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제 와서 또 노이즈냐!
사실 노이즈 배드 엔딩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제 컴퓨터에서는 그냥 화면이 암전되고 끝나서 =.,= 굳이 번역할 게 없겠구나 싶어서 그냥 넘어갔었어요. 그런데 노이즈의 다른 배드 엔딩에 대해 미카님께서 제보를 해주셔서, 혹시...? 싶어서 게임을 삭제하고 다시 인스톨하고서 해보니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배드 엔딩잌ㅋㅋㅋㅋㅋㅋㅋ 또 있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헤헤 어쨌거나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T 제보해주신 미카님 감사합니다!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엔딩 부분에 선택지까지 포함해서 올리겠습니다.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타워의 입구 근처까지 온 우리들은 반대쪽으로 나아가, 종업원용 통용구로 향했다.
통용구는 타워 뒤쪽에 있는 탓에 일반 입장객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경비원의 수도 적었다.
차량용 철창 게이트 앞에 두 명의 경비원이 서있다.
우리들은 가까이에 있는 골목으로 숨어들어, 낌새를 살폈다.
“우선 저희들이 돌진해서 경비원들을 붙들어놓겠습니다. 코우자쿠 씨와 아오바 씨는 그 틈에 안으로 들어가세요.”
“괜찮겠어? 저쪽은 총 같은 걸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구 주민구의 경찰관한테 들은 얘긴데, 여기 경비원은 총을 들고 있으면 손님들 눈에 인상이 안 좋게 비친다고, 시시한 소형총 밖에는 안 들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래. 그래도 주의하라고. 너희들만 믿는다.”
“옙!”
“좋아, 가자!”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이 골목에서 밖으로 뛰쳐나가, 차량용 게이트를 향해 달린다.
“뭐, 뭐야!?”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요!”
당황하는 경비원들을 향해 베니시구레 멤버들이 덤벼들고, 눈 깜짝할 새에 난투가 벌어진다.
“우리들도 가자!”
“아아!”
나와 코우자쿠도 골목 밖으로 뛰쳐나가 통용구로 향한다.
도중에 다른 경비원들이 뛰어나와서, 우리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거기 서!”
“저리 비, 켜!”
경비원이 치켜든 경찰봉을 코우자쿠가 한쪽 팔로 막고, 경비원의 명치에 한 방 먹인다.
“으윽.”
“젠장, 날뛰지 마라!”
“우왓.”
내 쪽으로도 경비원이 돌진해 와서, 옆쪽으로 몸을 날리는 듯이 피했다.
목표물을 붙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경비원의 등에 발차기를 날린다.
“크악!”
“하나 더!”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진 경비원의 등을 발꿈치로 찍어 누르자, 경비원이 지면으로 쓰러졌다.
주변에서는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이 경비원의 몸 위로 올라타거나 이리저리 휘두르는 등 한껏 신이 나서 날뛰어대고 있다.
“아오바!”
코우자쿠가 통용구의 문을 향해 달리며 내 이름을 부른다. 곧바로 코우자쿠의 뒤를 쫓았다.
타워 내부로 이어진 문에는 인증 모니터가 달려있었다.
“이거, 우리들 ID로는 안 되겠지.”
“그렇겠지. 이렇게 되면 때려 부숴야 하나?”
‘아오바, 메일이다.’
렌이 가방에서 얼굴을 내민다.
“이런 때에……, 앗, 에?”
‘ / 납치된 공주’
‘(제목 없음) / 코우자쿠’
‘플라티나 제일로 가는 지름길 / 하가 씨’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도와주세요 / 납치된 공주’
메일을 무시하려고 하니, 코일이 강제적으로 기동되어 메일이 표시되었다.
“뭐야 이거, 렌.”
‘원인 불명의 작동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
납치된 공주 /
마음 의 열쇠 는
모두 개방 된다
-
“마음의, 열쇠?”
“오?”
갑자기 록을 해제하는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갑자기 열렸어. 고장인가?”
“지금 그 메일, 마음의 열쇠가 개방됐느니 어쩌니 하고 쓰여 있었는데…….”
“그거랑 이거랑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안으로 들어가자고.”
코우자쿠가 팀 멤버들을 돌아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높은 층까지 가주세요! 저희들도 따라가겠습니다!”
경비원 위에 올라탄 멤버가 한쪽 손을 들고서 붕붕 흔들었다.
코우자쿠가 그 멤버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답을 하고, 우리들은 문을 통과했다.
문의 건너편에는, 하얗고 긴 복도가 이어져있었다.
여기가 오벌 타워인가…….
타워 안에는 일반인에게 개방된 에리어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뒷문으로 들어온 탓인지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의 모습은 없다.
그럼에도 사람의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을 보면, 순회하는 경비원이 있는 것이겠지.
우리들은 주변의 낌새를 살피면서, 신중하게 복도 위를 걸어갔다.
“……뭔가 이상하네.”
“아아. 이렇게 소란을 피웠는데, 경보마저 안 울리다니 어떻게 된 일이지.”
“………….”
입 밖에 내지 않아도,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똑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통용구의 문이 멋대로 열린 것 하며……. 역시 함정이 아닐까?
수상쩍게 여기면서도 계속해서 걸어나가자, 복도 끝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이 보였다.
엘리베이터 옆에는 경비원 두 명이 서있다. 발각되기 전에 옆길로 숨어들어가 낌새를 살피고자 했다.
……허나.
“어이, 거기서 뭘 하고 있지.”
“!”
“……위험하게 됐네.”
……숨는 게 조금 늦었던 모양이다. 발소리가 엘리베이터 쪽에서 이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코우자쿠와 한 번 눈을 마주 보고서,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코우자쿠가 먼저, 그 다음으로 내가 복도로 뛰쳐나간다.
“너희들, 누구……, 우왓!”
코우자쿠가 느닷없이 경비원 한 명을 냅다 주먹으로 후려갈긴다.
다른 편에서 내가 나머지 한 명의 경비원을 발로 차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팔을 뻗어, 엘리베이터를 호출하는 버튼을 누른다.
“서라, ……윽!”
“잠깐 자고 있으라고.”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경비원의 목덜미로 코우자쿠가 손날을 날린다.
코우자쿠는 이어서 등에 지고 있던 검을 잡고서, 다른 한 명의 경비원의 배를 있는 힘을 다해 칼집으로 쳤다.
“으윽, 크헉!”
“코우자쿠!”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나는 코우자쿠의 이름을 부르고서 먼저 엘리베이터에 타고, 곧바로 문을 닫는 버튼을 눌렀다.
닫히기 시작한 문틈으로 코우자쿠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후우. 십년감수했네.”
“위기일발이었어. 제일 위층이면 되는 거지.”
“아아.”
가장 위에 있는 층의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기 말야. 문득 생각난 건데.”
“응?”
“너희 팀 녀석들, 왜 제일 높은 층이라고 한 걸까. 거기에 토우에가 있다는 걸까? 아니면 류호인가.”
“……둘 중 하나는 있는 거 아닐까? 직접 수색을 했거나 누구한테 들었거나 했겠지.”
“그렇, 겠지…….”
“………….”
코우자쿠가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침묵한다.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을 의심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좀 전부터 계속해서 그것이 신경 쓰였다.
정말이지 그 녀석들, 왜 제일 높은 층이라고 한 거지……?
뭐……. 높으신 분들은 대개 꼭대기에 있는 법이니까, 그런 맥락에서 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정지한다.
문이 열린 순간, 또 경비원들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긴장감이 들었다.
……하지만, 열린 문의 건너편에는 하얀 복도가 이어져있을 뿐이었다.
만약에 대비해 좌우로 시선을 돌려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딱히 누군가가 있는 기척은 들지 않는다.
나와 코우자쿠는 말없이 발을 내딛었다.
복도를 걸어가자, 정면에 커다란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방은 없는 것 같으니, 플로어 전체가 홀처럼 되어있는 장소인 것이겠지.
우리들은 문을 조금 앞에 두고서 발을 멈췄다.
“……이 녀석들, 늦네.”
코우자쿠가 불쑥 혼잣말을 내뱉는다.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을 말하는 것이다.
나중에 뒤따라온다고 말은 했지만, 괜찮은 것일까.
설마……. 어디서 붙잡히거나 하진 않았겠지.
그렇지만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딘지 찝찝한 불안이 감도는 가운데, 우리들은 문 앞으로 나갔다.
그 장소는 내가 생각했던 대로, 약간 큰 크기의 홀로 꾸며져 있었다.
중앙에는 한 명의 남자가 서있다.
“…………, 류호.”
류호는 내가 알고 있는 명랑한 표정이 아닌, 눈을 날카롭게 좁히고서 웃음을 띤 얼굴을 하고 있었다.
“코우자쿠. 반드시 올 줄 알았어.”
“이 자식…….”
“류호…….”
“여어, 아오바 군도 와줬네. 이거 정말 기쁜걸.”
“………….”
“까불지 마, 이 자식. 아오바한테 함부로 손 못 대게 할 테니까 말야.”
“그건 그저 단순히 네 생각에 불과하잖아? 내가 아오바 군을 손에 넣고 말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어.”
“류호……!”
코우자쿠가 거친 소리를 내며, 등에 진 검에 손을 올렸다.
코우자쿠 주위의 공기가 변한다. 또다……. 또 코우자쿠가 이상해진다.
“으윽………….”
코우자쿠가 칼집에서 검을 빼, 양손으로 붙들고 자세를 취한다.
코우자쿠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새겨지고, 무시무시한 살기가 흘러넘쳤다.
“내가 아오바 군을 손에 넣으면, 네 뒤를 이을 두 번째……. 아니, 너와는 또 별개의 걸작이 탄생하게 되겠지.”
“멋대로 지껄여 보시지! 아오바한테는 손가락 하나도 못 대!”
“그런 식으로 감정에 몸을 내맡기고 화를 내서는 큰일 난다고. 내가 했던 말, 잊어버린 거야?”
“시끄러!!”
코우자쿠가 울부짖을 때마다, 공기가 진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코우자쿠를 말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상태가 이상해졌을 때의 코우자쿠는, 마치 제 목숨을 깎아서 그것을 분노로 바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코우자쿠가 분노에 사로잡힌 채, 제정신을 되찾지 못한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막지 않으면 안 된다.
“코우자……!”
“……아오바 씨.”
“!”
뒤를 돌아보니, 어느 사이엔가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이 그곳에 서있었다.
“너희들…….”
멤버 중 한 명이 내 어깨를 붙잡는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그 얼굴을 보고서, 위화감을 느낀다.
……눈에 빛이 없다. 공허한 눈동자. 인형처럼 표정이 없는 얼굴.
이런 눈을 알고 있다. 본 적이 있다.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었을 때의 미즈키와 똑같다…….
“코우자쿠 씨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무슨 소리를……, 아니 이대로라면 저 녀석은!”
“이건 코우자쿠 씨가 스스로 바란 일입니다. 그걸 저지하면 재미가 없죠. 아오바 씨라고 할지라도 그것만큼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
“마지막까지 지켜보시죠……, 저희들과 함께.”
코우자쿠가 스스로 바란 일? 마지막까지 지켜봐?
……안 돼! 그런 짓을 했다간……!
“……윽, 이거 놔……!”
어깨를 붙잡은 손을 풀어내고자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다른 패거리들이 그런 내 몸을 완전히 제압하고자 했다.
“윽, ……코우자쿠!”
내 목소리가 들린 것인지, 코우자쿠가 이쪽을 본다. 그 눈에는 아직 희미하게나마 이성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재밌는 걸 가르쳐줄까.”
류호가 가벼운 몸놀림으로 나와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을 손끝으로 가리킨다.
“그 녀석들의 목덜미, 보여? 자그마한 상처가 있겠지. 아오바 군의 목에도 똑같은 게 있지.”
“!”
나는 억지로 얼굴을 움직여서, 옆에 있는 녀석의 목을 보았다.
확실히 굵은 바늘에 찔린 듯한 흔적이 있다. 내 목에도 똑같은 것이……?
그러고 보니……. 코우자쿠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굵은 바늘에 찔린 것 같은 자국이 있다고…….
“이 자식, 아오바랑 우리 팀 멤버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오바 군은 말이지, 클럽 입구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걸 봤을 때 첫눈에 반했어. 그래서 그만 순간적으로 충동이 들어서, 한 땀을 놓았지.”
“약간 정신이 흐트러지기 쉬워지는 종류의 약을 말이지. 아오바 군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어떻게 흐트러지는지 보고 싶어서.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도중에 네가 나타났지.”
“네가 여기에 와있다는 걸 알고서, 나도 오랜만에 진지하게 계획이란 걸 짰다고.”
“목적은 둘. 아오바 군을 어떻게 손에 넣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널 초조하게 만들어서, 부추길 것인가. 너에게 새겼던 문신을 키우기 위해서 말이지.”
“윽……!”
“널 맞아들일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자, 나는 구 주민구로도 몇 번 드나들었지. 네 동료들에게 약간의 장치를 해놓기 위해서 말야.”
“! 설마…….”
“그래. 내 바늘, 너도 자-알 알고 있겠지? 내 집념을 가득 담은 바늘은 피부에서 체내로 스며들어, 사람의 마음까지도 움직이지…….”
“그러기 위해서는 끝부분을 아주 약간만 찔러넣는 것으로 충분해. 찔린 쪽은 거의 아픔을 느끼지 않지. 벌레가 그 위에 앉은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뿐이야.”
“네가 내 방으로 들이닥쳤을 때, 그 녀석들은 이미 내 꼭두각시였다고.”
류호가 즐거운 듯이 웃으며 손뼉을 탁 친다.
그러자, 날 붙잡고 있었던 멤버들 가운데 누군가가 내 팔을 세게 비틀었다.
“앗…….”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까도 손벽을 치는 소리가 났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류호가 손뼉을 치는 소리로 팀 녀석들이 조종되고 있는 건가……?
“…………크윽.”
“팀 멤버들과 아오바 군을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도, 마침내 우리들 손에 의해 정해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자식, 절대로 용서 안 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겠어!!”
“후후. 너, 역시 내가 했던 말을 잊어버린 거지.”
“그 등의 문신을 새겼을 당시에는, 네가 아직 어린애였던지라 운 좋게도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하지만 성인이 되면 주의하라고, 확실히 그렇게 일러뒀을 텐데 말이지.”
“그렇지? ……어머니를 살해한 코우자쿠.”
“말하지 마!!!”
코우자쿠가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포효한다.
그 몸이 한층 크게 팽창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이 착각한 건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다.
“크윽,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코우자쿠의 온몸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채 그 몸을 다 뒤덮을 수 없게 된 겉옷이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찢어진다.
팽창된 상반신이 그대로 노출되고, 그 등에 새겨진 문신도 밖으로 드러난다.
그것을 보고……, 전율했다.
등의 왼쪽에 선명한 모란을 흩뜨려 놓고 있었던 문신이……,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해있다.
마치 껍질이 벗겨져 안이 그대로 노출된 살덩이처럼 붉게 물이 들어있고, 무늬나 형태도 다르다. 등에서부터 팔까지를 휘감는 것처럼 뻗어나와있다.
문신 그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크으으으윽…….”
거친 숨을 반복해서 내쉬는 코우자쿠의 눈은, 이젠 그 무엇도 보고 있지 않다. 그저 증오와 분노에 의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코우자쿠!!”
필사적인 마음을 담아 외쳐보아도, 코우자쿠에 귀에는 닿지 않는다.
“호오……. 이건 정말 훌륭하군.”
코우자쿠의 변화를 차분히 바라보던 류호가 만면에 미소를 떠올렸다.
“네게 새긴 문신은 말이지, 하나의 실험이기도 했지. 실험 같은 말을 사용하고 싶진 않지만……. 제안을 받았었지. 토우에로부터.”
“토우에……!?”
“문신은 그 사람의 업이며, 각인이다. 한 번 새기면 마지막까지, 평생 그것을 떠안게 되지. 그에 걸맞은 각오가 필요해. 새기는 쪽 또한 마찬가지지.”
“토우에는 줄곧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방법을 연구했었지. 그리고 어디선가 우연히 내 소문을 들었던 거겠지. 내게 이렇게 말을 걸어왔어.”
“문신으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건 가능하냐고 말야. 재미있는 발상이다 싶었지. 나도 그 말에 흥미가 솟아났어. 그리고 코우자쿠, 너를 그 실험대로 선택했지.”
“그 문신은 네 마음을 완전히 먹어치우고, 더 높은 차원의 승화를 보여주려 하고 있지. 감정에 몸을 내맡기지 말라고 그렇게 충고해주었는데도, 바보 같은 녀석.”
“문신은 너와 함께 성장했어. 네가 미성숙했을 동안에는 문신도 어렸으니, 네가 아무리 분노에 미쳐 날뛰어도 제정신을 되돌릴 수 있었지.”
“하지만, 네가 성인이 되면 문신 또한 성숙되지. 네가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문신은 그 분노를 남김없이 빨아들이고, 최후에는 마음까지도 완전히 먹어치우지.”
“그때, 문신은 네 심장과 일체가 되어 진정한 꽃을 피우는 거야. 네 목숨을 불태워 양식으로 삼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꽃을 말이지.”
류호가 정말로 기쁜 듯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생기가 넘치는 얼굴로 양팔을 벌린다.
“이미 내 생에는 한 치의 후회도 남아있지 않아. 네 이성과 내 집념이 충돌한 결과, 승자는 바로 나였어. ……자아, 그 대신에.”
“나의 혼, 가지고 가라.”
“……류호-------!!!”
“안 돼, 코우자쿠 그만해!!”
내 목소리는 코우자쿠에게 닿지 못하고…….
코우자쿠는 검을 쳐들고, 류호를 향해 돌진했다.
“코우자쿠……!!”
“…………윽!”
……불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격렬한 분노가 실린 코우자쿠의 검은, 한 치도 빗겨나가지 않고 똑바로 원수의 몸을 꿰뚫었다.
류호의 등에서 검의 끝부분이 튀어나오고, 선혈이 지면으로 뚝뚝 떨어진다.
“…………큭, …….”
앞으로 몸이 구부러진 류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허나, 류호는 웃고 있었다.
피의 거품이, 웃음과 함께 사방으로 튄다.
“……하하, 하……, ……자신의, 최고 걸작에게, 죽게 되다니……, 문신사로서, 최고의, 행복이, 군……, 윽!”
미소를 가득 띤 류호의 입술에서 대량의 피가 넘쳐흐르고…….
류호의 고개가 푹 꺾어졌다.
코우자쿠가 인정사정없이 그 몸에서 검을 뽑아낸다.
한층 더 뿜어져 나온 피에 기모노가 검붉게 젖어버린 류호가, 허망하게 바닥으로 허물어져 내렸다.
“………….”
……막을 수 없었다.
증오로부터는 아무것도 태어나지 못한다.
그런 것쯤은,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런데…….
“어째서야, 코우자쿠……!”
“!?”
돌연, 나를 붙잡고 있었던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이 쓰러졌다.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녀석들도 차례로 쓰러져간다.
나는 쓰러진 멤버들 중 한 명의 곁에서 몸을 숙이고, 목덜미에 손가락을 댔다.
……맥이 있다. 기절했을 뿐인 것 같다.
그렇지만, 어떻게 된 일이지?
마치 마리오네트의 실이 끊어진 것처럼…….
“……윽!?”
갑자기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고, 보통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졸음이 나를 엄습했다.
이런 때에 잠이 오다니…….
목덜미에서 열이 느껴져서 손을 대보니, 벌레에 물린 것처럼 부풀어 오른 곳이 있었다.
이거……, 류호의 바늘에 찔린 상처다.
기절해버린 베니시구레의 멤버들도, 모두 류호의 바늘에 찔린 상태였다.
……혹시, 류호가 죽어서 조종을 당하던 쪽에게도 그 영향이 나타나는 건가?
“……큭.”
주체할 수 없이 졸음이 쏟아져서……. 조금만 긴장을 풀었다가는 당장이라도 쓰러져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여기서 기절할 수는 없다.
코우자쿠는…….
물밀 듯이 밀려드는 졸음을 뿌리치고, 나는 안간힘을 다해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앞의 광경에 얼어붙었다.
완전히 제정신을 잃은 코우자쿠가, 피로 범벅이 된 검을 들고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코우자쿠……!?”
“…………큭.”
코우자쿠는……,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 으아아아아아!!”
“!”
코우자쿠가 검을 휘두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졸음으로 인해 둔해진 몸을 풀로 가동시켜 바닥에 드러눕자, 엄청난 기세의 바람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코우자쿠! 그만해!!”
코우자쿠는 검을 휘날리며, 다시금 나를 향해서 그것을 내리쳤다.
“……윽.”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윽, 코우자쿠! 정신 차려!”
“으아아…….”
코우자쿠의 등에서부터 뻗어 나와 그 피부를 휘감은 문신은, 이제는 얼굴에까지 그 불길한 문양을 새기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코우자쿠를 멈출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윽.”
──── 부숴라 ────
──── 부숴라, 부숴라 ────
────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
──── 그 녀석을 멈출 방법은 ────
“멈출, 방법……?”
──── 그렇다 ────
──── 네가 그 녀석에게 부서지기 전에 ────
──── 네가 그 녀석을 부숴라 ────
──── 스크랩으로 ────
──── 다른 방법은 없다 ────
“……윽, 싫어…….”
만에 하나 내가 스크랩을 사용해서, 코우자쿠가 미즈키처럼 되어버린다면…….
“만약 그때 네가 적확한 말을 던져주었다면, 미즈키의 의식은 원래대로 돌아왔을지도 모르겠구나.”
내가 제대로 미즈키의 내면과 마주했다면, 미즈키는 의식을 잃는 일 없이 무사히 원래대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코우자쿠도……?
“……큭.”
망설이고 있을 여유는 없다. 이것 말고 다른 유효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코우자쿠를 똑바로 응시했다.
‘만약 잘못돼버린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반드시 잘될 것이다.’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되뇌인다.
‘반드시 잘될 것이다.’
나는 반드시……, 코우자쿠를.
“……코우자쿠!!”
검을 치켜들고 돌진해오는 코우자쿠를 향해 내달려……, 그 품속으로 뛰어든다.
얼굴 옆으로 지나간 검이 뒷머리를 스쳤다.
──── 부숴라 ────
──── 부숴라, 부숴라 ────
그치지 않는 두통을 참아내며, 하얗게 흐려진 코우자쿠의 눈을 바라보고 의식을 집중시킨다.
“……코우자쿠, ……윽, 나는, 네 안으로……, 들어간다……!!”
몸이 아래로 끌어내려져가는 듯한 감각이 들고는…….
눈을 뜨자, 나는 어둑한 방 안에 서있었다.
뭐지? ……장지문?
발아래에도 다다미가 깔려있다.
방은 다다미 열 장 정도의 넓이고, 키 큰 촛대 위에서 촛불이 흔들리고 있다.
초가 타는 냄새와 함께, 희미하게 백단향의 향기가 풍겼다.
이것이……, 코우자쿠의 마음속인가?
섬에서 떠나있던 시절의 기억인가.
눈앞에 있는 장지문을 열고자, 손을 뻗는다.
“윽, 흐윽……, ……흑, 으흑……, 흑…….”
……목소리다. 연약한 여자의 목소리.
훌쩍이며 울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이 장지문 너머에 있는 건가?
“………….”
나는 약간 긴장하면서, 살며시 장지문을 열었다.
장지문의 건너편에는 지금 내가 있는 방과 똑같은 방이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무언가가 무릎에 감겨들었다.
“!”
검은 머리카락 다발 같은 것이……, 다리를 휘감고 있다.
“하……!?”
순간, 그 머리카락 다발 같은 것의 양이 한층 더 늘어나 내 상반신으로까지 기어오르려 했다.
“뭐, 야, 이거!?”
무릎에 휘감긴 머리카락을 억지로 뜯어내고, 나는 허둥지둥 눈앞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눈앞이 어둑해서 머리카락인가 싶었지만, 잘 살펴보니 코우자쿠의 몸을 뒤덮고 있던 문신과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
그것이 스륵스륵 소리를 내며 뒤에서 나를 쫓아온다.
“윽, 흐윽……, ……흑, 흐윽……, 흑…….”
……!
방금, 여자가 흐느껴 우는 소리와 함께 코우자쿠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지?
정면에는 또 장지문이 있다. 코우자쿠는 이 문 너머에 있는 건가?
“젠장!”
나는 문신에게 따라잡히지 않게끔 내달려서, 양손으로 난폭하게 장지문을 열었다.
또 똑같은 방이 나왔다.
문신이 뒤에서 쫓아온다.
“대체 뭐야, 여긴……!?”
허겁지겁 다리를 움직여서, 안쪽의 장지문을 연다.
또 똑같은 방이다.
또.
또다!
“하아, 하아…….”
어디까지 계속되는 거야!?
똑같은 짓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하……, …….”
마침내 지금까지와는 약간 다른 분위기의 방이 나왔다.
허둥지둥 뒤를 돌아보고, 문신에게 따라잡히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방금 전까지 엄청난 기세로 몰려오던 문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내가 열었던 장지문도 어느 사이엔가 닫혀있다.
이제 괜찮은 건가……?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 실내를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붉은 빛이 도는 방 안에서, 누군가가 이부자리 위에 엎드린 채로 누워있다.
허리에 기모노 같은 것이 걸쳐져있지만, 상반신은 맨몸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약간 체구가 작고 마른 듯한 느낌이 든다. 어린애인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촛불의 불꽃을 붉게 반사하는 그 등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의 등이 붉은 것은 불꽃 때문이 아니다. 저건…….
자그마한 등뿐만이 아니라, 요까지 붉게 젖어있다.
……이 목소리.
그럼, 이부자리 위에 누워있는 것은…….
“코우자쿠?”
“!?”
내가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사라진 줄 알았던 문신 다발이 뒤쪽에서 손을 뻗어왔다.
무의식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문신은 내 발치를 지나쳐갔다.
누워있는 코우자쿠의 등으로 모여들어, 시커먼 누에고치처럼 에워싼다.
“코우자쿠!”
“큭, ……으윽, 윽, 큭, 앗…….”
“!”
물이 튀는 듯한 소리가 나고……, 안쪽의 장지문에 갑자기 피가 튀었다.
장지문 너머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고, 얇은 종이에 비치는 그림자가 이곳저곳으로 허둥지둥 움직인다.
비명과 포효도 들려왔다.
핏방울이 흩날리고, 그것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덧칠되어간다.
이건……, 대체 어떤 기억인 거지?
섬에서 떠나있던 사이에, 코우자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너무나도 참혹한 광경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장지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그 틈새로 생기 없는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여자는 쥬반을 입은 채로, 넋이 나간 듯이 장지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쥬반(襦袢): 일본식 속옷으로 맨몸에 직접 입는 짧은 홑옷을 일컫는다. 대개 이런 느낌. → 클릭
얼굴에서 발끝에 이르기까지 온통 붉게 물들어있다.
여자가 약하디약한 움직임으로, 검은 누에고치가 뒤어버린 코우자쿠의 이부자리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
여자는 다다미 위로 쓰러져,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이 팔을 뻗었다.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다.
“……우, 자, ……쿠.”
……!?
지금, 코우자쿠라고…….
……이 사람. 코우자쿠의 어머니다.
너무 여위어있어서 알아보지 못했다…….
“윽, 으윽, ……후우, 윽, ……큭, ……윽.”
어머니의 목소리에 응하는 듯이, 시커먼 고치로부터 코우자쿠가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우자쿠, ……윽, !?”
고치 쪽으로 가려고 하자, 등에 격통이 스쳤다. 무의식적으로 다다미에 무릎을 꿇고 만다.
뭐지, 이거……. 등이 아프다.
불꽃에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 ……큭, …….”
극심한 통증에 몸이 떨리고, 전신에 땀이 밴다.
이 통증은, 혹시…….
문신을 새길 때, 코우자쿠가 느꼈던 아픔……?
“아, 아악……, 크윽, ……으윽…….”
코우자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코우자쿠의 곁으로……!
“큭, 으악, ……, ……윽, 코우자쿠!”
나는 등의 통증을 참고,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고치 쪽으로 다가가, 그 표면을 양손으로 막무가내로 잡아 찢는다.
“아, 얏……, 젠장, ……저리 비켜!”
찢겨진 검은 문신들이, 까맣게 탄 종이처럼 쪼글쪼글해지고는 사라져간다.
오로지 고치를 파괴하는 데에만 전념하다 보니, 서서히 코우자쿠의 등과 이부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코우자쿠, ……윽, 일어나!”
피로 범벅이 된 등으로 손을 뻗는다.
“!”
내 손끝이 닿자, 코우자쿠의 등을 뒤덮었던 피가 젤리처럼 벗겨졌다.
피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사람 정도의 크기로 팽창하고는, 낯익은 형상을 이루었다.
……류호.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설탕 공예품처럼 일그러지고, 입을 쩍 벌리고는 웃는다.
이 문신은, 이 등은,
이 혼은 나의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아냐. 코우자쿠는, 네 것이 아냐…….”
“코우자쿠에게서 떨어져. 코우자쿠를……, 놓아줘!”
나는 류호의 형상을 한 핏덩어리를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피가 사방으로 크게 흩날리고, 핏방울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난무하는 핏방울은 개의치 않고, 나는 코우자쿠의 등을 잡고 그 몸을 일으키고자 했다.
“코우자쿠, ……윽!!”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아플 정도로 강한 빛이다.
“……깨달았을 때에는, 모든 것이 이미 늦은 뒤였다.”
빛이 사라지고, 머릿속으로 영상이 흘러들기 시작한다.
슬로우 모션으로 이어지는 무성영화처럼 서서히 장면이 바뀌어간다.
커다란 저택과, 어머니의 손에 이끌린 채로 서있는 어린 코우자쿠. 조직의 우두머리인 듯한 남자.
그 옆에 서있는 것은……, 약간 젊어 보이는 류호다.
촛불이 일렁이는 일본 전통식 방 안의 이부자리. 그 위에 엎드려서, 문신을 새겨 넣는 류호의 바늘을 받아내고 있는 코우자쿠.
코우자쿠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지고, 손톱이 다다미를 긁어댄다. 어린 아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참고 있는 것이겠지.
거기서 화면이 암전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광경이 비쳐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있는 가운데, 검을 든 코우자쿠가 홀로 우두커니 서있다.
그 주변은……, 피바다다. 코우자쿠 자신도 상처를 입고서, 몸을 피로 물들이고 있다.
“그날은, 문신을 완성한다는 날이었다.”
코우자쿠의 목소리가 온 방향에서 울려퍼진다.
“바늘에 찔리는 아픔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극심해서, 나는 도중에 채 견뎌내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눈이 떠졌을 땐……. 주변 일대가, 피바다였다.”
“집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쓰러져있어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 가운데는……, 어머니도 있었다. 자신의 손을 보니, 피로 범벅이 된 칼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제정신을 잃고 날뛰어서, 모두를 상처 입히고 말았다. 그렇다곤 해도, 어린애가 무턱대고 휘두른 칼에 불과했다.”
“모두가 중상을 입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잃지는 않고 끝났다. 어머니도 그랬다. 하지만…….”
“어머니는 의식을 잃은 채로 회복되는 일 없이, 죽었다. ……내 탓이다.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다.”
“코우자쿠…….”
주변의 정경이 어둑한 일본 전통식 방으로 되돌아오고, 눈앞에 코우자쿠가 서있었다.
온몸이 문신에 침식된 모습이었지만, 눈동자에는 정상적인 빛이 돌아온 상태다.
다만, 그 표정은 어딘지 슬퍼 보였다.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전부 안 좋은 꿈일 거라고. 하지만 현실이었다. 그것을 똑똑히 인식했을 때, 나는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예 완전히 미쳐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죽어버리는 편이 좋을 거라고. 오히려 죽어야 마땅하다고.”
“어머니를 제 손으로 죽이고 만 내가 살아있을 의미 따위는, 살 자격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들고 있던 칼로 자결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일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 도저히. ……왜인지, 네 얼굴이 떠올라서.”
나를 바라보는 코우자쿠의 얼굴이 아픔을 참아내는 듯이 일그러진다.
“어렸을 적의 네 웃는 얼굴이 떠오르고, 그러더니 공연히 눈물이 나와서. 괴롭고 슬퍼서……, 두려워서, 고통스러워서, 어찌할 수가 없었어.”
“진심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도, 그와 똑같은 정도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결국, 나는 이 섬으로 돌아왔어. 죽지도 못하고, 어중간하기 짝이 없는 최악의 상태로……. 그저,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보고 싶어서.”
“널 만나면 무언가가 바뀌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자기가 편할 대로 멋대로 생각했던 거야.”
“이 섬에서 너와 재회했을 때, 네가 완전히 어른이 되어있어서 놀랐지만, 그럼에도 웃는 얼굴은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여서…….”
“그래서,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섬에서 너와 함께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과거의 기억을 옅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무리였어. 아무리 평온을 염원해도, 우연한 순간에 기억은 다시 떠올랐어. 모든 것이 피로 물들었던 그날의 일을.”
“그런 나를 비웃는 듯한 타이밍에, 그 자식……, 류호까지 얼굴을 내밀었어.”
“그 녀석을 본 순간, 생각했어. 아아, 역시 나는 도망칠 수 없구나. 그러니 저 녀석을 죽이고 나도 죽자고.”
“그 녀석을 죽인다고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하지만 어차피 지옥행이 결정되어있다면, 적어도 그 정도의 복수는 해도 좋지 않을까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나는 류호를 죽이겠다는 바람을 이루었어. 그렇지만 내 과거는 전혀 변하지 않고, 등의 문신도 사라지지 않아.”
“도리어 류호를 죽인 시점에서, 이 손에는 한층 더 깊게 피가 스며들고 말았어. 그러니까 이제……, 됐지 않았을까 싶었어.”
“발버둥치는 걸 그만두고, 내 죄에 이 몸을 맡기자고.”
코우자쿠가 고개를 숙이자, 방금 전의 그 검은 문신들이 어느 사이엔가 코우자쿠의 발치로 감겨들었다.
코우자쿠…….
이것이, 코우자쿠의 진짜 과거. 현실 세계에서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부분이겠지.
……아니,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참혹한 과거를,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단 말인가? 이야기를 꺼낸 뒤에, 그걸 들은 상대방은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
나와 코우자쿠가 아무리 끈끈한 관계라고 할지라도, 그런 생각에 고민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지금 내 안에서는, 극심한 갈등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코우자쿠의 진짜 과거에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다.
어떻게 말을 걸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무거운 과거 앞에서는, 그 어떤 말도 경박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코우자쿠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허리 부근까지 검은 문신이 기어 올라가, 당장이라도 가슴께까지 도달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코우자쿠는……, 자신이 류호의 문신에 먹혀서 죽게 되는 것마저 받아들이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
확실히 코우자쿠는 많은 사람들을 상처 입혔고, 본인의 어머니도 그것이 원인이 되어 돌아가시고 말았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코우자쿠의 탓이 아니다. 토우에와 결탁한 류호가 멋대로 새긴 같잖은 문신의 탓이다.
설령 내가 그렇게 말한다 해도, 코우자쿠는 자신을 책망하는 것을 멈추지 않겠지.
벌어지고 만 일은 바꿀 수 없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는 코우자쿠를 잃고 싶지 않다.
나의 이기심이든 뭐든 좋다. 이대로 입을 다물고 그저 코우자쿠를 보고 있기만 하는 일 따위는 할 수 없다.
코우자쿠의 마음은 류호의 문신과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것들에 의해 벌어진 상처는 너무나도 커서…….
지금도 피를 흘리고 있어서, 코우자쿠 혼자만으로는 메울 수가 없다.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그 상처는 코우자쿠의 마음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전에.
──부순다.
──── 부숴라 ────
──── 그 녀석을 부숴라 ────
나는 이 스크랩이라는 힘을 사용해서 ‘파괴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부순다. 상처에 사로잡혀있는 코우자쿠를.
“……윽.”
나는 코우자쿠의 곁으로 다가가, 그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코우자쿠가 천천히 얼굴을 들고, 모두 다 버리고 떠나고자 하는 눈동자로 나를 본다.
“코우자쿠, ……지지 마!”
“…………, ………….”
“……난, ……뭐가, 어떻게.”
“………….”
“아오바! 어떻게 된 거야? 우리들은……, 살아남은 거야?”
“………….”
“……그래, 살아남았어……, 끝난, 건가. ……다행이다.”
“너한테도 잔뜩 폐를 끼쳐서, 정말로 면목이 없어. 미안했어, 아오바.”
“괜찮아.”
“아니, 정말로. 네가 없었으면 난 옛날에 죽었을지도 몰라. 날 이 세계로 붙들어 매준 건 아오바, 너야.”
“………….”
“정말로, 고마워. 네 덕택이야.”
“아아. ……코우자쿠.”
“!? 에? 어, 어이, 아오바? 너, 뭐 하는……, 우왓!”
“아야야.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이렇게 나한테 매달리고. 깜짝 놀라서 엉덩방아까지 찧었잖아.”
“……괜찮아.”
“……에? 뭐가?”
“………….”
“…………. ……아오바?”
“코우자쿠…….”
“너…….”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에 대해선 전부 이해하고 있어. 전부 알고 있어. 그러니까…….”
“………….”
“그, 래.”
“묘하네. 너랑 이러고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져. 굉장히 안정이 돼. 지금까지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거짓말 같아.”
“아아.”
“……아오바. 저기, 말이 좀 이상하지만……, 만져도, 괜찮아?”
“괜찮아.”
“……후, ……아오바.”
“응.”
“아오바, ……키스해도, 괜찮아?”
“괜찮아.”
“……읏.”
“……, 후.”
“……아오바.”
“……괜찮아.”
“……좀 더 만져도, 괜찮아?”
“괜찮아.”
“아오바……, 하…….”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 ”
코우자쿠는 본편이 기네요... 4편까지 이어집니다.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화려한 네온 장식이 반짝이고, 사람들은 오히려 내리는 비를 즐기는 것처럼 그곳을 활보한다.
그런 광경에 기가 눌려서, 나는 무심결에 길의 가장자리 쪽으로 걸었다.
빗줄기가 약해졌다고는 해도, 머리카락에 닿는 비는 조금 불쾌하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보고자 하는 기력은 지금의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걸음을 옮기는 데에만 몰두하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그 클럽 앞의 골목까지 다다랐다.
“………….”
건물이 있는 곳까지 가까이 갈 생각은 들지 않아서, 나는 골목의 벽에 몸을 기댔다.
완전히 비에 젖고 만 탓도 있어서, 벽이 몹시도 차갑다.
이렇게 밖에 나와 있으니,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 전부 꿈이었던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꿈이 아니다.
코우자쿠의 손에 세게 붙잡혔던 곳이 여전히 얼얼하게 아픈 것이 그 증거다.
……코우자쿠는 돌아올까.
어쩌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설령 돌아온다고 해도, 이런 상태로 토우에가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자, 바로 옆에서 땅에 고인 비 웅덩이를 힘껏 밟는 듯한 소리가 났다.
“흠뻑 젖었네.”
……뒤를 돌아보니, 그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미소 띤 얼굴로, 내게로 우산을 내밀었다.
“비가 오는데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아니면 비에 젖는 걸 좋아하는 걸까나.”
“………….”
“처참한 얼굴이네.”
남자가 싱긋 웃고서, 가볍게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일 있었어?”
“………….”
‘그렇지만 주의하는 편이 좋아. 너는 조금 무방비하니까. 긴장을 늦추면, 믿고 있던 사람한테 갑자기……, 덥석 하고, 먹혀버릴지도 몰라?’
이 남자가 말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지…….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남자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치만, 대답을 할 수 있을 만한 마음 상태가 아닌 것 같네. 그러니까 이런 데에 우두커니 서있는 거겠고.”
“그래도 이대로 있으면 감기에 걸리고 말 거야. 어서 돌아가는 게 좋아.”
남자가 빗줄기의 상태를 살피는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되돌린다.
“안 가는 거야?”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아닙니다.”
“이런 이런.”
남자가 의미심장하게 눈을 가늘게 좁히고 웃는다.
“네가 여자애였다면 그 말은 남자의 이성을 뇌쇄하는 결정적 한 마디였을 텐데 말이지. 뭐 이런 데에 계속 있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고, 뭔가 따뜻한 거라도 마실까.”
“에, 그치만.”
“바로 여기니까.”
남자가 턱으로 건물을 가리킨다.
“이 클럽의 오너랑 아는 사이라서 말이지. 방 하나를 빌려서 거기서 머물고 있어.”
“난 원래 플라티나 제일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게 말하고,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자기 방으로 같이 가자는 거겠지.
……어떻게 하지.
따라가도 괜찮은 걸까. 이 남자의 이름이 뭔지도 모르는데.
애초에 이제 막 알게 됐을 뿐인 나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는 뭘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상하다.
……그럼에도, 내 안에서는 어떤 예감이 깜박거렸다.
코우자쿠는 이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다. 이 남자 이야기에도 과민하게 반응했다.
혹시, 이 남자…….
코우자쿠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우연인지도 모르겠지만, 남자가 했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 내 등을 떠밀었다.
“어떻게 할래?”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와야지.”
남자는 기쁜 듯이 웃으며, 바로 옆에 서서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안 젖게, 좀 더 이쪽으로 와. 아, 그렇지. 이름, 가르쳐줄래?”
“……아오바.”
“아오바구나, 좋은 이름이네. 나는 류호.”
“류호…….”
“그래. 잘 부탁해.”
류호는 시종 얼굴에 미소를 띤 채로. 내 어깨를 살며시 밀고는 걷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래도 괜찮은 걸까?
아직 완전히 망설임을 떨쳐내지 못한 나의 귀로,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가 유달리 건조한 울림으로 와 닿았다.
“들어와.”
“……감사합니다.”
검게 도색된 테이블 위로 하얀 찻잔이 놓인다.
그 안에는 엷은 갈색의 액체와 어떤 꽃의 잎이 담겨있고, 살포시 묘한 향기가 감돌았다.
“향이 좋지? 일부러 주문해서 들여온 거라, 일본에서는 안 파는 거야.”
한 모금 마시자, 풍부한 향이 코를 자극했다. 찻잔 속에서 꽃잎이 사랑스럽게 흔들린다.
“……맛있다.”
“맛있다니 다행이네.”
류호도 찻잔을 들고 와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내 바로 정면에 앉았다.
정면에서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쳐다봐서, 무심결에 눈을 돌린다.
류호의 방으로 가기로 결정된 후, 우리들은 클럽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1층이 댄스 플로어와 바, 2층이 타투 스튜디오와 대기실, 3층이 스태프 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류호의 방은 3층이었고, 실내는 류호 본인처럼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로 가득했다.
다다미가 깔려있는 전통식 방이긴 했지만, 가구는 유럽풍의 앤티크 같은 것이 놓여있거나 해서 일본식과 서양식이 한데 어울려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방 이곳저곳에 문신의 도안이 그려진 종이들이 붙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약간 어둑한 실내에서는 그것들이 주술을 쓰는 데 사용되는 도구처럼도 보여서, 조금 기분이 나쁘다.
“……저 그림은, 혹시.”
“아아, 문신 새기는 일을 하고 있어.”
“헤에…….”
어디선지 모르게 먹물이나 잉크 냄새 같은 게 나는 것은 그 때문인가.
타투이스트인가……. 미즈키도 이런 일을 하고 있지…….
희미한 아픔이 가슴을 스치는 것을 느끼고, 도안으로부터 눈을 돌리고자 했다.
……응?
저 무늬……,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오바 군, 문신에 관심이 있는 거야?”
“에? 아아, 뭐……. 제 몸에 새기는 정도는 아니지만요.”
“꽤나 열심히 보고 있어서 말야. 원한다면, 내가 새겨줄게.”
“아뇨,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는. ……그보다, 저기.”
“응?”
“왜 그렇게까지 이래저래……, 저한테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건가요?”
마음을 먹고서 줄곧 신경이 쓰였던 것에 대해 물어본다.
류호는 잠시 생각하는 듯이 천장을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네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흔히들 말하는 첫눈에 반했다는 거겠지.”
“………….”
“이건 농담이고.”
어떻게 리액션을 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를 보고는 웃으면서, 류호는 찻잔을 손가락으로 통 튀겼다.
“이런 말을 하면 미심쩍다고 여기겠지만 말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네게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것을 느꼈기 때문이야.”
“…………”
“이건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냐. 널 보았을 때, 네 안에 심상치 않은 힘……, 생명력이 흘러넘치는 것을 느꼈어.”
“……아 네.”
어쩐지 이야기의 방향이 수상한 종교의 설교처럼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류호는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너에게서는 거대한 파도가 느껴져. 그것은 단독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냐. 이성, 보호, ……파괴.”
“그것들이 네 안에서 독자적으로 의지를 지닌 채로, 공존하고 있어.”
“……!”
……파괴. 파괴 충동.
내 힘에 대해서, 할머니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코우자쿠의 일도 그렇고, 이 녀석…….
류호의 눈에서는 그 전까지 줄곧 떠올라있었던 웃음기가 사라진 상태였다.
나는 스스로가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류호에게 눈치 채이지 않게끔 눈을 내리깔고, 찻잔에 입을 댔다.
미지근해진 차를 목구멍으로 흘려보내고,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한다.
“바로 맞췄으려나?”
“………….”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건, 난 너의 그런 복잡한 면을 막무가내로 들춰낼 생각은 없어. 그런 세련되지 못한 짓은 안 해.”
“정갈하게 추려지고 깨끗하게 정돈된 것보다도, 복잡하게 뒤얽히고 일그러진 것이 훨씬 더 좋아. 문신이랑 똑같아.”
류호의 시선이 벽에 장식된 문신 도안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훑는다.
“이 아이들도 도안 단계에서는 단순히 정돈된 그림으로만 보이겠지. 하지만, 모두 계산해서 만들고 있어.”
“실제로 피부에 새길 때의 막힘, 미끄러짐, 일그러짐, 둥그스름함, 번짐, 스밈, 색의 변화까지를 말이지.”
“피부라는 건 울퉁불퉁해. 그 위로 피가 스며들 때를 보면 알겠지?”
“상태에 따라서는 계산 밖의 사태가 일어나기도 하지. 인간에게 뒤틀어지지 않은 부분 같은 건 하나도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먹물을 넣을 때, 내 영혼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는 생각으로 바늘을 찌르지.”
“뒤틀린 피부에 손을 대서 그보다 더한 뒤틀림을 발생시키는 거야. 나도 그에 걸맞은 경의를 표하지 않으면 안 돼.”
소중한 것을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감상하는 때와 같은 말투로 이야기를 하고는, 류호는 내 쪽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이 녀석…….
지금 그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이 남자에게 이전부터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했다.
어딘지 모르게 웃는 얼굴이나 행동거지가 연기 같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류호는 문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다른 사람처럼 표정이 변한다.
문신에 대한 이상한 집념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쪽이 류호의 진짜 얼굴인 것이겠지.
지금 그 이야기는 적어도 일반적인 차원의 것은 아니다. 허나, 그 이야기를 입 밖에 낼 때의 류호는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류호의 눈에는……, 인간이 어떤 식으로 비치는 것일까?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시야도 흔들려서 확실치가 않다.
“나는, 순수하게 너에게 흥미가 있어.”
류호의 말이 귓속에서 반향을 일으키며 팽창되고, 이내 녹아들어 사라진다.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다.
“네 안에 존재하는 개개의 의지가 서로 반발하고 다투는 한, 네가 애써 이어나간 연을 갈라놓을 수밖에는 없겠지.”
“그게 네가 짊어진 숙명이니까 말야. 너는 타인과 순수하게 공존할 수 없어.”
내가 짊어진, 숙명…….
끝내 눈꺼풀이 떠지지 않고, 사고가 졸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간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이 극심한 졸음……. 그런가. 그 차…….
“내가 내 생애를 걸고 있는 문신과, 너. 이 두 가지가 융합되면 어떤 뒤틀림이 생겨날지……, 흥미가 있어.”
“……아아.”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수마의 습격에, 나는 의식에서 손을 놓았다.
………….
무언가, 소리가 난다.
“…………으윽.”
눈을 뜨려고 하자, 머리에 둔탁한 통증이 스쳤다.
여기는…….
……방금 전과 똑같이, 류호의 방이다.
나는 어느 사이엔가 이부자리 위에 엎드리고 있었다.
사방등의 불이 일렁일렁 흔들리고, 그에 맞춰 그림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일어났어?”
“!”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얼굴을 돌리려 한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팔다리가 마비되어서 남의 것인 양 무겁다.
분명 류호의 방에서 차를 마시고는……. 그 차에는 틀림없이, 약이 섞여있었을 것이다.
젠장…….
“아직 몸에 힘이 안 들어가겠지?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아. 쉽게 상처를 입고, 말을 하려고 하면 혀를 깨물게 될 거야.”
“……윽.”
류호의 말투가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더 정중하고, 마치 의식이라도 시작하는 듯한 분위기라 불길한 예감이 마구 부추겨진다.
조금 전부터 작은 금속이 서로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거기다, 먹물 냄새에 뒤섞여 소독약 냄새도 희미하게…….
“무, ……슨 짓을.”
“말 안 하는 편이 좋아.”
“뭘, 할, 작정…….”
“그래. 간단하게 말하자면 네가 내 연구를 도와줬으면 해. 연구라는 말 따위, 실은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지. 문신은 내 전부니까.”
“이 등에 나의 꽃을 새기면, 어떤 식으로 너의 생명력을 빨아들여서 개화할지. 그걸 보고 싶어.”
“……윽!”
등에 싸늘한 무언가가 닿는다. T셔츠가 걷어 올려져있다.
등에 닿은 것은 류호의 손인가? 얼음처럼 차갑다.
내 눈앞으로 가느다란 봉 같은 것이 들이밀어진다.
“자. 이게 너의 피부를 관통해서, 안쪽까지 먹물을 새겨 넣을 거야.”
붓?……이 아니다.
끝부분이 가느다란 몇 개의 바늘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다.
저것이 살갗에…….
실제 시술에 사용되는 기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식은땀이 솟아난다.
지금 당장 여기서 도망치지 않으면…….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크, 흑…….”
“그래봤자 허사야. 너만 힘들어.”
몸을 일으키려는 나를 진심으로 동정하는 듯한 말투로 말을 내뱉고, 류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잠깐 부족한 도구를 가지고 올게. 얌전하게 있어.”
조용조용히 다다미를 밟는 소리가 나고, 문을 여닫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제길……, 윽.”
어떻게든 해서, 지금 이 틈에……!
양팔과 양다리에 힘을 실어서 몸을 일으켜보려 한다.
그렇지만, 곧바로 힘이 빠지고 만다.
입안도 바싹 말라서, 타액을 삼키는 것도 힘들다.
도망치려면 지금뿐인데……!
“……크윽, …….”
그렇게 발버둥을 치고 있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류호가 돌아온 건가?
무언가가 다다미 위를 구르는 듯한 소리가 나고,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등에 폭신한 무언가가 닿았다.
‘아오바!’
“……렌!?”
파란 털 뭉치가 눈앞을 가로막고, 내 얼굴을 핥았다.
“렌, 어떻게 여기에.”
‘중간에 가방에서 빠져나가서, 도움을 요청하러 밖으로 나갔었어.’
“도움을? 누구한테…….”
“아오바……!”
“코우자쿠……!?”
‘코우자쿠를 찾아내는 건 굉장히 수고스러운 일이었어.’
“렌……. 너, 최고.”
렌이 기쁜 듯이 꼬리를 흔든다.
“아오바, 괜찮아?”
코우자쿠가 몸을 굽히고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순간, 글리터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코우자쿠의 걱정스러워 보이는 얼굴을 보니 그것도 금세 어딘가로 사라지고 말았다.
“움직일 수 있겠어?”
“일어날 수가 없어. 차를 마셨는데 그 안에 뭔가 약 같은 게 섞여있어서…….”
“잠깐 기다려.”
코우자쿠가 위로 걷어 올려진 내 T셔츠를 내려주고서, 내 팔을 잡고 자신의 어깨에 둘렀다.
허리를 떠받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준다.
코우자쿠의 도움을 받아, 이불 위로 그럭저럭 앉는 자세를 취한다.
팔다리가 마비된 탓에 몸이 축 늘어지는 느낌이 들고, 호흡을 하는 것도 약간 괴롭다.
“힘들어?”
“괜찮아…….”
“근데, 이 방…….”
코우자쿠가 혐오를 그대로 드러낸 얼굴로 실내를 둘러본다.
문신 도안과 이부자리 옆에 놓인 기구를 보더니,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조용한, 그러나 심상치 않은 분노를 느끼고, 나는 코우자쿠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아, 미안. 욕 나올 만큼 기분 나쁜 방이네. 빨리 여기서 뜨자.”
내 시선을 눈치 챈 코우자쿠가 표정을 풀고는, 어깨동무를 해서 나를 일으켜세우고자 했다.
그때…….
방의 문이 열렸다.
“!”
“……이런 이런.”
“………….”
류호가 발을 멈추고, 우리들을 보고는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인이 없는 사이에 도둑질인가? 그것도 꽤나 당당하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 ……이 자식.”
코우자쿠가 매서운 눈초리로 류호를 노려보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범상치 않은 분노를 품은 공기가 코우자쿠의 몸을 에워싼다.
“겨우 찾아냈다고.”
……에?
겨우 찾아냈다니……. 무슨 말이지?
류호가 입술에 손을 대고, 생각하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실례지만 누구였더라? 아오바 군이랑 아는 사이인 건 확실한 것 같지만.”
“시치미 떼지 마. 잊어버렸다는 말 같은 건 못 하게 해주겠어. 나는 네 녀석 탓에…….”
“내 탓?”
“이걸 잊어버린 거냐!”
코우자쿠가 긴 앞머리를 쓸어올린다.
지금껏 감춰져있었던 얼굴의 반쪽이, 사방등 불빛에 훤히 드러난다.
그곳에는……, 문신이 새겨져있었다.
“………….”
등뿐만이 아니라, 얼굴에까지…….
코우자쿠의 문신을 보고는, 그때까지 왠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듯했던 류호의 눈동자에 빛이 깃들었다.
류호의 입이 싱긋 웃는다.
“……일부러 모른 척 해본 것뿐이야. 잊어버릴 리가 없잖아. 코우자쿠, 네 문신을.”
“아직 어디에도 상처가 나지 않은, 티 없이 깨끗한 네 피부에 새겼던 내……, 미완성의 최고 걸작.”
“시끄러워, 입 닥쳐. 너 이 자식, 아오바한테 무슨 짓 했어.”
“아무것도 안 했어. 아직은, 말야. 마침 이제부터 뭔가 시작하려던 참이었지만, 네가 훼방을 놓았어. 기가 막힌 타이밍이군.”
“……윽.”
“네가 플라티나 제일에 온 건 눈치 채고 있었어. 그저께, 이 건물 1층의 댄스 플로어에 있었지? 그때 널 발견했어.”
“다만, 내 쪽에서 말을 걸지는 않았지. 네가 내 뒤를 쫓아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이 자식…….”
코우자쿠의 목소리에 채 억누르지 못한 분노가 배어나온다.
류호는 그와 반대로, 그 어떤 때보다도 생기가 넘쳤다.
코우자쿠의 등과 얼굴의 문신.
그것들을 새긴 것은……, 류호인가?
“뒤틀림이 없다는 건 말야, 다시 말하자면 매끄럽고 올곧다는 거지. 올곧은 것은, 거꾸로 말하자면 그 뿌리부터 뒤틀리기 쉬워. 내성이 없지.”
“거기에 내 바늘을 박아 넣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뒤틀릴지, 올곧은 네 마음은 어떻게 일그러질지.”
“그걸 보고 싶어서, 나는 내 몸과 혼을 다 쏟아서 너에게 문신을 새겼어. 영혼이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면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나 자신을 전부 기울여서 말이지.”
“입 닥치라고 했잖아!!”
“후훗.”
류호가 즐거운 듯이 웃는다.
“내가 했던 충고, 잊어버린 건가? 그때, 난 분명 너한테 주의하라는 말을 했어. 그렇게 분노에 몸을 내줘도 괜찮은 거야?”
“……윽.”
“그런데 설마 정말로 나를 찾아낼 줄은 말이지. 발칙하기 짝이 없는 집념이야. 감탄스럽다고. 하하. 정말로 감탄스러워.”
그렇게 말하며, 류호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난다.
“이 자식……! 도망칠 작정이냐!”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이렇게 된 이상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싶어.”
“너는 네 마음껏, 나에 대한 분노를 끄집어내면 돼. 단단히 각오를 해두자고, 너도 나도.”
“류호!!”
류호가 살포시 발길을 돌리고, 방에서 나간다.
“거기 서!!”
“……앗.”
코우자쿠가 그 뒤를 쫓으려 한다. 나는 곧바로 코우자쿠의 기모노 자락을 붙잡았다.
이대로 류호의 뒤를 쫓게 해서는 안 된다. 어째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앗, 이거 놔!!”
“싫어……!”
“류호…………!!”
내장까지 전율하는 듯한 고함 소리가 울려퍼지고, 코우자쿠가 거세게 날뛰는 바람에 옷깃을 붙잡은 내 손도 코우자쿠를 놓칠 것만 같아진다.
[ 코우자쿠의 팔을 세게 붙잡는다 ] → 선택
[ 다른 방법을 생각한다 ]
“코우자쿠……!”
나는 필사적으로 코우자쿠의 팔을 붙잡았다.
“이거 놔, ……놔!!”
“안 돼!”
코우자쿠는 분노에 이성을 잃은 상태다.
어떻게든 막지 않으면……!
“……크윽.”
머리가…….
제길, 이런 때에……!
머리가, 아프다…….
그치만, 코우자쿠를 막지 않으면…….
코우자쿠……!
“코우자쿠, 진정해!!”
두통을 참으며 무작정 소리를 지르자, 코우자쿠가 움직임을 딱 멈췄다.
“…………, 아오바.”
나를 돌아본 코우자쿠의 표정에서는, 분노가 사라져있었다.
“……윽.”
겨우 한숨 놓여서, 나는 이불 위로 두 손을 짚었다. 코우자쿠가 달려와 그런 나를 지탱해준다.
“괜찮아?”
“……그보다 너야말로 괜찮은 거냐고.”
“나는……, …….”
코우자쿠가 말을 끝까지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시선을 불안정하게 이곳저곳으로 돌린다.
좀 전에 오고간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코우자쿠에게 문신을 새긴 것은 류호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코우자쿠는 류호를 몹시도 증오하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가 동기가 되어서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어째서 류호가 코우자쿠에게 문신을 새겼던 것일까?
왜, 코우자쿠는 류호를 증오하는 것일까?
코우자쿠가 이성을 잃었던 것은 왜일까?
그것들은 이어질 것 같으면서도……, 이어지지 않는다.
각각의 사건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코우자쿠는 입을 다물고서는,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딱 잘라낸 것처럼 내 얼굴을 보았다.
“……우선, 너한테 사과하지 않으면. 미안했어. 어제도 난 너한테……, 당치도 않은 짓을.”
“………….”
“코우자쿠 씨!”
“무사하십니까!”
갑자기, 거센 소리와 함께 문이 기세 좋게 열렸다.
그것을 본 코우자쿠가 웃음을 짓는다.
“너희들, 늦었잖아.”
“죄송합니다!”
“아…….”
방 안으로 줄줄이 들어온 것은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이었다.
“너희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구 주민구의 경찰관한테 말을 해서, 플라티나 제일로 들어올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하게 했지.”
구 주민구의 경찰관…….
그러고 보니 베니시구레는 경찰관 몇 명하고도 친분이 있었지.
“곧 있으면, 토우에의 특별기념 이벤트가 열리잖아? 그때 경비 강화를 위해서 구 주민구의 경찰관들도 호출되는 모양이라서 말야.”
“그래서 경찰관으로 위장하고 그 증원된 인원인 척하고 들어온 거야. 이벤트가 개최되는 동안의 일시적인 거니까, 검문도 그렇게 철저하지 않고.”
“말이 그렇긴 하지만요. 솔직히 언젠가 들통 나는 게 아닐까 엄청나게 조마조마했습니다.”
“정말이에요! 신원 인증을 할 때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하, 그래. 그래도 무사했으니 다행이잖아.”
“그러네요!”
“그런데 이 자식……. 순식간에 꽁무니를 빼다니.”
코우자쿠가 분하다는 듯이 혼잣말을 내뱉는다. 류호를 말하는 거겠지.
“너, 정말로 아무 짓도 안 당한 거지.”
“아아.”
“그래……. 젠장, 어디로 내뺀 거야.”
“‘이 자식’이라면, 혹시 기모노를 입은 녀석 말씀입니까?”
“그래.”
“그 남자라면 밖에서 대기시켜뒀던 녀석이 뒤를 쫓고 있습니다! 건물 안에서 허둥지둥 뛰쳐나온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수상쩍어 보여서, 뒤를 밟겠다는 연락이 왔었습니다.”
“잘 했어. 상이라도 줘야겠군.”
“헤헤.”
과연 베니시구레랄까, 팀플레이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었다고 할까.
“기모노를 입은 녀석의 행방에 대해서는 나중에 연락이 올 것 같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일단 창고에 대기시켜놨습니다. 경찰관한테서 뒷문의 키 패스워드를 들어서요.”
“그래. 그럼 다른 녀석들이랑 합류하자고. 언제까지고 이런 기분 나쁜 곳에 있고 싶지 않으니까.”
“옙!”
“아오바, 가자. 움직일 수 있겠어?”
“아아.”
“영, 차.”
코우자쿠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일어선다.
“아오바 씨, 괜찮으십니까? 저도 돕겠습니다!”
“미안.”
멤버 중 한 명이 코우자쿠의 반대쪽에서 어깨에 팔을 둘러 나를 지지해준다.
“전 아오바 씨의 가방이랑 올메이트를 가지고 가겠습니다!”
“부탁해.”
“네! 저, 개를 좋아해서요!”
‘멍멍!’
“으햐하!”
“좋아, 가자.”
아직 류호가 먹였던 약의 효과가 다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와준 덕분에 정신적으로는 상당히 편안해졌다.
우리들은 건물에서 나와서, 다른 멤버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창고로 향했다.
플라티나 제일의 메인스트리트를 벗어나 외곽 쪽으로 걸어가자, 여러 개의 창고들이 늘어서있는 장소가 나왔다.
화려하게 장식된 가게나 시설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관광객의 모습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 창고들 가운데 하나로 다가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세심하게 확인하고서 뒷문으로 향했다.
베니시구레의 멤버 중 한 명이 코일을 조작해 뒷문의 록을 해제한다.
창고 안은 공간이 굉장히 널찍했고, 커다란 상자가 쭉 늘어서있었다.
우리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상자의 그림자에서 몇 명이 나와서 모여들었다. 대기하고 있었던 다른 멤버들이다.
코우자쿠는 멤버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무사하게 합류하게 된 것을 멤버들과 함께 기뻐했다.
나도 약의 효과가 떨어져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되어서, 벽 쪽으로 다가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긴장감에서 해방되어 멍하니 있으니, 멤버들과의 이야기를 마친 코우자쿠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몸은 괜찮아?”
“아아.”
“그래.”
코우자쿠가 내 옆에 앉는다.
지금까지는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잊고 있었지만…….
다시금 둘만 남게 되자,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된다.
코우자쿠도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오바.”
팽팽한 긴장감으로 들어찬 침묵을 깨고, 코우자쿠가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우선 사과하게 해줘. 사과해서 될 일이 아닌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그런데…….”
“정말로, 미안했어.”
“………….”
그 말을 듣고서,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코우자쿠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생각한 것이 많아서……, 말하고 싶은 것도 물어보고 싶은 것도 산처럼 쌓여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코우자쿠에 대해 알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코우자쿠가 나에 대해서 더 알 수 있게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만 코우자쿠에게 요구를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제대로 보폭을 맞추지 않으면.
지금까지 코우자쿠가 내게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젠 어렸을 때와는 다르니까.
그것을 위해서도, 내가 느꼈던 것을 솔직하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우자쿠, 나 말야. 너한테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어.”
코우자쿠의 얼굴에 희미한 긴장이 스친다.
“나는 오래 전부터 널 알아 와서, 그 때문에 너에 대해서라면 뭐든 내가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잠겨있었어.”
“하지만 난……. 전에도 말했지만, 실은 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지.”
“아오바…….”
“나 스스로도 내가 얼마나 교만한 인간이었는지를 생각하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는 얘기야. 그런데 그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니까 엄청나게 충격으로 다가와서…….”
“처음엔, 코우자쿠가 왜 나한테 뭔가를 숨기는 걸까 싶었어. 그치만,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 거지.”
“너한테는 너의 사정이 있고, 나한테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도 있었을 거고……. 난 우선 그걸 이해하려하지 않았던 거야.”
“그럼에도 한 번은 이해심 좋은 척 하면서, 널 믿고 기다리자고 결심했었어.”
“네가 이야기해줄 때까지 기다리자고. ……그런데 그게 안 돼. 나, 역시 너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어.”
“네가 섬에 없었던 사이에,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된 건지를 알고 싶어.”
“아무래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 괜찮지만……, ……아니.”
“안 괜찮아. 이런 가식은 이제 안 떨어. ……코우자쿠, 말해줘. 네 이야기를, 나한테.”
“………….”
코우자쿠는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만약 이래도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면, 그때는 깨끗하게 포기한다.
그것이 코우자쿠로부터의 대답인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코우자쿠가 천천히 얼굴을 들어 나를 보았다.
“……알았어, 이야기할게. 설마 내가 너한테 그런 마음이 들게끔 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다만 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그것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솔직히, 네가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도 있어. 하지만 결국은 널 끌어들이고 말았어. 류호도 그 원인의 일부야.”
“여기까지 온 이상 새삼스레 숨길 생각은 없어. 나도 각오를 굳혔어. 그러니까, 들어줘.”
“……아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코우자쿠도 내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엄마랑 이 섬에서 나왔을 때 말야. 그때, 난 본토에 있는 본가로 돌아갔었어.”
“넌 모르겠지만, 우리 본가는 말이지, 사실은 야쿠자야.”
“……그랬구나.”
“아아. 나는 조직의 후계자였어. 후계자라곤 해도 엄마는 첩이지만. 본처가 아이를 못 낳는 사람이여서. 대신에 내가 후계자 자리에 오르게 됐지.”
“그렇지만 난 뒤를 이을 마음 같은 건 추호도 없었고, 엄마도 본처한테 심하게 괴롭힘을 당해서 말야. 그런 것들에 완전히 지쳐버려서, 그래서 이 섬으로 도망쳐왔던 거야.”
“뭐 결국은 다시 소환되고……, 그리고는 이런저런 일이 생겨서. 엄마도 그때 돌아가셨어.”
“………….”
코우자쿠의 어머니, 돌아가셨던 건가…….
코우자쿠가 어머니와 함께 섬에 살던 때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몹시도 상냥하고 아름다운 분이셨다.
갑작스럽게 알게 된 사실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채로 있으니, 코우자쿠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얼굴의 문신은, 아까 처음으로 본 거지.”
“아아. 그치만……, 등에 있는 문신은 알고 있어.”
“봤던 거야? 언제.”
“내가 토했을 때 말야, 내가 네 기모노까지 더럽혀버려서, 그래서 너, 샤워실에서 기모노를 빨았었지.”
“아아.”
“그때, 문이 약간 열려있었어. 샤워하고 있나 싶어서 별 생각 없이 들여다봤는데, 그때…….”
“훔쳐볼 생각은 없었지만……, 미안.”
“……어쩐지, 그랬구나. 별로 신경 쓸 거 없어. 등에 있는 문신을 봤을 때, 놀랐지?”
“아, 조금.”
“등에 있는 것도 얼굴에 있는 것도, 이 문신들은 본가로 돌아갔을 때 했던 거야. 강제적인 거였지만 말이지. 이것들을 새긴 건 그 녀석, 류호다.”
“아버지가 그 녀석을 마음에 들어 해서, 그래서 나한테도 문신을 새기도록 했지.”
“이런 것 따위, 짊어지고 싶지 않았는데. 인과라고 치부해버리면 그걸로 끝일지도 모르겠지만……. 집안의 계보라느니 조직의 후계자라느니 엿이나 먹으라지.”
부아가 치민다는 듯이 말을 내뱉고, 코우자쿠는 한손으로 자신의 앞머리를 흐트러트렸다.
“류호 자식……. 네가 류호랑 말하는 걸 봤을 때부터 경계는 했지만, 설마 그 자식이 정말로 너한테 손을 댈 줄은 몰랐어.”
“좀 전에 네 모습을 봤을 때, 심장이 멈추는 게 아닐까 싶었어. 그래서 그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던 거야.”
내가 류호랑 말하는 걸 봤다고?
“그거……, 그 클럽 앞에서 내가 류호랑 이야기했을 때를 말하는 거야?”
“아아. 그 광경이 내 눈에 들어온 건 정말로 우연이었지만 말야. 여기에 온 후로 나는 줄곧 그 녀석을 찾아 헤맸는데…….”
“여기에 처음 왔을 때 우리들한테 말을 걸었던 여자 두 명, 기억나지?”
“아아.”
“그 여자들 중 한 명이, 목에 류호의 문신을 새긴 상태였어. 그 녀석이 새긴 문신은 특징이 있으니까 금방 알 수 있어. 그 녀석 특유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푸른빛이 돌지.”
“그래서 나는 류호가 여기에 있다는 걸 확신하고, 그 여자에게 류호에 대해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여자랑 만나러 나갔던 거야?”
“아아.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그때는 류호 일로 머릿속이 가득 찼었어. 엄마가 돌아가신 후, 그 녀석은 계속 행방을 감추고 있었어.”
“문신에 관한 것도 있었고, 나는 그 녀석을 확 붙잡아서 가만 두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지. 그런데, 그 녀석은 본토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발견되지 않았어.”
“내 마음은 결코 진정되지 않았지만, 나도 언제까지고 이 문제를 질질 끌고 있을 수는 없다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다시 미도리지마로 건너왔던 거야.”
“그런데 그 녀석, 갑자기 손이 닿을 법한 곳에 뻔뻔하게 얼굴을 내밀고. 거기다 아오바한테까지…….”
거기서 코우자쿠는 말을 멈췄다. 눈동자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난 류호를 용서할 수 없어. 문신이라는 건 한 번 새기면 완전히 지울 수가 없어. 죽을 때까지 같이 있는 거야.”
“아무리 아버지의 명령이라고는 해도, 그런 걸 새긴 녀석을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 녀석은 문신을 새기는 짓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어. 뒤집어 말하면 문신 이외에는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거야.”
“상대방이 눈물을 흘리든 소리를 지르든 희희낙락하면서 바늘을 찌르지. 그 녀석은 인간도 아니야.”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신 것의 원인은, 그 녀석에게도 있어.”
“………….”
“사실은 잊어버릴 생각이었어. 아무리 미워하고 원망한다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이다음은 시간이 모든 것을 떠내려가게 해줄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그런데 그 녀석, 이제 와서 천연덕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사람을 얼마나 병신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 빌어먹을……!”
코우자쿠가 주먹으로 벽을 내리친다. 그 주먹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녀석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서, 뭐가 뭔지 분간을 할 수 없게 돼버려. 너한테도 폐를 끼치고 말았어.”
“나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어. 그렇지만 의도치 않았건 어쨌건 간에, 나는 이 문신을 떠안고 말았어. 그러니까, 이건 내 업이야.”
“이게 있는 한, 내 안의 증오와 분노는 사라지지 않아. 그러니까……, 결착을 짓고 싶어.”
“결착?”
“아아. 나와 그 녀석 사이의, 결착이다.”
“하지만, 이건 전부 내 사정이야. 너하고는 관계없는 일이고, 이 이상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 결착도 나 혼자서 짓겠어.”
“………….”
“그러니까 너한테 폐를 끼치지는…….”
“……날 바보 취급하는 거야?”
나는 코우자쿠의 말을 가로막고, 눈동자에 강하게 힘을 실어 코우자쿠의 눈을 응시했다.
“언제, 누가, 네가 폐가 된다는 말 같은 걸 했냐고.”
“………….”
코우자쿠가 당황한 듯이 지면으로 시선을 떨어트린다.
“네 멋대로 내 대답을 정하지 마. 나는 네가 폐가 된다는 생각 같은 거 해본 적 없고, 지금도 그래.”
“지금……, 네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이걸로 가까스로, 내가 널 위해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아오바…….”
“얼마 전에, 참 오랜만에 어렸을 적 꿈을 꿨어. 밤이 되어도 할머니가 오지 않아서 내가 울고 있고, 그랬더니 네가 날 찾으러 와줬어.”
“넌 항상, 날 찾아내주었잖아? 난 그게 정말로 기뻤어. 그래서 네가 언제나 날 도와주는 히……, 의지할 수 있는 형처럼 느껴졌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널 돕고 싶어. 너, 저번에 그렇게 말했잖아. 내가 혼자서 다 끌어안는 습성이 있어서, 말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계속해서 말을 하는 거라고.”
“그거,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어. 네가 혼자 다 끌어안으려고 하면 나에게 의지하라고, 날 끌어들이라고 계속해서 말 할 거야. ……그게 너랑 내 사이의 정이잖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나도, 너를 내 일에 끌어들인 형국이고…….”
거기서 말을 멈추고, 나는 코우자쿠의 기색을 살폈다.
코우자쿠는 미간에 깊게 주름을 새기고서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후 하고 숨을 내쉬고서 미소를 지었다.
“……? 왜 그래.”
“아니. 여기 오기 전에, 뭐든 좋으니까 이야기를 털어놓으라고 너한테 말했던 걸 떠올리니까, 어쩐지 우스워져서.”
“말한 당사자가 그러질 못한다는 게, 최고로 볼품없잖아.”
“우리들, 서로 닮은 걸지도 모르지. 자기 일에 있어서는 완전히 눈뜬장님이 되는 거라든지.”
“그럴지도 모르지. ……어렸을 적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 오랜만에 이 섬으로 돌아와서 널 보았을 때, 실은 상당히 놀랐었어.”
“놀랐어? 뭐 때문에.”
“그렇게 쪼그맸던 네가 다 커서 완전히 어른이 됐구나~ 싶어서.”
“당연하잖아, 그거야.”
“아아. 그치만 정말로 놀랐었어. 내가 모르는 아오바가 있구나 하고.”
“……!”
코우자쿠가 온화한 웃음을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너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겠지만, 나도 전에 본 적 없는 너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꼈다는 말이야.”
“피장파장이네…….”
“그렇게 되네.”
“그런데 난 섬으로 돌아온 널 봤을 때, 별로 안 놀랐어.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너무하네. 전혀 성장이 없었단 건가.”
“그런 게 아냐. 좀 전에도 말했지만, 코우자쿠는 언제나 날 도와주는……, 히어로였으니까 말야.”
“히어로?”
“……그래. 그게 뭐.”
“……어, 어어.”
“그러니까 섬으로 다시 돌아온 코우자쿠도 예전과 다르지 않은,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의 코우자쿠일 거라고 멋대로 착각에 빠졌었지. 그래서 너한테 응석부렸던 거야, 나.”
“……안 변했어, 아무것도.”
나를 보는 코우자쿠의 눈이 가늘게 좁혀진다.
“확실히 우리들은 떨어진 채로 보냈던 시간이 있었어. 하지만, 우리들의 본질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다만 어른이 되어서, 쓸데없는 걸 생각하게 되었을 뿐이지. 나는 나. 너는 너야. 그렇잖아?”
“……아아.”
고개를 끄덕이자, 코우자쿠가 싱긋 웃으며 내게로 손을 내밀었다.
“화해의 악수야. 어렸을 땐 자주 했었잖아? 이렇게 손을 잡고서.”
코우자쿠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내 손에 감긴다.
“……그러고 나서 넌, 항상 나한테 이렇게 말했었지.”
“지지 마, 라고.”
“그랬었나.”
“그랬어. 지금도 똑똑히 기억나. 너한테서 그 말을 들으면, 어쩐지 정말로 힘이 솟아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어.”
“……그래.”
코우자쿠가 조금 쑥스러운 듯이 웃는다.
“……응? 너, 이거 왜 그런 거야.”
“뭐가?”
“목 쪽이, 약간 빨개. 벌레한테 물렸다기보다는 두꺼운 바늘로 찌른 것처럼…….”
“코우자쿠 씨!”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이 술렁이고, 그 중 한 명이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나도 코우자쿠도 잡고 있던 손을 동시에 놓는다.
“어, 무슨 일이야.”
“그 기모노를 입은 녀석의 뒤를 쫓았던 멤버에게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녀석은 오벌 타워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오벌 타워…….”
“오벌 타워면……, 플라티나 제일을 관리하기 위한 탑이잖아?”
“정확하게는 관리‘도’ 하고 있지. 실제로는 토우에 재벌의 본사 빌딩이라고 하던데.”
“토우에 재벌의 본사 빌딩? 왜 류호가 그런 곳에.”
“그 녀석, 설마 토우에랑 손을 잡고 있는 건가?”
“!”
코우자쿠의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좋아. 우리들도 오벌 타워로 간다.”
“가시죠!”
“그치만 어떻게 안으로 들어가지? 보통은 못 들어가게 되어있을 텐데.”
“들어간다고 한다면 뒷문을 사용해야겠지.”
“그러네요. 기모노 입은 녀석을 뒤쫓았던 녀석의 말을 따르면 종업원용 통용구가 있어서, 그 부근은 경비가 삼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거기서부터 치고 들어갈까.”
“알겠습니다!”
“아오바, 너도 올 거지?”
코우자쿠가 확인하는 듯이 나를 본다.
“안 물어봐도 알잖아.”
“너랑 내 사이니까 말야.”
코우자쿠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서, 나도 가볍게 웃음을 지어서 그에 화답한다.
지금부터 류호의 뒤를 쫓아서 토우에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간다.
생각을 해보니, 조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본디 나와 코우자쿠의 목적은 서로 다른 것이었는데, 최종적으로는 같은 방향으로 모이게 되었기에.
이걸로 토우에의 계획을 멈출 수 있다면…….
“가자!”
“옙!”
우리들은 창고에서 나와, 오벌 타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헤헤 속도가 고자라 죄송합니다...ㅠㅠ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글리터에 도착한 후, 코우자쿠는 나를 업은 채로 일부러 2층의 침대까지 날라주었다.
“옷, 벗을 수 있어? 더러워진 건 전부 벗어.”
“아아.”
오물이 묻은 겉옷을 벗어 코우자쿠에게 건네고, 나는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몸이 침대에 푹 파묻히자,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피로가 느껴졌다.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피곤해?”
“그러네…….”
“몸은?”
“아까보다는 괜찮아졌어.”
“그래. 자, 렌. 여기 두고 갈게.”
코우자쿠가 렌을 침대 위로 내려놓는다.
렌은 내 바로 옆에 붙어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렌의 파란색 털을 쓰다듬으니 마음이 놓였다.
코우자쿠는 일단 방에서 나가고는, 곧바로 되돌아와 테이블 위로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물이 담긴 컵이다.
“이거 마시고, 좀 자.”
“고마워……. 이것저것.”
“신경 쓰지 마. 이거 말고 또 필요한 거 없어?”
“괜찮아.”
“그래.”
그 후로는, 대화가 끊겼다.
코우자쿠가 고개를 숙인 채로 침묵하고, 무언의 시간이 흐른다.
이 침묵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나와 코우자쿠 둘 다, 생각하고 있는 것은 분명 똑같겠지. 그 클럽에서의 일…….
잠시 후, 코우자쿠가 무언가 마음을 굳힌 것처럼 얼굴을 들었다.
“……아오바. 뭐 좀 물어봐도 돼?”
“응.”
“너, 왜 거기에 있었던 거야.”
“………….”
뭐라고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채, 나는 입을 다물었다.
코우자쿠가 나를 바라본다. 가만히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말하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또 다른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계속 신경이 쓰였던 일에 대해 물어봐야 할까, 아니면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좋을까.
그만두는 편이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마음을 떨쳐낼 수 없다면, 아예 딱 잘라 진상에 대해 묻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참을 머뭇거린 끝에, 나는 마음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너야말로, 거기서 뭘 했던 거야?”
내 질문에, 코우자쿠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뭐라니……, 그보다 너, 거기를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 ……우연히, 너를 발견했달까.”
뒤를 밟았다……, 라고는,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그대로 내 뒤를 따라온 거야? 어떻게 안으로 들어갔지?”
코우자쿠가 두 눈을 가늘게 좁힌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흥건히 스며 나온다.
“너한테 아는 척을 하려고 했더니 가게 입구에서 안으로 안 들여보내줘서, 그래서 난처해하고 있으니까 누가 날 도와줘서…….”
“도와줘?”
“아아. 단골인 것 같은 남자였는데, 너처럼 기모노를 입고 있었어.
“……기모노?”
코우자쿠의 눈썹이 움찔 하고 움직였다.
“기모노를 입고 있었어?”
“아아, 응.”
“그거 말고 다른 특징은?”
“에, 왜.”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어 반문을 하니, 코우자쿠가 순간적으로 번쩍 정신이 든 듯한 얼굴을 했다.
“아니……, 아는 녀석이 아닐까 싶어서.”
……또다. 이 분위기.
어제, 코우자쿠가 밤중에 돌아왔을 때도 이랬다. 필시, 무언가 숨기려고 하고 있다.
“……파란 기모노를 입고 있었고 머리가 짧고, 인상이 선선했고……. 그리고, 목에 문신이 있었어.”
“어떤 모양이었어.”
“용, 이 아니라……. 해마? 같은 거였어.”
“………….”
이번에는 명백하게 코우자쿠의 얼굴이 굳어졌다. 험악하다고도 할 수 있는 표정으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그 녀석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아오바. 두 번 다시 그곳에 가까이 가지 마.”
“……하?”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안에서 다시금 자욱이 안개가 낀 듯한 갑갑한 느낌이 감돌기 시작한다.
“어째서야.”
“이유야 어쨌든, 가까이 가지 마.”
“뭐야 그게. 그 파란 기모노를 입은 녀석한테 뭐가 있는 거야?”
“……아니.”
“근데 말야, 나한테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네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는 거 아냐?”
“……아침에,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나간 이유라든지. 내가 눈치 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냐고.”
“………….”
“역시 그래서 내 뒤를 밟았던 건가.”
“……, 미안. 우연이네 어쩌네 하면서 거짓말 한 건 사과할게. 그치만 네가 이상하게 살금살금 거리니까, 나도 못 본 척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
“상황이 상황이고, 너 나름대로 배려를 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솔직하게 얘기를 해주는 편이…….”
“그런 게 아냐.”
코우자쿠가 강한 어조의 한 마디로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 얼굴은 깊이 생각이 잠긴 듯이 굳어있다.
“……그치만,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어. 미안.”
말을 마치자마자, 코우자쿠는 내게 등을 돌렸다.
“어이 코우자쿠! 기다려봐.”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아 코우자쿠를 불러 세운다.
하지만, 코우자쿠는 그대로 방에서 나가버렸다.
“………….”
코우자쿠의 태도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나는 문을 쳐다보았다.
저 녀석……. 역시 뭔가 숨기고 있어.
하지만 그것을 나에게 털어놓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 같다.
즉, 거절이다.
“……윽.”
베개에 머리를 묻고, 정처 없이 헤매는 감정을 해방시키는 것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코우자쿠를 향한 속 타는 짜증과 자기혐오가 엄습한다.
나와 코우자쿠는 알고 지낸 시간도 길고, 서로에 대한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코우자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전혀.
코우자쿠는 뭘 숨기고 있는 거지?
‘이제 두 번 다시 그곳에 가까이 가지 마.’
그건 나보고 상관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가?
그곳에는 뭐가 있는 거지? 어째서 거절하는 거지?
“대체 뭐야, 진짜…….”
양팔로 눈가를 덮는다. 또 다시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코우자쿠와 함께 있으면서, 이런 마음이 든 적은 없었다.
코우자쿠에 대해서는 거의 다 알고 있다고, 그런 생각 자체가 내 자만이었는지도 모른다.
코우자쿠는……. 사실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깊은 안개 속에 파묻혀버리고 만 듯한 불안에 내몰려, 나는 오래도록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
몇 번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어느 사이엔가 잠이 들고 만 것 같다.
얼마 동안 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신을 짓누르는 노곤한 감각이 사라져서 몸이 가뿐해진 상태다.
이불 옆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렌이 침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나는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토기도 가라앉았고, 몸 상태는 일단 진정된 것 같다.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물을 단숨에 들이마신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목이 말라있다.
좀 더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방에서 나왔다.
조금 눈앞이 도는 듯한 느낌은 들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바 카운터에서 컵에 물을 따라서 마시고 있으니, 아래층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린다. 코우자쿠인가. 샤워를 하고 있는 걸까.
……방금 전의 일, 사과하러 가볼까. 이런 미묘한 분위기가 계속되는 건 꽤나 거북하다.
코우자쿠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있고…….
나는 계단을 내려가 1층의 샤워실로 향했다. 복도를 걸어서, 물소리가 들려오는 문 앞에 선다.
문을 열고자 손을 뻗고는, 멈춘다.
문은 제대로 닫혀있지 않았고, 좁은 틈 사이로 몹시도 화려한 색채가 보였다. 기모노의 붉은색과는 다르다.
저건……?
“………….”
나는 빨려들어가는 듯이 얼굴을 가까이 대고, 문의 손잡이를 살짝 잡아당겨서 그 틈을 조금 더 넓게 만들었다.
방 안에는 코우자쿠가 있고, 세면대에서 기모노를 빨고 있는 것 같았다. 물이 흐르는 소리와 천끼리 북북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코우자쿠는 이쪽에 등을 지고 있고, 내가 있는 것에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
내 시선이 고정된 것은, 그 등 때문이었다.
……문신.
넓은 등에 아름다운 붉은 꽃이 피어있다.
진짜 꽃으로 착각할 정도로, 선명하고 생생한 빛깔이다.
문신의 완성도에 압도감을 느끼는 한편, 나는 예상외의 충격을 받았다.
문신뿐만이 아니다. 코우자쿠의 몸에는 수많은 상처 자국이 있었다. 물론 처음으로 보는 것이다.
코우자쿠가 섬으로 돌아왔을 때, 얼굴과 손에 흉터가 난 것을 보고서 얼마나 격렬한 싸움을 했던 거냐고 내가 물어보았던 일이 있었다.
그때는 코우자쿠가 애매하게 웃으며 얼버무려서, 이후에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없었다.
가슴의 문신도 어렸을 때는 당연히 없었지만, 문신 자체가 일반적으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딱히 뭐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코우자쿠의 몸에 나있는 상처 자국은 색이 옅다. 상처가 나고서 꽤나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저렇게 많은 상처를 어디서 만든 것일까.
문신도 상처도, 미도리지마를 떠나서 본토에 있었을 때 생긴 것이겠지.
……내가 모르는 코우자쿠가 있다.
만약 지금 여기서 보지 못했다면, 계속 모른 채로 있었을지도 모른다.
코우자쿠는 섬을 떠나있던 사이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것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 거대한 시간의 벽을 제쳐두고서, 나는 코우자쿠에 대해서라면 뭐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예전의 코우자쿠밖에는 알지 못한다.
지금의 코우자쿠를……, 알고 싶다.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고, 나는 살며시 문에서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스스로가 계속 숨을 죽이고 있어서, 조용히 숨을 내쉰다.
묘하게 감각이 부자연스러운 다리를 움직여 계단을 올라가, 2층의 방으로 돌아가서는 침대 위로 쓰러졌다.
코우자쿠의 등의 문신과, 수많은 상처들.
그것들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아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있으니, 방의 문이 열렸다.
……코우자쿠다.
나는 그 즉시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상하게 긴장감이 들어서 코우자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샤워실에 건조기가 있어서 다행이야. 급속 건조로 바로 말랐다고.”
코우자쿠의 말투는 완전히 평소대로다.
그러니, 나도 평소와 똑같이 아무렇지 않게 맞장구를 치면 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아무래도 그럴 기분이 들지 않는다.
벽을 마주본 채로, 나는 입을 열었다.
“……코우자쿠.”
“응?”
“……너 말야.”
“왜, 무슨 일이야?”
“너, 뭘 숨기고 있는 거야?”
“…………,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말 돌리지 마.”
“………….”
“나, 지금……. 어떻게 널 믿으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됐어. 자신이 없어. 난 너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까.”
……아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 그 사이에도 입이 멋대로 움직인다.
“네가 미도리지마에 없었던 때의 일을 나는 몰라. 알고 싶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고…….”
“지금, 우리들은 토우에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상황이 아냐. 하지만…….”
“……널 믿을 자신이 없어. 네가 날 믿고 있을 거라는 자신도 없다고.”
“아오바…….”
“……윽.”
말을 입 밖에 내뱉고는 초조한 마음이 들어서, 나는 몸을 일으키고 코우자쿠를 보았다.
코우자쿠는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발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후회로 가슴이 조여든다.
내가 변명을 하고자 입을 뗌과 동시에 코우자쿠가 입을 연다.
“도저히.”
“………….”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어. 미안, 아오바…….”
괴로움이 묻어나오는 그 말에는 나에 대한 배려와, 이전과 다름없는 거절이 담겨있었다.
“너를 힘들게 한 건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해. 나도 날 때리고 싶을 정도야. 네가 날 믿을 수 없다는 것도…….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어.”
“하지만, 널 돕고 싶다는 내 마음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어.”
“그러니까, 그것만은 믿어줘. 무슨 제멋대로인 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싶겠지만……. 부탁해. 아오바.”
“………….”
“……알았어.”
그렇게 대답하는 것밖에는……,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어도, 코우자쿠에게는 내 말이 닿지 않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표면을 살짝 스쳤을 뿐, 우리들의 거리는 벌어진 그대로다.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이상, 내가 파고들어갈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분 상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오늘은 그만 자는 편이 좋겠어. 옆방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날 불러.”
“……아아.”
“……잘 자.”
코우자쿠가 방에서 나간다.
조심스럽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귓가에 몹시도 커다랗게 울렸다.
나는 질끈 눈을 감고, 이불로 얼굴을 파묻었다.
코우자쿠는 나에게 마음을 써주고, 나는 코우자쿠를 믿고 싶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엇갈리고 마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이렇게 조바심을 내고 있는 걸까……?
……사실은, 이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플라티나 제일에 온 것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태평하게 이런 일로 고민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고방식을 쉬이 바꿀 수가 없다.
코우자쿠에게 심한 말을 내뱉고, 무엇을 하러 온 건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건 오히려 내 쪽이 아닐까?
“…………, 젠장……!”
자신을 향한 소화되지 않는 분노를 내뱉고, 나는 물밀 듯이 밀려드는 자기혐오와 후회의 감정을 견디는 것에만 몰두했다.
“으으, 흑, 으으, ……흑.”
“으아앙, 흑, 으으, 끅…….”
“할머니……. 언제 오는 거야……, 흐아앙…….”
“다섯 시에는 온다고 했으면서……. 할머니…….”
“아오바!”
“………….”
“이런 데 있었던 거야? 여기저기 찾아 다녔었어. ……근데 아오바, 눈이 빨개. 우는 거야?”
“………….”
“……응?”
“…………, …….”
“괜찮아, 천천히 말해도. 기다릴 테니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얘기해.”
“…………어.”
“응?”
“……아, 안, 울어.”
“……하하, 거짓말. 울고 있잖아.”
“안 울어!”
“알았어, 그럼 안 우는 걸로 할게. 근데, 왜 그러는 거야. 무슨 일 있었어?”
“………….”
“응?”
“……아무것도, 아냐.”
“거짓말. 말 안하면 타에 씨한테 아오바가 거짓말했다고 이를 거야.”
“…………엣.”
“……할머니가, 안 와.”
“타에 씨가?”
“다섯 시에는 온다고 했으면서…….”
“지금은……, 벌써 일곱 시네.”
“우우…….”
“괜찮다니까. 바빠서 좀 늦으시는 거겠지. 조금만 기다리면 돌아오실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마.”
“안 울어!”
“그래 그래, 안 우는 거였어. 아, 그럼 말야, 타에 씨가 오실 때까지 나랑 놀자.”
“………….”
“그럼 시간도 금방 갈 거고. 그치?”
“………, 응.”
“자, 손.”
“지지 마, 아오바.”
“………….”
“외로운 거나 슬픈 거나, 그런 거에 지지 마. 우리들, 더 강해져서 타에 씨랑 엄마를 지켜드리지 않으면 안 되잖아.”
“응…….”
“좋아, 그럼 우선 누가 그네 더 높이 타나 시합이다!”
“………….”
“응?”
“코우자쿠도, 지지 말, ……아.”
“오우!”
……어쩐지, 몹시도 그리운 꿈을 꿨다.
몸을 일으키면서, 나는 방금 꾼 꿈의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그건 코우자쿠가 미도리지마에 있었을 때, 어린 시절의 꿈이다.
내가 코우자쿠와 만나게 된 것은, 우리집 근처로 그 녀석이 이사를 오고서였다.
코우자쿠는 어머니와, 나는 할머니와 둘이서 살았기에, 자주 함께 놀거나 서로의 집을 오가곤 했다.
할머니가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어서, 나도 그것에 꽤나 익숙해진 것처럼 굴었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에 몹시도 불안해지는 일이 가끔씩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바쁘니까 방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외로운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을 기댈 사람이 할머니밖에 없었다는 것도 있다.
그러나 불안이 억제되지 않으면 가만히 있을 수 없어져서, 집에서 빠져나와 어디선가 울곤 했다.
그럴 때, 항상 날 찾으러 와주었던 것이 코우자쿠였다.
코우자쿠는 내가 어디에 있어도 반드시 찾아내주었다.
어렸을 때,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해서, 쉬이 입을 다물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코우자쿠는 언제나 참을성 좋게 내가 말을 꺼내는 것을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할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꼭 함께 있어주었다.
공원에서 같이 놀아주거나, 코우자쿠의 집으로 데려가주었다.
그것이 굉장히 많이 의지가 되어서, 나는 코우자쿠가 멋있는 히어로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말하기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코우자쿠는……, 예전부터 날 이해해주고자 했었지.
내가 하는 말을 듣고자 언제까지고 기다려주고, 내 페이스에 맞춰주려고 했다.
내가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 내가 있는 곳보다 조금 앞에 있으면서 날 기다려주었다.
“………….”
우리들은 어른이 되고서, 무언가가 변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제까지고 어린 시절과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있다.
오래간만에 그리운 옛 일을 떠올리게 하는 꿈을 꾸고, 그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였을 때의 우리들에게는 가능했고, 어른이 된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불가능하게 된 것.
그것은……. 상대방을 순수하게 믿는 일이다.
어른이 되니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 많아져서, 상대방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에 끼워 맞춰서 추측하게 되었다.
그 추측이 어느 사이엔가 단정으로 변하고…….
조금씩 엇갈려가는 것이다.
코우자쿠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 사실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코우자쿠가 나를 돕고 싶다는 말을 건네준 그 마음만큼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때 코우자쿠의 얼굴은 몹시도 진지했다. 그렇기에 나는, 코우자쿠의 그 마음을 믿는다.
코우자쿠를 믿고 싶다.
내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언제나 코우자쿠가 날 기다려주었던 것처럼.
“……좋아.”
언제까지고 꿈의 여운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가, 렌을 기동시켰다.
‘안녕, 아오바.’
“안녕. ……응?”
이불 위에 내 자켓이 놓여있다. 자켓을 집어 드니 좋은 세제 향이 났다.
어제, 코우자쿠가 자신의 기모노랑 같이 빨아준 것이겠지.
나는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자켓을 들고서, 방에서 나왔다.
방금 그 꿈이 동기가 되어서, 코우자쿠에게 말을 걸고자 문 앞에 선다.
언제나처럼, 평범하게.
심호흡을 하고서 문을 노크한다.
조금 기다려본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설마.
“……앗.”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나는 달려드는 듯한 기세로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또. 혼자서 나간 건가.
가슴이 찌르는 듯이 아프다.
코우자쿠를 믿자고 방금 막 결심한 참인데……. 이렇게 되면 역시 충격을 받고 만다.
그런 자신이 너무 싫어서 정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되면 코우자쿠만을 의심해서 끝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 아닐까라는 느낌도 든다.
이렇게 빈번하게 말없이 외출을 하는 것은, 뭔가 중대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일에 휘말렸을 가능성도 있다.
이 녀석, 한 번 떠맡게 된 일은 절대로 무시 못 하는 성격이니까…….
나는 천천히 방의 문을 닫았다.
……코우자쿠를 믿는다.
방금 막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코우자쿠를 믿지 않으면 안 된다.
“렌. 코우자쿠를 찾으러 가자.”
‘알았다.’
토우에와 관련된 일도 있지만, 지금은 어쨌든 코우자쿠를 우선하고 싶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둘 다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이대로 코우자쿠를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만약을 위해 코우자쿠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1층으로 내려가 글리터에서 나왔다.
코우자쿠를 찾는다고 해도, 주변의 지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 에리어에서는 어디로 가야 좋을지 감히 잡히지 않는다.
일단 코우자쿠가 여자와 만났던 장소까지 가보기로 했다.
메인스트리트는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행복감으로 충만해서, 나는 아무리 여기서 오래 머물러도 이 분위기에는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길을 서둘렀다.
옆길로 들어가, 전의 그 네모난 건물 앞으로 나온다. 건물 주변에 코우자쿠처럼 보이는 사람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간 것일까, 아니면 여기에 없는 것일까.
“어디로 간 거야…….”
아까 보낸 메일에 대한 답장도 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이제부터는 닥치는 대로 에리어 안을 뒤지며 돌아다니는 수밖에는 없다.
그러고 보니 코우자쿠가 이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었지. 그 말도 궁극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을까.
건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으니,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 ……!”
“여어, 또 만났네.”
뒤를 돌아보자, 나에게 카드를 주었던 그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서있었다. 남자가 싱긋 미소를 짓자 여우처럼 째진 눈이 가늘게 좁혀진다.
“아, 아아. 안녕하세요.”
“어제는 재밌었어?”
“……네에, 뭐.”
“그래. 그럼 다행이고. 오늘은 어쩐 일이야? 안으로 들어갈 거면 어제 내가 줬던 카드로 들어갈 수 있어.”
“아뇨,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서. 잠깐 사람을 찾는 중이라.”
“친구?”
“대충 그렇습니다.”
“그래. 괜찮다면 내가 도와줄까?”
“헤? 아뇨, 아무리 그래도 그건 죄송한데.”
“지금부터 발로 움직여서 찾자는 말이 아니야. 그 친구의 겉모습이나 특징을 물어보는 것뿐이야.”
“나도 볼일이 있으니까, 좀 더 주의해서 주변을 살펴보는 정도밖엔 못 하지만.”
“……아뇨, 그래도.”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 안 해도 괜찮아. 무리하게 물어볼 생각도 없고. 그러니까 그렇게 복잡한 얼굴 하지 마.”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는 없으니까. ……후후, 너, 마음이 착하구나. 난 그런 애가 좋아. 흥미가 생겨.”
“그렇지만 주의하는 편이 좋아. 너는 조금 무방비하니까. 긴장을 늦추면, 믿고 있던 사람한테 갑자기……, 덥석 하고.”
“먹혀버릴지도 몰라?”
“……아아.”
“……이런.”
그때까지 싱글싱글 웃던 남자가 돌연 정색을 하고, 내 뒤쪽을 보았다.
뭐지?
내가 돌아보려고 하자, 남자는 바로 웃는 얼굴로 되돌아왔다.
“……자. 그럼 나는 안에 들어가 봐야 해서. 너도 사람 찾는 거 힘내.”
“고맙습니다.”
“또 봐.”
남자는 지면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독특한 발걸음으로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그다지 나지 않는다. 기품 있는 걸음걸이로군.
기모노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코우자쿠의 걸음걸이가 연상된다. 그 녀석은 어느 쪽이냐 하면 큰 보폭으로 척척 걷는 편이니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건물로 들어가는 남자의 등을 눈으로 좇는다.
코우자쿠가 이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했을 때, 분명 저 남자 이야기가 나왔었지.
내가 남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코우자쿠가 뭔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얼굴을 했는데…….
‘아오바.’
렌이 가방 속에서 얼굴을 내민다.
“왜 그래?”
‘조금 전에 베니가 이 근처에 있었던 것 같아.’
“에!?”
‘베니 특유의 날개 소리가 들렸어.’
“그 말은 코우자쿠도 이 근처에 있었단 건가.”
‘아마도.’
“찾아보자.”
아직 멀리 가지 못하고 이 부근에 있을지도 모른다.
“뭐 하는 거야……, 코우자쿠……!”
이래서는 마치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을 하는 것만 같다.
나는 곧바로 골목 쪽으로 돌아갔다.
그 후, 이곳저곳을 뒤져보았지만 코우자쿠는 발견되지 않았다.
완전히 녹초가 되어서 메인스트리트로 돌아왔을 때, 물방울이 얼굴 위로 떨어졌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 것 같다.
플라티나 제일의 날씨는 컨트롤되고 있으니, 지금부터 비가 내리도록 프로그램된 것이겠지.
“옷 젖기 전에 얼른 돌아갈까.”
‘아아.’
비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구태여 이런 곳에서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비가 내리면 코우자쿠도 글리터로 돌아올지도 모르고…….
그런 생각에, 나는 빠른 걸음으로 메인스트리트를 걷기 시작했다.
글리터에 도착할 즈음에는, 빗줄기가 상당히 거세진 상태였다.
“꽤 젖었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가까스로 한숨 돌린다.
옷이 젖어서 춥다.
일단 겉옷을 벗고, 샤워실에서 목욕수건을 가지고 와서 물기를 닦는다.
“렌은 안 젖었어?”
가방에서 파란 털 뭉치를 꺼내들고 손으로 만져본다.
‘괜찮아.’
“그러네.”
고장이 날 염려는 없는 것 같다.
렌을 바닥에 내려놓고, 수건을 목에 걸고서 계단을 올라간다.
거실과 복도를 지나쳐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앉았다.
별 생각 없이 창문 쪽으로 시선을 던진다. 창문에는 빗방울이 맺혀있지만, 완전 방음 설비가 되어있는 것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코우자쿠, 괜찮으려나. 안 젖었을까…….
“!”
지금 그 소리……, 현관에서 난 소리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방에서 얼굴을 밖으로 내밀었다.
……코우자쿠다.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
이제 오는 거야? 그렇게 말을 붙이려다가, 도중에 말을 삼킨다.
코우자쿠는 온몸이 흠쩍 젖은 상태였다.
표정이 험악하고, 평소의 온후한 분위기가 아니다.
어딘가에 소중한 것을 떨어트리고 만 듯한, 그런 어두움이 코우자쿠를 에워싸고 있다.
코우자쿠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약간 긴장감을 느끼면서 방문 어귀에 서서, 코우자쿠를 기다렸다.
코우자쿠가 내 눈앞에서 천천히 발을 멈춘다.
뭐지, 이 묘한 위압감……. 말을 걸기 힘들다.
[ 무언가 말을 건다 ] → 선택
[ 말없이 지켜본다 ]
“……너, 완전 젖었잖아.”
“………….”
“감기 걸리잖아? 자.”
내심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말투를 평소처럼 꾸미고, 나는 목에 걸고 있던 수건을 내밀었다.
내 팔이, 코우자쿠에게 붙잡힌다.
“……앗.”
세게 잡아당겨지는 바람에 균형을 무너트리고, 나는 코우자쿠의 품으로 쓰러졌다.
당황스러움에 허둥지둥 고개를 들고서는……, 흠칫 놀란다.
정말로 코우자쿠인 건가?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음울한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코우자쿠의 앞머리에서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창백한 뺨을 타고서 턱으로 흘러내린다.
“…………, ……코우자쿠?”
“……어떻게 된 거야.”
“에?”
“그 녀석이랑, 무슨 이야기 했어.”
“그 녀석이라니……, 잠깐……!”
갑자기 코우자쿠가 내 양쪽 어깨를 붙잡고, 난폭하게 체중을 실어왔다.
한 번 휘청거린 나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을 치고, 코우자쿠와 함께 침대로 쓰러졌다.
“무거워……, 어이 코우자쿠……!”
“그 녀석이랑 무슨 이야기 했어…….”
“코우자쿠……?”
“그 녀석이랑…….”
“그 녀석? ……윽!”
코우자쿠가 내 양손을 시트 위로 난폭하게 밀어붙인다.
그 녀석, 그 녀석이라니……. 아까부터 대체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거지?
것보다, 코우자쿠의 눈.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코우자쿠, 어이……, 괜찮아?”
“…………윽.”
코우자쿠가 내 어깨로 얼굴을 바싹 가져다댔다. 그 순간, 목에 강한 통증이 스친다.
“아파!”
뭐지……!? 깨물린 건가!?
그 후, 똑같은 장소 위로 미지근한 감촉이 스쳤다.
“뭐, 하는 거야……!”
축축한 것이 깨물린 탓에 따끔거리는 그곳을 되풀이해서 어루만져간다.
귓가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젖은 소리와, 거친 호흡.
“코우자쿠……! 그만하라니까……!”
내가 발버둥을 치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코우자쿠는 내 목덜미를 핥고 때때로 그 위로 이를 세웠다.
어째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윽, 어이……!”
옷이 걷어 올려져서, 본격적인 초조함이 느껴진다.
어떻게 된 거지?
뭐 하는 짓이야, 코우자쿠……!
“………….”
코우자쿠가 다시금 내 목덜미 위로 혀를 놀리고서, 내 귓가에서 자신의 입술을 핥는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확실히 위험하다.
“코우자쿠……! 어이, 무슨 생각 하는, 거야! 그만두, 라니까……!”
나는 진심으로 코우자쿠를 밀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으윽………….”
“!”
“앗……, 윽!”
몸부림치는 나를 위협하는 듯이, 코우자쿠가 다시 한 번 내 몸을 침대로 강하게 밀어붙인다.
코우자쿠의 손톱이 내 손목을 거세게 파고들고, 그 인정사정없는 힘에 핏기가 싹 빠져나간다.
코우자쿠…….
내 말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설마……, 제정신을 잃은 건가?
겉모습은 코우자쿠인데도, 그 안의 인격은 다른 사람으로 뒤바뀌고 만 것 같다.
……다른 사람.
그런 느낌이 든 순간, 몸 안쪽에서 싸늘한 공포가 솟아올랐다.
어떻게 하면 좋냐고……!
“…………, …….”
코우자쿠가 희미하게 낮은 신음을 내고, 어중간하게 말려올라간 내 T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 어이, ……윽.”
까칠한 손바닥이 난폭하게 살결을 문지르고, 가슴을 주무른다.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나의 살갗과 코우자쿠의 손바닥 사이로, 미지근한 밀착감이 생겨난다.
“비, 켜……! 아니 정말로 뭐 하는……, 앗……!”
귀가 핥아지는 감촉에 목을 움츠린 순간, 뜨거운 숨이 내뿜어졌다.
“후………….”
“코우자쿠, ……코우자쿠!!”
“………….”
“……윽, 읏……!”
코우자쿠는 무시무시한 힘으로 내 저항을 봉쇄하고는, 내 귓구멍으로 혀를 집어넣고 마구 핥아댔다.
질척질척 거리며 귓속으로 달라붙는 듯한 물소리가 내 고막을 휘저어, 사고가 산산이 흩어진다.
필사적으로 얼굴을 돌리려 하자, 하반신에 소름끼치는 감각이 느껴졌다.
“……윽.”
코우자쿠의 손이 내 바지와 속옷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나의 것을 세게 움켜쥐었다.
“바, 보……, 이거 놔, 그만해……. 윽!”
완전히 혼란 상태에 빠지면서도 필사적으로 몸을 비튼다. 하지만, 코우자쿠는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그것도 하필이면……, 코우자쿠와.
“주의하는 편이 좋아. 너는 조금 무방비하니까. 긴장을 늦추면, 믿고 있던 사람한테 갑자기……, 덥석 하고.”
“먹혀버릴지도 몰라?”
그 기모노를 입은 남자의 말이 뇌리에 떠오른다.
왜……. 어째서 이렇게 된 거냐고…….
코우자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전혀 알 수 없다.
나는 정말로……. 코우자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으윽.”
갑자기 날카로운 두통이 스쳤다.
머리가…….
──── 부숴라 ────
──── 부숴라 ────
격렬한 두통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가운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 그럴 바에는 차라리 ────
──── 부숴버려라 ────
……싫다.
──── 그 녀석을 부숴버려라 ────
싫다. 절대로, 싫다.
“………….”
“아……, 앗!”
코우자쿠의 손이 나의 그것을 난폭하게 문지르기 시작한다.
미약한 쾌감이 스치고, 그런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싫다…….
이런 건, 너무…….
비참하잖아……!
“싫어, 제발 그만해……!”
──── 부숴라 ────
──── 부숴라 ────
그 무엇도 부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부서지고 만다. 나와 코우자쿠의 사이에 있는 것이.
부수고 싶지 않은데도. 어째서.
싫다.
그만해…….
──── 부숴라 ────
──── 그 녀석을 부숴라 ────
제발 그만해……!
“……그만해, 코우자쿠!”
억지로 쥐어짜내는 듯이 소리를 치자, 어째서인지 코우자쿠의 움직임이 뚝 그쳤다.
바로 전까지 내 말 같은 건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는데, 어째서…….
안이 텅 비었던 코우자쿠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잡히고, 나를 인식한다.
“…………핫.”
코우자쿠는 자기 아래에 있는 나를 보고, 그 사실을 지금 막 깨달은 것처럼 놀란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코우자쿠의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느릿하게 열렸다가 닫힌다.
“……윽.”
그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
코우자쿠의 얼굴이 내 주먹을 받고 그대로 옆으로 돌려진다.
“……윽!”
주먹으로 전해지는 충격을 느끼고서야, 번쩍 정신이 든다.
껄끄럽게 됐다…….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어. 미안.
그렇게 말을 꺼내려 하다가, ……입을 다문다.
코우자쿠를 친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 다른 한손으로 세게 움켜잡는다.
어째서 주먹을 날린 것인지,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몸 어딘가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그런 다음…….
사과하고 싶다. 하지만, 사과할 수 없다.
그 정도로……. 나는 크나큰 충격을 입은 상태였다.
코우자쿠……. 왜 이런 짓을……?
그런 의문만이 머릿속에서 오도카니 떠오를 뿐, 그 이상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대답을 요구하듯이 코우자쿠를 바라본다.
뭐든 좋다. 어쨌든 코우자쿠의 입에서 무언가 말이 나오는 것을 듣고 싶다.
화를 내도 좋고 원망을 해도 좋다.
뭐든 좋으니 나를 상대로 하는 마음이 담긴 말을 터트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코우자쿠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그 어떤 말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쳤던 뺨이 점차로 붉은색을 띠기 시작한다.
바라지 않았던 침묵만이 점점 쌓여간다.
“……왜, ……왜.”
우는 것처럼 말끝이 떨린다.
“……윽,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순간적으로 솟구친 것은, 슬픔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해받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다.
평행선은커녕……, 멀어져간다.
코우자쿠는 세차게 미간을 좁히고는 눈을 감고, 천천히 내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방에서 나갔다.
“………….”
문이 닫히고……, 멈춰있었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숨 쉬기가 힘들어져서, 나는 어깨를 떨며 숨을 헐떡였다.
“하…….”
흐트러진 숨을 내뱉고, 몸을 웅크리는 것처럼 침대 위에 눕는다.
아직 머리가 아프다. 눈을 감자, 통증의 파동이 또렷하게 감지된다.
머릿속이 질척질척하게 녹아서 뒤섞여버린 것만 같다.
긴장과 공포의 여운이, 귀 안쪽을 지잉 하고 마비시켰다.
코우자쿠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여하튼 나에게 심한 짓을 하고자 하는 충동만이 일직선으로 전해져왔다.
여전히……, 목덜미와 귀에 축축한 감촉이 남아있다.
다른 사람 같았던 코우자쿠. 그랬던 코우자쿠가, 내가 소리를 치자 갑자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좀 전의, 그 감각.
──── 부숴라 ────
혹시 그것은……. 스크랩의 힘이 작용한 건가?
그래서 코우자쿠가 제정신으로……?
내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힘이 있다고 할머니가 이야기했었다.
상대방의 머릿속에 직접 작용해서,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일이 가능하다고.
사용 방법에 따라서는……, 사람의 의식을 파괴해 죽일 수도 있는 힘.
그 힘이 지금은 날 도와준 건가?
………….
만약 그때, 코우자쿠가 이성을 되찾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몸에 공포와 비참함의 감각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무서웠다.
코우자쿠가 제정신을 잃은 것도 그랬지만…….
나와 코우자쿠의 관계가 깨져버릴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지? 어떤 식으로 코우자쿠와 접하면 되는 거지?
애초에 일이 이 지경에 이른 상태에서, 나와 코우자쿠의 관계가 아직 깨지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 아닐까.
이미 깨지고 만 것이 아닐까.
이전과 같은 관계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나와 코우자쿠는…….
“…………후.”
그런 건, 싫다.
그런 짓을 당했어도, 도저히 코우자쿠를 미워할 수 없다.
솔직히, 엄청나게 무서웠던 데다 충격도 꽤 받았다.
하지만, 그보다 어째서 코우자쿠가 그렇게 돌변하고 만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그 때문에 마음이 괴롭다.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코우자쿠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 건가.
여전히 날보고 입 다물고 보고만 있으라는 거냐고…….
……상대방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고 기원하면, 상대방의 머릿속으로 자신의 의식을 들여보낼 수도 있다.
내 힘으로는 그런 일도 가능하다고, 할머니가 말했었지.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코우자쿠에 대해 알고 싶다고 강하게 염원하면 더 많은 것들에 대해 알 수 있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가능하면 그 힘은 사용하고 싶지 않다.
──── 부숴라 ────
──── 그 녀석을 부숴라 ────
두통과 함께 울렸던, 누군가의 목소리.
마치 내 의식을 날려버리려 하는 것 같았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늪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듯한, 그런 감각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머리를 싸매고 있으니, 문 쪽에서 뭔가를 박박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침대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간다.
발치를 보니, 파란 털 뭉치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보고 있었다.
“……렌.”
‘아오바, 괜찮아?’
“……응.”
나는 몸을 숙이고, 렌을 안아들었다.
평소와 다름이 없을 터인 촉감이 지금은 유난히 가슴에 와 닿아서, 그 털 속으로 얼굴을 묻는다.
코우자쿠에게 붙잡혔던 팔이 새삼스레 그 사실을 상기하는 듯이 욱신거렸다.
‘아오바?’
“……괜찮아.”
스스로를 타이르는 것처럼 혼잣말을 내뱉고, 나는 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그렇게 외지 않으면,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말 것 같았다.
나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다시금 렌을 안아들고서 1층으로 내려갔다.
소파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들고, 렌을 그 안에 집어넣는다.
‘나갈 거야?’
“응. 잠깐……. 바깥 공기를 쐬고 싶어.”
‘그래.’
렌의 머리를 쓰다듬고, 현관에서 밖으로 나간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빗발이 약해진 것 같다.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자, 불안정했던 감정이 조금 가라앉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우산도 쓰지 않고서, 나는 비 내리는 거리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코! 우! 자! 쿠!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 코우자쿠를 떠올린다 ] → 선택
[ 밍크를 떠올린다 ]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걸어가니, 계단 중간에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저 뒷모습은…….
내가 말을 걸기도 전에, 뒤를 돌아본다.
“여어.”
“코우자쿠. 뭐 하는 거야, 이런 데서.”
“잠깐 좀.”
나는 계단을 내려가, 코우자쿠보다도 한 칸 위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불이 켜져 있지 않은 탓에 어둑하다.
“실은 산책이라도 할까 했는데, 여기까지 와서는 결단이 안 서서. 잠깐 앉았더니 금방 시간이 지나버렸어.”
“생각할 일이라도 있어?”
“뭐 그렇지. 너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잠이 안 오는 건가.”
“……그렇, 네.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까.”
“그보다 너, 정말 무모한 짓을 많이 한다고.”
“러프래빗이 튀어나오질 않나, 이상한 가스마스크가 뒤를 종종 따르질 않나, 급기야는 스크래치까지 튀어나오고.”
“미안…….”
“아, 아니, 미안. 그런 뜻이 아니었어. 나무랄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라, 그……, 뭐냐.”
“아까 타에 씨가 이야기한 것도 있잖아? 그래서 걱정이 된달까.”
“그러네. 너한테는 정말 걱정만 잔뜩 끼치고…….”
“잠깐, 그게 아냐.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뭐라고 하지, 너, 혼자서 다 끌어안는 구석이 있잖아. 예전부터.”
“그러니까 사소한 일이라도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하고, 널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그치만 네가 그런 건 전부터 그래왔던 거니까. 딱히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나쁜 건 아닌데 말야. 너, 그런 거 말 안 하면 모르잖아? 그러니까 나도 계속해서 말하는 거라고.”
“……응.”
“미즈키 일도, 너무 신경 쓰지 마. 뭐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러는 게 무책임하게 느껴진다면, 내 탓으로 돌려도 괜찮으니까.”
“……고마워.”
코우자쿠는 그 나름대로 내게 힘을 북돋워주려는 것이겠지.
그 마음이 기뻐서, 나는 솔직하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코우자쿠는 곁눈으로 나를 보고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한 분위기를 풍기다가,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앞머리를 손으로 헝클어트렸다.
“네……, 힘, 스크랩이라고 했나. 그것도 말야, 네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섭다든지 위험해 보인다든지, 나는 그런 생각 안 하니까.”
“네가 라임을 했었다는 건……, 좀 의외였지만.”
“나도 진짜로 잊고 있었어. 일부러 숨긴 건 아냐.”
“알고 있어. 오랜 시간 널 지켜본 이상,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어. 근데 그 일에 대해서도 너무 죄책감 같은 거 느끼지 말라고.”
“널 책망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고, 무엇보다 제일 힘든 사람은 너일 거고. 지금, 우리들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는 없어. 단지 그것뿐이야.”
“……고마워.”
코우자쿠의 진중한 말에, 나는 한 번 더 감사의 뜻을 전했다.
코우자쿠가 작게 숨을 내쉬고 웃는다.
“이제부터 플라티나 제일로 쳐들어가는 거라고?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고, 어떻게 될지도 몰라.”
“너도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자고, 휴식을 취해두라고. 알았지?”
“네 말이 맞네, 그래야지. 근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제대로 쉬라고.”
“오우, 나도 그럴 거니까 걱정하지마.”
“그럼, 잘 자.”
“잘 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라가 내 방으로 돌아갔다.
코우자쿠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었다.
지금은 아무튼 앞으로 나아갈 일을 생각하자. 이제부터 일어날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것이……, 미즈키를 구하는 일과도 이어질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도 가능한 한 잠을 자두자는 생각에,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가까스로 졸음이 몰려왔을 때에는, 커튼 너머의 창으로 밝은 빛이 비쳐들기 시작했다.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갑자기 코일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전화다.
“네에.”
“아오바 씨? 자고 계셨나요?”
이 목소리……. 에- 누구더라…….
코일 액정에 표시된 이름을 본다.
“……아? 바이러스?”
“네.”
“어-, 무슨 일이야?”
“큰일이에요. 침착하게 잘 들어주세요. 지금 경찰이 아오바 씨 댁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헤?”
단번에 잠이 확 깨서, 나는 무의식중에 코일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댔다.
“뭐 때문에.”
“모르겠어요. 단 꽤 많은 숫자가 출동한 것 같아요.”
“진짜야……?”
“아무튼 도망치거나 숨으세요. 저희도 경찰이 움직인 탓에 조금 시끄러워져서.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겠습니다.”
“아오바 씨, 부디 조심하세요.”
바이러스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끊긴다.
뭐지? 경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때, 어렴풋하게 방 안을 비추는 정도였던 창밖의 빛이 갑자기 강해졌다.
아침을 넘겨버리고 낮이 된 것처럼 밝다.
“……?”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걷어본다.
“……윽, 눈부셔…….”
눈을 뜨고 있을 수 없다. 얼굴을 찡그리며 창밖을 본다.
아직 옅게 안개가 낀 이른 아침의 거리를 배경으로, 경찰 차량과 경찰관들이 집 앞에 주르륵 늘어서서 북적대고 있었다.
“아-, 아-, 아----. 냉큼 나와라-! 여기에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이 테러리스트 녀석들!!”
“…………하!?”
이 목소리……, 아쿠시마다.
“아---, 너희들의 죄목은 이렇다! 불법침입, 기물파손, 그 외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온갖 범죄를 통틀어 전부다!!!”
“당장 나와라! 세라가키 아오바와 그 일당들!!!”
“!”
풀 네임으로 호명되어서, 이 소동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건 그렇고, 테러리스트? 어째서 그렇게 된 거냐고!
나는 옷을 갈아입은 후 렌을 기동시키고, 곧장 1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에는 할머니, 코우자쿠, 밍크, 노이즈, 클리어, 그리고 하가 씨와 요시에 씨가 있었다.
“아오바…….”
“마스터!”
“할머니! 어쩐 일인지 밖에 경찰관이 엄청 많이 있는데, 그것도 내 이름을 막 부르는데…….”
“성가시게 되었구나…….”
“잠깐 아오바쨩!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타에 씨께 부탁받은 일의 준비가 끝나서 왔습니다만……, 어쩐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 같군요.”
“저 녀석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아오바쨩 편이니까 말야!”
“그렇고말고요!”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저도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어서…….”
“토우에겠지.”
“토우에……?”
“네가 어제, 스크랩을 사용한 것을 모르핀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이 보고한 거겠지. 곧바로 너한테 흥미를 보였다는 건가.”
“빨리 나와라-----!!! 안 나오면 이쪽에서 쳐들어가겠다! 괜찮겠지! 좋아! 돌격 준비다-------!”
“너희들, 빨리 뒷문으로 도망가거라!”
“저 녀석, 한다면 진짜로 한다고.”
“여기는 저희들이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그러니 아오바 군과 친구 분들은 어서 뒷문으로 나가세요!”
“그래! 나쁜 짓만 잔뜩 해대고 시민의 지팡이 노릇이라곤 요만큼도 안 하는 경찰 따위 확 날려버릴 테니까 말야!”
“하가 씨, 요시에 씨……. 할머니도, 고마워요.”
“도---올겨-----억!!!”
“아오바, 가자!”
우리들은 부엌의 뒷문을 통해 집 밖으로 나갔다.
교대하듯이, 경찰관들이 집 안으로 들이닥치는 소음이 전해져온다.
할머니도 하가 씨도 요시에 씨도……, 모두들, 미안……!
부디 무사하게 있어줘……!!
뒷문에서 나와, 우리들은 담과 담 사이의 좁은 길로 들어갔다.
그곳을 빠져나가, 조금 넓은 뒷길로 나온다.
“그쪽은 경찰관이 있습니다! 발소리가 들립니다!”
클리어가 소리친 대로, 앞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있다! 이쪽이다!”
“……윽.”
들켰다……!
이런 곳에서 궁지에 몰리게 되면 일망타진이다.
“뭉쳐있지 마라! 흩어져!”
밍크의 말을 따라,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리기 시작했다.
“아오바!”
코우자쿠가 나와 같은 방향으로 달려와서는, 옆에 나란히 선다.
“일단 달리자!”
“아아!”
어디를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 확인할 여유도 없이, 우리들은 계속해서 골목길 위를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도중에 발을 멈추고, 주위의 낌새를 살핀다.
뒤를 쫓아오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따돌린 건가……?
“하아, 하아, 하아……, 하…….”
“하아, 하아, 하…….”
나와 코우자쿠는 가까이에 있는 벽에 기대어,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거친 숨을 이어나갔다. 폐가 터질 것 같다.
“……?”
차츰 호흡이 진정되기 시작했을 때, 코일이 울렸다.
‘게임 어플리케이션 송신이다.’
“또!? 아니 이런 때에……!?”
코우자쿠의 코일에서도 소리가 났다.
“……응? 나한테도 뭔가 왔는데.”
‘아오바랑 똑같은 거 아냐? 게임 어플리케이션 송신이라고.’
“진짜로……!?”
‘아무래도 자동으로 재생되는 타입인 것 같다.’
“에……!”
“뭐지 이거. 뭔지 잘 알 수 없는 게임이네. 플레이도 할 수 없고.”
“너한테 온 건 이번이 처음이야?”
“아아. 본 적 없어, 이런 거.”
“말했었잖아? 데모 무비만 송신되어오는 게임이 있다고.”
“그게 이거였어?”
“근데, 이 마지막의 초대장이란 건, 이걸로 플라티나 제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건가?”
“응? 초대장? 나한테는 그런 거 안 왔는데.”
“봐봐, 이거.”
나는 코우자쿠에게 초대장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초대장 같긴 하네.”
“나한테만 온 건가.”
게임 내용도 또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거였고…….
……아니, 그렇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할머니가 납치됐었던 거, 역시 이 게임이 그걸 예언했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설마.”
“그치만 게임 내용이랑 거의 똑같은 일이, 그 뒤에 실제로 일어졌어.”
“……그럼, 이번 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동굴, 보물 상자, 열쇠, 커다란 문…….”
“뭐 게임이야 어쨌든, 그 초대장은 가짜가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진짜로 플라티나 제일로 초대한다는 건가.”
……이번엔 메일 수신이다.
-
하가 씨 / 플라티나 제일로 가는 지름길.
실은 제가 안내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예정 변경입니다. 북쪽 지구의 D-86까지 와주세요. 거기서 합류하죠.
-
메일에는 이미지 파일이 첨부되어 있다. 구 주민구의 지도다.
플라티나 제일 외벽 왼쪽 가장자리 부근에 붉은색 점이 찍혀있다.
“하가 씨랑 합류한다. 가자.”
“좋아.”
우리들은 일단 하가 씨와 합류하기로 한 장소로 가기로 했다.
지정된 장소는 북쪽 지구 변두리에 있는 지하통로의 출입구로, 그곳에는 부서진 바리케이드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하가 씨가 이미 그 자리에 나와 계셨고, 내게 호신용으로 개조된 스턴 건을 건네주셨다.
하가 씨의 말에 따르면, 이 지하통로는 원래 플라티나 제일을 건설할 때 사용했던 운반용 통로인 것 같다.
본디 플라티나 제일은 섬 전체를 통째로 오락시설로 만들 예정이었던 듯, 구 주민구에도 공사용 물자를 운반하는 통로가 만들어지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계획이 좌절되어 통로만 남게 된 것 같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지고 말았지만, 여하튼 이 통로를 빠져나가면 플라티나 제일의 게이트 앞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썩어들기 시작한 계단을 내려갔다.
통로 안은 어둡고, 터널과도 같은 외줄기 길이 아주 길게 이어져있었다.
묵묵히 길을 걸어가자 그 끝에 계단이 나오고, 그것을 올라가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장소로 나왔다.
거대한 백색 게이트가 눈앞에 우뚝 솟아있다.
이게……, 플라티나 제일의 게이트인가.
……정말로 여기까지 발을 들여도 괜찮은 걸까?
역시 함정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은 걸음을 내딛었다.
“!”
게이트가 열리자, 요란한 팡파레와 폭죽 소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뭐야……?”
“어서 오세요! 일본 최대, 최고급의 사랑과 꿈이 가득한 힐링 오락시설, 플라티나 제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귀여운 건지 안 귀여운 건지 잘 분간이 안 되는 팬더가 걸어 나와, 우리들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그 뒤로 다섯 개의 하얀 문이 보였다.
“여기는 선택받은 사람밖에는 들어갈 수 없는 지상 낙원이야! 부디 마음속 깊은 곳까지 리프레~시될 때까지 즐겁게 지내다 가!”
“지상 낙원……?”
“수상쩍음이 만발하는데.”
우리들의 반응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팬더가 춤을 추면서 벽에 붙어있는 버튼을 눌렀다.
“자아~ 그럼, 우리 친구들이 갈 곳은 어디가 될까나? 두근두근 룰렛, 스타트!”
“오오 과연, 우리 친구들이 갈 곳은 플레임 윌로우야! 자, 이쪽으로 오세요!”
팬더가 가장 왼쪽에 있는 문 앞에 서서, 양손을 흔들며 춤을 춰댄다.
“여기는 정열적이고 유쾌 통쾌한 친구들이 잔뜩 모여 있는 에리어야! 분명 너무 즐거워서 우리 친구의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쉴 새 없이 쿵쾅거릴 걸!”
“그런 기대를 가득 안고서, 잘 다녀와~!”
“하아? 대체 뭐야 저 팬더. 의미를 모르겠네.”
“아무튼 간에, 여기서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심하지 않으면.”
“아아.”
이것이 함정일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되돌아갈 수는 없다.
“문 옆에 있는 인증 모니터에 입장 티켓, 또는 초대장을 대줘~!”
“초대장이면, 이건가.”
나는 코일로 초대장을 띄우고 모니터에 가져다댔다.
“플라티나 ID의 인증이 끝났습니다. 아오바 님과 그 외 한 분, 플라티나 제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입장 수속을 개시하겠습니다.”
“동행하신 분의 게스트 ID를 발행하겠습니다. 동행하신 분께서는 코일을 모니터에 대주십시오.”
코우자쿠가 코일을 모니터에 댄다.
“인증이 완료되어 게스트 ID를 송신했습니다. 모든 권한은 플라티나 제일에 귀속됩니다.”
“게스트 ID만으로는 사용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주십시오.”
“자세한 사항은 초대장의 서비스 항목을 봐주십시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문을 빠져나가자, 온통 붉은 색채로 뒤덮인 장소가 나왔다.
뭐랄까……. 건물의 디자인이 과거의 일본을 연상시키는 느낌이라, 조금 독특한 분위기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일단 이런 건 구 주민구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플라티나 제일은 날씨와 시간대가 컨트롤되고 있고, 기본적으로는 언제나 밤이라는 설정인 것 같다.
매일을 축제 기분으로 보내기 위해, 또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컨셉이 있는 모양인 것 같은데…….
정면으로 보이는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것은, 플라티나 제일을 상징하는 탑이다.
“저게 오벌 타워…….”
소문으로 들은 적은 있었지만,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플라티나 제일의 상징……. 감시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어쩐지 불쾌한 느낌이다.
“플레임 윌로라 이거지…….”
코우자쿠가 에리어의 이름이 적힌 간판을 올려다보고, 주변을 유심히 쳐다본다.
“왠지 묘한 분위기네. 지금으로선 어디가 어딘지도 전혀 모르고, 일단 정보를 모으지 않으면 안 되겠군.”
“그러네.”
“그 초대장에는 이 에리어에 대한 설명 같은 건 안 적혀있었어?”
“한 번 봐볼게.”
코일로 초대장에 첨부되어있던 지도를 연다.
“플라티나 제일의 지도인가. 이 마크되어있는 곳은?”
‘체류 기간 동안 머물 숙박시설이 있는 곳이겠지.’
“곧바로 가보실까나.”
“아아. 렌, 이 시설까지 길 안내를…….”
“어머.”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자, 두 명의 여자가 서있었다.
둘 다 요란한 차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얼굴이나 동작에서 어딘지 모르게 고상한 분위기가 감돈다.
플라티나 제일의 손님인 걸 봐서도, 어디 돈 좀 있는 집안의 아가씨들이겠지.
“당신, 멋진 옷을 입고 있네요.”
여자 중 한 명이 코우자쿠를 지그시 응시하며, 손끝으로 코우자쿠의 기모노를 슬쩍 가리켰다.
갑자기 말을 걸어와서 코우자쿠랑 아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아아, 별말씀을.”
“귀여운 새까지 데리고.”
“이 녀석은 베니라고 하지.”
‘오우.’
“당신들, 아직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거야?”
“그보단 지금 막 온 참이라.”
“그렇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길래 그렇지 않을까 싶었어.”
“뭐어, …………!”
코우자쿠가 여자들의 비위에 맞춰 웃으려 하다가, 그 중 한명에게 시선을 모았다.
여자의 목 부분에는 검고 커다란 거미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있다.
그보다 크기가 작은 금색의 거미가 그 위를 기어갔다.
금색 거미는 올메이트겠지.
“왜 그러실까?”
코우자쿠의 시선을 눈치 챈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코우자쿠는 곧바로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아, 미안. 내가 그만 넋을 잃고 봤네.”
“어머.”
“나한테 흥미가 있는 거야?”
“그거야, 남자라면 모두 여자에게 흥미가 있겠지.”
“우후후.”
“재미있는 사람이네.”
여자들이 즐겁다는 듯이 깔깔 웃는다.
“우리들, 지금부터 파티에 갈 거야. 파티라고 해도 딱딱하게 격식만 차리는 건 아냐. 느긋하게 놀 수 있는 곳이지.”
“만약 괜찮다면, 당신도 같이 가는 건 어떨까.”
“………….”
여자의 권유에 코우자쿠가 입을 다문다.
어차피 바로 거절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코우자쿠는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이어이, 설마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여자가 좋다고 해도 역시 이건 좀 곤란하다고…….
“여기는 낙원, 우리들은 이곳에 이끌린 인간들이지. 말하자면 가족과 다를 것이 없어. 그러니까 몸을 사릴 일은 전혀 없어. 마음 편히 있어.”
“……그 말대로네. 그렇다면 날 데리고 가주겠어?”
“……헤!?”
뭐라고……!?
예상치도 못했던 대답에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어이, 코우자쿠……!”
소리를 내서 이름을 부르자, 코우자쿠가 내 귓가로 얼굴을 가까이 댔다.
“정보라는 건 저런 데서야말로 얻을 수 있는 거라고. 맡겨둬.”
“그런 게 아니라…….”
“걱정하지 말라니까. 코일로도 연락은 가능한 것 같고. ……읏샤.”
코우자쿠가 빠른 손놀림으로 코일을 조작한다. 곧바로 내 코일이 울렸다.
-
코우자쿠 / (제목 없음)
나중에 방금 얘기했던 시설로 갈게. 지도 보내줘.
-
“………….”
“저 아이는 괜찮은 거야?”
“아아, 나만 갈 거야. 혼자서 독점하고 싶으니까 말이지.”
“후후.”
“그럼.”
“코우자쿠……!”
코우자쿠는 양옆에 선 여자들의 어깨를 끌어안고, 내게 등을 돌리고서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
홀로 남겨진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코우자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뭐, 뭐야 진짜 저 녀석…….”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건 좀 심하지 않아? 그치 렌.”
어이가 없어서 가방에서 얼굴을 내민 렌에게 동의를 구한다.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 환장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하잖아 보통.”
‘코우자쿠답다고 한다면 코우자쿠답지만……. 지금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저 녀석도 그걸 알고 있을 텐데 말이지. 정보 수집 차라고는 했지만…….”
‘코우자쿠가 그렇게까지 생각이 얕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말야…….”
렌에게 푸념을 늘어놓으며, 나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생각, 사실은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코우자쿠에게 조금 실망한 기분이다.
설마 이 상황에서 진짜로 여자를 선택할 줄은 몰랐고…….
……어쩐지, 이런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된다.
“뭐어,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 난 나대로 정보를 수지하러 가볼까.”
‘아아.’
나는 플라티나 제일의 지도에 의지해, 에리어 안을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으니, 어떤 선전이 유독 눈에 띄었다.
‘특별기념 이벤트.’
대규모의 전자 포스터와 큼지막한 광고 모니터로 선전하고 있으니, 보기 싫어도 시야에 들어온다.
할머니가 말했던 이벤트라는 건 아마도 이거겠지. 이 이벤트는 가두는 편이 좋을 듯한 느낌이 든다.
……결국, 에리어 안을 돌아다녀서 손에 얻은 유력한 정보는 그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 말고는 플라티나 제일과 토우에를 칭송하는 문구투성이라 진절머리가 났다.
“……조금 피곤해졌어.”
‘줄곧 움직이기만 했으니 그렇겠지.’
“응. 그 숙박시설이라는 데에 가볼까. 렌, 안내 부탁해.”
‘알았다.’
나는 정보 수집을 마치고, 숙박시설로 향하기로 했다.
도중에 적당한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가볍게 먹을 것을 샀다.
배가 고프면 조금만 일이 있어도 금세 짜증이 나는 법이고, 공복감을 해소하는 건 꽤나 중요한 사항이다.
패스트푸드라고 해도 여기는 플라티나 제일이다. 가게는 역시나 구 주민구의 패스트푸드점보다도 훨씬 세련되어서, 안으로 들어가는 게 조금 기가 꺾이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무사하게 먹을 것을 구입해, 나는 렌의 안내로 가까스로 목적 장소까지 도착했다.
그곳은 숙박시설이 모여 있는 구역인 듯, 몹시도 호화로운 저택들이 그곳에 처마를 잇대고 늘어서 있었다.
그 가운데서, 우리들이 머물 곳은 끄트머리 쪽에 있는 자그마한 건물이었다.
외관은 다른 건물들과 똑같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문 위쪽에는 ‘글리터’라고 쓰인 플레이트가 내걸려있다.
옆 건물에도 다른 단어가 쓰인 플레이트가 있으니, 이게 이 건물의 이름인 거겠지.
나는 문 옆에 있는 인증 모니터에 코일을 대고, 앤티크한 손잡이를 돌렸다.
안으로 들어가고서는……, 깜짝 놀랐다.
밖에서 보기에도 고풍스럽다 싶었지만, 내부 장식은 훨씬 더 클래식한 느낌이 강했다.
커다란 시계와 테이블, 소파가 있고, 가구는 전부 다 세심하게 손질이 된 골동품으로 보인다.
“엄청나네…….”
안쪽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 2층으로 가본다.
2층은 계단을 다 올라가면 바로 나오는 공간에 거실이 들어서있고, 그 안에는 TV와 자그마한 바 카운터, 소파가 있었다.
그 옆쪽으로 이어진 복도에는 몇 개의 방이 있다. 아마도 침실이겠지.
2층을 쭉 둘러보고서, 나는 1층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샀던 패스트푸드를 테이블 위에 펼쳐놓는다.
플라티나 제일이니 패스트푸드도 비쌀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렇지도 않았다.
그건 그렇고, 이곳의 패스트푸드는 어떤 맛이 날까.
햄버거를 집어 들고, 한 입 깨물어본다.
……음. 어쩐지 고기의 식감이 조금 다르네.
뭐가 다른지 정확하게는 이야기할 수 없지만, 더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고 할까……. 딱히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늘 먹어오던 구 주민구 패스트푸드의 조악한 맛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나는 느릿느릿 햄버거를 먹으며 코일을 확인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먹을 것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이에 코우자쿠에게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정말 어떻게 된 거야? 이 녀석.”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고서 떠나는 코우자쿠의 뒷모습을 떠올리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특별기념 이벤트란 것에 대해서도 의논하고 싶은데…….
“너무 그렇게 팔랑팔랑 여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면 오랫동안 쌓아올린 신뢰도 없어져버려요~ 라고. 바보.”
불평을 늘어놓으며, 나는 묵묵히 눈앞의 음식을 처리해갔다.
먹을 것을 전부 먹어치운 뒤, 나는 소파에서 잠시 동안 선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 코일에 표시된 시계를 보니, 이미 날짜가 바뀐 상태였다. 동이 틀 시간에 가깝다.
코우자쿠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
“이 녀석, 진짜 뭐 하는…….”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나는 소파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고 그쪽을 보았다.
코우자쿠…….
“……자고 있었어? 미안. 깨워버렸네.”
코우자쿠는 나를 보고는, 겸연쩍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직전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현관에서 들어왔을 때, 코우자쿠는 완전히 피폐해진 듯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코우자쿠로서는 별일이랄까, 그다지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돌아오면 따끔하게 한 마디라도 말해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늦어버렸네, 미안.”
“………….”
“아오바?”
“아, ……음. 정말 많이 늦었네.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너.”
“뭐 조금.”
뭐 조금, 이라니…….
코우자쿠는 그 이상 설명하려 하지 않고, 계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이, 잠깐 기다려.”
코우자쿠가 발을 멈추고 돌아본다.
“정보는? 그것 때문에 갔던 거잖아.”
“……아아. 역시 초장부터 큰 걸 물어볼 수는 없어서. 수확 제로야, 미안.”
“………….”
……뭐야, 그게.
역시 울컥 화가 치밀어서, 나는 코우자쿠를 가볍게 노려보았다.
“……코우자쿠. 잠깐 얘기 좀 해도 되겠어?”
“……아아.”
“네가 어디서 뭘 하든 난 딱히 상관 안 할 거고, 여자랑 놀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해.”
“근데, 그렇지 않아도 이제부터 위험천만한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 같은 때에……. 뭐랄까, 너도 알 거 아냐. 잘은 말 못하겠는데, 분위기라든지 그런 거.”
내가 약간 추궁하는 어조로 말을 하자, 코우자쿠는 미안한 듯이 눈꼬리를 아래로 내렸다.
“……그 말이 맞네. 그만 안 좋은 버릇이 나오고 말았어. 괜히 걱정시켜서 미안.”
“뭐……, 딱히 그렇게 사과할 것까진 없지만 말야.”
솔직하게 사과를 하는 코우자쿠에게 더 강하게 쏘아붙일 수 없게 되어서, 거북한 침묵이 흘러든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 나는 억지로 다른 화제를 입에 올렸다.
“그건 그렇고 너, 밥은 먹은 거야?”
“아아, 먹고 왔어.”
“그래.”
“근데 말야, 이 건물…….”
코우자쿠가 실내를 휙 돌아본다.
“이런저런 의미에서 굉장하네. 외관이랑은 전혀 딴판이고.”
“아아, 나도 처음 봤을 때는 놀랐어.”
“2층에는 가봤어?”
“침실이 있어.”
“그래. 그럼 바로 눈 좀 붙일까.”
채 털어낼 수 없는 어색함으로부터 도망치는 듯이, 코우자쿠가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올라가는 도중에 발을 멈추고 내 쪽을 돌아보았다.
“너도 소파 말고, 제대로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뭐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럼, 잘 자.”
코우자쿠는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가, 복도 안쪽으로 걸어갔다.
“………….”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으로 2층을 쳐다보았다.
이런 시간까지…………. 저 녀석,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그것에 대해서 대충 얼버무린 점에서는 솔직히 화가 났지만, 그보다도…….
코우자쿠의 낌새가 조금 이상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는 말이 피상적이랄까, 서먹서먹하달까…….
여자를 상대하다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렇다고 해도 자업자득이다.
여자 문제 같은 건 나한테는 관계없는 일이고…….
또 가슴이 갑갑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1층으로 올라갔다.
코우자쿠와 같은 방에 들어가지 않게끔, 사람의 기척이 들지 않는 곳을 확인하고서 방 안으로 들어간다.
실내는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잘 정돈이 되어서 깨끗했다. 침대 위로 털썩 몸을 날린다.
……정말이지 대체 뭐냐고. 코우자쿠 녀석.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혼잣말을 머릿속으로 흘리고, 천장을 바라본다.
이것저것 생각하는 사이에, 몸이 피곤했던 탓도 있어 점점 졸음이 몰려왔다.
좀 전에도 소파에서 눈을 붙였지만, 역시 침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몸이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이 힘들어져서……, 나는 천천히 의식에서 손을 놓았다.
다음날 아침은, 꽤나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그렇다기보다도 눈이 떠지고 말았다.
무언가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
소리는 1층에서 들려왔다.
1층……, 현관?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와 계단에서 아래를 들여다본다.
……현관문이 지금 막 닫힌 참이었다.
코우자쿠 말고는 밖으로 나갈 사람이 없다.
코일을 보니, 아직 이른 아침 시간이었다.
저 녀석…….
내 안에서 코우자쿠에 대한 불신감이 조금씩 커져간다.
“……렌. 코우자쿠, 어디로 간 것 같아?”
나를 따라서 방에서 나온 렌에게 질문을 던진다.
‘알 수 없다.’
“지금부터 엄청 껄끄러운 말을 할 건데, 괜찮겠어?”
‘뭐지?’
“코우자쿠의 뒤를 쫓을 거야.”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판단인데.’
“아니 명백히 이상하잖아. 플라티나 제일에 아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말도 안 하고 살금살금 나가질 않나.”
‘확실히 그 말대로지만…….’
“단순히 아침으로 먹을 걸 사러 나간 거였다거나 하면, 그건 그것대로 오케이. 자, 가자.”
나는 렌을 가방에 넣고, 재빨리 준비를 하고서 글리터에서 뛰쳐나갔다.
이런 짓, 실은 썩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망설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오바, 저쪽이다.’
렌의 목소리에 얼굴을 돌리니, 조금 떨어진 곳을 걸어가는 붉은 기모노를 걸친 뒷모습이 보였다.
“………….”
어떻게 봐도 아침으로 먹을 음식을 사러 나가는 분위기는 아니로군…….
그렇다면 어디로 가는 거지? 산책인가? 아니면…….
어제 만났던 여자를 보러 가는 건가?
설마……, 내가 어제 주의를 줬다고 해서 나한테는 말도 없이 나간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려나.
아직 코우자쿠가 어디로 가는 건지 확실히 파악이 안 된 상황이고, 일방적으로 단정을 짓기에는 이르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지만, 내 안의 불신감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오바, 사고가 혼란해진 상태다.’
“……알고 있어.”
코우자쿠는 코우자쿠 나름대로 뭔가 생각이 있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믿고서 기다리면 된다.
나도 이런 괴상한 짓을 할 것이 아니라, 어서 토우에에 대한 정보를 모으러 가야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역시 신경이 쓰인다. 코우자쿠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코우자쿠를 의심한다기보다도……, 코우자쿠가 향하는 곳이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라서, 그것을 제대로 확인하고서 안심하고 싶었다.
죄악감에 내몰리며, 나는 코우자쿠에게 눈치 채이지 않도록 하며 뒤를 쫓았다.
……결국, 코우자쿠는 어제 만났던 여자와 합류했다.
여자는 코우자쿠의 옆에 착 달라붙어, 팔짱을 끼고 걷기 시작했다. 역시 만날 약속을 했던 것이겠지.
어제는 둘이었지만, 오늘은 한 명밖에 없다. 분명, 목에 문신을 한 여자다.
나란히 서서 걸어가는 모습은 평범한 커플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메인스트리트를 유유히 걷고서, 도중에 옆길로 빠졌다. 놓치지 않게끔 그 뒤를 따라간다.
좁은 길을 통과해, 네모난 상자 같은 건물 앞으로 나왔다. 두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좁은 길에서 막 빠져나온 지점에서 발을 멈추고, 그 네모난 상자를 바라보았다.
건물의 표면에는 간판이나 안내 같은 게 전혀 나와 있지 않고, 문 앞에 수트를 입은 체격이 건장한 남자가 서있을 뿐이다.
어떤 건물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겉으로 드러내서 선전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겠지. 그런 쪽의 업소는 대체로 그렇다.
“……코우자쿠.”
역시……. 코우자쿠는 어제 만났던 여자와 만나기 위해, 나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외출한 것이다.
단순한 기우로 끝나길 바랐던 불안이 낙담으로 변한다.
이렇게까지 해서 그 여자랑 만나고 싶었던 건가?
그 정도로 홀딱 빠져든 거라면 당당하게 그렇다고 이야기하면 될 것을.
나보고는 무슨 이야기든 털어놓으라고 했었잖아…….
“설득력 제로잖아…….”
‘아오바…….’
분노보다도 탈력감이 찾아든다.
코우자쿠가 여자랑 같이 들어간 이 장소……. 대체 뭐하는 데지?
내가 건물로 다가가자, 문 앞에 있던 수트를 입은 남자가 제지하는 듯이 팔을 뻗었다.
“회원증은 소지하고 계십니까?”
“아뇨.”
“이곳은 회원제입니다. 회원이 아니신 분은 입장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안에 있는데요.”
“돌아가 주십시오.”
“아니, 그치만.”
“돌아가 주십시오.”
……틀렸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질 않는다.
여기선 일단 후퇴하자.
……!
뭐지……!?
지금, 머리카락에 자극이…….
뒤를 돌아보려 했더니, 갑자기 누군가가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
누구지? 이 녀석…….
“기다렸지. 일이 늦게 끝나서, 실은 나도 아직 안에 안 들어가고 있었어. 연락하면 좋았을걸.”
“에?”
“이 사람, 내 일행이니까.”
“저기.”
“알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남자가 팔을 무르고, 깊숙이 머리를 숙인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상태에서, 나는 생면부지의 남자에게 어깨를 끌어안긴 채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나치면 바가 있고, 그 끝에는 넓은 플로어가 이어져있었다. 커다란 음량의 음악과 묘한 향기가 몸으로 휘감긴다.
형광색의 라이트가 어둑한 공간 속을 날아다니고, 수많은 남녀들이 춤을 추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뭔가를 마시고 있다.
흔히 말하는 클럽이라는 건가.
……그보다, 지금의 화두는 이 수수께끼의 남자다.
나는 어깨를 끌어안는 손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남자를 보았다.
“아아, 미안. 갑자기 놀라게 해서.”
플로어를 가로지르는 조명에 맞춰, 남자의 시원스러운 이목구비가 떠오른다.
언뜻 보고서는 내 또래인가 싶었지만, 어쩌면 나보다 연상일지도 모르겠다.
남자가 기모노를 입고 있어서, 그것을 보고 코우자쿠를 떠올렸다.
이 남자의 기모노는 파란색이니 코우자쿠와는 정반대다. 목에도 파란 문신이 새겨져있다.
게다가 지금은 웃고 있어서 부드럽게 보이지만, 날카롭게 째진 눈은 어딘지 모르게 여우를 연상시켰다.
“네가 난처한 상황에 처한 것 같아서, 그만 아는 척을 하고 말았지만. 안으로 들어오고 싶었던 거잖아? 아니야?”
“그건……, 맞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좋은 일 했네.”
남자가 싱긋 웃는다. 여우같은 눈이 완전히 실처럼 가늘어져서 인상이 어려졌다. 연령불명이다.
“저야말로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그치만, 어째선가요?”
“뭐가?”
“절 안으로 들여보내주신 거요. 이전에 뵌 적이 있거나 한 건 아니죠?”
“응. 아무런 연도 없는 남이지.”
“그럼 어째서…….”
“그렇게 물어봐도 말이지. 단순한 변덕이니까 말야.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서 나만 쏙 들어가는 것도 썩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잖아.”
“그러, 신가요.”
“뭐, 여하튼 변덕으로 그런 거야.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니까. 여기는 낙원이야. 모처럼 들어왔으니까 잔뜩 즐기다 가라고. 아, 맞다.”
남자는 기모노의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카드를 꺼냈다.
“이게 있으면 언제든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 챙겨둬.”
“에, 그치만.”
“괜찮아 괜찮아. 받을 수 있는 건 받아두라고.”
“하아…….”
거절하려고 했지만, 남자가 기세 좋게 밀어붙여서 그대로 받아들고 말았다.
“그럼 나는 다른 데로 가볼 테니까. 또 봐.”
남자가 상냥하게 손을 흔들고,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뭐였지, 대체…….”
‘단순히 친절한 사람인 게 아닐까?’
“완전 수상쩍었다고. 게다가 이 카드……. 어떻게 하지, 이거.”
‘일단 가지고 있으면 돼. 아니면 지금부터 뒤를 쫓아가서 돌려주고 올까?’
“뭐, 그것도 너무 야박한 것 같네.”
확실히 그 남자 덕에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나는 손 안으로 만지작거리던 카드를 겉옷의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수수께끼의 남자가 등장한 덕에 삼천포로 빠지긴 했지만, 다시 코우자쿠를 찾지 않으면.
리듬에 맞춰 해초처럼 흐늘흐늘 춤을 추는 무리의 틈바구니를 빠져나와, 플로어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둑한데다 라이트가 깜박거리는 탓에, 사람의 얼굴을 잘 분간할 수 없다.
그건 그렇고, 이 리듬…….
미묘하게 어긋난 템포와 마치 이를 가는 소리와도 같은 전자음이 불안정하게 뒤섞여서, 눈이 어질어질 한다.
기묘한 부유감 가운데, 소리의 압력이 뇌로 꽂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나쁘다.
“…………윽.”
소름이 쫙 돋는 감각이 들고, 서서히 토기가 치밀어올랐다. 손으로 입을 막는다.
위험하다, 멀미라도 하는 걸까…….
이 현기증 같은 빛과 음악, 다른 녀석들은 괜찮은 건가?
주위를 잘 살펴보니, 이 녀석도 저 녀석도 황홀하게 도취된 표정으로 몸을 흔들고 있다.
반나체 상태로 춤을 추거나, 개중에는 구석진 곳에서 본방을 치르는 녀석들도 있다.
혹시 이거…….
……광마약인가?
확실히 최신형 마약인지 뭔지로, 구 주민구에서도 소문이 났었던 물건이다.
흥미가 없으니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빛을 이용해서 부작용 없이 황홀경을 체험할 수 있다던가 뭐라던가…….
이 기괴한 음과 빛. 꽤나 견디기 힘들다…….
플로어 전체가 보랏빛의 연기로 완전히 뒤덮여있는 것처럼 보여서, 어디가 바닥이고 어디가 천장인지 점점 알 수 없게 된다.
‘아오바, 괜찮아?’
“……조금, 위험할지도…….”
‘조금 쉬는 편이 좋겠어.’
시야가 구불구불 일그러져서, 서있을 수가 없다…….
여하튼 플로어의 가장자리로 가자는 생각에, 걸음을 내딛는다.
하지만, 딱딱해야할 바닥의 감촉이 두부를 짓밟는 듯한 것으로 변한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럴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라?
‘아오바!’
“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없이 많은 신발들이 제멋대로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저기-, 괜찮아-?”
“이런 데서 쓰러지면 방해가 되는데-.”
“너무 많이 퍼마신 거 아냐? 아하하하하.”
머리 위로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듯한 탁한 목소리가 쏟아져 내린다.
내 존재 따위는 무시하고 태연스레 걷는 신발이, 툭툭 몸에 부딪친다.
“아야야……, 제길.”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위가 목까지 올라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분이 안 좋다. 두통까지 난다.
‘아오바, 무리하지 마. 말초신경에 일시적인 장해가 일어났다.’
“그런 말을 해도…….”
“어이, 방해된다고 했잖아. 빨리 안 비키면 벗겨버린다.”
“아하하, 그거 재밌겠는데~? 확 해버리라고-. 어차피 못 움직이잖아?”
“어이 형씨-. 살아있는 거야-?”
누군가가 내 팔을 붙잡고, 끌어당기려 한다.
도망가지 않으면…….
하지만……, 머리가 아프다. 욱신욱신 거려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아오바!’
──── 부숴라 ────
──── 부숴라 ────
──── 전부 파괴해라 ────
──── 그렇게 하면 ────
“윽…….”
“……아오바!?”
아픔에 시달린 나머지 정신이 몽롱해지는 가운데, 많이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오바 아냐! 렌까지! 어이 코우자쿠, 빨리 도와줘!’
“괜찮아? 어이! 정신 차려!”
몸이 안겨서 일으켜지고, 흐릿한 시야에 코우자쿠의 얼굴이 비친다.
“코우, ……윽.”
이름을 부르려 했더니, 목까지 차올라 있었던 역류물이 한꺼번에 솟아올랐다.
참아보고자 즉시 손으로 입을 막는다. 그러나…….
“욱, 우욱.”
“아앗! 이봐!”
“토했어!”
위험해…….
……일 쳤다.
토사물과 함께 맹렬한 자기혐오가 흘러넘친다.
주변에서 비명과 욕설이 들려온다. 스스로도 너무 한심해서 죽을 것 같다…….
“……윽, …….”
손으로 입가를 훔치고 얼굴을 들자, 곁에 있던 코우자쿠의 기모노에도 큼지막하게 얼룩이 생기고 만 것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 코우자쿠……, 기모노가…….”
“바보, 말 하지 마.”
힘없이 고개를 떨고는 내 머리를 코우자쿠의 손이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어.”
의외다 싶을 정도로 온화한 목소리로 말하고, 코우자쿠는 기모노의 소매로 내 입을 닦으려 했다.
“! 더러워져……!”
깜짝 놀라 코우자쿠의 팔을 밀어내고자 했다. 그러나, 역으로 어깨를 붙잡히고 강제적으로 입가가 닦였다.
거짓말이지……. 붉은색의 고운 기모노 소매에, 오물이…….
“뭐, 뭐하는 거야 너……!”
“시끄러. 몸이 안 좋은 거잖아. 입 다물고 있어. 일어설 수 있겠어?”
[ 코우자쿠에게 의지한다 ] → 선택
[ 혼자서 어떻게든 한다 ]
코우자쿠가 내 팔을 붙잡고 부축해준다.
하지만……, 일어설 수가 없다. 역시 눈이 핑핑 돈다.
“좀 무리인가.”
“미안…….”
“괜찮아. 그럼 이렇게 하자.”
말을 마치자마자, 코우자쿠는 내게 등을 지고서 몸을 굽혔다.
“자.”
“에?”
“빨리.”
“뭐가…….”
“어부바.”
“……하!?”
“괜찮으니까 빨리 업혀.”
“무슨 말을……, 농담이지?”
“농담이 아냐. 못 걸으면 돌아갈 수 없잖아. 가게에도 폐가 되고, 빨리 업혀”
“……앗.”
지극히 당연한 이유가 들이밀어져서, 나는 말을 삼켰다.
우리들 옆에서는 종업원이 분주하게 청소를 시작하고, 춤을 추고 있던 무리들도 불쾌하다는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다.
“………….”
나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고, 각오를 굳히고서 코우자쿠의 어깨에 양팔을 둘렀다.
등을 뒤덮고서 조용히 체중을 싣는다.
이 나이가 되어서 남의 등에 업히다니……. 하지만, 이 이상 피해를 끼칠 수는 없다.
“일어선다.”
코우자쿠가 내 허벅지를 감싸고 신중하게 일어선다. 붕 하고 몸이 뜨는 감각이 들어서, 나는 코우자쿠의 목에 매달렸다.
남이 나를 업어주는 건 어릴 적 이후 처음이라, 어쩐지 무섭다.
“그럼, 죄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코우자쿠는 청소 중인 가게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고, 방해가 되지 않게끔 플로어의 가장자리로 걸어서 밖으로 나왔다.
빛, 소리, 향수, 사람의 체취, 다양한 것이 뒤섞인 공간으로부터의 탈출은, 바깥의 공기가 한층 더 신선하게 느껴지게끔 했다.
코우자쿠는 이따금 나를 고쳐 업고, 묵묵히 길을 걸었다.
처음엔 업혀있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체념하게 되었다.
코우자쿠의 등으로부터 전해지는 체온이 기분 좋다. 몸 상태가 안 좋았던 것도 조금씩 가라앉아갔다.
“……코우자쿠.”
“응?”
“……미안해. 기모노, 내가 더럽혀서.”
“이런 건 빨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 너랑 나 사이에.”
“………….”
그 말이 가슴을 쿡 찌른다. 코우자쿠의 다정함이, 지금은 조금 버겁다.
“우선 아무 말 하지 말고 있어. 또 상태가 안 좋아질지도 모르니까.”
“……아아.”
코우자쿠는 평소와 똑같이 나에게 마음을 써주어서, 그 탓에 점점 더 가슴이 아파진다.
코우자쿠는……,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를 도와주었다.
다정하고, 다른 사람을 잘 챙겨주고.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것도 이런 부분이 작용한 것이겠지…….
그런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역시 코우자쿠에 대한 불신감을 떨쳐낼 수 없는 자신이 있었다.
너무 거기에만 얽매이는 건지도 모르지만, 코우자쿠가 내게 뭔가를 숨겼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이 다정함마저도 솔직하게 기쁘다고 생각할 수 없는, 매정한 자신이 있다.
“코우자쿠…….”
“응?”
“……아무것도 아냐.”
마음을 정하고서 직접 물어보는 편이 좋은 것일까.
……알 수 없다.
소꿉친구인 코우자쿠의 일이기에 더더욱,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나와 코우자쿠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다.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에, 나른함이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코우자쿠가 걷는 진동이 기분 좋다.
점차로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나는 멍하니 코우자쿠의 등에 몸을 내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