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제 와서 또 노이즈냐!
사실 노이즈 배드 엔딩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제 컴퓨터에서는 그냥 화면이 암전되고 끝나서 =.,= 굳이 번역할 게 없겠구나 싶어서 그냥 넘어갔었어요. 그런데 노이즈의 다른 배드 엔딩에 대해 미카님께서 제보를 해주셔서, 혹시...? 싶어서 게임을 삭제하고 다시 인스톨하고서 해보니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배드 엔딩잌ㅋㅋㅋㅋㅋㅋㅋ 또 있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헤헤 어쨌거나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T 제보해주신 미카님 감사합니다!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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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16 DMMd 번역 / 노이즈 ─ 배드 엔딩 2 4
- 2012.05.16 DMMd 번역 / 코우자쿠 ─ #04. 1
- 2012.05.12 DMMd 번역 / 코우자쿠 ─ #03. 2
- 2012.05.07 DMMd 번역 / 코우자쿠 ─ #02. 4
- 2012.05.04 DMMd 번역 / 코우자쿠 ─ #01. 7
- 2012.05.02 DMMd 번역 / 코우자쿠 & 밍크 공통 ─ #05. 2
- 2012.05.02 DMMd 번역 / 코우자쿠 & 밍크 공통 ─ #04.
- 2012.05.02 DMMd 번역 / 코우자쿠 & 밍크 공통 ─ #03.
- 2012.05.02 DMMd 번역 / 코우자쿠 & 밍크 공통 ─ #02. 1
- 2012.05.02 DMMd 번역 / 코우자쿠 & 밍크 공통 ─ #01. 1
엔딩 부분에 선택지까지 포함해서 올리겠습니다.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타워의 입구 근처까지 온 우리들은 반대쪽으로 나아가, 종업원용 통용구로 향했다.
통용구는 타워 뒤쪽에 있는 탓에 일반 입장객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경비원의 수도 적었다.
차량용 철창 게이트 앞에 두 명의 경비원이 서있다.
우리들은 가까이에 있는 골목으로 숨어들어, 낌새를 살폈다.
“우선 저희들이 돌진해서 경비원들을 붙들어놓겠습니다. 코우자쿠 씨와 아오바 씨는 그 틈에 안으로 들어가세요.”
“괜찮겠어? 저쪽은 총 같은 걸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구 주민구의 경찰관한테 들은 얘긴데, 여기 경비원은 총을 들고 있으면 손님들 눈에 인상이 안 좋게 비친다고, 시시한 소형총 밖에는 안 들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래. 그래도 주의하라고. 너희들만 믿는다.”
“옙!”
“좋아, 가자!”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이 골목에서 밖으로 뛰쳐나가, 차량용 게이트를 향해 달린다.
“뭐, 뭐야!?”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요!”
당황하는 경비원들을 향해 베니시구레 멤버들이 덤벼들고, 눈 깜짝할 새에 난투가 벌어진다.
“우리들도 가자!”
“아아!”
나와 코우자쿠도 골목 밖으로 뛰쳐나가 통용구로 향한다.
도중에 다른 경비원들이 뛰어나와서, 우리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거기 서!”
“저리 비, 켜!”
경비원이 치켜든 경찰봉을 코우자쿠가 한쪽 팔로 막고, 경비원의 명치에 한 방 먹인다.
“으윽.”
“젠장, 날뛰지 마라!”
“우왓.”
내 쪽으로도 경비원이 돌진해 와서, 옆쪽으로 몸을 날리는 듯이 피했다.
목표물을 붙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경비원의 등에 발차기를 날린다.
“크악!”
“하나 더!”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진 경비원의 등을 발꿈치로 찍어 누르자, 경비원이 지면으로 쓰러졌다.
주변에서는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이 경비원의 몸 위로 올라타거나 이리저리 휘두르는 등 한껏 신이 나서 날뛰어대고 있다.
“아오바!”
코우자쿠가 통용구의 문을 향해 달리며 내 이름을 부른다. 곧바로 코우자쿠의 뒤를 쫓았다.
타워 내부로 이어진 문에는 인증 모니터가 달려있었다.
“이거, 우리들 ID로는 안 되겠지.”
“그렇겠지. 이렇게 되면 때려 부숴야 하나?”
‘아오바, 메일이다.’
렌이 가방에서 얼굴을 내민다.
“이런 때에……, 앗, 에?”
‘ / 납치된 공주’
‘(제목 없음) / 코우자쿠’
‘플라티나 제일로 가는 지름길 / 하가 씨’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메일을 무시하려고 하니, 코일이 강제적으로 기동되어 메일이 표시되었다.
“뭐야 이거, 렌.”
‘원인 불명의 작동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
납치된 공주 /
마음 의 열쇠 는
모두 개방 된다
-
“마음의, 열쇠?”
“오?”
갑자기 록을 해제하는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갑자기 열렸어. 고장인가?”
“지금 그 메일, 마음의 열쇠가 개방됐느니 어쩌니 하고 쓰여 있었는데…….”
“그거랑 이거랑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안으로 들어가자고.”
코우자쿠가 팀 멤버들을 돌아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높은 층까지 가주세요! 저희들도 따라가겠습니다!”
경비원 위에 올라탄 멤버가 한쪽 손을 들고서 붕붕 흔들었다.
코우자쿠가 그 멤버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답을 하고, 우리들은 문을 통과했다.
문의 건너편에는, 하얗고 긴 복도가 이어져있었다.
여기가 오벌 타워인가…….
타워 안에는 일반인에게 개방된 에리어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뒷문으로 들어온 탓인지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의 모습은 없다.
그럼에도 사람의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을 보면, 순회하는 경비원이 있는 것이겠지.
우리들은 주변의 낌새를 살피면서, 신중하게 복도 위를 걸어갔다.
“……뭔가 이상하네.”
“아아. 이렇게 소란을 피웠는데, 경보마저 안 울리다니 어떻게 된 일이지.”
“………….”
입 밖에 내지 않아도,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똑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통용구의 문이 멋대로 열린 것 하며……. 역시 함정이 아닐까?
수상쩍게 여기면서도 계속해서 걸어나가자, 복도 끝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이 보였다.
엘리베이터 옆에는 경비원 두 명이 서있다. 발각되기 전에 옆길로 숨어들어가 낌새를 살피고자 했다.
……허나.
“어이, 거기서 뭘 하고 있지.”
“!”
“……위험하게 됐네.”
……숨는 게 조금 늦었던 모양이다. 발소리가 엘리베이터 쪽에서 이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코우자쿠와 한 번 눈을 마주 보고서,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코우자쿠가 먼저, 그 다음으로 내가 복도로 뛰쳐나간다.
“너희들, 누구……, 우왓!”
코우자쿠가 느닷없이 경비원 한 명을 냅다 주먹으로 후려갈긴다.
다른 편에서 내가 나머지 한 명의 경비원을 발로 차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팔을 뻗어, 엘리베이터를 호출하는 버튼을 누른다.
“서라, ……윽!”
“잠깐 자고 있으라고.”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경비원의 목덜미로 코우자쿠가 손날을 날린다.
코우자쿠는 이어서 등에 지고 있던 검을 잡고서, 다른 한 명의 경비원의 배를 있는 힘을 다해 칼집으로 쳤다.
“으윽, 크헉!”
“코우자쿠!”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나는 코우자쿠의 이름을 부르고서 먼저 엘리베이터에 타고, 곧바로 문을 닫는 버튼을 눌렀다.
닫히기 시작한 문틈으로 코우자쿠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후우. 십년감수했네.”
“위기일발이었어. 제일 위층이면 되는 거지.”
“아아.”
가장 위에 있는 층의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기 말야. 문득 생각난 건데.”
“응?”
“너희 팀 녀석들, 왜 제일 높은 층이라고 한 걸까. 거기에 토우에가 있다는 걸까? 아니면 류호인가.”
“……둘 중 하나는 있는 거 아닐까? 직접 수색을 했거나 누구한테 들었거나 했겠지.”
“그렇, 겠지…….”
“………….”
코우자쿠가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침묵한다.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을 의심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좀 전부터 계속해서 그것이 신경 쓰였다.
정말이지 그 녀석들, 왜 제일 높은 층이라고 한 거지……?
뭐……. 높으신 분들은 대개 꼭대기에 있는 법이니까, 그런 맥락에서 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정지한다.
문이 열린 순간, 또 경비원들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긴장감이 들었다.
……하지만, 열린 문의 건너편에는 하얀 복도가 이어져있을 뿐이었다.
만약에 대비해 좌우로 시선을 돌려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딱히 누군가가 있는 기척은 들지 않는다.
나와 코우자쿠는 말없이 발을 내딛었다.
복도를 걸어가자, 정면에 커다란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방은 없는 것 같으니, 플로어 전체가 홀처럼 되어있는 장소인 것이겠지.
우리들은 문을 조금 앞에 두고서 발을 멈췄다.
“……이 녀석들, 늦네.”
코우자쿠가 불쑥 혼잣말을 내뱉는다.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을 말하는 것이다.
나중에 뒤따라온다고 말은 했지만, 괜찮은 것일까.
설마……. 어디서 붙잡히거나 하진 않았겠지.
그렇지만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딘지 찝찝한 불안이 감도는 가운데, 우리들은 문 앞으로 나갔다.
그 장소는 내가 생각했던 대로, 약간 큰 크기의 홀로 꾸며져 있었다.
중앙에는 한 명의 남자가 서있다.
“…………, 류호.”
류호는 내가 알고 있는 명랑한 표정이 아닌, 눈을 날카롭게 좁히고서 웃음을 띤 얼굴을 하고 있었다.
“코우자쿠. 반드시 올 줄 알았어.”
“이 자식…….”
“류호…….”
“여어, 아오바 군도 와줬네. 이거 정말 기쁜걸.”
“………….”
“까불지 마, 이 자식. 아오바한테 함부로 손 못 대게 할 테니까 말야.”
“그건 그저 단순히 네 생각에 불과하잖아? 내가 아오바 군을 손에 넣고 말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어.”
“류호……!”
코우자쿠가 거친 소리를 내며, 등에 진 검에 손을 올렸다.
코우자쿠 주위의 공기가 변한다. 또다……. 또 코우자쿠가 이상해진다.
“으윽………….”
코우자쿠가 칼집에서 검을 빼, 양손으로 붙들고 자세를 취한다.
코우자쿠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새겨지고, 무시무시한 살기가 흘러넘쳤다.
“내가 아오바 군을 손에 넣으면, 네 뒤를 이을 두 번째……. 아니, 너와는 또 별개의 걸작이 탄생하게 되겠지.”
“멋대로 지껄여 보시지! 아오바한테는 손가락 하나도 못 대!”
“그런 식으로 감정에 몸을 내맡기고 화를 내서는 큰일 난다고. 내가 했던 말, 잊어버린 거야?”
“시끄러!!”
코우자쿠가 울부짖을 때마다, 공기가 진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코우자쿠를 말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상태가 이상해졌을 때의 코우자쿠는, 마치 제 목숨을 깎아서 그것을 분노로 바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코우자쿠가 분노에 사로잡힌 채, 제정신을 되찾지 못한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막지 않으면 안 된다.
“코우자……!”
“……아오바 씨.”
“!”
뒤를 돌아보니, 어느 사이엔가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이 그곳에 서있었다.
“너희들…….”
멤버 중 한 명이 내 어깨를 붙잡는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그 얼굴을 보고서, 위화감을 느낀다.
……눈에 빛이 없다. 공허한 눈동자. 인형처럼 표정이 없는 얼굴.
이런 눈을 알고 있다. 본 적이 있다.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었을 때의 미즈키와 똑같다…….
“코우자쿠 씨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무슨 소리를……, 아니 이대로라면 저 녀석은!”
“이건 코우자쿠 씨가 스스로 바란 일입니다. 그걸 저지하면 재미가 없죠. 아오바 씨라고 할지라도 그것만큼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
“마지막까지 지켜보시죠……, 저희들과 함께.”
코우자쿠가 스스로 바란 일? 마지막까지 지켜봐?
……안 돼! 그런 짓을 했다간……!
“……윽, 이거 놔……!”
어깨를 붙잡은 손을 풀어내고자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다른 패거리들이 그런 내 몸을 완전히 제압하고자 했다.
“윽, ……코우자쿠!”
내 목소리가 들린 것인지, 코우자쿠가 이쪽을 본다. 그 눈에는 아직 희미하게나마 이성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재밌는 걸 가르쳐줄까.”
류호가 가벼운 몸놀림으로 나와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을 손끝으로 가리킨다.
“그 녀석들의 목덜미, 보여? 자그마한 상처가 있겠지. 아오바 군의 목에도 똑같은 게 있지.”
“!”
나는 억지로 얼굴을 움직여서, 옆에 있는 녀석의 목을 보았다.
확실히 굵은 바늘에 찔린 듯한 흔적이 있다. 내 목에도 똑같은 것이……?
그러고 보니……. 코우자쿠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굵은 바늘에 찔린 것 같은 자국이 있다고…….
“이 자식, 아오바랑 우리 팀 멤버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오바 군은 말이지, 클럽 입구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걸 봤을 때 첫눈에 반했어. 그래서 그만 순간적으로 충동이 들어서, 한 땀을 놓았지.”
“약간 정신이 흐트러지기 쉬워지는 종류의 약을 말이지. 아오바 군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어떻게 흐트러지는지 보고 싶어서.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도중에 네가 나타났지.”
“네가 여기에 와있다는 걸 알고서, 나도 오랜만에 진지하게 계획이란 걸 짰다고.”
“목적은 둘. 아오바 군을 어떻게 손에 넣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널 초조하게 만들어서, 부추길 것인가. 너에게 새겼던 문신을 키우기 위해서 말이지.”
“윽……!”
“널 맞아들일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자, 나는 구 주민구로도 몇 번 드나들었지. 네 동료들에게 약간의 장치를 해놓기 위해서 말야.”
“! 설마…….”
“그래. 내 바늘, 너도 자-알 알고 있겠지? 내 집념을 가득 담은 바늘은 피부에서 체내로 스며들어, 사람의 마음까지도 움직이지…….”
“그러기 위해서는 끝부분을 아주 약간만 찔러넣는 것으로 충분해. 찔린 쪽은 거의 아픔을 느끼지 않지. 벌레가 그 위에 앉은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뿐이야.”
“네가 내 방으로 들이닥쳤을 때, 그 녀석들은 이미 내 꼭두각시였다고.”
류호가 즐거운 듯이 웃으며 손뼉을 탁 친다.
그러자, 날 붙잡고 있었던 멤버들 가운데 누군가가 내 팔을 세게 비틀었다.
“앗…….”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까도 손벽을 치는 소리가 났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류호가 손뼉을 치는 소리로 팀 녀석들이 조종되고 있는 건가……?
“…………크윽.”
“팀 멤버들과 아오바 군을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도, 마침내 우리들 손에 의해 정해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자식, 절대로 용서 안 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겠어!!”
“후후. 너, 역시 내가 했던 말을 잊어버린 거지.”
“그 등의 문신을 새겼을 당시에는, 네가 아직 어린애였던지라 운 좋게도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하지만 성인이 되면 주의하라고, 확실히 그렇게 일러뒀을 텐데 말이지.”
“그렇지? ……어머니를 살해한 코우자쿠.”
“말하지 마!!!”
코우자쿠가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포효한다.
그 몸이 한층 크게 팽창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이 착각한 건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다.
“크윽,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코우자쿠의 온몸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채 그 몸을 다 뒤덮을 수 없게 된 겉옷이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찢어진다.
팽창된 상반신이 그대로 노출되고, 그 등에 새겨진 문신도 밖으로 드러난다.
그것을 보고……, 전율했다.
등의 왼쪽에 선명한 모란을 흩뜨려 놓고 있었던 문신이……,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해있다.
마치 껍질이 벗겨져 안이 그대로 노출된 살덩이처럼 붉게 물이 들어있고, 무늬나 형태도 다르다. 등에서부터 팔까지를 휘감는 것처럼 뻗어나와있다.
문신 그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크으으으윽…….”
거친 숨을 반복해서 내쉬는 코우자쿠의 눈은, 이젠 그 무엇도 보고 있지 않다. 그저 증오와 분노에 의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코우자쿠!!”
필사적인 마음을 담아 외쳐보아도, 코우자쿠에 귀에는 닿지 않는다.
“호오……. 이건 정말 훌륭하군.”
코우자쿠의 변화를 차분히 바라보던 류호가 만면에 미소를 떠올렸다.
“네게 새긴 문신은 말이지, 하나의 실험이기도 했지. 실험 같은 말을 사용하고 싶진 않지만……. 제안을 받았었지. 토우에로부터.”
“토우에……!?”
“문신은 그 사람의 업이며, 각인이다. 한 번 새기면 마지막까지, 평생 그것을 떠안게 되지. 그에 걸맞은 각오가 필요해. 새기는 쪽 또한 마찬가지지.”
“토우에는 줄곧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방법을 연구했었지. 그리고 어디선가 우연히 내 소문을 들었던 거겠지. 내게 이렇게 말을 걸어왔어.”
“문신으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건 가능하냐고 말야. 재미있는 발상이다 싶었지. 나도 그 말에 흥미가 솟아났어. 그리고 코우자쿠, 너를 그 실험대로 선택했지.”
“그 문신은 네 마음을 완전히 먹어치우고, 더 높은 차원의 승화를 보여주려 하고 있지. 감정에 몸을 내맡기지 말라고 그렇게 충고해주었는데도, 바보 같은 녀석.”
“문신은 너와 함께 성장했어. 네가 미성숙했을 동안에는 문신도 어렸으니, 네가 아무리 분노에 미쳐 날뛰어도 제정신을 되돌릴 수 있었지.”
“하지만, 네가 성인이 되면 문신 또한 성숙되지. 네가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문신은 그 분노를 남김없이 빨아들이고, 최후에는 마음까지도 완전히 먹어치우지.”
“그때, 문신은 네 심장과 일체가 되어 진정한 꽃을 피우는 거야. 네 목숨을 불태워 양식으로 삼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꽃을 말이지.”
류호가 정말로 기쁜 듯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생기가 넘치는 얼굴로 양팔을 벌린다.
“이미 내 생에는 한 치의 후회도 남아있지 않아. 네 이성과 내 집념이 충돌한 결과, 승자는 바로 나였어. ……자아, 그 대신에.”
“나의 혼, 가지고 가라.”
“……류호-------!!!”
“안 돼, 코우자쿠 그만해!!”
내 목소리는 코우자쿠에게 닿지 못하고…….
코우자쿠는 검을 쳐들고, 류호를 향해 돌진했다.
“코우자쿠……!!”
“…………윽!”
……불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격렬한 분노가 실린 코우자쿠의 검은, 한 치도 빗겨나가지 않고 똑바로 원수의 몸을 꿰뚫었다.
류호의 등에서 검의 끝부분이 튀어나오고, 선혈이 지면으로 뚝뚝 떨어진다.
“…………큭, …….”
앞으로 몸이 구부러진 류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허나, 류호는 웃고 있었다.
피의 거품이, 웃음과 함께 사방으로 튄다.
“……하하, 하……, ……자신의, 최고 걸작에게, 죽게 되다니……, 문신사로서, 최고의, 행복이, 군……, 윽!”
미소를 가득 띤 류호의 입술에서 대량의 피가 넘쳐흐르고…….
류호의 고개가 푹 꺾어졌다.
코우자쿠가 인정사정없이 그 몸에서 검을 뽑아낸다.
한층 더 뿜어져 나온 피에 기모노가 검붉게 젖어버린 류호가, 허망하게 바닥으로 허물어져 내렸다.
“………….”
……막을 수 없었다.
증오로부터는 아무것도 태어나지 못한다.
그런 것쯤은,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런데…….
“어째서야, 코우자쿠……!”
“!?”
돌연, 나를 붙잡고 있었던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이 쓰러졌다.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녀석들도 차례로 쓰러져간다.
나는 쓰러진 멤버들 중 한 명의 곁에서 몸을 숙이고, 목덜미에 손가락을 댔다.
……맥이 있다. 기절했을 뿐인 것 같다.
그렇지만, 어떻게 된 일이지?
마치 마리오네트의 실이 끊어진 것처럼…….
“……윽!?”
갑자기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고, 보통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졸음이 나를 엄습했다.
이런 때에 잠이 오다니…….
목덜미에서 열이 느껴져서 손을 대보니, 벌레에 물린 것처럼 부풀어 오른 곳이 있었다.
이거……, 류호의 바늘에 찔린 상처다.
기절해버린 베니시구레의 멤버들도, 모두 류호의 바늘에 찔린 상태였다.
……혹시, 류호가 죽어서 조종을 당하던 쪽에게도 그 영향이 나타나는 건가?
“……큭.”
주체할 수 없이 졸음이 쏟아져서……. 조금만 긴장을 풀었다가는 당장이라도 쓰러져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여기서 기절할 수는 없다.
코우자쿠는…….
물밀 듯이 밀려드는 졸음을 뿌리치고, 나는 안간힘을 다해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앞의 광경에 얼어붙었다.
완전히 제정신을 잃은 코우자쿠가, 피로 범벅이 된 검을 들고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코우자쿠……!?”
“…………큭.”
코우자쿠는……,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 으아아아아아!!”
“!”
코우자쿠가 검을 휘두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졸음으로 인해 둔해진 몸을 풀로 가동시켜 바닥에 드러눕자, 엄청난 기세의 바람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코우자쿠! 그만해!!”
코우자쿠는 검을 휘날리며, 다시금 나를 향해서 그것을 내리쳤다.
“……윽.”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윽, 코우자쿠! 정신 차려!”
“으아아…….”
코우자쿠의 등에서부터 뻗어 나와 그 피부를 휘감은 문신은, 이제는 얼굴에까지 그 불길한 문양을 새기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코우자쿠를 멈출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윽.”
──── 부숴라 ────
──── 부숴라, 부숴라 ────
────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
──── 그 녀석을 멈출 방법은 ────
“멈출, 방법……?”
──── 그렇다 ────
──── 네가 그 녀석에게 부서지기 전에 ────
──── 네가 그 녀석을 부숴라 ────
──── 스크랩으로 ────
──── 다른 방법은 없다 ────
“……윽, 싫어…….”
만에 하나 내가 스크랩을 사용해서, 코우자쿠가 미즈키처럼 되어버린다면…….
“만약 그때 네가 적확한 말을 던져주었다면, 미즈키의 의식은 원래대로 돌아왔을지도 모르겠구나.”
내가 제대로 미즈키의 내면과 마주했다면, 미즈키는 의식을 잃는 일 없이 무사히 원래대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코우자쿠도……?
“……큭.”
망설이고 있을 여유는 없다. 이것 말고 다른 유효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코우자쿠를 똑바로 응시했다.
‘만약 잘못돼버린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반드시 잘될 것이다.’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되뇌인다.
‘반드시 잘될 것이다.’
나는 반드시……, 코우자쿠를.
“……코우자쿠!!”
검을 치켜들고 돌진해오는 코우자쿠를 향해 내달려……, 그 품속으로 뛰어든다.
얼굴 옆으로 지나간 검이 뒷머리를 스쳤다.
──── 부숴라 ────
──── 부숴라, 부숴라 ────
그치지 않는 두통을 참아내며, 하얗게 흐려진 코우자쿠의 눈을 바라보고 의식을 집중시킨다.
“……코우자쿠, ……윽, 나는, 네 안으로……, 들어간다……!!”
몸이 아래로 끌어내려져가는 듯한 감각이 들고는…….
눈을 뜨자, 나는 어둑한 방 안에 서있었다.
뭐지? ……장지문?
발아래에도 다다미가 깔려있다.
방은 다다미 열 장 정도의 넓이고, 키 큰 촛대 위에서 촛불이 흔들리고 있다.
초가 타는 냄새와 함께, 희미하게 백단향의 향기가 풍겼다.
이것이……, 코우자쿠의 마음속인가?
섬에서 떠나있던 시절의 기억인가.
눈앞에 있는 장지문을 열고자, 손을 뻗는다.
“윽, 흐윽……, ……흑, 으흑……, 흑…….”
……목소리다. 연약한 여자의 목소리.
훌쩍이며 울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이 장지문 너머에 있는 건가?
“………….”
나는 약간 긴장하면서, 살며시 장지문을 열었다.
장지문의 건너편에는 지금 내가 있는 방과 똑같은 방이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무언가가 무릎에 감겨들었다.
“!”
검은 머리카락 다발 같은 것이……, 다리를 휘감고 있다.
“하……!?”
순간, 그 머리카락 다발 같은 것의 양이 한층 더 늘어나 내 상반신으로까지 기어오르려 했다.
“뭐, 야, 이거!?”
무릎에 휘감긴 머리카락을 억지로 뜯어내고, 나는 허둥지둥 눈앞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눈앞이 어둑해서 머리카락인가 싶었지만, 잘 살펴보니 코우자쿠의 몸을 뒤덮고 있던 문신과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
그것이 스륵스륵 소리를 내며 뒤에서 나를 쫓아온다.
“윽, 흐윽……, ……흑, 흐윽……, 흑…….”
……!
방금, 여자가 흐느껴 우는 소리와 함께 코우자쿠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지?
정면에는 또 장지문이 있다. 코우자쿠는 이 문 너머에 있는 건가?
“젠장!”
나는 문신에게 따라잡히지 않게끔 내달려서, 양손으로 난폭하게 장지문을 열었다.
또 똑같은 방이 나왔다.
문신이 뒤에서 쫓아온다.
“대체 뭐야, 여긴……!?”
허겁지겁 다리를 움직여서, 안쪽의 장지문을 연다.
또 똑같은 방이다.
또.
또다!
“하아, 하아…….”
어디까지 계속되는 거야!?
똑같은 짓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하……, …….”
마침내 지금까지와는 약간 다른 분위기의 방이 나왔다.
허둥지둥 뒤를 돌아보고, 문신에게 따라잡히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방금 전까지 엄청난 기세로 몰려오던 문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내가 열었던 장지문도 어느 사이엔가 닫혀있다.
이제 괜찮은 건가……?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 실내를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붉은 빛이 도는 방 안에서, 누군가가 이부자리 위에 엎드린 채로 누워있다.
허리에 기모노 같은 것이 걸쳐져있지만, 상반신은 맨몸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약간 체구가 작고 마른 듯한 느낌이 든다. 어린애인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촛불의 불꽃을 붉게 반사하는 그 등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의 등이 붉은 것은 불꽃 때문이 아니다. 저건…….
자그마한 등뿐만이 아니라, 요까지 붉게 젖어있다.
……이 목소리.
그럼, 이부자리 위에 누워있는 것은…….
“코우자쿠?”
“!?”
내가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사라진 줄 알았던 문신 다발이 뒤쪽에서 손을 뻗어왔다.
무의식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문신은 내 발치를 지나쳐갔다.
누워있는 코우자쿠의 등으로 모여들어, 시커먼 누에고치처럼 에워싼다.
“코우자쿠!”
“큭, ……으윽, 윽, 큭, 앗…….”
“!”
물이 튀는 듯한 소리가 나고……, 안쪽의 장지문에 갑자기 피가 튀었다.
장지문 너머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고, 얇은 종이에 비치는 그림자가 이곳저곳으로 허둥지둥 움직인다.
비명과 포효도 들려왔다.
핏방울이 흩날리고, 그것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덧칠되어간다.
이건……, 대체 어떤 기억인 거지?
섬에서 떠나있던 사이에, 코우자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너무나도 참혹한 광경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장지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그 틈새로 생기 없는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여자는 쥬반을 입은 채로, 넋이 나간 듯이 장지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쥬반(襦袢): 일본식 속옷으로 맨몸에 직접 입는 짧은 홑옷을 일컫는다. 대개 이런 느낌. → 클릭
얼굴에서 발끝에 이르기까지 온통 붉게 물들어있다.
여자가 약하디약한 움직임으로, 검은 누에고치가 뒤어버린 코우자쿠의 이부자리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
여자는 다다미 위로 쓰러져,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이 팔을 뻗었다.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다.
“……우, 자, ……쿠.”
……!?
지금, 코우자쿠라고…….
……이 사람. 코우자쿠의 어머니다.
너무 여위어있어서 알아보지 못했다…….
“윽, 으윽, ……후우, 윽, ……큭, ……윽.”
어머니의 목소리에 응하는 듯이, 시커먼 고치로부터 코우자쿠가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우자쿠, ……윽, !?”
고치 쪽으로 가려고 하자, 등에 격통이 스쳤다. 무의식적으로 다다미에 무릎을 꿇고 만다.
뭐지, 이거……. 등이 아프다.
불꽃에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 ……큭, …….”
극심한 통증에 몸이 떨리고, 전신에 땀이 밴다.
이 통증은, 혹시…….
문신을 새길 때, 코우자쿠가 느꼈던 아픔……?
“아, 아악……, 크윽, ……으윽…….”
코우자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코우자쿠의 곁으로……!
“큭, 으악, ……, ……윽, 코우자쿠!”
나는 등의 통증을 참고,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고치 쪽으로 다가가, 그 표면을 양손으로 막무가내로 잡아 찢는다.
“아, 얏……, 젠장, ……저리 비켜!”
찢겨진 검은 문신들이, 까맣게 탄 종이처럼 쪼글쪼글해지고는 사라져간다.
오로지 고치를 파괴하는 데에만 전념하다 보니, 서서히 코우자쿠의 등과 이부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코우자쿠, ……윽, 일어나!”
피로 범벅이 된 등으로 손을 뻗는다.
“!”
내 손끝이 닿자, 코우자쿠의 등을 뒤덮었던 피가 젤리처럼 벗겨졌다.
피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사람 정도의 크기로 팽창하고는, 낯익은 형상을 이루었다.
……류호.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설탕 공예품처럼 일그러지고, 입을 쩍 벌리고는 웃는다.
이 문신은, 이 등은,
이 혼은 나의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아냐. 코우자쿠는, 네 것이 아냐…….”
“코우자쿠에게서 떨어져. 코우자쿠를……, 놓아줘!”
나는 류호의 형상을 한 핏덩어리를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피가 사방으로 크게 흩날리고, 핏방울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난무하는 핏방울은 개의치 않고, 나는 코우자쿠의 등을 잡고 그 몸을 일으키고자 했다.
“코우자쿠, ……윽!!”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아플 정도로 강한 빛이다.
“……깨달았을 때에는, 모든 것이 이미 늦은 뒤였다.”
빛이 사라지고, 머릿속으로 영상이 흘러들기 시작한다.
슬로우 모션으로 이어지는 무성영화처럼 서서히 장면이 바뀌어간다.
커다란 저택과, 어머니의 손에 이끌린 채로 서있는 어린 코우자쿠. 조직의 우두머리인 듯한 남자.
그 옆에 서있는 것은……, 약간 젊어 보이는 류호다.
촛불이 일렁이는 일본 전통식 방 안의 이부자리. 그 위에 엎드려서, 문신을 새겨 넣는 류호의 바늘을 받아내고 있는 코우자쿠.
코우자쿠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지고, 손톱이 다다미를 긁어댄다. 어린 아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참고 있는 것이겠지.
거기서 화면이 암전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광경이 비쳐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있는 가운데, 검을 든 코우자쿠가 홀로 우두커니 서있다.
그 주변은……, 피바다다. 코우자쿠 자신도 상처를 입고서, 몸을 피로 물들이고 있다.
“그날은, 문신을 완성한다는 날이었다.”
코우자쿠의 목소리가 온 방향에서 울려퍼진다.
“바늘에 찔리는 아픔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극심해서, 나는 도중에 채 견뎌내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눈이 떠졌을 땐……. 주변 일대가, 피바다였다.”
“집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쓰러져있어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 가운데는……, 어머니도 있었다. 자신의 손을 보니, 피로 범벅이 된 칼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제정신을 잃고 날뛰어서, 모두를 상처 입히고 말았다. 그렇다곤 해도, 어린애가 무턱대고 휘두른 칼에 불과했다.”
“모두가 중상을 입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잃지는 않고 끝났다. 어머니도 그랬다. 하지만…….”
“어머니는 의식을 잃은 채로 회복되는 일 없이, 죽었다. ……내 탓이다.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다.”
“코우자쿠…….”
주변의 정경이 어둑한 일본 전통식 방으로 되돌아오고, 눈앞에 코우자쿠가 서있었다.
온몸이 문신에 침식된 모습이었지만, 눈동자에는 정상적인 빛이 돌아온 상태다.
다만, 그 표정은 어딘지 슬퍼 보였다.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전부 안 좋은 꿈일 거라고. 하지만 현실이었다. 그것을 똑똑히 인식했을 때, 나는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예 완전히 미쳐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죽어버리는 편이 좋을 거라고. 오히려 죽어야 마땅하다고.”
“어머니를 제 손으로 죽이고 만 내가 살아있을 의미 따위는, 살 자격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들고 있던 칼로 자결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일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 도저히. ……왜인지, 네 얼굴이 떠올라서.”
나를 바라보는 코우자쿠의 얼굴이 아픔을 참아내는 듯이 일그러진다.
“어렸을 적의 네 웃는 얼굴이 떠오르고, 그러더니 공연히 눈물이 나와서. 괴롭고 슬퍼서……, 두려워서, 고통스러워서, 어찌할 수가 없었어.”
“진심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도, 그와 똑같은 정도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결국, 나는 이 섬으로 돌아왔어. 죽지도 못하고, 어중간하기 짝이 없는 최악의 상태로……. 그저,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보고 싶어서.”
“널 만나면 무언가가 바뀌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자기가 편할 대로 멋대로 생각했던 거야.”
“이 섬에서 너와 재회했을 때, 네가 완전히 어른이 되어있어서 놀랐지만, 그럼에도 웃는 얼굴은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여서…….”
“그래서,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섬에서 너와 함께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과거의 기억을 옅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무리였어. 아무리 평온을 염원해도, 우연한 순간에 기억은 다시 떠올랐어. 모든 것이 피로 물들었던 그날의 일을.”
“그런 나를 비웃는 듯한 타이밍에, 그 자식……, 류호까지 얼굴을 내밀었어.”
“그 녀석을 본 순간, 생각했어. 아아, 역시 나는 도망칠 수 없구나. 그러니 저 녀석을 죽이고 나도 죽자고.”
“그 녀석을 죽인다고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하지만 어차피 지옥행이 결정되어있다면, 적어도 그 정도의 복수는 해도 좋지 않을까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나는 류호를 죽이겠다는 바람을 이루었어. 그렇지만 내 과거는 전혀 변하지 않고, 등의 문신도 사라지지 않아.”
“도리어 류호를 죽인 시점에서, 이 손에는 한층 더 깊게 피가 스며들고 말았어. 그러니까 이제……, 됐지 않았을까 싶었어.”
“발버둥치는 걸 그만두고, 내 죄에 이 몸을 맡기자고.”
코우자쿠가 고개를 숙이자, 방금 전의 그 검은 문신들이 어느 사이엔가 코우자쿠의 발치로 감겨들었다.
코우자쿠…….
이것이, 코우자쿠의 진짜 과거. 현실 세계에서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부분이겠지.
……아니,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참혹한 과거를,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단 말인가? 이야기를 꺼낸 뒤에, 그걸 들은 상대방은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
나와 코우자쿠가 아무리 끈끈한 관계라고 할지라도, 그런 생각에 고민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지금 내 안에서는, 극심한 갈등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코우자쿠의 진짜 과거에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다.
어떻게 말을 걸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무거운 과거 앞에서는, 그 어떤 말도 경박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코우자쿠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허리 부근까지 검은 문신이 기어 올라가, 당장이라도 가슴께까지 도달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코우자쿠는……, 자신이 류호의 문신에 먹혀서 죽게 되는 것마저 받아들이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
확실히 코우자쿠는 많은 사람들을 상처 입혔고, 본인의 어머니도 그것이 원인이 되어 돌아가시고 말았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코우자쿠의 탓이 아니다. 토우에와 결탁한 류호가 멋대로 새긴 같잖은 문신의 탓이다.
설령 내가 그렇게 말한다 해도, 코우자쿠는 자신을 책망하는 것을 멈추지 않겠지.
벌어지고 만 일은 바꿀 수 없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는 코우자쿠를 잃고 싶지 않다.
나의 이기심이든 뭐든 좋다. 이대로 입을 다물고 그저 코우자쿠를 보고 있기만 하는 일 따위는 할 수 없다.
코우자쿠의 마음은 류호의 문신과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것들에 의해 벌어진 상처는 너무나도 커서…….
지금도 피를 흘리고 있어서, 코우자쿠 혼자만으로는 메울 수가 없다.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그 상처는 코우자쿠의 마음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전에.
──부순다.
──── 부숴라 ────
──── 그 녀석을 부숴라 ────
나는 이 스크랩이라는 힘을 사용해서 ‘파괴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부순다. 상처에 사로잡혀있는 코우자쿠를.
“……윽.”
나는 코우자쿠의 곁으로 다가가, 그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코우자쿠가 천천히 얼굴을 들고, 모두 다 버리고 떠나고자 하는 눈동자로 나를 본다.
“코우자쿠, ……지지 마!”
“…………, ………….”
“……난, ……뭐가, 어떻게.”
“………….”
“아오바! 어떻게 된 거야? 우리들은……, 살아남은 거야?”
“………….”
“……그래, 살아남았어……, 끝난, 건가. ……다행이다.”
“너한테도 잔뜩 폐를 끼쳐서, 정말로 면목이 없어. 미안했어, 아오바.”
“괜찮아.”
“아니, 정말로. 네가 없었으면 난 옛날에 죽었을지도 몰라. 날 이 세계로 붙들어 매준 건 아오바, 너야.”
“………….”
“정말로, 고마워. 네 덕택이야.”
“아아. ……코우자쿠.”
“!? 에? 어, 어이, 아오바? 너, 뭐 하는……, 우왓!”
“아야야.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이렇게 나한테 매달리고. 깜짝 놀라서 엉덩방아까지 찧었잖아.”
“……괜찮아.”
“……에? 뭐가?”
“………….”
“…………. ……아오바?”
“코우자쿠…….”
“너…….”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에 대해선 전부 이해하고 있어. 전부 알고 있어. 그러니까…….”
“………….”
“그, 래.”
“묘하네. 너랑 이러고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져. 굉장히 안정이 돼. 지금까지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거짓말 같아.”
“아아.”
“……아오바. 저기, 말이 좀 이상하지만……, 만져도, 괜찮아?”
“괜찮아.”
“……후, ……아오바.”
“응.”
“아오바, ……키스해도, 괜찮아?”
“괜찮아.”
“……읏.”
“……, 후.”
“……아오바.”
“……괜찮아.”
“……좀 더 만져도, 괜찮아?”
“괜찮아.”
“아오바……, 하…….”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 ”
코우자쿠는 본편이 기네요... 4편까지 이어집니다.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화려한 네온 장식이 반짝이고, 사람들은 오히려 내리는 비를 즐기는 것처럼 그곳을 활보한다.
그런 광경에 기가 눌려서, 나는 무심결에 길의 가장자리 쪽으로 걸었다.
빗줄기가 약해졌다고는 해도, 머리카락에 닿는 비는 조금 불쾌하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보고자 하는 기력은 지금의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걸음을 옮기는 데에만 몰두하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그 클럽 앞의 골목까지 다다랐다.
“………….”
건물이 있는 곳까지 가까이 갈 생각은 들지 않아서, 나는 골목의 벽에 몸을 기댔다.
완전히 비에 젖고 만 탓도 있어서, 벽이 몹시도 차갑다.
이렇게 밖에 나와 있으니,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 전부 꿈이었던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꿈이 아니다.
코우자쿠의 손에 세게 붙잡혔던 곳이 여전히 얼얼하게 아픈 것이 그 증거다.
……코우자쿠는 돌아올까.
어쩌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설령 돌아온다고 해도, 이런 상태로 토우에가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자, 바로 옆에서 땅에 고인 비 웅덩이를 힘껏 밟는 듯한 소리가 났다.
“흠뻑 젖었네.”
……뒤를 돌아보니, 그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미소 띤 얼굴로, 내게로 우산을 내밀었다.
“비가 오는데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아니면 비에 젖는 걸 좋아하는 걸까나.”
“………….”
“처참한 얼굴이네.”
남자가 싱긋 웃고서, 가볍게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일 있었어?”
“………….”
‘그렇지만 주의하는 편이 좋아. 너는 조금 무방비하니까. 긴장을 늦추면, 믿고 있던 사람한테 갑자기……, 덥석 하고, 먹혀버릴지도 몰라?’
이 남자가 말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지…….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남자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치만, 대답을 할 수 있을 만한 마음 상태가 아닌 것 같네. 그러니까 이런 데에 우두커니 서있는 거겠고.”
“그래도 이대로 있으면 감기에 걸리고 말 거야. 어서 돌아가는 게 좋아.”
남자가 빗줄기의 상태를 살피는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되돌린다.
“안 가는 거야?”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아닙니다.”
“이런 이런.”
남자가 의미심장하게 눈을 가늘게 좁히고 웃는다.
“네가 여자애였다면 그 말은 남자의 이성을 뇌쇄하는 결정적 한 마디였을 텐데 말이지. 뭐 이런 데에 계속 있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고, 뭔가 따뜻한 거라도 마실까.”
“에, 그치만.”
“바로 여기니까.”
남자가 턱으로 건물을 가리킨다.
“이 클럽의 오너랑 아는 사이라서 말이지. 방 하나를 빌려서 거기서 머물고 있어.”
“난 원래 플라티나 제일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게 말하고,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자기 방으로 같이 가자는 거겠지.
……어떻게 하지.
따라가도 괜찮은 걸까. 이 남자의 이름이 뭔지도 모르는데.
애초에 이제 막 알게 됐을 뿐인 나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는 뭘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상하다.
……그럼에도, 내 안에서는 어떤 예감이 깜박거렸다.
코우자쿠는 이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다. 이 남자 이야기에도 과민하게 반응했다.
혹시, 이 남자…….
코우자쿠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우연인지도 모르겠지만, 남자가 했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 내 등을 떠밀었다.
“어떻게 할래?”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와야지.”
남자는 기쁜 듯이 웃으며, 바로 옆에 서서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안 젖게, 좀 더 이쪽으로 와. 아, 그렇지. 이름, 가르쳐줄래?”
“……아오바.”
“아오바구나, 좋은 이름이네. 나는 류호.”
“류호…….”
“그래. 잘 부탁해.”
류호는 시종 얼굴에 미소를 띤 채로. 내 어깨를 살며시 밀고는 걷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래도 괜찮은 걸까?
아직 완전히 망설임을 떨쳐내지 못한 나의 귀로,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가 유달리 건조한 울림으로 와 닿았다.
“들어와.”
“……감사합니다.”
검게 도색된 테이블 위로 하얀 찻잔이 놓인다.
그 안에는 엷은 갈색의 액체와 어떤 꽃의 잎이 담겨있고, 살포시 묘한 향기가 감돌았다.
“향이 좋지? 일부러 주문해서 들여온 거라, 일본에서는 안 파는 거야.”
한 모금 마시자, 풍부한 향이 코를 자극했다. 찻잔 속에서 꽃잎이 사랑스럽게 흔들린다.
“……맛있다.”
“맛있다니 다행이네.”
류호도 찻잔을 들고 와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내 바로 정면에 앉았다.
정면에서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쳐다봐서, 무심결에 눈을 돌린다.
류호의 방으로 가기로 결정된 후, 우리들은 클럽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1층이 댄스 플로어와 바, 2층이 타투 스튜디오와 대기실, 3층이 스태프 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류호의 방은 3층이었고, 실내는 류호 본인처럼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로 가득했다.
다다미가 깔려있는 전통식 방이긴 했지만, 가구는 유럽풍의 앤티크 같은 것이 놓여있거나 해서 일본식과 서양식이 한데 어울려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방 이곳저곳에 문신의 도안이 그려진 종이들이 붙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약간 어둑한 실내에서는 그것들이 주술을 쓰는 데 사용되는 도구처럼도 보여서, 조금 기분이 나쁘다.
“……저 그림은, 혹시.”
“아아, 문신 새기는 일을 하고 있어.”
“헤에…….”
어디선지 모르게 먹물이나 잉크 냄새 같은 게 나는 것은 그 때문인가.
타투이스트인가……. 미즈키도 이런 일을 하고 있지…….
희미한 아픔이 가슴을 스치는 것을 느끼고, 도안으로부터 눈을 돌리고자 했다.
……응?
저 무늬……,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오바 군, 문신에 관심이 있는 거야?”
“에? 아아, 뭐……. 제 몸에 새기는 정도는 아니지만요.”
“꽤나 열심히 보고 있어서 말야. 원한다면, 내가 새겨줄게.”
“아뇨,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는. ……그보다, 저기.”
“응?”
“왜 그렇게까지 이래저래……, 저한테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건가요?”
마음을 먹고서 줄곧 신경이 쓰였던 것에 대해 물어본다.
류호는 잠시 생각하는 듯이 천장을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네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흔히들 말하는 첫눈에 반했다는 거겠지.”
“………….”
“이건 농담이고.”
어떻게 리액션을 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를 보고는 웃으면서, 류호는 찻잔을 손가락으로 통 튀겼다.
“이런 말을 하면 미심쩍다고 여기겠지만 말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네게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것을 느꼈기 때문이야.”
“…………”
“이건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냐. 널 보았을 때, 네 안에 심상치 않은 힘……, 생명력이 흘러넘치는 것을 느꼈어.”
“……아 네.”
어쩐지 이야기의 방향이 수상한 종교의 설교처럼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류호는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너에게서는 거대한 파도가 느껴져. 그것은 단독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냐. 이성, 보호, ……파괴.”
“그것들이 네 안에서 독자적으로 의지를 지닌 채로, 공존하고 있어.”
“……!”
……파괴. 파괴 충동.
내 힘에 대해서, 할머니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코우자쿠의 일도 그렇고, 이 녀석…….
류호의 눈에서는 그 전까지 줄곧 떠올라있었던 웃음기가 사라진 상태였다.
나는 스스로가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류호에게 눈치 채이지 않게끔 눈을 내리깔고, 찻잔에 입을 댔다.
미지근해진 차를 목구멍으로 흘려보내고,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한다.
“바로 맞췄으려나?”
“………….”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건, 난 너의 그런 복잡한 면을 막무가내로 들춰낼 생각은 없어. 그런 세련되지 못한 짓은 안 해.”
“정갈하게 추려지고 깨끗하게 정돈된 것보다도, 복잡하게 뒤얽히고 일그러진 것이 훨씬 더 좋아. 문신이랑 똑같아.”
류호의 시선이 벽에 장식된 문신 도안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훑는다.
“이 아이들도 도안 단계에서는 단순히 정돈된 그림으로만 보이겠지. 하지만, 모두 계산해서 만들고 있어.”
“실제로 피부에 새길 때의 막힘, 미끄러짐, 일그러짐, 둥그스름함, 번짐, 스밈, 색의 변화까지를 말이지.”
“피부라는 건 울퉁불퉁해. 그 위로 피가 스며들 때를 보면 알겠지?”
“상태에 따라서는 계산 밖의 사태가 일어나기도 하지. 인간에게 뒤틀어지지 않은 부분 같은 건 하나도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먹물을 넣을 때, 내 영혼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는 생각으로 바늘을 찌르지.”
“뒤틀린 피부에 손을 대서 그보다 더한 뒤틀림을 발생시키는 거야. 나도 그에 걸맞은 경의를 표하지 않으면 안 돼.”
소중한 것을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감상하는 때와 같은 말투로 이야기를 하고는, 류호는 내 쪽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이 녀석…….
지금 그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이 남자에게 이전부터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했다.
어딘지 모르게 웃는 얼굴이나 행동거지가 연기 같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류호는 문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다른 사람처럼 표정이 변한다.
문신에 대한 이상한 집념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쪽이 류호의 진짜 얼굴인 것이겠지.
지금 그 이야기는 적어도 일반적인 차원의 것은 아니다. 허나, 그 이야기를 입 밖에 낼 때의 류호는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류호의 눈에는……, 인간이 어떤 식으로 비치는 것일까?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시야도 흔들려서 확실치가 않다.
“나는, 순수하게 너에게 흥미가 있어.”
류호의 말이 귓속에서 반향을 일으키며 팽창되고, 이내 녹아들어 사라진다.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다.
“네 안에 존재하는 개개의 의지가 서로 반발하고 다투는 한, 네가 애써 이어나간 연을 갈라놓을 수밖에는 없겠지.”
“그게 네가 짊어진 숙명이니까 말야. 너는 타인과 순수하게 공존할 수 없어.”
내가 짊어진, 숙명…….
끝내 눈꺼풀이 떠지지 않고, 사고가 졸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간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이 극심한 졸음……. 그런가. 그 차…….
“내가 내 생애를 걸고 있는 문신과, 너. 이 두 가지가 융합되면 어떤 뒤틀림이 생겨날지……, 흥미가 있어.”
“……아아.”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수마의 습격에, 나는 의식에서 손을 놓았다.
………….
무언가, 소리가 난다.
“…………으윽.”
눈을 뜨려고 하자, 머리에 둔탁한 통증이 스쳤다.
여기는…….
……방금 전과 똑같이, 류호의 방이다.
나는 어느 사이엔가 이부자리 위에 엎드리고 있었다.
사방등의 불이 일렁일렁 흔들리고, 그에 맞춰 그림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일어났어?”
“!”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얼굴을 돌리려 한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팔다리가 마비되어서 남의 것인 양 무겁다.
분명 류호의 방에서 차를 마시고는……. 그 차에는 틀림없이, 약이 섞여있었을 것이다.
젠장…….
“아직 몸에 힘이 안 들어가겠지?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아. 쉽게 상처를 입고, 말을 하려고 하면 혀를 깨물게 될 거야.”
“……윽.”
류호의 말투가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더 정중하고, 마치 의식이라도 시작하는 듯한 분위기라 불길한 예감이 마구 부추겨진다.
조금 전부터 작은 금속이 서로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거기다, 먹물 냄새에 뒤섞여 소독약 냄새도 희미하게…….
“무, ……슨 짓을.”
“말 안 하는 편이 좋아.”
“뭘, 할, 작정…….”
“그래. 간단하게 말하자면 네가 내 연구를 도와줬으면 해. 연구라는 말 따위, 실은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지. 문신은 내 전부니까.”
“이 등에 나의 꽃을 새기면, 어떤 식으로 너의 생명력을 빨아들여서 개화할지. 그걸 보고 싶어.”
“……윽!”
등에 싸늘한 무언가가 닿는다. T셔츠가 걷어 올려져있다.
등에 닿은 것은 류호의 손인가? 얼음처럼 차갑다.
내 눈앞으로 가느다란 봉 같은 것이 들이밀어진다.
“자. 이게 너의 피부를 관통해서, 안쪽까지 먹물을 새겨 넣을 거야.”
붓?……이 아니다.
끝부분이 가느다란 몇 개의 바늘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다.
저것이 살갗에…….
실제 시술에 사용되는 기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식은땀이 솟아난다.
지금 당장 여기서 도망치지 않으면…….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크, 흑…….”
“그래봤자 허사야. 너만 힘들어.”
몸을 일으키려는 나를 진심으로 동정하는 듯한 말투로 말을 내뱉고, 류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잠깐 부족한 도구를 가지고 올게. 얌전하게 있어.”
조용조용히 다다미를 밟는 소리가 나고, 문을 여닫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제길……, 윽.”
어떻게든 해서, 지금 이 틈에……!
양팔과 양다리에 힘을 실어서 몸을 일으켜보려 한다.
그렇지만, 곧바로 힘이 빠지고 만다.
입안도 바싹 말라서, 타액을 삼키는 것도 힘들다.
도망치려면 지금뿐인데……!
“……크윽, …….”
그렇게 발버둥을 치고 있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류호가 돌아온 건가?
무언가가 다다미 위를 구르는 듯한 소리가 나고,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등에 폭신한 무언가가 닿았다.
‘아오바!’
“……렌!?”
파란 털 뭉치가 눈앞을 가로막고, 내 얼굴을 핥았다.
“렌, 어떻게 여기에.”
‘중간에 가방에서 빠져나가서, 도움을 요청하러 밖으로 나갔었어.’
“도움을? 누구한테…….”
“아오바……!”
“코우자쿠……!?”
‘코우자쿠를 찾아내는 건 굉장히 수고스러운 일이었어.’
“렌……. 너, 최고.”
렌이 기쁜 듯이 꼬리를 흔든다.
“아오바, 괜찮아?”
코우자쿠가 몸을 굽히고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순간, 글리터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코우자쿠의 걱정스러워 보이는 얼굴을 보니 그것도 금세 어딘가로 사라지고 말았다.
“움직일 수 있겠어?”
“일어날 수가 없어. 차를 마셨는데 그 안에 뭔가 약 같은 게 섞여있어서…….”
“잠깐 기다려.”
코우자쿠가 위로 걷어 올려진 내 T셔츠를 내려주고서, 내 팔을 잡고 자신의 어깨에 둘렀다.
허리를 떠받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준다.
코우자쿠의 도움을 받아, 이불 위로 그럭저럭 앉는 자세를 취한다.
팔다리가 마비된 탓에 몸이 축 늘어지는 느낌이 들고, 호흡을 하는 것도 약간 괴롭다.
“힘들어?”
“괜찮아…….”
“근데, 이 방…….”
코우자쿠가 혐오를 그대로 드러낸 얼굴로 실내를 둘러본다.
문신 도안과 이부자리 옆에 놓인 기구를 보더니,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조용한, 그러나 심상치 않은 분노를 느끼고, 나는 코우자쿠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아, 미안. 욕 나올 만큼 기분 나쁜 방이네. 빨리 여기서 뜨자.”
내 시선을 눈치 챈 코우자쿠가 표정을 풀고는, 어깨동무를 해서 나를 일으켜세우고자 했다.
그때…….
방의 문이 열렸다.
“!”
“……이런 이런.”
“………….”
류호가 발을 멈추고, 우리들을 보고는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인이 없는 사이에 도둑질인가? 그것도 꽤나 당당하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 ……이 자식.”
코우자쿠가 매서운 눈초리로 류호를 노려보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범상치 않은 분노를 품은 공기가 코우자쿠의 몸을 에워싼다.
“겨우 찾아냈다고.”
……에?
겨우 찾아냈다니……. 무슨 말이지?
류호가 입술에 손을 대고, 생각하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실례지만 누구였더라? 아오바 군이랑 아는 사이인 건 확실한 것 같지만.”
“시치미 떼지 마. 잊어버렸다는 말 같은 건 못 하게 해주겠어. 나는 네 녀석 탓에…….”
“내 탓?”
“이걸 잊어버린 거냐!”
코우자쿠가 긴 앞머리를 쓸어올린다.
지금껏 감춰져있었던 얼굴의 반쪽이, 사방등 불빛에 훤히 드러난다.
그곳에는……, 문신이 새겨져있었다.
“………….”
등뿐만이 아니라, 얼굴에까지…….
코우자쿠의 문신을 보고는, 그때까지 왠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듯했던 류호의 눈동자에 빛이 깃들었다.
류호의 입이 싱긋 웃는다.
“……일부러 모른 척 해본 것뿐이야. 잊어버릴 리가 없잖아. 코우자쿠, 네 문신을.”
“아직 어디에도 상처가 나지 않은, 티 없이 깨끗한 네 피부에 새겼던 내……, 미완성의 최고 걸작.”
“시끄러워, 입 닥쳐. 너 이 자식, 아오바한테 무슨 짓 했어.”
“아무것도 안 했어. 아직은, 말야. 마침 이제부터 뭔가 시작하려던 참이었지만, 네가 훼방을 놓았어. 기가 막힌 타이밍이군.”
“……윽.”
“네가 플라티나 제일에 온 건 눈치 채고 있었어. 그저께, 이 건물 1층의 댄스 플로어에 있었지? 그때 널 발견했어.”
“다만, 내 쪽에서 말을 걸지는 않았지. 네가 내 뒤를 쫓아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이 자식…….”
코우자쿠의 목소리에 채 억누르지 못한 분노가 배어나온다.
류호는 그와 반대로, 그 어떤 때보다도 생기가 넘쳤다.
코우자쿠의 등과 얼굴의 문신.
그것들을 새긴 것은……, 류호인가?
“뒤틀림이 없다는 건 말야, 다시 말하자면 매끄럽고 올곧다는 거지. 올곧은 것은, 거꾸로 말하자면 그 뿌리부터 뒤틀리기 쉬워. 내성이 없지.”
“거기에 내 바늘을 박아 넣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뒤틀릴지, 올곧은 네 마음은 어떻게 일그러질지.”
“그걸 보고 싶어서, 나는 내 몸과 혼을 다 쏟아서 너에게 문신을 새겼어. 영혼이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면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나 자신을 전부 기울여서 말이지.”
“입 닥치라고 했잖아!!”
“후훗.”
류호가 즐거운 듯이 웃는다.
“내가 했던 충고, 잊어버린 건가? 그때, 난 분명 너한테 주의하라는 말을 했어. 그렇게 분노에 몸을 내줘도 괜찮은 거야?”
“……윽.”
“그런데 설마 정말로 나를 찾아낼 줄은 말이지. 발칙하기 짝이 없는 집념이야. 감탄스럽다고. 하하. 정말로 감탄스러워.”
그렇게 말하며, 류호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난다.
“이 자식……! 도망칠 작정이냐!”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이렇게 된 이상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싶어.”
“너는 네 마음껏, 나에 대한 분노를 끄집어내면 돼. 단단히 각오를 해두자고, 너도 나도.”
“류호!!”
류호가 살포시 발길을 돌리고, 방에서 나간다.
“거기 서!!”
“……앗.”
코우자쿠가 그 뒤를 쫓으려 한다. 나는 곧바로 코우자쿠의 기모노 자락을 붙잡았다.
이대로 류호의 뒤를 쫓게 해서는 안 된다. 어째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앗, 이거 놔!!”
“싫어……!”
“류호…………!!”
내장까지 전율하는 듯한 고함 소리가 울려퍼지고, 코우자쿠가 거세게 날뛰는 바람에 옷깃을 붙잡은 내 손도 코우자쿠를 놓칠 것만 같아진다.
[ 코우자쿠의 팔을 세게 붙잡는다 ] → 선택
[ 다른 방법을 생각한다 ]
“코우자쿠……!”
나는 필사적으로 코우자쿠의 팔을 붙잡았다.
“이거 놔, ……놔!!”
“안 돼!”
코우자쿠는 분노에 이성을 잃은 상태다.
어떻게든 막지 않으면……!
“……크윽.”
머리가…….
제길, 이런 때에……!
머리가, 아프다…….
그치만, 코우자쿠를 막지 않으면…….
코우자쿠……!
“코우자쿠, 진정해!!”
두통을 참으며 무작정 소리를 지르자, 코우자쿠가 움직임을 딱 멈췄다.
“…………, 아오바.”
나를 돌아본 코우자쿠의 표정에서는, 분노가 사라져있었다.
“……윽.”
겨우 한숨 놓여서, 나는 이불 위로 두 손을 짚었다. 코우자쿠가 달려와 그런 나를 지탱해준다.
“괜찮아?”
“……그보다 너야말로 괜찮은 거냐고.”
“나는……, …….”
코우자쿠가 말을 끝까지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시선을 불안정하게 이곳저곳으로 돌린다.
좀 전에 오고간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코우자쿠에게 문신을 새긴 것은 류호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코우자쿠는 류호를 몹시도 증오하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가 동기가 되어서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어째서 류호가 코우자쿠에게 문신을 새겼던 것일까?
왜, 코우자쿠는 류호를 증오하는 것일까?
코우자쿠가 이성을 잃었던 것은 왜일까?
그것들은 이어질 것 같으면서도……, 이어지지 않는다.
각각의 사건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코우자쿠는 입을 다물고서는,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딱 잘라낸 것처럼 내 얼굴을 보았다.
“……우선, 너한테 사과하지 않으면. 미안했어. 어제도 난 너한테……, 당치도 않은 짓을.”
“………….”
“코우자쿠 씨!”
“무사하십니까!”
갑자기, 거센 소리와 함께 문이 기세 좋게 열렸다.
그것을 본 코우자쿠가 웃음을 짓는다.
“너희들, 늦었잖아.”
“죄송합니다!”
“아…….”
방 안으로 줄줄이 들어온 것은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이었다.
“너희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구 주민구의 경찰관한테 말을 해서, 플라티나 제일로 들어올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하게 했지.”
구 주민구의 경찰관…….
그러고 보니 베니시구레는 경찰관 몇 명하고도 친분이 있었지.
“곧 있으면, 토우에의 특별기념 이벤트가 열리잖아? 그때 경비 강화를 위해서 구 주민구의 경찰관들도 호출되는 모양이라서 말야.”
“그래서 경찰관으로 위장하고 그 증원된 인원인 척하고 들어온 거야. 이벤트가 개최되는 동안의 일시적인 거니까, 검문도 그렇게 철저하지 않고.”
“말이 그렇긴 하지만요. 솔직히 언젠가 들통 나는 게 아닐까 엄청나게 조마조마했습니다.”
“정말이에요! 신원 인증을 할 때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하, 그래. 그래도 무사했으니 다행이잖아.”
“그러네요!”
“그런데 이 자식……. 순식간에 꽁무니를 빼다니.”
코우자쿠가 분하다는 듯이 혼잣말을 내뱉는다. 류호를 말하는 거겠지.
“너, 정말로 아무 짓도 안 당한 거지.”
“아아.”
“그래……. 젠장, 어디로 내뺀 거야.”
“‘이 자식’이라면, 혹시 기모노를 입은 녀석 말씀입니까?”
“그래.”
“그 남자라면 밖에서 대기시켜뒀던 녀석이 뒤를 쫓고 있습니다! 건물 안에서 허둥지둥 뛰쳐나온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수상쩍어 보여서, 뒤를 밟겠다는 연락이 왔었습니다.”
“잘 했어. 상이라도 줘야겠군.”
“헤헤.”
과연 베니시구레랄까, 팀플레이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었다고 할까.
“기모노를 입은 녀석의 행방에 대해서는 나중에 연락이 올 것 같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일단 창고에 대기시켜놨습니다. 경찰관한테서 뒷문의 키 패스워드를 들어서요.”
“그래. 그럼 다른 녀석들이랑 합류하자고. 언제까지고 이런 기분 나쁜 곳에 있고 싶지 않으니까.”
“옙!”
“아오바, 가자. 움직일 수 있겠어?”
“아아.”
“영, 차.”
코우자쿠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일어선다.
“아오바 씨, 괜찮으십니까? 저도 돕겠습니다!”
“미안.”
멤버 중 한 명이 코우자쿠의 반대쪽에서 어깨에 팔을 둘러 나를 지지해준다.
“전 아오바 씨의 가방이랑 올메이트를 가지고 가겠습니다!”
“부탁해.”
“네! 저, 개를 좋아해서요!”
‘멍멍!’
“으햐하!”
“좋아, 가자.”
아직 류호가 먹였던 약의 효과가 다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와준 덕분에 정신적으로는 상당히 편안해졌다.
우리들은 건물에서 나와서, 다른 멤버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창고로 향했다.
플라티나 제일의 메인스트리트를 벗어나 외곽 쪽으로 걸어가자, 여러 개의 창고들이 늘어서있는 장소가 나왔다.
화려하게 장식된 가게나 시설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관광객의 모습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 창고들 가운데 하나로 다가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세심하게 확인하고서 뒷문으로 향했다.
베니시구레의 멤버 중 한 명이 코일을 조작해 뒷문의 록을 해제한다.
창고 안은 공간이 굉장히 널찍했고, 커다란 상자가 쭉 늘어서있었다.
우리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상자의 그림자에서 몇 명이 나와서 모여들었다. 대기하고 있었던 다른 멤버들이다.
코우자쿠는 멤버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무사하게 합류하게 된 것을 멤버들과 함께 기뻐했다.
나도 약의 효과가 떨어져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되어서, 벽 쪽으로 다가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긴장감에서 해방되어 멍하니 있으니, 멤버들과의 이야기를 마친 코우자쿠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몸은 괜찮아?”
“아아.”
“그래.”
코우자쿠가 내 옆에 앉는다.
지금까지는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잊고 있었지만…….
다시금 둘만 남게 되자,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된다.
코우자쿠도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오바.”
팽팽한 긴장감으로 들어찬 침묵을 깨고, 코우자쿠가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우선 사과하게 해줘. 사과해서 될 일이 아닌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그런데…….”
“정말로, 미안했어.”
“………….”
그 말을 듣고서,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코우자쿠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생각한 것이 많아서……, 말하고 싶은 것도 물어보고 싶은 것도 산처럼 쌓여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코우자쿠에 대해 알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코우자쿠가 나에 대해서 더 알 수 있게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만 코우자쿠에게 요구를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제대로 보폭을 맞추지 않으면.
지금까지 코우자쿠가 내게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젠 어렸을 때와는 다르니까.
그것을 위해서도, 내가 느꼈던 것을 솔직하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우자쿠, 나 말야. 너한테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어.”
코우자쿠의 얼굴에 희미한 긴장이 스친다.
“나는 오래 전부터 널 알아 와서, 그 때문에 너에 대해서라면 뭐든 내가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잠겨있었어.”
“하지만 난……. 전에도 말했지만, 실은 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지.”
“아오바…….”
“나 스스로도 내가 얼마나 교만한 인간이었는지를 생각하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는 얘기야. 그런데 그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니까 엄청나게 충격으로 다가와서…….”
“처음엔, 코우자쿠가 왜 나한테 뭔가를 숨기는 걸까 싶었어. 그치만,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 거지.”
“너한테는 너의 사정이 있고, 나한테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도 있었을 거고……. 난 우선 그걸 이해하려하지 않았던 거야.”
“그럼에도 한 번은 이해심 좋은 척 하면서, 널 믿고 기다리자고 결심했었어.”
“네가 이야기해줄 때까지 기다리자고. ……그런데 그게 안 돼. 나, 역시 너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어.”
“네가 섬에 없었던 사이에,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된 건지를 알고 싶어.”
“아무래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 괜찮지만……, ……아니.”
“안 괜찮아. 이런 가식은 이제 안 떨어. ……코우자쿠, 말해줘. 네 이야기를, 나한테.”
“………….”
코우자쿠는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만약 이래도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면, 그때는 깨끗하게 포기한다.
그것이 코우자쿠로부터의 대답인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코우자쿠가 천천히 얼굴을 들어 나를 보았다.
“……알았어, 이야기할게. 설마 내가 너한테 그런 마음이 들게끔 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다만 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그것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솔직히, 네가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도 있어. 하지만 결국은 널 끌어들이고 말았어. 류호도 그 원인의 일부야.”
“여기까지 온 이상 새삼스레 숨길 생각은 없어. 나도 각오를 굳혔어. 그러니까, 들어줘.”
“……아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코우자쿠도 내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엄마랑 이 섬에서 나왔을 때 말야. 그때, 난 본토에 있는 본가로 돌아갔었어.”
“넌 모르겠지만, 우리 본가는 말이지, 사실은 야쿠자야.”
“……그랬구나.”
“아아. 나는 조직의 후계자였어. 후계자라곤 해도 엄마는 첩이지만. 본처가 아이를 못 낳는 사람이여서. 대신에 내가 후계자 자리에 오르게 됐지.”
“그렇지만 난 뒤를 이을 마음 같은 건 추호도 없었고, 엄마도 본처한테 심하게 괴롭힘을 당해서 말야. 그런 것들에 완전히 지쳐버려서, 그래서 이 섬으로 도망쳐왔던 거야.”
“뭐 결국은 다시 소환되고……, 그리고는 이런저런 일이 생겨서. 엄마도 그때 돌아가셨어.”
“………….”
코우자쿠의 어머니, 돌아가셨던 건가…….
코우자쿠가 어머니와 함께 섬에 살던 때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몹시도 상냥하고 아름다운 분이셨다.
갑작스럽게 알게 된 사실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채로 있으니, 코우자쿠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얼굴의 문신은, 아까 처음으로 본 거지.”
“아아. 그치만……, 등에 있는 문신은 알고 있어.”
“봤던 거야? 언제.”
“내가 토했을 때 말야, 내가 네 기모노까지 더럽혀버려서, 그래서 너, 샤워실에서 기모노를 빨았었지.”
“아아.”
“그때, 문이 약간 열려있었어. 샤워하고 있나 싶어서 별 생각 없이 들여다봤는데, 그때…….”
“훔쳐볼 생각은 없었지만……, 미안.”
“……어쩐지, 그랬구나. 별로 신경 쓸 거 없어. 등에 있는 문신을 봤을 때, 놀랐지?”
“아, 조금.”
“등에 있는 것도 얼굴에 있는 것도, 이 문신들은 본가로 돌아갔을 때 했던 거야. 강제적인 거였지만 말이지. 이것들을 새긴 건 그 녀석, 류호다.”
“아버지가 그 녀석을 마음에 들어 해서, 그래서 나한테도 문신을 새기도록 했지.”
“이런 것 따위, 짊어지고 싶지 않았는데. 인과라고 치부해버리면 그걸로 끝일지도 모르겠지만……. 집안의 계보라느니 조직의 후계자라느니 엿이나 먹으라지.”
부아가 치민다는 듯이 말을 내뱉고, 코우자쿠는 한손으로 자신의 앞머리를 흐트러트렸다.
“류호 자식……. 네가 류호랑 말하는 걸 봤을 때부터 경계는 했지만, 설마 그 자식이 정말로 너한테 손을 댈 줄은 몰랐어.”
“좀 전에 네 모습을 봤을 때, 심장이 멈추는 게 아닐까 싶었어. 그래서 그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던 거야.”
내가 류호랑 말하는 걸 봤다고?
“그거……, 그 클럽 앞에서 내가 류호랑 이야기했을 때를 말하는 거야?”
“아아. 그 광경이 내 눈에 들어온 건 정말로 우연이었지만 말야. 여기에 온 후로 나는 줄곧 그 녀석을 찾아 헤맸는데…….”
“여기에 처음 왔을 때 우리들한테 말을 걸었던 여자 두 명, 기억나지?”
“아아.”
“그 여자들 중 한 명이, 목에 류호의 문신을 새긴 상태였어. 그 녀석이 새긴 문신은 특징이 있으니까 금방 알 수 있어. 그 녀석 특유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푸른빛이 돌지.”
“그래서 나는 류호가 여기에 있다는 걸 확신하고, 그 여자에게 류호에 대해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여자랑 만나러 나갔던 거야?”
“아아.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그때는 류호 일로 머릿속이 가득 찼었어. 엄마가 돌아가신 후, 그 녀석은 계속 행방을 감추고 있었어.”
“문신에 관한 것도 있었고, 나는 그 녀석을 확 붙잡아서 가만 두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지. 그런데, 그 녀석은 본토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발견되지 않았어.”
“내 마음은 결코 진정되지 않았지만, 나도 언제까지고 이 문제를 질질 끌고 있을 수는 없다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다시 미도리지마로 건너왔던 거야.”
“그런데 그 녀석, 갑자기 손이 닿을 법한 곳에 뻔뻔하게 얼굴을 내밀고. 거기다 아오바한테까지…….”
거기서 코우자쿠는 말을 멈췄다. 눈동자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난 류호를 용서할 수 없어. 문신이라는 건 한 번 새기면 완전히 지울 수가 없어. 죽을 때까지 같이 있는 거야.”
“아무리 아버지의 명령이라고는 해도, 그런 걸 새긴 녀석을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 녀석은 문신을 새기는 짓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어. 뒤집어 말하면 문신 이외에는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거야.”
“상대방이 눈물을 흘리든 소리를 지르든 희희낙락하면서 바늘을 찌르지. 그 녀석은 인간도 아니야.”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신 것의 원인은, 그 녀석에게도 있어.”
“………….”
“사실은 잊어버릴 생각이었어. 아무리 미워하고 원망한다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이다음은 시간이 모든 것을 떠내려가게 해줄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그런데 그 녀석, 이제 와서 천연덕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사람을 얼마나 병신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 빌어먹을……!”
코우자쿠가 주먹으로 벽을 내리친다. 그 주먹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녀석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서, 뭐가 뭔지 분간을 할 수 없게 돼버려. 너한테도 폐를 끼치고 말았어.”
“나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어. 그렇지만 의도치 않았건 어쨌건 간에, 나는 이 문신을 떠안고 말았어. 그러니까, 이건 내 업이야.”
“이게 있는 한, 내 안의 증오와 분노는 사라지지 않아. 그러니까……, 결착을 짓고 싶어.”
“결착?”
“아아. 나와 그 녀석 사이의, 결착이다.”
“하지만, 이건 전부 내 사정이야. 너하고는 관계없는 일이고, 이 이상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 결착도 나 혼자서 짓겠어.”
“………….”
“그러니까 너한테 폐를 끼치지는…….”
“……날 바보 취급하는 거야?”
나는 코우자쿠의 말을 가로막고, 눈동자에 강하게 힘을 실어 코우자쿠의 눈을 응시했다.
“언제, 누가, 네가 폐가 된다는 말 같은 걸 했냐고.”
“………….”
코우자쿠가 당황한 듯이 지면으로 시선을 떨어트린다.
“네 멋대로 내 대답을 정하지 마. 나는 네가 폐가 된다는 생각 같은 거 해본 적 없고, 지금도 그래.”
“지금……, 네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이걸로 가까스로, 내가 널 위해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아오바…….”
“얼마 전에, 참 오랜만에 어렸을 적 꿈을 꿨어. 밤이 되어도 할머니가 오지 않아서 내가 울고 있고, 그랬더니 네가 날 찾으러 와줬어.”
“넌 항상, 날 찾아내주었잖아? 난 그게 정말로 기뻤어. 그래서 네가 언제나 날 도와주는 히……, 의지할 수 있는 형처럼 느껴졌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널 돕고 싶어. 너, 저번에 그렇게 말했잖아. 내가 혼자서 다 끌어안는 습성이 있어서, 말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계속해서 말을 하는 거라고.”
“그거,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어. 네가 혼자 다 끌어안으려고 하면 나에게 의지하라고, 날 끌어들이라고 계속해서 말 할 거야. ……그게 너랑 내 사이의 정이잖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나도, 너를 내 일에 끌어들인 형국이고…….”
거기서 말을 멈추고, 나는 코우자쿠의 기색을 살폈다.
코우자쿠는 미간에 깊게 주름을 새기고서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후 하고 숨을 내쉬고서 미소를 지었다.
“……? 왜 그래.”
“아니. 여기 오기 전에, 뭐든 좋으니까 이야기를 털어놓으라고 너한테 말했던 걸 떠올리니까, 어쩐지 우스워져서.”
“말한 당사자가 그러질 못한다는 게, 최고로 볼품없잖아.”
“우리들, 서로 닮은 걸지도 모르지. 자기 일에 있어서는 완전히 눈뜬장님이 되는 거라든지.”
“그럴지도 모르지. ……어렸을 적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 오랜만에 이 섬으로 돌아와서 널 보았을 때, 실은 상당히 놀랐었어.”
“놀랐어? 뭐 때문에.”
“그렇게 쪼그맸던 네가 다 커서 완전히 어른이 됐구나~ 싶어서.”
“당연하잖아, 그거야.”
“아아. 그치만 정말로 놀랐었어. 내가 모르는 아오바가 있구나 하고.”
“……!”
코우자쿠가 온화한 웃음을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너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겠지만, 나도 전에 본 적 없는 너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꼈다는 말이야.”
“피장파장이네…….”
“그렇게 되네.”
“그런데 난 섬으로 돌아온 널 봤을 때, 별로 안 놀랐어.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너무하네. 전혀 성장이 없었단 건가.”
“그런 게 아냐. 좀 전에도 말했지만, 코우자쿠는 언제나 날 도와주는……, 히어로였으니까 말야.”
“히어로?”
“……그래. 그게 뭐.”
“……어, 어어.”
“그러니까 섬으로 다시 돌아온 코우자쿠도 예전과 다르지 않은,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의 코우자쿠일 거라고 멋대로 착각에 빠졌었지. 그래서 너한테 응석부렸던 거야, 나.”
“……안 변했어, 아무것도.”
나를 보는 코우자쿠의 눈이 가늘게 좁혀진다.
“확실히 우리들은 떨어진 채로 보냈던 시간이 있었어. 하지만, 우리들의 본질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다만 어른이 되어서, 쓸데없는 걸 생각하게 되었을 뿐이지. 나는 나. 너는 너야. 그렇잖아?”
“……아아.”
고개를 끄덕이자, 코우자쿠가 싱긋 웃으며 내게로 손을 내밀었다.
“화해의 악수야. 어렸을 땐 자주 했었잖아? 이렇게 손을 잡고서.”
코우자쿠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내 손에 감긴다.
“……그러고 나서 넌, 항상 나한테 이렇게 말했었지.”
“지지 마, 라고.”
“그랬었나.”
“그랬어. 지금도 똑똑히 기억나. 너한테서 그 말을 들으면, 어쩐지 정말로 힘이 솟아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어.”
“……그래.”
코우자쿠가 조금 쑥스러운 듯이 웃는다.
“……응? 너, 이거 왜 그런 거야.”
“뭐가?”
“목 쪽이, 약간 빨개. 벌레한테 물렸다기보다는 두꺼운 바늘로 찌른 것처럼…….”
“코우자쿠 씨!”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이 술렁이고, 그 중 한 명이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나도 코우자쿠도 잡고 있던 손을 동시에 놓는다.
“어, 무슨 일이야.”
“그 기모노를 입은 녀석의 뒤를 쫓았던 멤버에게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녀석은 오벌 타워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오벌 타워…….”
“오벌 타워면……, 플라티나 제일을 관리하기 위한 탑이잖아?”
“정확하게는 관리‘도’ 하고 있지. 실제로는 토우에 재벌의 본사 빌딩이라고 하던데.”
“토우에 재벌의 본사 빌딩? 왜 류호가 그런 곳에.”
“그 녀석, 설마 토우에랑 손을 잡고 있는 건가?”
“!”
코우자쿠의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좋아. 우리들도 오벌 타워로 간다.”
“가시죠!”
“그치만 어떻게 안으로 들어가지? 보통은 못 들어가게 되어있을 텐데.”
“들어간다고 한다면 뒷문을 사용해야겠지.”
“그러네요. 기모노 입은 녀석을 뒤쫓았던 녀석의 말을 따르면 종업원용 통용구가 있어서, 그 부근은 경비가 삼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거기서부터 치고 들어갈까.”
“알겠습니다!”
“아오바, 너도 올 거지?”
코우자쿠가 확인하는 듯이 나를 본다.
“안 물어봐도 알잖아.”
“너랑 내 사이니까 말야.”
코우자쿠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서, 나도 가볍게 웃음을 지어서 그에 화답한다.
지금부터 류호의 뒤를 쫓아서 토우에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간다.
생각을 해보니, 조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본디 나와 코우자쿠의 목적은 서로 다른 것이었는데, 최종적으로는 같은 방향으로 모이게 되었기에.
이걸로 토우에의 계획을 멈출 수 있다면…….
“가자!”
“옙!”
우리들은 창고에서 나와, 오벌 타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헤헤 속도가 고자라 죄송합니다...ㅠㅠ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글리터에 도착한 후, 코우자쿠는 나를 업은 채로 일부러 2층의 침대까지 날라주었다.
“옷, 벗을 수 있어? 더러워진 건 전부 벗어.”
“아아.”
오물이 묻은 겉옷을 벗어 코우자쿠에게 건네고, 나는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몸이 침대에 푹 파묻히자,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피로가 느껴졌다.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피곤해?”
“그러네…….”
“몸은?”
“아까보다는 괜찮아졌어.”
“그래. 자, 렌. 여기 두고 갈게.”
코우자쿠가 렌을 침대 위로 내려놓는다.
렌은 내 바로 옆에 붙어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렌의 파란색 털을 쓰다듬으니 마음이 놓였다.
코우자쿠는 일단 방에서 나가고는, 곧바로 되돌아와 테이블 위로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물이 담긴 컵이다.
“이거 마시고, 좀 자.”
“고마워……. 이것저것.”
“신경 쓰지 마. 이거 말고 또 필요한 거 없어?”
“괜찮아.”
“그래.”
그 후로는, 대화가 끊겼다.
코우자쿠가 고개를 숙인 채로 침묵하고, 무언의 시간이 흐른다.
이 침묵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나와 코우자쿠 둘 다, 생각하고 있는 것은 분명 똑같겠지. 그 클럽에서의 일…….
잠시 후, 코우자쿠가 무언가 마음을 굳힌 것처럼 얼굴을 들었다.
“……아오바. 뭐 좀 물어봐도 돼?”
“응.”
“너, 왜 거기에 있었던 거야.”
“………….”
뭐라고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채, 나는 입을 다물었다.
코우자쿠가 나를 바라본다. 가만히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말하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또 다른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계속 신경이 쓰였던 일에 대해 물어봐야 할까, 아니면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좋을까.
그만두는 편이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마음을 떨쳐낼 수 없다면, 아예 딱 잘라 진상에 대해 묻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참을 머뭇거린 끝에, 나는 마음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너야말로, 거기서 뭘 했던 거야?”
내 질문에, 코우자쿠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뭐라니……, 그보다 너, 거기를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 ……우연히, 너를 발견했달까.”
뒤를 밟았다……, 라고는,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그대로 내 뒤를 따라온 거야? 어떻게 안으로 들어갔지?”
코우자쿠가 두 눈을 가늘게 좁힌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흥건히 스며 나온다.
“너한테 아는 척을 하려고 했더니 가게 입구에서 안으로 안 들여보내줘서, 그래서 난처해하고 있으니까 누가 날 도와줘서…….”
“도와줘?”
“아아. 단골인 것 같은 남자였는데, 너처럼 기모노를 입고 있었어.
“……기모노?”
코우자쿠의 눈썹이 움찔 하고 움직였다.
“기모노를 입고 있었어?”
“아아, 응.”
“그거 말고 다른 특징은?”
“에, 왜.”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어 반문을 하니, 코우자쿠가 순간적으로 번쩍 정신이 든 듯한 얼굴을 했다.
“아니……, 아는 녀석이 아닐까 싶어서.”
……또다. 이 분위기.
어제, 코우자쿠가 밤중에 돌아왔을 때도 이랬다. 필시, 무언가 숨기려고 하고 있다.
“……파란 기모노를 입고 있었고 머리가 짧고, 인상이 선선했고……. 그리고, 목에 문신이 있었어.”
“어떤 모양이었어.”
“용, 이 아니라……. 해마? 같은 거였어.”
“………….”
이번에는 명백하게 코우자쿠의 얼굴이 굳어졌다. 험악하다고도 할 수 있는 표정으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그 녀석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아오바. 두 번 다시 그곳에 가까이 가지 마.”
“……하?”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안에서 다시금 자욱이 안개가 낀 듯한 갑갑한 느낌이 감돌기 시작한다.
“어째서야.”
“이유야 어쨌든, 가까이 가지 마.”
“뭐야 그게. 그 파란 기모노를 입은 녀석한테 뭐가 있는 거야?”
“……아니.”
“근데 말야, 나한테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네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는 거 아냐?”
“……아침에,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나간 이유라든지. 내가 눈치 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냐고.”
“………….”
“역시 그래서 내 뒤를 밟았던 건가.”
“……, 미안. 우연이네 어쩌네 하면서 거짓말 한 건 사과할게. 그치만 네가 이상하게 살금살금 거리니까, 나도 못 본 척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
“상황이 상황이고, 너 나름대로 배려를 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솔직하게 얘기를 해주는 편이…….”
“그런 게 아냐.”
코우자쿠가 강한 어조의 한 마디로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 얼굴은 깊이 생각이 잠긴 듯이 굳어있다.
“……그치만,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어. 미안.”
말을 마치자마자, 코우자쿠는 내게 등을 돌렸다.
“어이 코우자쿠! 기다려봐.”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아 코우자쿠를 불러 세운다.
하지만, 코우자쿠는 그대로 방에서 나가버렸다.
“………….”
코우자쿠의 태도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나는 문을 쳐다보았다.
저 녀석……. 역시 뭔가 숨기고 있어.
하지만 그것을 나에게 털어놓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 같다.
즉, 거절이다.
“……윽.”
베개에 머리를 묻고, 정처 없이 헤매는 감정을 해방시키는 것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코우자쿠를 향한 속 타는 짜증과 자기혐오가 엄습한다.
나와 코우자쿠는 알고 지낸 시간도 길고, 서로에 대한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코우자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전혀.
코우자쿠는 뭘 숨기고 있는 거지?
‘이제 두 번 다시 그곳에 가까이 가지 마.’
그건 나보고 상관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가?
그곳에는 뭐가 있는 거지? 어째서 거절하는 거지?
“대체 뭐야, 진짜…….”
양팔로 눈가를 덮는다. 또 다시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코우자쿠와 함께 있으면서, 이런 마음이 든 적은 없었다.
코우자쿠에 대해서는 거의 다 알고 있다고, 그런 생각 자체가 내 자만이었는지도 모른다.
코우자쿠는……. 사실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깊은 안개 속에 파묻혀버리고 만 듯한 불안에 내몰려, 나는 오래도록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
몇 번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어느 사이엔가 잠이 들고 만 것 같다.
얼마 동안 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신을 짓누르는 노곤한 감각이 사라져서 몸이 가뿐해진 상태다.
이불 옆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렌이 침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나는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토기도 가라앉았고, 몸 상태는 일단 진정된 것 같다.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물을 단숨에 들이마신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목이 말라있다.
좀 더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방에서 나왔다.
조금 눈앞이 도는 듯한 느낌은 들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바 카운터에서 컵에 물을 따라서 마시고 있으니, 아래층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린다. 코우자쿠인가. 샤워를 하고 있는 걸까.
……방금 전의 일, 사과하러 가볼까. 이런 미묘한 분위기가 계속되는 건 꽤나 거북하다.
코우자쿠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있고…….
나는 계단을 내려가 1층의 샤워실로 향했다. 복도를 걸어서, 물소리가 들려오는 문 앞에 선다.
문을 열고자 손을 뻗고는, 멈춘다.
문은 제대로 닫혀있지 않았고, 좁은 틈 사이로 몹시도 화려한 색채가 보였다. 기모노의 붉은색과는 다르다.
저건……?
“………….”
나는 빨려들어가는 듯이 얼굴을 가까이 대고, 문의 손잡이를 살짝 잡아당겨서 그 틈을 조금 더 넓게 만들었다.
방 안에는 코우자쿠가 있고, 세면대에서 기모노를 빨고 있는 것 같았다. 물이 흐르는 소리와 천끼리 북북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코우자쿠는 이쪽에 등을 지고 있고, 내가 있는 것에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
내 시선이 고정된 것은, 그 등 때문이었다.
……문신.
넓은 등에 아름다운 붉은 꽃이 피어있다.
진짜 꽃으로 착각할 정도로, 선명하고 생생한 빛깔이다.
문신의 완성도에 압도감을 느끼는 한편, 나는 예상외의 충격을 받았다.
문신뿐만이 아니다. 코우자쿠의 몸에는 수많은 상처 자국이 있었다. 물론 처음으로 보는 것이다.
코우자쿠가 섬으로 돌아왔을 때, 얼굴과 손에 흉터가 난 것을 보고서 얼마나 격렬한 싸움을 했던 거냐고 내가 물어보았던 일이 있었다.
그때는 코우자쿠가 애매하게 웃으며 얼버무려서, 이후에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없었다.
가슴의 문신도 어렸을 때는 당연히 없었지만, 문신 자체가 일반적으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딱히 뭐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코우자쿠의 몸에 나있는 상처 자국은 색이 옅다. 상처가 나고서 꽤나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저렇게 많은 상처를 어디서 만든 것일까.
문신도 상처도, 미도리지마를 떠나서 본토에 있었을 때 생긴 것이겠지.
……내가 모르는 코우자쿠가 있다.
만약 지금 여기서 보지 못했다면, 계속 모른 채로 있었을지도 모른다.
코우자쿠는 섬을 떠나있던 사이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것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 거대한 시간의 벽을 제쳐두고서, 나는 코우자쿠에 대해서라면 뭐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예전의 코우자쿠밖에는 알지 못한다.
지금의 코우자쿠를……, 알고 싶다.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고, 나는 살며시 문에서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스스로가 계속 숨을 죽이고 있어서, 조용히 숨을 내쉰다.
묘하게 감각이 부자연스러운 다리를 움직여 계단을 올라가, 2층의 방으로 돌아가서는 침대 위로 쓰러졌다.
코우자쿠의 등의 문신과, 수많은 상처들.
그것들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아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있으니, 방의 문이 열렸다.
……코우자쿠다.
나는 그 즉시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상하게 긴장감이 들어서 코우자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샤워실에 건조기가 있어서 다행이야. 급속 건조로 바로 말랐다고.”
코우자쿠의 말투는 완전히 평소대로다.
그러니, 나도 평소와 똑같이 아무렇지 않게 맞장구를 치면 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아무래도 그럴 기분이 들지 않는다.
벽을 마주본 채로, 나는 입을 열었다.
“……코우자쿠.”
“응?”
“……너 말야.”
“왜, 무슨 일이야?”
“너, 뭘 숨기고 있는 거야?”
“…………,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말 돌리지 마.”
“………….”
“나, 지금……. 어떻게 널 믿으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됐어. 자신이 없어. 난 너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까.”
……아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 그 사이에도 입이 멋대로 움직인다.
“네가 미도리지마에 없었던 때의 일을 나는 몰라. 알고 싶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고…….”
“지금, 우리들은 토우에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상황이 아냐. 하지만…….”
“……널 믿을 자신이 없어. 네가 날 믿고 있을 거라는 자신도 없다고.”
“아오바…….”
“……윽.”
말을 입 밖에 내뱉고는 초조한 마음이 들어서, 나는 몸을 일으키고 코우자쿠를 보았다.
코우자쿠는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발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후회로 가슴이 조여든다.
내가 변명을 하고자 입을 뗌과 동시에 코우자쿠가 입을 연다.
“도저히.”
“………….”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어. 미안, 아오바…….”
괴로움이 묻어나오는 그 말에는 나에 대한 배려와, 이전과 다름없는 거절이 담겨있었다.
“너를 힘들게 한 건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해. 나도 날 때리고 싶을 정도야. 네가 날 믿을 수 없다는 것도…….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어.”
“하지만, 널 돕고 싶다는 내 마음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어.”
“그러니까, 그것만은 믿어줘. 무슨 제멋대로인 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싶겠지만……. 부탁해. 아오바.”
“………….”
“……알았어.”
그렇게 대답하는 것밖에는……,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어도, 코우자쿠에게는 내 말이 닿지 않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표면을 살짝 스쳤을 뿐, 우리들의 거리는 벌어진 그대로다.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이상, 내가 파고들어갈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분 상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오늘은 그만 자는 편이 좋겠어. 옆방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날 불러.”
“……아아.”
“……잘 자.”
코우자쿠가 방에서 나간다.
조심스럽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귓가에 몹시도 커다랗게 울렸다.
나는 질끈 눈을 감고, 이불로 얼굴을 파묻었다.
코우자쿠는 나에게 마음을 써주고, 나는 코우자쿠를 믿고 싶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엇갈리고 마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이렇게 조바심을 내고 있는 걸까……?
……사실은, 이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플라티나 제일에 온 것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태평하게 이런 일로 고민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고방식을 쉬이 바꿀 수가 없다.
코우자쿠에게 심한 말을 내뱉고, 무엇을 하러 온 건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건 오히려 내 쪽이 아닐까?
“…………, 젠장……!”
자신을 향한 소화되지 않는 분노를 내뱉고, 나는 물밀 듯이 밀려드는 자기혐오와 후회의 감정을 견디는 것에만 몰두했다.
“으으, 흑, 으으, ……흑.”
“으아앙, 흑, 으으, 끅…….”
“할머니……. 언제 오는 거야……, 흐아앙…….”
“다섯 시에는 온다고 했으면서……. 할머니…….”
“아오바!”
“………….”
“이런 데 있었던 거야? 여기저기 찾아 다녔었어. ……근데 아오바, 눈이 빨개. 우는 거야?”
“………….”
“……응?”
“…………, …….”
“괜찮아, 천천히 말해도. 기다릴 테니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얘기해.”
“…………어.”
“응?”
“……아, 안, 울어.”
“……하하, 거짓말. 울고 있잖아.”
“안 울어!”
“알았어, 그럼 안 우는 걸로 할게. 근데, 왜 그러는 거야. 무슨 일 있었어?”
“………….”
“응?”
“……아무것도, 아냐.”
“거짓말. 말 안하면 타에 씨한테 아오바가 거짓말했다고 이를 거야.”
“…………엣.”
“……할머니가, 안 와.”
“타에 씨가?”
“다섯 시에는 온다고 했으면서…….”
“지금은……, 벌써 일곱 시네.”
“우우…….”
“괜찮다니까. 바빠서 좀 늦으시는 거겠지. 조금만 기다리면 돌아오실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마.”
“안 울어!”
“그래 그래, 안 우는 거였어. 아, 그럼 말야, 타에 씨가 오실 때까지 나랑 놀자.”
“………….”
“그럼 시간도 금방 갈 거고. 그치?”
“………, 응.”
“자, 손.”
“지지 마, 아오바.”
“………….”
“외로운 거나 슬픈 거나, 그런 거에 지지 마. 우리들, 더 강해져서 타에 씨랑 엄마를 지켜드리지 않으면 안 되잖아.”
“응…….”
“좋아, 그럼 우선 누가 그네 더 높이 타나 시합이다!”
“………….”
“응?”
“코우자쿠도, 지지 말, ……아.”
“오우!”
……어쩐지, 몹시도 그리운 꿈을 꿨다.
몸을 일으키면서, 나는 방금 꾼 꿈의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그건 코우자쿠가 미도리지마에 있었을 때, 어린 시절의 꿈이다.
내가 코우자쿠와 만나게 된 것은, 우리집 근처로 그 녀석이 이사를 오고서였다.
코우자쿠는 어머니와, 나는 할머니와 둘이서 살았기에, 자주 함께 놀거나 서로의 집을 오가곤 했다.
할머니가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어서, 나도 그것에 꽤나 익숙해진 것처럼 굴었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에 몹시도 불안해지는 일이 가끔씩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바쁘니까 방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외로운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을 기댈 사람이 할머니밖에 없었다는 것도 있다.
그러나 불안이 억제되지 않으면 가만히 있을 수 없어져서, 집에서 빠져나와 어디선가 울곤 했다.
그럴 때, 항상 날 찾으러 와주었던 것이 코우자쿠였다.
코우자쿠는 내가 어디에 있어도 반드시 찾아내주었다.
어렸을 때,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해서, 쉬이 입을 다물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코우자쿠는 언제나 참을성 좋게 내가 말을 꺼내는 것을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할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꼭 함께 있어주었다.
공원에서 같이 놀아주거나, 코우자쿠의 집으로 데려가주었다.
그것이 굉장히 많이 의지가 되어서, 나는 코우자쿠가 멋있는 히어로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말하기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코우자쿠는……, 예전부터 날 이해해주고자 했었지.
내가 하는 말을 듣고자 언제까지고 기다려주고, 내 페이스에 맞춰주려고 했다.
내가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 내가 있는 곳보다 조금 앞에 있으면서 날 기다려주었다.
“………….”
우리들은 어른이 되고서, 무언가가 변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제까지고 어린 시절과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있다.
오래간만에 그리운 옛 일을 떠올리게 하는 꿈을 꾸고, 그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였을 때의 우리들에게는 가능했고, 어른이 된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불가능하게 된 것.
그것은……. 상대방을 순수하게 믿는 일이다.
어른이 되니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 많아져서, 상대방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에 끼워 맞춰서 추측하게 되었다.
그 추측이 어느 사이엔가 단정으로 변하고…….
조금씩 엇갈려가는 것이다.
코우자쿠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 사실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코우자쿠가 나를 돕고 싶다는 말을 건네준 그 마음만큼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때 코우자쿠의 얼굴은 몹시도 진지했다. 그렇기에 나는, 코우자쿠의 그 마음을 믿는다.
코우자쿠를 믿고 싶다.
내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언제나 코우자쿠가 날 기다려주었던 것처럼.
“……좋아.”
언제까지고 꿈의 여운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가, 렌을 기동시켰다.
‘안녕, 아오바.’
“안녕. ……응?”
이불 위에 내 자켓이 놓여있다. 자켓을 집어 드니 좋은 세제 향이 났다.
어제, 코우자쿠가 자신의 기모노랑 같이 빨아준 것이겠지.
나는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자켓을 들고서, 방에서 나왔다.
방금 그 꿈이 동기가 되어서, 코우자쿠에게 말을 걸고자 문 앞에 선다.
언제나처럼, 평범하게.
심호흡을 하고서 문을 노크한다.
조금 기다려본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설마.
“……앗.”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나는 달려드는 듯한 기세로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또. 혼자서 나간 건가.
가슴이 찌르는 듯이 아프다.
코우자쿠를 믿자고 방금 막 결심한 참인데……. 이렇게 되면 역시 충격을 받고 만다.
그런 자신이 너무 싫어서 정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되면 코우자쿠만을 의심해서 끝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 아닐까라는 느낌도 든다.
이렇게 빈번하게 말없이 외출을 하는 것은, 뭔가 중대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일에 휘말렸을 가능성도 있다.
이 녀석, 한 번 떠맡게 된 일은 절대로 무시 못 하는 성격이니까…….
나는 천천히 방의 문을 닫았다.
……코우자쿠를 믿는다.
방금 막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코우자쿠를 믿지 않으면 안 된다.
“렌. 코우자쿠를 찾으러 가자.”
‘알았다.’
토우에와 관련된 일도 있지만, 지금은 어쨌든 코우자쿠를 우선하고 싶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둘 다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이대로 코우자쿠를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만약을 위해 코우자쿠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1층으로 내려가 글리터에서 나왔다.
코우자쿠를 찾는다고 해도, 주변의 지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 에리어에서는 어디로 가야 좋을지 감히 잡히지 않는다.
일단 코우자쿠가 여자와 만났던 장소까지 가보기로 했다.
메인스트리트는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행복감으로 충만해서, 나는 아무리 여기서 오래 머물러도 이 분위기에는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길을 서둘렀다.
옆길로 들어가, 전의 그 네모난 건물 앞으로 나온다. 건물 주변에 코우자쿠처럼 보이는 사람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간 것일까, 아니면 여기에 없는 것일까.
“어디로 간 거야…….”
아까 보낸 메일에 대한 답장도 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이제부터는 닥치는 대로 에리어 안을 뒤지며 돌아다니는 수밖에는 없다.
그러고 보니 코우자쿠가 이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었지. 그 말도 궁극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을까.
건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으니,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 ……!”
“여어, 또 만났네.”
뒤를 돌아보자, 나에게 카드를 주었던 그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서있었다. 남자가 싱긋 미소를 짓자 여우처럼 째진 눈이 가늘게 좁혀진다.
“아, 아아. 안녕하세요.”
“어제는 재밌었어?”
“……네에, 뭐.”
“그래. 그럼 다행이고. 오늘은 어쩐 일이야? 안으로 들어갈 거면 어제 내가 줬던 카드로 들어갈 수 있어.”
“아뇨,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서. 잠깐 사람을 찾는 중이라.”
“친구?”
“대충 그렇습니다.”
“그래. 괜찮다면 내가 도와줄까?”
“헤? 아뇨, 아무리 그래도 그건 죄송한데.”
“지금부터 발로 움직여서 찾자는 말이 아니야. 그 친구의 겉모습이나 특징을 물어보는 것뿐이야.”
“나도 볼일이 있으니까, 좀 더 주의해서 주변을 살펴보는 정도밖엔 못 하지만.”
“……아뇨, 그래도.”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 안 해도 괜찮아. 무리하게 물어볼 생각도 없고. 그러니까 그렇게 복잡한 얼굴 하지 마.”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는 없으니까. ……후후, 너, 마음이 착하구나. 난 그런 애가 좋아. 흥미가 생겨.”
“그렇지만 주의하는 편이 좋아. 너는 조금 무방비하니까. 긴장을 늦추면, 믿고 있던 사람한테 갑자기……, 덥석 하고.”
“먹혀버릴지도 몰라?”
“……아아.”
“……이런.”
그때까지 싱글싱글 웃던 남자가 돌연 정색을 하고, 내 뒤쪽을 보았다.
뭐지?
내가 돌아보려고 하자, 남자는 바로 웃는 얼굴로 되돌아왔다.
“……자. 그럼 나는 안에 들어가 봐야 해서. 너도 사람 찾는 거 힘내.”
“고맙습니다.”
“또 봐.”
남자는 지면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독특한 발걸음으로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그다지 나지 않는다. 기품 있는 걸음걸이로군.
기모노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코우자쿠의 걸음걸이가 연상된다. 그 녀석은 어느 쪽이냐 하면 큰 보폭으로 척척 걷는 편이니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건물로 들어가는 남자의 등을 눈으로 좇는다.
코우자쿠가 이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했을 때, 분명 저 남자 이야기가 나왔었지.
내가 남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코우자쿠가 뭔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얼굴을 했는데…….
‘아오바.’
렌이 가방 속에서 얼굴을 내민다.
“왜 그래?”
‘조금 전에 베니가 이 근처에 있었던 것 같아.’
“에!?”
‘베니 특유의 날개 소리가 들렸어.’
“그 말은 코우자쿠도 이 근처에 있었단 건가.”
‘아마도.’
“찾아보자.”
아직 멀리 가지 못하고 이 부근에 있을지도 모른다.
“뭐 하는 거야……, 코우자쿠……!”
이래서는 마치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을 하는 것만 같다.
나는 곧바로 골목 쪽으로 돌아갔다.
그 후, 이곳저곳을 뒤져보았지만 코우자쿠는 발견되지 않았다.
완전히 녹초가 되어서 메인스트리트로 돌아왔을 때, 물방울이 얼굴 위로 떨어졌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 것 같다.
플라티나 제일의 날씨는 컨트롤되고 있으니, 지금부터 비가 내리도록 프로그램된 것이겠지.
“옷 젖기 전에 얼른 돌아갈까.”
‘아아.’
비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구태여 이런 곳에서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비가 내리면 코우자쿠도 글리터로 돌아올지도 모르고…….
그런 생각에, 나는 빠른 걸음으로 메인스트리트를 걷기 시작했다.
글리터에 도착할 즈음에는, 빗줄기가 상당히 거세진 상태였다.
“꽤 젖었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가까스로 한숨 돌린다.
옷이 젖어서 춥다.
일단 겉옷을 벗고, 샤워실에서 목욕수건을 가지고 와서 물기를 닦는다.
“렌은 안 젖었어?”
가방에서 파란 털 뭉치를 꺼내들고 손으로 만져본다.
‘괜찮아.’
“그러네.”
고장이 날 염려는 없는 것 같다.
렌을 바닥에 내려놓고, 수건을 목에 걸고서 계단을 올라간다.
거실과 복도를 지나쳐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앉았다.
별 생각 없이 창문 쪽으로 시선을 던진다. 창문에는 빗방울이 맺혀있지만, 완전 방음 설비가 되어있는 것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코우자쿠, 괜찮으려나. 안 젖었을까…….
“!”
지금 그 소리……, 현관에서 난 소리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방에서 얼굴을 밖으로 내밀었다.
……코우자쿠다.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
이제 오는 거야? 그렇게 말을 붙이려다가, 도중에 말을 삼킨다.
코우자쿠는 온몸이 흠쩍 젖은 상태였다.
표정이 험악하고, 평소의 온후한 분위기가 아니다.
어딘가에 소중한 것을 떨어트리고 만 듯한, 그런 어두움이 코우자쿠를 에워싸고 있다.
코우자쿠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약간 긴장감을 느끼면서 방문 어귀에 서서, 코우자쿠를 기다렸다.
코우자쿠가 내 눈앞에서 천천히 발을 멈춘다.
뭐지, 이 묘한 위압감……. 말을 걸기 힘들다.
[ 무언가 말을 건다 ] → 선택
[ 말없이 지켜본다 ]
“……너, 완전 젖었잖아.”
“………….”
“감기 걸리잖아? 자.”
내심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말투를 평소처럼 꾸미고, 나는 목에 걸고 있던 수건을 내밀었다.
내 팔이, 코우자쿠에게 붙잡힌다.
“……앗.”
세게 잡아당겨지는 바람에 균형을 무너트리고, 나는 코우자쿠의 품으로 쓰러졌다.
당황스러움에 허둥지둥 고개를 들고서는……, 흠칫 놀란다.
정말로 코우자쿠인 건가?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음울한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코우자쿠의 앞머리에서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창백한 뺨을 타고서 턱으로 흘러내린다.
“…………, ……코우자쿠?”
“……어떻게 된 거야.”
“에?”
“그 녀석이랑, 무슨 이야기 했어.”
“그 녀석이라니……, 잠깐……!”
갑자기 코우자쿠가 내 양쪽 어깨를 붙잡고, 난폭하게 체중을 실어왔다.
한 번 휘청거린 나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을 치고, 코우자쿠와 함께 침대로 쓰러졌다.
“무거워……, 어이 코우자쿠……!”
“그 녀석이랑 무슨 이야기 했어…….”
“코우자쿠……?”
“그 녀석이랑…….”
“그 녀석? ……윽!”
코우자쿠가 내 양손을 시트 위로 난폭하게 밀어붙인다.
그 녀석, 그 녀석이라니……. 아까부터 대체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거지?
것보다, 코우자쿠의 눈.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코우자쿠, 어이……, 괜찮아?”
“…………윽.”
코우자쿠가 내 어깨로 얼굴을 바싹 가져다댔다. 그 순간, 목에 강한 통증이 스친다.
“아파!”
뭐지……!? 깨물린 건가!?
그 후, 똑같은 장소 위로 미지근한 감촉이 스쳤다.
“뭐, 하는 거야……!”
축축한 것이 깨물린 탓에 따끔거리는 그곳을 되풀이해서 어루만져간다.
귓가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젖은 소리와, 거친 호흡.
“코우자쿠……! 그만하라니까……!”
내가 발버둥을 치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코우자쿠는 내 목덜미를 핥고 때때로 그 위로 이를 세웠다.
어째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윽, 어이……!”
옷이 걷어 올려져서, 본격적인 초조함이 느껴진다.
어떻게 된 거지?
뭐 하는 짓이야, 코우자쿠……!
“………….”
코우자쿠가 다시금 내 목덜미 위로 혀를 놀리고서, 내 귓가에서 자신의 입술을 핥는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확실히 위험하다.
“코우자쿠……! 어이, 무슨 생각 하는, 거야! 그만두, 라니까……!”
나는 진심으로 코우자쿠를 밀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으윽………….”
“!”
“앗……, 윽!”
몸부림치는 나를 위협하는 듯이, 코우자쿠가 다시 한 번 내 몸을 침대로 강하게 밀어붙인다.
코우자쿠의 손톱이 내 손목을 거세게 파고들고, 그 인정사정없는 힘에 핏기가 싹 빠져나간다.
코우자쿠…….
내 말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설마……, 제정신을 잃은 건가?
겉모습은 코우자쿠인데도, 그 안의 인격은 다른 사람으로 뒤바뀌고 만 것 같다.
……다른 사람.
그런 느낌이 든 순간, 몸 안쪽에서 싸늘한 공포가 솟아올랐다.
어떻게 하면 좋냐고……!
“…………, …….”
코우자쿠가 희미하게 낮은 신음을 내고, 어중간하게 말려올라간 내 T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 어이, ……윽.”
까칠한 손바닥이 난폭하게 살결을 문지르고, 가슴을 주무른다.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나의 살갗과 코우자쿠의 손바닥 사이로, 미지근한 밀착감이 생겨난다.
“비, 켜……! 아니 정말로 뭐 하는……, 앗……!”
귀가 핥아지는 감촉에 목을 움츠린 순간, 뜨거운 숨이 내뿜어졌다.
“후………….”
“코우자쿠, ……코우자쿠!!”
“………….”
“……윽, 읏……!”
코우자쿠는 무시무시한 힘으로 내 저항을 봉쇄하고는, 내 귓구멍으로 혀를 집어넣고 마구 핥아댔다.
질척질척 거리며 귓속으로 달라붙는 듯한 물소리가 내 고막을 휘저어, 사고가 산산이 흩어진다.
필사적으로 얼굴을 돌리려 하자, 하반신에 소름끼치는 감각이 느껴졌다.
“……윽.”
코우자쿠의 손이 내 바지와 속옷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나의 것을 세게 움켜쥐었다.
“바, 보……, 이거 놔, 그만해……. 윽!”
완전히 혼란 상태에 빠지면서도 필사적으로 몸을 비튼다. 하지만, 코우자쿠는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그것도 하필이면……, 코우자쿠와.
“주의하는 편이 좋아. 너는 조금 무방비하니까. 긴장을 늦추면, 믿고 있던 사람한테 갑자기……, 덥석 하고.”
“먹혀버릴지도 몰라?”
그 기모노를 입은 남자의 말이 뇌리에 떠오른다.
왜……. 어째서 이렇게 된 거냐고…….
코우자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전혀 알 수 없다.
나는 정말로……. 코우자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으윽.”
갑자기 날카로운 두통이 스쳤다.
머리가…….
──── 부숴라 ────
──── 부숴라 ────
격렬한 두통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가운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 그럴 바에는 차라리 ────
──── 부숴버려라 ────
……싫다.
──── 그 녀석을 부숴버려라 ────
싫다. 절대로, 싫다.
“………….”
“아……, 앗!”
코우자쿠의 손이 나의 그것을 난폭하게 문지르기 시작한다.
미약한 쾌감이 스치고, 그런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싫다…….
이런 건, 너무…….
비참하잖아……!
“싫어, 제발 그만해……!”
──── 부숴라 ────
──── 부숴라 ────
그 무엇도 부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부서지고 만다. 나와 코우자쿠의 사이에 있는 것이.
부수고 싶지 않은데도. 어째서.
싫다.
그만해…….
──── 부숴라 ────
──── 그 녀석을 부숴라 ────
제발 그만해……!
“……그만해, 코우자쿠!”
억지로 쥐어짜내는 듯이 소리를 치자, 어째서인지 코우자쿠의 움직임이 뚝 그쳤다.
바로 전까지 내 말 같은 건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는데, 어째서…….
안이 텅 비었던 코우자쿠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잡히고, 나를 인식한다.
“…………핫.”
코우자쿠는 자기 아래에 있는 나를 보고, 그 사실을 지금 막 깨달은 것처럼 놀란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코우자쿠의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느릿하게 열렸다가 닫힌다.
“……윽.”
그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
코우자쿠의 얼굴이 내 주먹을 받고 그대로 옆으로 돌려진다.
“……윽!”
주먹으로 전해지는 충격을 느끼고서야, 번쩍 정신이 든다.
껄끄럽게 됐다…….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어. 미안.
그렇게 말을 꺼내려 하다가, ……입을 다문다.
코우자쿠를 친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 다른 한손으로 세게 움켜잡는다.
어째서 주먹을 날린 것인지,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몸 어딘가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그런 다음…….
사과하고 싶다. 하지만, 사과할 수 없다.
그 정도로……. 나는 크나큰 충격을 입은 상태였다.
코우자쿠……. 왜 이런 짓을……?
그런 의문만이 머릿속에서 오도카니 떠오를 뿐, 그 이상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대답을 요구하듯이 코우자쿠를 바라본다.
뭐든 좋다. 어쨌든 코우자쿠의 입에서 무언가 말이 나오는 것을 듣고 싶다.
화를 내도 좋고 원망을 해도 좋다.
뭐든 좋으니 나를 상대로 하는 마음이 담긴 말을 터트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코우자쿠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그 어떤 말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쳤던 뺨이 점차로 붉은색을 띠기 시작한다.
바라지 않았던 침묵만이 점점 쌓여간다.
“……왜, ……왜.”
우는 것처럼 말끝이 떨린다.
“……윽,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순간적으로 솟구친 것은, 슬픔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해받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다.
평행선은커녕……, 멀어져간다.
코우자쿠는 세차게 미간을 좁히고는 눈을 감고, 천천히 내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방에서 나갔다.
“………….”
문이 닫히고……, 멈춰있었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숨 쉬기가 힘들어져서, 나는 어깨를 떨며 숨을 헐떡였다.
“하…….”
흐트러진 숨을 내뱉고, 몸을 웅크리는 것처럼 침대 위에 눕는다.
아직 머리가 아프다. 눈을 감자, 통증의 파동이 또렷하게 감지된다.
머릿속이 질척질척하게 녹아서 뒤섞여버린 것만 같다.
긴장과 공포의 여운이, 귀 안쪽을 지잉 하고 마비시켰다.
코우자쿠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여하튼 나에게 심한 짓을 하고자 하는 충동만이 일직선으로 전해져왔다.
여전히……, 목덜미와 귀에 축축한 감촉이 남아있다.
다른 사람 같았던 코우자쿠. 그랬던 코우자쿠가, 내가 소리를 치자 갑자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좀 전의, 그 감각.
──── 부숴라 ────
혹시 그것은……. 스크랩의 힘이 작용한 건가?
그래서 코우자쿠가 제정신으로……?
내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힘이 있다고 할머니가 이야기했었다.
상대방의 머릿속에 직접 작용해서,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일이 가능하다고.
사용 방법에 따라서는……, 사람의 의식을 파괴해 죽일 수도 있는 힘.
그 힘이 지금은 날 도와준 건가?
………….
만약 그때, 코우자쿠가 이성을 되찾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몸에 공포와 비참함의 감각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무서웠다.
코우자쿠가 제정신을 잃은 것도 그랬지만…….
나와 코우자쿠의 관계가 깨져버릴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지? 어떤 식으로 코우자쿠와 접하면 되는 거지?
애초에 일이 이 지경에 이른 상태에서, 나와 코우자쿠의 관계가 아직 깨지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 아닐까.
이미 깨지고 만 것이 아닐까.
이전과 같은 관계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나와 코우자쿠는…….
“…………후.”
그런 건, 싫다.
그런 짓을 당했어도, 도저히 코우자쿠를 미워할 수 없다.
솔직히, 엄청나게 무서웠던 데다 충격도 꽤 받았다.
하지만, 그보다 어째서 코우자쿠가 그렇게 돌변하고 만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그 때문에 마음이 괴롭다.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코우자쿠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 건가.
여전히 날보고 입 다물고 보고만 있으라는 거냐고…….
……상대방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고 기원하면, 상대방의 머릿속으로 자신의 의식을 들여보낼 수도 있다.
내 힘으로는 그런 일도 가능하다고, 할머니가 말했었지.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코우자쿠에 대해 알고 싶다고 강하게 염원하면 더 많은 것들에 대해 알 수 있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가능하면 그 힘은 사용하고 싶지 않다.
──── 부숴라 ────
──── 그 녀석을 부숴라 ────
두통과 함께 울렸던, 누군가의 목소리.
마치 내 의식을 날려버리려 하는 것 같았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늪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듯한, 그런 감각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머리를 싸매고 있으니, 문 쪽에서 뭔가를 박박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침대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간다.
발치를 보니, 파란 털 뭉치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보고 있었다.
“……렌.”
‘아오바, 괜찮아?’
“……응.”
나는 몸을 숙이고, 렌을 안아들었다.
평소와 다름이 없을 터인 촉감이 지금은 유난히 가슴에 와 닿아서, 그 털 속으로 얼굴을 묻는다.
코우자쿠에게 붙잡혔던 팔이 새삼스레 그 사실을 상기하는 듯이 욱신거렸다.
‘아오바?’
“……괜찮아.”
스스로를 타이르는 것처럼 혼잣말을 내뱉고, 나는 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그렇게 외지 않으면,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말 것 같았다.
나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다시금 렌을 안아들고서 1층으로 내려갔다.
소파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들고, 렌을 그 안에 집어넣는다.
‘나갈 거야?’
“응. 잠깐……. 바깥 공기를 쐬고 싶어.”
‘그래.’
렌의 머리를 쓰다듬고, 현관에서 밖으로 나간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빗발이 약해진 것 같다.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자, 불안정했던 감정이 조금 가라앉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우산도 쓰지 않고서, 나는 비 내리는 거리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코! 우! 자! 쿠!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 코우자쿠를 떠올린다 ] → 선택
[ 밍크를 떠올린다 ]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걸어가니, 계단 중간에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저 뒷모습은…….
내가 말을 걸기도 전에, 뒤를 돌아본다.
“여어.”
“코우자쿠. 뭐 하는 거야, 이런 데서.”
“잠깐 좀.”
나는 계단을 내려가, 코우자쿠보다도 한 칸 위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불이 켜져 있지 않은 탓에 어둑하다.
“실은 산책이라도 할까 했는데, 여기까지 와서는 결단이 안 서서. 잠깐 앉았더니 금방 시간이 지나버렸어.”
“생각할 일이라도 있어?”
“뭐 그렇지. 너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잠이 안 오는 건가.”
“……그렇, 네.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까.”
“그보다 너, 정말 무모한 짓을 많이 한다고.”
“러프래빗이 튀어나오질 않나, 이상한 가스마스크가 뒤를 종종 따르질 않나, 급기야는 스크래치까지 튀어나오고.”
“미안…….”
“아, 아니, 미안. 그런 뜻이 아니었어. 나무랄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라, 그……, 뭐냐.”
“아까 타에 씨가 이야기한 것도 있잖아? 그래서 걱정이 된달까.”
“그러네. 너한테는 정말 걱정만 잔뜩 끼치고…….”
“잠깐, 그게 아냐.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뭐라고 하지, 너, 혼자서 다 끌어안는 구석이 있잖아. 예전부터.”
“그러니까 사소한 일이라도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하고, 널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그치만 네가 그런 건 전부터 그래왔던 거니까. 딱히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나쁜 건 아닌데 말야. 너, 그런 거 말 안 하면 모르잖아? 그러니까 나도 계속해서 말하는 거라고.”
“……응.”
“미즈키 일도, 너무 신경 쓰지 마. 뭐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러는 게 무책임하게 느껴진다면, 내 탓으로 돌려도 괜찮으니까.”
“……고마워.”
코우자쿠는 그 나름대로 내게 힘을 북돋워주려는 것이겠지.
그 마음이 기뻐서, 나는 솔직하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코우자쿠는 곁눈으로 나를 보고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한 분위기를 풍기다가,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앞머리를 손으로 헝클어트렸다.
“네……, 힘, 스크랩이라고 했나. 그것도 말야, 네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섭다든지 위험해 보인다든지, 나는 그런 생각 안 하니까.”
“네가 라임을 했었다는 건……, 좀 의외였지만.”
“나도 진짜로 잊고 있었어. 일부러 숨긴 건 아냐.”
“알고 있어. 오랜 시간 널 지켜본 이상,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어. 근데 그 일에 대해서도 너무 죄책감 같은 거 느끼지 말라고.”
“널 책망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고, 무엇보다 제일 힘든 사람은 너일 거고. 지금, 우리들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는 없어. 단지 그것뿐이야.”
“……고마워.”
코우자쿠의 진중한 말에, 나는 한 번 더 감사의 뜻을 전했다.
코우자쿠가 작게 숨을 내쉬고 웃는다.
“이제부터 플라티나 제일로 쳐들어가는 거라고?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고, 어떻게 될지도 몰라.”
“너도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자고, 휴식을 취해두라고. 알았지?”
“네 말이 맞네, 그래야지. 근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제대로 쉬라고.”
“오우, 나도 그럴 거니까 걱정하지마.”
“그럼, 잘 자.”
“잘 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라가 내 방으로 돌아갔다.
코우자쿠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었다.
지금은 아무튼 앞으로 나아갈 일을 생각하자. 이제부터 일어날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것이……, 미즈키를 구하는 일과도 이어질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도 가능한 한 잠을 자두자는 생각에,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가까스로 졸음이 몰려왔을 때에는, 커튼 너머의 창으로 밝은 빛이 비쳐들기 시작했다.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갑자기 코일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전화다.
“네에.”
“아오바 씨? 자고 계셨나요?”
이 목소리……. 에- 누구더라…….
코일 액정에 표시된 이름을 본다.
“……아? 바이러스?”
“네.”
“어-, 무슨 일이야?”
“큰일이에요. 침착하게 잘 들어주세요. 지금 경찰이 아오바 씨 댁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헤?”
단번에 잠이 확 깨서, 나는 무의식중에 코일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댔다.
“뭐 때문에.”
“모르겠어요. 단 꽤 많은 숫자가 출동한 것 같아요.”
“진짜야……?”
“아무튼 도망치거나 숨으세요. 저희도 경찰이 움직인 탓에 조금 시끄러워져서.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겠습니다.”
“아오바 씨, 부디 조심하세요.”
바이러스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끊긴다.
뭐지? 경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때, 어렴풋하게 방 안을 비추는 정도였던 창밖의 빛이 갑자기 강해졌다.
아침을 넘겨버리고 낮이 된 것처럼 밝다.
“……?”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걷어본다.
“……윽, 눈부셔…….”
눈을 뜨고 있을 수 없다. 얼굴을 찡그리며 창밖을 본다.
아직 옅게 안개가 낀 이른 아침의 거리를 배경으로, 경찰 차량과 경찰관들이 집 앞에 주르륵 늘어서서 북적대고 있었다.
“아-, 아-, 아----. 냉큼 나와라-! 여기에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이 테러리스트 녀석들!!”
“…………하!?”
이 목소리……, 아쿠시마다.
“아---, 너희들의 죄목은 이렇다! 불법침입, 기물파손, 그 외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온갖 범죄를 통틀어 전부다!!!”
“당장 나와라! 세라가키 아오바와 그 일당들!!!”
“!”
풀 네임으로 호명되어서, 이 소동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건 그렇고, 테러리스트? 어째서 그렇게 된 거냐고!
나는 옷을 갈아입은 후 렌을 기동시키고, 곧장 1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에는 할머니, 코우자쿠, 밍크, 노이즈, 클리어, 그리고 하가 씨와 요시에 씨가 있었다.
“아오바…….”
“마스터!”
“할머니! 어쩐 일인지 밖에 경찰관이 엄청 많이 있는데, 그것도 내 이름을 막 부르는데…….”
“성가시게 되었구나…….”
“잠깐 아오바쨩!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타에 씨께 부탁받은 일의 준비가 끝나서 왔습니다만……, 어쩐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 같군요.”
“저 녀석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아오바쨩 편이니까 말야!”
“그렇고말고요!”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저도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어서…….”
“토우에겠지.”
“토우에……?”
“네가 어제, 스크랩을 사용한 것을 모르핀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이 보고한 거겠지. 곧바로 너한테 흥미를 보였다는 건가.”
“빨리 나와라-----!!! 안 나오면 이쪽에서 쳐들어가겠다! 괜찮겠지! 좋아! 돌격 준비다-------!”
“너희들, 빨리 뒷문으로 도망가거라!”
“저 녀석, 한다면 진짜로 한다고.”
“여기는 저희들이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그러니 아오바 군과 친구 분들은 어서 뒷문으로 나가세요!”
“그래! 나쁜 짓만 잔뜩 해대고 시민의 지팡이 노릇이라곤 요만큼도 안 하는 경찰 따위 확 날려버릴 테니까 말야!”
“하가 씨, 요시에 씨……. 할머니도, 고마워요.”
“도---올겨-----억!!!”
“아오바, 가자!”
우리들은 부엌의 뒷문을 통해 집 밖으로 나갔다.
교대하듯이, 경찰관들이 집 안으로 들이닥치는 소음이 전해져온다.
할머니도 하가 씨도 요시에 씨도……, 모두들, 미안……!
부디 무사하게 있어줘……!!
뒷문에서 나와, 우리들은 담과 담 사이의 좁은 길로 들어갔다.
그곳을 빠져나가, 조금 넓은 뒷길로 나온다.
“그쪽은 경찰관이 있습니다! 발소리가 들립니다!”
클리어가 소리친 대로, 앞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있다! 이쪽이다!”
“……윽.”
들켰다……!
이런 곳에서 궁지에 몰리게 되면 일망타진이다.
“뭉쳐있지 마라! 흩어져!”
밍크의 말을 따라,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리기 시작했다.
“아오바!”
코우자쿠가 나와 같은 방향으로 달려와서는, 옆에 나란히 선다.
“일단 달리자!”
“아아!”
어디를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 확인할 여유도 없이, 우리들은 계속해서 골목길 위를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도중에 발을 멈추고, 주위의 낌새를 살핀다.
뒤를 쫓아오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따돌린 건가……?
“하아, 하아, 하아……, 하…….”
“하아, 하아, 하…….”
나와 코우자쿠는 가까이에 있는 벽에 기대어,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거친 숨을 이어나갔다. 폐가 터질 것 같다.
“……?”
차츰 호흡이 진정되기 시작했을 때, 코일이 울렸다.
‘게임 어플리케이션 송신이다.’
“또!? 아니 이런 때에……!?”
코우자쿠의 코일에서도 소리가 났다.
“……응? 나한테도 뭔가 왔는데.”
‘아오바랑 똑같은 거 아냐? 게임 어플리케이션 송신이라고.’
“진짜로……!?”
‘아무래도 자동으로 재생되는 타입인 것 같다.’
“에……!”
“뭐지 이거. 뭔지 잘 알 수 없는 게임이네. 플레이도 할 수 없고.”
“너한테 온 건 이번이 처음이야?”
“아아. 본 적 없어, 이런 거.”
“말했었잖아? 데모 무비만 송신되어오는 게임이 있다고.”
“그게 이거였어?”
“근데, 이 마지막의 초대장이란 건, 이걸로 플라티나 제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건가?”
“응? 초대장? 나한테는 그런 거 안 왔는데.”
“봐봐, 이거.”
나는 코우자쿠에게 초대장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초대장 같긴 하네.”
“나한테만 온 건가.”
게임 내용도 또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거였고…….
……아니, 그렇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할머니가 납치됐었던 거, 역시 이 게임이 그걸 예언했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설마.”
“그치만 게임 내용이랑 거의 똑같은 일이, 그 뒤에 실제로 일어졌어.”
“……그럼, 이번 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동굴, 보물 상자, 열쇠, 커다란 문…….”
“뭐 게임이야 어쨌든, 그 초대장은 가짜가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진짜로 플라티나 제일로 초대한다는 건가.”
……이번엔 메일 수신이다.
-
하가 씨 / 플라티나 제일로 가는 지름길.
실은 제가 안내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예정 변경입니다. 북쪽 지구의 D-86까지 와주세요. 거기서 합류하죠.
-
메일에는 이미지 파일이 첨부되어 있다. 구 주민구의 지도다.
플라티나 제일 외벽 왼쪽 가장자리 부근에 붉은색 점이 찍혀있다.
“하가 씨랑 합류한다. 가자.”
“좋아.”
우리들은 일단 하가 씨와 합류하기로 한 장소로 가기로 했다.
지정된 장소는 북쪽 지구 변두리에 있는 지하통로의 출입구로, 그곳에는 부서진 바리케이드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하가 씨가 이미 그 자리에 나와 계셨고, 내게 호신용으로 개조된 스턴 건을 건네주셨다.
하가 씨의 말에 따르면, 이 지하통로는 원래 플라티나 제일을 건설할 때 사용했던 운반용 통로인 것 같다.
본디 플라티나 제일은 섬 전체를 통째로 오락시설로 만들 예정이었던 듯, 구 주민구에도 공사용 물자를 운반하는 통로가 만들어지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계획이 좌절되어 통로만 남게 된 것 같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지고 말았지만, 여하튼 이 통로를 빠져나가면 플라티나 제일의 게이트 앞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썩어들기 시작한 계단을 내려갔다.
통로 안은 어둡고, 터널과도 같은 외줄기 길이 아주 길게 이어져있었다.
묵묵히 길을 걸어가자 그 끝에 계단이 나오고, 그것을 올라가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장소로 나왔다.
거대한 백색 게이트가 눈앞에 우뚝 솟아있다.
이게……, 플라티나 제일의 게이트인가.
……정말로 여기까지 발을 들여도 괜찮은 걸까?
역시 함정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은 걸음을 내딛었다.
“!”
게이트가 열리자, 요란한 팡파레와 폭죽 소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뭐야……?”
“어서 오세요! 일본 최대, 최고급의 사랑과 꿈이 가득한 힐링 오락시설, 플라티나 제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귀여운 건지 안 귀여운 건지 잘 분간이 안 되는 팬더가 걸어 나와, 우리들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그 뒤로 다섯 개의 하얀 문이 보였다.
“여기는 선택받은 사람밖에는 들어갈 수 없는 지상 낙원이야! 부디 마음속 깊은 곳까지 리프레~시될 때까지 즐겁게 지내다 가!”
“지상 낙원……?”
“수상쩍음이 만발하는데.”
우리들의 반응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팬더가 춤을 추면서 벽에 붙어있는 버튼을 눌렀다.
“자아~ 그럼, 우리 친구들이 갈 곳은 어디가 될까나? 두근두근 룰렛, 스타트!”
“오오 과연, 우리 친구들이 갈 곳은 플레임 윌로우야! 자, 이쪽으로 오세요!”
팬더가 가장 왼쪽에 있는 문 앞에 서서, 양손을 흔들며 춤을 춰댄다.
“여기는 정열적이고 유쾌 통쾌한 친구들이 잔뜩 모여 있는 에리어야! 분명 너무 즐거워서 우리 친구의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쉴 새 없이 쿵쾅거릴 걸!”
“그런 기대를 가득 안고서, 잘 다녀와~!”
“하아? 대체 뭐야 저 팬더. 의미를 모르겠네.”
“아무튼 간에, 여기서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심하지 않으면.”
“아아.”
이것이 함정일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되돌아갈 수는 없다.
“문 옆에 있는 인증 모니터에 입장 티켓, 또는 초대장을 대줘~!”
“초대장이면, 이건가.”
나는 코일로 초대장을 띄우고 모니터에 가져다댔다.
“플라티나 ID의 인증이 끝났습니다. 아오바 님과 그 외 한 분, 플라티나 제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입장 수속을 개시하겠습니다.”
“동행하신 분의 게스트 ID를 발행하겠습니다. 동행하신 분께서는 코일을 모니터에 대주십시오.”
코우자쿠가 코일을 모니터에 댄다.
“인증이 완료되어 게스트 ID를 송신했습니다. 모든 권한은 플라티나 제일에 귀속됩니다.”
“게스트 ID만으로는 사용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주십시오.”
“자세한 사항은 초대장의 서비스 항목을 봐주십시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문을 빠져나가자, 온통 붉은 색채로 뒤덮인 장소가 나왔다.
뭐랄까……. 건물의 디자인이 과거의 일본을 연상시키는 느낌이라, 조금 독특한 분위기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일단 이런 건 구 주민구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플라티나 제일은 날씨와 시간대가 컨트롤되고 있고, 기본적으로는 언제나 밤이라는 설정인 것 같다.
매일을 축제 기분으로 보내기 위해, 또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컨셉이 있는 모양인 것 같은데…….
정면으로 보이는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것은, 플라티나 제일을 상징하는 탑이다.
“저게 오벌 타워…….”
소문으로 들은 적은 있었지만,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플라티나 제일의 상징……. 감시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어쩐지 불쾌한 느낌이다.
“플레임 윌로라 이거지…….”
코우자쿠가 에리어의 이름이 적힌 간판을 올려다보고, 주변을 유심히 쳐다본다.
“왠지 묘한 분위기네. 지금으로선 어디가 어딘지도 전혀 모르고, 일단 정보를 모으지 않으면 안 되겠군.”
“그러네.”
“그 초대장에는 이 에리어에 대한 설명 같은 건 안 적혀있었어?”
“한 번 봐볼게.”
코일로 초대장에 첨부되어있던 지도를 연다.
“플라티나 제일의 지도인가. 이 마크되어있는 곳은?”
‘체류 기간 동안 머물 숙박시설이 있는 곳이겠지.’
“곧바로 가보실까나.”
“아아. 렌, 이 시설까지 길 안내를…….”
“어머.”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자, 두 명의 여자가 서있었다.
둘 다 요란한 차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얼굴이나 동작에서 어딘지 모르게 고상한 분위기가 감돈다.
플라티나 제일의 손님인 걸 봐서도, 어디 돈 좀 있는 집안의 아가씨들이겠지.
“당신, 멋진 옷을 입고 있네요.”
여자 중 한 명이 코우자쿠를 지그시 응시하며, 손끝으로 코우자쿠의 기모노를 슬쩍 가리켰다.
갑자기 말을 걸어와서 코우자쿠랑 아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아아, 별말씀을.”
“귀여운 새까지 데리고.”
“이 녀석은 베니라고 하지.”
‘오우.’
“당신들, 아직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거야?”
“그보단 지금 막 온 참이라.”
“그렇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길래 그렇지 않을까 싶었어.”
“뭐어, …………!”
코우자쿠가 여자들의 비위에 맞춰 웃으려 하다가, 그 중 한명에게 시선을 모았다.
여자의 목 부분에는 검고 커다란 거미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있다.
그보다 크기가 작은 금색의 거미가 그 위를 기어갔다.
금색 거미는 올메이트겠지.
“왜 그러실까?”
코우자쿠의 시선을 눈치 챈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코우자쿠는 곧바로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아, 미안. 내가 그만 넋을 잃고 봤네.”
“어머.”
“나한테 흥미가 있는 거야?”
“그거야, 남자라면 모두 여자에게 흥미가 있겠지.”
“우후후.”
“재미있는 사람이네.”
여자들이 즐겁다는 듯이 깔깔 웃는다.
“우리들, 지금부터 파티에 갈 거야. 파티라고 해도 딱딱하게 격식만 차리는 건 아냐. 느긋하게 놀 수 있는 곳이지.”
“만약 괜찮다면, 당신도 같이 가는 건 어떨까.”
“………….”
여자의 권유에 코우자쿠가 입을 다문다.
어차피 바로 거절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코우자쿠는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이어이, 설마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여자가 좋다고 해도 역시 이건 좀 곤란하다고…….
“여기는 낙원, 우리들은 이곳에 이끌린 인간들이지. 말하자면 가족과 다를 것이 없어. 그러니까 몸을 사릴 일은 전혀 없어. 마음 편히 있어.”
“……그 말대로네. 그렇다면 날 데리고 가주겠어?”
“……헤!?”
뭐라고……!?
예상치도 못했던 대답에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어이, 코우자쿠……!”
소리를 내서 이름을 부르자, 코우자쿠가 내 귓가로 얼굴을 가까이 댔다.
“정보라는 건 저런 데서야말로 얻을 수 있는 거라고. 맡겨둬.”
“그런 게 아니라…….”
“걱정하지 말라니까. 코일로도 연락은 가능한 것 같고. ……읏샤.”
코우자쿠가 빠른 손놀림으로 코일을 조작한다. 곧바로 내 코일이 울렸다.
-
코우자쿠 / (제목 없음)
나중에 방금 얘기했던 시설로 갈게. 지도 보내줘.
-
“………….”
“저 아이는 괜찮은 거야?”
“아아, 나만 갈 거야. 혼자서 독점하고 싶으니까 말이지.”
“후후.”
“그럼.”
“코우자쿠……!”
코우자쿠는 양옆에 선 여자들의 어깨를 끌어안고, 내게 등을 돌리고서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
홀로 남겨진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코우자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뭐, 뭐야 진짜 저 녀석…….”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건 좀 심하지 않아? 그치 렌.”
어이가 없어서 가방에서 얼굴을 내민 렌에게 동의를 구한다.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 환장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하잖아 보통.”
‘코우자쿠답다고 한다면 코우자쿠답지만……. 지금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저 녀석도 그걸 알고 있을 텐데 말이지. 정보 수집 차라고는 했지만…….”
‘코우자쿠가 그렇게까지 생각이 얕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말야…….”
렌에게 푸념을 늘어놓으며, 나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생각, 사실은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코우자쿠에게 조금 실망한 기분이다.
설마 이 상황에서 진짜로 여자를 선택할 줄은 몰랐고…….
……어쩐지, 이런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된다.
“뭐어,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 난 나대로 정보를 수지하러 가볼까.”
‘아아.’
나는 플라티나 제일의 지도에 의지해, 에리어 안을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으니, 어떤 선전이 유독 눈에 띄었다.
‘특별기념 이벤트.’
대규모의 전자 포스터와 큼지막한 광고 모니터로 선전하고 있으니, 보기 싫어도 시야에 들어온다.
할머니가 말했던 이벤트라는 건 아마도 이거겠지. 이 이벤트는 가두는 편이 좋을 듯한 느낌이 든다.
……결국, 에리어 안을 돌아다녀서 손에 얻은 유력한 정보는 그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 말고는 플라티나 제일과 토우에를 칭송하는 문구투성이라 진절머리가 났다.
“……조금 피곤해졌어.”
‘줄곧 움직이기만 했으니 그렇겠지.’
“응. 그 숙박시설이라는 데에 가볼까. 렌, 안내 부탁해.”
‘알았다.’
나는 정보 수집을 마치고, 숙박시설로 향하기로 했다.
도중에 적당한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가볍게 먹을 것을 샀다.
배가 고프면 조금만 일이 있어도 금세 짜증이 나는 법이고, 공복감을 해소하는 건 꽤나 중요한 사항이다.
패스트푸드라고 해도 여기는 플라티나 제일이다. 가게는 역시나 구 주민구의 패스트푸드점보다도 훨씬 세련되어서, 안으로 들어가는 게 조금 기가 꺾이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무사하게 먹을 것을 구입해, 나는 렌의 안내로 가까스로 목적 장소까지 도착했다.
그곳은 숙박시설이 모여 있는 구역인 듯, 몹시도 호화로운 저택들이 그곳에 처마를 잇대고 늘어서 있었다.
그 가운데서, 우리들이 머물 곳은 끄트머리 쪽에 있는 자그마한 건물이었다.
외관은 다른 건물들과 똑같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문 위쪽에는 ‘글리터’라고 쓰인 플레이트가 내걸려있다.
옆 건물에도 다른 단어가 쓰인 플레이트가 있으니, 이게 이 건물의 이름인 거겠지.
나는 문 옆에 있는 인증 모니터에 코일을 대고, 앤티크한 손잡이를 돌렸다.
안으로 들어가고서는……, 깜짝 놀랐다.
밖에서 보기에도 고풍스럽다 싶었지만, 내부 장식은 훨씬 더 클래식한 느낌이 강했다.
커다란 시계와 테이블, 소파가 있고, 가구는 전부 다 세심하게 손질이 된 골동품으로 보인다.
“엄청나네…….”
안쪽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 2층으로 가본다.
2층은 계단을 다 올라가면 바로 나오는 공간에 거실이 들어서있고, 그 안에는 TV와 자그마한 바 카운터, 소파가 있었다.
그 옆쪽으로 이어진 복도에는 몇 개의 방이 있다. 아마도 침실이겠지.
2층을 쭉 둘러보고서, 나는 1층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샀던 패스트푸드를 테이블 위에 펼쳐놓는다.
플라티나 제일이니 패스트푸드도 비쌀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렇지도 않았다.
그건 그렇고, 이곳의 패스트푸드는 어떤 맛이 날까.
햄버거를 집어 들고, 한 입 깨물어본다.
……음. 어쩐지 고기의 식감이 조금 다르네.
뭐가 다른지 정확하게는 이야기할 수 없지만, 더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고 할까……. 딱히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늘 먹어오던 구 주민구 패스트푸드의 조악한 맛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나는 느릿느릿 햄버거를 먹으며 코일을 확인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먹을 것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이에 코우자쿠에게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정말 어떻게 된 거야? 이 녀석.”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고서 떠나는 코우자쿠의 뒷모습을 떠올리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특별기념 이벤트란 것에 대해서도 의논하고 싶은데…….
“너무 그렇게 팔랑팔랑 여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면 오랫동안 쌓아올린 신뢰도 없어져버려요~ 라고. 바보.”
불평을 늘어놓으며, 나는 묵묵히 눈앞의 음식을 처리해갔다.
먹을 것을 전부 먹어치운 뒤, 나는 소파에서 잠시 동안 선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 코일에 표시된 시계를 보니, 이미 날짜가 바뀐 상태였다. 동이 틀 시간에 가깝다.
코우자쿠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
“이 녀석, 진짜 뭐 하는…….”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나는 소파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고 그쪽을 보았다.
코우자쿠…….
“……자고 있었어? 미안. 깨워버렸네.”
코우자쿠는 나를 보고는, 겸연쩍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직전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현관에서 들어왔을 때, 코우자쿠는 완전히 피폐해진 듯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코우자쿠로서는 별일이랄까, 그다지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돌아오면 따끔하게 한 마디라도 말해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늦어버렸네, 미안.”
“………….”
“아오바?”
“아, ……음. 정말 많이 늦었네.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너.”
“뭐 조금.”
뭐 조금, 이라니…….
코우자쿠는 그 이상 설명하려 하지 않고, 계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이, 잠깐 기다려.”
코우자쿠가 발을 멈추고 돌아본다.
“정보는? 그것 때문에 갔던 거잖아.”
“……아아. 역시 초장부터 큰 걸 물어볼 수는 없어서. 수확 제로야, 미안.”
“………….”
……뭐야, 그게.
역시 울컥 화가 치밀어서, 나는 코우자쿠를 가볍게 노려보았다.
“……코우자쿠. 잠깐 얘기 좀 해도 되겠어?”
“……아아.”
“네가 어디서 뭘 하든 난 딱히 상관 안 할 거고, 여자랑 놀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해.”
“근데, 그렇지 않아도 이제부터 위험천만한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 같은 때에……. 뭐랄까, 너도 알 거 아냐. 잘은 말 못하겠는데, 분위기라든지 그런 거.”
내가 약간 추궁하는 어조로 말을 하자, 코우자쿠는 미안한 듯이 눈꼬리를 아래로 내렸다.
“……그 말이 맞네. 그만 안 좋은 버릇이 나오고 말았어. 괜히 걱정시켜서 미안.”
“뭐……, 딱히 그렇게 사과할 것까진 없지만 말야.”
솔직하게 사과를 하는 코우자쿠에게 더 강하게 쏘아붙일 수 없게 되어서, 거북한 침묵이 흘러든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 나는 억지로 다른 화제를 입에 올렸다.
“그건 그렇고 너, 밥은 먹은 거야?”
“아아, 먹고 왔어.”
“그래.”
“근데 말야, 이 건물…….”
코우자쿠가 실내를 휙 돌아본다.
“이런저런 의미에서 굉장하네. 외관이랑은 전혀 딴판이고.”
“아아, 나도 처음 봤을 때는 놀랐어.”
“2층에는 가봤어?”
“침실이 있어.”
“그래. 그럼 바로 눈 좀 붙일까.”
채 털어낼 수 없는 어색함으로부터 도망치는 듯이, 코우자쿠가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올라가는 도중에 발을 멈추고 내 쪽을 돌아보았다.
“너도 소파 말고, 제대로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뭐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럼, 잘 자.”
코우자쿠는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가, 복도 안쪽으로 걸어갔다.
“………….”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으로 2층을 쳐다보았다.
이런 시간까지…………. 저 녀석,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그것에 대해서 대충 얼버무린 점에서는 솔직히 화가 났지만, 그보다도…….
코우자쿠의 낌새가 조금 이상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는 말이 피상적이랄까, 서먹서먹하달까…….
여자를 상대하다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렇다고 해도 자업자득이다.
여자 문제 같은 건 나한테는 관계없는 일이고…….
또 가슴이 갑갑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1층으로 올라갔다.
코우자쿠와 같은 방에 들어가지 않게끔, 사람의 기척이 들지 않는 곳을 확인하고서 방 안으로 들어간다.
실내는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잘 정돈이 되어서 깨끗했다. 침대 위로 털썩 몸을 날린다.
……정말이지 대체 뭐냐고. 코우자쿠 녀석.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혼잣말을 머릿속으로 흘리고, 천장을 바라본다.
이것저것 생각하는 사이에, 몸이 피곤했던 탓도 있어 점점 졸음이 몰려왔다.
좀 전에도 소파에서 눈을 붙였지만, 역시 침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몸이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이 힘들어져서……, 나는 천천히 의식에서 손을 놓았다.
다음날 아침은, 꽤나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그렇다기보다도 눈이 떠지고 말았다.
무언가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
소리는 1층에서 들려왔다.
1층……, 현관?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와 계단에서 아래를 들여다본다.
……현관문이 지금 막 닫힌 참이었다.
코우자쿠 말고는 밖으로 나갈 사람이 없다.
코일을 보니, 아직 이른 아침 시간이었다.
저 녀석…….
내 안에서 코우자쿠에 대한 불신감이 조금씩 커져간다.
“……렌. 코우자쿠, 어디로 간 것 같아?”
나를 따라서 방에서 나온 렌에게 질문을 던진다.
‘알 수 없다.’
“지금부터 엄청 껄끄러운 말을 할 건데, 괜찮겠어?”
‘뭐지?’
“코우자쿠의 뒤를 쫓을 거야.”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판단인데.’
“아니 명백히 이상하잖아. 플라티나 제일에 아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말도 안 하고 살금살금 나가질 않나.”
‘확실히 그 말대로지만…….’
“단순히 아침으로 먹을 걸 사러 나간 거였다거나 하면, 그건 그것대로 오케이. 자, 가자.”
나는 렌을 가방에 넣고, 재빨리 준비를 하고서 글리터에서 뛰쳐나갔다.
이런 짓, 실은 썩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망설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오바, 저쪽이다.’
렌의 목소리에 얼굴을 돌리니, 조금 떨어진 곳을 걸어가는 붉은 기모노를 걸친 뒷모습이 보였다.
“………….”
어떻게 봐도 아침으로 먹을 음식을 사러 나가는 분위기는 아니로군…….
그렇다면 어디로 가는 거지? 산책인가? 아니면…….
어제 만났던 여자를 보러 가는 건가?
설마……, 내가 어제 주의를 줬다고 해서 나한테는 말도 없이 나간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려나.
아직 코우자쿠가 어디로 가는 건지 확실히 파악이 안 된 상황이고, 일방적으로 단정을 짓기에는 이르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지만, 내 안의 불신감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오바, 사고가 혼란해진 상태다.’
“……알고 있어.”
코우자쿠는 코우자쿠 나름대로 뭔가 생각이 있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믿고서 기다리면 된다.
나도 이런 괴상한 짓을 할 것이 아니라, 어서 토우에에 대한 정보를 모으러 가야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역시 신경이 쓰인다. 코우자쿠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코우자쿠를 의심한다기보다도……, 코우자쿠가 향하는 곳이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라서, 그것을 제대로 확인하고서 안심하고 싶었다.
죄악감에 내몰리며, 나는 코우자쿠에게 눈치 채이지 않도록 하며 뒤를 쫓았다.
……결국, 코우자쿠는 어제 만났던 여자와 합류했다.
여자는 코우자쿠의 옆에 착 달라붙어, 팔짱을 끼고 걷기 시작했다. 역시 만날 약속을 했던 것이겠지.
어제는 둘이었지만, 오늘은 한 명밖에 없다. 분명, 목에 문신을 한 여자다.
나란히 서서 걸어가는 모습은 평범한 커플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메인스트리트를 유유히 걷고서, 도중에 옆길로 빠졌다. 놓치지 않게끔 그 뒤를 따라간다.
좁은 길을 통과해, 네모난 상자 같은 건물 앞으로 나왔다. 두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좁은 길에서 막 빠져나온 지점에서 발을 멈추고, 그 네모난 상자를 바라보았다.
건물의 표면에는 간판이나 안내 같은 게 전혀 나와 있지 않고, 문 앞에 수트를 입은 체격이 건장한 남자가 서있을 뿐이다.
어떤 건물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겉으로 드러내서 선전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겠지. 그런 쪽의 업소는 대체로 그렇다.
“……코우자쿠.”
역시……. 코우자쿠는 어제 만났던 여자와 만나기 위해, 나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외출한 것이다.
단순한 기우로 끝나길 바랐던 불안이 낙담으로 변한다.
이렇게까지 해서 그 여자랑 만나고 싶었던 건가?
그 정도로 홀딱 빠져든 거라면 당당하게 그렇다고 이야기하면 될 것을.
나보고는 무슨 이야기든 털어놓으라고 했었잖아…….
“설득력 제로잖아…….”
‘아오바…….’
분노보다도 탈력감이 찾아든다.
코우자쿠가 여자랑 같이 들어간 이 장소……. 대체 뭐하는 데지?
내가 건물로 다가가자, 문 앞에 있던 수트를 입은 남자가 제지하는 듯이 팔을 뻗었다.
“회원증은 소지하고 계십니까?”
“아뇨.”
“이곳은 회원제입니다. 회원이 아니신 분은 입장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안에 있는데요.”
“돌아가 주십시오.”
“아니, 그치만.”
“돌아가 주십시오.”
……틀렸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질 않는다.
여기선 일단 후퇴하자.
……!
뭐지……!?
지금, 머리카락에 자극이…….
뒤를 돌아보려 했더니, 갑자기 누군가가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
누구지? 이 녀석…….
“기다렸지. 일이 늦게 끝나서, 실은 나도 아직 안에 안 들어가고 있었어. 연락하면 좋았을걸.”
“에?”
“이 사람, 내 일행이니까.”
“저기.”
“알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남자가 팔을 무르고, 깊숙이 머리를 숙인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상태에서, 나는 생면부지의 남자에게 어깨를 끌어안긴 채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나치면 바가 있고, 그 끝에는 넓은 플로어가 이어져있었다. 커다란 음량의 음악과 묘한 향기가 몸으로 휘감긴다.
형광색의 라이트가 어둑한 공간 속을 날아다니고, 수많은 남녀들이 춤을 추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뭔가를 마시고 있다.
흔히 말하는 클럽이라는 건가.
……그보다, 지금의 화두는 이 수수께끼의 남자다.
나는 어깨를 끌어안는 손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남자를 보았다.
“아아, 미안. 갑자기 놀라게 해서.”
플로어를 가로지르는 조명에 맞춰, 남자의 시원스러운 이목구비가 떠오른다.
언뜻 보고서는 내 또래인가 싶었지만, 어쩌면 나보다 연상일지도 모르겠다.
남자가 기모노를 입고 있어서, 그것을 보고 코우자쿠를 떠올렸다.
이 남자의 기모노는 파란색이니 코우자쿠와는 정반대다. 목에도 파란 문신이 새겨져있다.
게다가 지금은 웃고 있어서 부드럽게 보이지만, 날카롭게 째진 눈은 어딘지 모르게 여우를 연상시켰다.
“네가 난처한 상황에 처한 것 같아서, 그만 아는 척을 하고 말았지만. 안으로 들어오고 싶었던 거잖아? 아니야?”
“그건……, 맞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좋은 일 했네.”
남자가 싱긋 웃는다. 여우같은 눈이 완전히 실처럼 가늘어져서 인상이 어려졌다. 연령불명이다.
“저야말로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그치만, 어째선가요?”
“뭐가?”
“절 안으로 들여보내주신 거요. 이전에 뵌 적이 있거나 한 건 아니죠?”
“응. 아무런 연도 없는 남이지.”
“그럼 어째서…….”
“그렇게 물어봐도 말이지. 단순한 변덕이니까 말야.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서 나만 쏙 들어가는 것도 썩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잖아.”
“그러, 신가요.”
“뭐, 여하튼 변덕으로 그런 거야.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니까. 여기는 낙원이야. 모처럼 들어왔으니까 잔뜩 즐기다 가라고. 아, 맞다.”
남자는 기모노의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카드를 꺼냈다.
“이게 있으면 언제든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 챙겨둬.”
“에, 그치만.”
“괜찮아 괜찮아. 받을 수 있는 건 받아두라고.”
“하아…….”
거절하려고 했지만, 남자가 기세 좋게 밀어붙여서 그대로 받아들고 말았다.
“그럼 나는 다른 데로 가볼 테니까. 또 봐.”
남자가 상냥하게 손을 흔들고,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뭐였지, 대체…….”
‘단순히 친절한 사람인 게 아닐까?’
“완전 수상쩍었다고. 게다가 이 카드……. 어떻게 하지, 이거.”
‘일단 가지고 있으면 돼. 아니면 지금부터 뒤를 쫓아가서 돌려주고 올까?’
“뭐, 그것도 너무 야박한 것 같네.”
확실히 그 남자 덕에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나는 손 안으로 만지작거리던 카드를 겉옷의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수수께끼의 남자가 등장한 덕에 삼천포로 빠지긴 했지만, 다시 코우자쿠를 찾지 않으면.
리듬에 맞춰 해초처럼 흐늘흐늘 춤을 추는 무리의 틈바구니를 빠져나와, 플로어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둑한데다 라이트가 깜박거리는 탓에, 사람의 얼굴을 잘 분간할 수 없다.
그건 그렇고, 이 리듬…….
미묘하게 어긋난 템포와 마치 이를 가는 소리와도 같은 전자음이 불안정하게 뒤섞여서, 눈이 어질어질 한다.
기묘한 부유감 가운데, 소리의 압력이 뇌로 꽂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나쁘다.
“…………윽.”
소름이 쫙 돋는 감각이 들고, 서서히 토기가 치밀어올랐다. 손으로 입을 막는다.
위험하다, 멀미라도 하는 걸까…….
이 현기증 같은 빛과 음악, 다른 녀석들은 괜찮은 건가?
주위를 잘 살펴보니, 이 녀석도 저 녀석도 황홀하게 도취된 표정으로 몸을 흔들고 있다.
반나체 상태로 춤을 추거나, 개중에는 구석진 곳에서 본방을 치르는 녀석들도 있다.
혹시 이거…….
……광마약인가?
확실히 최신형 마약인지 뭔지로, 구 주민구에서도 소문이 났었던 물건이다.
흥미가 없으니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빛을 이용해서 부작용 없이 황홀경을 체험할 수 있다던가 뭐라던가…….
이 기괴한 음과 빛. 꽤나 견디기 힘들다…….
플로어 전체가 보랏빛의 연기로 완전히 뒤덮여있는 것처럼 보여서, 어디가 바닥이고 어디가 천장인지 점점 알 수 없게 된다.
‘아오바, 괜찮아?’
“……조금, 위험할지도…….”
‘조금 쉬는 편이 좋겠어.’
시야가 구불구불 일그러져서, 서있을 수가 없다…….
여하튼 플로어의 가장자리로 가자는 생각에, 걸음을 내딛는다.
하지만, 딱딱해야할 바닥의 감촉이 두부를 짓밟는 듯한 것으로 변한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럴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라?
‘아오바!’
“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없이 많은 신발들이 제멋대로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저기-, 괜찮아-?”
“이런 데서 쓰러지면 방해가 되는데-.”
“너무 많이 퍼마신 거 아냐? 아하하하하.”
머리 위로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듯한 탁한 목소리가 쏟아져 내린다.
내 존재 따위는 무시하고 태연스레 걷는 신발이, 툭툭 몸에 부딪친다.
“아야야……, 제길.”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위가 목까지 올라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분이 안 좋다. 두통까지 난다.
‘아오바, 무리하지 마. 말초신경에 일시적인 장해가 일어났다.’
“그런 말을 해도…….”
“어이, 방해된다고 했잖아. 빨리 안 비키면 벗겨버린다.”
“아하하, 그거 재밌겠는데~? 확 해버리라고-. 어차피 못 움직이잖아?”
“어이 형씨-. 살아있는 거야-?”
누군가가 내 팔을 붙잡고, 끌어당기려 한다.
도망가지 않으면…….
하지만……, 머리가 아프다. 욱신욱신 거려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아오바!’
──── 부숴라 ────
──── 부숴라 ────
──── 전부 파괴해라 ────
──── 그렇게 하면 ────
“윽…….”
“……아오바!?”
아픔에 시달린 나머지 정신이 몽롱해지는 가운데, 많이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오바 아냐! 렌까지! 어이 코우자쿠, 빨리 도와줘!’
“괜찮아? 어이! 정신 차려!”
몸이 안겨서 일으켜지고, 흐릿한 시야에 코우자쿠의 얼굴이 비친다.
“코우, ……윽.”
이름을 부르려 했더니, 목까지 차올라 있었던 역류물이 한꺼번에 솟아올랐다.
참아보고자 즉시 손으로 입을 막는다. 그러나…….
“욱, 우욱.”
“아앗! 이봐!”
“토했어!”
위험해…….
……일 쳤다.
토사물과 함께 맹렬한 자기혐오가 흘러넘친다.
주변에서 비명과 욕설이 들려온다. 스스로도 너무 한심해서 죽을 것 같다…….
“……윽, …….”
손으로 입가를 훔치고 얼굴을 들자, 곁에 있던 코우자쿠의 기모노에도 큼지막하게 얼룩이 생기고 만 것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 코우자쿠……, 기모노가…….”
“바보, 말 하지 마.”
힘없이 고개를 떨고는 내 머리를 코우자쿠의 손이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어.”
의외다 싶을 정도로 온화한 목소리로 말하고, 코우자쿠는 기모노의 소매로 내 입을 닦으려 했다.
“! 더러워져……!”
깜짝 놀라 코우자쿠의 팔을 밀어내고자 했다. 그러나, 역으로 어깨를 붙잡히고 강제적으로 입가가 닦였다.
거짓말이지……. 붉은색의 고운 기모노 소매에, 오물이…….
“뭐, 뭐하는 거야 너……!”
“시끄러. 몸이 안 좋은 거잖아. 입 다물고 있어. 일어설 수 있겠어?”
[ 코우자쿠에게 의지한다 ] → 선택
[ 혼자서 어떻게든 한다 ]
코우자쿠가 내 팔을 붙잡고 부축해준다.
하지만……, 일어설 수가 없다. 역시 눈이 핑핑 돈다.
“좀 무리인가.”
“미안…….”
“괜찮아. 그럼 이렇게 하자.”
말을 마치자마자, 코우자쿠는 내게 등을 지고서 몸을 굽혔다.
“자.”
“에?”
“빨리.”
“뭐가…….”
“어부바.”
“……하!?”
“괜찮으니까 빨리 업혀.”
“무슨 말을……, 농담이지?”
“농담이 아냐. 못 걸으면 돌아갈 수 없잖아. 가게에도 폐가 되고, 빨리 업혀”
“……앗.”
지극히 당연한 이유가 들이밀어져서, 나는 말을 삼켰다.
우리들 옆에서는 종업원이 분주하게 청소를 시작하고, 춤을 추고 있던 무리들도 불쾌하다는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다.
“………….”
나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고, 각오를 굳히고서 코우자쿠의 어깨에 양팔을 둘렀다.
등을 뒤덮고서 조용히 체중을 싣는다.
이 나이가 되어서 남의 등에 업히다니……. 하지만, 이 이상 피해를 끼칠 수는 없다.
“일어선다.”
코우자쿠가 내 허벅지를 감싸고 신중하게 일어선다. 붕 하고 몸이 뜨는 감각이 들어서, 나는 코우자쿠의 목에 매달렸다.
남이 나를 업어주는 건 어릴 적 이후 처음이라, 어쩐지 무섭다.
“그럼, 죄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코우자쿠는 청소 중인 가게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고, 방해가 되지 않게끔 플로어의 가장자리로 걸어서 밖으로 나왔다.
빛, 소리, 향수, 사람의 체취, 다양한 것이 뒤섞인 공간으로부터의 탈출은, 바깥의 공기가 한층 더 신선하게 느껴지게끔 했다.
코우자쿠는 이따금 나를 고쳐 업고, 묵묵히 길을 걸었다.
처음엔 업혀있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체념하게 되었다.
코우자쿠의 등으로부터 전해지는 체온이 기분 좋다. 몸 상태가 안 좋았던 것도 조금씩 가라앉아갔다.
“……코우자쿠.”
“응?”
“……미안해. 기모노, 내가 더럽혀서.”
“이런 건 빨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 너랑 나 사이에.”
“………….”
그 말이 가슴을 쿡 찌른다. 코우자쿠의 다정함이, 지금은 조금 버겁다.
“우선 아무 말 하지 말고 있어. 또 상태가 안 좋아질지도 모르니까.”
“……아아.”
코우자쿠는 평소와 똑같이 나에게 마음을 써주어서, 그 탓에 점점 더 가슴이 아파진다.
코우자쿠는……,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를 도와주었다.
다정하고, 다른 사람을 잘 챙겨주고.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것도 이런 부분이 작용한 것이겠지…….
그런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역시 코우자쿠에 대한 불신감을 떨쳐낼 수 없는 자신이 있었다.
너무 거기에만 얽매이는 건지도 모르지만, 코우자쿠가 내게 뭔가를 숨겼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이 다정함마저도 솔직하게 기쁘다고 생각할 수 없는, 매정한 자신이 있다.
“코우자쿠…….”
“응?”
“……아무것도 아냐.”
마음을 정하고서 직접 물어보는 편이 좋은 것일까.
……알 수 없다.
소꿉친구인 코우자쿠의 일이기에 더더욱,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나와 코우자쿠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다.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에, 나른함이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코우자쿠가 걷는 진동이 기분 좋다.
점차로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나는 멍하니 코우자쿠의 등에 몸을 내맡겼다.
이예이! ^q^!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내가 감금되었던 빌딩이 있는 장소는 북쪽 지구였다는 사실을, 밖으로 나와서야 알았다.
나는 밍크와 함께 빌딩에서 빠져나가, 동쪽 지구로 향했다.
어둑한 건물 안에서는 시간을 잘 알 수 없었지만, 밖은 아직 해가 높이 떠있었다.
밍크는 대로변이 아닌 뒷길을 이리저리 누비며 걸어갔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게끔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본인의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남의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두통은 꽤 많이 가라앉았지만, 아직 본래의 컨디션을 되찾지 못한 탓에 걸음이 느려져 밍크와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그 뒷모습을 놓칠 뻔한다.
[ 말을 건다 ]
[ 가만히 있는다 ] → 선택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이렇게 필사적으로 저 녀석의 뒤를 쫓고 있는 걸까, 나.
……아니, 그게 아니다. 이건 전부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자신을 타이른다.
일절 대화를 나누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자, 주변의 경치가 낯익은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평범’이 나온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그리움이 가득 차올라서, 서서히 가슴이 뜨거워졌다.
‘평범’의 외관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곳에서, 돌연 머리 위로 그림자가 스쳤다.
“마스터----!!!”
“크, 클리어!?”
있는 힘껏 나를 부르는 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떨어져 내린 것은……, 클리어였다.
클리어는 얼굴부터 지면에 격돌했지만, 곧바로 벌떡 일어나 나에게 매달려왔다.
“마스터-! 다행이다! 어디에 가셨던 거예요!?”
“아, 그게…….”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어젯밤엔 마스터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와서 걱정했었어요!”
“내 목소리가?”
“네!”
어젯밤이라니……. 나, 밍크한테 붙잡혀서 그 빌딩에 있었는데 말이지…….
[ 다른 화제로 돌린다 ] → 선택
[ 정말로 들렸어? ]
아무리 그래도 내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렸을 리는 없다.
이 녀석이 하는 말이니까 그냥 적당히 아무렇게나 내뱉은 거겠지.
“그래. 그보다 빨리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일부러 나와 준 거지?”
밍크가 발하는 무언의 압력을 채 견디지 못하고, 나는 클리어의 어깨를 붙잡고 휙 방향을 전환시켰다.
“네. 알겠습니다.”
“자, 가게 안으로 들어오세요. 마스터.”
“……아오바!”
“아오바 군!”
우리들이 ‘평범’ 안으로 들어가니, 코우자쿠와 하가 씨가 낯빛을 바꾸고 달려왔다.
“괜찮은 거야? 너.”
“그럭저럭.”
“다행이다. 안심했어요.”
‘오우, 그 강아지도 무사히 있는 거야?’
‘여기에 있어.’
렌이 가방에서 얼굴을 내밀고, 코우자쿠의 품속에 들어가 있는 베니를 올려다본다.
“이 가스마스크가, 네가 어딘가로 끌려갔다고 엄청 허둥거리면서 나를 찾아와서 말야.”
“처음엔 안 믿었는데, 진짜로 너랑 연락도 안 되지.”
“그래서 너 어디 갔는지 타에 씨한테 물어보려고 연락하니까, 그쪽도 연락이 안 되고. 분명 코일 쓰는 걸 싫어했다는 걸 떠올리…….”
코우자쿠가 내 뒤로 시선을 보내고, 노골적으로 눈썹을 찌푸린다.
“어이, 그 녀석…….”
“아-, 그게.”
“너……, 스크래치의 보스지.”
스크래치?
그거라면 분명, 형무소의 죄수들이 만든 리브 팀 이름…….
“……에?”
“눈치 못 챘었냐고.”
“아니……. 스크래치의 태그아트 같은 거 별로 본 적이 없으니까.”
“……흥.”
밍크가 명백하게 깔보는 듯한 느낌으로 코웃음을 친다.
그 빌딩, 어둡고 지저분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태그아트가 그려져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스크래치는 리브라고 해도, 표면적으로는 형무소에 수감되어있는 죄수들의 모임인 것 같다.
즉 형무소에서 탈출해 난동을 부린다는 것이다.
경찰 따위 전혀 제 기능을 하지 않는데다, 소란을 길게 끌지만 않으면 그게 탈옥수가 되었건 어쨌건 딱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 그래서 그 ‘제재’라는 걸…….
형무소에 들어갈 정도의 녀석들을 단결시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우선 무법지대에서는 무리다.
그렇지만 팀이라면 규율이 존재하는 것도 수긍이 된다.
‘너, 신참인가.’
베니가 밍크의 앵무새를 매섭게 노려본다.
앵무새는 베니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식으로 옆을 보았다.
“예쁜 앵무새네요.”
“그러네요. 예쁜 앵무새예요.”
‘흥, 잘난 척 하기는. 맘에 안 드는 녀석.’
‘꽤나 시끄럽군. 참새라면 좀 더 귀엽게 우는 게 어때?’
‘너! 까불지 마 이 자식-!!’
베니의 털이 순간 확 부풀어 올라 온몸이 둥글게 변한다. 같은 새끼리라 더, 적대심 같은 것도 싹트기 쉬운 것일까.
“최악이로군. 별 인간 같지도 않은 버러지랑 맞닥뜨리고 말았어. 뒷골목 기생충은 얌전히 감방으로 돌아가라고.”
“너한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군.”
“뭐라고? 왜 네가 아오바랑 같이 있는 거야. 아오바한테 무슨 짓 해봐. 가만 두지 않겠어.”
“그것도 너랑은 관계없을 텐데.”
“아? 어이, 깔보는 건가?”
어쩐지 밍크와 코우자쿠의 분위기가 위험하다…….
“코, 코우자쿠 군. 진정해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고. 여긴 사람 드나드는 데잖아.”
“……칫.”
코우자쿠가 밍크를 노려보고 혀를 찬다. 밍크는 딱히 표정이 변하진 않지만, 코우자쿠가 있는 곳을 계속 응시하고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눈앞에 그려지는구나…….
한 것도 없이 벌써 피로감을 느끼며, 나는 모두와 함께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평범’의 지하에는 창고가 있고, 거기에는 가볍게 모여앉아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있다. 우리들은 그쪽으로 이동했다.
하가 씨는 눈치를 보고서 신경을 써주신 듯, 우리들을 자리로 안내해주시고는 가게 쪽으로 되돌아갔다.
소파에 코우자쿠, 클리어, 밍크, 내가 앉는다.
“……그러니까, 좀 전의 이야기를 계속하자고. 타에 씨는 어떻게 된 거야. 연락도 안 되고, 너도 이렇게 한참 잠수 타다가 불쑥 나타나고.”
“타에 씨가 코일 쓰는 걸 싫어하는 건 알고 있어. 연락이 안 되는 이유가 그거라면 딱히 문제가 없지만 말야.”
“그게…….”
내가 말을 머뭇거리자, 코우자쿠는 역시 그런 거냐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끌려갔어.”
“누구한테!?”
“모르핀이다.”
밍크의 말을 듣고, 코우자쿠가 코웃음을 친다.
“하아? 어이, 농담도 정도껏 하라고. 모르핀이라고? 신령의 유괴라도 당했다는 건가? 타에 씨는 리브가 아니래도.”
“……코우자쿠. 나도 봤어. 모르핀의, 태그.”
“…………진짜야?”
거기서 나는, 집에 돌아가 보니 할머니가 없어졌던 일, 밍크와 만난 일, 모르핀……, 드라이주스의 녀석들에 대한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밍크에게 납치되었었다는 이야기는 쓸데없는 불씨를 낳을 것이기에, 그 부분만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코우자쿠는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서는 작게 숨을 내쉬고, 앞으로 숙이고 있던 몸을 소파의 등받이에 기댔다.
“하,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 그 모르핀의 태그 어쩌고 하는 것도, 혹시 이 녀석이 널 속이기 위해서 나중에 그려 넣은 거 아냐?”
코우자쿠가 적의를 그대로 드러낸 시선을 밍크에게 던진다.
“이 녀석들, 범죄자라고?”
“안 믿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다.”
“아아? 왜 너한테 그런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고.”
“어차피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이 이야기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건 네가 아냐, 저 녀석이다.”
밍크가 담뱃대 끝으로 나를 가리킨다.
“할머니 찾는 일을 도와주는 대신에, 저 녀석은 이쪽의 조건을 받아들인다. 그게 저 녀석과 나 사이에 성립된 거래다.”
“뭐야 그게……. 네 조건이란 건 뭐냐고, 어이.”
“너한테 이야기할 이유는 없다고 했잖아. 다만, 나는 할머니가 어디로 갔는지 대충 짐작은 하고 있다.”
“팀 멤버들에게 할머니를 유괴한 녀석들의 뒤를 쫓게 해서, 그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 상태다. 그것도 믿지 않는다면 너희들끼리 좋을 대로 해라.”
“……윽.”
코우자쿠가 나를 본다. 그 눈은 어떻게 할 거야? 라고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코우자쿠가 불안과 의심을 품는 것도 아주 잘 이해가 된다. 나라고 정말로 밍크를 신뢰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밍크 외에 할머니의 행방을 알고 있는 녀석은 없다.
닥치는 대로 찾아서는 찾게 될지 어떨지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도박을 해보는 수밖에는 없다.
“……코우자쿠, 부탁해. 할머니를 구하고 싶어.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아.”
“………….”
“힘을 빌려줘.”
“아오바…….”
코우자쿠의 표정에서 서서히 분노가 사라지고, 그 눈동자에 강한 빛이 깃든다.
“……알았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썩 마음이 내키진 않지만, 믿을 수밖엔 없군.”
“고마워,”
“상관없어. 너를 위해서라면 말야.”
코우자쿠가 다시 한 번 밍크를 노려본다.
밍크는 흰 연기를 내뿜으며 계단 쪽을 보고 있다.
“……?”
처음엔 코우자쿠의 열을 부추기기 위해서 일부러 눈을 돌리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그쪽에 주목을 하고 있다.
뭐가 있는 건가?
“어이.”
밍크가 앵무새에게 턱을 까딱해 보인다.
앵무새가 푸드덕 날갯짓을 하고, 1층으로 이어지는 문으로 향했다.
덜컹덜컹 소리가 나고, 무언가를 움켜쥐고서 돌아온다.
‘P!’
“뭐야 이거.”
“블록, 일까요.”
“이거…….”
앵무새가 쥐고 있는 것은 네모난 큐브 블록이었다.
건 그렇고, 이거 아무리 봐도…….
“노이즈다. 그 녀석 또.”
“버릇이 없군.”
“또냐고. 도청이 취미인 거 아냐, 그 녀석.”
“방금 문 쪽에서 소리가 났던 건 이거였네요.”
“아는 사인가?”
“아는 사이랄까, 뭐어.”
“정보수집에 여념이 없는 타입인가. 그럭저럭 쓸 만할 것 같군.”
밍크가 내 팔을 잡고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댄다.
“끌어들여라.”
“에?”
“가게에서 상품 권유 전화를 하는 거랑 똑같아. 그때랑 똑같은 음색을 써라.”
“끌어들여서 어쩔 거야……!”
“머리를 잘 굴리는 녀석이 있으면 유리해진다. 카드는 많은 편이 좋지.”
“어이, 뭘 소곤소곤 거리는 거야.”
코우자쿠가 이쪽의 낌새를 눈치 채, 밍크가 내게서 떨어진다.
아마도……. 밍크는 내 목소리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끌어들이라고 해도…….
상품 권유 전화? 그럼, 늘 가게에서 손님에게 이야기했던 식으로 하면 되는 걸까……?
나는 앵무새가 움켜쥐고 있는 큐브 앞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솔직히, 노이즈도 밍크도 어떤 녀석들인지 잘 모르겠고 썩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지만…….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서다. 해보는 수밖에는 없다.
상품 권유 전화를 할 때처럼 의식해서, 음색을 조금 차분하게 만든다.
“……노이즈, 맞지. 들려?”
“………….”
“이런저런 일이 좀 있어서, 지금 꽤 애를 먹고 있어.”
“솔직히, 우리들만으론 힘들지도 몰라. 그러니까……, 힘을 빌려주지 않을래. 전부 끝나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할 테니까.”
“아오바……!?”
“……부탁해. 네 힘을 빌려줘.”
……내 목소리가 위력을 발휘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분 후.
노이즈가 ‘평범’에 모습을 드러냈다.
코우자쿠, 클리어, 밍크, 노이즈.
통일성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녀석들이 쭉 집합해있으니……. 뭐랄까, 압권이다.
노이즈까지 와서 코우자쿠의 표정이 더더욱 언짢게 변했지만, 뭐 이건 별수 없다.
상황 정리도 겸해서,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간결하게 이야기했다.
“드라이주스면 리브에서 제일 큰 팀이잖아.”
“아아.”
“머릿수가 꽤 많았을 텐데 말이지. 이 섬에 그 녀석들을 통째로 데리고 갈 수 있는 장소 같은 건 별로 없지 않나.”
“그렇지…….”
“우리 팀 멤버들한테도 찾아보게 했지만, 좀처럼 걸리는 게 없네.”
“저도 지붕 위에서 찾아봤지만, 전혀 무리였습니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장소란 거잖아.”
“무슨 뜻이야?”
“출입금지 구역도 시야에 집어넣을 필요가 있어.”
“말 그대로다. 과연 정보 수집 마니아라 할 만하군.”
“마니아가 아니라고.”
밍크가 가볍게 담뱃대를 턴다.
“할머니가 끌려간 곳은 북쪽의 ‘케이센’이다.”
“‘케이센’…….”
“확실히 그 부근에는 사용되지 않는 빌딩이나 창고가 산처럼 쌓여있지.”
“조사해라.”
밍크의 담뱃대 끝이 노이즈를 향한다.
“너한테 명령받을 짓을 한 적은 없는데.”
“교환 조건을 걸고서 이 녀석의 이야기에 응한 걸 텐데. 귀찮은 일은 빨리 처리하고 싶겠지, 서로.”
“……칫.”
노이즈는 짜증이 치미는 듯이 혀를 찼지만, 이내 코일로 키보드와 모니터를 출력시키고 조작을 시작했다.
“……것보다, 왜 네 녀석이 우두머리 행세를 하는 거야.”
“그럼 네가 솔선해서 하면 될 텐데.”
“아아!?”
코우자쿠가 당장이라도 뛰어들 기세로 몸을 내밀자, 밍크의 어깨 위에서 털 다듬기를 하고 있던 앵무새가 얼굴을 들었다.
‘여기서 서로 으르렁거려봤자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모할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는 나대지 말라고!’
코우자쿠의 어깨 위에 앉아있던 베니가 앵무새를 노려보고, 털을 확 부풀린다.
‘올메이트는 주인을 닮는 말은 틀리지 않군.’
‘지금 뭐랬어 너! 이 자식!!’
“짹짹거리고 시끄러워 죽겠네.”
올메이트들의 불꽃 튀는 싸움을 가로막고, 노이즈가 모니터를 우리들에게 보이게끔 반전시켰다.
모니터에는 구 주민구의 지도가 표시되어있고, 가장자리 쪽에 세모 모양의 빨간 마크가 깜박거리고 있다.
“여기가 ‘케이센’이다. 이 부근의 네트워크에 접속하면 에러가 뜨지.”
“출입금지 구역은 보통, 네트워크가 기능을 하지 않아. 그렇지만, 여기만 에러 데이터에 부자연스러운 공백이 섞여있다.”
“다시 말해 이건 페이크다. 기능하지 않는 것처럼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꾸미고 있지.”
“예상 적중인가.”
“그럴지도. 이 부근은 원래는 쓰레기 처리시설이 들어서있던 장소다.”
“몇 년 전에 폐쇄되어서 출입금지 처리되었다고 했던 곳이네.”
“지금도 불법투기가 이어져서 이제는 지역 전체가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되었다는 데잖아. 단속하는 녀석도 없고 말이지.”
“할머니는 이곳에…….”
“방향으로는 내가 받은 보고와 거의 일치한다.”
이곳임에 틀림이 없다는 확신은 없다. 그렇지만, 가 볼 만한 가치는 있을 것 같다.
“단 여기에 타에 씨를 납치한 녀석들이 있다고 쳐도 말야, 이 주변의 길 같은 거 전혀 모르잖아. 무턱대고 돌격하는 건 위험한 거 아냐?”
“아, 그거라면 제가 알고 있습니다.”
“……너 말야, 우린 지금 놀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곳의 길을 알고 있어요. 저, 예전에 이 부근을 자주 산책했었어요.”
“………….”
“………….”
“………….”
“………….”
“엣? 왜 그러시는 거예요? 여러분. 왜 갑자기 조용해지시는 거죠? 혹시 저를 의심하고 계신 겁니까?”
“의심은 그만둬주세요, 정말! 정말로 알고 있다고요? 제대로 지도도 그릴 수 있으니까 말예요?”
우리들의 반응에 분개한 클리어가 겉옷의 포켓에 손을 찔러 넣고, 종이와 펜을 꺼냈다.
“사사사사사삭~.”
클리어가 막힘없이 종이 위로 펜을 놀린다.
“……네! 완성했습니다!”
“……어이어이, 진짜 맞는 거야? 이 지도.”
“대조해봐라.”
밍크가 클리어의 지도를 들고서 노이즈 쪽으로 던진다.
“……확실히 외관도와 일치한다.”
“그럼 그 지도가 맞다는 건가.”
“그러니까 제가 알고 있다고 했잖습니까! 여러분 너무해요.”
“……뭐, 이걸로 길을 헤맬 일도 없어졌고, 다음은 쳐들어갈 일만 남았네.”
“쳐들어간다고 해도 말이지. 이런 녀석들뿐이잖아?”
코우자쿠가 정말 싫다는 듯한 얼굴로 다른 녀석들을 본다.
“하필이면 이렇게 이상한 녀석들만 잔뜩 모였으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너도 남 말할 처지가 아니잖아.”
“시끄러워.”
“나는 너희들과 협력할 생각 없어. 내가 편한 대로 한다. 그 편이 효율이 좋아.”
“그럼 따로따로 놀게 되잖아.”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는 편이 좋아. 아무리 계획을 면밀하게 세운다 해도, 전원이 그대로 움직일 거란 보장은 없지. 이 오합지졸들에 한해서는 더더욱.”
“그러니까 그거야말로 네가 할 말이냐고!”
“너랑 거기 있는 가스마스크한테 말하는 거다.”
“뭐라고!?”
“에, 저도 포함입니까? 너무해요~~~. 저는 여러분과 사이좋게 해나가고 싶다고요~~~~.”
“농담은 얼굴에서 끝내라고.”
“에~~~~~.”
………….
……틀렸다.
절대 무리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역시 전혀 단합이 되지 않는다.
단합하려고 하는 시늉도 안 보여…….
“어이 가스마스크. 네가 입을 열면 성가셔지니까 넌 조용히 하고 있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런 말을~ 너무해요, 정말~! 안 성가셔진다고요~~!”
“네 존재 자체가 성가셔.”
“너무해요~~~. 언어폭력이에요~~~.”
“애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내 입장에선, 가스마스크보다도 너희들 쪽이 더 신뢰가 안 간다고.”
“계속 지껄여보시지.”
“애당초 신뢰를 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 자체가 바보 같아.”
“너희들 말야!”
“싸움은 하지마세요~~~~.”
내가 머리를 감싸고 있는 사이에도, 다른 녀석들은 시끌시끌 제멋대로 말을 지껄인다.
이러고 있을 상황이 아닌데도…….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할머니에게는 신변의 위험이 닥쳐오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디서 행동을 개시할지도 감이 잡혀서, 정말로 이제부터 뭔가를 시작해야할 때인데…….
이 녀석들은 진짜…….
정말이지 더 이상은………….
“……너희들, 작작 좀 하라고!!!”
……참지 못하고, 그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래봤자 어차피 이 녀석들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는데.
“……어, 어라?”
지금껏 실컷 떠들어대던 것이 뚝 그쳤다.
“에……, 왜……?”
“아오바 말대로야. 농담 따먹기도 슬슬 그만하지 않으면 말이지.”
“애초에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고.”
“빨리 가자고.”
“그러네요. 그렇게 합시다.”
갑자기 마음이 싹 변하기라도 한 듯이, 모두가 일제히 소파에서 일어섰다.
왠진 모르겠지만, 의기투합하고 있다…….
……뭐, 별 상관없나. 어쨌든 결과가 좋으니 만사 오케이인 걸로 해두지 뭐.
“……좋아, 가자.”
마음을 새로 잡고, 나도 일어선다.
할머니……. 꼭 구해줄 테니까.
그리고, 미즈키와 드라이주스의 멤버들도.
우리들은 ‘평범’에서 나와, 북쪽 지구로 향했다.
북쪽 지구의 ‘케이센’은 고스트타운 같은 느낌으로, 완전히 황폐해진 상태였다.
원래는 커다란 창고나 빌딩이 서있었지만,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되고부터는 쓰레기를 불법으로 투기하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안이 텅 비어있는 건물을 치장이라도 하는 듯이, 망가진 트럭에서부터 낡아빠진 가구까지 온갖 종류의 쓰레기들이 버려져있다.
물론 사람의 모습은 없고, 꽤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신중하게 주의를 하면서, 우리들은 클리어를 선두로 앞으로 나아갔다.
높게 쌓아올려진 쓰레기의 산을 쳐다보다가, 어떤 사실을 떠올린다.
“여기……, 그 게임이랑 비슷해.”
“게임?”
“실수로 한 번 다운로드한 이후로 계속해서 송신 받게 된 게임인데…….”
“송신돼서 오는 게 어째선지 게임이 아니라 데모 무비야.”
“얼마 전에 온 게, 할머니 캐릭터가 까마귀한테 끌려가는 내용이라서. 그렇게 끌려가서 도착한 곳이 쓰레기 산이었어.”
“확실히 이곳은 쓰레기 산이네요.”
“우연이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쩐지 묘하다 싶어서.”
“이 앞에 쓰레기를 처리하는 공장이 있지.”
노이즈가 코일로 띄운 지도를 모두에게 보여준다.
“있네요.”
“그 공장이 이 주변에선 제일 큰 건물이다.”
“거기가 의심스럽단 건가.”
“이대로 쭉 가면 됩니다.”
클리어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간다.
이런 데서 산보를 했다고 하니, 저 녀석 정말로 엉뚱하단 말이지…….
쓰레기가 굴러다녀 발을 내딛기 힘든 길을 걸어가자, 거대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공장이겠지.
“……기다려주세요.”
클리어가 팔을 들어 우리들을 제지한다.
“왜 그래?”
“들립니다. 있습니다. 저 안에.”
“들린다니……,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귀를 기울여 봐도 바람에 쓰레기가 바스락바스락 흔들리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클리어의 분위기는 꽤나 진중해서 농담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들립니다. 저 안입니다.”
“……가자.”
자연히 숨을 죽이고, 우리들은 공장으로 접근했다.
공장 벽에 딱 달라붙자, 안에서 미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클리어가 말한 대로다.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
드디어 시작인가…….
나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가방에 손을 댔다. 렌은 슬립모드로 해뒀다.
렌의 존재를 확인하는 듯이, 가방 위로 살며시 어루만진다.
이곳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올메이트로부터 발산되는 신호가 감지되지 않도록, 만약을 위해 모두 각자의 올메이트를 기동시키지 않기로 해뒀다.
벽을 따라서 시선을 옮기면 희미하게 열린 뒷문 같은 문이 보인다. 코우자쿠가 그 문 바로 옆에 달라붙어, 신중하게 안을 엿본다.
“……누가 있네.”
“한 번에 간다.”
“일단, 우리 팀원 녀석들도 이 근처에 대기시켜놨어. 저쪽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니까 말야.”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이야기를 나눈 결과, 코우자쿠, 밍크, 클리어, 내가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노이즈에게는 이 주변의 네트워크 감시와 실시간 침입이력 삭제를 부탁했다.
노이즈는 조금 뒤쪽으로 물러나, 코일로 모니터와 키보드를 열고서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쪽은 딱히 문제없음.”
[ 노이즈의 곁에 선다 ]
[ 노이즈의 낌새를 살핀다 ] → 선택
노이즈 쪽을 본다.
꽤나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말을 걸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두근두근하네요.”
“노는 게 아니라니까.”
“……간다.”
밍크의 말을 신호로, 코우자쿠가 문을 연다.
……속이 텅 빈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검은 옷을 입은 집단이 있었다.
이 녀석들이……, 모르핀인 건가?
검은 옷을 입은 패거리 전원이 이쪽을 돌아본다.
……라고 생각한 순간, 일제히 이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갑자기 온다고!”
“이렇게 나오지 않으면 재미없지! 어이! 덤벼!!”
“………….”
“와아~!”
코우자쿠와 밍크가 가장 먼저 시커먼 무리 속으로 뛰어든다.
나도 엉거주춤한 자세의 클리어와 함께 그 뒤를 따랐다.
“코우자쿠 씨!”
우리들 뒤로 몇 명이 들어오는 발소리가 났다. 베니시구레 멤버들인가.
“으럇!”
코우자쿠는 팀 멤버들에게 눈짓을 하며, 검은 옷 무리를 차례로 때려눕혔다.
밍크도 묵묵히 주먹을 휘둘러, 두세 명을 한꺼번에 날려버린다.
“으잇차! ……윽!”
내게도 검은 옷을 입은 녀석이 달려 들어와서 재빨리 피했지만, 상대방의 팔꿈치가 가볍게 턱에 맞았다.
“아야야, ……우왓, 이 녀석!”
곧바로 상대방이 다음 펀치를 날려서, 한쪽 팔로 막는다.
그러나, 반대쪽 주먹, 또 반대쪽 주먹이 잇달아 쳐들어왔다.
”아 진짜, 끈덕져 죽겠네, ……응!?“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서, 등줄기에 차가운 것이 흐른다.
……뭐지, 이 녀석의 눈.
마치 인형 안구처럼 공허하다.
게다가 이 녀석의 얼굴, 어디서 본 기억이 있다.
설마 또 드라이주스의……!?
“……윽!?”
잠시 주의를 뺏긴 틈에 어깨를 맞았다. 극심한 통증이 손끝까지 저릿저릿 전해진다.
“……아프다고, 이 자식!”
반사적으로 몸을 뒤집어 돌려차기를 날린다.
검은 옷 녀석이 배를 맞고 앞으로 고꾸라져, 땅바닥에 쓰러졌다.
여기에 있는 녀석들은……. 전부 드라이주스인 건가?
“…………, ……우왓!”
옆쪽에서 다른 녀석의 주먹이 날아와서, 허둥지둥 피하고 발차기를 먹인다.
……그렇지. 클리어는?
[ 눈으로 클리어를 찾는다 ] → 선택
[ 클리어의 이름을 부른다 ]
주변을 둘러보니, 근처에 검은 옷 무리와 마주보고 서있는 클리어가 있었다.
“폭력은…….”
“그만둬주세요~~~!!”
클리어의 펀치를 맞은 검은 옷 녀석이 위를 향하고 풀썩 쓰러진다.
………….
……뭐, 저건 저것대로 있을 법한 건가.
것보다 이 녀석들, 뭔가 이상하다.
좀 전부터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내가 발로 찬 녀석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우리들에게 덤벼들어올 뿐이다.
방금 전에 봤던, 그 인형 같은 눈…….
모두가 그런 걸까 싶어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니, 여러 명의 검은 옷 무리와 맞붙고 있는 코우자쿠의 모습이 보였다.
[ 코우자쿠의 적을 유인한다 ] → 선택
[ 코우자쿠에게 다가간다 ]
“어이, 이쪽이다!”
소리를 내서, 이미 맞붙고 있는 녀석들 외에 더 코우자쿠 쪽으로 달려들고자 하는 검은 옷 무리의 주의를 이쪽으로 돌린다.
“이얍!”
내 쪽으로 다가온 두 명 가운데 한 쪽을 돌려차기로 쓰러트린다. 다른 한 명에게는 아래쪽에서부터 치고 들어가, 명치로 주먹을 날렸다.
“덕분에 살았다고!”
“천만의 말씀!”
“그보다, 이 녀석들 드라이주스 아냐!?”
코우자쿠의 말을 듣고, 의혹이 확신으로 변한다.
“그치만, 그렇다면 왜 우리들을……!?”
“마스터! 여기가 아닌 장소, 좀 더 안쪽에서 엄청난 수의 소리가 들립니다! 모여 있습니다!”
“이쪽은 미끼인가.”
밍크가 맨 먼저 공장 안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어이, 멋대로……, ……칫!”
코우자쿠가 그 뒤를 쫓으려 했을 때, 한 번 쓰러졌었던 검은 옷 녀석들이 좀비처럼 일어서기 시작했다.
검은 옷 무리를 칼등으로 후려치며, 코우자쿠가 소리를 친다.
“끝이 안 보여! 여기는 우리들이 어떻게든 할 테니까 먼저 가!”
“……알았어! 고마워!”
지금은 머뭇대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나는 밍크, 클리어와 함께 공장의 안쪽을 향해 달렸다.
정면에 보이는 통로……. 저기로 가면 되는 건가?
그 통로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그 앞을 가로막는 듯이 검은 옷을 입은 녀석 셋이 서 있었다.
“어쩔 수 없군.”
“히에에~~.”
“어이, 먼저 가라.”
“에?”
이쪽을 향해 달려든 검은 옷 녀석들을 향해 밍크가 주먹을 날린다.
“빨리 움직여. 가스마스크, 너는 이쪽이다.”
“어째서입니까!? 저도 마스터랑 함께 가고 싶습니다!”
밍크가 클리어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자기 옆으로 확 잡아당긴다. 그 날카로운 눈초리가 나를 포착했다.
[ 망설인다 ]
[ 밍크의 말에 따른다 ] → 선택
“클리어 부탁해! 밍크 말대로 해줘!”
“여기서부터는 어설프게 나오면 곤란하다고.”
“알겠습니다! 마스터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때 검은 옷 중 한 명이 들이닥쳤다.
“히에-! 그만둬주세요!!”
“빨리 가라.”
“……미안!”
검은 옷 무리와 밍크, 클리어로 줄줄이 꼬치상태가 된 통로의 가장자리로 빠져나가, 나는 안쪽의 문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왔다.
눈앞에는 주차장 같은 넓은 공간이 펼쳐져있고, 검은색 밴과 승용차가 세워져있다.
그 주변에 검은 옷을 입은 녀석이 몇 명 서있었다.
승용차 뒷좌석에서 세 명 정도가 나와서, 문이 열려있는 벤으로 이동하려 한다.
그 정가운데에 있는 인물을 보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
양쪽 팔을 붙잡혀 억지로 걸어가는 자그마한 실루엣은, 어떻게 보아도 할머니다……!
검은 옷 녀석들이 내 존재를 눈치 채고, 당장이라도 이쪽으로 달려올 기세를 보인다.
“……기다려.”
그것을 검은 옷 중 한 명이 막았다.
그 녀석은 후드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후드를 쓴 녀석이 앞으로 나와, 내게서 조금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양손으로 후드를 잡고, 천천히 벗는다.
그 아래로 나타난 얼굴을 보고……. 나는 심장이 멈출 뻔했다.
“………….”
“설마 여기까지 냄새를 맡고 찾아올 줄은 말이지. 과연 아오바라고 할까.”
“미즈키……, 너, 왜……, 할머니는…….”
미즈키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는 나를 보고, 모조품과도 같은 미소를 떠올렸다.
“너를 찾아오라고 시켰던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대신에 네가 직접 여기에 왔다는 건……. 그 녀석들, 잡히고 만 걸까나.”
……다르다.
내가 알고 있는 미즈키는 이런 얼굴을 하는 녀석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비웃는 듯한 말투를 쓰는 녀석도 아니다.
“너…….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드라이주스가 갑자기 전부 사라져서, 나도 코우자쿠도 엄청 걱정이 돼서…….”
“아아, 그건가. 있지, 잘 들어 아오바. 굉장하다고. 우리들 드라이주스는 말이지, 그 모르핀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모르핀……?”
“그래. 전설의 팀에게 인정받았다고? 다른 리브 따위는 발끝만큼도 못 따라온다고. 모르핀은 신 같은 존재니까 말야.”
“……그 말, 진심으로 하는 거야?”
“당연하잖아? 농담으로 들려? 이걸로 드라이주스는 절대적인 존재가 됐다고.”
“모르핀 외에, 어떤 팀도 우리들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야. 하하, 하하하하하.”
미즈키가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다. 그 표정이 어쩐지 섬뜩해서……,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녀석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모두 그 인형 같은 눈을 하고 있는 건가.
그,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듯한…….
“미즈키, 정신 차려. 너, 하는 말이 이상해.”
“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상한 건 네 쪽이잖아, 아오바.”
“너, 내가 아무리 권유해도 절대로 팀에 안 들어왔었지. 나는 꽤나 진지하게 너한테 그런 말을 한 건데 말이지.”
“리브 따위 시시하다는 생각이었나?”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왜 팀에 안 들어왔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있단 걸 알고 있었으면서.”
“………….”
“아오바,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어. 게다가 팀으로서는 지금 쪽이 훨씬 격이 높지. 우리들의 동료가 되라고. 신생 드라이주스의 일원이.”
“………….”
“…………, 절대로 안 해.”
미즈키가 품고 있는 리브에 대한 열정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나는 일부러 힘을 실어서 미즈키에게 대답했다.
지금의 미즈키는 이상하다. 본디 이런 말을 할 녀석이 아니다.
미즈키는 내 말을 듣고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곧바로 다시 엷은 웃음을 띠었다.
“……아, 그래. 그러셔. 뭐 좋아. 그렇다면 좋은 생각이 있지.”
“아오바, 너 할머니를 엄청 소중하게 여겼었지.”
“!”
미즈키가 할머니의 팔을 잡아 끌어당기고, 할머니의 목에 무언가를 들이댔다.
……나이프다. 불쾌한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
“……미즈키, 그만해.”
“네가 팀에 들어온다면 그만하지.”
“……윽.”
할머니는 뻣뻣하게 경직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
그 얼굴이 체념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여서, 내 안에서 초조함이 더해져간다.
“할머니를 놔줘.”
“말길을 한 번에 못 알아먹는 녀석이네. 그러니까 말했잖아. 우리들의 동료가 되라고.
“싫다고 했지.”
“아?”
미즈키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짜증이 드러난다.
“단순한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차피 말로만 그러는 거라고? ……좋아, 그렇다면 행동으로 보여주지.”
“어이…….”
“여기서 우리들의 동료가 되지 않았던 것, 나를 깔보는 태도를 취했던 것, 후회하지 말라고.”
“어이, 미즈키. 그만해!”
미즈키가 나이프의 끝을 할머니의 목으로 밀어붙인다.
싫어…….
그만해…….
할머니…….
할머니!!!
“…………윽!”
다리가 멋대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미즈키에게 달려들어, 그 눈을 보고…….
……그리고.
……갑자기, 시야가 구부정하게 일그러졌다.
이 감각, 바로 얼마 전에 어디선가…….
그래, 이건…….
……라임.
노이즈가 라임으로 싸움을 걸어왔을 때의, 그 감각.
……아니.
나는 훨씬 전부터 이 감각을 알고 있다.
좀 더…….
훨씬 전부터…….
………….
뭐, 지……? 여기는…….
여기는 미즈키의 가게다.
그렇지만, 뭔가 다르다.
가게 안에는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수없이 많은 손님이 있다.
그 녀석들은 전부…….
얼굴이, 없다.
새빨간 입만이 즐거운 듯이 뻐끔 열려서는, 미끈미끈 꿈틀거린다.
더 이상한 것은, 가기 안에 있는 녀석들이 주고받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부 귀로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에-, 리브 같은 거 촌스럽잖아.”
“역시 라임 쪽이 훨씬 낫지.”
“다들 하고 있고.”
“맞아 맞아, 이제 슬슬 리브는 질리기 시작했다고.”
“이제부터는 역시 라임이지.”
“리브 같은 거 때려치우자고.”
“…………윽.”
어수선하게 뒤섞인 목소리와 말이 머릿속에서 마구 날뛴다.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뭐야, 이건……. 윽!”
이런 건, 현실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꿈인 건가?
나는, 꿈을 꾸고 있나……?
그렇지만……, 이 감각.
역시 라임에 끌려들어갔을 때와 비슷하다.
게다가, 나는…….
훨씬 전부터 이 감각을 알고 있다……?
훨씬 더, 훨씬 전부터…….
“……윽.”
무언가 생각해내려고 해도 귓속으로 들어오는 목소리에 흩어져버린다.
시끄러워, 시끄러워…….
머리가 아프다. 목소리에 두통이 유발되어 지끈지끈 울린다.
제길……!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아……!
귓가에 묘한 열을 느끼고 손을 가져다대자, 무언가가 끈적끈적 흘러나왔다.
“……?”
까맣고 미끈미끈한, 콜타르처럼 점착성이 있는 액체다.
액체 안에는 수없이 많은 문자들이 뒤섞여서 떠올라있었다.
이거…….
“윽!”
머릿속으로 들어왔던 말……!?
그것들이 질척질척한 검은 액체가 되어, 귀에서 흘러내린다.
죽은 말들이 안쪽에서부터 거꾸로 솟아나와, 양쪽 귀에서 넘쳐흐른다…….
“어떻게 된 거야……, 윽.”
꿈이라면 어서 깨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이 리얼한 감각.
도저히 꿈이라고는…….
여하튼 어떻게든 해서 여기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출구를 찾으려 하다가, 문득 시선을 느꼈다.
지금……, 누가 나를 본 건가?
뒤를 돌아보니, 낯익은 얼굴이 지나갔다.
……얼굴이다. 얼굴이 있다.
달걀귀신들만 잔뜩 늘어서있는 가운데, 방금 전의 녀석에겐 얼굴이 있었다.
“……윽.”
그 녀석의 뒤를 쫓아서,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종알종알 지껄여대는 달걀귀신들을 양손으로 헤치고, 가게 안쪽으로 향한다.
이 끝에는 타투 시술실이 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든다.
……내가 뛰어 들어간 곳은, 드라이주스의 집합소였다.
어째서지?
분명 가게 안에 있었는데.
마치 공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
드라이주스의 태그가 거창하게 그려진 골목 안쪽에, 조금 전에 내가 보았던 녀석이 고개를 숙이고 서있다.
나는 천천히 그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그 녀석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미즈키.”
미즈키가 천천히 얼굴을 든다.
그 표정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엉망으로 일그러져있었다.
“아오바…….”
“나 좀 도와줘, 아오바.”
그 순간, 벽에 그려져 있었던 드라이주스의 태그아트가 새카맣게 칠해지고는 촥 하고 피가 튀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너…….”
“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뭘 말야……?”
“드라이주스 말이야.”
“나는 리브 하는 게 엄청 즐거워서, 정말로 리브가 좋아서……. 그래서 드라이주스에 대해서도 엄청 진지하게 생각해왔어.”
“어떻게 하면서 팀원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을지. 안 좋은 일을 겪지 않고 끝날지. 줄곧 그런 걸 생각하면서 팀을 이끌어왔어.”
“가족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마음에서.”
“알고 있어. 그래서 드라이주스는 리브에서 제일 큰 팀이 됐잖아.”
“그치만……. 이제 그걸론 안 된다고.”
미즈키가 분하다는 듯이 고개를 떨구고, 양손으로 주먹을 쥔다.
“라임이 유행하고서부터는 다 틀렸어. 모두 새로운 것에 빠져서 리브에는 싫증을 내고, 그렇게 되면……, 간단하게 버리고 마는 거야.”
“결국 리브도 라임도 게임이지. 모두, 더 새롭고 재밌는 것을 원해. 그렇지만 난…….”
“정말로 리브가, 드라이주스가, 동료들이 소중했으니까 여기서 떠나지 않기를 바랐어.”
“고작 게임 따위에 진심을 쏟는 쪽이 바보겠지만, 그렇게 간단하게는 받아들일 수 없었어.”
“우리 멤버들도 점점 라임 쪽으로 흘러가고, 새로 들어오는 녀석도 줄어들고……. 내가 쌓아올렸다고 생각했던 유대가 조각조각 흩어져가고…….”
모든 것을 게워내는 듯이 이야기하는 미즈키를 보고 있는 것이 괴로워서……, 나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미즈키가 드라이주스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임에도, 나는 미즈키가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스스로의 무능력함이 너무나도 분하다.
만약 조금 더 깊게 미즈키와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그래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이 나오진 않고……. 그러다가, 모르핀의 멤버라고 자칭하는 녀석이 나타난 거야.”
“모르핀…….”
“드라이주스는 리브에서 제일 힘이 있는 팀이니까, 모르핀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처음엔 너무 수상쩍고 무슨 같잖은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실제로 모르핀 팀원 녀석들과도 만나서……. 그래서 난, 이걸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 모르핀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면, 모두 라임으로 가버리는 일도 없어질 거라고.”
“드라이주스에 자긍심을 지닐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럼, 정말로 모르핀에…….”
“아아. 그치만 역시 잘못된 생각이었어. 모르핀은 내가 생각했던 것 같은 팀이 아니었어. 모르핀은, 그 녀석들은…….”
“으악, 크윽…….”
“미즈키, 씨…….”
“그런……, 거짓말이지…….”
“드라이주스는 모르핀의 일원이 된다고, 그런 이야기였던 거잖아!? 그런데 어째서…….”
“……웃기지 마……, 제기랄……!!”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미즈키의 표정이 변했다.
괴로운 듯이 가슴을 부여잡고, 몸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땅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미즈키?”
“으, 으윽, 아악……, 으아아아아아악…….”
미즈키의 머리가 뚝 부러지는 듯이 위를 향한다.
눈동자가 바쁘게 좌우로 흔들리고, 크게 벌려진 입에서 잔뜩 쉰 소리의 비명이 새어나온다. 대량의 땀이 턱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어이, 미즈키!”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미즈키!”
미즈키의 곁으로 달려가, 양쪽 어깨를 붙잡는다.
“……!?”
뭐지? 지금.
지금 그건…….
“……윽.”
머리가 아프다…….
무언가가, 보인다.
이 영상은…….
이……, 기억은.
이것은…….
나의………….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미즈키!!”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 번쩍 정신이 든다.
여기는…….
모르는 장소다.
……아니, 아니다.
분명, 그 검은 벤과 승용차가 세워져있던 장소다.
그럼, 미즈키는…….
“이제야 일어났니.”
“에?”
어라?
이 목소리…….
“……할머니!?”
왜 여기에 할머니가……!?
몸을 일으키려 하다가, 내가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할머니, 왜, 어떻게, 에?”
“뭘 혼란스러워 하는 거야. 네가 여기까지 왔잖냐.”
“아…….”
……맞다.
여기서 미즈키를 비롯한 검은 옷 무리가 할머니를 차에 태우려 해서, 그걸 막으려고…….
“……미즈키는.”
“거기에 있어.”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을 보니, 미즈키가 엎드린 채로 쓰러져있었다.
그 곁에는 코우자쿠, 노이즈, 밍크, 클리어도 있다.
“괜찮은 거야, 아오바.”
“마스터!”
“………….”
……다행이다. 모두가 있다.
그런 생각에 안심했더니, 갑자기 몸이 무거워졌다.
“할머니…….”
“뭐냐.”
“머리, 아파…….”
“나중에 약 먹어라. 이제 집으로 돌아갈 거다.”
“응…….”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지금까지는 당연하기 그지없었던 할머니의 그 말이, 지금은 몹시도 기쁘다.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집으로.
다행이다…….
……몸의 힘이 점차로 빠져나가는 가운데, 나는 어느 사이엔가 의식에서 손을 놓았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시야에 들어온 것은 천장이었다.
“………….”
내, 방…….
몇 번 눈을 깜박이는 사이에, 천천히 현실감이 되돌아온다.
아야야…….
머리가 아프다. 지끈지끈 울린다.
약, 먹지 않으면…….
양팔로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니, 이불 가장자리에 렌이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평소와 똑같은……. 일상의, 지극히 평범한 풍경.
그것을 보고, 아아, 돌아왔구나, 라고 실감한다.
천신만고 끝에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렌의 머리로 손을 뻗어, 가볍게 쓰다듬고서 기동시켰다.
‘아오바.’
“안녕, 렌.”
‘안녕. 몸 상태는 어때.’
“머리 아파.”
‘그래.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되겠군.’
“아아. 아래로 내려가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렌을 안아들고서 방에서 나왔다.
아야야…….
몸의 진동이 머리에까지 울려서 깨질 듯이 아프다. 꽤나 심하다.
그러나, 복도에 가득 찬 음식 냄새를 맡으니 아픈 것도 조금 잊혔다.
할머니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할머니. 정말로 무사해서 다행이다.
지금 이렇게 공복감을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의미를 곱씹으며,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로 들어가자, 코우자쿠, 노이즈, 클리어가 식탁에 앉아있었다.
밍크만 혼자 떨어져서 안방의 소파에 앉아있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할머니의 요리가 가득 늘어서있어서, 당장이라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것만 같다.
“아오바, 일어난 거야?”
“마스터!”
‘여어, 렌. 신세 좀 지겠다고.’
‘아아.’
“컨디션은 어때?”
“그럭저럭. 썩 좋지는 않아.”
“그렇겠지.”
코우자쿠가 가볍게 한숨이 뒤섞인 말을 내뱉고 고개를 끄덕인다.
자리에 모인 모두들 사이에 감도는 공기에 어딘지 모르게 피로감이 스며있는 것 같다.
뭐 무리도 아니겠지……. 꽤나 얼토당토않은 일을 했으니까.
“미즈키는?”
“미즈키도 드라이주스의 다른 멤버들도, 병원으로 실려 가서 그대로 입원했어.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아.”
“그래.”
그때…….
할머니를 차에 태우려했던 미즈키와 마주했을 때.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일어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미즈키도 쓰러져있었다.
우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것일까? 딱 하나,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나의 과거다.
무슨 이유에선지 지금까지 잊고 있었지만, 기억해냈다.
나는 예전에, 라임에 참가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노이즈의 무차별 살인 라임에 말려들었을 때도 어렴풋이 싸우는 방법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어째서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일까.
싸우는 방법을 잊었다든지 기억이 애매해졌다든지 하는 게 아니라, ‘라임에 참가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내 기억 속에서 누락되어 있었다.
그렇게 정확하게 한 지점을 깨끗이 잊어버리는 일 따위, 있을 수 있는 건가……?
“일어났니.”
“할머니.”
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고는 코로 소리를 내며 숨을 내쉬고는, 요리가 담긴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도 도울게.”
“이걸로 끝이야. 너도 얼른 앉아라.”
“그래, 알았어.”
나는 순순히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 이제 괜찮은 거야?”
“남 걱정하기 전에 너 자신부터 걱정해라. 픽 쓰러졌던 건 내가 아니라 너잖니.”
“………….”
할머니의 말에 어디 하나 틀린 구석이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할머니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지만, 결국 걱정을 끼치고 말았다…….
겸연쩍은 마음으로 내 접시를 든다.
처음엔 우울한 기분이 가시질 않아 잠시 어디에 젓가락을 둬야할지 망설였지만, 반찬을 한 입 먹으니 그런 건 단번에 날아갔다.
맛있다. 돌연, 식욕이 솟아오른다.
식탁에 둘러앉은 나머지도 할머니가 차린 밥이 정말 맛있어서 젓가락을 멈출 수 없는 지경인 듯, 테이블 위에 가득 놓여있던 접시는 눈 깜짝할 새에 텅텅 비어갔다.
클리어는 또 수수께끼의 광속 섭취였고, 밍크만은 끝까지 식탁에 오지 않았지만.
두통약까지 먹고서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힌 시점에서, 나는 할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입 밖에 냈다.
“……할머니. 뭐 좀 물어봐도 돼?”
“뭐냐.”
“할머니를 끌고 갔던 건……, 정말로 미즈키였던 거야?”
할머니가 손 안의 찻잔으로 시선을 떨어트린다.
“그렇단다.”
“………….”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지. 너랑 관련해서 용건이 있으니까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말이지.”
“처음부터 조금 눈치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랬더니 갑자기 내 입을 틀어막고는 강제로 차에 싣더구나.”
“그랬구나……. 근데 왜 할머니를.”
“………….”
할머니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는 입을 다물고, 잠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오바. 그리고 너희들도.”
“우선, 고맙다는 말을 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지. 너희들 덕분에 살았다. 고맙다.”
“할머니…….”
“지금부터 정말로 중대한 이야기를 하마. 과연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망설였지만 말이지……. 실은 지금도 아직 망설이고 있단다.”
“그렇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이야기를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그러니까 모두들, 정신 차리고 잘 들어라.”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조용히 할머니를 바라본다.
“우선, 미즈키가 어째서 나를 납치했는지의 이야기인데……. 그 애는 조종당하고 있었다.”
“모르핀이, 그런 거겠지.”
“그래. 그치만, 그 모르핀이라는 건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조금 달라. 이건 내 추측이지만, 녀석들에게는 필시 토우에 재벌의 입김이 미치고 있어.”
“토우에의……?”
“이 섬을 매입해서 플라티나 제일을 만든 아저씬가.”
“그치만 모르핀이랑 토우에라니,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할머니는 조금 이야기하기 껄끄러운 듯이 우리들을 보고서는, 또 찻잔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나는 말이다, 원래 토우에가 소유한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단다. 이럭저럭 2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할머니가……, 연구원? 토우에의?”
“아아. 그때는 본토에 있어서 말이지. 연구소와 토우에가 연결되어 있었던 걸 안 건 한참 후의 일이었지만.”
“토우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뇌에 대한 연구를 해왔지. 내가 참가했던 건, 간단하게 말하자면 뇌의 가소성에 관한 것이었어.”
*가소성: 고체에 어떤 한도 이상의 힘을 가했을 때, 고체가 부서지지 않고 모양이 달라져 그 힘을 없앤 후에도 달라진 모양 그대로 남아있는 성질.
“뇌기능이 상실되었을 경우의 재배열 가능성, 약물 투여에 의한 영향과 변화 등을 조사했었지.”
“그것들은 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의 회복을 돕기 위한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는, 훌륭한 연구가 될 것이었단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지.”
“그렇지만 말이다, 그게 아니었던 거다.”
“토우에의 진짜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조정하는 온갖 방법을 찾는 거였어. 모두, 그걸 위한 연구였던 거다.”
“가끔 의도가 애매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 의문이 쌓이고 쌓여서 말이지. 조사를 해보니, 어느 논문이 나오더구나.”
“거기에는 인간의 의식을 완전히 뒤바꿔놓기 위한 방법론이 줄줄이 적혀있었다.”
“그걸 봤을 때, 나는 살아있는 기분이 아니었지.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믿으며 해왔던 일이, 실은 사람들에게 재앙을 끼치는 것이었다니.”
“그걸로 나는 모든 연구를 내버리고, 연구소를 그만두었지. 그 뒤로는 토우에와 관계되는 일 없이, 고향인 이 섬에서 조용히 인생을 마치자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연락이 오게 되었지. 토우에로부터 말이다.”
“……!”
“급히 연구소로 돌아오라는 요청이었지.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거부했다. 토우에와 얽히는 일은 이제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내가 그렇게 나오니 속이 탔던 게지. 녀석들은 강경한 수단을 취했다. 그게 그 모르핀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째서 미즈키가……, 드라이주스가 말려든 거야?”
“요즘, 이 섬에서 이따금 젊은이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지. 그리고 약물 중독자 같은 게 길거리를 어슬렁어슬렁거리게 되었어.”
“그건 토우에가 하고 있는 연구의 희생자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어딘가가 조작된 인간을 모르모트로 삼아서 거리에 풀고,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면 실패한 인간을 유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말이지.”
“실패한 인간……?”
“마음을 조종하는 데에 실패해 망가트렸다는 의미다. 정신이 파괴되니, 폐인이 되지.”
“그럼 성공한 녀석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 녀석들은 회수되어서, 새로운 실험이 대상이 되지. 예를 들면 방금 말한 의식의 바꿔치기 같은 것……,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말이야.”
“미즈키 대해서는, 나와 안면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했겠지. 내가 방심하기 쉬울 거라 예상했을 거다.”
“그런 연구를 해서, 토우에는 무슨 짓을 할 작정인 거야? 이대로 가면 이 섬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아마도 이 섬에 있는 모든 인간의 의식을 조작할 생각인 거겠지. 그러면 토우에가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왕국’을 만들 수 있지.”
“마음을 조종하는 기술을 누구보다 먼저 확립하면, 다른 나라에 판매할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
“이 구 주민구는 그런 목적으로, 토우에의 갖가지 어둠의 손길이 뻗어 들어와 있는 거다.”
“요 몇 년간은 조용히 있었던 것 같지만……, 마침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려는 건지도 모르겠구나.”
그럼, 구 주민구의 모든 인간이 그 중독 환자처럼 되고 마는 건가?
하가 씨도 악동 형제들도 요시에 씨도, 모두…….
“……막지 않으면.”
“싫어. 그런 건 절대로, 싫어.”
내가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자, 할머니는 괴로워 보이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아직 더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어. 아오바, 네 이야기다.”
“나?”
“너, 나를 구하러 왔을 때 도중에 정신을 잃었었지.”
“아아, 응. 어쩐지 엄청 리얼한 꿈을 꿨었어……. 그 꿈속에서 미즈키랑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건 꿈이 아냐. 네가 본 건 미즈키의 머릿속이다.”
“……에? ……머릿, 속?”
할머니가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이,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지금부터 네가 상상도 못 해봤을 이야기를 하마.”
“그렇게 간단히는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자신의 의식을 개입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뭐? 뭐, 라고?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자신의 의식을……?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 능력을 ‘스크랩(폭로)’이라 부르고 있지.”
“스크랩…….”
“네 경우, 스크랩을 발생시키는 건 목소리다.”
“!”
“자신이 조금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이 어째서인지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 너, 그런 경험이 많은 거 아니냐?”
“……확실히, 그런 일은 있었지만.”
“네 목소리에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조금 의식해서 사용하면, 그 목소리가 상대방의 머리에 작용하기 시작해 자신이 뜻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지.”
“그리고 네가 상대방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싶다거나, 혹은 상대방이 깊은 곳까지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면, 너는 상대방의 머릿속에 자신의 의식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
“단, 머릿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인간의 육체라는 ‘갑옷’을 사이에 두지 않고, 무방비한 상대방의 의식과 마주하는 일이 되지.”
“그때 너의 행동, 발언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의식을 ‘부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론상으로는 말이지.”
“………….”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사고정지 상태에 빠진다.
내가 의식해서 목소리를 내면, 다른 사람이 내 생각대로 움직인다고……?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의식과 마주해? 부수는 것도 가능?
뭐가 뭔지 전혀 알 수 없다.
모르는 나라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렇군.”
안쪽에 있었던 밍크가 어느 사이엔가 이쪽으로 와서,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있었다.
“스크랩은 목소리 그 자체에 강제력이 작용하니까 말이다.”
“그럼, 그 이상한 꿈 같은 세계는 미즈키의 머릿속이었다는 말이야……?”
“너 말고, 그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뭐라 말은 못하겠다만. 아마도 그럴 거다.”
“나, 그때 미즈키랑 이야기를 했었어. 미즈키는 평소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이래저래…….”
“미즈키가 지금까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드라이주스와 리브 일로 고민해왔는지를 이야기해줬어.”
“그 녀석, 그 정도로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네가 이야기를 나눈 것은 미즈키의 의식 그 자체일 거다. 단 한 조각의 거짓도 없는, 무방비한 본심만 남게 된 미즈키지. 너는 뭐라고 대답을 해주었지?”
“나……. 왜인지 그때, 갑자기 예전에 있었던 일이 기억나서……. 라임을 했었다는 사실을,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깨끗이 잊고 있어서.”
코우자쿠와 노이즈가 나를 본다. 그야 그렇겠지…….
나, 지금까지 라임 따위 참가한 적 없다고 말했으니까…….
“그런데 그……, 미즈키의 본심과 이야기했을 때, 라임과는 또 어딘가 다른 공간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라……, 잘 모르겠어. 뭐가 뭔지…….”
“미즈키……. 그때, 무언가 말하려고 했었어. 모르핀은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듯한 그런 게 아니라고.”
“그치만 그 다음 말을 하려다 갑자기 괴로워하기 시작해서…….”
“………….”
“흐응…….”
할머니는 미간을 잔뜩 좁히고, 코로 숨소리가 뒤섞인 소리를 내고서는 깊게 생각에 잠기는 듯이 침묵했다.
이야기의 내용이 내용인 만큼, 할머니의 침묵은 무겁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할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건 결과론이니까, 절대로 너를 책망하는 건 아니다. 다만…….”
“만약 그때 네가 적확한 말을 던져주었다면, 미즈키의 의식은 원래대로 돌아왔을지도 모르겠구나.”
“에, 그 말은…….”
“심한 말을 하는 것 같지만, 네가 한 일은 어중간하게 미즈키의 본심을 억지로 끌어내서 방치한 거다.”
“있는 그대로의 의식은, 비유를 한다면 껍질이 벗겨져 안이 훤히 드러난 살점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아주 연약하지.”
“그래서……, 미즈키는 지금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거다. 그렇지?”
“아아, 그렇다고 들었어.”
“토우에 쪽에서 미즈키에게 덫이라고 할 만한 일종의 각인을 새겨두었을 거다. 예를 들면 핵심에 근접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머리가 쪼개지는 듯이 아파온다, 라든지.”
“억지로 끌어내지고 방치된 시점에서, 토우에의 덫이 작동했다. 그 탓에 미즈키의 의식은 부서져버리고 만 거겠지.”
“다시 이쪽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본인의 기력에 달린 문제다.”
“! 그런……!”
나 때문에 미즈키의 의식이……, 부서지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나 때문에, 그런……. 미즈키가…….
“아오바. 네 힘은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는 사람을 파괴하고 말지. 그렇기에 더욱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언젠가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
“지금까지는 내가 있었지. 나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너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안 돼.”
“나의 보호 아래 놓인 채로는, 그 힘은 언젠가 폭주해서 불행을 불러들일 거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결국 토우에는 너를 찾아내겠지.”
“토우에가 계속하고 연구하고 있는 것이 너에게는 처음부터 갖추어져있으니 말이지. 녀석 입장에서는, 너의 힘은 침이 꿀꺽꿀꺽 넘어갈 정도로 몹시 탐이 날 거다.”
“요번의 강행 수단도 그렇지만, 앞으로 토우에가 네게 무슨 짓을 해올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아오바, 너는 이제부터 자기 자신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
한꺼번에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모든 것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미 내 허용량을 초과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이상, 토우에가 자기 좋을 대로 하게끔 했다간 위험하다는 것만은 잘 알겠다.
토우에를 그냥 내버려뒀다간, 이 섬은 통째로 이상하게 되고 만다.
“얼마 안 있어 플라티나 제일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열릴 게다. 무슨 내용인지는 당일까지 밝혀지지 않는 것 같지만, 이벤트 중계는 구 주민구에서도 방영되지.”
“어째서 구 주민구에서도 중계되는 겁니까? 보통 플라티나 제일에서 나오는 정보는 차단되지 않나요?”
“전체 공개로 해두면, 구 주민구까지 공공연하게 실험을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겠지.”
“그 말대로다. 표면상으로는 그런 연구를 하고 있다는 발표는 안 되어있어.”
“그렇지만, 이벤트라는 명목이 있으면 대대적으로 연구의 성과를 시험해볼 수 있지.”
“성과를 시험한다니, 어떻게…….”
“노래, 연설, 빛, 영상……. 사람을 조종하는 장치라는 건, 하려는 마음만 먹으면 어떤 것으로든 만들 수 있지.”
그 말은, 그 이벤트가 개최되기 전까지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가…….
“빨리 플라티나 제일로 쳐들어가는 편이 좋은 거 아냐? 당장 내일이라도 말이지.”
“그치만, 어떻게.”
“게이트까지라면 갈 방법은 있다.”
“그래?”
“아아. 다만 나는 움직일 수 없으니까 말이지. 대신에 안내를 부탁해둘까. 하가 씨한테.”
“하가 씨한테?”
“여기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세한 건 내일 물어보면 된다.”
그렇게 말하고, 할머니는 조금 괴로운 듯한 숨을 내쉬었다.
“그럼……, 꽤나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말았구나. 너희들로서는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조금이라도 연구에 관계되고 말았던 몸으로서……, 너희들에게 진실을 전하고 싶었단다. 말려들게 하고 말아서 정말로 미안하구나.”
할머니가 우리들을 향해 깊숙이 머리를 숙인다.
“할머니…….”
“타에 씨, 그런…….”
“할머님…….”
몇 초 정도 머리를 숙이고 나서, 할머니는 자리에 모인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자아, 오늘은 다들 많이 피곤하겠지. 집 꼴이 이러니 부족한 것 없이 푹 쉬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몸을 좀 쉬게 하는 편이 좋을 거다.”
할머니가 그렇게 말한 뒤로, 입을 여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얌전한 얼굴로 거실에서 나간다.
코우자쿠는 2층으로, 밍크는 밖으로 나간 것 같다.
모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안쪽으로 이동했다.
소파에 앉아, 천천히 긴 숨을 내쉰다.
나는 그 곁으로 다가갔다.
“……할머니.”
“왜 그러니.”
“조금만 더, 이야기해도 돼?”
대답은 없었지만, 할머니의 곁에 앉는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산처럼 쌓여있다. 그렇지만……, 뭘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터질 듯이 가득 차서,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나는 무릎 위에 올려둔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있잖아, 나……. 지금까지 줄곧 할머니한테 걱정만 끼치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고. 방금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그게 너무 미안해서…….”
“그런 바보 같은 소리 하는 거 아니다.”
“아오바, 네가 별 탈 없이 이렇게 장성해준 것에 감사하지 않은 날은 없었단다.”
“너의 일은 내 책임이기도 하지. ……나는 네 할머니니까 말이야.”
“할머니…….”
할머니는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너, 과거에 라임에 참가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고 했지.”
“응.”
“너는 말이다, 예전에 라임에서 사고를 일으키고 입원한 적이 있었어.”
“에? 라임에서, 사고?”
“아아. 지금이니까 하는 이야기지만. 내가 부랴부랴 달려갔을 때, 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지. 의사랑 경찰한테는 싸움에 휘말렸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급소를 다쳐서, 일시적인 기억장애가 일어났을 뿐이라고. 그렇지만……. 내가 문병하러 갔던 날의 일이다.”
“아오바?”
“……!”
“……놀랐나?”
“!”
“……아오바…….”
“그때, 네 곁에는 간호사가 쓰러져있었고…….”
“너는 그로부터 꼬박 이틀을, 계속해서 잠만 잤지. 기절했었던 간호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검사를 하러 네 방에 가고서부터 눈을 뜰 때까지의 기억이 쏙 빠져있었던 것 같더구나.”
“………….”
“네가 두통을 호소하게 된 건 그 후다.”
“그건……, 기억하고 있어. 거기서부터는 대충. 흐릿하긴 하지만.”
“그 간호사는 너에게 가벼운 스크랩을 당했었지. 네가 간호사의 의식으로 들어가, 기억의 일부를 파괴한 거다.”
“두통, 스크랩, 인격 변화……. 이런 것들을 위험을 초래하는 방아쇠라고 느꼈던 나는, 너에게 약을 처방해주기로 했다.”
“네 의식의 안정과 강화를 꾀하고, 그 힘이 폭주하지 않도록 말이다. 결과적으로, 두통은 가라앉았지?”
“응.”
“약의 효험이 나빠진 것은, 네 힘을 억지로 억눌러온 것의 반동인지도 모르겠구나.”
“………….”
“스크랩의 근본은 파괴다. 부수고, 죽이는 힘. ……그렇지만, 힘이라는 것은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지.”
“그렇기에 더욱, 나는 네가 너 자신과 제대로 대면하기를 바라는 거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춰 서지 마라. 자신이 정한 길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힘차게 말하고, 할머니는 내 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꼭 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할머니의 손. 다정한 할머니의 온도.
그것은 지금까지 쭉 나를 지켜봐준, 소중한 사람의 온도다.
“할머니.”
“응?”
“나, 꼭 돌아올 테니까.”
“……아아.”
할머니는 약간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할머니는 소파에서 일어나 선반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가지고 가거라. 새로 처방한 두통약이다.”
“고마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아아.”
나는 할머니로부터 받은 두통약 케이스를 조용히 움켜쥐었다.
방으로 돌아오고 나서,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런저런 이야기가 소용돌이쳐서, 도저히 잠잘 기분은 들지 않았다.
미즈키 일행이 모르핀에게 조종당했다는 것.
할머니가 토우에의 연구소에서 연구를 했었다는 사실.
토우에의 진짜 목적.
라임을 했었다는 과거를 떠올린 것.
나의 힘, 스크랩에 대한 것.
미즈키의 의식을……, 부숴버리고 말았는지도 모른다는 것.
“………….”
몸을 뒤척이고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어도, 무거운 기분이 걷히지는 않는다.
내가, 미즈키를…….
그때, 만약 내가 미즈키에게 적확한 말을 해주었다면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몰랐다고는 하지만……,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내 행동 하나로 미즈키의 인생이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
천장을 올려다보아도 베개에 얼굴을 파묻어도 안 된다. 마음이 점점 가라앉아간다.
지금껏 기대고 있었던 팔이 갑자기 나를 뿌리친 듯한 불안감이 계속 사라지지 않는다.
“……제길.”
……이 이상, 혼자서 생각에 빠져있고 싶지 않다.
[ 코우자쿠를 떠올린다 ] → 코우자쿠 루트로 계속
[ 밍크를 떠올린다 ] → 밍크 루트로 계속
우효오! ^q^!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바로 팀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코우자쿠와 헤어져, 나는 미즈키의 가게에 가보기로 했다.
응? 메일이다.
‘[새 메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제목 없음) / 코우자쿠’
‘최신형 올메이트가 드디어 / ***’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저번에 / 코우자쿠’
‘저녁밥 / 할머니’
“……스팸인가.”
제목은 ‘도와주세요.’ 발신인은 ‘납치된 공주.’
……납치된 공주?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그런 이름의 스팸메일이 왔던 것 같은데.
그렇다는 건, 이것도 똑같은 거겠지.
“넌, 삭제.”
응? 또 메일이다.
‘[새 메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제목 없음) / 코우자쿠’
‘최신형 올메이트가 드디어 / ***’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저번에 / 코우자쿠’
‘저녁밥 / 할머니’
“……하아?”
또 똑같은 게 왔다. 바로 메일을 지우고자 삭제 버튼에 손을 올린다.
‘[새 메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제목 없음) / 코우자쿠’
‘최신형 올메이트가 드디어 / ***’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하?”
‘[새 메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에? 잠…….”
뭔가 위험한 냄새가 난다고…….
건 그렇고 자꾸자꾸 온다. 뭐지 이거.
나는 당황해서 가방을 열고 렌을 기동시켰다.
‘아오바.’
“렌, 메일이 이상해. 뭐야 이거, 바이러스?”
‘잠깐 기다려줘. 조사해보겠다.’
그렇게 말하고 렌이 침묵한다.
그 사이에도 계속해서 메일 착신 음이 울려대서 초조해진다.
“렌, 아직이야~?”
‘해석 완료. 바이러스는 아니야. 만에 하나 바이러스였을 경우의 대책도 실행했어.’
“이 메일의 수신 자체를 멈추게 하는 건 무리인 거야?”
‘발신인의 메일 주소가 불분명해.’
“뭐야 그거, 진짜 어떻게 된 거야!”
‘만약을 위해서 내용을 확인해보는 편이 좋다.’
“괜찮은 거야……?”
그렇지만 그냥 내버려뒀다가는 영원히 메일 수신이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착신음을 듣는 것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알았다고! 보면 되잖아 보면!”
나는 반은 자포자기 기미로 메일의 내용을 표시시켰다.
……어라?
메일 수신이 뚝 그쳤다.
뭐였던 거지?
의아하게 여기며, 본문을 본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역시 스팸인가……?
또 코일이 울렸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메일이 아니다.
‘게임 송신이다.’
“게임 송신……,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시험 삼아 플레이했던 게임이 있었지. 그 속편인 것일까.
다운로드가 끝나자, 모니터에 타이틀 화면이 떠올랐다.
역시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타이틀이다.
“……응?”
플레이하려고 했지만, 스타트 버튼이 없다. 어떻게 시작하지?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화면이 바뀌고, 갑자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컨트롤에 대응되어있는 코일의 키를 눌러보아도 움직이지 않는다.
“렌, 왠지 이거 안 움직이는데.”
‘데모 플레이 버전인 게 아닐까?’
“데모 플레이? 그런 걸 보내서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고.”
몇 번이고 컨트롤 키를 눌러대고 있으니, 주인공이 슥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작할 수 있게 된 건가?
그런 줄 알았더니, 키에서 손을 떼도 주인공은 멋대로 걸어간다.
“……뭐야 이거?”
게임은 꽤나 어중간한 데서 끝이 났다. 게다가 정말로 데모 플레이 버전이었다.
이런 걸 송신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실수로 그랬나?
내용도 잘 파악이 되지 않았고…….
“완전히 의미 불명 게임이네.”
‘그래.’
“방금 전의 대량 메일도 역시 스팸이었던 것 같고. 완전 시간만 날렸어. 얼른 집에나 가자.”
나는 게임을 종료시키고,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해질녘을 지난 시간 탓일까, 거리에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하고 있다.
벌써 저녁을 먹을 시간인가. 그러고 보니 할머니, 집에 있는 걸까.
이 시간이면, 가끔 아는 분 댁에 가는 일도 있지.
할머니…….
“………….”
……대체 뭘까.
그 게임을 보았을 때부터 불쾌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그 게임, 웬 노파가 새카만 박쥐들에게 끌려가는 내용이었지.
………….
왜 그 타이밍에서 그런 이상한 게임이 송신되어온 거지?
우연인가?
………….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서, 나는 코일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연결되지 않는다.
집으로도 전화를 걸어본다.
받지 않는다.
한 번 더, 할머니의 코일로 전화를 해본다.
……안 받네.
그렇지만 할머니는 원래 코일을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메시지를 전할 때도 메일이 아니라 현관에 쪽지를 써두거나 할 정도다.
그러니까 지금은 마침 아는 분 댁에라도 간 것이겠지.
아마도, 그럴 거다.
분명…….
“……젠장!”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릿속에는 드라이주스 집합소의 참상이……, 여기저기 튀어있는 혈흔이 되살아난다.
그 탓에 조금 신경질적인 상태가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그 일과 할머니를 연결시키는 건 아무리 그래도 지나친 생각이다.
그렇지만…….
……안되겠다. 집으로 돌아가자.
집으로 돌아가서 할머니가 안전하다는 걸 알면 마음이 풀린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는 집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달려 대로를 빠져나갔다.
“하, ……하악, 하아.”
“할머니!”
허둥지둥 현관문을 열고 뛰어 들어간 집 안은 몹시도 캄캄했다.
불이 켜져 있지 않다. 사람의 기척도 없다.
할머니……, 없는 건가?
“할머니?”
한 번 더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다.
……위험하다.
피가 역류하는 듯한 감각이 들고, 차가움과 뜨거움이 한꺼번에 몸을 관통하고 지나간다.
드라이주스의 집합소에서 보았던, 벽의 혈흔. 새카만 박쥐에게 끌려가는 게임의 노파.
그것들이 교대로 머릿속에서 명멸한다.
어쩌지. 어떻게, 할머니까지…….
“할머니!!”
어쨌든 할머니를 찾아보자는 생각에, 나는 신발도 벗지 않고 복도로 올라갔다.
“윽!? 우왓!”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뭐지?
이런 데에 뭔가 커다란 물건이…….
……에.
……사람?
……복도에, 사람이 쓰러져있다.
설마…….
…………할머니?
그 사람은 엎드린 채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다. 안쪽에도 한 명 더 쓰러져있는 것 같다.
떨리는 호흡을 삼키고, 나는 조심조심 몸을 수그리고 그 사람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전체적으로 할머니보다도 몸이 크다. 분명, 남자다.
조금 안심한다. 그렇지만…….
그럼, 이 녀석들은 누구지?
시선을 모으니, 목에 타투 같은 것이 보였다.
이거……, 분명, 태그아트다.
그건 그렇고…….
“………….”
이 태그는…….
“…………, 모르핀.”
“!”
인기척이 들어 그쪽을 돌아본다.
어두운 복도를 등에 지고,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올려다봐야할 정도로 몸집이 커서, 그 위압감에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렇지만, 이 녀석이 할머니에게 무슨 짓을 한 게 아닐까 생각하니 두려움과 공포는 싹 날아갔다.
“……할머니는 어디 있지.”
“………….”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어둠속에서, 두 개의 차가운 눈이 지그시 나를 보고 있다.
“할머니는 어디 있냐고, ……윽!?”
재차 추궁하려 했을 때, 뒤에서 누군가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한 사람이 아니다. 몇 명이 합세해서 나를 억누르려 한다.
“윽, 이거 놔, 까불지 말라고, 이거 놔, ……윽! ……우, 욱.”
갑자기 배에 무거운 충격이 가해져, 숨이 멈췄다.
“………….”
“윽, ……욱.”
……마치 그림자 덩어리와도 같은 커다란 남자의 주먹이, 내 배에 박혀있었다.
몸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숨을 쉴 수 없다. 시야가 조금씩 어둠에 잠겨 들어간다.
제길……. 이런 데서…….
할머니…….
……할머니…….
“…………윽.”
……으. 머리, 아파…….
………….
나……. 정신을 잃었던 건가……?
눈을 떠도 희뿌연 시야에는 빛이 거의 들지 않아서, 뭐가 뭔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좀 전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비라도 내리는 건가?
뺨 아래가 차가운 것은 콘크리트 바닥이라 그런 것이겠지.
것보다, 여기, 어디지……?
일어나려고 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
팔이 삐걱거린다. 무언가에 묶여 있는 상태다.
나는 엎드린 상태에서 무리하게 얼굴을 들려고 하다가……, 움찔 하고 놀랐다.
눈앞에 신발의 부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신발에서 위로, 시선을 천천히 이동시켜간다.
“………….”
이 위압감…….
분명, 그 덩치 큰 남자다.
내 집에 멋대로 들어와, 갑자기 배에 주먹을 날려 온 그 녀석…….
남자는 나를 보면서 손에 들고 있던 담뱃대를 입으로 가져갔다.
내뿜어진 연기가 어둑한 공간 속으로 흩어져간다.
……그래. 기억났다.
이 녀석이 할머니를……!
“……할머니는 어디 있지.”
“………….”
“할머니한테 무슨 짓 했지. 대답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분노를 억누르고, 나는 낮은 소리로 신음하는 듯이 말을 전했다.
남자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이윽고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소파에서 일어났다.
뭘 하는 걸까 했더니, 내 앞으로 몸을 굽히고는 앞머리를 움켜쥐었다.
“! 아, 아파……!”
통각이 있는 머리카락에 엄청난 아픔이 스쳐, 얼굴을 찌푸린다.
“……큭.”
남자가 고통을 참는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 녀석의 눈……, 그곳에만 빛이 푹 꺼져 들어간 듯이 어둡다.
“자신이 처한 상황, 알고 있는 건가?”
남자가 앞머리를 움켜쥔 채로, 내 얼굴을 옆으로 돌린다.
그곳에는 지저분한 차림을 한 남자가 두 명, 머신 건 같은 것을 들고서 그것을 내게 겨냥한 채로 서 있었다.
“내가 손을 올리면, 너는 벌집이 되어서 즉시 이 세상과는 작별이다. 딱 5초 정도로 끝나지.
“………….”
내 침묵을 자기 말을 알아들은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남자가 앞머리에서 손을 뗀다.
“……앗!”
쿵 하는 소리가 나고, 턱이 땅바닥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아파…….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
것보다, 본격적으로 난처하게 됐군…….
“어이.”
남자가 옆에 있는 부하로 보이는 녀석을 불러서 가까이 오게 하고,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전했다. 부하가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절체절명의 핀치에,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회전시켰다.
우선, 손을 구속하고 있는 걸 풀지 않으면…….
양손을 마구잡이로 움직여본다. 아주 조금 느슨해진 듯한 느낌이 들지만, 아직 손을 뺄 수는 없다.
발치에 뭔가 떨어져있지 않은 건가? 발끝을 움직여본다.
신발의 끝부분이 땅바닥을 슥슥 스칠 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기랄……. 어떻게 좀 안 되는 건가…….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으니, 여러 명이 내는 신발소리가 지면의 진동으로 전해져왔다.
방으로 들어온 것은 머신 건을 들고 있는 녀석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남자들이었다.
“해라.”
덩치 큰 사내가 턱으로 나를 가리킨다.
뭐지……? 집단 린치라도 시작할 생각인가?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들을 보고, 나는 흠씬 두들겨 맞게 될 것을 각오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미 어찌할 방도가 없다.
참담한 몰골로 널브러진 나를 남자들이 에워싼다.
언제 맞게 되더라도 몸에 심한 타격이 가지 않도록, 나는 배에 힘을 모았다.
누군가가 내 겉옷을 잡는다.
다른 누군가가 팔과 다리를 붙들고…….
…………?
뭘 하는 거지?
나를 둘러싼 남자들을 보니, 모두 왜인지 야릇하게 흥분된 얼굴을 하고 있다.
숨결이 거친데다, 눈이 충혈 되어있다.
“단단히 붙잡아두라고.”
“………….”
……그 표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는 내장에까지 소름이 끼치는 듯한 한기를 느꼈다.
어이, 농담이지……!
“큭, 이거 놔!”
방금 전에 내가 몸부림을 쳐서 아주 조금 느슨해졌던 팔의 구속을 풀어내고자 버둥거린다. 조금씩, 서서히 팔이 움직이는 범위가 넓어진다.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 빠졌다!
“……윽, ……!”
모처럼 양팔이 자유로워졌음에도, 곧바로 다시 억눌려서 꼼짝 못하게 되었다.
“어이, 뭐 하는 거야. 꽉 붙잡아두라고.”
“이거, 놔!”
내게 엉겨 붙는 남자들 너머로, 그 덩치 큰 사내가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덩치 큰 사내는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하는 식으로 여유만만하게 이쪽을 보고 있다.
저 녀석…….
“헤헤,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밍크 씨의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거야.”
밍크……? 그게 저 덩치 큰 사내의 이름인가?
한 순간 밍크라는 남자 쪽으로 신경이 쏠렸지만, 이내 나를 둘러싼 남자들의 뜨뜻미지근한 숨이 뺨에 닿아 몸서리가 쳐진다.
“이거 놓으라고 했잖아! 기분 나쁘다고!”
“시끄러!”
“윽!”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이 내 뺨을 있는 힘껏 후려쳐, 찌릿한 아픔과 피 맛이 입안에 번진다.
“그렇다곤 해도 남자라는 점이 말이지. 뭐, 박기만 하면 되지만.”
울툭불툭한 손이 셔츠 너머로 이리저리 내 가슴을 매만진다.
“그치만 이 녀석, 살도 하얗고 머리도 기니까 말야. 눈 좀 흐릿하게 뜨면 여자로 보이는 거 아냐?”
“글쎄, 역시 남자는 남자고 말이지.”
……그래, 남자는 남자니까 나도 토 나올 정도로 싫다고!
농담이라 해도 전혀 웃기지 않는 대화에, 나는 입 안에 고인 피를 옆에 있는 남자에게 내뱉었다.
“큭, 이 녀석!”
“저리 비켜! 이 손 치우라고!!”
“크헉!”
얼굴에 침을 맞고 발끈한 남자의 배를 있는 힘을 다해서 발로 차자, 남자가 괴로운 듯이 신음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꼴좋다.
“……윽, 크흑…….”
받은 건 배로 돌려준다는 듯이 뺨을 호되게 얻어맞는다.
제기랄…….
“붙잡아둘 테니까 빨리 벗겨버려.”
“오-케이.”
“! 만지지 마, 그만둬……! 윽!”
난폭하게 벨트가 풀리고, 단추도 끌러진다.
옆쪽에서 뻗어진 다른 손이 윗도리를 붙잡고, 잡아 찢을 듯한 기세로 가슴까지 걷어 올린다.
“……윽, 이거 놔!”
“시끄럽네. 입 좀 막아.”
“웁, 우웁!”
입안에 천 조각이 밀어 넣어지고, 바싹 마른 점막에 천의 섬유조직이 들러붙어 토기가 치밀어 오른다.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개구리처럼 뒤집어진 소리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아-, 어쩌면 의외로 꽤 맛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어쩐지 슬슬 서기 시작했어.”
“빨리 하고 교대하라고.”
“다음은 나야.”
소름이 끼치는 말을 지껄여대며, 남자들 중 한 명이 내 바지와 속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웁, 우윽, ~~~으윽!”
발을 버둥거려보아도 양쪽 겨드랑이 아래로 팔이 들어와 단단히 결박한 상태에서는 이렇다 할 저항도 되지 않고, 하반신이 완전히 드러난다.
“우웁……!!“
“아-아, 역시 남자긴 남자네. 직접 보니까 조금 깨는 걸.”
“난 그렇지도 않을지도.”
“진짜냐? 것보다 너, 뒤로 해본 적 있는 거야?”
“여자도 간혹 뒤쪽을 더 좋아하는 녀석이 있잖아.”
“우욱, 웁, ……!!”
꺼슬꺼슬한 손이 허벅지에서 엉덩이까지를 쓸어 올리고, 그 틈새로 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이성을 잃어버릴 듯한 정도의 혐오감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섭다거나 열 받는다기보다도……, 여하튼 기분 나빠……!
왜 내가 이런 꼴을…….
난 그저, 할머니를 찾고 싶을 뿐인데…….
저 밍크인지 뭔지 하는 남자…….
저 녀석 탓이다……!
저 녀석은 지금도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내가 이 녀석들에게 능욕당하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하는 건가?
뭐 때문에.
왜.
어째서.
왜…….
어째서냐고……!!
“어쩐지 갑자기 얌전해졌는데.”
“포기한 거 아냐?”
“이 틈에 빨리 먹어버리라고.”
“내 앞에서, 없어져라.”
“어이, 이 녀석 괜찮은 건가?”
“……?”
“어이, ……어이, 에? 뭐야…….”
“사라져라, 전부 사라져라. 사라져라, 사라져라. ……사라져라.”
“뭐, 뭐야? 왠지…….”
“아아아…….”
“……사라져라.”
………….
……………….
응…….
……이 냄새, 뭐지…….
어디선가 맡아본 적이 있다. 향신료 가운데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은데…….
허브?
시나몬……?
멍하니 눈을 뜨자, 조금 떨어진 곳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것은……, 그 덩치 큰 사내다.
이름이 밍크라고 했나…….
저 녀석…….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렴풋이 빛을 발하는 촛불을 앞에 두고, 밍크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뭔가, 말하고 있다?
뭐라고 말하는지는 들리지 않는다.
뭐라고 말하는 걸까…….
저 녀석…….
뭘…….
………….
……………….
…………아야.
아야야야.
머리, 아파…….
“………….”
둔탁한 두통에 잠이 깨서 눈을 뜨자, 여기저기 금이 간 지저분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어디지? 난, 어떻게 된 거지…….
……그래. 강간당할 뻔해서…….
……그 뒤로, 결국 어떻게 된 거지? 위쪽도 아래쪽도 옷은 입고 있는데…….
게다가 분명, 이곳은 아까 있었던 곳과는 다른 방이다.
“아야야야…….”
약, 먹지 않으면……. 아, 가방.
가방은 어디 갔지? 렌도 거기에 들어있는데…….
“!”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몸이 욱신거리는 것도 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지. 밍크인가?
“……이제야 잠에서 깬 건가.”
녹이 슨 철문에서 얼굴을 내민 것은, 비쩍 마르고 등이 구부정한 남자였다.
남자는 나를 보고 히죽 웃고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누구지? 이 녀석…….
“기분은 어때? 꽤나 고생이었지, 당신. 느닷없이 레이프라니 말야.”
“밍크 씨 말은 아무도 거역할 수 없으니까 말이지. 거기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
남자는 혼자서 중얼중얼 지껄이면서 방으로 들어와서는, 내가 거칠게 노려보자 당황한 듯이 손을 저었다.
“지금은 밍크 씨 명령으로 온 게 아니니까, 그렇게 무서운 얼굴 하지 말라고. 응? ……아오바, 맞지? 당신.”
“! 왜 내 이름을.”
“역시. 아오바지? 정크숍 ‘평범’ 점원.”
“‘평범’을 알고 있는 건가.”
“아아. 예전에는 이것저것 사러 자주 거기에 갔었다고.”
내 반응을 보고, 남자가 기쁘다는 듯이 웃는다.
상황이 이런 탓인지, 가게의 이름이 몹시도 그리운 울림으로 귓가에 닿는다.
이 남자가 가게에 손님으로 왔었다는 것만으로도 친근감을 느끼고, 그대로 경계심을 풀게 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렇게 바로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어딘지 이상해, 이 녀석.
교무실에 불려온 학생처럼 머뭇머뭇 거리는데다, 거동이 수상하달까…….
“설마 이런 데서 당신을 만나게 되다니, 나 좀 감동했다고.”
“아, 아아. 그렇네.”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당신이 붙잡혀있다는 말을 듣고, 나 어-엄청 좋은 걸 생각해냈는데 말야.”
“여기서 나가게 해줄까 해서.”
“……정말이야?”
“물론이지. 응? 솔깃한 이야기지?”
“그치만……. 여기는 그 밍크라는 녀석이 모든 일을 처리하잖아?”
“괜찮아, 괜찮아. 어떻게든 된다니까.”
“어떻게든 된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어쩔 건데.”
“괜찮대도.”
“그러니까, 어떻게 할 거냐고.”
“……참 끈질기네.”
“괜찮다고 하잖아.”
“!”
내가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남자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총을 들이밀었다.
남자가 눈을 부릅뜨고, 입으로만 크게 웃는다.
“이봐, 괜찮다고. 여기서 꺼내 줄 테니까, 그러니까 말야, 당신 목소리를 좀 더 들려줘, 응?”
“목소리……?”
“그래, ‘평범’에 전화하면 대체로 늘 당신이 받잖아?”
“당신 목소리, 처음 들었을 때 완전히 반해버려서 말야. 그 뒤로 자주 전화했었다고, 당신 목소리를 들으려고.”
“………….”
가게에는 나를 목적으로……, 정확하게는 내 목소리를 목적으로 전화를 해오는 손님이 몇 명 있다.
이 녀석도 그 중 한 명이었다는 말인가.
“좀 더 말야, 날 위해서 이런저런 목소리를 들려줘. 듣고 싶단 말이야. 응?”
남자가 총구를 내게 겨눈 채로, 무릎으로 기어서 침대 위로 올라온다. 내가 내려가려 하자 총구를 바싹 들이댔다.
“움직이지 마! 도망치려 하면 쏘겠어.”
“……윽.”
“별로 상관없잖아, 닳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을 뿐이라고.”
하악하악 하고 거친 숨을 내쉬는 남자의 손이 내 뺨에 착 달라붙는다.
기분 나빠……!
것보다, 어째서 이런 개 같은 일들을 연속으로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고……!
아야야……. 머리가…….
제길……. 이렇게 된 거 확 발로 차버릴까……!
“!”
“……히익!”
방의 문이 기세 좋게 열리고, 뒤를 돌아 문 쪽을 본 남자가 새파랗게 질려서 총을 내팽개쳤다.
그곳에 서있는 것은……, 밍크였다.
“……뭘 하고 있나.”
“죄, 죄송합니다!!!”
밍크는 방 안으로 들어와, 정신없이 허둥대는 남자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히익!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너도 와라.”
“에? 윽, 아파앗……!!”
나는 밍크에게 팔을 붙잡혀, 침대에서 억지로 끌어내려졌다.
밍크는 남자와 나를 거세게 잡아끌고는 방에서 나갔다.
복도에 있는 다른 녀석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진다.
복도의 막다른 곳에 열려 있는 문을 빠져나가자, 내가 처음에 쓰러져있었던 방이 나왔다.
아까부터 있었던 녀석들과 우리들의 뒤를 따라서 온 녀석들로, 순식간에 방 안이 소란스러워진다.
“윽.”
밍크가 난폭하게 내 팔을 놓고, 목덜미를 잡아끌고 왔던 남자를 바닥에 내던졌다.
“윽! 미, 밍크씨,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낯빛이 창백해진 남자가 밍크를 올려다보고, 슬금슬금 엉덩이를 뒤로 뺀다.
[ 밍크! ]
양손잡이
키: 189cm
혈액형: O형
생일: 9월 26일
별자리: 천칭자리
올메이트: 새
팀: 스크래치
“‘제재’인가.”
“그렇겠지. 근데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저 녀석.”
“글쎄? 바보짓을 한 건 확실하겠지. 밍크 씨를 화나게 했으니까.”
“저 밖에서 끌려온 다른 한 녀석도 포함인 건가?”
“그런 거 아냐?”
주변에 모여든 녀석들이 바닥에 들러붙어 벌벌 떠는 남자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낮은 소리로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는다.
제재……?
그 단어에서 불길한 것밖에는 연상되지 않는다.
“히익!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밍크는 계속해서 사과하는 남자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그의 멱살을 잡았다.
“크악!”
뼈와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남자의 몸이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한 대 얻어맞은 남자가 움찔움찔 경련하며 흰 자위를 드러낸다.
남자의 입 주변에 자그마한 피 웅덩이가 생기고, 쌀알 같은 흰 덩어리가 두, 세 개 정도 그 위에 떠올라있었다.
이빨이 부러진 것이겠지.
단 한 방으로 기절시키다니……. 저 녀석, 대체 얼마나 힘이 센 거지.
눈앞의 광경에 아연실색하고 있으니, 주변의 시선이 어느 사이엔가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밍크도 한 대 날려서 기절시킨 남자가 아니라, 나를 보고 있다.
……어쩐지 엄청나게 흉흉한 아우라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녀석들 중에는 히죽히죽 웃고 있는 녀석도 있다.
설마 다음 차례가 나라고 하지는 않겠지.
남자한테 강간당할 뻔한 데다가 무식하게 센 힘으로 얻어맞는다니, 농담도 정도껏 하라고……!
“……윽.”
마지막 쐐기를 박기라도 하는 듯이 머리까지 심하게 아파온다.
젠장…….
가방이 없으니 약도 없는데다 렌도 없고, 상황이 이래선 도망쳐도 곧바로 붙잡힐 테고…….
……최악이다.
밍크가 한 발짝, 내 쪽으로 발을 내딛는다.
“허튼 수작 말라고……, 저리 가.”
내가 몸을 뒤로 빼자, 밍크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 거리를 좁혀왔다.
방금 전 기절한 남자와 피 웅덩이가 시야의 가장자리에 비친다.
저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 순간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
“너는 이쪽이다.”
각오했던 충격은 가해지지 않고, 밍크는 내 팔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통과했던 문 쪽으로 향한다.
“……저 녀석은 제재 면제? 진짜냐고.”
“하? 어째서지? 밖에서 끌고 오는 녀석은 대부분 밟아주는 게 목적이잖아?”
“이해가 안 돼……. 저런 비리비리한 녀석,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은데 말이지.”
방 안에 모여든 녀석들의 옆을 지나가려 하자 가시 박힌 말과 시선이 나를 향해 내던져진다.
내가 여기로 끌려왔을 때부터 모두가 틀림없이 나에게 ‘제재’가 가해질 거라고 생각했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주변 녀석들이 주고받는 말은 밍크의 귀에도 충분히 들렸을 텐데도, 밍크가 그에 반응하는 기색은 없다.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 거지……?
불길한 예감도 불안도 그 무엇 하나 해소되는 일 없이, 나는 밍크의 손에 이끌려 방에서 나왔다.
밍크의 발길이 향한 것은 내가 방금 전에 잠에서 깼던 방이었다.
“이거 놔, ……윽!”
방에 들어가자마자, 세차게 팔을 흔들어 밍크의 손을 뿌리친다.
밍크는 나에게서 떨어지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읽어낼 수 없는 눈이 나를 응시한다.
약간 기가 꺾일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그 눈을 마주 노려보았다.
이 남자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사람을 칠 수 있다. 그런 남자다.
그런 탓인지, 지극히 냉정하게 자신의 눈앞에 선 상대방을 관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인간인지……. 그런 것들을 꿰뚫어보고자 한다.
먹잇감과 눈을 마주한 맹수처럼.
그렇기에, 그것이 허세라 할지라도 절대 약점을 내보여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신의 목적은 뭐지. 왜 날 이곳으로 데려온 거야. 할머니는 어디 있지.”
“………….”
“방금 전도, 왜 그 녀석을 쳤지? 어차피 그 녀석도 당신이 나를 덮치도록 명령한 거잖아? 그런데 왜 그런 거지.”
“그 녀석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일은 없다. 이 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말해뒀어. 그것을 어긴 벌이다.”
“그런 명령 내린 일이 없다니……. 어느 쪽이든 내 입장에선 다를 게 없다고. 당신은 날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능욕당하는 걸 보고 싶은 건가?”
“……자각이 없는 게 제일 성가시군.”
“……하?”
“한 번 더 말하지만, 방금 한 방 먹였던 녀석은 내가 부추겨서 그런 게 아냐. 그 녀석이 자주적으로 저지른 일이다.”
“네 목소리에 홀려서 말이지.”
“……목소리?”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반문하려 하다가, 말을 삼킨다.
그 남자는 확실히 내 목소리에 집착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사실을 이 녀석이 알고 있지?
“그러나, 무엇이 이유가 되었건 결과적으로 그 녀석은 내 명령을 어겼다. 그걸 용서할 수는 없지. 그것이 이곳의 룰이니까 말이다.”
“………….”
어쩐지 상황이 점점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내 목소리가 어떻다든지……, 왜 당신이 그걸 알고 있지.”
“………….”
“대답하라고. 그리고 할머니를 어떻게 했는지도 대답해.”
“난 모른다. 내 목적은 처음부터 너였다.”
“하……?”
목적은 처음부터 나였다고? 그럼 할머니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 내 앞에서, 밍크는 코트의 가슴 포켓에서 무언가를 꺼내 가볍게 흔들었다.
“이건 뭐지.”
“!”
밍크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내가 복용하고 있는 두통약이었다.
그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손을 뻗자, 밍크는 가볍게 내 손을 피했다.
“이리 내놔!”
“질문에 대답해라.”
“단순한 두통약이라고.”
“시중에 나도는 물건이 아니군.”
“할머니가 약제라라서 직접……. 그 외엔 나도 몰라.”
“꼭 약물 중독자 같군.”
“하……?”
밍크는 약을 코트의 가슴 포켓에 다시 집어넣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복도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
잠시 후, 방에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저마다 무언가를 질질 끌고 들어와, 방의 정중앙에 털썩 놓아두고서 밖으로 나간다.
……그곳에 놓인 것은, 사람이다.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사람이, 엎드린 채로 나뒹굴고 있다.
잘 보니, 양쪽 다 희미하게 호흡을 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의 목, 잘 보라고.”
목……?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두 사람의 목 부근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
모르핀의 태그아트…….
게다가 이거……, 다른 태그를 시커멓게 칠하고 그 위에 새로 그린 건가?
가장자리에 다른 모양이 불거져 나와 있다.
근데, 이거……. 기분 탓으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면…….
“드라이주스…….”
나는 널브러져있는 둘 중의 한 명의 어깨를 일으켜, 그 얼굴을 보았다.
……아는 얼굴이다. 이 녀석, 드라이주스의 멤버다.
“우리들보다 먼저 네 집에 와있었던 게 그 녀석들이다. 대부분은 철수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남아있던 것은 그 둘이다.”
“이제 알았나. 네 할머니와 나는 관계없다.”
“그렇지만 어째서 할머니가…….”
“몰라. 단, 우리 멤버들에게 먼저 철수했던 녀석들의 자취를 쫓게끔 명령은 해뒀다.”
“정말이야? 그러면…….”
“그 전에 교환조건이다. 방금 말한 대로, 내 목적은 너다.”
“………….”
“네 녀석에 대해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리로 데려왔지만, 대강의 파악은 끝났다.”
“너는 내 말에 따라서 움직여라. 그 대신, 교환조건으로 우선 네 성가신 용건에 동행해주지.”
“내 용건……?”
“할머니를 찾아준다는 말이다.”
“!”
갑자기 그런 말을 들어도, 믿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 한 이야기도 대강 끼워맞춘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이런 지독한 꼴을 당하게 만들고서는, 믿으라고 하는 건 역시 무리다.
그렇지만, 정말로 끼워 맞춘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모르핀의……, 드라이주스의 일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태그아트를 시커멓게 칠하고서 그 위에 다시 태그를 그린다든지……, 확실히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까지 준비를 할 수는 없겠지.
“만약 나를 신용할 수 없다고 한다면 혼자서 할머니를 찾으면 된다. 좋을 대로 말이지.”
“………….”
분한 일이지만, 나 혼자로서는 할머니를 찾아낼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모르핀이 관련되어 있는 거라면, 완전히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찾는 것과도 같은 상태다.
“당신은 내가 목적이라고 했지만, 어쩔 생각인 거지.”
“그걸 지금 말할 필요는 없어. 조건을 받아들일지 아닐지만 빨리 정해라.”
[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따를 수는 없다 ]
[ 지금은 참는 수밖에는 없다 ] → 선택
……이런 일이 없었다면 절대로 말도 붙이고 싶지 않은 녀석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알았어.”
“바로 나간다. 준비해라.”
밍크가 가슴의 포켓에서 두통약을 꺼내 내 쪽으로 던졌다. 허둥지둥 그것을 받아든다.
어쨌든 이 약만 먹으면 두통은 가라앉는다. 것보다 준비라니……. 맞다, 가방은?
방에서 나가는 밍크와 교대하는 것처럼, 문틈으로 컬러풀한 앵무새가 날아들어 왔다.
발로 무언가를 움켜쥐고서 질질 끌고 있다.
……아. 내 가방!
‘네 짐이다, 받아라.’
앵무새는 날개를 퍼덕이며 댄디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물론 진짜 새가 아니라 올메이트겠지.
이 앵무새, 어디서 봤었는데. 분명 밍크의 어깨 위에 앉아있었다…….
“너, 밍크의 올메이트야?”
‘그렇다.’
대답과 동시에 날개를 퍼덕이고, 앵무새는 문의 틈새를 지나 재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저게 밍크의…….
조금 의외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가방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가방의 지퍼가 열려있어서, 약간의 초조함을 느끼며 내용물을 확인한다.
안에는 파란 털 뭉치와 코일이 제대로 들어있었다.
코일과 렌, 어느 쪽도 이렇다 할 외부 손상은 없는 것 같다.
우선 코일을 꺼내서 팔에 장착한다.
화면에는 착신이 왔었던 것을 알리는 아이콘이 잔뜩 깜박이고 있었다.
“우와…….”
폭풍이라도 몰아친 듯이 착신이력이 가득 메워져있다. 대부분이 코우자쿠로부터다.
허둥지둥 통화 버튼을 누른다.
“아오바야!?”
“아아.”
“너……, 어디서 뭘 했던 거야.”
“미안.”
“연락이 전혀 안 돼서 걱정했다고.”
“조금 이래저래 일이 있어서……. 지금 돌아갈 거니까, 가서 자세하게 이야기할게.”
“알았어. 지금 ‘평범’에 있으니까 거기서 봐.”
“아아.”
코우자쿠의 목소리를 듣고서, 어딘가 먼 곳에 있었던 현실감이 한 순간에 제 자리로 돌아왔다.
할머니도 드라이주스도 없어지고, 나도 이런 곳에 끌려와서…….
터무니없는 일들의 연속이라 감각이 마비되어가고 있었지만, 이것은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가자.
나는 두통약을 입에 털어넣고, 가방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
이야아! ^q^!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다음날 아침.
어제 일로 완전히 피로에 절어버린 것도 있어서, 내가 ‘평범’에 도착한 것은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한 시간이었다.
하가 씨는 가게 문을 열자마자 곧바로 밖으로 나가서, 나 혼자서 가게를 보고 있다.
가게 안에는 나와 범인군밖에 없다. 손님은 거의 오지 않으니, 멍 때릴 시간도 잔뜩 있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노이즈와 클리어. 불법침입남과 가스마스크.
정말이지 그 녀석들, 정체를 알 수 없다니까…….
그렇지만, 모두가 돌아가서 집 안에서 시끌벅적함이 사라지자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끔은 떠들썩한 것도 좋다는 생각도 들고…….
“네, 정크숍 ‘평범’입니다.”
“………….”
“여보세요?”
“………….”
아무런 말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뭐지? 장난 전화인가?
“돌격-!”
“돌격이다-!”
“변함없이 촌스러운 가게네!”
그때, 가게 문이 열리고 시끄러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또 너희들이냐고!”
“아, 아오바다!”
“아오바-!”
“변함없이 신통찮은 얼굴이네!”
정말, 언제 봐도 귀엽지 않다니까…….
“오! 목표 발견!”
“발견!”
악동 형제들의 관심이 나에게서 범인군에게로 옮겨간다.
“처, 처처처청소!!!”
범인군이 급브레이크로 일시정지하고 내 뒤에 숨는다.
어이어이.
그 덕에 내가 꼬맹이들의 표적이 돼버렸잖아.
“거기 서-!”
“서라 서라-!”
“얌전히 있으라고!”
“윽, 너희들, 나한테 매달리지 말라니까!”
악동 형제들과 격투를 하고 있으니, 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손님인가 했더니…….
“……노이즈!?”
“여어.”
어……, 어째서 이 녀석이 가게에!?
노이즈는 가게 안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며 내게로 다가왔다.
악동 형제들이 내게서 떨어져 노이즈를 본다.
“잠깐 잠깐! 원래 손님 같은 거 잘 없지 않아?”
“손님이다-! 손님이 왔다!”
“좋아, 목표 변경! 손님을 향해 돌격이다!”
“잠, 어이 너희들……!”
내가 말리는 것보다도 빠르게, 꼬맹이들이 노이즈에게 돌진했다.
위험해, 저 녀석 진짜로 성질낸다고……!
“우와악!”
“우와악!”
라고 생각했지만, 노이즈가 화려한 몸놀림으로 꼬맹이들을 피했다. 맨 먼저 쳐들어갔던 키오와 나오가 앞으로 거꾸러진다.
그리고, 미오는…….
“자, 잠깐! 이거 놓으라고!”
부딪치기 직전에 노이즈에게 붙잡혀, 마치 목덜미를 잡힌 새끼고양이처럼 훌쩍 들어 올려져있었다.
“이거 놓으랬잖아! 뭐 하는 거야!!”
미오가 필사적으로 노이즈의 가슴을 팡팡 두들긴다. 노이즈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말없이 미오를 보고 있다.
뭔가 4차원적인 광경이다…….
내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으니, 노이즈는 예상치도 못한 행동을 내보였다.
뭐라고…….
자신의 가슴을 때리는 미오의 손을 잡아, 그곳에 입술을 대고 키스를 쪽 했다.
“뭣…….”
에에……!?
그렇지만, 나 이상으로 놀란 것은 미오다. 그야 그렇겠지…….
미오는 데친 문어처럼 얼굴이 새빨개져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
“뭐, 뭐, 뭐.”
“난폭하게 날뛰는 여자는 귀엽지 않다고.”
노이즈가 뭔가 엄청난 것을 말해버린다.
“이, 이, 이.”
미오는 입을 뻐끔뻐끔 움직이고, 눈을 꾹 감고서는 있는 대로 숨을 들이마셨다.
“이거 놔! 이 성희롱 피어스!”
“성희롱 피어스…….”
노이즈는 특별히 반응을 하지 않고, 미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미오는 곧바로 노이즈에게서 비켜서서,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고 검지를 척 내밀었다.
“얼굴에 그렇게 잔뜩 구멍을 뚫어서는, 피가 나오면 어쩔 거야!”
“뭐야!? 피라고!?”
“피!?”
앞으로 넘어진 채로 “나는 이제 틀렸어~. 살려줘~.” 같은 말을 하면서 다친 사람 흉내를 내고 있던 키오와 나오가, 여동생의 말을 듣고 일어난다.
오라버니들은 다행이도 노이즈의 퍼포먼스를 보지 못한 것 같다. 다행이군…….
“너, 미오한테 무슨 짓 했어!”
“했어-!”
“별로.”
“그만해 너희들!”
노이즈에게 따지고 드는 둘을 미오가 허둥지둥 말린다. 얼굴이 아직 빨갛다.
“에, 그치만.”
“됐으니까 후퇴야!”
“그치만 아직 저 녀석 쓰러트리지 못했어!”
“됐다니까!”
소리를 빽 지르고는 그 즉시, 미오는 다다다 달려서 가게에서 나가버렸다. 오라버니들이 허둥지둥 그 뒤를 쫓는다.
……가게 안이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범인군의 기계음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가운데, 나는 믿겨지지 않는 심정으로 노이즈를 보았다.
“너……. 나이 어린 여자애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노이즈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본다.
“뭐가.”
“갑자기 손에 쪽 뽀뽀라니……. 깜짝 놀란다고 할까 기분 나빠 하잖아, 보통.”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아니, 아니아니아니아니! 충분히 이상하니까!”
“……응?”
반사적으로 태클을 거니, 노이즈가 카운터에 손을 짚고 내 쪽으로 몸을 내밀어왔다.
무표정하게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는…….
“!”
……뭔가, 입술에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
……………….
………………, 지, 지금 그건…….
“…………너, 너, 너.”
“? 뭐야.”
“윽, 뭐, ……뭐야가 아냐! 갑자기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라니 키스잖아.”
“하!!?!”
노이즈는 패닉에 빠진 나를 태연히 바라보고 있다.
뭐야 이 녀석……. 진짜로 뭐냐고!?
“보통, 남자한테 키스 같은 거 안 하잖아!”
“그래?”
“혹시……, 그쪽?”
“하?”
“………….”
노이즈의 태도가 너무나도 태연스러워서, 점점 내 쪽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키스란 건 당연히 남자끼리 해도 되는 거였나?
……아니아니, 그럴 리 없잖아.
그렇지만 정말로 장난을 치거나 일부러 괴롭히려는 생각은 없는 것 같고…….
……좀 냉정해지라고, 나.
이 녀석이 이상한 거야. 절대로 그렇다.
딱히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그럴 거다.
그리고 남자 여자 관계 없이 스킨십을 해보려는 녀석도 꽤 있고 말이지.
이 녀석은 그런 타입이겠지. ……아마.
나는 손등으로 입술을 닦고,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것보다 너, 대체 왜 여기에 온 거야.”
노이즈가 가만히 내 눈을 본다.
“너, 내 팀에 들어와라.”
“하?”
갑자기 무슨 말을 꺼내는 거지?
“팀이라니……. 라임 팀 말인가.”
“그래.”
[ 제대로 이야기를 한다 ]
[ 절대로 안 한다 ] → 선택
“절대로 안 해.”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한다. 하지만, 노이즈는 여전히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다.
“그럼 들어온다고 할 때까지 매일 여기로 오겠어.”
“………….”
뭐야 그게. 애냐.
“예전에 했을 때는 꽤 강했었잖아, 라임. 또 해.”
“한 적 없어. 사람을 잘못 봤겠지.”
“………….”
노이즈가 나를 바라본 채로, 입을 다문다.
그 시선이 몹시도 날카로워서, 약간 기가 죽는다.
대체 뭐지……?
“……뭐, 오늘 이야기의 진짜 주제는 그게 아냐.”
노이즈가 시선을 돌려서, 살얼음판 같은 긴장에서 해방되어 숨을 돌린다.
“오늘은 이 가게 앞에서 있다고.”
“뭐가?”
“라임.”
“라임?”
“이 부근이 오늘의 우스이 발생 포인트다. 우리들의 예상은 거의 100% 적중하지.”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아서 눈썹을 찡그리고 있으니,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전해져왔다.
“가자.”
“에?”
“됐으니까 따라와.”
노이즈가 카운터 안으로 억지로 들어와서, 내 팔을 붙잡았다.
“어이 이거 놔! 난 가게를 봐야…….”
“시끄러워.”
팔이 빠질 듯한 정도의 힘으로 잡아당겨져, 나는 렌이 들어있는 가방을 간신히 손에 들었다.
가게 밖으로 나오니, 늘 거의 인기척이 없는 골목길에 사람들의 열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모여드는 녀석들은 모두 안쪽으로 흘러들어간다.
나도 노이즈의 손에 이끌려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포인트는 이 부근이다.”
약간 어둑한 골목길로 들어간 시점에서 노이즈가 멈춰선다.
그 손에는 어느 사이엔가 토끼모양 큐브가 올려져있었다.
“그거, 네 올메이트야?”
“아아.”
의외로 귀여운 걸 쓰고 있네, 이 녀석…….
“이제 슬슬 시작이다.”
이윽고, 골목의 한 구석이 어렴풋이 빛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빛의 고리가 생기고, 우스이가 발치에서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다.
주변에 있던 녀석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그 소리를 들은 녀석들도 점점 모여들어왔다.
“말한 대로지.”
“……오오.”
“너 나가보라고.”
“그러니까 싫대도.”
“이래도 말인가?”
노이즈가 가볍게 눈썹을 들어올린다. 무슨 조화인지 그 뒤쪽에서 내 가방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스트랩 부분을 잡고 있는 것은……. 토끼모양 큐브다.
어느 사이에……!
“너……!”
“자, 어쩔 거지?”
주변에는 라임 관객들이 혼잡을 이루고 있어서, 가방을 되찾아도 곧바로는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윽.”
‘P!’
그때, 무언가가 활공해서 내 가방을 들고 있던 큐브에 부딪쳤다.
주변의 군중이 가볍게 술렁이고, 흩어진다.
“여어.”
땅에 떨어진 가방을 주워든 것은 코우자쿠였다.
방금 노이즈의 큐브에 몸을 부딪쳤던 건 베니인가.
베니시구레의 멤버도 함께 있다.
“코우자쿠…….”
“아오바, 오늘은 어쩐 일이야. 또 배달하러 가는 도중인가?”
그렇게 말하면서, 코우자쿠의 눈이 도발적으로 노이즈를 향한다.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지.”
“너한테 설명할 필요는 없군.”
“라임인가.”
“그쪽이야말로 일부러 여기까지 행차를 하시고 어쩐 일이지. 머릿속까지 근육밖에 없는 리브가 참가해봤자, 라임에선 맥도 못 추고 바로 나가떨어진다고.”
“뭐라고! 이 녀석!”
“그만해.”
코우자쿠가 흥분한 멤버를 손으로 제지한다.
“애송이가 잘난 척하지 말라고. 말이 지나치군.”
“사실이잖아.”
“잘난 척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알게 뭐야.”
“네 녀석이랑 말을 하면 진심으로 라임이 싫어져.”
“상관없잖아? 리브한테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 따위 아무도 안 할 테고.”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두 사람의 험악한 공기가 주변에도 전염되어서, 코우자쿠의 주변에는 리브가, 노이즈의 주변에는 라이머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리브 대 라임의 구도로 서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본다.
“어이, 둘 다 잠깐…….”
“애초에, 지금 시대에 완력이네 주먹이네 낡아빠졌다고. 촌스럽게.”
“머릿속에서만 싸워봤자 얻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단순한 현실도피다.”
“근육돼지는 생각하는 방식도 딱딱하지. 말이 안 통한다고.”
“어이…….”
“머리만 엄청나게 큰 약골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군.”
“약골이 아니라고.”
“그래? 나한테는 충분히 약골이었는데 말야.”
코우자쿠가 어제의 일……, 내 방에서 맞붙었던 때의 일을 넌지시 암시하는 말을 했다.
노이즈가 입을 닫고, 조용히 코우자쿠를 응시한다.
“너, ‘러프래빗’이지? ‘무지나’ 지역의 라임 팀. 최근엔 주제넘게 이 부근에까지 어슬렁대고 있는 것 같군.”
“라임 발생지 예측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걸로 푼돈 벌어서 좋다고 날뛰는 거 아니라고.”
“거래다.”
“이 지구에도 우리들의 정보를 얻고 싶어 하는 녀석들이 산처럼 쌓여있지.”
“그래서 거래도 성립하지. 너희들과는 머리를 쓰는 방식이 달라.”
노이즈와 코우자쿠가 말없이 서로 험악하게 노려본다.
“이쯤에서 한 바탕, 결착을 지어둘까.”
“시시하지만, 난 네 녀석이 마음에 안 들어. 짓밟아주겠어.”
주변에 있던 리브와 라이머가 우렁차게 소리를 지른다.
어느 사이엔가, 군중은 우스이 주변에 모인 라임 관전파와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는 파로 나뉘어져있었다.
보기에는, 라임보다도 이쪽에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점점 수습이 안 되는 상황이 되어간다. 어떡하지, 이거…….
“두 번 다시 그 건방진 입을 놀리지 못하게 해주지.”
“그러시든지.”
코우자쿠가 도발적인 말을 내뱉고, 그 말을 되받은 노이즈도 엷은 미소를 지으며 목을 틀어 뚜둑 소리를 낸다.
[ 코우자쿠에게 말을 건다 ] → 선택
[ 노이즈에게 말을 건다 ]
“어이 코우자쿠! 너 왜 이런 데서 진짜로 정색을 하는 거야!”
“미안하게 됐네, 아오바. 이런 말까지 들으면 말야,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주제도 모르고 계속 기어오른다고.”
“맞아, 맞아!”
“코우자쿠 씨, 한 방 먹여버려!!”
두 사람 다 싸움을 멈출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둘 다 싸우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간다!”
코우자쿠와 노이즈의 정면충돌을 시작으로 주위의 리브와 라이머도 싸움을 벌이기 시작해, 격투 대회라도 벌어진 듯한 난투가 되고 말았다.
어쨌든 뭐라도 좋으니까 날뛰고 싶은 녀석들도 뒤섞여서, 이미 엉망진창이다.
결코 넓지 않은 골목에 굵직한 목소리와 서로 치고받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코우자쿠와 노이즈만이라도 말리지 않으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고자 했을 때, 옆쪽에서 남자가 덤벼들어왔다.
“네 녀석도 라임 쪽이지!”
“우왓!”
얻어맞을 것 같아서 재빨리 비켜서자, 헛주먹을 날린 남자가 제풀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눈앞에 드러난 무방비한 뒷덜미에 반사적으로 손날을 날린다.
“으악!”
남자기 무릎을 꿇고, 등을 보이며 쓰러진다.
위험해……. 조심하지 않으면 말려들고 마는군.
“이거나 먹어라!”
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윽!”
남자의 팔이 날카롭게 바람을 가른다. 잘 보니, 그 손에는 나이프가 쥐어져있었다.
“정말이지, 눈 뜨고는 못 봐주겠다고!”
다시 내 쪽으로 파고드는 팔을 붙잡아 아래로 잡아당기고, 균형을 잃은 남자의 턱에 무릎을 때려 박는다.
“크악!”
“윽.”
“진짜…….”
코우자쿠와 노이즈의 모습을 찾는다.
두 사람은 주변은 신경도 안 쓰고 신이 나서 배틀을 전개하고 있었다.
“코우자쿠! 노이…….”
“너 이놈들!! 뭐 하고 있나!!!”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울리고 그 자리에서 날뛰고 있던 전원이 움직임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자마자, 쏜살같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쿠시마인가……!
총을 든 경찰관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행차다.
“뭐야, 이게 무슨 소란이냐! 라임인가? 리브인가? 어느 쪽이든 전부 사형이다!!!”
“아오바!”
도망칠 길을 찾아 갈팡질팡하는 군중의 흐름을 거슬러, 코우자쿠가 이쪽으로 온다.
“노이즈는?”
“훨씬 전에 도망쳤어. 우리들도 빨리 도망가자고!”
코우자쿠가 내 팔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거기 서 이 녀서어어어어어어어억!!!!”
긴 여음을 남기는 아쿠시마의 포효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우리들은 있는 힘껏 달려서 골목을 빠져나갔다.
등 뒤로 소란스러운 기척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때, 나와 코우자쿠는 속도를 줄이고 달리기를 멈췄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괴롭다.
“……여기까지 왔으니 괜찮겠지.”
“아아.”
코우자쿠가 확인하는 듯이 방금 달려온 길을 돌아보고서는, 미안한 듯이 나를 보았다.
“……미안해. 너희 집에서도 일을 저질렀는데, 또 소란이 일고 말았어. 그만 머리에 피가 몰려서……. 그 망할 애송이.”
그런 말을 한 후, 코우자쿠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뀐다.
“아오바. 너한테 무차별 살인 라임을 걸었던 건 그 녀석이지.”
“………….”
정곡을 찔려서, 가슴이 철렁한다.
코우자쿠는 내 반응에서 그에 대한 답을 헤아린 것 같았다.
“역시 알고 있었나. 그렇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미안.”
“아니, 책망할 생각은 없어. 그런데 그 녀석, 무차별 살인 라임 후에도 끈질기게 너를 따라다녔지? 무슨 일이 있었어?”
“……뭐라고 할까, 그게.”
여기까지 온 이상 숨길 필요 따위는 없다.
나는 노이즈의 무차별 살인 라임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 녀석이 라임에서 싸움을 걸어왔을 때, 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전혀 알 수 없었어. 라임 따위 해본 적도 없고.”
“결국에는 의식을 잃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그 녀석이 말하기로는……, 내가 이겼다고 해.”
“네가?”
“아아. 그치만 그런 거 전혀 기억도 안 나고, 애초에 내가 이길 리도 없고. 그래도 그 녀석은 내가 이겼다면서 내 말을 듣지 않아서.”
“그럼, 너한테 진 원한을 풀기 위해서 달라붙는 건가. 프라이드만은 따라올 사람이 없군, 그 망할 애송이.”
“라임이네 어쩌네 해도 진 건 진 거지. 깨끗하게 인정하고 끝내는 게 남자일 텐데.”
“게다가 너, 의식을 잃었었잖아? 그런데도 그렇게 트집을 잡는다는 건, 단순히 심술을 부리는 걸로밖에는 들리지 않는 걸.”
“글쎄…….”
“왜 그래? 뭔가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어?”
“……라임에서 싸웠을 때 말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어.”
“무슨 뜻이야? 그 녀석이 아니고?”
“아닌 것 같아. 들렸다기보다도 목소리가 귓속에서 울렸다고 할까.”
“그리고 나, 렌한테 지시를 내렸었어. 싸우는 방법을 직감적으로 이해한 것처럼.”
“라임은 해본 적이 없지, 너.”
“아아. 그런데 어떻게 지시 같은 걸 내릴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어. 그게 조금 불길한 느낌이라…….”
이야기하면서 점점 불안이 엄습해 고개를 떨구자, 코우자쿠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게 예전부터 너의 안 좋은 버릇이야. 안 그럼 렌한테 ‘아오바, 사고가 마비될 것 같다.’ 이런 말 듣게 된다고.”
“아아…….”
코우자쿠가 렌의 목소리를 흉내 내서, 작게 웃음이 터지고 만다.
“너도 갑자기 라임에 말려들어서 좀 혼란스러워졌을지도 모르고. 그래도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
“아아, 땡큐.”
“타에 씨한테는 항상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있으니까 말야.”
“그 얘기냐고.”
“하하.”
코우자쿠와 마주보고 웃자, 답답했던 기분이 아주 조금 풀린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안심하게 된다는 것도 있겠지.
그렇네……. 뭔가 잘은 모르겠지만, 무턱대고 불안에 휩싸여서 우울함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좋지 않지.
계속 그렇게 있다가는, 뭔가 다른 병이 생길 것 같다.
“맞다, 드라이주스 녀석들한테 인사하고 갈까?”
“그렇네. 미즈키 일도 신경 쓰이고. ……아, 참!”
“왜 그래?”
“근데 나, 일하는 중이었다고! 하가 씨가 밖에 나가셔서 가게 보고 있었어.”
“어이어이, 그럼 안 되는 거 아냐?”
“전화해볼게.”
나는 허둥지둥 코일로 하가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정크숍 ‘평범’입니다.”
“하가 씨!? 죄송해요, 저……!!”
“아아, 아오바 군. 가게에 없어서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만……, 뭔가 급한 일이라도 생겼던 건가요?”
“그러니까, 그게…….”
노이즈가 갑자기 가게로 쳐들어와서……, 같은 이야기를 해도 의미를 알 수 없겠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헤매다가, 나는 어물어물 넘기면서 계속해서 하가 씨에게 사과를 했다.
하가 씨는 조금 씁쓸하게 웃었지만, 용서해주셨다.
“오늘은 이걸로 괜찮습니다. 제가 가게에 있고.”
“정말로 죄송했어요……!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에에, 알고 있어요. 그럼, 수고 많았어요. 조심해서 들어가요.”
“수고 많으셨어요……!”
“하아…….”
“괜찮은 거야?”
“아아, 일단은…….”
그렇지만 아무리 하가 씨가 용서해주셨다고는 해도, 이건 사회인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책임방기다…….
나중에 제대로 사과하자…….
드라이주스의 영역은 이 지구……, 동쪽 지구의 ‘유키사기’에 있는, 완전히 쇠퇴한 식당가의 뒷골목이다.
적당히 얼굴이나 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길을 걷던 우리들은, 드라이주스의 영역이 가까워짐에 따라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평소대로라면 이 부근에서부터 드라이주스의 멤버가 어슬렁거리고 있거나 할 텐데, 아무도 없다.
그렇다기보다 사람 자체가 없다.
“텅텅 비었네.”
“그 녀석들의 집합소, 이동한 건가?”
“그런 말 들은 적 없는데…….”
왜인지 몹시도 불길한 예감이 든다.
우리들은 자연히 걷는 속도를 올리고, 서둘러서 집합소로 향했다.
집합소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간다. 역시 아무도 없다.
코우자쿠가 멈춰 서서, 초조하게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내 팔을 끌어당겼다.
“……어이.”
“왜 그, ……!”
코우자쿠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리고, 얼어붙는다.
……지워져있다.
벽에 그려져있던 드라이주스의 태그아트가……, 새까맣게 덧칠되었다.
“어, 째서…….”
설마……, 팀이 격파된 건가?
그렇지만, 누구에게? 어느 팀에게?
“아오바, 저거 봐.”
벽에 새로운 태그아트가 그려져있다. 드라이주스의 것이 아니다.
무기질적인 날개와, 천사의 고리 안에 갇힌 심장.
저 태그는…….
“모르핀……!?”
그런, 설마…….
드라이주스를 격파한 건 모르핀이라는 건가……!?
“‘신령의 유괴’……. 그런 터무니없는…….”
코우자쿠의 혼잣말에 심장이 날뛴다.
그렇다……, ‘신령의 유괴.’ 그런 것 따위 단순한 도시전설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어쩌면 ‘신령의 유괴’를 이용한 악질적인 장난일지도 모른다.
드라이주스는 리브 중에서도 가장 큰 팀이다.
그걸 기껍지 않게 여기는 녀석들도 있을 테고, 어디선가 원한을 샀을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모르핀에 죄를 덮어씌우려는 다른 팀의 범행이라든지…….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신령의 유괴’ 같은 것보다도 훨씬 더 현실적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기에는 정말로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건가?
“……윽.”
“어이! 누구 없는 거야! 어이!”
달리면서, 그 근처에까지 울려퍼지도록 큰 소리로 외친다.
그렇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제길……! 어떻게 된 거야……!
언제나 미즈키가 있었던 옆쪽의 골목으로 향한다. 분명 그쪽에 멤버들이 더 많이 모여 있곤 했었다.
“……!!”
그 골목으로 들어가서는……, 짐작은 했지만, 낙담한다.
그곳에는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뒷골목 안쪽에 그려져 있었던 제일 커다란 태그아트 역시 덧칠되어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저 태그 앞에 언제나 미즈키가 서서, 벽에 기대고 있어서…….
내가 가면, 웃으면서 맞아주었는데…….
소중한 것이 갈기갈기 찢겨진 듯한 기분으로, 나는 그 비참한 광경에서 눈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곧바로 시선을 되돌린다.
“아오바, 맞은편 쪽도 보고 왔지만 아무도 없어.”
코우자쿠가 골목 안으로 달려온다.
“여기도 그런가, 심한데.”
“……있지, 이거.”
“뭐야? ……! 이거……, 피인가?”
“역시, 그렇네.”
신발자국 따위가 그 위에 스쳐서 검은 빛을 띠고 있지만, 피가 사방에 흩어져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벽에도 발로 찬 자국이 남아있거나 쓰레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거나, 그런 식으로 싸움이 일어났던 흔적이 있다.
보면 볼수록, 내 안에서 어떤 가능성이 커져간다.
‘신령의 유괴.’ 모르핀의 소행.
리브가 싸움을 벌이는 건 늘 있는 일이지만, 보통은 기껏해야 서로 몸으로 치고받거나 태그에 낙서를 하는 정도로 끝난다.
지금 이 상황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아도 가벼운 싸움 레벨이 아니다.
상대 팀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냉혹한 방식이다. 철저한 악의마저 느껴지는 듯한…….
“………….”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지?
이 부근은 언제나 드라이주스의 녀석들이 있어서, 떠들썩했었다.
모두 사이가 좋았고, 외로움 따위는 잊게 해주는 곳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팀에 들어간 녀석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곳에 있으면 혼자가 아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녀석들이 잔뜩 있다.
설령 일시적인 것이라고 해도, 인연을 믿는 녀석들의 집 같은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 이런 꼴을 당하게 되다니.
“젠장, 역시 미즈키랑 연락이 안 돼.”
코일을 조작하던 코우자쿠가 혀를 찬다.
“어떻게 된 거야.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빌어먹을. 진짜로 모르핀의 짓인 건가?”
“미즈키…….”
너무나 뜻밖의 현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으니, 골목의 출입구에서 신발소리가 들려왔다.
“!”
“………….”
“야아, 누군가 했더니 아오바 씨였나요. 우연이네요.”
“얏호-, 아오바.”
“너희들…….”
골목으로 들어온 것은 바이러스와 트립이었다.
“왜 여기에?”
“이 부근은 저희들이 담당하고 있어요.”
“……야쿠자인가.”
코우자쿠가 두 사람을 노려보고, 몹시 못마땅하다는 듯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리브인 코우자쿠 입장에서는, 구 주민구가 다 자기들 것인 양 활보하고 다니는 야쿠자에게 좋은 인상이 들지는 않겠지.
“너희들 쌍둥이냐? 비슷하게 차려입고서는.”
“쌍둥이가 아니니까요.”
“쌍둥이가 아니라니까.”
“……너, 이런 녀석들이랑 어울리는 거야?”
“어울린다고 할까……. 서로 알게 되었을 때는 딱히 야쿠자도 아니었고. 코우자쿠가 섬에서 나갔을 때라고.”
“네, 아오바 씨하고는 나름대로 오래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맞아 맞아, 하는 일 따윈 관계없다고.”
“동업자 중에서는 횡포를 부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희들은 룰 위반은 저지르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상식의 범위에서 행동하고 있으니. 앞으로 잘 부탁해요.”
“야쿠자는 야쿠자일 텐데. 좋고 나쁜 것도 없다고. 한 번 타락하면 뼛속까지, 피 한 방울까지 물드는 법이니까 말야.”
코우자쿠의 말에 바이러스와 트립이 서로 얼굴을 마주본다.
나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왜인지 유달리 분노로 가득 찬 말투였기 때문이다.
코우자쿠는 그렇게까지 야쿠자를 싫어했던 건가…….
“그렇지만 저희들 입으로 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만, 이 섬에선 야쿠자도 경찰도 별반 차이가 없죠. 그렇지 않나요?”
“당신, 분명 어느 팀의 보스죠? 각별히 알고 지내는 경찰 쪽의 사람이 몇 명 있죠?”
“경찰 쪽의 모든 인간이 나쁜 건 아니니까 말야. 그 중에는 인간성이 좋은 녀석들도 있지.”
“그럼, 저희들도 그 안에 넣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간성 좋은 야쿠자로 말이죠.”
“하하.”
“………….”
“그런데, 드라이주스면 아오바 씨의 친구 분이 있는 팀이죠. 그 팀, 영역 이동이라도 한 건가요?”
“좀 전부터 아무도 안 보여-.”
“그게……, ……없어져버렸어.”
“없어졌다?”
“우리들도 지금 막 온 참이지만, 드라이주스의 태그가 전부 새카맣게 칠해지고, 대신에……, 모르핀의 태그가 그 위에 그려져 있어.”
“모르핀…….”
바이러스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듯이 입술에 손을 댄다.
“모르핀이라면, 그 상상속의 생물처럼 된 그거?”
“아아. 어쩌면 누군가가 모르핀의 탓으로 돌리려고, 이런 짓을 저지른 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잔인하네요. 팀 전원을 한 번에 해치우다니……. 꽤나 질이 나쁜 걸.”
“………….”
“이 부근, 너희들 담당이지? 뭔가 모르는 거야?”
“그렇네요. 저희들이 알고 있는 거라면…….”
“어젯밤에 순찰했을 때는 이렇지 않았어.”
“드라이주스 멤버 분들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말예요.”
“그거 몇 시쯤이야?”
“9시 정도 아닌가? 그 후에 당한 거 아냐?”
“그렇다곤 해도 팀 멤버를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유괴하다니……. 그 인구를 한 번에 데리고 간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요.”
“알고 있어. 그러니까…….”
이건 역시 모르핀에 의한 ‘신령의 유괴’인 것이 아닐까.
말을 입 밖에 낼 마음은 들지 않아서,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과연. 대충 상황은 파악했습니다. 만약 이쪽에서도 뭔가 알게 되면 연락하겠습니다.”
“부탁해.”
“그건 그렇고 최근엔 이런 종류의 뒤숭숭한 이야기가 늘어났네요. 아오바 씨도 조심하세요.”
“우리들한테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게 많아서 따라가질 못하고 있다는 게 현재 상황.”
“네 녀석들에게 있어선 리브 따위 심심풀이용 꼭두각시일 텐데. 뭘 해준다는 거지.”
코우자쿠가 도발적으로 말을 내뱉자, 바이러스가 재미있어하는 것처럼 가볍게 눈썹을 들어올렸다.
“저희들도 이 도시에 기생하고 있으니까요. 튼튼한 발판을 쌓아놓고 그 위에서 활동하는 것이 대전제입니다.”
“게다가 모르핀이든 뭐든 상관없습니다만, 멋대로 저희들의 영역을 망가뜨리는 건 평범하게 불쾌하니까. 말이죠.”
“칫.”
고개를 기울이고 싱긋 웃는 바이러스를 향해, 코우자쿠가 혀를 찬다.
“그럼. 저희들은 이 부근의 상황을 좀 더……, 응?”
“네 녀석들!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고, 경찰관들이 뛰어 들어왔다. 이 부근을 순회하고 있던 녀석들이겠지.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쏜다!”
경찰관들이 일제히 이쪽을 향해 총을 들었다.
“위험하네.”
“어라라, 오늘은 또 한층 더 소란스럽네요. 기운이 남아도네-.”
“여기선 후퇴할 수밖에 없지.”
“저희들 역시 저건 질색이니까요. 아오바 씨도 도망치세요.”
“알았어.”
“녀석들이 있는 곳까지는 전원 돌격. 그리고, 그 다음엔 나눠지는 느낌으로 잘 해줘. 신호 줄 테니까 뛰어.”
“하나, 둘……. 셋!”
트립의 신호를 듣고, 우리들은 단숨에 달리기 시작했다.
“너희들!”
경찰관들이 발포해온다. 그렇지만, 매일 단련하는 것을 게을리 하는 녀석들의 물러터진 총알은 우리들을 스치지도 못한다.
“이얍!”
“……핫.”
“우옷!? 너, 너희들!”
트립과 바이러스가 점프해서 몸을 부딪치자, 경찰관들이 도미노처럼 뒤로 픽픽 쓰러진다.
“그럼 아오바 씨, 또 봐요!”
“바이바이!”
“고마웠어!”
“간다 아오바!”
“너, 너희들……, 거기 서-!!”
바이러스와 트립은 오른쪽으로, 나와 코우자쿠는 왼쪽으로 전력 대쉬했다.
잠시 동안 뒤쪽에서 발포 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렸지만, ‘유키사기’에서 아오야기 대로로 나왔을 때는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하, ……하아, 하아.”
“하아……, 오늘은 재수 없는 날이네. 엉망진창이군.”
정말로……, 엉망진창이다.
숨을 가다듬고자 눈을 감으니, 눈꺼풀 안쪽으로 조금 전에 보았던 광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새카맣게 칠해진 드라이주스의 태그. 땅바닥에 튀어있었던 혈흔.
미즈키 일행은 어디로 간 거지?
무사한 것일까. 누구에게 당한 거지?
드라이주스에게 원한이 있는 팀의 범행인가, 아니면…….
역시……, 모르핀인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빌어먹을.”
“아오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선명한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어떤 이유가 있든 간에, 이런 짓이 용서될 리가 없다.
이런 잔인한 수법으로…….
“반드시, 범인이 누군지 찾아내겠어.”
“그래. 나도 팀 녀석들한테 뭔가 본 게 없는지 물어볼게.”
“부탁해.”
모르핀이건 뭐건, 반드시 범인이 있을 것이다.
그 녀석들을 붙잡아서, 만약 미즈키 일행이 무사하지 않다면……, 가만 두지 않는다.
절대로 용서 안 해…….
우와왕! ^q^!
+) 새벽에 올리면서 약간 실수가 있었네요. 클리어 & 노이즈 공통에서는 마지막 부분에 약간 지문이 더 있지만 여기서는 없답니다...^_T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 왜 우산을? ]
[ 마술사? ] → 선택
“너, 마술사야?”
“아뇨, 틀립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저는 클리어라고 합니다. 그 마술사라는 분은 누구신가요?”
“…………. 아니, 뭐 됐어. 신경 쓰지 마.”
“그럼 이만.”
비도 오지 않는데 우산을 쓰고서, 가스마스크는 턴을 빙글 돌고는 사라져갔다.
“…………, ……뭐였지.”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가스마스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게로, 돌아가자.”
뭐랄까……, 너구리나 여우 같은 것에 홀린 듯한 기분이다.
난 아무것도 못 봤어. ……응, 못 봤어.
그런 걸로 해두고, 나는 가게로 돌아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범인군이 허둥지둥 거리고 있었다.
‘청소……, 청소……?’
……그랬다.
가스마스크 탓에 이쪽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가게 안은 꼬맹이들이 날뛴 탓에 엉망진창이고…….
“아-, 아…….”
꼬맹이들에 가스마스크에……. 오늘은 정말이지 재수가 없는 날이다.
갑작스럽게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끼고, 나는 가게 안 이곳저곳에 널브러진 상품들을 느릿느릿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날의 일을 마치고 밤이 되어, 나는 미즈키에게 배달할 물건을 들고 가게를 나왔다.
마침 미즈키의 가게에서 주문이 들어와 있었던지라, 집에 가는 길에 물건도 전해줄 겸 미즈키의 얼굴도 보자는 생각이었다.
‘평범’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가면, 미즈키의 가게 ‘블랙니들(Black Needle)’이 있다.
본디는 타투를 새기는 스튜디오지만, 대합실에 바가 있어서 사람을 만나는 곳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타투는 리브가 팀의 태그아트를 새기는 것 외에도 캐주얼한 패션으로서 유행하고 있어서, 미즈키의 가게도 꽤나 번성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미즈키도 타투이스트니까 부탁하면 문신을 새겨준다. 나는 흥미가 없으니까 안 하지만.
해가 저물기 시작한 거리를 걸어, ‘블랙니들’ 부근까지 왔다.
이 근방은 드라이주스의 영역이다. 멤버들의 모습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미즈키랑 같이 있으면 팀의 멤버들과도 안면을 트게 되어서, 영역을 지나가도 딱히 누가 시비를 거는 일은 없다.
“아아, 아오바 씨.”
“오, 오랜만.”
“미즈키 씨한테 볼일이 있으신가요?”
“우리 가게에 주문이 들어왔어서. 전해주러 왔어.”
“미즈키 씨, 지금 팀 집합소에 있어요.”
“그래. 그럼 그쪽으로 가볼게.”
집합소는 여기에서 그리 멀지 않다. 나는 그쪽을 향해 가기로 했다.
드라이주스의 집합소는 몇 개의 골목길에 걸쳐져 있는 대규모의 장소다. 사람 수가 많으니까 자연히 면적이 넓어졌다.
각각의 골목에서 멤버들이 떼를 지어 모이는 가운데, 미즈키가 있는 장소는 늘 같은 곳으로 정해져 있다.
태그아트가 커다랗게 그려진 계단 앞에서, 미즈키는 다른 멤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의 존재를 눈치 챈 미즈키가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한다.
“매번 감사합니다~. ‘평범’ 택배입니다~.”
“아아, 부탁했던 물건인가. 땡큐.”
봉투를 건네고 코일로 수령증명을 보낸다. 미즈키에게서 확인 완료 답신을 받으면 배달 종료다.
“일부러 여기까지 와주고, 고마워. 너희 가게는 마이너한 파츠도 취급하니까 의지가 된다고.”
“점장님께 말해둘게.”
“이 다음은 이제 집으로 가는 거야?”
“아아.”
“수고가 많아. 지금부터 가게로 돌아갈 거니까, 뭐라도 좀 마시고 가라고.”
“그럼, 사양 않고.”
미즈키가 벽에서 떨어져 걷기 시작한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주변의 무리들이 그 옆을 지나가면서 미즈키에게 인사를 한다.
그 중에는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이는 녀석도 있어서, 미즈키가 약간 쓴웃음을 지었다.
‘블랙니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작은 간판이 걸린 검은 건물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산뜻한 템포의 음악이 맞아준다.
대합실을 겸한 바는 외관에서 상상되는 것보다도 넓다.
조금 어둑한 조명 가운데, 몇 명이 소파에 편하게 앉고서 잡지를 읽거나 소곤소곤 잡담을 하고 있다.
좌측에 접수처, 우측에 바 형태로 되어있는 카운터, 안쪽에 있는 문을 열면 시술로 이어지는 구성이다.
미즈키가 접수처의 나이 어린 아르바이트생에게 말을 건다. 그 사이, 나는 가게 안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왠지 오늘, 손님이 적네?”
아르바이트생과의 이야기를 마친 미즈키에게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묻자, 미즈키의 표정에 씁쓸한 빛이 떠올랐다.
“그렇네…….”
“무슨 일이야?”
“아니, 있잖아. 어제 이야기했었잖아? ‘신령의 유괴.’”
“아아.”
“그 탓도 있는 것 같아, 손님이 줄어든 거.”
“에? 다들 겁이 나서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게 된 건가?”
“아직 그 정도로까지 영향이 미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다운되었달까, 분위기가 그런 느낌.”
“과연.”
“그 후로, 또 정보가 들어와서 말야. 진짜인지 거짓말인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미즈키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귀를 가까이 대보라고 재촉한다. 나는 미즈키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댔다.
“팀을 납치하고 있는 거, 역시 모르핀의 짓이라는 거야.”
“그럴 리 없잖아. 그러니까 모르핀은…….”
“모르핀을 봤다는 녀석도 나온 것 같아.”
“어차피 관심 받고 싶은 바보가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말이겠지. 그런 걸 믿는 거야?”
“그러니까 정말인지 거짓말인지는 모른다고 했잖아. 나도 남한테 들었을 뿐이고.”
“어쨌든 지금, 리브 팀은 습격을 받을 위험이 있어서 다들 살기가 장난이 아니라고. 뭐, 그래도.”
거기서 미즈키가 도전적으로 입 꼬리를 올린다.
“모르핀이네 어쩌네 해도 우리랑은 관계없지만 말야. 적도 아니고.”
“그렇겠지.”
미즈키의 말에 웃음으로 대답을 하며, 나는 어렴풋한 불안을 느꼈다.
최근 미즈키는 리브 일에 대해 조금 지나치게 열을 쏟고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쓰러지거나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참, 뭐 좀 마실래? 저쪽으로 가자고.”
미즈키와 함께 바 쪽으로 가려다가, 접수처 옆에 장식된 타투의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소중한 그림이라도 되는 듯 고이 액자에 넣어져있다.
“이거, 전에도 있었나?”
“아아 그거. 아니, 내가 존경하는 타투이스트에게 받은 거야. 멋있지.”
“신의 솜씨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가게 같은 걸 운영하지 않아서 말야. 아는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면 그 사람한테서 문신을 새길 수 없지.”
“단골손님이 아니면 사양한다는 건가.”
“맞아 맞아. 얼마 전에 우연히 이 가게로 와서, 그때 받은 거야. 뭐랄까 역시 심상치 않은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람이었지.”
미즈키는 정말로 기뻐보였다.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대단하다면 나도 한 번 보고 싶네.”
“넌 문신 안 새기잖아.”
“응.”
“그럼 안 돼.”
“에에~.”
“어떻게 해서든 만나고 싶으시다면 100만 엔이 되겠습니다.”
“비싸! 바가지잖아.”
“하하.”
서로 농담을 던지며 웃고 있으니, 코일의 착신음이 울렸다.
“……응?”
‘델리버리 웍스’로부터의 전화다.
“여보세요?”
“아, 다행이다 받았다! 아오바쨩!?”
“네.”
“나야 나! 요시에!”
“무슨 일이세요?”
“정말이지, 큰일! 큰일이야! 있지, 내 말을 침착하게 들어줘.”
“……네.”
“타에 씨가……!”
“! 할머니가!?”
할머니가 쓰러졌다.
요시에 씨의 연락을 받은 나는 미즈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델리버리 웍스’를 향해 곧장 뛰쳐나갔다.
할머니는 처방한 약을 건네주러 환자 분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쓰러져서, 마침 그 근처에 있었던 ‘델리버리 웍스’로 운반되었던 것 같다.
어쨌든……. 전속력으로 달렸다.
심장이 부서질 듯이 소리를 내고 숨이 차오른다.
온몸이 극도로 긴장되어서, 손끝과 발끝이 따끔따끔거린다.
할머니는 전에도 과로로 쓰러진 적이 있다.
원인은……, 나다. 내가 걱정만 끼쳤던 탓이다.
그때, 진심으로 후회했다.
만약 할머니가 없어지면 어떨지 생각하니,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무서웠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다. 이제, 두 번 다시.
“……큭, ……, ……!”
빨리, 빨리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할머니……!
“정말이지 너무 호들갑을 떨어댄다니까, 너희들은.”
……입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델리버리 웍스’로 뛰어 들어가서 보니, 할머니는 상체를 뒤로 크게 젖히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할머니는 확실히 쓰러졌었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었다……, 즉 요통이었다.
연락을 주었던 요시에 씨는 할머니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 같다.
요시에 씨는 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미안해~’라고 말하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사과해왔다.
솔직히, 맥이 빠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큰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할머니가 자기 힘으로 걷는 것은 무리여서 내가 할머니를 업은 채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정말이지 너무 호들갑을 떨어댄다니까 너희들은.”
“………….”
할머니가 내 등에서 방금 전과 똑같은 말을 투덜거린다.
나는 진동이 할머니에게 미치지 않도록 천천히 집을 향해서 걸었다.
“어쩔 수 없잖아. 다들 걱정이 되는 거야, 할머니가. 나도 그래.”
“나는 아직 팔팔하다고.”
“그건 잘 알고 있지만 말야.”
뒤에서는 렌이 타박타박 따라오고 있다.
“좀 움직이지 못하게 된 걸 가지고 바로 할머니 죽네! 이런 취급이나 해대고.”
“아야얏. 차지 말라니까. 어쨌든 내일은 병원에 가는 거야? 응?”
할머니가 고령자의 체면도 없이 날뛰어서, 떨어질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것보다……. 할머니, 가볍네.
원래도 몸이 커다란 이미지는 아니지만, 이렇게 작았었나?
게다가 나, 할머니를 업는 건 처음이다.
“옛날에는 할머니가 자주 날 업어줬었지.”
“응?”
“아니, 옛날 일. 어쩐지 기억이 나서.”
“……흥. 너는 노상 혼자서 어디로 나가버렸으니까.”
“혼자서?”
“그래. 좀만 눈을 떼면 눈 깜짝할 새에 없어져버리고.”
“그랬나. 전혀 기억 안 나.”
“외로웠던 거야.”
“외로워? 왜?”
“네가 혼자서 밖으로 나돌게 된 건, 네 부모가 종적을 감추고 나서부터였으니까.”
“아아…….”
그런가.
흐릿한 윤곽으로밖에는 기억나지 않는, 내 부모님.
그렇지만, 할머니가 날 업어주던 때의 일은 기억하고 있다.
따뜻하고 할머니의 냄새가 나서, 안심되었다.
“뭐 너도 아직 어렸으니까 말이지, 무리도 아니지. 그게 지금은 바보 같이 크기만 커져가지고는.”
“그건 뭐. 이 나이가 돼서도 어릴 때랑 변함이 없으면 역시 그렇잖아.”
“누가 그런 얘기를 하고 있대!”
“할머니, 예전처럼 나 업을 수 있어? 팔팔할 때 도전해 볼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날 죽일 셈이냐?”
“농담이라니까.”
“흥.”
“……할머니.”
“뭐야.”
“가볍네.”
“시끄럽대도!”
“아얏!”
할머니가 있는 힘껏 내 머리를 때렸다.
그렇지만 왜인지 기쁜 마음이 솟아올라서, 나는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가 무사해서 정말로 다행이다.
이런 식으로 내게 주먹을 행사하는 소란스러움이 없어질 걸 생각하면 쓸쓸하다.
등으로 전해지는 할머니의 온도를 느끼며, 나는 어두워져가는 길을 조용히 걸어갔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할머니를 업고서 근처의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오늘 아르바이트는 만약을 위해 쉬자는 생각에, 하가 씨에게 연락을 했다.
병원이라고는 해도 이곳은 구 주민구다. 설비는 낡아빠지고 볼품없는데다, 의사의 수도 적어서 언제나 혼잡을 이루고 있다.
여기저기서 기계가 덜거덕거리고 빈말로도 위생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병원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다.
할머니에 대해서도 전부터 잘 알고 있어서, 연락을 하니 바로 오라는 말을 해줬다.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다며 할머니는 언제나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했지만, 오늘은 얌전히 진찰을 받았다.
어쩌면 아픈 것을 오기로 참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허리는 그렇게 심하게 안 좋은 건 아니니 자택 요양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해서, 나는 진찰을 끝낸 할머니를 업고 집으로 돌아갔다.
할머니를 이부자리에 눕히고 한숨 돌리고 있으니, 이제 나는 잠만 자면 되니까 냉큼 아르바이트하러 가! 라는 호통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여전히 걱정은 들었지만, 할머니는 자기가 한 번 말을 꺼내면 남의 말은 듣지 않는다.
하가 씨에게 전화로 상담하니, 일단 지금 와서 일찍 돌아가면 된다고 말해주셔서, 나는 가게에 가기로 했다.
‘[새 메일] (제목 없음) / 코우자쿠’
‘최신형 올메이트가 드디어 / ***’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저번에 / 코우자쿠’
‘저녁밥 / 할머니’
‘잘 지내? / 미즈키’
어쩐지 진정되지 않는 마음으로 가게를 보고 있으니, 메일이 왔다.
코우자쿠로부터다.
-
코우자쿠 / (제목 없음)
미즈키랑 만났는데, 왠지 낌새가 이상했다고. 말을 걸어도 멍하니 있고 반응이 돌아오질 않아. 만약 고민이라도 있는 거라면 나보다 아오바 쪽이 더 물어보기 쉬울 것 같아.
시간이 있으면 연락이라도 좀 해줘.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러 갈게.
-
“미즈키…….”
코우자쿠가 이런 메일을 보낼 정도니, 무척이나 낌새가 이상했던 것이겠지.
그 녀석, 역시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카운터에서 나와 화장실 쪽으로 가서, 미즈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미즈키?”
“……아오바인가. 무슨 일이야?”
다행이다. 전화를 받았다. 일단 한숨 놓았다.
“아, 아니, 딱히 일이 있는 건 아닌데, 왠지 이야기가 하고 싶어져서.”
“뭐야, 어제도 만났는데. 이상한 녀석이네.”
“응~, 아니. 잘 있나 싶어서.”
“물론이지, 왜?”
“어제 만났을 때, 좀 기운이 없었던 것 같아서.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걱정이 돼서 전화해준 거야? 고마워. 그치만 괜찮아.”
“정말로?”
“아아.”
“그래. 그럼 다음에 또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그래. 그럼 이만.”
“………….”
통화를 마치고, 나는 카운터로 돌아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미즈키, 역시 목소리에 패기가 없었지.
괜찮다고 말하니 그렇게 깊게는 물어보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쓰러진 것도 있고, 괜히 더 걱정이 쌓인다.
단순한 기우로 끝나기를…….
미즈키와 할머니가 신경 쓰여서 일에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는 채로, 나는 오후의 시간을 보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도착해, 나는 조금 안절부절못하면서 현관문을 열고자 했다.
할머니, 얌전히 자고 있는 걸까.
……그러나, 도중에 손을 멈췄다.
뭔가 이상하다.
“어라?”
열쇠를 꽂는 감촉이 뭔가 다르다. ……혹시.
“……열렸다.”
현관문에는 자물쇠가 잠겨져있지 않았다.
나, 또 문을 안 잠그고 외출하고 만 건가…….
“너무 위험하잖아, 안에 할머니가 있는데……. 무슨 일이 있으면 어쩔 거냐고.”
이 부근은 지역 주민들 간의 유대가 강하지만, 치안이 나빠서 도둑이 드는 일도 꽤 많다.
스스로의 건망증에 진심으로 혐오를 느끼며,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 귀를 기울였다.
……딱히 사람이 있는 기척은 없는 것 같다.
신발을 벗고 복도로 올라가, 곧바로 할머니의 방으로 간다.
조용히 문을 열고 안을 살펴보니, 이불에 파묻힌 듯이 잠을 자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다…….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나는 복도로 돌아갔다.
“……응?”
계단을 올라가려 하다가, 발을 멈춘다.
뭔가……, 묘한 느낌이 든다.
집안은 할머니가 자고 있어 조용한데다, 딱히 이상한 점은 없다.
기분 탓인가?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계단을 올라가 내 방의 문을 연다.
……거기서 나는 방금 전의 위화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뭐, 야, 이거…….”
자랑은 아니지만, 내 방은 결코 깨끗하지 않다.
책이나 잡지가 바닥에 대충 쌓여있고, 정리하기 귀찮아서 꺼낸 채로 내버려둔 것도 잔뜩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어지른 기억은 없다.
방 안은 폭풍이 몰아쳤던 것처럼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말 그대로 발을 디딜 틈이 없다. 방 안에 있는 물건이 전부 밖으로 나와 있고, 테이블도 뒤집혀져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한층 더 강한 위화감을 내뿜는 것이 있었다.
……컴퓨터의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낯선 사람이 뒷모습이 보인다. 그것도 보란 듯이 당당하게.
이 상황에서 떠오르는 것은, 그것밖엔 없다.
방금 전에 그에 대해 걱정을 했던, 바로 그것이다.
“이 도둑-!”
“남의 방에서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컴퓨터 앞의 인영은, 지금 막 내 존재를 눈치 챈 것처럼 느릿느릿 고개를 들었다.
전혀 모르는, 본 적 없는 얼굴이다. 나랑 비슷한 또래일까.
“어서 오라고.”
“하……!? 누구야, 너. 왜 내 방에…….”
“근데 말야.”
그 녀석은 분노에 떠는 나를 무시하고, 중지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어이! 맘대로 만지지 마!”
“이 안의 데이터, 뭔지 전혀 모르겠는데. 어떻게 돼있는 거야 이거.”
“여기에 들어있는 올메이트 개조 프로그램도 복잡하고. 너 대체 뭐지.”
“알까보냐! 됐으니까 나가라고!”
“………….”
남자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는 일어선다.
“너 말야, 날 모르는 거야?”
“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몰라. 사람을 잘못 본 거겠지.”
“………….”
남자가 내 눈을 응시하고, 천천히 입을 연다.
“금번에는, 찾아와주셔서 지극히 영광.”
“그러면, 즐거운 게임을 시작하지.”
“……!?”
……이 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뭐지? 어디서지. 굉장히 불쾌한 느낌이…….
“이래도 몰라?”
남자가 바지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치켜든다.
토끼의 머리만 있는 자그마한……, 키홀더다.
“……!”
이 녀석…….
내 반응에 만족한 것인지, 남자는 키홀더를 그 근처에 휙 던지고 나를 보았다.
“연출로서는 꽤나 재밌었겠지. 수신인이 잘못된 택배라든지.”
“! 너, 그때 무차별 살인 라임을 걸었던 녀석인가. 게다가 택배라니…….”
“우리 가게에 주문을 넣은 것도 너냐.”
“아아. 이래저래 조사해보니 네가 그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네가 찾아와줬으면 해서 말이지.”
“딱히 돈을 안 낸 것도 아니고, 그쪽 가게로서는 특별히 손해를 보지도 않았겠지.”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전전긍긍하던 하가 씨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것보다 너 말야. 전에도 그랬지만……, 나랑 라임에서 싸웠을 때, 뭘 한 거지.”
“무슨 말이야.”
“시치미 떼지 마. 어떻게 나한테 이겼는지 묻고 있다.”
“……이겼다고?”
그 무차별 살인 라임 때, 나는 이 녀석에게 이겼던 건가? 기억에 없다…….
“묵비권 행사인가, 말하라고.”
“아냐. ……기억이 안 나.”
“하?”
“그때 라임에서, 마지막엔 결국 어떻게 된 건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
남자는 미간을 약간 좁히고, 곧바로 정색을 했다.
“그런 식으로, 도망치는군.”
“……윽!”
갑자기 멱살을 붙잡혀 벽으로 밀쳐진다.
이 녀석, 보기에 비해서 힘이 세다……!
“그렇다면 무력행사다. 너한테는 이러는 편이 먹힐 것 같고 말이지.”
“……윽, 이거 놔.”
“그런데 말야, 정말로 기억 못하는 건가.”
“나는 모른다고!”
“………….”
남자가 무언가 캐내려는 듯이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너, 한 번 더 라임에서 나랑 싸워라.”
“하? 라임 같은 거, 모른다니까, ……윽.”
더욱더 강한 힘으로 벽에 밀어붙여진다.
“또 그 소린가?”
“그렇다면 네 소중한 것을 부수겠다.”
“!”
“네가 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정확하게 말야.”
남자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컴퓨터 쪽을 본다.
이 녀석이 말하고 있는 건, 분명……, 렌이다.
협박이 아니다. 내가 응하지 않으면 이 녀석은 정말로 그럴 작정이다.
그런 위태로운 공기가 피부를 찌르는 듯이 전해져온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 녀석과 라임에서 싸울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
게다가, 이 녀석의 영문을 알 수 없는 행패에 쓸쓸 뚜껑이 열릴 것만 같았다.
[ 반격한다 ] → 선택
[ 애송이가! ]
“……, 작작 좀 하라고!”
나는 남자를 차서 날려버릴 생각으로 있는 힘껏 한쪽 무릎을 내질렀다.
하지만, 무리한 자세에서의 공격은 결국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고, 한쪽 손으로 간단하게 가드 되고 말았다.
“……윽!”
남자의 손에 저지된 다리가 끌어당겨져서, 나는 내 몸이 짓눌려져있던 벽에서 미끄러지듯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파…….”
정면으로 바닥에 부딪친 등에 아픔이 번지는 것을 참고 있자, 남자가 내 배 위로 휙 올라탔다.
“어이! 뭐 하는 거야!”
“시끄러워.”
남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내 팔을 붙잡고, 갑작스럽게 비틀어댔다.
“아야야야!”
“팔 하나 정도 없어도 라임은 할 수 있어.”
“윽!”
이 녀석……!
“이 팔을 부러뜨리고 싶지 않다면 싸워라.”
비틀려서 심하게 휘어진 팔의 관절이 삐걱거린다.
라임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렌이 해코지를 당하는 것도 곤란하다.
어떻게 하면 좋냐고……!
[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 → 선택
[ 지붕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
……방금, 계단 쪽에서 소리가 났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 윽……!”
“아오바!”
“!?”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코우자쿠가 뛰어 들어왔다.
“코우자쿠! 왜 네가…….”
“미즈키 일로 얘기하러 간다고 메일 보냈잖아. 그보다……, 너 이 자식, 아오바한테서 떨어져!”
코우자쿠가 낮게 소리를 치고 남자에게 덤벼든다.
“칫.”
남자가 코우자쿠와 함께 바닥으로 넘어지고, 그대로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그 덕분에 팔이 자유로워지긴 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너희들 그만해!”
“……큭!”
“이 자식!”
“윽, …….”
“……크윽!”
“어이!”
뒤얽힌 채로 데굴데굴 구르며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다.
코우자쿠의 공격을 피한 남자가 빈틈을 파고들어 코우자쿠의 어깨를 붙잡고, 발로 배를 차려고 한다.
그것을 팔로 막아낸 코우자쿠가 받은 걸 되돌려주겠다는 듯이 남자에게 박치기를 먹인다.
“큭!!”
그것에는 과연 남자의 움직임도 둔해졌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코우자쿠의 배를 차려고 했다.
“……윽, 이 녀석!”
코우자쿠가 아슬아슬하게 몸을 뒤로 무르고, 남자의 무릎이 기모노의 자락을 스치는 것으로 끝난다.
남자가 좀처럼 얌전해지지 않는 것에 인내심이 폭발한 것인지, 코우자쿠가 진심이 서린 눈빛으로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때, 창문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전원의 의식이 그쪽으로 향한다.
“마아아아스으으으터어어어어.”
………….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엣!?”
“시끄럽다고 너희들! 작작 좀 해!!!”
난폭하게 문이 열리고, 할머니의 호통이 온 방 안에 울려퍼졌다.
코우자쿠도 남자도 가스마스크도 나도 움직임을 멈추고, 병아리처럼 할머니 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너희들……!”
할머니는 쪼글쪼글한 피부 위로 엄청나게 굵은 혈관을 드러내고, 분노에 불타오르는 눈으로 우리들을 둘러보았다.
“전원 아래로 내려와! 지금 당장!”
“………….”
“………….”
“아야…….”
할머니의 말대로, 1층으로 내려간 우리들은 말없이 식탁에 모여있었다.
머리가 아프다. ……할머니한테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원이.
우리들은 싸움질을 하면 잘잘못의 여부를 떠나서 다 응징을 받아야한다며 용서 없이 두들겨 맞고, 저마다 머리에 커다란 혹을 달았다.
불법침입남까지 할머니의 주먹에 맞는 것을 보았을 때는 반격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당황했지만, 남자는 언짢은 심기를 그대로 내보이면서도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째서지? 상대방이 약한 노인이라 그런 건가? 아니 안 약한가…….
애당초 무엇 때문에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 할머니가 물어보아서, 나는 또 현관문 잠그는 걸 잊어버린 것을 자백했다.
그랬더니 혹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현관문 잠그는 거 잊지 말자…….
“설마 저까지 공범 취급을 받을 줄은.”
그러고 보니 이 가스마스크, 분명 전에 클리어라고 이름을 댔던 것 같다.
불법침입남이랑 똑같이 수상쩍은 존재다…….
“아오바, 잠깐 이리 와!”
“예 예,”
부엌에 있는 할머니에게 호출당해, 나는 머리의 혹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부터 무언가를 튀기는 듯한 소리와 달콤한 냄새가 감돌고 있다.
할머니의 옆을 들여다보니, 갓 튀긴 도넛이 키친타월을 깐 바구니에 가득 담겨있었다.
역시 이걸 만들었던 건가.
“가지고 가라. 음료수는 전부 차면 되겠지.”
“네 네. 아, 맞다 할머니.”
“뭐야.”
“벌써 일어나도 괜찮은 거야? 허리는?”
“보면 알잖냐. 쓸데없는 거 묻지 말고 얼른 가라고.”
할머니에게 내쫓겨, 나는 도넛이 든 바구니를 테이블로 날랐다. 차를 따른 찻잔도 나르고서는 자리로 돌아온다.
잠시 후 할머니도 자리에 앉았다.
“인간은, 배가 부르면 자연히 화도 가라앉는 법이다. 냉큼 먹어치워라.”
“역시 만들고 있었던 건 이건가. 냄새로 알았다고. 타에 씨의 도넛은 격이 다르다니까.”
“됐으니까 빨리 먹어라.”
할머니의 도넛 맛을 잘 알고 있는 코우자쿠가 재빨리 바구니로 손을 뻗는다.
남자와 가스마스크는 뭔가 신기한 물건이라도 보는 듯이 도넛을 바라보고 있다.
“먹을 거면 먹고, 안 먹을 거면 안 먹는다고 확실히 하라고.”
가스마스크는 마스크를 벗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데다, 남자는 애당초 먹을 것 같지가 않다.
라고 생각했더니, 의외로 남자가 도넛을 손에 들었다. 부루퉁한 얼굴로 우물우물 먹기 시작한다.
“달아.”
“그야 그렇겠지. 원래 이런 음식이야.”
“그렇다고 해도 달아.”
“무리해서 안 먹어도 된다고!”
“………….”
할머니가 언짢은 듯이 콧방귀를 뀐다. 남자는 계속해서 도넛을 베어 먹는다.
이 녀석……,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읽을 수가 없다니까.
시선을 가스마스크……, 클리어에게로 옮기니, 이쪽은 전혀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안 먹어? 맛있어, 할머니가 만든 도넛.”
“먹을 거예요.”
“얼른 먹지?”
“네, 먹겠습니다.”
클리어는 꿈쩍 않고 가만히 있다.
마스크를 벗지 않으면 먹을 수 없겠지만, 벗는 걸까나?
약간 기대하면서, 나는 내 차를 조금 마시고는 다시 클리어를 보았다.
“……어라?”
바구니에서 클리어 쪽의 도넛 하나가 사라졌다.
게다가……, 마스크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너……, 혹시, 지금 먹은 거야?”
“네 먹었습니다. 맛있습니다.”
“…………, 신기의 경지잖아.”
가스마스크를 쓴 채로 먹은 건가? 어떻게?
……뭐, 그 부분은 파고들지 말자.
어쨌든 나도 도넛을 손에 들고 베어 먹는다.
할머니의 도넛은 식어도 맛있지만, 갓 만들어진 것은 따끈따끈하게 은은한 단맛이 서서히 번진다.
내가 도넛을 맛보고 있으니, 먼저 다 먹은 코우자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로 나가기 직전에 이쪽을 돌아보고, 나를 향해서 이리 와보라고 손짓을 한다.
나?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니, 코우자쿠가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나는 먹다 만 도넛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코우자쿠와 복도로 나왔다.
“……후우. 왠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일이 돼버렸네.”
거실의 기묘한 공간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복도로 나와서 조금 마음이 편해진 것인지, 코우자쿠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그렇네…….”
“그건 그렇고, 미즈키 말이다. 연락 해봤어? 아니면 만나러 갔다든가.”
“아아. 전화했어.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역시 조금 기운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래…….”
“미즈키한테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아니 말야, 미즈키가 이상하다고 너한테 메일 보냈었잖아. 그때, 우리 팀의 녀석들이랑 드라이주스의 녀석들 사이에 좀 실랑이가 일었었어.”
“그 자리에 미즈키도 있었는데 말이지. 그 녀석, 평소 같으면 그런 경우에는 반드시 중재에 들어가잖아?”
“그런데, 왠지 멍하니 넋이 빠진 느낌으로, 싸움도 보기만 할 뿐 말리려고 하질 않는 거야. 결국, 내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지만.”
“아무래도 미즈키의 낌새가 이상한 것 같아서, 괜찮냐고 말을 걸었지. 그랬더니, 내버려두라고! 라면서 나를 노려보는 거야.”
“미즈키가?”
“아아. 그 녀석 답지 않달까,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얼굴을 했었지.”
“………….”
“아오바, 짐작 가는 거 없는 거야? 그 녀석이 최근 고민했던 거라든지.”
“……요전에, 미즈키의 가게에 갔을 때 ‘신령의 유괴’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아아. 그 리브 팀이 통째로 사라진다는 그건가.”
“그걸 꽤나 신경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
“확실히 최근에 ‘신령의 유괴’를 당한 팀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모르핀! 모르핀!’
“!”
“아!?”
갑자기 새된 목소리가 울려서, 나도 코우자쿠도 깜짝 놀란다.
등 부근에서 무언가가 꿈지럭대는 느낌이 들더니, 그것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거……, 그 녀석의!”
바닥에 떨어진 것은, 그 토끼 머리의 남자가 허리에 차고 있었던 큐브다. 내 자켓 후드에 들어가 있었던 건가……!
큐브가 통통 튀어서 거실 쪽으로 돌아간다.
“저 녀석……!”
“……윽.”
코우자쿠가 큐브의 뒤를 쫓아 거실로 돌아간다.
“어이 망할 애송이. 지금 내 얘기를 엿들었지.”
“딱히 누가 들으면 곤란해질 만한 내용도 아니었잖아.”
“너…….”
“‘신령의 유괴’인지 뭔지. 리브 따위 요즘에는 유행하지도 않고, 어쨌든 들끓을 만한 이벤트를 벌여두자는 식인 거 아닌가?”
“뭐라고?”
코우자쿠의 목소리가 명백하게 노기를 띤다.
“어이, 농담으로라도 그딴 소리 지껄이는 거 아냐. 실제로 돌아오지 않는 녀석들도 있다고.”
“몰라, 그런 거. 겁나면 리브 때려치우면 될 뿐인 이야기 아닌가.”
“이 녀석…….”
코우자쿠가 분노를 드러내고, 남자도 한층 더 냉랭하게 코우자쿠를 마주본다.
“너, 이름은 뭐냐.”
“먼저 이름을 대는 게 예의잖아.”
“너 같은 녀석한테 예의고 나발이고 있을까보냐.”
“그럼 묻지 마.”
“잠깐 기다려. 너무 험악하게 굴지 말라니까들. 이쪽은 코우자쿠. 너는?”
“……노이즈.”
[ 노이즈! ]
오른손잡이
키: 179cm
혈액형: B형
생일: 6월 13일
별자리: 쌍둥이자리
올메이트: 모조토끼
팀: 러프래빗(Ruff Rabbit)
“너 같은 녀석은 주는 것 없이 맘에 안 든다고.”
“별로 네 마음에 들려는 생각 따위 없어.”
“이 녀석…….”
“거기까지 해라.”
그때까지 말없이 있었던 할머니가 두 사람의 신경전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싸울 거면 밖에 나가서 하고 와라. 시끄러워서 살 수가 있어야지.”
“……미안해, 타에 씨.”
“………….”
미안한 듯이 사과를 하는 코우자쿠를 한 번 흘낏 보고서, 노이즈가 말없이 일어선다.
“어이, 어디 가는 거야.”
“돌아간다.”
노이즈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거실에서 나가버렸다.
“너희들도 먹을 거 다 먹었으면 돌아가라.”
할머니의 목소리에 클리어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했습니다. 그럼 마스터, 안녕히 계세요.”
“아, 잠깐 기다려.”
거실에서 나가는 클리어의 뒤를 쫓아 복도로 나온다.
“네, 왜 그러시죠?”
“또 만날지 어쩔지는 모른다고 해도……. 만약 다음에 또 올 일이 있으면, 그때는 평범하게 들어오라고.”
“평범이라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거나 베란다로 들어오거나 이런 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게 현관으로 들어오라는 얘기야.”
“하늘이랑 베란다는 왜 안 되는 겁니까?”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것보다 깜짝 놀란다고. 심장에 안 좋아.”
“심장에 안 좋다……. 과연. 알겠습니다.”
클리어가 예! 하고 손을 올리고, 그 손을 자신의 가슴에 댄다.
“여기에 있는 하트를 말하시는 거지요.”
“아아……, 뭐 그렇지만…….”
“마스터와 함께 있으면 좋은 공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이만.”
“오우…….”
한 번 더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고, 클리어는 현관에서 나갔다.
“뭐야, 저 가스마스크…….”
거실에서 복도로 나온 코우자쿠가 혼잣말을 내뱉는다.
“나도 잘 모르겠어…….”
“아는 사이 아니었어?”
“아는 사이, 랄까……. 아니라고 생각해. 역시 잘 모르겠어.”
“어이어이, 말을 확실하게 해달라고.”
코우자쿠가 맥 빠진 얼굴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겸연쩍은 듯이 자신의 목덜미를 한쪽 손으로 문질렀다.
“좀 전엔 미안했어. 그만 열이 올라버려서. 타에 씨한테도 꼭 전해줘.”
“아까도 사과했고, 괜찮을 거야.”
“그리고 네 방에서 날뛴 것도……, 미안했어.”
“아아, 뭐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는 거고. 네가 그렇게까지 화내는 건 오랜만에 봤지만.”
“나, 참을 수가 없다고. 저런 꺾일 줄 모르는 듯한 녀석.”
코우자쿠는 질린다는 듯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것보다 지금 생각난 건데……. 그 녀석, 라임 팀에 들어가 있을 거야.”
“라임 팀?”
“아아. 분명 ‘러프래빗’이라는 이름이었어. 전에 우리 멤버가 그쪽 팀 멤버랑 싸움이 붙어서, 그때 저 녀석을 봤던 기억이 있어.”
“저 녀석도 내가 리브 하고 있는 걸 알고 있는 것 같고, 아마 그럴 거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짜증이 솟구치는군.”
“라임에도 팀 같은 게 있었네. 몰랐어.”
“팀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인 것 같지만 말야. 그렇다곤 해도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 공모하고 있을 뿐인 것 같다고. 정말 따분한 녀석들이지.”
리브는 팀의 동료는 곧 가족과 같다는 식의 생각을 지니고 있는 녀석들이 많으니, 라임은 그와는 다르다는 이야기겠지.
무미건조하고 효율적. 노이즈를 보고 있으면 그게 어떤 건지 잘 알 수 있다.
“뭐 저 녀석은 그렇다 쳐도, 미즈키는 나도 서포트할 수 있게끔 해둘게. 너도 뭘 좀 알게 되면 연락해줘.”
“아아.”
“그럼 이만.”
코우자쿠는 한쪽 손을 올리고, 현관에서 나갔다.
“……후우.”
코우자쿠의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하고서, 나는 약간 탈력감이 느껴지는 상태로 내 방으로 돌아갔다.
한꺼번에 이런저런 일이 일어난 탓인지, 피곤했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라임을 걸어왔던 게 노이즈였다는 것, 코우자쿠에게 말할 기회를 놓쳤네…….
그렇지만, 그 이야기를 하면 코우자쿠는 그때야말로 노이즈에게 싸움을 걸겠지.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내 방의 문을 열고는……. 탈력감이 증가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방 안이 엉망진창이다…….
“제길…….”
왠지 요즘 들어 이런 일들 뿐이다. 뻔뻔스러운 노이즈의 태도를 떠올리고는 화가 치민다.
일단 바닥에 떨어져있는 것들만 대충 정리를 하고, 침대에 드러눕는다.
나머지는 내일이다, 내일. 오늘은 이미 지쳤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드디어! ^q^!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 뿌리친다 ]
[ 주저한다 ] → 선택
……그만해.
피하려고 하다가 반응이 늦어지고 만다.
“……윽.”
싫다고, 만지지 마……!
반사적으로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자 했던 때였다.
“너무하네. 내가 옆에 있는데도, 다른 남자한테 추파를 던지는 거야?”
코우자쿠의 커다란 손이 살며시 여자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뺨에 가져다댔다. 여자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진다.
“이제 나는 싫증난 거야?”
“어, 어머, 그런 게…….”
“그래! 코우자쿠 씨 앞에서, 너무해! 그보다 부러워 죽겠는데요!“
“미안해요, 그럴 생각은…….”
“사과하지 마. 딱히 화가 난 건 아냐.”
코우자쿠가 미소를 지으며 여자의 손을 천천히 놓는다.
나는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며, 코우자쿠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지금……, 날 도와준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이 머리카락을 만지는 걸 무엇보다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이런 점은, 정말 당해낼 수가 없다니까…….
“………….”
내 시선을 눈치 챈 코우자쿠가 미소를 짓는다.
“왜, 무슨 일이야. 멋진 남자라서 홀딱 반했나?”
“뚫린 입이라고 말은. 바보가.”
“잠깐! 코우자쿠 씨한테 바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농담을 지껄이고, 나도 웃음을 짓는 것으로 코우자쿠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코우자쿠로부터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윙크가 돌아왔다.
이런 건 좀……, 메슥거린단 말이지.
“그럼, 이제 갈 테니까.”
“오우. 조심해서 가라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코우자쿠와 헤어지고는, 나는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배달 목적지는 이 길을 왼쪽으로 돌아, 똑바로 나아간 곳이다.
모퉁이를 돌려고 하니, 길가에 남자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고 있지만, 내용은 잘 알 수 없다.
최근, 이런 녀석을 길거리에서 자주 본다.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이런 식으로 벽을 향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한다.
원래도 그런 녀석들은 있었지만, 갑자기 수가 늘어난 느낌이 든다.
뭐, 나한테 접근하지만 않으면 더 바랄 건 없다.
나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는 남자의 옆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이 부근의 골목은 조금 전에 있었던 곳보다도 길이 좁다. 햇볕도 들지 않으니 골목 전체가 눅눅하다.
거기다 음식점이 많아서, 구수한 냄새와 연기가 끊임없이 감돌고 있다.
“왠지 급속도로 배가 고파졌어.”
‘이대로 방치하면 약 한 시간 후에는 위산과다로 인한 위의 통증이 일어날 거야.’
“뭐야 그거. 내 위장, 상한 거야?”
‘어제의 식사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수면 부족의 영향도 다소 있어.’
“아아, 요시에 씨의…….”
짐작이 가는 것은 배달 일로 운반책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 생크림 듬뿍듬뿍 케이크가…….
“……응?”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발을 멈춘다.
방금, 누군가가 이쪽을 가만히 보고 있었던 것 같은…….
그렇지만, 딱히 수상한 녀석은 눈에 띄지 않는다.
……기분 탓일까.
‘! 아오바!’
“에? ……윽!?”
돌연, 덜컹 하고 계단을 헛디딘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에 비치는 것의 움직임이 뚝 그치고, 그 직후에 엄청난 속도로 내 발치로 흘러간다.
“앗…….”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날카로운 두통이 스쳐 얼굴을 찡그린다.
“뭐……, 야……!?”
사고가 흙탕물처럼 혼탁해지고, 팔다리가 찌릿찌릿 저린다.
전신을 세차게 흔드는 듯한 감각이 스쳐지나간 후, 갑자기 시야가 열렸다.
“…………!?”
“뭐야, 여기…….”
그곳은…….
마치 게임 속에 들어와 버린 것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
와이어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바닥이 빛을 발하며 끝없이 펼쳐져있다.
‘라임 필드 세팅 중, 라임 필드 세팅 중.’
“라임이라니……, 그 라임인가!?”
놀라서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으니, 눈앞의 공간이 창백하게 빛났다.
그 빛이 발치에서부터 사람의 형상을 이루어간다.
그곳에 나타난 인물을 보고, 나는 뒤로 넘어질 뻔했다.
“렌!?”
“아오바, 괜찮아?”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것보다 너 왜 그런 모습인 거야.”
“이곳에서는 올메이트가 온라인모드 상태로 반영되는 것 같아.”
“온라인모드라니 기본적으로 라임에서 쓰는 거잖아? 나, 네 그런 모습, 설정화면에서밖에 본 적 없다고.”
“건 그렇고 방금 방송으로 라임이 어쩌고 했었는데…….”
“그런 것 같아. 단 지도상의 현재 위치는 이곳으로 오기 전과 똑같아.”
‘라임 필드, 셋업 완료했습니다. 필드, 전개합니다.’
“아오바!”
“윽!!”
렌이 갑자기 나를 밀쳐서 바닥으로 넘어지자, 엄청난 바람이 내 머리에 닿을락말락하게 스쳐지나갔다.
“뭐야 지금……!?”
“아오바, 이곳은 라임의 퍼블릭 필드다. 우리들은 강제적으로 라임에 끌려 들어온 것 같아.”
“하……!? 그런 일…….”
“아오바, 뭔가 온다.”
렌의 시선을 따라가 보고는, 흠칫 놀랐다.
토끼의 머리.
……를 뒤집어쓴 사람이, 그곳에 서있었다.
“이미 라임이 시작되었다는 건가…….”
“……금번에는.”
“……금번에는, 찾아와주셔서 지극히 영광.”
“그러면, 즐거운 게임을 시작하지.”
“아오바, 온다.”
“온다고 해도 어떻게 하면…….”
“‘망(亡)’ 세팅!”
“라져-!”
“에!? 우와……앗!”
“엄마야……! 어이, 잠깐 기다리라고!”
“난 라임 같은 거 전혀 관계없다고! 그만하라니까!”
“라임 네임, 슬라이블루(sly blue).”
“하?”
“세라가키 아오바(瀬良垣蒼葉).”
“어떻게 내 이름을……, 것보다 뭐야 그 슬라이 어쩌고 하는 건.”
“싸워라.”
“라임 같은 거 해본 적 없어!”
“싸워라.”
“그러니까, 해본 적 없다니까……!”
“……싸워라.”
“틀렸어, 말이 안 통해!”
“도망친다!”
“렌, 어떻게 좀 안 되는 거야!?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라든지.”
“시행하고 있지만, 로그아웃 자체가 무효화되어있는 것 같다.”
“진짜로 뭐냐고 라임이라니!!”
“으아악!”
“아얏~……!”
“아오바, 괜찮아?”
“……꽤 진지하게 아픈데.”
“라임에서는 실제의 육체에 데미지를 받는 일은 없어. 모두 뇌내 착각이다. 그 이상의 영향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되고 있지.”
“그러나, 이 필드는 데미지 수치의 제어가 어떤 이유로 풀려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즉…….”
“여기서 데미지를 받으면, 육체에도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
“최악이잖아……!”
“도망쳐도 소용없어.”
고개를 들자, 바로 근처에 있는 블록에서 토끼의 모습이 엿보였다.
“‘실(失)’ 세팅!”
“라져-!”
위험해……!
도망칠 타이밍을 놓친 내 앞에 렌이 뛰어들었다.
“……윽.”
“렌, 괜찮아!?”
“…………!?”
“윽, ……으, 아……악!”
“머리, 가…….”
“……으, ……윽.”
“……렌. ‘경(慶)’ 세팅이다.”
“아오바?”
“괜찮으니까, 어서.”
“………….”
“……알았다.”
“………….”
PLAYER > SLY BLUE
ALLMATE >> REN
ATTRIBUTE (속성) > 축복
“……칫. 놀고 있군.”
“올메이트는 방어구도 없고 구형. ……깔보고 있는 건가.”
“맨몸이라니 완전히 까불고 있네!”
“……후딱 해치울까.”
“………….”
“……?”
“……뭐야?”
“!”
“P!”
“적의 공격을 확인! 3기 손실! 내구도 12 저하!”
“……저 녀석.”
“……!”
“나, 지금……. 뭘……?”
“렌, 뭐야 방금…….”
“아오바가 내게 공격 지시를 내렸다.”
“공격? 뭐야 그거. 그런 거 모른다고…….”
“그치만 좀 전에……. 왠지 입이 멋대로 움직인 것 같은 느낌이…….”
“아오바, 또 온다.”
“지시를.”
“지시라고 해도…….”
“………….”
“그치만 안 하면 위험하겠지…….”
“방금 전처럼…….”
“……윽.”
“…………으윽.”
“……렌, ……방어다.”
“알았다.”
“‘붕(崩)’ 세팅!”
“라져-!”
“……윽.”
“……! 윽, 위험해!”
“적의 본체 방어벽, 100% 손상!”
“……. 기대해봤자 허사였군.”
“가자.”
“철수! 철수!”
“……가 아냐! 잠깐!”
“적의 본체 방어벽, 엄청난 기세로 회복!”
“40, 50……, 70, 90!”
“……무슨 일이야.”
“……!”
“어떻게 된 거지……?”
“경보! 경보! 위험! 위험!”
“!?”
“……파괴와, 죽음을.”
“…………, ……윽.”
……윽. 머리 아파…….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아야야, ……으”
나는……, 아무래도 땅바닥에 쓰러져있는 것 같다.
온몸의 아픔을 참고, 양손에 힘을 실어 천천히 일어난다.
다리가 휘청거려서 또 넘어질 뻔해져서, 어떻게든 벋디디고 선다.
“아파, ……아니, ……어떻게 된 거야…….”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고, 혼란스러운 기억을 정리하고자 한다.
확실히…….
배달하러 가던 도중에 갑자기 라임에 끌려들어가서, 이상한 토끼 머리가…….
“………….”
“……가게 앞.”
매일같이 보고 있으니 잘못 볼 리도 없다.
나는……, ‘평범’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지? 배달을 하러 나갔을 텐데…….
주위를 둘러보니, 땅바닥에 파란 털 뭉치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렌!”
곧장 달려가 안아든다. 반응이 없다.
렌의 머리를 가볍게 누르고,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러본다.
“렌, 어이!”
‘……아오바.’
잠깐의 사이를 두고서, 렌의 눈이 반짝 떠졌다.
그것을 보고 진심으로 안심한다.
“괜찮아?”
‘특별히 큰 문제는 없다.’
“정말로? 어딘가 부서졌다든지.”
‘일부, 데이터가 파손되어 있다.’
“그건 충분히 큰 문제잖아!”
토끼 머리와의 라임으로 렌도 데미지를 입었을 것이다.
“집에 가면 진찰해줄테니까.”
‘만약을 위해 부탁한다.’
“아아. 뭐랄까 내 뇌내 데이터도 파손된 것 같단 말이지~…….”
“토끼 머리랑 싸운 건 기억나지만, 결국 어떻게 된 건지는.”
‘내 데이터가 파손되어 있는 것도 거기서부터다.’
“그래……. 잠깐 기다려, 생각해볼 테니까.”
나는 두통을 참고, 눈을 감고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기억이 멀어져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틀렸어. 전혀 기억이 안 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 어째서?”
‘일반 남성의 기억 용량을 임시로 100이라고 하면, 아오바의 경우는…….’
“지금 여기서 그 이야기냐고. 잠깐, ……아…….”
‘아오바?’
“어, ……어라? 왠지, 눈이 핑글핑글 돌아…….”
“……렌, 너……, 언제부터 다리, 여덟 개가…….”
‘아오바!’
“………….”
뭐야 이거…….
눈앞이 빙글빙글 돌고…….
어디가 바닥, 인지…….
‘잠깐 기다리고 있어.’
렌이 어딘가로 달려간다.
그 뒷모습이 세 개로 보여서,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하하, 이상해-…….
렌이, 세, 마리…….
……거기서, 내 기억은 끊겼다.
내가 가게 앞에서 의식을 잃고 만 뒤…….
렌이 하가 씨를 불러와줘서, 나는 가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배달했어야 할 물건을 잃어버리고 말았는데도, 하가 씨는 평소의 상냥한 웃는 얼굴로 오늘은 돌아가도 좋다고 말해주셨다.
나는 순순히 하가 씨의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고, 집 안은 몹시 캄캄했다.
어두운 현관에 불을 켜고 복도로 올라가, 주방으로 향한다. 선반에서 두통약을 꺼내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약을 먹었다.
실은 식후에 먹는 편이 좋겠지만, 어쨌든 두통을 억누르는 것이 먼저였다.
집으로 돌아와 안심한 탓인지, 걷는 것도 귀찮을 정도의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 당장 침대 위로 쓰러지고픈 기분으로, 2층의 내 방으로 올라간다.
가방에서 렌을 꺼내 침대에 내려놓고, 나도 겉옷을 벗고 바로 침대 위에 누웠다.
하아…….
배달할 물건을 잃어버리고, 끝에 가서는 조퇴인가…….
하가 씨의 웃는 얼굴과 배려에 몹시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밀려든다.
“뭐 하는 거야, 나…….”
그렇지만, 이렇게 된 것도 그 이상한 토끼 머리 탓이다.
그리고……, 라임.
다들 그런 거에 빠져서 열광하고 있는 거냐고…….
그 비현실적인 공간을 떠올리자 또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아서, 나는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약이 아직 듣지 않은 것인지, 좀처럼 두통이 가라앉지 않는다. 이럴 때는…….
방금 전 겉옷과 함께 내팽개쳤던 헤드폰을 집어 들고, 귀에 댄다.
코일로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하고, 흘러들어오는 멜로디에 몸을 맡기는 듯이 눈을 감았다.
오래전부터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자주 하는 릴랙스법이다.
자신과 음악만이 있는 세계로 잠겨든다.
“……음.”
음악의 리듬과 템포, 자신의 호흡과 심장의 고동.
그것들이 조금씩 동조하여 녹아들어, 이윽고 하나의 커다란 물결이 된다.
“하, …….”
선율의 소용돌이가 내 몸을 감싸고, 부드럽게 어루만져간다.
소리가 피부에 스며들어 혈액과 뒤섞여, 안쪽에서 온화하게 움직인다.
“……후……, 우.”
머릿속에서는 가지각색의 엷은 색의 빛이 둥실둥실, 부드러운 필름처럼 춤춘다.
굉장히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다. 이곳은 나에게만 허락된, 나만의 장소라는 생각에 안심한다.
“아…….”
두통의 불협화음도 몸의 잡음도 멀어지고, 몸 안에서 울리는 조용한 소리만이 전해져온다.
전신으로 퍼지는 물결에 떠밀려 나오는 것처럼, 입술에서 희미한 숨결이 몇 번이고 새어나온다.
기분 좋아…….
왜인지 오늘은 다른 때보다도 더 깊게 잠겨든 듯한 느낌이 든다.
고통 같은 것은 전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이대로 잠으로 빠져들면, 그 다음은 평온한 기상이 찾아오는 것을 기다릴 뿐이다.
이대로 잠들어버리면…….
“…………?”
소리……?
희미하게 눈을 뜬다. 그렇지만, 의식이 부예진 탓에 눈에 비치는 것을 잘 분간할 수 없다.
…………. ……뭐 상관없지.
제대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나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이곳은…….
본 적이 있는 광경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이 해변에 앉아,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람의 말이 나에게 있어서는 보물처럼 소중해서……, 말 자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
“…………, ………….”
“…………, ………….”
……뭐라고 말했었지. 기억나지 않는다.
소중한, 말…….
……………….
아얏. 뭔가 아파.
날카로운 물건으로 얼굴을 찔리고 있는 듯한…….
‘일어나 잠꾸러기! 어이 빨리!’
“윽, 아파, …….”
‘일어나랬잖아 어이! 패버린다 멍청이!’
“…………, 아프잖아!”
너무 끈덕져서 벌떡 일어나니, 얼굴을 찌르고 있던 무언가가 휙 굴러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손으로 잡는다.
“어라, 베니.”
‘어이 이거 놔! 손님한테 이게 무슨 대우야!’
베니가 손 안에서 날개를 파닥이고, 나를 똑바로 노려본다.
“그렇다면 코우자쿠 와있는 거야?”
‘당연하잖아! 이거 놔!’
나는 큰소리로 떠드는 베니를 붙잡은 채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라? 렌은?
렌의 모습을 찾으니, 침대의 한 구석에서 슬립 모드 상태로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데이터가 날아갔다고 했었지. 이따 수리해주지 않으면.
그렇지만 그 전에 무언가 먹고 싶다.
한바탕 푹 잔 탓에 몸 상태는 꽤나 좋아졌다. 두통도 없어졌다.
아직 몸의 마디마디에 통증이 있지만, 움직일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방에서 나오자, 1층에서 좋은 냄새가 풍겨왔다.
할머니가 돌아왔다. 밥을 짓고 있겠지.
코일을 보니, 완전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벌써 이런 시간인가.”
‘네가 좀처럼 일어나질 않으니까 내가 널 깨우는 지경이 됐었다고. 알긴 아는 거야, 아아?’
베니의 불평을 흘려들으며, 나는 계단을 내려가 거실을 엿보았다.
맛있는 냄새가 가득 들어찬 가운데, 거실의 테이블에 코우자쿠가 재바르게 앉아 있었다.
할머니도 부엌에 서 있다.
코우자쿠는 나를 보자마자, 싱긋 웃었다.
“여어, 잘 잤어?”
“……안녕.”
“그 얼굴, 오늘도 최상의 컨디션이로군.”
“……덕분에.”
무심결에 하품이 새어나온다.
“이거.”
나는 꼭 움켜쥐고 있던 베니를 코우자쿠 쪽으로 휙 던졌다. 코우자쿠가 요령 좋게 캐치한다.
‘깨워줬는데도 대접이 이게 뭐야! 깔보지 말라고 아오바!’
“불평은 주인님한테 말하라고, 것보다, 계속 이 녀석만 부려먹지 말라고.”
“별수 없잖아. 너 한 번 깨우려면 하루가 다 가는데.”
“내가 언제.”
“아오바, 일어났으면 좀 도와! 밥은 이미 다 했으니까 젓가락이랑 차다.”
“네 네-.”
할머니의 재촉에 선반으로 향한다. 할머니와 내 이야기를 들은 코우자쿠가 즐거운 듯이 웃었다.
“언제 와도 변함이 없네, 타에 씨. 그 활기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면 안심된다고.”
“매일 호통 치는 걸 들어봐. 꽤 힘들다고?”
“하하하.”
선반에서 꺼낸 젓가락을 테이블에 놓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코우자쿠가 더욱더 즐거운 듯이 웃었다.
내가 3인분의 차를 찻잔에 따르는 사이에, 할머니가 갓 완성된 요리의 접시를 테이블에 늘어놓았다.
저녁식사 준비가 모두 끝나고, 모두가 식탁에 모인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오늘 저녁식사 메뉴는 생선을 소금으로 조린 것과 다시마 볶음, 돼지고기조림이다.
우선 돼지고기조림을 입에 넣고서 감동한다.
맛있다.
완전히 피로에 절어서 푹 자고난 후에 먹는 밥은 맛있다. 정말로 맛있다.
내가 그 사실을 절실히 실감하고 있으니, 코우자쿠도 우물우물 입을 움직이면서 웃는 얼굴로 할머니를 보았다.
“맛있어. 역시 타에 씨의 요리는 최고야.”
“흥. 갑자기 들이닥친 주제에 말은.”
“나는 제대로 말해뒀다고? 아오바한테.‘
갑자기 화살이 나한테 돌아와서, 코우자쿠를 가볍게 노려본다.
“‘머잖아’라고 했었잖아.”
“그러는 너도 쿨쿨 잠만 자고 있었잖아. 아무리 불러도 꿈쩍도 안 했다고.”
“그건……, 뭐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제대로 밥해주는 거, 정말 고맙다고.”
“착각하지 말라니까. 유통기한이 다 끝나가는 게 있었으니까 어쩌다 타이밍이 맞았을 뿐이라고.”
“이래서 타에 씨가 좋다니까.”
“시끄러워.”
할머니가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다시마를 한입 가득 넣는다. 코우자쿠는 그런 할머니를 싱글싱글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다.
할머니, 의외로 코우자쿠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지.
코우자쿠는 어머니와 함께 이 섬에 왔지만, 평소엔 혼자 있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나랑도 자주 놀았고, 집에도 찾아왔었다. 물론 할머니의 요리도 잔뜩 먹곤 했다.
할머니 관점에서 보면, 또 한명의 손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자고 가는 거냐?”
할머니가 미간을 좁히고 묻자, 코우자쿠는 밥을 입 안으로 밀어넣던 손을 멈추고 미안한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인데.”
“정말이지, 너는 후안무치라는 말도 모르는 거냐.”
“뭐 늘 그래왔으니까. 단 나는 아르바이트가 있으니까, 아침엔 네가 곤히 자고 있어도 깨울 거야.”
“그 반대잖아? 좀처럼 안 일어나는 너를 내가 언제나 상냥하게 깨워주고 있잖아.”
‘그렇지~.’
“……너희들…….”
짜증날 정도로 해사하게 웃는 얼굴을 보이며, 코우자쿠가 다시 밥공기의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러고서 다시 셋이서 소소한 잡담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 시간을 보냈다.
“……후우.”
저녁을 먹은 후에 목욕을 마친 나는, 머리카락의 물기가 덜 말라서 어깨에 수건을 걸치고 거실로 갔다.
거실을 살펴보자, 할머니가 차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코우자쿠의 모습은 없다.
“코우자쿠는?”
“2층으로 갔어. 네 방에 있겠지.”
“그래. ……아, 맞다 할머니.”
“왜.”
“지난번에 말야, 어-엄청 머리가 아파서 약을 먹었는데, 잘 듣지를 않았었어.”
“……흠.”
계속 TV를 보고 있던 할머니가 내 쪽을 돌아본다.
두통 때문에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보고하라는 이야기를 예전부터 할머니에게 듣고 있다.
“전혀 듣질 않았던 거냐?”
“으-응, 그렇진 않았는데, 평소만큼은 안 들었던 것 같아.”
“그래. 그럼 약의 배합을 조금 바꿔볼까.”
“부탁할게요.”
내가 과장된 움직임으로 머리를 숙이자, 할머니는 콧방귀를 뀌고서는 다시 TV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러면……. 코우자쿠는 내 방에 간 것 같다.
나는 거실에서 나와 계단을 올라갔다.
발을 들 때마다, 몸 이곳저곳이 욱신욱신 아프다.
“아야야.”
겉으로 보기에는 상처나 멍이 생긴 건 아니었지만, 몸의 심지가 둔탁하게 욱신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임에서 데미지를 받은 탓인가…….
“머릿속에서 싸우네 어쩌네 해도, 역시 아프잖아…….”
그 이상한 토끼 머리와 라임에서 싸웠을 때, 데미지 수치의 제어가 풀려있다고 렌이 말했었다.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몸 이곳저곳이 아픈 것을 참으며 계단 끝까지 다 올라가, 내 방으로 들어간다.
……어라.
코우자쿠가 없다. 렌도다.
그런 줄 알았더니, 베란다로 나가는 창이 아주 조금 열려있었다.
베란다를 엿보자, 코우자쿠가 난간에 기대어있었다.
멍한 얼굴로 밤의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손에는 가느다란 담배가 끼워져 있고, 살짝 오므라든 입술에서 하얀 연기가 후욱 내뱉어진다.
코우자쿠는 왜인지 내 방……, 그것도 베란다에서밖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여자 앞이나 일하는 중에는 물론, 술을 마시러 가거나 해도 피우지 않으면서, 여기에서만 담배를 피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여기에 있으면 긴장이 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코우자쿠가 바깥에서 이런 멍한 얼굴을 하는 일은 없다. 늘 웃는 얼굴에 자신만만한 표정. 그것이 코우자쿠의 이미지다.
평소엔 여자들이랑 즐거운 듯이 왁자지껄 떠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그건 그거대로 힘이 드는 것일까.
코우자쿠의 손이 입에 물린 담배를 옮긴다. 어둑한 공간 안에서, 그 손가락이 유달리 기다랗고 예쁘게 보였다.
미용사를 직업으로 삼을 정도고, 손재주는 참 좋지.
뼈가 도드라져 남자다운 손인데도 예쁘다는 느낌이 드니 신기하다.
코우자쿠는 렌을 안고 있고, 렌의 머리 위에는 베니도 올라타 있다. 둘 다 슬립모드인 것 같다.
난간에 올려두는 듯이 해서 안고 있으니 어쩐지 떨어질 것 같지만, 코우자쿠니까 별일은 없겠지.
나는 방에 놓아둔 재떨이를 들고, 베란다의 창을 열었다.
“……응?”
멍한 코우자쿠의 눈이 나를 응시하고는, 입가에 느슨한 미소가 떠오른다.
“오우. 목욕 다 했어?”
“거실에 있는 줄 알았어.”
“아아. 잠깐 이거, 피우러.”
코우자쿠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가볍게 들어 올려서 보여준다.
“너 여기에 있는 거 정말 좋아하네.”
“그래? 그럴지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도.”
“뭐어, 그렇지. 그치만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 좋지 않아?”
“? 그래? 난 잘 모르겠지만.”
코우자쿠가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는다.
“자.”
재떨이를 내밀자, 짧게 줄어든 담배가 그 위로 짓눌러진다. 그것을 발치에 두고, 나도 베란다의 난간에 기댄다.
“아-.”
곁에 선 나를 보자마자, 코우자쿠가 눈썹을 찌푸린다.
“아오바, 너 또…….”
“응?”
“머리카락 말야. 좀 더 제대로 말리라니까.”
코우자쿠가 내 쪽으로 손을 뻗는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건가……?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린다.
그러나, 코우자쿠의 손이 잡은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코였다.
“으앗!”
“정말이지 네 머리, 직업병 때문에 신경 쓰여서 견딜 수가 없다고.”
“그만해.”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피하자, 코우자쿠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머리, 꽤 많이 자랐네. 또 혼자서 조금 조금씩 자르고 있는 거야?”
“아-, 뭐 그렇지. 그치만 별로 전문가한테는 보이고 싶지 않은데. 대충 자른 거니까.”
“아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제대로 정돈되어 있어.”
“정말? 꺄-, 코우자쿠 씨한테 칭찬받다니 너무 좋아-.”
“뭐야 그 국어책 읽기는.”
“네 팬 성대모사.”
“너 말야-.”
코우자쿠가 작게 웃는 소리를 낸다.
내가 머리를 자르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째서인지 선천적으로, 머리카락에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위를 대려고 해도 아파서 자를 수가 없다.
어깨 아래까지 자라면 감각이 둔해져서, 어떻게든 자르는 것도 가능하지만.
어릴 적에는 이 머리카락 때문에 여자 같다고 엄청 놀림을 받았었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자극이 발생하니까, 장난으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하면……, 정말이지 지옥 같았다.
다른 아이들이 그걸 재미있게 여겨서 괴롭힘을 당했던 적도 있었다. 그럴 때, 늘 코우자쿠가 나를 도와주었다.
뭐랄까, 코우자쿠는 처음에는 나를 여자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상당히 놀랐었지. 그래도, 그 뒤로도 코우자쿠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로서는, 그것이 꽤나 기뻤다.
“너, 모처럼 예쁜 머리카락을 갖고 있으니까 소중하게 관리하라고.”
“……늘 생각하는 건데 말야. 너 잘도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네. 그런 점은 정말 예전부터 변하질 않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렇게 말할 뿐이야. 너도, 옛날에는 내가 칭찬해주면 부끄러워하면서 좋아했는데 말이지…….”
코우자쿠가 여봐란 듯이 먼눈을 해서, 있는 힘을 다해 질렸다는 시선을 던진다.
“꼬마였을 때잖아. 기억도 안 나고.”
아직 젖어있는 머리카락 끝을 수건으로 살짝 훔치고 있으니, 어깨에 둔탁한 통증이 스쳤다.
“앗…….”
이 통증……. 라임의 후유증인가…….
“왜 그래.”
“아니, 좀.”
“좀이 아냐. 그러고 보니 아까도 녹초가 돼서 축 늘어졌었지.”
“아~.”
“뭐야, 엄청 비싸게 구네.”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쩌지. 라임에 대한 이야기, 코우자쿠에게 이야기해야 할까?
내 안에서 약간의 망설임이 일어난다.
코우자쿠는 이런 때, 묘하게 촉이 날카롭다. 이미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얼버무리려 해도 완전히 넘어갈 수 없겠지…….
“아니, 오늘 말야. 이상한 일을 겪어서. 그, 뭐지? 라임에 말려들었달까.”
“라임에 말려들어?”
“그게 갑작스럽게 말야. 배달하는 중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라임의 필드 안에 있었다고.”
“꿈 이야기는 아니겠지.”
“아니야.”
“그 말은……, 근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야?”
“나도 잘 몰랐는데 말이지, 너희 팀 영역 근처라고. 그 이상한 좁은 골목길.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없지만 말이지…….”
“그 외에도 뭔가 이상했어. 우스이가 없었다고.”
“그건 이상하네. 그 녀석이 라임을 개최하는 거잖아. 이상한 장치도 그 녀석이랑 같이 나오고.”
“그렇지. 그래서…….”
나는 코우자쿠에게 토끼 머리에 대한 것……, 내 이름을 토끼 머리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포함해서 이야기했다.
코우자쿠는 미간을 좁히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서는, 낮게 신음했다.
“너 그거, 어쩌면……, ‘무차별 살인 라임’인 거 아냐?”
“무차별 살인 라임?”
“나도 팀원 녀석들에게 들었을 뿐이고,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우스이 없이 일방적으로 라임을 걸어오는 녀석들이 있는 것 같아.”
“그 녀석들의 라임은 룰도 제한도 없는 상태라, 걸려든 상대는 반죽음이 되는 일도 있다고 해.”
“그럼, 내가 당한 것도 그 무차별 살인 라임이란 건가?”
“가능성은 있겠지. 하지만…….”
“……마음에 안 드네.”
“뭐가?”
“이번에는 어떻게든 피할 수 있었으니까 다행이지만. 만약 또 걸려들면 어쩌나 생각하면 말야. 엄청 위험하잖아, 그거.”
“근데 나, 라임 해본 적 없는데 왜……. 나랑 다른 사람을 혼동한 건가?”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아니면, 누군가에게 엄청난 원한을 샀다거나.”
“그런 일 없어. 내가 너도 아니고.”
“너무하네. 그치만 상대는 네 이름, 알고 있었잖아?”
“뭐……, 그랬지.”
“………….”
“코우자쿠?”
코우자쿠가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입을 다문다.
잠시 사이를 두고서,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 역시 오늘은 돌아갈래. 할 일이 좀 생각났어.”
“어? 어어, 그래.”
코우자쿠는 난간에서 떨어져, 내 정면에 섰다.
“몸, 정말로 괜찮은 거지?”
“아아.”
“그렇다면 믿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하라고.”
“알고 있어.”
“좋아.”
코우자쿠가 납득한 듯이 웃고서, 살며시 렌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렌의 머리 위에 올라탄 베니만 집어 들어서, 자신의 품속에 넣는다.
“그럼. 잘 자.”
“아아.”
코우자쿠는 손을 휙 들어 올리고서, 방에서 나갔다.
베란다 창을 닫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렌을 침대에 내려놓고 그 옆에 드러누웠다.
“라임……인가.”
결국, 내가 조우했던 것은 무차별 살인 라임이었던 것일까.
라임에 말려들었을 때, 렌은 온라인모드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내 지시를 따라서 싸웠다.
“……무슨, 세팅. ……뭐였더라.”
그때, 누군가에게 몸을 빼앗긴 것처럼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렇지만 그 느낌……, 잘 알고 있는 것인 듯한 느낌이 든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가게에서 손님에게 권유를 할 때의 감각과 조금 비슷한 것 같은…….
다음으로 무슨 말을 해야 상대방의 마음이 이쪽으로 기울어질 것인지 알겠는, 그 감각이다.
무차별 살인 라임이란 건 평소에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일까. 잠깐 조사해볼까.
그다지 깊게 들어가고 싶지는 않지만…….
……메일이다.
‘[새 메일] 최신형 올메이트가 드디어 / ***’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저번에 / 코우자쿠’
‘저녁밥 / 할머니’
‘잘 지내? / 미즈키’
‘이번 주 일요일 / 코우자쿠’
“최신형 올메이트, 인가.”
다이렉트메일이다.
그건 그렇고, 올메이트도 잇달아서 새로운 게 나오는군.
내용을 대충 쓱 훑어보고, 코일의 화면을 닫는다.
나는 예전부터 사용하는 물건에는 애착이 생겨서 내버릴 수 없게 되는 편이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은 것이겠지.
……그렇지. 렌의 상태를 봐주지 않으면. 라임에서 입은 데미지도 신경 쓰이고.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 위에 자세를 고쳐 앉고, 파란 털 뭉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기동시켰다.
‘아오바.’
“안녕.”
‘안녕.’
“지금부터 잠깐 진찰할게.”
렌은 구형이라, 본격적으로 고장이 나면 복구하는 것도 일이다.
부지런히 보수를 하고 상태를 봐주지 않으면.
나는 데스크탑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케이블을 붙잡고, 렌의 목 부근의 털을 헤치고 플러그에 접속시켰다.
코일로 터치 브라우저를 기동시키고, 렌의 엔진을 감시하는 인터페이스를 표시한다.
“응……. 반사 반응 속도가 좀 떨어졌나.”
바닥에 내팽개쳐진 공구함을 집고, 다시금 렌의 목 부근의 털을 헤치고 사방 10cm의 뚜껑의 나사를 드라이버로 푼다.
올메이트는 기본적으로 터치 브라우저의 컨트롤 판넬만으로 정비가 가능하지만, 렌은 구형이라 몸체 안쪽으로도 직접 손을 쓸 필요가 있다.
공구함에서 새 칩 스톡을 꺼내들어, 핀셋으로 렌의 목에 꽂혀있는 칩과 교환한다.
“이걸로 끝, 이네.”
뚜껑을 닫고, 컨트롤 판넬을 종료시키고서 케이블을 빼고 렌을 안아든다.
“어때? 어디 안 좋은 데는 없어?”
‘………….’
“응?”
‘약간 위화감이 들어. 그렇지만, 허용 범위 내다.’
“그래. 막 칩을 갈아끼운 참이니까. 만약 상태가 안 좋아지면 바로 말해.”
‘알았다.’
고분고분 대답을 하는 렌의 등을 쓰다듬고, 그 자그마한 이마에 내 이마를 댄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렌의 보수를 해준 뒤에는 꼭 이걸 한다. 주술 같은 것이다.
“늘 고마워.”
‘나야말로.’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야말로.’
“……너, 맨날 대답은 그거네.”
‘뭔가 이상한가?’
“아니? 전혀. 렌다워서 좋다고 생각해.”
‘그 발언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게 맞는 걸까.’
“그렇지, 칭찬이니까.”
‘고맙다.’
“아하하. ……나야말로.”
나는 한 번 더 이마를 맞대고서, 렌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렌은 늘 변함이 없다. 어떤 때에도 내 곁에 있어준다.
그 후로도 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공구를 정리하거나 하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입니다.”
다음날, 평소대로 ‘평범’에 출근하니, 하가 씨가 재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카운터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렌을 내려두고서 곧바로 하가 씨 쪽으로 갔다.
어제 일,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점장님.”
“네?”
“어제는 배달 일이 그렇게 되어서, 죄송했습니다.”
“에? 아아 아뇨 아뇨, 그 일은 이미…….”
그렇게 말하며, 하가 씨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것을 보고서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그 후에, 연락이 닿은 손님이 엄청나게 화를 냈다든가?
그렇다면 내 탓이다.
“저,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저도 직접 손님께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만…….”
“아아, 응. 그 일 말인데요.”
하가 씨가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안경을 치켜 올린다.
“어제 그 물건, 사전 결제가 이미 끝난 상태라 어쨌든 환불이나 재배달을 원하시는지 여쭈어보려고, 그 뒤로도 연락을 취하려고 이것저것 해보았어요.”
“컨트롤 센터에도 문의해봤습니다만, 전부 허사라.”
“허사?”
“네. 통 연락이 되질 않아요. 배송지와 주문자의 이름이 같아서 주소를 조사해보았습니다만, 거기에 살고 있는 건 다른 이름의 사람이라…….”
“물건에 대해서도, 전혀 주문한 기억이 없다고 말을 해서.”
“그렇다는 건 결국, 장난이었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네요.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히…….
장난이라고는 해도 이미 돈을 낸데다, 상대방에게 있어서는 그저 손해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가 씨와 함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고 만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습니다만……. 어쩐지 찝찝하네요.”
“그렇네요…….”
게다가 나는……, 그 물건을 전해주러 가던 도중에 라임에 말려든 것이다.
석연찮은 공기가 감도는 가운데, 어느 사이엔가 개점 시간이 다가왔다.
“어이쿠, 일하자 일.”
하가 씨가 허둥지둥 가게 밖으로 나간다.
어쩐지 기분 나쁜 느낌은 들지만……, 조사 해봐도 알 수 없었으니 어쩔 수 없다.
“자 그럼. 나도 일 하자 일.”
기분을 전환해 일에 열중하기로 하고, 나는 카운터로 돌아갔다.
딱히 별일 없이 오전중의 시간이 지나가,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의 근무가 시작되었다.
하가 씨가 외출해서, 가게 안에는 나 혼자다.
“네, ……네. 그럼, 또 저희 가게를 이용해주세요.”
손님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끝내고, 한숨 돌린다.
또 평소의 패턴대로 내 목소리에 반응해서, 이번에도 이래저래 매상을 올렸다.
전에도 전화했었던 사람인 듯, 좀처럼 전화를 끊으려 하지를 않아서 조금 애를 먹었지만.
귓가에 맴도는 흥분된 목소리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자, 도어 벨이 울렸다.
아, 손님인가?
카운터에 괴고 있던 팔꿈치를 떼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여-어, 아오바.”
“아오바, 놀러왔다고-.”
“흥.”
“……너희들이냐.”
손님인가 했더니, 들어온 것은 악동 형제들이었다.
나는 일부러 한숨을 쉬고, 카운터에 팔꿈치를 괴고 매서운 눈초리로 꼬맹이들을 노려보았다.
이 녀석들이 오면 늘 변변찮은 일이 일어난다.
“어차피 나쁜 짓 하러 온 거겠지. 돌아가, 돌아가.”
“아오바 짜증나.”
“짜-증-.”
“넌 조용히 하고 있으라고, 아오바.”
“………….”
이 녀석들…….
꼬맹이들은 재빨리 표적물인 범인군을 찾아내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앗 여기 있다!”
“기다려 기다려-!”
“붙잡아라!”
‘처, 청소!!!’
표적이 된 범인군이 허둥지둥 달아난다.
범인군은 꽤나 영리한 올메이트로, 의외로 재빨리 움직일 수 있는데다 회피 능력도 높다.
다시 말해 붙잡으려고 해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그 점에 꼬맹이들의 마음을 끌고 있는 것 같다.
“어이어이어이어이, 너희들 뛰지 마!”
“앗, 이 녀석.”
“기다려!”
“너희들 빨리 잡으라고!”
“진짜-----!!”
‘처, 청소! 청소소소~~~!!!’
앗, 선반이 흔들흔들 거린다…….
저 골판지, 떨어질 것 같아…….
“………….”
이 시점에선 무력행사로 멈추게 하는 편이 좋겠군…….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 발 늦었다.
“아--!!”
“싫다-, 뭔가 깨졌어-.”
“깨졌어!”
“깨졌어!가 아냐!”
“너희들!!”
“와-! 아오바가 화났다!”
“화났다-!!”
“성질 급한 남자는 미움 받는다고!”
“시끄러! ……이 녀석! 이봐! 너도!”
나는 천방지축으로 이리저리 도망치는 세 명의 뒷덜미를 붙잡고, 문까지 끌고 가서 밖으로 내던졌다.
“우왓!”
“아얏!”
“너무해! 저질!”
“시끄러 시끄러-. 어른을 화나게 하면 무섭다고-.”
양손을 허리에 대고 ‘아이를 혼내는 선생님’ 포즈로 악동 형제들을 노려본다.
“정말이지, 맨날 맨날 장난만 쳐대고. 조금은 반성하라고. 그러니까 빨리 집에 가.”
“시꺼! 닥쳐 바보!”
“바보 아오바!”
“너 일일이 촌스럽다고!”
“………….”
“……너희들 말야…….”
“……됐으니까 말 좀 들어----!!!!”
“와-----!!!”
완전히 뚜껑이 열려서 고함을 치자, 악동 형제들은 눈 깜짝할 새에 도망갔다.
아아, 제길. 내가 생각해봐도 어른스럽지 못해…….
저 녀석들도 조금만 더 귀여운 구석이 있었더라면~…….
것보다, 꼬맹이들이 어질러놓은 걸 정리하지 않으면…….
하아…….
……응? 뭐지?
지금, 뭔가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우와앗!?”
가, 갑자기 뭔가 떨어져내렸다!
“………….”
……떨어진 것은, 아무래도 사람인 것 같다.
것보다……. 하늘에서……, 사람?
쓰러져있는 것은 체격으로 봐서는 남자 같다. 엎드리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으, 으-응.”
“!”
남자가 신음하고는 벌떡 일어난다.
살아있었다…….
안도에 가슴을 쓸어내린 것도 잠시, 나는 곧바로 다시금 얼어붙었다.
……얼굴이, 없다?
아니, 아니다. 가스마스크를 쓰고 있다.
“……아아, 깜짝 놀랐어요.”
남자는 머리카락을 부스스 헤집고,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돌아보았다.
태연하게 보이지만……, 어디 다치거나 하진 않은 건가?
것보다 왜 마스크를 쓰고 있냐고.
위에서 떨어져 내린 것도 이상하고, 어디를 어떻게 봐도 명백하게 수상하다.
내가 그 자리에 붙박여 꼼짝도 못하고 있으니, 가스마스크가 빙글 하고 이쪽을 향했다.
“………….”
반사적으로 눈의 깜박임과 호흡이 멈춘다.
이쪽으로 오지 마…….
부디 나를 무시하고 어딘가로 가주기를…….
……이라는 나의 바람도 무색하게, 가스마스크는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마스터,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헤?”
마스터?
“마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서 왔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녀석.
“왜 그러시죠?”
“아뇨 그게……, 분명,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은데요.”
“잘못 보았다니요?”
“나, 마스터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니오, 마스터는 마스터입니다.”
“그러니까 아니라니까요. 나,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는 어제 마스터를 이곳으로 나른 클리어입니다.”
[ 클리어! ]
오른손잡이
키: 180cm
혈액형: ?
생일: ???
별자리: ???
“어제 날랐다?”
어제라면, 그러고 보니…….
라임에 말려들고 난 후, 나는 어째서인지 이곳에 쓰러져 있었다.
“혹시……, 네가 나한테 라임으로 싸움을 건 건가?”
그 토끼 머리도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복장도 어딘지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요, 그건 제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마스터를 마스터라고 생각해서 이곳으로 날랐습니다.”
………….
……뭔가 말이 앞뒤가 안 맞는데.
“어제, 마스터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파괴와, 죽음.”
“……에?”
그거,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데…….
“왜 네가 그 말을……, 앗!?”
가스마스크가 갑자기 내 양쪽 볼을 붙잡고, 좌우로 잡아당겼다.
“아야아야! 아흐아이까!”
“마스터, 왠지 어제랑은 다르네요. 어디가 다른가 하면 설명하기 어렵지만, 구태여 말하자면 얼굴도 목소리도 칠칠치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스마스크는 내 뺨을 꼬집으면서, 한탄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뭐야 이 녀석!?
“아이아이까! 이어아!”
“네.”
가스마스크가 급히 손을 놓는다.
젠장, 아파……. 뭐야 이 녀석……!
있는 힘껏 꼬집어대고, 따끔따끔하다고.
눈물이 핑 도는 상태로 내 뺨을 어루만지고 있으니, 가스마스크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재차 질문 드립니다만, 당신 정말로 마스터인거죠?”
“그러니까 아니라고 했잖아!”
“그럴 리는 없습니다.”
“………….”
은근히 열이 받아서, 나는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진정하자……. 여기서 페이스를 흩뜨리면 상대방의 예상대로가 된다.
만약 이 녀석이 정말로 어제의 토끼 머리라고 한다면, 확 붙들어서 이것저것 자백하게 하지 않으면.
지금은 살짝 나사가 풀린 것 같지만, 열 받게 하면 본성이 나타나거나 하는 거 아냐?
라임은 무리여도 몸으로 하는 싸움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조금 기합을 넣어볼까…….
“……어이!”
고함을 침과 동시에, 나는 그 녀석의 엉덩이를 노리고 발차기를 날렸다.
“아앗!”
가스마스크가 뒤로 몸을 젖히고, 양손으로 엉덩이를 가린다.
“그런, 마스터……, 그만둬주세요!!!”
“……하?”
가스마스크가 휘청휘청 쓰러진다.
“그만해주세요, 마스터……. 이제 이 이상은……, 갈라질 수 없습니다.”
“………….”
……응.
이 녀석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여기선 빨리 일단락을 짓고 신속하게 이 녀석을 돌려보내자.
“어쨌든 나는 마스터가 아냐. 그리고 일해야 돼서 돌아갈 거니까. 그럼.”
“저는 어떻게 하면?”
“돌아가라고!”
“알겠습니다.”
가스마스크는 순순히 고개를 한 번 끄덕하고, 오른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서 부스럭부스럭 그 안을 뒤졌다.
꺼내든 것은…….
……길엇! 비닐우산이다.
[ 왜 우산을? ]
[ 마술사? ] →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