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도 루트도 보고 계신가요? ^.,^;
※ 번역 초고입니다.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발견하시면 아낌없이 지적해주세요.
공간을 차단하는 소리와 함께, 갑작스런 정적이 주변에 차오른다.
창문으로 들이비치는 달빛에, 주위의 윤곽이 어두움의 농담(濃淡)으로 떠올랐다.
부들, 하고 작게 몸을 떤다.
이곳은, 무도회장보다도 더 온도가 내려가 있다.
전방에 책장인 듯한 그림자가 같은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이지만, 그 외에 빛을 가리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
조금씩, 신중하게 걷기 시작한다.
바닥의 매끈매끈하고 딱딱한 감촉이 발을 통해 전해졌다.
「어둡네」
아무리 밤눈이 밝다고 해도, 이래서는 문자를 읽을 수 없다.
그러나, 문득 등 뒤에서 빛이 느껴졌다.
돌아보자, 라젤이 내밀고 있는 한쪽 손에 옅은 불꽃이 붙어, 도서관 안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당신은, 불을 조정할 수 있는 거야?」
「본래의 용도와는 다르지만, 지금은 특별 케이스다」
「……덕분에 살았어」
솔직히, 불을 보고 경직될 뻔했지만, 마음 약한 상태로 있을 상황이 아니다.
가능한 한 보지 않으려 하면서, 코노에는 약간 밝아진 도서관 안을 다시금 둘러보았다.
무도회장과 똑같이, 천장이 높다.
그리고 벽이란 벽은 다 서가로 되어 있어서, 빽빽하게 책이 들어차 있었다.
실내의 중심에는 진열된 서가 외엔, 아무것도 없다.
몇 개의 서가에는 긴 사다리가 기대어져 있어, 높은 위치의 책도 볼 수 있게끔 되어 있다.
바르도가 말한 대로, 확실히 압권이었다.
리비카의 평소 생활에서는 책 자체를 그다지 찾아볼 수 없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뱉어 본다.
익숙해진 케케묵은 냄새와, 건초와도 비슷한,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건조한 냄새가 난다.
쥐 죽은 듯 조용해진 공간에 울려퍼지는 신발 소리는, 심장 고동과도 같다.
라젤이 불꽃을 피워올린 탓도 있어, 마치 도서관 전체가 살아서 호흡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우리들은 위쪽부터 시작할까」
라젤 외의 악마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코노에와 라이, 아사토도 제각기 서가로 향한다.
책등을 죽 훑어보았다.
다행이도 리비카의 언어로 쓰여 있어서, 나란히 놓여있는 책의 카테고리를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한 열씩 옆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동안, 책등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책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스무 권 정도는 있었지만, 가장자리 쪽에 모여 있다.
어쩐지 신경이 쓰여서, 한 권을 빼내어 보았다.
표지에도, 역시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다.
「뭔가 찾아냈나」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려 얼굴을 돌린다.
은색의 머리칼 위로 불꽃의 붉은색을 희미하게 일렁이며, 라이가 서 있었다.
「이거. 이 일대의 책만, 책등에 아무것도 안 적혀있어」
라이가 얼굴을 가까이 대듯이 하고 코노에의 손을 들여다본다.
표지를 펼치고, 몇 페이지를 넘겼다.
「찬아?」
같은 곳에 시선을 떨어트리자, 확실히 「찬아」라는 문자가 눈으로 들어왔다.
시선은 빨려들어가듯이, 그 다음의 문장을 뒤따라간다.
거기에는, 어느 찬아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선천적으로 찬아로서 특출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능력을 지녀, 찬아의 혈통 『쿠루이(來威)』는 아니었지만, 그 능력으로 인해 특례로 차기 찬아장 후보가 되었던 고양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고양이는 쿠루이 고양이들의 시기에 의해, 몇 년 전에 암살되어버린 듯하다.
그 고양이가 걸어가면 그 발자국에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나고, 바람은 부드럽게 그 뺨을 쓰다듬었다.
그 고양이의 노래는 투아 만이 아니라, 듣는 이의 마음을 송두리째 휘저으며, 한편으로는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한, 넉넉하고 신비한 힘이 있었다.
그 고양이의 노래는 온갖 생명을 사랑하며, 또 사랑받으며, 어둠 속에서 꿈틀대는 마물의 마음에조차 평온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다른 페이지도 팔랑팔랑 넘겨 본다.
아무래도 이것은, 란센을 중심으로 한 시사의 사건들을 정리한 기록장인 것 같다.
마물의 마음에조차 평온을 가져다 주었다는 찬아.
암살당했다고는 하지만, 어떤 고양이고, 어떤 노래를 불렀던 것일까.
노래를 울려퍼지게 한다는 것.
말과 선율에, 마음을 싣는다는 것.
찬아가 되고서 처음으로, 그 어려움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젠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지만, 이 고양이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능력을 가진 찬아인가. 한 번 같이 싸워보고 싶군」
「……아아」
라이의 말에 뜨끔 하고, 희미하게 짜증인지 초조인지 모를 무언가가 스친다.
그러나, 그 감각은 곧바로 시들어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조금 더 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것을 꺼내들어 본다.
이번에는 리비카에 대해서 쓰여 있는 듯하다.
멀고 먼 옛날의 이야기.
위대한 존재인 「신들」에 의해 탄생된 「두 지팡이」는 눈부신 진화를 이루어, 문명을 발달시켰지만, 어느날 「신들」에 의해 멸망되어 버린다.
「신들」은 「두 지팡이」와 함께 살아온, 생명 있는 것 모두를 흔적 없이 제거하려 했다.
멸망을 예감하고 있던 「두 지팡이」는, 모든 종족의 암컷과 수컷을 한 쌍씩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우리」에 격리시켰다.
그러나 「신들」의 분노가 가라앉은 후, 결국 살아남은 것은 「두 지팡이」의 수컷과 「고양이」의 암컷 뿐이었고, 이 두 마리도 거의 죽음에 다다른 상태였다.
「신들」 가운데, 이 사태를 몹시도 슬프게 여기는 자가 있었다.
그것은 자비심이 깊고, 생명을 귀히 여기던 여신 「리비카」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여신은 「고양이」의 안으로 들어가, 「두 지팡이」와 관계를 맺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켰다.
그 위에, 한번 멸종했던 모든 종족의 생명을 소환하여, 다시금 대지 위에서 숨쉬게 하였다.
이 일로 여신 「리비카」는 영원의 생명을 잃고, 「고양이」로서의 생을 살았다.
「리비카에 관련된 전설인가. 다양한 설이 있군」
「여신 리비카는 태양을 채 지탱해내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트려 달을 둘로 나누었다……. 시시하군」
「이 뒤는, 『두 지팡이』의 문명에 대한 거야」
「두 지팡이」의 문명에 대해서는, 수수께끼인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어지는 페이지에는 그림에 의한 해설이 덧붙은 설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두 지팡이」는 허다한 생명들 가운데 가장 지능이 높고, 종족별로 다른 언어를 지니며, 온갖 물건을 만들어 내어,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는 지극히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하늘을 비행하거나, 땅 속으로 잠복하거나, 바다 위에서 몇 일을 지낼 수 있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미적 감각도 뛰어나, 회화나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거나,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리비카의 선조이기도 한 「고양이」를 위시한 종족은, 「두 지팡이」에게 순종하고 있었다.
사실상, 「신들」을 잇는 대지의 「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였지만……
적혀 있는 이야기는, 리비카들이 잘 알고 있는 전설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이 그림, 도서관하고 무도회장이랑 똑같아. 게다가 잔뜩 있어」
얼굴을 들고, 도서관의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왜인지 방금 전 올려다 보았을 때보다도 훨씬 높아진 듯한 느낌이 들어, 희미하게 한기가 더해졌다.
「이런 건물보다, 땅 쪽이 따뜻한데. 이 그림에 보이는 이상은, 숲도 찾아볼 수 없어」
「그림 속에는 없다는 것뿐이겠지」
「……『두 지팡이』는, 어째서 멸종된 거라고 생각해?」
쓰여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다지도 우수했는데.
신들은, 대체 무엇이 불만이었던 것일까.
「신과 『두 지팡이』밖에는 모르는 일이다」
「……그렇네」
리비카들은 모두, 마음 속 어딘가에 「두 지팡이」에 대해 동경을 품고 있다.
코노에도 그 중 하나였다.
리비카들을 탄생시킨 존재이기에 「신」이기도 했고, 그 다채로운 능력에도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수의 언어를 구사하고, 하늘과 바다, 땅 속을 오가고, 수많은 물건을 만들어 냈다.
「두 지팡이」의 모습에 관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 같지만, 기다란 두 개의 지팡이와도 같은 다리라는 말을 들으면 우스운 모양밖에는 상상되지 않는다.
그만큼 두뇌가 발달되어 있었다는 것은, 터무니없이 머리가 큰 것이 아닐까라든지,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된다.
「고양이」에 대해서는 문헌 외에 몇 장의 그림이 발굴되어, 귀나 꼬리 따위가, 지금의 리비카들과 비슷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도, 소위 일반 고양이들은 대부분 「두 지팡이」의 문자를 읽을 수 없다.
문헌도 이렇게 리비카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면 읽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모든 고양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뒤의 페이지에는, 란센과 다른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는 듯했다.
책을 덮고, 본래 있던 장소에 돌려놓는다.
지금 것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기록이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리크스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이 제목 없는 책들 가운데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열에서, 다른 책을 꺼내들려 했던 때였다.
별안간 도서관 안의 빛이 사라졌다.
「……라젤?」
「조용히」
어둠 속, 불길한 공기가 팽팽히 조여든다.
숨을 죽이고, 귀를 세우고, 똑똑히 눈을 뜨고서 주위의 낌새를 살핀다.
……목소리가 들린다.
시끄러운 목소리.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윽, ……」
욱신, 하고 가슴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스쳤다.
의복의 가슴께를 내리누르고 이를 악문다.
심장이 고통스러운 고동의 속도를 높여간다.
이 느낌, 설마──
「……온 건가」
「이제야 행차하신 건가. 그치만 본체가 아닌 것 같군」
「본체?」
둥실 하고 공기가 흔들리고, 악마들이 허공에서 내려왔다.
「리크스가 아니란 말이라고. 말단이야 말단. 자 얼른 나가. 안 그럼 구경하러 온 고양이들이 말려든다고」
리크스가 아니다.
그것은, 코노에가 가장 잘 체감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가슴의 통증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없이 비슷한 이 통증은, 적어도 리크스의 부하가 가까이 다가온 상태라는 것이겠지.
곧바로 뒷문으로 가,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막힌 소리로 들려왔던 혼란이, 확실한 소리가 되어 귓속으로 날아들었다.
도서관의 정면까지 돌아간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무도회장 쪽에서 울려퍼져 온다.
도망친 것인지, 주변에 있었을 구경꾼이나 파수꾼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상대는 네 마리, 인가. 찬아와 투아인지는 모르겠군」
「우리는 둘씩, 고양이는 두 마리랑 한 마리로 각각 나눠지자. 고양이 한 마리는 힘에 부칠 테니까 상대는 하지 말고, 우리들 중 누군가가 있는 곳까지 유도해주면 돼」
라이가, 갑자기 코노에의 팔을 붙잡았다.
「너는 나하고 간다」
코노에는 무슨 일인가 싶어 놀랐지만, 그 막무가내인 태도에 울컥해 반사적으로 몸을 뺐다.
아사토가 라이를 노려보고, 낮게 으르렁거린다.
「멋대로 정하지 마」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라」
「! ……무슨 말을, ……」
똑바로 응시해오는 옅은 푸른색의 눈동자에 기가 눌려, 좋고 싫음을 따지지 않는 그 위압에 그 이상 항변할 수 없게 된다.
어째서 이 고양이는, 이렇게나 고집스러운 것일까.
그러나, 그 다음으로 내뱉어진 말에,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입을 다물었다.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만일의 경우가 생기면 노래해라」
「…………」
한 줄기의 물이 떨어져내려가는 것처럼, 마음속에서 사악 하고 무언가가 차게 식었다.
결국──
라이가 원하는 것은 찬아인 것이다.
자신의 힘을 증폭시킬 지원이, 지원만이 필요한 것이다.
이미, 몇 번이고 뼈저리게 통감해온 사실이다.
미간에 힘을 주고, 질세라 라이의 눈을 마주 노려본다.
붙잡힌 팔을 세차게 흔들어 떼어냈다.
「……알았어」
내뱉듯이 말을 입밖에 낸다.
그렇지만,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투아로서, 순수하게 싸우는 자로서 라이가 찬아를 찾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자기 자신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되어간다.
분함에 이를 가는 심정으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코노에는 꼬리를 좌우로 세게 흔들고 있었다.
눈동자에 살기와도 같은 빛을 끓어 올리고, 아사토가 라이를 매섭게 쏘아본다.
「……너는, 최악이야. 최악의 투아야」
「……뭐라고?」
라이의 표정이 험악한 빛을 띤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물어뜯을 듯한 두 마리의 사이에, 프라우드가 끼어들었다.
「네네네. 거기까지. 그런 짓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니까」
「쳇, 고양이 주제에 야하게 노닥거리지 말라고」
베르그가 언짢은 듯이 콧방귀를 뀐다.
그럼에도 라이와 아사토는 잠시 동안 노려보았지만, 이윽고 서로 얼굴을 돌렸다.
「그럼, 까만 야옹이 군은 우리들 중 누군가가 있는 곳까지, 한 마리를 끌고와 줘」
「……알았어」
「큰길로 나가면 소란스러워 진다. 저쪽으로 끌어들여」
라젤이 턱으로 가리킨 것은, 두 도서관 건물 사이로부터 이어진 길이었다.
폭이 좁고, 양쪽에 늘어선 나무들의 가지와 잎이 지붕처럼 서로 겹쳐져 있다.
안쪽에는, 숲이 펼쳐져 있었다.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무도회장의 문이 난폭하게 열린다.
허둥지둥거리는 구경꾼들이 몇 마리인가 귀를 숙이고, 꼬리를 내린 채로 바닥을 기는 듯이 비어져 나왔다.
그 뒤로, 네 개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림자는 제각기 색이 바랜 누더기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후드를 뒤집어 쓴 눈 언저리는 어둡게 그늘져 있지만, 눈동자만이 번뜩번뜩 하고 빛을 내고 있다.
그 쌍둥이 고양이들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그러나, 다르다.
네 마리의 고양이들은 발을 멈추고, 다시 코노에 쪽을 향했다.
잠깐 사이의 대치.
그것은 몹시도 근소한, 그러나 팽팽하게 긴장된 시간이었다.
한 마리가 전방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어서,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째도.
「어이!! 가자고!!!」
베르그가 웃으며 소리치고, 등 뒤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다른 악마와 고양이들도, 뒤를 이었다.
좁은 길을 빠져나간다.
한밤중, 오로지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나무들의 틈으로 음의 달이 나타났다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등 뒤로 네 마리의 살기를 느꼈다.
다가오고 있다.
달려나가는 자들을 비웃는 듯이, 나무들이 가지와 잎을 흔들며 수런거린다.
숲에 발을 들임과 동시에, 코노에와 악마들은 제각기,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프라우드와 카르츠, 라젤과 베르그, 아사토가 나무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이어서 코노에도, 라이와 함께 숲 속으로 달려갔다.
사실은 조금 전부터 계속, 가슴에 안개와도 같이 개운치 않은 무언가가 자욱이 들어차 있었다.
그것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공감의 통증과 겹쳐져, 점점 더 기분이 가라앉아간다.
물론,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떨쳐내려 하고 있었다.
땅을 힘껏 밟으며 달리는 소리는 자신들 이외에, 한 마리 더. 단독으로 뒤를 쫓아온다.
찬아와 한 패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노래를 부를 필요는 없어진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
갑자기, 수풀에서 그림자가 뛰어나왔다.
날카로운 바람이 눈앞을 가로지른다.
코노에는 즉시 재빠르게 옆으로 피한다.
적이 잠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에 혀를 찬다.
앞에서 달려가던 라이가 발을 멈추고, 코노에의 곁으로 돌아오려 한다. 그러나, 등 뒤까지 바싹 다가와 있던 적이 코노에를 그대로 지나치고서 라이에게로 향한다.
「……제길!」
머리 위에서 내려쳐진 일격을 검으로 막고 라이는 부득이하게 응전에 임한다.
그 사이에도, 코노에를 노리는 추격자 고양이가 용서 없이 연속으로 공격을 해왔다.
코노에도 검을 빼든다.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퍼부어지는 공격에 궁지에 몰리고 만다.
이래서는 라이와 협력할 수 없다.
허점을 찔린 탓에 호흡이 가빠져, 노래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초조함만이 쌓여간다.
「그대로 도망쳐!」
그 말이 자신을 향해 내뱉어진 것이라고 깨닫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라이는 눈앞의 적에게 집중한 채로, 목소리만을 코노에에게 내던졌다.
아마도, 코노에의 위치를 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것이리라.
「그치만, 너는……!」
「내가 이 녀석을 해치우는 동안, 나머지 한 마리의 눈을 다른 데로 돌려놔! 이리저리 도망치면 돼!」
「그치만……!」
「빨리 해! 방해가 된다고 하잖아!」
「……큭!」
코노에가 이곳에 있는 한, 라이는 코노에에게 신경을 쓰면서 싸울 것이다. 분하지만, 라이가 말하는 대로…… 찬아인 자신은 노래를 할 수 없다면, 지금으로선 발목을 붙잡을 뿐이다.
「제길…… 큭!」
굴욕감을 꾹 눌러 참으며, 코노에는 적에게 등을 돌리고 단숨에 달리기 시작했다.
코노에를 노리던 고양이는, 표적을 라이에게 옮기는 일 없이 뒤를 쫓아왔다.
──이대로, 주의를 돌려놓으면 되는 것일까.
반격의 기회를 엿보는 것은 이미 포기하고 있었다.
싸우다가 어설프게 궁지에 몰리면, 그거야말로 방해가 된다.
코노에는 오로지 나무숲의 사이를 이리저리 달려서 빠져나갔다.
추격자 고양이는 코노에 정도라면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여유까지 보이며 뒤쫓아온다.
얕보고 있다.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거기서 코노에는 깨닫는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것이 목적이었나?
코노에와 라이를 떼어놓기 위해, 그래서……
따로따로 싸우는 편이, 당연히 둘을 상대하는 것보다도 편하다.
그것도, 먼저 찬아를 쓰러트리면 압도적으로 유리해진다.
──함정에 빠진 건가.
약간의 무리를 해서라도, 라이의 곁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코노에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뒤쫓아 온 적과 마주본다.
추격자 고양이는 눈동자에 살기를 번뜩이며, 코노에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라이의 곁으로 돌아가자.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눈앞의 고양이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안 된다.
혼자서, 해치울 수 있을 것인가.
초조에 내몰리며 코노에가 검을 가로쥔 그 때, 등 뒤에서 수풀이 크게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
코노에는 전신의 털을 뻣뻣이 굳히고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서 나타난 얼굴에, 아연실색한다.
「……오」
수풀에서 얼굴을 내민 것은──바르도였다.
「……어째서, 당신이……」
「이쪽 부근에서 뭔가 소동이 일었다고 들어서 말야.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상황을 보러 왔는데」
깜짝 놀라는 코노에와는 대조적으로, 바르도의 말투는 느릿느릿한 평소의 그것이었다.
긴장된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바르도가 말한 것의 의미도 잘 알 수 없었다.
「상황이라니……, 왜, 이런 데까지」
「뭐…… 투아로서의 후각이랄까나. 한 번 물이 들어버리면, 그 물을 뺐다고 생각해도 좀처럼 빠지지 않는 것 같네」
「에?」
「그런 것보다, 저 녀석,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위험한 거 아냐?」
「……! 어이……」
순간, 바르도가 무언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을 입밖에 낸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쓸 수 없게 된다.
바르도가 태연히 코노에의 앞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마주본 시선의 끝에는 이빨을 드러낸 추격자 고양이가 있다.
그러고보니 이전에, 바르도는 라이에게 검술을 가르쳤다고 말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그 나름대로 검에 대한 소양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설령 그렇다고 해도──
바르도의 손을 보고, 코노에는 흠칫 놀란다.
「……바르도, 검은……!?」
「여기 있잖아」
그렇게 말하고 바르도가 치켜든 오른손에는, 두껍고 짧은 봉 모양의 무언가가 쥐어져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아도……
장작, 이었다.
「오는 길에 주워왔지」
태연하게 말을 내뱉는 그 말투에서는 공포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설마, 정말 그런 걸로 싸울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지만, 농담이라고 해도 성질이 나쁘다.
「지금은 장난칠 때가……」
그러나, 바르도는 곤혹스러워하는 코노에를 향해, 대담하게 씩 웃어보였다.
「장난치는 거 아냐. 이런 장작이라도, 검보다 나은 점이 세 개 있지」
태연히 누긋한 말을 하는 바르도에게, 추격자 고양이가 포효를 울리며 검을 휘둘렀다.
「위험해!」
무의식적으로 뛰쳐나가려 했던 코노에의 눈앞에──검은 정지하고 있었다.
바르도가 치켜든 장작에, 칼날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심경으로, 코노에는 그것을 바라본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은 아닐까라는 착각이 들었다.
「하나. 장작을 가르려고 한다면, 제대로 나뭇결을 보지 않으면 말이지. 어설프게 처박히면 좀처럼 빠지지 않아」
추격자 고양이가, 장작에서 검을 빼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팔을 흔든다.
그 타이밍을 재기라도 한 듯이, 바르도는 단박에 장작을 손에서 놓았다.
고양이는 여세를 이기지 못하고 균형을 잃어, 비틀거리고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꼴사나운 추태를 내보인 고양이는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지만, 장작에 박힌 채인 검은 단념한 것 같았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의 손톱을 드러내고 자세를 취한다.
「둘. 장작이라는 건, 대개 다발로 쌓여있지. 다시 말해서……」
바르도는 히죽 웃고는 등 뒤로 손을 돌려, 또 한 개비의 장작을 꺼내들고 자세를 취했다.
아무래도 허리띠 뒤쪽에 끼워두고 있었던 것 같다.
「몇 개비고 가져올 수 있다, 는 거다」
바르도의 빈틈없는 태세를 앞에 두고서, 적의 눈에 살기가 흔들린다.
추격자 고양이가 바르도에게로 덤벼든다.
바르도는 장작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손쉽게 공격을 피해간다.
코노에는 놀라움의 눈초리로, 그 전투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바르도는 단순한 여관의 주인 따위가 아니다.
싸우는 방식은 거칠게 힘에 맡기는 편이지만, 상당한 실력이다.
실제로 그 나름의 전투 능력을 지니고 있을 리크스의 추격자가, 단 한 주먹도 바르도에게 먹이지 못한다. 오히려, 장작에 흠씬 두들겨 맞고 있다.
그냥 이 상태로도 이길 수 있을 듯한 기세지만, 코노에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하다못해 노래라도 불러서, 지원을 하자.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내부에서 발현되는 하얀 빛의 이미지를 그리고, 희미하게 흐르는 선율을 듣는다.
그 의식을, 바르도에게로 쏟아냈다.
가슴에서부터 흘러넘치는 빛은 바르도에게로 흘러가, 그 커다란 몸을 감싼다.
「……오?」
바르도가 놀란 듯이 코노에 쪽을 돌아본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에 가득 찬 미소를 띠었다.
「……과연. 찬아였던 건가」
계속해서 집요하게 덤벼드는 고양이의 공격을 피하고, 바르도는 상대의 옆구리에 장작의 일격을 내리쳤다.
추격자 고양이가 비명을 지르고 옆쪽으로 멀리 날아간다.
누구의 눈에도 승패의 행방은 확연했다.
추격자 고양이는 겁에 질린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리고 도주하려 했다.
그러나, 바르도가 씨익 웃고서 날카롭게 적을 응시했다.
「마지막 하나. 장작의 좋은 점을 가르쳐, 주지!」
달리기 시작한 고양이의 움직임이 갑자기 멎었다.
그 몸이 쿵 하고 무릎을 꿇고, 지면으로 무너져 내린다.
──바르도가, 장작을 내던진 것이다.
그것은, 추격자 고양이의 뒤통수를 직격했다.
「장작이라면 버릴 작정으로 던져도 상관이 없지. 편리하지?」
바르도가 코노에 쪽을 돌아본다.
「너, 설마 찬아일 줄은 말이지. 놀랐지만, 어쨌든 덕분에 살았다고」
감사 인사를 들어도 제대로 실감이 들지 않았다.
필시 코노에의 노래가 없었어도, 바르도는 이겼을 것이다.
「……별로, 필요 없는 거 아니었어?」
「아냐. 덕분에 승부를 오래 끌지 않고 끝났어. 이제 나이가 나이니 말야, 몸 움직이는 건 피곤해서」
목덜미를 문지르며, 바르도는 천연덕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표정을, 코노에는 관찰이라도 하는 듯이 가만히 바라본다.
「……강하네, 당신」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바르도는 코노에에게로 시선을 옮기고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아-. 어떻게든 됐네. 뭐 다행이야」
나른한 어조로 대답하고, 여전히 손에 들고 있던 장작을 내동댕이친다.
「너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이쪽에 뭔가 있지 않을까라는 예전 그대로의 감 같은 거였지만 말야. 그런 거, 있잖아」
확실히 전투에 몸을 둔 자라면, 그런 직감을 느끼는 때가 있다.
그러나, 코노에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어떻게 하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추격자 고양이를, 바르도가 턱으로 가리킨다.
만약을 위해 낌새를 살펴보았지만, 당분간 눈을 뜰 기미는 없는 것 같다.
이 상태라면, 라이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는 잠든 상태로 있어주겠지.
「라이가 다른 한 마리랑 맞붙고 있어. 찾지 않으면」
「헤에. 뭐 그 녀석이라면, 그리 간단하게 엉망진창으로 쓰러지진 않겠지」
그에 대해서는 코노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이지 않고 코노에를 도망치게 했다는 것은, 일대일로 맞붙을 수 있는 상대라는 짐작이 있었던 것이리라.
아마도, 지금쯤은 이미 승부를 결정지은 것이 아닐까.
「아하하하!」
돌연, 정적을 찢는 듯한 드높은 웃음 소리가 메아리쳤다.
당장 얼굴을 들어, 주위로 시선을 돌린다.
머리 위의 공간이 일그러져, 알이 생성되는 듯이 자그마한 덩어리가 나타났다.
그 덩어리는 빙그르르 회전을 하고서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펼쳐, 공중에 멈춘 채로 양팔을 벌렸다.
작은 입술의 끝이, 부드럽게 치켜 올라간다.
「얏호-, 오랜만. 잘 지냈어? 재미는 있었나?」
「……너……!」
리크스의 찬아──휘리.
코노에는 전신의 털을 살기로 곤두세웠다.
바르도가 휘리를 응시한다.
「뭐야, 넌」
「뭐라니, 그쪽이야말로 뭐야. 땡땡이 고양이. 양의 탈을 뒤집어쓴, 거짓말쟁이 고양이」
「……아아?」
바르도가 노골적으로 언짢은 말투로, 한쪽 눈썹을 들어올린다.
「난 상황을 보러 온 거라고. 멍청한 네 녀석들이, 애쓰고 있을까나- 해서」
「리크스는, 어디 있지」
휘리는 콧노래라도 흥얼거릴 듯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보네, 말할 리가 없잖아. 그치만, 리크스 님이 어떻게 하고 계신지는 알려주지. 왜냐면, 이건 그 분의 놀이에 지나지 않으니까」
「놀이……?」
「그래, 놀이야. 리크스 님은 즐거워하고 계셔. 네가 의외로 맷집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래서, 와야 할 때가 올 때까지, 너에게도 최후의 자유를 즐기게 해주는 것 뿐이야」
「……!? 무슨 말이지」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휘리는 공중을 차고 한 바퀴 회전했다.
하늘에서 헤엄을 치는 듯 둥실 하고 몸을 뒤집어, 돌연 코노에의 눈앞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그 분은 네가 필사적으로 살고자 해서, 그 분이 계신 곳까지 오기를 기다리고 계셔. 지금 이 순간, 리크스 님이 너를 살려두고 계시는 거야. 그러니까 말야……」
거기서 말이 끊기고, 휘리의 입술이 싸늘한 미소로 벌려진다.
「너, 그 분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서, 더 발버둥치란 말야」
「……윽」
몸속 깊은 곳에 열이라고도 한기라고도 할 수 없는 탁류가 솟아오른다.
동시에 검을 빼들고, 덤벼들었다.
휘리의 몸이 가뿐하게 젖혀져, 검의 날 끝은 공허하게 바람을 가른다.
「그래 그래, 그 기세. 구경거리는 물이 좋지 않으면 안되지. 자, 좀 더 와보라고. 더 소리치지 않으면. 그 분께 닿지 않잖아?」
「닥쳐! 리크스는 어디에 있지!」
「아하핫」
휘리는 익살을 부리듯 오른쪽 왼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야단스러운 동작으로 천천히 한쪽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그럼, 나랑 같이 놀까. 이기면 알려주지」
「……윽!!」
충격 대신에 찾아든 것은, 빛이었다.
방대한, 눈을 감고 있어도 따가울 정도로 눈부신 빛이 작렬했다.
「……뭐야!?」
휘리의 곤혹스러운 목소리가 울린다.
코노에도 팔로 눈가를 가리며 얼굴을 찡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빛은 잠시 동안 주위를 뒤덮고, 이윽고 서서히 약해져 갔다.
눈꺼풀 너머로 빛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때, 코노에는 조심조심 눈을 떴다.
몇 번 깜박여 본다.
초목에 녹아든 어둠이, 시야에 비쳤다.
곁에는 바르도가 무릎을 꿇고 있다.
방금 전의 빛은, 대체…….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놀란다.
그곳에는, 그──음유시인 고양이가 서 있었다.
더 이상 눈부신 빛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음유시인의 몸 자체는 희미하게 발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르고 있던 기다란 천의 자락을 나부끼며, 음유시인이 코노에와 바르도를 돌아본다.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쓴 천의 그림자로 표정은 여전히 엿볼 수 없었지만, 문득 안도와도 같은 것을 느꼈다.
지켜주고 있다.
돌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길, 뭐야, 갑자기……」
휘리가 일어나, 음유시인을 노려본다.
「이 녀석, 너희들이랑 같은 패거리? 이런 게 있다고는, 들은 적 없어」
음유시인은 조용히 다시금 휘리를 향하고, 두르고 있던 천의 아래에 감춰졌던 꼬리를 크게 흔들었다.
말도 으르렁대는 소리도 없다.
그렇지만, 음유시인으로부터는 저항하기 힘든 위압의 공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휘리는 질 수 없다는 듯이 턱을 당기고, 음유시인을 한층 더 매섭게 노려보았지만, 이내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뭐야, 뭐야 너. 리크스 님께 일러주겠어!」
아이 같은 대사를 내뱉고서, 휘리는 땅을 박차고 높이 도약했다.
「거기 서!」
휘리의 몸은 공중에서 빙그르르 회전하고서, 어둠에 뒤섞이듯이 사라졌다.
코노에도 바르도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잠시 그곳에 붙박여 있었다.
밤의 정적이 달빛과 함께 내려와 땅 위에 쌓인다.
의식은 유달리 선명한데도, 현실감 없이 들뜬 느낌이 든다.
시야에는, 긴 천자락을 두른 환상과도 같은 뒷모습이 비치고 있다.
또, 나타났다.
그 음유시인이다.
바르도가 경계에 귀를 숙이고, 음유시인을 노려본다.
「……뭐야, 저 고양이」
「적이 아냐」
「알고 있는 거야?」
고개를 끄덕이자, 바르도는 복잡해 보이는 얼굴을 했다.
음유시인을 수상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겠지.
「몇 번이고 날 도와줬어」
「……믿을 수 있나?」
「아아」
코노에는 바르도에게 강한 눈빛을 보낸다.
「믿을 수 있어」
「……그래」
바르도가 몇 번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괜찮겠지」
그 대답에, 코노에는 무심결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코노에는 다시금, 음유시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의 빛, 당신이었지. ……덕분에 살았어」
솔직한 마음으로 그렇게 전한다.
반응이 없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어째서인지 늘 자신을 이끌어 준다.
도움을 준다.
확실히 그것은 불가사의한 일인데다, 얼마든지 의심할 여지는 있다.
그래도, 의심하고자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음유시인의 주위를 감도는 공기와 연주하는 음악의 탓인지도 모른다.
음유시인이 손톱으로 악기를 탄다.
하나, 둘.
튕겨져 나온 음이 흐름이 되어, 고요하게 공기를 진동시킨다.
무심결에 넋을 잃고 그것을 들었다.
온몸의 통증이나 삐걱임, 거칠어진 마음마저도 어루만져주는 듯한, 상냥하고 애절한 음율이었다.
가사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애도의 곡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율은 하늘로 올라가, 영혼이 헤매지 않도록 이끌어 간다.
귀로 직접 스며드는 기분 좋은 소리에 몸을 맡기고 있자, 돌연 뚝 하고 연주가 그쳤다.
어느샌가 감고 있었던 눈을 뜨고, 음유시인을 본다.
천의 그림자에 가려진 얼굴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보이는 입술이, 희미하게 움직인다.
──따라.
──와.
그렇게 말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따라오라는 거야?……?」
『공허』의 숲에서 헤맸던, 그때처럼.
당연히 대답은 없이, 음유시인은 조용히 발길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일어서려 하다가, 몸을 관통하는 아픔에 얼굴을 찡그린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멀어져 있었던 감각이 되돌아 왔다.
그만 무릎이 꺾인다. 바르도가 팔을 붙잡고, 조금 강제적인 힘으로 코노에를 일으켜 세웠다.
「어이 어이, 정신 차리라고. 괜찮아?」
「뒤를 따라가지 않으면……」
「저 녀석이 어디로 갈 건지, 알고 있는 건가?」
「몰라. 그치만, 따라오라고 했어」
바르도는 미간을 좁히고 시선을 발치로 떨어트리고는, 잠시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신뢰해도 되는 거지」
「아아. 적어도, 나는 저 음유시인을 믿어」
「…………」
바르도가 다시금 입을 다물었지만, 마음을 정한 듯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알았다고」
내심 안도하며, 코노에는 어둠에 묻혀가는 음유시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가자」
바르도와 함께, 코노에는 음유시인의 뒤를 쫓았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숲의 밤에, 흔들리는 가지와 잎이 어둠의 농도를 휘젓고 있다.
횃불도 없이, 미덥지 않은 달빛만이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음유시인은 희미하게 옷이 스치는 소리를 남기며 길을 걸어간다.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이따금 불안이 가슴 속을 스쳤지만, 그때마다 애써 그것을 지워냈다.
분명 음유시인 고양이는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랬다.
그러니까, 반드시.
음유시인은 등 뒤를 돌아보는 일도 없이, 미끄러지듯이 밤의 어둠 속을 걸어간다.
머리 위로 시선을 던진다. 도려내진 그림자 인형처럼 나무들의 가지와 수풀이 하늘에 걸려있다.
같은 광경임에도, 이곳은 『공허』에 침식되어 있지 않다.
문득, 카로우의 숲이 생각났다.
그 숲에, 자신의 영역은 아직 살아있는 것일까.
다른 고양이에게 뺏겼다든지 그런 것이 아니라, 발을 들이는 것이 가능할까.
오늘도 누군가가 제물이 되어서, 누군가의 양식이 됐을까.
란센에 있으면, 그런 것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착실히 『공허』는 이 땅을 침식하고 있다.
언젠가 모든 것이 『공허』에 삼켜지고, 고양이들이 「실구」로 멸종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좀 전에 휘리는, 「와야할 때」가 올 때까지, 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까지, 코노에에게는 최후의 자유를 즐기게 해주고 있을 뿐이라고.
「와야할 때」──
모든 것이 멸망하는 때가, 그것일까.
리크스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그때,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걸어가면서 생각에 몰두하고 있자, 문득 전방에서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
털이 곤두서고, 귀를 숙이고 뒤쪽으로 몇 걸음 달아난다.
등에 무언가가 부딪쳐서 더욱더 놀라, 곧바로 뒤를 돌아봤다.
부딪친 것은 바르도였다.
「어이 어이, 괜찮은 거야?」
「잠깐, 생각에 빠져 있었어」
과민하게 반응해버린 것이 겸연쩍게 느껴져, 고개를 숙인다.
마음을 고쳐잡고 다시금 걷기 시작하려 했을 때, 나무숲 사이에서 그림자가 흔들렸다.
은백색이 시야를 스친다.
나타난 것은, 라이였다.
「꽤나 긴 여행이었던 것 같군」
라이는 코노에와 바르도를 보자마자…… 특히 바르도를 눈으로 본 순간, 그 눈초리를 험악한 것으로 바꾸었다.
「코노에」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이어지고, 이번에는 나무숲의 어둠에서 아사토가 나타났다.
「겨우 찾아냈어. ……다행이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정말이지, 네녀석들은」
아사토의 뒤에서 악마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어쩌면, 음유시인이 서로 만나게끔 이끌어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확실히 그 자리에 있었을 긴 천을 두른 뒷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근처에 있는 나무숲에도 눈을 돌려보지만, 없다.
「음유시인은?」
「글쎄」
아주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사라진 것인가.
그러나, 그리 이상하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그런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이쪽은 정리가 됐지만. 그쪽은 잘 된거야?」
「그럭저럭」
대답하며 바르도에게로 시선을 흘려보내고는, 그 이마에 희미하게 땀이 배어있는 것을 깨닫는다.
왼손으로 오른팔을 강하게 누르고 있다.
「……다친 거야?」
「……아? 아니」
바르도가 다소 여유가 없는 눈빛을 코노에에게로 던진다.
돌연 라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냉엄한 표정으로 바르도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얼토당토않은 대가로군」
라이의 냉랭한 말의 의미는, 코노에로서는 알 수 없었다.
「이제 와서, 여관의 주인이라고. 웃기는군」
「…………」
바르도가 입술을 굳게 다문다.
마치 칼날과도 같은 공기가 두 마리의 사이를 흐른다.
코노에와 아사토는 분위기에 눌려 입을 다물고, 악마들은 왜인지 흥미진진한 듯한 기색으로 두 마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윽고 베르그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이런 데서 멍-하니 서 있을 생각이야. 이봐, 냉큼 이동하자고」
바르도와 라이의 사이에 성큼성큼 끼어든 베르그가, 두 마리의 가슴을 밀어서 멀리 떨어트려놓는다.
「여관으로 돌아간다」
라젤이 부르는 소리에, 라이는 곧바로 발걸음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괜찮아?」
「……아아」
고개를 떨군 바르도의 표정은 어둡고, 대답하는 목소리는 낮고 억양이 없었다.
방금 전의, 라이가 한 말 때문일까.
역시──이 두 마리 사이에는 예전에 가깝게 지냈던 사이라고 한 마디로는 정리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확신이 되어가는 생각을 품으며, 코노에도 다른 일행들과 함께 번화가를 향해 숲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숲을 빠져나가니, 도서관과 무도회장 쪽에서는 가벼운 소동이 일어나 있었다.
그 떠들썩함에 뒤섞이며, 코노에들은 발빠르게 큰길로 나와 여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성대한 겨울 축제가 끝나고, 날이 밝았다.
다음날은 길거리나 노점에서 장식이 철거되어서, 마치 요 3일 간의 축제가 꿈이기라도 해던 것처럼 평상시의 광경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나, 큰길을 가득 메운 채 흘러가는 고양이의 물결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껏 흥취를 즐긴 축제의 여운이 아직 희미하게 감돌고 있었다.
코노에는 라이, 아사토와 함께 여관의 식당에 있었다.
악마들은, 이미 제각각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위해 흩어져 있었다.
식당에 모습을 나타낸 바르도에게, 약속대로 어젯밤에 있었던 일과 자신들의 목적, 악마들에 대한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일의 전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 바르도는 복잡한 얼굴로 턱수염을 문지르고 꼬리를 흔들며, 발치의 바닥을 노려보았다.
「……그 밖에, 묻고 싶은 건?」
「……아니, 딱히 없어. 다만, 음, 세상 일이란 건 참 묘한 거로군……」
바르도가 얼굴을 위쪽으로 향한 채, 긴 한숨을 내쉰다.
「……저기, 싫다거나 하지는 않은 거야?」
「싫어?」
「당신 입장에서는, 우리들은 성가신 손님이잖아. 그러니까……」
「아아」
보통 같았으면 내쫓을 것이 분명하다.
코노에의 질문에, 바르도는 느릿느릿 한쪽 손을 저었다.
「그런 거 일일이 신경쓰지 말라고. 그런 사정이 있는 걸 가차없이 내쫓을 정도로 마음이 좁은 것도 아니고, 결벽증이 있는 것도 아냐. 물건만 안 부순다면 괜찮아」
「말은 잘 하지」
벽에 기대고 있던 라이가, 얼굴을 돌린 채 불쑥 중얼거렸다.
바르도는 곁눈으로 라이를 흘긋 보았지만, 딱히 무슨 말을 하지는 않고, 다시금 코노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리크스란 말이지. 그래서 도서관에 가고 싶어 했던 건가. 찾는 물건은 발견한 거야?」
「아아, 일단. 그치만, 지금의 상황에 힌트가 될 만한 건, 결국 알 수 없었어」
「그래」
결국 코노에는 시사와 리비카에 관련된 이야기밖에는 읽지 못했지만, 악마들이 몇 가지를 찾아냈다.
소문대로, 리크스는 아주 먼 옛날부터 실력 있는 마술사로서 알려졌던 것 같다. 란센이 만들어졌을 즈음에는, 근처의 숲에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지만,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문헌을 찾아본 한,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른 고양이들이 기분 나쁘게 여겼던 것 같긴 하지만, 지금처럼 악명이 높았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느 한 시점부터 돌변해서, 재앙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고 한다.
아사토가 작게 꼬리를 흔들며, 발치의 한 점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리크스는, 오랜 시간을 혼자 살아서……,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거겠지」
「……그런 걸지도 몰라」
그때, 희미하게 열려 있던 창문의 틈으로부터 불꽃의 입자가 흩날려 들어왔다.
「불꽃 입자? 왜 바깥에서……」
바르도가 고개를 갸웃거림과 동시에, 돌연 불꽃 입자가 천장을 그을릴 정도로 높게 치솟아올랐다.
「……이런」
바르도가 재빨리 물러선다. 코노에도, 반사적으로 귀를 숙이고 뒷걸음을 쳤다.
불을 싫어하는 코노에가 활활 타오르는 불을 목전에 두고도 달아나지 않고 있었던 것은, 그 정체가 대충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머리 나쁜 연출이로군」
라이가 질렸다는 듯이 혼잣말을 내뱉는다.
불꽃 속에 검은 그림자가 일어난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생각했던 대로, 베르그였다.
「여어여어 고양이들, 이렇게 집합을 해서는. 이 베르그 님을 마중나온 건가?」
어깨를 추켜 올리면서 앞으로 나오며, 베르그는 히죽 하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등 뒤에서 불꽃이 스륵 하고 사라진다.
「우연히겠지」
「귀염성 없네, 고양이 주제에」
콧잔등을 찡그리며, 베르그가 양손을 허리에 댄다.
「악마는 진짜로 뭐든 할 수 있네. 대단해 대단해」
짝짝 하고 맥아리 없는 박수 소리가 울린다.
「……너, 지금 날 바보 취급한 거지」
「뭐 하러 온 거지, 너」
「특별히 의미는 없어. 평범하게 돌아온 것 뿐이라고. 랄-까 말야, 나름대로 리크스의 낌새며 동향이며, 찾아봤는데 말이지」
베르그가 꽤나 무거운 한숨을 호쾌하게 내뱉는다.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 일단, 우리들은 고양이보다 알아채기 쉬우니까 말야, 머리카락 한 올 정도라도 느껴지거나 할 텐데, 이상하리만치 아무것도 없어」
「사라진 거야?」
「그럴 리가 없지-. 녀석,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나 본데……」
혀를 차며, 베르그가 짜증스럽게 꼬리를 흔들었다.
철사와도 같은 그것은 리비카들의 꼬리와는 다르다. 신기한 광경에 그만 눈으로 쫓고 만다.
「리비카와 악마의 협력 플레이인가. 어지간해서는 볼 수 없는 일이로군」
바르도가 웃으면서 불쑥 말을 뱉자, 베르그가 눈을 부릅떴다.
「하아!?!?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호피!! 우리들, ……아니지, 나는 나를 위해서 행동하고 있어. 협력 같은 말 하지 말라고, 기분 나쁘게」
「고양이랑은 어쩌다 목적이 일치했을 뿐이야. 힘만 되찾으면, 저 녀석은 내가 먹을 거니까」
불쑥 내밀어진 기다란 팔의 끝, 검지손가락이 똑바로 코노에를 가리킨다.
코노에의 꼬리가 희미하게 경직되었다. 먹힐까보냐.
아사토가 조용히 털을 곤두세우고, 베르그를 노려본다.
「그러면 나는, 널 죽인다」
「아아? 뭣하면 그 김에 너도 먹어버릴까?」
도발적인 미소를 띄운 입술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베르그가 아사토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댄다. 아사토가 낮게 으르렁댄다.
「예 예, 내가 잘못했다고」
바르도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두 마리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베르그의 가슴을 한쪽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제지했다.
「당신도, 고양이를 깔볼 거라면 너무 진지해지지 마. 약자를 괴롭히는 것 같다고」
「쳇, 시끄러」
베르그는 거칠게 말을 뱉으며 바르도의 팔을 밀쳐내고, 성큼성큼 걸어서 식당에서 나간다.
아무래도 2층으로 올라간 듯,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천장에서 울려퍼졌다.
「이런 이런……」
눈을 위로 뜨고 천장을 보던 바르도가 눈썹 꼬리를 축 내리고, 작게 한숨을 쉬고서 시선을 아사토에게로 옮겼다.
「당신도 꽤나 저 녀석한테 홀딱 빠져 있네」
「……코노에는, 특별해」
「호오. 잘도 길들였네」
바르도가 수상쩍게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 코노에를 본다.
「어디의 누구랑 똑같은 말 하지 마」
곁눈으로 라이 쪽에 시선을 던진다. 라이는 좀 전부터 줄곧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어서, 이쪽의 이야기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근데 악마들은 다, 저런 식으로 이유 없이 고양이를 싫어하나?」
「……글쎄」
적어도 베르그 외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말하지 않는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정색하고 싫어하는 쪽도 좀 그런 것 같지만 말야. 우리들이 그렇게 미운 걸까나. ……뭐어, 어찌 되든 상관 없어」
능청을 떨듯이 어깨를 움츠리고서, 바르도는 양팔을 넓게 펼쳐 기지개를 켰다.
줄무늬 꼬리의 끝 부분이 작게 진동한다.
「건 그렇고, 일 하지 않으면 접수처가 계속 비게 돼. 그럼 이만, 어제는 수고가 많았다고」
한쪽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바르도가 접수처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서, 코노에는 아사토와 라이 쪽을 돌아본다.
「……리크스의 낌새가 없다, 라」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한 채로, 라이가 불쑥 중얼거린다.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찡그린 험악한 표정을 하고 있다.
확실히, 코노에도 신경은 쓰였다.
악마들이 손을 들었다면, 코노에들도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리크스는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인가──
어쩐지 선뜩해지는 듯한 막연한 예감을 끌어안으며, 코노에들은 그 상태로 잠시 식당에서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설거지를 끝낸 식기류를 선반에 올려놓으며, 바르도는 방금 전에 들은 이야기를 비몽사몽한 심경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거짓말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악마나 리크스 따위의 것들은 평범하게 살고 있는 고양이의 시점에서는, 그야말로 공상 속의 존재와 다름없는 것이다.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있다고 믿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아직 어딘지 반신반의한 느낌이 있었다.
그렇지만──어젯밤의 일을 떠올린다.
숲에서 맞붙었던, 괴이하게 번뜩이는 눈을 했던 고양이.
그것에는 확실히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최근에는 『공허』와 「실구」의 피해도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고 들었다.
평온한 일상의 이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코노에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어도, 이전부터 왜인지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계는, 확실히 파멸을 향해가고 있다.
고양이들은 필사적으로 평온한 척을 하려고 하지만, 결국은 모두──멸종되는 것이다.
바르도는 무의식적으로, 천에 뒤덮인 오른손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꺼림칙한 것을 본 듯이 눈썹을 찡그렸다.
등 뒤에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나, 돌아본다.
문간에 낯익은 모습이 서 있었다.
흰색으로 보일 정도의 은색의 짧은 머리에 뿔이 달린, 체격도 옷차림도 야단스러운…… 악마다.
「여어」
「……아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진귀한 손님에, 바르도는 한풀 꺾인 대답을 했다.
「뭐야, 그 얼굴은. 내가 오면 안 된다는 거야 뭐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당신들의 정체를 안 거, 방금 전이니까 말야. 조금 당황했어. 뭐, 머지않아 익숙해질 테니까 내버려두라고」
마음을 새로 잡고, 바르도는 남은 식기를 정리하기 위해 다시 식기장 쪽을 향한다.
「헤에. 초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아?」
무심결에 어깨 너머로 돌아본다.
「초면이잖아? 악마 지인 따위, 지금까지 만든 기억이 없는데」
바르도가 의아스러운 얼굴을 하자, 베르그는 의미심장하게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대로 주방의 중앙 정도까지 와서,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댄다.
「너 말야……, 그거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오른팔」
순간, 바르도의 뺨이 경직된다.
그와는 반대로 베르그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더 깊게 미소를 지었다.
「냄새가 난단 말이지. 어중간한 냄새가 난다고. ……너 말야, 계약하려고 했었지」
「…………」
「숨겨도 소용없다고? 우리들은 알 수 있어. 똑같은 냄새를 말이지」
바르도는 험악한 표정으로 베르그를 노려본다.
그러나, 베르그는 신경 쓰는 기색도 없이 말을 잇는다.
「그치만 그래서는 고통스럽겠지. 너, 평생 그걸 지고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 말야」
「……당신, 뭘 알고 있지」
「너는 뭘 알고 싶지」
그것은, 바르도가 알고 싶은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노골적으로 도발적인 말투였다.
뱃속에서 화끈, 하고 화가 터져 오르는 것을 느끼며, 바르도는 입을 연다.
손바닥에 희미하게 식은땀이 배어 있다.
「…………, ……무효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건가」
「아-니. 유감이지만 무리네」
단박에 잘라 말하고, 베르그는 딱딱한 성질의 검은 꼬리를 희미하게 흔든다.
「계약이라는 건 집행하는 녀석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그러니까, 무효로 돌릴 방법도 네 상대를 했던 녀석이 아니면 알 수 없다고」
「……그런가」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땀이 스민 왼손으로 오른팔을 붙잡고, 바르도는 고개를 떨궜다.
가슴속이, 고요한 낙담에 깊숙이 잠겨간다.
「계약하려고 했다는 건 말야, 무언가를 갈구했다는 거네. 그 냄새, 힘인가?」
「…………」
「힘을 원했던 이유는, 뭐지」
돌연 베르그가 목소리를 낮게 줄이고, 질문을 들이밀었다.
뱀과도 같은 두 눈이 조용히 바르도를 포착한다.
「너는 말야, 어째서 힘을 갈구했지? 무엇을 위해서 힘을 원했던 거야」
「……그건」
궁지에 내몰린 듯한 느낌이 들어, 바르도는 눈을 돌린다.
궁지에 내몰린다──무엇에?
베르그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인가.
「그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억지로 쥐어짜낸 목소리는, 상대에게 전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하게 잠겨있었다.
베르그는 그 대답을 듣고는 진지한 얼굴이 되어, 후 하고 숨을 내쉬고서는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헤에? 아 그래」
모욕의 빛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냉담한 조소를 띄우며, 베르그는 벽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선선히 등을 돌렸다.
「…………」
극심한 패배감과 굴욕을 맛보며, 바르도는 그 등을 세차게 노려본다.
「소중한 것……, 소중한 것.
정말로 저 좋을대로인 거짓말이다. 최고의 갑옷이로군 그래……」
자리를 뜨기 직전, 베르그가 중얼거린 날숨으로만 이루어진 말은, 바르도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몸차림을 정리하기 위해, 코노에는 라이와 함께 한 차례 방으로 돌아갔다.
라이가 밖으로 나간다면 따라서 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준비를 하고 있으니,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 밖에는 바르도가 서 있었다.
무심결에 열린 문의 틈새를 좁히고, 코노에는 얼굴만을 내보인다.
그런 짓을 해도 라이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겠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었다.
「오우」
「무슨 일 있었어?」
「잠깐 도와줬으면 하는 게 있어서 말야. 부탁해도 되나」
「뭘」
「빌렸던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러 가고 싶은데, 꽤 많은 양이라서 말야. 반, 아니, 두, 세 권이라도 좋아. 들고 가주지 않을래」
「그건 별로 상관 없지만……」
그렇게 대답한 참에, 뒤에서 문이 세차게 열렸다.
문에 바짝 기대고 있던 코노에는, 몸이 앞으로 기울어져 넘어질 뻔한다.
등 뒤에는 무서울 정도로 언짢은 얼굴을 한 라이가 있었다.
「어이쿠」
라이는 코노에를 밀어제치고 방에서 나와, 눈앞에 선 바르도를 세차게 노려보고,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 버렸다.
「아……」
왜인지 몹시 나쁜 짓을 한 듯한 기분이 들어, 코노에는 귀를 숙인다.
「혹시, 약속이라도 한 건가. 방해가 됐나?」
느릿한 어조로, 바르도는 라이가 내려간 계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그런 건 아냐」
좌우로 작게 고개를 젓는다.
만약 따라간다고 했어도 거절당했을지도 모른다.
라이에 대한 서먹서먹함은 있었지만, 딱히 나쁜 짓을 저지른 것은 아닌 것이다.
「괜찮아?」
「아아」
「그럼, 잠깐 밑으로 내려와 줘」
바르도의 뒤를 따라서, 코노에는 계단을 내려갔다.
바르도가 코노에를 데리고 간 곳은, 접수처의 안쪽에 있는 주방과 근접한 방이었다.
이전부터 무슨 방인지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바르도의 개인실인 것 같다.
바르도가 문을 열고서 코노에가 안으로 들어가게끔 한다.
한 발짝 내딛자마자, 코노에는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마치 침입자를 저지하는 보루처럼, 문 앞에 책이 죽 늘어서 있다.
「……일 안 하는 때는, 뭐 하면서 지내는 거야?」
「뭐, 보는 바대로 독서라는 느낌이네」
무심결에 안 어울려, 라고 말하려 하다가 입을 닫는다.
「이거, 전부?」
「아아」
깜짝 놀라는 코노에를 본체만체하고, 바르도는 쌓아두었던 두꺼운 책을 몇 권 한데 모아서 가뿐히 옆구리에 끼었다.
근육이 융기하는 두꺼운 팔을 보고, 왜인지 코노에는 언짢은 기분이 된다.
딱히 일부러 보란 듯이 자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보다도 명백하게 다부진 체격이기에 열등감을 자극당한다.
이 정도라면 혼자서도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자, 바르도가 산더미처럼 쌓인 책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쪽의 다섯 권, 들고 가줘」
한 번 제의를 받아들였기에 거절을 할 수도 없이, 코노에는 마지못해 다섯 권의 책을 들어올렸다. 바르도가 들고 있는 책에 비하면 얇지만, 그래도 양팔에 묵직하게 무게가 실린다.
오래된 책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살며시 스쳤다.
책등의 문자를 눈으로 더듬어본다.
대부분이 코노에에게는 해독 불가능한 문자였지만, 그럼에도 몇 개는 읽을 수 있었다.
악마, 마술…….
다섯 권 중에 네 권에는 그 가운데 어느 한 쪽, 또는 양쪽의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쩐지, 불온한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엄청난 책을 읽고 있네」
「이 정도 나이를 먹으면, 이래저래 단조로운 것에 신물이 나서 말이지. 다른 세계의 것을 알고 싶어진다고」
그런 것일까.
아무래도, 바르도와 악마라는 조합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 가자고」
코노에는 책을 품에 안고, 바르도와 함께 여관을 나와 큰길의 거리를 걸었다.
겨울 축제가 끝난 탓에, 거리를 걸어가는 고양이들의 수는 꽤나 줄어든 것 같다.
공기에 열이 배인 독특한 분위기도 완전히 사라져서, 지금은 한바탕 왁자지껄하게 떠든 후의 노곤함이 감돌고 있다.
북쪽을 향해서 큰길을 똑바로 나아가자, 축제가 개최되던 동안에는 무도회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 보인다.
부근에 고양이의 모습은 거의 없고, 장식도 제거되어서, 똑같은 건물임에도 꽤나 쓸쓸한 인상을 준다.
「평소에는, 이런 거야?」
「뭐 그렇지. 도서관의 책 따위, 별로 평소의 생활에 도움을 줄만한 게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어지간히 별난 고양이가 아니라면, 가까이하지 않지」
그렇다는 말은, 바르도는 그 별난 고양이의 부류에 들어간다는 것이겠지.
바르도가 책을 끌어안은 채, 몸으로 문을 밀어서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코노에도 그 뒤를 따라갔다.
도서관 안은 외관과 똑같이, 휑했다. 바깥보다도 기온이 낮은 듯한 느낌이 든다. 무도회가 열렸던 큰 방의 문도, 지금은 닫혀있다.
그것을 곁눈으로 바라보며, 코노에는 바르도의 뒤를 따라서 뒷문을 빠져나갔다.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도, 훤한 대낮의 하늘 아래서 보니 꽤나 인상이 다르다. 쓸쓸한 분위기인 것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어제 몰래 들어갔던 것과는 다른 한 채의 건물로 들어간다.
건물은 달라도, 그 압도적인 넓이와 그 안을 채우는 밀도는 똑같았다.
「잠깐, 책 돌려주고 올게」
바르도는 들고 있던 책들을 한쪽 팔에 모아서 끌어안고, 빈손으로 코노에가 들고 온 다섯 권을 받아들었다.
「……역시 혼자서도 괜찮았던 거 아냐?」
「뭐어,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 주변의 책이라도 보고 있어. 바로 끝나니까」
그렇게 말하고, 바르도는 재빠르게 안쪽으로 들어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코노에는 이렇다 할 목적도 없이 서가 사이를 이리저리 걸어다닌다.
지금까지 특별히 책에 흥미를 가진 적은 없었지만, 이렇게 보고 있으니 꽤나 흥미롭다.
한마디로 책이라고 해도, 크기나 두께도 제각각이고, 책등의 색이나 소재도 다르다. 유달리 크고 호화스런 제본의 책이 있다 싶으면, 그보다 더 굉장한 책이 반대편의 책장에 있거나 한다.
어느 사이엔가 코노에는 책 구경에 몰두해서, 제일 화려한 책은 무엇일까 하는 것 따위를 찾기 시작했다.
숲처럼 줄지어 선 서가의 사이를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꽤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거기서 코노에는, 가까스로 만족할만한 한 권을 발견했다.
그것은 결코 호화스런 제본은 아니고, 오히려 조금 때가 탄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책이었다.
그러나, 군데군데 금박이 벗겨진 인쇄된 글자나, 일종의 무늬처럼 가느다란 금으로 뒤덮인 두꺼운 가죽의 표지가, 다른 어떤 책보다도 위엄을 발산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자극되어, 손에 들어본다. 묵직한 무게가 손바닥에 느껴졌다.
별안간, 두근 하고 심장이 뒤었다.
빛 같은 것이 언뜻 뇌리를 스친다.
이것은──기억을 읽게 될 전조다.
코노에로서는 그럴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지만, 이 책에는 그 정도로 강한 정념이 담겨있는 것일까.
순간, 억지로 끌려들어가듯이 시야가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되지 않는 채, 코노에는 혼란에 빠진다.
기묘한 목소리가 고막에 울렸다. 그것은 몹시도 미약한 목소리로, 어떤 주문처럼도 들렸다.
「……?」
의미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귓속에 달라붙는 듯한, 기묘한 여운을 남기는 울림이 있었다.
갑자기 어둠이 걷히고, 도서관의 광경이 돌아온다. 대체, 지금 것은 무엇이었을까.
의아스러운 심경으로 손 안의 책으로 시선을 떨어트린다. 제목으로 적혀있는 글자는 몹시도 난해해서, 의미도 읽는 방법도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눈으로 몇 번 그 글자를 덧그리는 사이에, 방금 전 들렸던 의문의 목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났다. 무심결에, 그 말을 반복하듯이 입 밖에 낸다.
순간, 책의 표지가 맥박을 치는 것처럼 부들부들 진동했다.
「!?」
코노에는 꼬리를 곤두세우고는 책을 내팽개치고 재빨리 피했다.
지금 것은, 착각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어디서부터라고 할 것 없이 바람이 불어 닥쳐와, 바닥에 떨어진 책의 표지가 걷어 올려졌다. 낡아서 바래진 페이지가 팔랑팔랑 젖혀져간다. 그 틈새기에서, 무언가 거무스름한 안개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뭐하는 거야, 어이」
갑자기 등 뒤에서 어깨를 붙잡혀, 코노에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뒤를 돌아보니, 바르도가 서 있었다.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것도 잠시, 코노에는 시선으로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책을 바르도에게 가리켰다.
연기는 점점 짙음을 더해가며 검은 윤곽을 형성하고, 세 개의 무시무시한 형체가 되어간다.
그 가운데 두 개가, 스윽 하고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뭐가……」
「……바보, 도망쳐!」
바르도가 코노에의 팔을 붙잡고, 서가의 그늘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커다란 손바닥에 입이 틀어막힌다.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서, 코노에는 항의의 시선을 보냈지만, 바르도의 표정은 진지함 그 자체였다.
어쨌든 입 위에 얹혀진 손을 치워내고자, 코노에는 바르도의 팔을 가볍게 쳤다.
손이 떨어지고 나서, 코노에도 가만히 책 쪽을 들여다본다.
책에서 나타난 검은 연기는, 흐릿한 윤곽을 진동시키며 꿈틀꿈틀 기어다니고 있다.
무슨 생물체인 것일까.
도마뱀과 비슷하다.
「……조무래기 악마로군」
눌러 죽인 목소리로, 바르도가 경멸의 빛을 띤 어조로 중얼거렸다.
「……악마?」
「악마가 봉인된 아득히 먼 옜날의 마술서다. 보통은 기밀 서적으로 저쪽 건물에 보관되는데, 가끔 이쪽에 섞여 들어올 때가 있지. ……그렇지만, 이상하군」
바르도가 눈썹을 찡그리고, 약간 고개를 갸웃거린다.
「주문이라도 외우지 않는 한, 그렇게 간단하게 봉인이 풀릴 리가 없는데 말이지」
의아스러운 시선이 코노에를 향한다.
「……뭐, 네가 그런 주문을 알고 있을 리도 없고 말야」
「…………」
──설마, 라는 생각이 든다.
설마, 방금 전 들렸던 의미불명의 목소리가 주문이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은 그것을 그만 입에 담고서 소리를 내어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생각할 수 있는 원인이라고 한다면, 그것밖에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런 말을 꺼낼 수도 없어서, 코노에는 귀를 축 늘어트리고 입을 다물었다.
「……다행이, 다치진 않은 것 같군. 이 틈에 빠져나가자고. 자, 먼저 가」
바르도의 재촉에, 코노에는 기척을 죽이며 이동을 시작했다. 다른 서가에 숨으면서 출구로 향한다.
도마뱀 모양의 그림자는 아직 코노에와 바르도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움직이는 기척을 알아차린 것인지, 돌연 도마뱀이 코노에 쪽으로 돌아섰다.
검은 윤곽 가운데,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빛나고 있다.
「……위험해, ……달려!」
바르도가 외치는 말에 따르려 했지만, 눈동자를 보고 만 탓일까──코노에는 마비된 듯이 움직일 수 없었다.
도마뱀이 맹렬한 속도로 코노에를 향해 온다.
「……앗!」
움직일 수 없다. 그만 눈을 감고 만 그 순간.
도마뱀의 그림자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방향을 바꾸어 달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 코노에가 숨어있던 서가 쪽이다.
그곳에는 아직 바르도가 남아있다.
「우왓……!」
서가의 그늘에서 바르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바닥을 세게 밟는 듯한 소리, 탁탁 책이 떨어지는 소리가 뒤섞여서 들려왔다.
코노에가 서있는 위치에서는 상황을 살펴볼 수가 없다.
「바르도!」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코노에는 허둥지둥 바르도가 있는 서가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눈을 빼앗겼다.
바르도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왼손으로 오른팔을 세게 누르고 있다. 악마의 그림자는 바르도로부터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위협하는 듯이 귀에 거슬리는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마치, 바르도보다도 악마 쪽이 무언가에 겁을 내고 있는 듯하다.
바르도의 오른팔에 검은 안개 같은 것이 들러붙어있다.
……아니, 방출되고 있는 것인가?
「큭……, 아악……!!」
바르도가 이를 악물고 신음한다.
「어이……!」
「윽, ……큭, ……으악!」
바르도의 오른팔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안개가 흐늘흐늘 모양을 바꾼다.
눈의 착각인 것일까. 실로 한 순간, 그것은 무시무시한 괴물의 윤곽을 본뜨기라도 한 듯이 보였다.
그리고──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공포에 질린 울음소리와 함께, 바로 눈앞에 있던 악마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아니, 그렇지 않다.
바르도의 오른팔에서 일어난 안개가 도마뱀 형태의 악마를 삼킨 것처럼──코노에의 눈에는 보였다.
완전히 조용해진 도서관 안에, 몸을 웅크린 바르도의 거친 호흡만이 울려퍼진다.
「……괜찮아?」
「……아아」
고개를 떨군 바르도의 얼굴은 새파랬다.
천으로 덮인 오른팔을 손톱이 박힐 정도로 세차게 움켜쥐고 있다.
「아파?」
「아무것도 아냐, ……윽」
「괜찮으니까 보여줘」
내버려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코노에는 반은 강제로 바르도의 오른팔을 잡고, 천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경악한다.
맨살이 드러난 피부에는, 불길한 느낌을 주는 검게 부어오른 상처가 있었다.
단순한 창상이나 찰과상이 아니다.
찢어진 상처가 수없이 뒤엉켜있다.
게다가 그 상처는, 지금 막 베이기라도 한 듯이 물기를 띠고 있었다.
스며 나오는 피는, 붉은색이 아니다.
거무죽죽하게 탁한 점액질을 띠고 있다.
코노에가 말을 잃은 채로 있자, 바르도는 재빨리 팔을 빼고, 상처를 다시금 천으로 덮어 가렸다.
「그거……」
「걱정할 거 없어. 오래된 상처야」
바르도는 조금 침착을 되찾은 것 같았다.
얼굴색은 안 좋았지만, 그 외에는 평소와 다름이 없다.
「지금도 여차하면 곪아버려서 말야. 좀처럼 낫지를 않아. 이상한 걸 보였군」
「…………」
아무래도 그것뿐인 상처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르도는 빨리 이 이야기를 끝내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추궁은 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신경이 쓰이는 점이 있었다.
방금 전 도마뱀 형상을 한 악마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바르도가 무언가 수단을 써서 퇴치한 것일까.
바르도에게 물어볼까 싶었지만, 애초에 악마가 어째서 나타나게 되었냐를 따지면, 그것은 필시 코노에의 탓이다.
그렇기에, 꼬치꼬치 묻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이런 이런, 생각지도 않은 재난이었네」
바르도는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일어섰다.
복잡한 심경에 내몰리면서도, 코노에도 일어난다.
「뭐, 일단 볼일은 끝났고, 여관으로 돌아갈까」
「…………」
「가는 김에 식재료도 사고 싶으니까, 도와달라고」
「또?」
「뭐 어때. 겸사겸사야, 겸사겸사」
있는 힘껏 언짢은 시선으로 바르도를 노려보았지만, 어깨가 톡톡 두들겨진다. 결국 억지로 등을 떠밀리고 말았다.
걷기 시작하며, 코노에는 방금 전 보았던 광경을 다시 떠올렸다.
마치 악몽과도 같았다. 상상의 범위를 한참 뛰어넘어서, 현실감이 없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이었을까, 따위를 생각하고 만다.
바르도와 함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화제로 삼아서는 안 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복잡한 기분이 발목을 질질 끄는 채로, 코노에는 바르도와 함께 도서관을 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