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헤 속도가 고자라 죄송합니다...ㅠㅠ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글리터에 도착한 후, 코우자쿠는 나를 업은 채로 일부러 2층의 침대까지 날라주었다.
“옷, 벗을 수 있어? 더러워진 건 전부 벗어.”
“아아.”
오물이 묻은 겉옷을 벗어 코우자쿠에게 건네고, 나는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몸이 침대에 푹 파묻히자,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피로가 느껴졌다.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피곤해?”
“그러네…….”
“몸은?”
“아까보다는 괜찮아졌어.”
“그래. 자, 렌. 여기 두고 갈게.”
코우자쿠가 렌을 침대 위로 내려놓는다.
렌은 내 바로 옆에 붙어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렌의 파란색 털을 쓰다듬으니 마음이 놓였다.
코우자쿠는 일단 방에서 나가고는, 곧바로 되돌아와 테이블 위로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물이 담긴 컵이다.
“이거 마시고, 좀 자.”
“고마워……. 이것저것.”
“신경 쓰지 마. 이거 말고 또 필요한 거 없어?”
“괜찮아.”
“그래.”
그 후로는, 대화가 끊겼다.
코우자쿠가 고개를 숙인 채로 침묵하고, 무언의 시간이 흐른다.
이 침묵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나와 코우자쿠 둘 다, 생각하고 있는 것은 분명 똑같겠지. 그 클럽에서의 일…….
잠시 후, 코우자쿠가 무언가 마음을 굳힌 것처럼 얼굴을 들었다.
“……아오바. 뭐 좀 물어봐도 돼?”
“응.”
“너, 왜 거기에 있었던 거야.”
“………….”
뭐라고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채, 나는 입을 다물었다.
코우자쿠가 나를 바라본다. 가만히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말하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또 다른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계속 신경이 쓰였던 일에 대해 물어봐야 할까, 아니면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좋을까.
그만두는 편이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마음을 떨쳐낼 수 없다면, 아예 딱 잘라 진상에 대해 묻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참을 머뭇거린 끝에, 나는 마음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너야말로, 거기서 뭘 했던 거야?”
내 질문에, 코우자쿠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뭐라니……, 그보다 너, 거기를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 ……우연히, 너를 발견했달까.”
뒤를 밟았다……, 라고는,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그대로 내 뒤를 따라온 거야? 어떻게 안으로 들어갔지?”
코우자쿠가 두 눈을 가늘게 좁힌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흥건히 스며 나온다.
“너한테 아는 척을 하려고 했더니 가게 입구에서 안으로 안 들여보내줘서, 그래서 난처해하고 있으니까 누가 날 도와줘서…….”
“도와줘?”
“아아. 단골인 것 같은 남자였는데, 너처럼 기모노를 입고 있었어.
“……기모노?”
코우자쿠의 눈썹이 움찔 하고 움직였다.
“기모노를 입고 있었어?”
“아아, 응.”
“그거 말고 다른 특징은?”
“에, 왜.”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어 반문을 하니, 코우자쿠가 순간적으로 번쩍 정신이 든 듯한 얼굴을 했다.
“아니……, 아는 녀석이 아닐까 싶어서.”
……또다. 이 분위기.
어제, 코우자쿠가 밤중에 돌아왔을 때도 이랬다. 필시, 무언가 숨기려고 하고 있다.
“……파란 기모노를 입고 있었고 머리가 짧고, 인상이 선선했고……. 그리고, 목에 문신이 있었어.”
“어떤 모양이었어.”
“용, 이 아니라……. 해마? 같은 거였어.”
“………….”
이번에는 명백하게 코우자쿠의 얼굴이 굳어졌다. 험악하다고도 할 수 있는 표정으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그 녀석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아오바. 두 번 다시 그곳에 가까이 가지 마.”
“……하?”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안에서 다시금 자욱이 안개가 낀 듯한 갑갑한 느낌이 감돌기 시작한다.
“어째서야.”
“이유야 어쨌든, 가까이 가지 마.”
“뭐야 그게. 그 파란 기모노를 입은 녀석한테 뭐가 있는 거야?”
“……아니.”
“근데 말야, 나한테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네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는 거 아냐?”
“……아침에,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나간 이유라든지. 내가 눈치 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냐고.”
“………….”
“역시 그래서 내 뒤를 밟았던 건가.”
“……, 미안. 우연이네 어쩌네 하면서 거짓말 한 건 사과할게. 그치만 네가 이상하게 살금살금 거리니까, 나도 못 본 척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
“상황이 상황이고, 너 나름대로 배려를 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솔직하게 얘기를 해주는 편이…….”
“그런 게 아냐.”
코우자쿠가 강한 어조의 한 마디로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 얼굴은 깊이 생각이 잠긴 듯이 굳어있다.
“……그치만,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어. 미안.”
말을 마치자마자, 코우자쿠는 내게 등을 돌렸다.
“어이 코우자쿠! 기다려봐.”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아 코우자쿠를 불러 세운다.
하지만, 코우자쿠는 그대로 방에서 나가버렸다.
“………….”
코우자쿠의 태도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나는 문을 쳐다보았다.
저 녀석……. 역시 뭔가 숨기고 있어.
하지만 그것을 나에게 털어놓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 같다.
즉, 거절이다.
“……윽.”
베개에 머리를 묻고, 정처 없이 헤매는 감정을 해방시키는 것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코우자쿠를 향한 속 타는 짜증과 자기혐오가 엄습한다.
나와 코우자쿠는 알고 지낸 시간도 길고, 서로에 대한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코우자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전혀.
코우자쿠는 뭘 숨기고 있는 거지?
‘이제 두 번 다시 그곳에 가까이 가지 마.’
그건 나보고 상관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가?
그곳에는 뭐가 있는 거지? 어째서 거절하는 거지?
“대체 뭐야, 진짜…….”
양팔로 눈가를 덮는다. 또 다시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코우자쿠와 함께 있으면서, 이런 마음이 든 적은 없었다.
코우자쿠에 대해서는 거의 다 알고 있다고, 그런 생각 자체가 내 자만이었는지도 모른다.
코우자쿠는……. 사실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깊은 안개 속에 파묻혀버리고 만 듯한 불안에 내몰려, 나는 오래도록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
몇 번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어느 사이엔가 잠이 들고 만 것 같다.
얼마 동안 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신을 짓누르는 노곤한 감각이 사라져서 몸이 가뿐해진 상태다.
이불 옆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렌이 침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나는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토기도 가라앉았고, 몸 상태는 일단 진정된 것 같다.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물을 단숨에 들이마신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목이 말라있다.
좀 더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방에서 나왔다.
조금 눈앞이 도는 듯한 느낌은 들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바 카운터에서 컵에 물을 따라서 마시고 있으니, 아래층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린다. 코우자쿠인가. 샤워를 하고 있는 걸까.
……방금 전의 일, 사과하러 가볼까. 이런 미묘한 분위기가 계속되는 건 꽤나 거북하다.
코우자쿠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있고…….
나는 계단을 내려가 1층의 샤워실로 향했다. 복도를 걸어서, 물소리가 들려오는 문 앞에 선다.
문을 열고자 손을 뻗고는, 멈춘다.
문은 제대로 닫혀있지 않았고, 좁은 틈 사이로 몹시도 화려한 색채가 보였다. 기모노의 붉은색과는 다르다.
저건……?
“………….”
나는 빨려들어가는 듯이 얼굴을 가까이 대고, 문의 손잡이를 살짝 잡아당겨서 그 틈을 조금 더 넓게 만들었다.
방 안에는 코우자쿠가 있고, 세면대에서 기모노를 빨고 있는 것 같았다. 물이 흐르는 소리와 천끼리 북북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코우자쿠는 이쪽에 등을 지고 있고, 내가 있는 것에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
내 시선이 고정된 것은, 그 등 때문이었다.
……문신.
넓은 등에 아름다운 붉은 꽃이 피어있다.
진짜 꽃으로 착각할 정도로, 선명하고 생생한 빛깔이다.
문신의 완성도에 압도감을 느끼는 한편, 나는 예상외의 충격을 받았다.
문신뿐만이 아니다. 코우자쿠의 몸에는 수많은 상처 자국이 있었다. 물론 처음으로 보는 것이다.
코우자쿠가 섬으로 돌아왔을 때, 얼굴과 손에 흉터가 난 것을 보고서 얼마나 격렬한 싸움을 했던 거냐고 내가 물어보았던 일이 있었다.
그때는 코우자쿠가 애매하게 웃으며 얼버무려서, 이후에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없었다.
가슴의 문신도 어렸을 때는 당연히 없었지만, 문신 자체가 일반적으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딱히 뭐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코우자쿠의 몸에 나있는 상처 자국은 색이 옅다. 상처가 나고서 꽤나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저렇게 많은 상처를 어디서 만든 것일까.
문신도 상처도, 미도리지마를 떠나서 본토에 있었을 때 생긴 것이겠지.
……내가 모르는 코우자쿠가 있다.
만약 지금 여기서 보지 못했다면, 계속 모른 채로 있었을지도 모른다.
코우자쿠는 섬을 떠나있던 사이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것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 거대한 시간의 벽을 제쳐두고서, 나는 코우자쿠에 대해서라면 뭐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예전의 코우자쿠밖에는 알지 못한다.
지금의 코우자쿠를……, 알고 싶다.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고, 나는 살며시 문에서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스스로가 계속 숨을 죽이고 있어서, 조용히 숨을 내쉰다.
묘하게 감각이 부자연스러운 다리를 움직여 계단을 올라가, 2층의 방으로 돌아가서는 침대 위로 쓰러졌다.
코우자쿠의 등의 문신과, 수많은 상처들.
그것들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아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있으니, 방의 문이 열렸다.
……코우자쿠다.
나는 그 즉시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상하게 긴장감이 들어서 코우자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샤워실에 건조기가 있어서 다행이야. 급속 건조로 바로 말랐다고.”
코우자쿠의 말투는 완전히 평소대로다.
그러니, 나도 평소와 똑같이 아무렇지 않게 맞장구를 치면 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아무래도 그럴 기분이 들지 않는다.
벽을 마주본 채로, 나는 입을 열었다.
“……코우자쿠.”
“응?”
“……너 말야.”
“왜, 무슨 일이야?”
“너, 뭘 숨기고 있는 거야?”
“…………,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말 돌리지 마.”
“………….”
“나, 지금……. 어떻게 널 믿으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됐어. 자신이 없어. 난 너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까.”
……아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 그 사이에도 입이 멋대로 움직인다.
“네가 미도리지마에 없었던 때의 일을 나는 몰라. 알고 싶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고…….”
“지금, 우리들은 토우에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상황이 아냐. 하지만…….”
“……널 믿을 자신이 없어. 네가 날 믿고 있을 거라는 자신도 없다고.”
“아오바…….”
“……윽.”
말을 입 밖에 내뱉고는 초조한 마음이 들어서, 나는 몸을 일으키고 코우자쿠를 보았다.
코우자쿠는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발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후회로 가슴이 조여든다.
내가 변명을 하고자 입을 뗌과 동시에 코우자쿠가 입을 연다.
“도저히.”
“………….”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어. 미안, 아오바…….”
괴로움이 묻어나오는 그 말에는 나에 대한 배려와, 이전과 다름없는 거절이 담겨있었다.
“너를 힘들게 한 건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해. 나도 날 때리고 싶을 정도야. 네가 날 믿을 수 없다는 것도…….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어.”
“하지만, 널 돕고 싶다는 내 마음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어.”
“그러니까, 그것만은 믿어줘. 무슨 제멋대로인 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싶겠지만……. 부탁해. 아오바.”
“………….”
“……알았어.”
그렇게 대답하는 것밖에는……,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어도, 코우자쿠에게는 내 말이 닿지 않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표면을 살짝 스쳤을 뿐, 우리들의 거리는 벌어진 그대로다.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이상, 내가 파고들어갈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분 상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오늘은 그만 자는 편이 좋겠어. 옆방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날 불러.”
“……아아.”
“……잘 자.”
코우자쿠가 방에서 나간다.
조심스럽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귓가에 몹시도 커다랗게 울렸다.
나는 질끈 눈을 감고, 이불로 얼굴을 파묻었다.
코우자쿠는 나에게 마음을 써주고, 나는 코우자쿠를 믿고 싶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엇갈리고 마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이렇게 조바심을 내고 있는 걸까……?
……사실은, 이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플라티나 제일에 온 것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태평하게 이런 일로 고민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고방식을 쉬이 바꿀 수가 없다.
코우자쿠에게 심한 말을 내뱉고, 무엇을 하러 온 건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건 오히려 내 쪽이 아닐까?
“…………, 젠장……!”
자신을 향한 소화되지 않는 분노를 내뱉고, 나는 물밀 듯이 밀려드는 자기혐오와 후회의 감정을 견디는 것에만 몰두했다.
“으으, 흑, 으으, ……흑.”
“으아앙, 흑, 으으, 끅…….”
“할머니……. 언제 오는 거야……, 흐아앙…….”
“다섯 시에는 온다고 했으면서……. 할머니…….”
“아오바!”
“………….”
“이런 데 있었던 거야? 여기저기 찾아 다녔었어. ……근데 아오바, 눈이 빨개. 우는 거야?”
“………….”
“……응?”
“…………, …….”
“괜찮아, 천천히 말해도. 기다릴 테니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얘기해.”
“…………어.”
“응?”
“……아, 안, 울어.”
“……하하, 거짓말. 울고 있잖아.”
“안 울어!”
“알았어, 그럼 안 우는 걸로 할게. 근데, 왜 그러는 거야. 무슨 일 있었어?”
“………….”
“응?”
“……아무것도, 아냐.”
“거짓말. 말 안하면 타에 씨한테 아오바가 거짓말했다고 이를 거야.”
“…………엣.”
“……할머니가, 안 와.”
“타에 씨가?”
“다섯 시에는 온다고 했으면서…….”
“지금은……, 벌써 일곱 시네.”
“우우…….”
“괜찮다니까. 바빠서 좀 늦으시는 거겠지. 조금만 기다리면 돌아오실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마.”
“안 울어!”
“그래 그래, 안 우는 거였어. 아, 그럼 말야, 타에 씨가 오실 때까지 나랑 놀자.”
“………….”
“그럼 시간도 금방 갈 거고. 그치?”
“………, 응.”
“자, 손.”
“지지 마, 아오바.”
“………….”
“외로운 거나 슬픈 거나, 그런 거에 지지 마. 우리들, 더 강해져서 타에 씨랑 엄마를 지켜드리지 않으면 안 되잖아.”
“응…….”
“좋아, 그럼 우선 누가 그네 더 높이 타나 시합이다!”
“………….”
“응?”
“코우자쿠도, 지지 말, ……아.”
“오우!”
……어쩐지, 몹시도 그리운 꿈을 꿨다.
몸을 일으키면서, 나는 방금 꾼 꿈의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그건 코우자쿠가 미도리지마에 있었을 때, 어린 시절의 꿈이다.
내가 코우자쿠와 만나게 된 것은, 우리집 근처로 그 녀석이 이사를 오고서였다.
코우자쿠는 어머니와, 나는 할머니와 둘이서 살았기에, 자주 함께 놀거나 서로의 집을 오가곤 했다.
할머니가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어서, 나도 그것에 꽤나 익숙해진 것처럼 굴었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에 몹시도 불안해지는 일이 가끔씩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바쁘니까 방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외로운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을 기댈 사람이 할머니밖에 없었다는 것도 있다.
그러나 불안이 억제되지 않으면 가만히 있을 수 없어져서, 집에서 빠져나와 어디선가 울곤 했다.
그럴 때, 항상 날 찾으러 와주었던 것이 코우자쿠였다.
코우자쿠는 내가 어디에 있어도 반드시 찾아내주었다.
어렸을 때,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해서, 쉬이 입을 다물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코우자쿠는 언제나 참을성 좋게 내가 말을 꺼내는 것을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할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꼭 함께 있어주었다.
공원에서 같이 놀아주거나, 코우자쿠의 집으로 데려가주었다.
그것이 굉장히 많이 의지가 되어서, 나는 코우자쿠가 멋있는 히어로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말하기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코우자쿠는……, 예전부터 날 이해해주고자 했었지.
내가 하는 말을 듣고자 언제까지고 기다려주고, 내 페이스에 맞춰주려고 했다.
내가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 내가 있는 곳보다 조금 앞에 있으면서 날 기다려주었다.
“………….”
우리들은 어른이 되고서, 무언가가 변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제까지고 어린 시절과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있다.
오래간만에 그리운 옛 일을 떠올리게 하는 꿈을 꾸고, 그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였을 때의 우리들에게는 가능했고, 어른이 된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불가능하게 된 것.
그것은……. 상대방을 순수하게 믿는 일이다.
어른이 되니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 많아져서, 상대방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에 끼워 맞춰서 추측하게 되었다.
그 추측이 어느 사이엔가 단정으로 변하고…….
조금씩 엇갈려가는 것이다.
코우자쿠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 사실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코우자쿠가 나를 돕고 싶다는 말을 건네준 그 마음만큼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때 코우자쿠의 얼굴은 몹시도 진지했다. 그렇기에 나는, 코우자쿠의 그 마음을 믿는다.
코우자쿠를 믿고 싶다.
내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언제나 코우자쿠가 날 기다려주었던 것처럼.
“……좋아.”
언제까지고 꿈의 여운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가, 렌을 기동시켰다.
‘안녕, 아오바.’
“안녕. ……응?”
이불 위에 내 자켓이 놓여있다. 자켓을 집어 드니 좋은 세제 향이 났다.
어제, 코우자쿠가 자신의 기모노랑 같이 빨아준 것이겠지.
나는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자켓을 들고서, 방에서 나왔다.
방금 그 꿈이 동기가 되어서, 코우자쿠에게 말을 걸고자 문 앞에 선다.
언제나처럼, 평범하게.
심호흡을 하고서 문을 노크한다.
조금 기다려본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설마.
“……앗.”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나는 달려드는 듯한 기세로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또. 혼자서 나간 건가.
가슴이 찌르는 듯이 아프다.
코우자쿠를 믿자고 방금 막 결심한 참인데……. 이렇게 되면 역시 충격을 받고 만다.
그런 자신이 너무 싫어서 정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되면 코우자쿠만을 의심해서 끝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 아닐까라는 느낌도 든다.
이렇게 빈번하게 말없이 외출을 하는 것은, 뭔가 중대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일에 휘말렸을 가능성도 있다.
이 녀석, 한 번 떠맡게 된 일은 절대로 무시 못 하는 성격이니까…….
나는 천천히 방의 문을 닫았다.
……코우자쿠를 믿는다.
방금 막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코우자쿠를 믿지 않으면 안 된다.
“렌. 코우자쿠를 찾으러 가자.”
‘알았다.’
토우에와 관련된 일도 있지만, 지금은 어쨌든 코우자쿠를 우선하고 싶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둘 다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이대로 코우자쿠를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만약을 위해 코우자쿠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1층으로 내려가 글리터에서 나왔다.
코우자쿠를 찾는다고 해도, 주변의 지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 에리어에서는 어디로 가야 좋을지 감히 잡히지 않는다.
일단 코우자쿠가 여자와 만났던 장소까지 가보기로 했다.
메인스트리트는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행복감으로 충만해서, 나는 아무리 여기서 오래 머물러도 이 분위기에는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길을 서둘렀다.
옆길로 들어가, 전의 그 네모난 건물 앞으로 나온다. 건물 주변에 코우자쿠처럼 보이는 사람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간 것일까, 아니면 여기에 없는 것일까.
“어디로 간 거야…….”
아까 보낸 메일에 대한 답장도 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이제부터는 닥치는 대로 에리어 안을 뒤지며 돌아다니는 수밖에는 없다.
그러고 보니 코우자쿠가 이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었지. 그 말도 궁극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을까.
건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으니,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 ……!”
“여어, 또 만났네.”
뒤를 돌아보자, 나에게 카드를 주었던 그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서있었다. 남자가 싱긋 미소를 짓자 여우처럼 째진 눈이 가늘게 좁혀진다.
“아, 아아. 안녕하세요.”
“어제는 재밌었어?”
“……네에, 뭐.”
“그래. 그럼 다행이고. 오늘은 어쩐 일이야? 안으로 들어갈 거면 어제 내가 줬던 카드로 들어갈 수 있어.”
“아뇨,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서. 잠깐 사람을 찾는 중이라.”
“친구?”
“대충 그렇습니다.”
“그래. 괜찮다면 내가 도와줄까?”
“헤? 아뇨, 아무리 그래도 그건 죄송한데.”
“지금부터 발로 움직여서 찾자는 말이 아니야. 그 친구의 겉모습이나 특징을 물어보는 것뿐이야.”
“나도 볼일이 있으니까, 좀 더 주의해서 주변을 살펴보는 정도밖엔 못 하지만.”
“……아뇨, 그래도.”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 안 해도 괜찮아. 무리하게 물어볼 생각도 없고. 그러니까 그렇게 복잡한 얼굴 하지 마.”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는 없으니까. ……후후, 너, 마음이 착하구나. 난 그런 애가 좋아. 흥미가 생겨.”
“그렇지만 주의하는 편이 좋아. 너는 조금 무방비하니까. 긴장을 늦추면, 믿고 있던 사람한테 갑자기……, 덥석 하고.”
“먹혀버릴지도 몰라?”
“……아아.”
“……이런.”
그때까지 싱글싱글 웃던 남자가 돌연 정색을 하고, 내 뒤쪽을 보았다.
뭐지?
내가 돌아보려고 하자, 남자는 바로 웃는 얼굴로 되돌아왔다.
“……자. 그럼 나는 안에 들어가 봐야 해서. 너도 사람 찾는 거 힘내.”
“고맙습니다.”
“또 봐.”
남자는 지면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독특한 발걸음으로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그다지 나지 않는다. 기품 있는 걸음걸이로군.
기모노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코우자쿠의 걸음걸이가 연상된다. 그 녀석은 어느 쪽이냐 하면 큰 보폭으로 척척 걷는 편이니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건물로 들어가는 남자의 등을 눈으로 좇는다.
코우자쿠가 이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했을 때, 분명 저 남자 이야기가 나왔었지.
내가 남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코우자쿠가 뭔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얼굴을 했는데…….
‘아오바.’
렌이 가방 속에서 얼굴을 내민다.
“왜 그래?”
‘조금 전에 베니가 이 근처에 있었던 것 같아.’
“에!?”
‘베니 특유의 날개 소리가 들렸어.’
“그 말은 코우자쿠도 이 근처에 있었단 건가.”
‘아마도.’
“찾아보자.”
아직 멀리 가지 못하고 이 부근에 있을지도 모른다.
“뭐 하는 거야……, 코우자쿠……!”
이래서는 마치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을 하는 것만 같다.
나는 곧바로 골목 쪽으로 돌아갔다.
그 후, 이곳저곳을 뒤져보았지만 코우자쿠는 발견되지 않았다.
완전히 녹초가 되어서 메인스트리트로 돌아왔을 때, 물방울이 얼굴 위로 떨어졌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 것 같다.
플라티나 제일의 날씨는 컨트롤되고 있으니, 지금부터 비가 내리도록 프로그램된 것이겠지.
“옷 젖기 전에 얼른 돌아갈까.”
‘아아.’
비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구태여 이런 곳에서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비가 내리면 코우자쿠도 글리터로 돌아올지도 모르고…….
그런 생각에, 나는 빠른 걸음으로 메인스트리트를 걷기 시작했다.
글리터에 도착할 즈음에는, 빗줄기가 상당히 거세진 상태였다.
“꽤 젖었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가까스로 한숨 돌린다.
옷이 젖어서 춥다.
일단 겉옷을 벗고, 샤워실에서 목욕수건을 가지고 와서 물기를 닦는다.
“렌은 안 젖었어?”
가방에서 파란 털 뭉치를 꺼내들고 손으로 만져본다.
‘괜찮아.’
“그러네.”
고장이 날 염려는 없는 것 같다.
렌을 바닥에 내려놓고, 수건을 목에 걸고서 계단을 올라간다.
거실과 복도를 지나쳐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앉았다.
별 생각 없이 창문 쪽으로 시선을 던진다. 창문에는 빗방울이 맺혀있지만, 완전 방음 설비가 되어있는 것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코우자쿠, 괜찮으려나. 안 젖었을까…….
“!”
지금 그 소리……, 현관에서 난 소리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방에서 얼굴을 밖으로 내밀었다.
……코우자쿠다.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
이제 오는 거야? 그렇게 말을 붙이려다가, 도중에 말을 삼킨다.
코우자쿠는 온몸이 흠쩍 젖은 상태였다.
표정이 험악하고, 평소의 온후한 분위기가 아니다.
어딘가에 소중한 것을 떨어트리고 만 듯한, 그런 어두움이 코우자쿠를 에워싸고 있다.
코우자쿠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약간 긴장감을 느끼면서 방문 어귀에 서서, 코우자쿠를 기다렸다.
코우자쿠가 내 눈앞에서 천천히 발을 멈춘다.
뭐지, 이 묘한 위압감……. 말을 걸기 힘들다.
[ 무언가 말을 건다 ] → 선택
[ 말없이 지켜본다 ]
“……너, 완전 젖었잖아.”
“………….”
“감기 걸리잖아? 자.”
내심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말투를 평소처럼 꾸미고, 나는 목에 걸고 있던 수건을 내밀었다.
내 팔이, 코우자쿠에게 붙잡힌다.
“……앗.”
세게 잡아당겨지는 바람에 균형을 무너트리고, 나는 코우자쿠의 품으로 쓰러졌다.
당황스러움에 허둥지둥 고개를 들고서는……, 흠칫 놀란다.
정말로 코우자쿠인 건가?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음울한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코우자쿠의 앞머리에서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창백한 뺨을 타고서 턱으로 흘러내린다.
“…………, ……코우자쿠?”
“……어떻게 된 거야.”
“에?”
“그 녀석이랑, 무슨 이야기 했어.”
“그 녀석이라니……, 잠깐……!”
갑자기 코우자쿠가 내 양쪽 어깨를 붙잡고, 난폭하게 체중을 실어왔다.
한 번 휘청거린 나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을 치고, 코우자쿠와 함께 침대로 쓰러졌다.
“무거워……, 어이 코우자쿠……!”
“그 녀석이랑 무슨 이야기 했어…….”
“코우자쿠……?”
“그 녀석이랑…….”
“그 녀석? ……윽!”
코우자쿠가 내 양손을 시트 위로 난폭하게 밀어붙인다.
그 녀석, 그 녀석이라니……. 아까부터 대체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거지?
것보다, 코우자쿠의 눈.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코우자쿠, 어이……, 괜찮아?”
“…………윽.”
코우자쿠가 내 어깨로 얼굴을 바싹 가져다댔다. 그 순간, 목에 강한 통증이 스친다.
“아파!”
뭐지……!? 깨물린 건가!?
그 후, 똑같은 장소 위로 미지근한 감촉이 스쳤다.
“뭐, 하는 거야……!”
축축한 것이 깨물린 탓에 따끔거리는 그곳을 되풀이해서 어루만져간다.
귓가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젖은 소리와, 거친 호흡.
“코우자쿠……! 그만하라니까……!”
내가 발버둥을 치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코우자쿠는 내 목덜미를 핥고 때때로 그 위로 이를 세웠다.
어째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윽, 어이……!”
옷이 걷어 올려져서, 본격적인 초조함이 느껴진다.
어떻게 된 거지?
뭐 하는 짓이야, 코우자쿠……!
“………….”
코우자쿠가 다시금 내 목덜미 위로 혀를 놀리고서, 내 귓가에서 자신의 입술을 핥는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확실히 위험하다.
“코우자쿠……! 어이, 무슨 생각 하는, 거야! 그만두, 라니까……!”
나는 진심으로 코우자쿠를 밀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으윽………….”
“!”
“앗……, 윽!”
몸부림치는 나를 위협하는 듯이, 코우자쿠가 다시 한 번 내 몸을 침대로 강하게 밀어붙인다.
코우자쿠의 손톱이 내 손목을 거세게 파고들고, 그 인정사정없는 힘에 핏기가 싹 빠져나간다.
코우자쿠…….
내 말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설마……, 제정신을 잃은 건가?
겉모습은 코우자쿠인데도, 그 안의 인격은 다른 사람으로 뒤바뀌고 만 것 같다.
……다른 사람.
그런 느낌이 든 순간, 몸 안쪽에서 싸늘한 공포가 솟아올랐다.
어떻게 하면 좋냐고……!
“…………, …….”
코우자쿠가 희미하게 낮은 신음을 내고, 어중간하게 말려올라간 내 T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 어이, ……윽.”
까칠한 손바닥이 난폭하게 살결을 문지르고, 가슴을 주무른다.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나의 살갗과 코우자쿠의 손바닥 사이로, 미지근한 밀착감이 생겨난다.
“비, 켜……! 아니 정말로 뭐 하는……, 앗……!”
귀가 핥아지는 감촉에 목을 움츠린 순간, 뜨거운 숨이 내뿜어졌다.
“후………….”
“코우자쿠, ……코우자쿠!!”
“………….”
“……윽, 읏……!”
코우자쿠는 무시무시한 힘으로 내 저항을 봉쇄하고는, 내 귓구멍으로 혀를 집어넣고 마구 핥아댔다.
질척질척 거리며 귓속으로 달라붙는 듯한 물소리가 내 고막을 휘저어, 사고가 산산이 흩어진다.
필사적으로 얼굴을 돌리려 하자, 하반신에 소름끼치는 감각이 느껴졌다.
“……윽.”
코우자쿠의 손이 내 바지와 속옷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나의 것을 세게 움켜쥐었다.
“바, 보……, 이거 놔, 그만해……. 윽!”
완전히 혼란 상태에 빠지면서도 필사적으로 몸을 비튼다. 하지만, 코우자쿠는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그것도 하필이면……, 코우자쿠와.
“주의하는 편이 좋아. 너는 조금 무방비하니까. 긴장을 늦추면, 믿고 있던 사람한테 갑자기……, 덥석 하고.”
“먹혀버릴지도 몰라?”
그 기모노를 입은 남자의 말이 뇌리에 떠오른다.
왜……. 어째서 이렇게 된 거냐고…….
코우자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전혀 알 수 없다.
나는 정말로……. 코우자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으윽.”
갑자기 날카로운 두통이 스쳤다.
머리가…….
──── 부숴라 ────
──── 부숴라 ────
격렬한 두통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가운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 그럴 바에는 차라리 ────
──── 부숴버려라 ────
……싫다.
──── 그 녀석을 부숴버려라 ────
싫다. 절대로, 싫다.
“………….”
“아……, 앗!”
코우자쿠의 손이 나의 그것을 난폭하게 문지르기 시작한다.
미약한 쾌감이 스치고, 그런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싫다…….
이런 건, 너무…….
비참하잖아……!
“싫어, 제발 그만해……!”
──── 부숴라 ────
──── 부숴라 ────
그 무엇도 부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부서지고 만다. 나와 코우자쿠의 사이에 있는 것이.
부수고 싶지 않은데도. 어째서.
싫다.
그만해…….
──── 부숴라 ────
──── 그 녀석을 부숴라 ────
제발 그만해……!
“……그만해, 코우자쿠!”
억지로 쥐어짜내는 듯이 소리를 치자, 어째서인지 코우자쿠의 움직임이 뚝 그쳤다.
바로 전까지 내 말 같은 건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는데, 어째서…….
안이 텅 비었던 코우자쿠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잡히고, 나를 인식한다.
“…………핫.”
코우자쿠는 자기 아래에 있는 나를 보고, 그 사실을 지금 막 깨달은 것처럼 놀란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코우자쿠의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느릿하게 열렸다가 닫힌다.
“……윽.”
그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
코우자쿠의 얼굴이 내 주먹을 받고 그대로 옆으로 돌려진다.
“……윽!”
주먹으로 전해지는 충격을 느끼고서야, 번쩍 정신이 든다.
껄끄럽게 됐다…….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어. 미안.
그렇게 말을 꺼내려 하다가, ……입을 다문다.
코우자쿠를 친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 다른 한손으로 세게 움켜잡는다.
어째서 주먹을 날린 것인지,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몸 어딘가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그런 다음…….
사과하고 싶다. 하지만, 사과할 수 없다.
그 정도로……. 나는 크나큰 충격을 입은 상태였다.
코우자쿠……. 왜 이런 짓을……?
그런 의문만이 머릿속에서 오도카니 떠오를 뿐, 그 이상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대답을 요구하듯이 코우자쿠를 바라본다.
뭐든 좋다. 어쨌든 코우자쿠의 입에서 무언가 말이 나오는 것을 듣고 싶다.
화를 내도 좋고 원망을 해도 좋다.
뭐든 좋으니 나를 상대로 하는 마음이 담긴 말을 터트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코우자쿠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그 어떤 말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쳤던 뺨이 점차로 붉은색을 띠기 시작한다.
바라지 않았던 침묵만이 점점 쌓여간다.
“……왜, ……왜.”
우는 것처럼 말끝이 떨린다.
“……윽,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순간적으로 솟구친 것은, 슬픔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해받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다.
평행선은커녕……, 멀어져간다.
코우자쿠는 세차게 미간을 좁히고는 눈을 감고, 천천히 내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방에서 나갔다.
“………….”
문이 닫히고……, 멈춰있었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숨 쉬기가 힘들어져서, 나는 어깨를 떨며 숨을 헐떡였다.
“하…….”
흐트러진 숨을 내뱉고, 몸을 웅크리는 것처럼 침대 위에 눕는다.
아직 머리가 아프다. 눈을 감자, 통증의 파동이 또렷하게 감지된다.
머릿속이 질척질척하게 녹아서 뒤섞여버린 것만 같다.
긴장과 공포의 여운이, 귀 안쪽을 지잉 하고 마비시켰다.
코우자쿠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여하튼 나에게 심한 짓을 하고자 하는 충동만이 일직선으로 전해져왔다.
여전히……, 목덜미와 귀에 축축한 감촉이 남아있다.
다른 사람 같았던 코우자쿠. 그랬던 코우자쿠가, 내가 소리를 치자 갑자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좀 전의, 그 감각.
──── 부숴라 ────
혹시 그것은……. 스크랩의 힘이 작용한 건가?
그래서 코우자쿠가 제정신으로……?
내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힘이 있다고 할머니가 이야기했었다.
상대방의 머릿속에 직접 작용해서,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일이 가능하다고.
사용 방법에 따라서는……, 사람의 의식을 파괴해 죽일 수도 있는 힘.
그 힘이 지금은 날 도와준 건가?
………….
만약 그때, 코우자쿠가 이성을 되찾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몸에 공포와 비참함의 감각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무서웠다.
코우자쿠가 제정신을 잃은 것도 그랬지만…….
나와 코우자쿠의 관계가 깨져버릴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지? 어떤 식으로 코우자쿠와 접하면 되는 거지?
애초에 일이 이 지경에 이른 상태에서, 나와 코우자쿠의 관계가 아직 깨지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 아닐까.
이미 깨지고 만 것이 아닐까.
이전과 같은 관계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나와 코우자쿠는…….
“…………후.”
그런 건, 싫다.
그런 짓을 당했어도, 도저히 코우자쿠를 미워할 수 없다.
솔직히, 엄청나게 무서웠던 데다 충격도 꽤 받았다.
하지만, 그보다 어째서 코우자쿠가 그렇게 돌변하고 만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그 때문에 마음이 괴롭다.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코우자쿠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 건가.
여전히 날보고 입 다물고 보고만 있으라는 거냐고…….
……상대방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고 기원하면, 상대방의 머릿속으로 자신의 의식을 들여보낼 수도 있다.
내 힘으로는 그런 일도 가능하다고, 할머니가 말했었지.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코우자쿠에 대해 알고 싶다고 강하게 염원하면 더 많은 것들에 대해 알 수 있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가능하면 그 힘은 사용하고 싶지 않다.
──── 부숴라 ────
──── 그 녀석을 부숴라 ────
두통과 함께 울렸던, 누군가의 목소리.
마치 내 의식을 날려버리려 하는 것 같았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늪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듯한, 그런 감각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머리를 싸매고 있으니, 문 쪽에서 뭔가를 박박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침대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간다.
발치를 보니, 파란 털 뭉치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보고 있었다.
“……렌.”
‘아오바, 괜찮아?’
“……응.”
나는 몸을 숙이고, 렌을 안아들었다.
평소와 다름이 없을 터인 촉감이 지금은 유난히 가슴에 와 닿아서, 그 털 속으로 얼굴을 묻는다.
코우자쿠에게 붙잡혔던 팔이 새삼스레 그 사실을 상기하는 듯이 욱신거렸다.
‘아오바?’
“……괜찮아.”
스스로를 타이르는 것처럼 혼잣말을 내뱉고, 나는 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그렇게 외지 않으면,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말 것 같았다.
나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다시금 렌을 안아들고서 1층으로 내려갔다.
소파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들고, 렌을 그 안에 집어넣는다.
‘나갈 거야?’
“응. 잠깐……. 바깥 공기를 쐬고 싶어.”
‘그래.’
렌의 머리를 쓰다듬고, 현관에서 밖으로 나간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빗발이 약해진 것 같다.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자, 불안정했던 감정이 조금 가라앉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우산도 쓰지 않고서, 나는 비 내리는 거리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