하고 있으라고, 아오바.”
“………….”
이 녀석들…….
꼬맹이들은 재빨리 표적물인 범인군을 찾아내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앗 여기 있다!”
“기다려 기다려-!”
“붙잡아라!”
‘처, 청소!!!’
표적이 된 범인군이 허둥지둥 달아난다.
범인군은 꽤나 영리한 올메이트로, 의외로 재빨리 움직일 수 있는데다 회피 능력도 높다.
다시 말해 붙잡으려고 해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그 점에 꼬맹이들의 마음을 끌고 있는 것 같다.
“어이어이어이어이, 너희들 뛰지 마!”
“앗, 이 녀석.”
“기다려!”
“너희들 빨리 잡으라고!”
“진짜-----!!”
‘처, 청소! 청소소소~~~!!!’
앗, 선반이 흔들흔들 거린다…….
저 골판지, 떨어질 것 같아…….
“………….”
이 시점에선 무력행사로 멈추게 하는 편이 좋겠군…….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 발 늦었다.
“아--!!”
“싫다-, 뭔가 깨졌어-.”
“깨졌어!”
“깨졌어!가 아냐!”
“너희들!!”
“와-! 아오바가 화났다!”
“화났다-!!”
“성질 급한 남자는 미움 받는다고!”
“시끄러! ……이 녀석! 이봐! 너도!”
나는 천방지축으로 이리저리 도망치는 세 명의 뒷덜미를 붙잡고, 문까지 끌고 가서 밖으로 내던졌다.
“우왓!”
“아얏!”
“너무해! 저질!”
“시끄러 시끄러-. 어른을 화나게 하면 무섭다고-.”
양손을 허리에 대고 ‘아이를 혼내는 선생님’ 포즈로 악동 형제들을 노려본다.
“정말이지, 맨날 맨날 장난만 쳐대고. 조금은 반성하라고. 그러니까 빨리 집에 가.”
“시꺼! 닥쳐 바보!”
“바보 아오바!”
“너 일일이 촌스럽다고!”
“………….”
“……너희들 말야…….”
“……됐으니까 말 좀 들어----!!!!”
“와-----!!!”
완전히 뚜껑이 열려서 고함을 치자, 악동 형제들은 눈 깜짝할 새에 도망갔다.
아아, 제길. 내가 생각해봐도 어른스럽지 못해…….
저 녀석들도 조금만 더 귀여운 구석이 있었더라면~…….
것보다, 꼬맹이들이 어질러놓은 걸 정리하지 않으면…….
하아…….
……응? 뭐지?
지금, 뭔가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우와앗!?”
가, 갑자기 뭔가 떨어져내렸다!
“………….”
……떨어진 것은, 아무래도 사람인 것 같다.
것보다……. 하늘에서……, 사람?
쓰러져있는 것은 체격으로 봐서는 남자 같다. 엎드리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으, 으-응.”
“!”
남자가 신음하고는 벌떡 일어난다.
살아있었다…….
안도에 가슴을 쓸어내린 것도 잠시, 나는 곧바로 다시금 얼어붙었다.
……얼굴이, 없다?
아니, 아니다. 가스마스크를 쓰고 있다.
“……아아, 깜짝 놀랐어요.”
남자는 머리카락을 부스스 헤집고,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돌아보았다.
태연하게 보이지만……, 어디 다치거나 하진 않은 건가?
것보다 왜 마스크를 쓰고 있냐고.
위에서 떨어져 내린 것도 이상하고, 어디를 어떻게 봐도 명백하게 수상하다.
내가 그 자리에 붙박여 꼼짝도 못하고 있으니, 가스마스크가 빙글 하고 이쪽을 향했다.
“………….”
반사적으로 눈의 깜박임과 호흡이 멈춘다.
이쪽으로 오지 마…….
부디 나를 무시하고 어딘가로 가주기를…….
……이라는 나의 바람도 무색하게, 가스마스크는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마스터,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헤?”
마스터?
“마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서 왔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녀석.
“왜 그러시죠?”
“아뇨 그게……, 분명,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은데요.”
“잘못 보았다니요?”
“나, 마스터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니오, 마스터는 마스터입니다.”
“그러니까 아니라니까요. 나,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는 어제 마스터를 이곳으로 나른 클리어입니다.”
[ 클리어! ]
오른손잡이
키: 180cm
혈액형: ?
생일: ???
별자리: ???
“어제 날랐다?”
어제라면, 그러고 보니…….
라임에 말려들고 난 후, 나는 어째서인지 이곳에 쓰러져 있었다.
“혹시……, 네가 나한테 라임으로 싸움을 건 건가?”
그 토끼 머리도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복장도 어딘지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요, 그건 제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마스터를 마스터라고 생각해서 이곳으로 날랐습니다.”
………….
……뭔가 말이 앞뒤가 안 맞는데.
“어제, 마스터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파괴와, 죽음.”
“……에?”
그거,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데…….
“왜 네가 그 말을……, 앗!?”
가스마스크가 갑자기 내 양쪽 볼을 붙잡고, 좌우로 잡아당겼다.
“아야아야! 아흐아이까!”
“마스터, 왠지 어제랑은 다르네요. 어디가 다른가 하면 설명하기 어렵지만, 구태여 말하자면 얼굴도 목소리도 칠칠치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스마스크는 내 뺨을 꼬집으면서, 한탄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뭐야 이 녀석!?
“아이아이까! 이어아!”
“네.”
가스마스크가 급히 손을 놓는다.
젠장, 아파……. 뭐야 이 녀석……!
있는 힘껏 꼬집어대고, 따끔따끔하다고.
눈물이 핑 도는 상태로 내 뺨을 어루만지고 있으니, 가스마스크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재차 질문 드립니다만, 당신 정말로 마스터인거죠?”
“그러니까 아니라고 했잖아!”
“그럴 리는 없습니다.”
“………….”
은근히 열이 받아서, 나는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진정하자……. 여기서 페이스를 흩뜨리면 상대방의 예상대로가 된다.
만약 이 녀석이 정말로 어제의 토끼 머리라고 한다면, 확 붙들어서 이것저것 자백하게 하지 않으면.
지금은 살짝 나사가 풀린 것 같지만, 열 받게 하면 본성이 나타나거나 하는 거 아냐?
라임은 무리여도 몸으로 하는 싸움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조금 기합을 넣어볼까…….
“……어이!”
고함을 침과 동시에, 나는 그 녀석의 엉덩이를 노리고 발차기를 날렸다.
“아앗!”
가스마스크가 뒤로 몸을 젖히고, 양손으로 엉덩이를 가린다.
“그런, 마스터……, 그만둬주세요!!!”
“……하?”
가스마스크가 휘청휘청 쓰러진다.
“그만해주세요, 마스터……. 이제 이 이상은……, 갈라질 수 없습니다.”
“………….”
……응.
이 녀석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여기선 빨리 일단락을 짓고 신속하게 이 녀석을 돌려보내자.
“어쨌든 나는 마스터가 아냐. 그리고 일해야 돼서 돌아갈 거니까. 그럼.”
“저는 어떻게 하면?”
“돌아가라고!”
“알겠습니다.”
가스마스크는 순순히 고개를 한 번 끄덕하고, 오른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서 부스럭부스럭 그 안을 뒤졌다.
꺼내든 것은…….
……길엇! 비닐우산이다.
[ 왜 우산을? ] → 선택
[ 마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