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많은 분들께서 기다리시던 노이즈 루트입니다. 약간 기합을 넣어서 했더니 살짝 시간이 걸렸네요 헤헤...ㅠㅠ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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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어를 떠올린다 ]
침대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간다.
계단을 내려가서 보니, 거실에 조명이 켜져 있었다. 할머니인가?
“……!”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가려 하다가, 무언가에 부딪쳤다.
“! ……너.”
“………….”
부딪친 것은 노이즈였다.
노이즈도 마침 거실에서 복도로 나가려던 참이었던 것 같다.
“왜 이런 데 있어?”
“있으면 안 되냐고. 먼저 부딪친 건 그쪽이잖아.”
그 말투에 조금 울컥한다.
“……미안하게 됐네.”
발길을 돌리려 하다가, 갑자기 팔을 붙잡혔다.
“……! 뭐야?”
“너, 나한테도 그 힘을 쓴 거야?”
“……윽.”
“기억해냈잖아. 라임 했었던 거. 그러니까 나랑 싸우라고.”
“그건…….”
“원한다면 지금 여기서 해도 상관없는데.”
“윽, 농담하지 마. 여기 집 안이라고.”
“라임은 그런 거 상관없어.”
“……적당히 좀 하라고.”
나는 노이즈의 손을 뿌리치고는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 녀석, 정말로 머릿속에 라임밖에 없다. 그 외에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그런 점이 어쩐지 비위에 거슬렸다.
“스크랩이었나, 네 힘. 여태까지도 그걸 써서 자기 좋을 대로 해온 거 아냐?”
“윽, 그럴 리가 없잖아……!”
“남의 마음을 엿보거나 짓밟아버릴 수 있다는 거잖아. 라임에서도 쓸 수만 있으면 써먹었던 거 아냐?”
“몰라, 라임에 참가했었다는 것 말고는 생각나는 것도 없어.”
“거짓말이겠지. 그럼 나랑 싸웠을 때의 그건 뭐야.”
“그러니까, 정말로 기억 안 난다고!”
그만 큰 소리가 나와서, 스스로도 당황해서 입을 닫는다.
노이즈도 거기서 입을 다물고, 내 눈을 응시했다.
마치 진위를 가려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거의 깜박이지 않고 나를 바라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눈을 피하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하튼 기억 안 난다는 건 정말이야. 만에 하나 너랑 싸웠을 때 힘을 사용했었다고 해도, 지금은 사용하는 방법도 아무것도 몰라. 거짓말 아냐.”
“이런 상태라도 좋다면 싸워주지. 그치만, 네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
“………….”
“내가 너랑 싸울 수 있겠다 싶은 때가 오면, 반드시 상대해줄 테니까. 약속할게.”
“……정말이지?”
“아아. 꼭이다.”
“……알았어. 지금은 널 믿는 걸로 해두지.”
“하지만, 때가 오면 반드시 승부다. 도망치지 말라고.”
“……알고 있어.”
노이즈는 재차 확인하는 듯이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는, 이내 내 옆을 스쳐서 복도로 나갔다.
“어디 가는 거야.”
“산책.”
대답을 적당히 둘러대고, 노이즈가 현관에서 밖으로 나간다.
그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만일에 그 힘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다고 해도, 가능한 한 사용하고 싶지 않다.
미즈키에게 심한 타격을 입히고 말았던 무시무시한 힘이다.
이런 일을 또 겪는 것은, 절대로 사양이다…….
“………….”
기분전환을 하고자 1층으로 내려온 것인데, 전환은커녕 더 울적해졌다.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우울한 기분으로 내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 위로 기어들어가, 잠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눈을 감았다.
가까스로 졸음이 몰려왔을 때에는, 커튼 너머의 창으로 밝은 빛이 비쳐들기 시작했다.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갑자기 코일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전화다.
“네에.”
“아오바 씨? 자고 계셨나요?”
이 목소리……. 에- 누구더라…….
코일 액정에 표시된 이름을 본다.
“……아? 바이러스?”
“네.”
“어-, 무슨 일이야?”
“큰일이에요. 침착하게 잘 들어주세요. 지금 경찰이 아오바 씨 댁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헤?”
단번에 잠이 확 깨서, 나는 무의식중에 코일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댔다.
“뭐 때문에.”
“모르겠어요. 단 꽤 많은 숫자가 출동한 것 같아요.”
“진짜야……?”
“아무튼 도망치거나 숨으세요. 저희도 경찰이 움직인 탓에 조금 시끄러워져서.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겠습니다.”
“아오바 씨, 부디 조심하세요.”
바이러스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끊긴다.
뭐지? 경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때, 어렴풋하게 방 안을 비추는 정도였던 창밖의 빛이 갑자기 강해졌다.
아침을 넘겨버리고 낮이 된 것처럼 밝다.
“……?”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걷어본다.
“……윽, 눈부셔…….”
눈을 뜨고 있을 수 없다. 얼굴을 찡그리며 창밖을 본다.
아직 옅게 안개가 낀 이른 아침의 거리를 배경으로, 경찰 차량과 경찰관들이 집 앞에 주르륵 늘어서서 북적대고 있었다.
“아-, 아-, 아----. 냉큼 나와라-! 여기에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이 테러리스트 녀석들!!”
“…………하!?”
이 목소리……, 아쿠시마다.
“아---, 너희들의 죄목은 이렇다! 불법침입, 기물파손, 그 외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온갖 범죄를 통틀어 전부다!!!”
“당장 나와라! 세라가키 아오바와 그 일당들!!!”
“!”
풀 네임으로 호명되어서, 이 소동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건 그렇고, 테러리스트? 어째서 그렇게 된 거냐고!
나는 옷을 갈아입은 후 렌을 기동시키고, 곧장 1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에는 할머니, 코우자쿠, 밍크, 노이즈, 클리어, 그리고 하가 씨와 요시에 씨가 있었다.
“아오바…….”
“마스터!”
“할머니! 어쩐 일인지 밖에 경찰관이 엄청 많이 있는데, 그것도 내 이름을 막 부르는데…….”
“성가시게 되었구나…….”
“잠깐 아오바쨩!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타에 씨께 부탁받은 일의 준비가 끝나서 왔습니다만……, 어쩐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 같군요.”
“저 녀석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아오바쨩 편이니까 말야!”
“그렇고말고요!”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저도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어서…….”
“토우에겠지.”
“토우에……?”
“네가 어제, 스크랩을 사용한 것을 모르핀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이 보고한 거겠지. 곧바로 너한테 흥미를 보였다는 건가.”
“빨리 나와라-----!!! 안 나오면 이쪽에서 쳐들어가겠다! 괜찮겠지! 좋아! 돌격 준비다-------!”
“너희들, 빨리 뒷문으로 도망가거라!”
“저 녀석, 한다면 진짜로 한다고.”
“여기는 저희들이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그러니 아오바 군과 친구 분들은 어서 뒷문으로 나가세요!”
“그래! 나쁜 짓만 잔뜩 해대고 시민의 지팡이 노릇이라곤 요만큼도 안 하는 경찰 따위 확 날려버릴 테니까 말야!”
“하가 씨, 요시에 씨……. 할머니도, 고마워요.”
“도---올겨-----억!!!”
“아오바, 가자!”
우리들은 부엌의 뒷문을 통해 집 밖으로 나갔다.
교대하듯이, 경찰관들이 집 안으로 들이닥치는 소음이 전해져온다.
할머니도 하가 씨도 요시에 씨도……, 모두들, 미안……!
부디 무사하게 있어줘……!!
뒷문에서 나와, 우리들은 담과 담 사이의 좁은 길로 들어갔다.
그곳을 빠져나가, 조금 넓은 뒷길로 나온다.
“그쪽은 경찰관이 있습니다! 발소리가 들립니다!”
클리어가 소리친 대로, 앞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있다! 이쪽이다!”
“……윽.”
들켰다……!
이런 곳에서 궁지에 몰리게 되면 일망타진이다.
“뭉쳐있지 마라! 흩어져!”
밍크의 말을 따라,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리기 시작했다.
“……윽, 젠장……!”
여하튼 간에 경찰관들에게 붙잡히지 않도록 오로지 골목길 위를 달리는 데에 집중한다.
잠시 그렇게 달리다가, 뒤쪽에서 계속해서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눈치 챘다.
경찰관인가……!?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져온다. 빠르다. 내가 속도를 올려도 전혀 멀어지지 않는다.
위험해, 따라잡힌다……!
“……안 놓친다고.”
“! 노이즈!?”
틀림없이 경찰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옆에 나란히 선 것은 노이즈였다.
상당히 속도를 내서 달려왔을 텐데도, 노이즈는 숨도 헐떡이지 않고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조금 복잡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혼자인 것 보다는 든든한가.
“너 말고 경찰한테서 도망치고 있는 거라고!”
“알고 있다고, ……!”
둘이서 달리던 도중에, 노이즈가 갑자기 멈춰 섰다.
“우왓, 잠깐!”
노이즈가 나보다 앞에서 달리고 있었던 탓에 자칫하다간 부딪칠 것만 같아서, 허둥지둥 발을 멈춘다.
“어이……!”
“……온다.”
“뭐가. ……윽!”
덜컥 하고, 지면이 일그러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이건……!
“이 느낌……, 라임인가?”
“그러네.”
“왜 또……! 그것도 나랑 너랑 한꺼번에…….”
“무차별 살인 라임이겠지. 우스이가 없으니까 룰을 시행하는 녀석이 없어. 무법지대라는 말이다.”
“것보다……, 어쩐지 기분 나쁘지 않아? 이 필드. 유달리 생생한 게 현실적인 느낌이랄까.”
“라임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겠지. 최근 여기저기서 눈에 띄니까 말야, 라임에 푹 절은 정신이상자.”
“………….”
“아오바, 온다.”
“에- 그러니까, 렌, 방어 부탁해!”
“………….”
“어이, 왜 입 다물고 보고만 있는 거야.”
“저쪽이 처음 노린 건 너야. 그러니까 네가 해.”
“하아!? 뭐야 그게!”
“아오바, 지시를.”
“그러면…….”
“!”
“렌!”
“……, 괜찮아.”
“내 탓이야, 미안.”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지시를.”
“……아아.”
“…………, 과연 그렇군.”
“가라.”
“오~케이!”
“…………윽!”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싱겁게 끝났네. 잔챙이다. 별 볼일 없네.”
“……그럼 좀 더 빨리 도와줬으면 어디 덧나냐고. 그랬으면 렌도…….”
태연하게 말을 내뱉는 노이즈에게 짜증을 느끼며, 나는 렌을 가방에서 꺼내 안아들었다.
“렌, 괜찮아?”
‘아아, 치명적인 데미지는 입지 않았다.’
“그래…….”
한숨 놓고서 렌을 쓰다듬고, 다시 가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바보 아냐? 기계 상대로는 필요 없잖아, 그딴 걱정.”
“……뭐?”
“아니 진짜 바보야? 기계를 걱정하지 말고 자기 걱정이나 하라고.”
“방금 그 녀석, 데미지 제한 장치를 끊어놓고 있었다고. 한 방이라도 제대로 맞았으면 너, 예삿일로는 안 끝났을 걸.”
“………….”
“그치만 네가 했던 말, 거짓말은 아닌 것 같네. 핀치에 몰렸는데도 아무것도 안 한다는 건 정말 잊어버렸단 거네.”
“……너, 설마 그걸 확인하려고 안 싸웠던 거야?”
“그런데?”
“……윽.”
역시 화가 울컥 치밀어서, 노이즈에게 그 화를 터트리고자 했던 때였다.
“……?”
‘게임 어플리케이션 송신이다.’
“또!? 아니 이런 때에…….”
“………….”
‘게임 어플리케이션 송신! 게임 어플리케이션 송신!’
“너한테도 온 거야?”
“그런 것 같네.”
‘아무래도 자동으로 재생되는 타입인 것 같다.’
“에……!”
“이 게임……, 묘하군.”
“말했었잖아, 데모 무비만 송신되는 게임이 있다고.”
“근데 이 초대장이란 건, 이걸로 플라티나 제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건가?”
“초대장? 그딴 건 안 왔는데.”
“진짜? 봐, 이거.”
나는 노이즈에게 초대장을 보여주었다.
“……과연 그렇군.”
“장난질인가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네. 게임 쪽은 개조된 것 같지만.”
“개조?”
“그 게임은 옛날에 해본 적 있어. 그치만, 그런 장면은 없었다고.”
어떻게 된 거지……?
게임 내용도 또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거였고…….
……잠깐.
“……할머니가 납치되었을 때도 게임이 송신되었었어.”
“그런 말을 했었지.”
“그러고 나서, 게임 내용이랑 똑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어. 그러니까 이번에도 뭔가 예고 같은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명백하게 함정이네. 할머니를 유괴할 거라고 예고했었단 거잖아.”
“!”
확실히 그렇게 되네…….
하지만, 함정이라고 쳐도 이번에 송신된 영상의 의미는 뭐였을까.
동굴, 보물 상자, 열쇠, 커다란 문…….
“이번엔 메일인가.”
-
하가 씨 / 플라티나 제일로 가는 지름길.
실은 제가 안내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예정 변경입니다. 북쪽 지구의 D-86까지 와주세요. 거기서 합류하죠.
-
메일에는 이미지 파일이 첨부되어 있다. 구 주민구의 지도다.
플라티나 제일 외벽 왼쪽 가장자리 부근에 붉은색 점이 찍혀있다.
“지금부터 하가 씨랑 합류할 거야.”
“나도 간다. 네가 재대결 전에 어디서 죽어버리면 곤란하니까 말야.”
“…………, 가자.”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노이즈와 함께 걸음을 옮기고자 했다.
……그때, 바로 옆에서 뛰어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경찰인가?
“……앗.”
“이쪽이다.”
노이즈가 내 팔을 잡아끌고서 달리기 시작하고, 모퉁이를 돈다.
“어~~이쿠~~~~. 여기까지다 테러리스트 제군!!”
“!”
“칫.”
“겨~우 찾아냈다~~~~. 이제 놓치지 않을 테니까 말야! 포기하고 얌전히 쇠고랑이나 차라! 후하하하하하하!!!”
아쿠시마……!
이제 틀렸다고 생각한 순간, 간발의 틈을 두지 않고 노이즈가 아쿠시마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이!?”
“우아아악!?”
……엄청난 소리가 나고, 아쿠시마가 정통으로 지면에 뒤통수를 박았다.
노이즈가 갑자기 아쿠시마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쿠시마는 아무래도 기절을 한 모양으로, 코에서 시뻘건 피를 뿜어내고 있다.
코뼈, 부러지진 않았겠지…….
아니 것보다 갑자기 주먹이라니……. 게다가 그냥 때린 걸로는 저렇게까지 안 되지 않나?
어안이 벙벙해져서 노이즈에게 시선을 돌리니, 노이즈의 손에 척 보기에도 험악해 보이는 너클이 끼워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 녀석, 라임뿐만 아니라 육탄전에서도 위험하게 노네…….
“어이, 가자.”
노이즈가 내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번쩍 정신이 들어, 허둥지둥 발을 움직였다.
어찌어찌 경찰의 추격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친 우리들은, 하가 씨와 합류하기로 했던 장소로 향했다.
지정된 장소는 북쪽 지구 변두리에 있는 지하통로의 출입구로, 그곳에는 부서진 바리케이드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하가 씨가 이미 그 자리에 나와 계셨고, 내게 호신용으로 개조된 스턴 건을 건네주셨다.
하가 씨의 말에 따르면, 이 지하통로는 원래 플라티나 제일을 건설할 때 사용했던 운반용 통로인 것 같다.
본디 플라티나 제일은 섬 전체를 통째로 오락시설로 만들 예정이었던 듯, 구 주민구에도 공사용 물자를 운반하는 통로가 만들어지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계획이 좌절되어 통로만 남게 된 것 같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지고 말았지만, 여하튼 이 통로를 빠져나가면 플라티나 제일의 게이트 앞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썩어들기 시작한 계단을 내려갔다.
통로 안은 어둡고, 터널과도 같은 외줄기 길이 아주 길게 이어져있었다.
묵묵히 길을 걸어가자 그 끝에 계단이 나오고, 그것을 올라가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장소로 나왔다.
거대한 백색 게이트가 눈앞에 우뚝 솟아있다.
이게……, 플라티나 제일의 게이트인가.
……정말로 여기까지 발을 들여도 괜찮은 걸까?
역시 함정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은 걸음을 내딛었다.
“!”
“어서 오세요! 일본 최대, 최고급의 사랑과 꿈이 가득한 힐링 오락시설, 플라티나 제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게이트가 열린 순간, 요란한 팡파레와 폭죽 소리가 나고 이상한 팬더가 나왔다.
그 뒤로 다섯 개의 하얀 문이 보인다.
“여기는 선택받은 사람밖에는 들어갈 수 없는 지상 낙원이야! 부디 마음속 깊은 곳까지 리프레~시될 때까지 즐겁게 지내다 가!”
“수상해.”
“내 말이…….”
짜게 식어가는 우리들을 무시하고, 팬더가 벽에 붙어있는 버튼을 누른다.
“자아~ 그럼, 우리 친구들이 갈 곳은 어디가 될까나? 두근두근 룰렛, 스타트!”
“이야~아, 우리 친구들이 갈 곳은 그린 플레이그라운드야! 자 자, 이쪽으로 와주세요!”
왼쪽에서 두 번째 문 앞에 선 팬더가 한쪽 손으로 문 쪽을 가리킨다.
“여기는 최신형 게임센터를 비롯해 즐겁게 놀 수 있는 시설들이 쫘르르 늘어선 최고의 플레이그라운드야! 심심함이랑은 평생 연이 없는 세계지! 여한이 없게 잔뜩 놀고 와~!”
팬더가 내뱉는 대사에 약간 짜증이 치미는 것을 느끼며, 나와 노이즈는 그 문으로 다가갔다.
“자아 이제, 문 옆에 있는 인증 모니터에 입장 티켓, 또는 초대장을 대줘~!”
나는 코일로 초대장을 띄우고 모니터에 가져다댔다.
“플라티나 ID의 인증이 끝났습니다. 아오바 님과 그 외 한 분, 플라티나 제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입장 수속을 개시하겠습니다.”
“동행하신 분의 게스트 ID를 발행하겠습니다. 동행하신 분께서는 코일을 모니터에 대주십시오.”
노이즈가 코일을 모니터에 댄다.
“인증이 완료되어 게스트 ID를 송신했습니다. 모든 권한은 플라티나 제일에 귀속됩니다.”
“게스트 ID만으로는 사용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주십시오.”
“자세한 사항은 초대장의 서비스 항목을 봐주십시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문이 열리고 그 앞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게임센터들이 군집되어 있는 듯한 장소였다.
건물들 가운데는 검정색으로 칠해져있는 것이 많고, 이곳저곳에 심플한 디자인의 네온 장식이 더해져있다.
라임 같은 게임의 세계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로, 비현실적인 느낌이다.
거리 위를 걸어 다니는 관광객들도 젊은 사람들뿐이고, 연배가 있는 사람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만 봐서는 구 주민구의 녀석들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역시 구 주민구보다는 깔끔한 느낌이다. 겉으로 보이는 면만 그렇달까.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떠있다. 이것도 구 주민구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플라티나 제일은 날씨와 시간대가 컨트롤되고 있고, 기본적으로는 언제나 밤이라는 설정인 것 같다.
매일을 축제 기분으로 보내기 위해, 또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컨셉이 있는 모양인 것 같은데…….
정면으로 보이는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것은, 플라티나 제일을 상징하는 탑이다.
“저게 오벌 타워…….”
소문으로 들은 적은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뭔가 엄청나네.”
“그래? 저 정도는 보통 아냐?”
“저게 보통이라고…….”
주변의 광경에 압도되는 나는 본체만체하고서, 노이즈는 시시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초대장에 뭐라고 쓰여 있었지. 아직 제대로 보지 않았다.
나는 코일로 초대장을 열었다.
“이게 첨부되어있는데, 지도인가?”
‘플라티나 제일의 안내도다.’
렌이 가방에서 얼굴을 내민다.
“이 마크는?”
‘숙박시설의 위치겠지.’
“초대장에도 체류할 수 있는 시설이 지정되어있네. 일단 가볼까.”
“함정일지도 모르는데.”
“………….”
확실히 그것은 처음부터 줄곧 뒤를 따라다니던 불안요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을 수도 없다.
“플라티나 제일 안으로 들어온 시점에서 제 발로 함정에 뛰어든 거나 마찬가지잖아.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흐응. 뭐 어쨌든 상관없지만. 따라갈 거니까.”
“…………, 맘대로 하라고. 렌, 숙박시설까지 안내해줄 수 있어?”
‘알았다.’
시종일관 건방진 태도를 고수하는 노이즈에게 질려서, 나는 재빨리 걷기 시작했다.
렌의 안내를 따라서, 우리들은 숙박시설이 모여 있는 구역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궁전을 옮겨놓았나 싶을 정도로 호화스러운 건물들이 쭉 늘어서있었다.
그 안에도 랭크가 있는 듯, 우리들이 머물 곳은 끄트머리 쪽에 있는 자그마한 2층 건물이었다.
“여기가…….”
그 건물은 다른 건물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어딘지 모르게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문 위쪽에는 ‘글리터’라고 쓰인 플레이트가 내걸려있다.
옆 건물에도 다른 단어가 쓰인 플레이트가 있으니, 이게 이 건물의 이름인 거겠지.
나는 문 옆에 있는 인증 모니터에 코일을 대고, 앤티크한 손잡이를 돌렸다.
안으로 들어가고서는……, 깜짝 놀랐다.
밖에서 보기에도 고풍스럽다 싶었지만, 내부 장식은 훨씬 더 클래식한 느낌이 강했다.
“뭐랄까, 시대감이 느껴지는 내부 장식이네.”
“……이런 건 별로 취향이 아냐.”
“왜.”
“낡아빠졌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내뱉어지는 냉혹한 말에 노이즈 쪽을 보자, 그 표정에 약간 변화가 생긴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혐오감이 밖으로 스며 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게 약간 마음에 걸렸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는 않고서 건물 안을 둘러보았다.
1층에는 커다란 괘종시계와 비싸 보이는 가구들이 잔뜩 늘어서있고, 안쪽에는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내가 이곳저곳을 둘러보자, 노이즈는 소파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리고, 갑자기 내게로 손을 내밀었다.
“네 코일 이리 줘.”
“하?”
“이리 내라고.”
“뭐 때문에.”
“초대장의 발신처를 조사할 거다. 만약 그게 토우에한테 이어져있다면 이야기가 빨라지잖아.”
“토우에? 왜 토우에한테.”
“이 플라티나 제일은 토우에의 소유물이야. 그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건 토우에가 주모자일 가능성이 높아.”
“………….”
노이즈의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이 녀석 자체를 믿어도 좋을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말은 그럴싸하게 하고선 코일에서 내 정보를 빼내거나 하는 게 아닐까?
그 정도는, 이 녀석에게는 식은 죽 먹기일 거다.
“뭐야.”
“아냐.”
“혹시 정보만 싹 빼가는 거 아닌가 의심하는 거야? 이제 와서 그런 짓 안 해. 맘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고.”
“……너 말야…….”
“빨리 이리 줘.”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계속해서 요구를 되풀이하는 노이즈의 말에, 나는 마지못해 코일을 벗어서 노이즈에게 던졌다.
코이즈는 내 코일을 받아들고는, 자신의 코일에 접속해 조작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스피드의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치면서, 빠르게 흘러가는 모니터의 텍스트를 눈으로 좇고 있다.
……장난이 아니네.
나도 어느 정도는 기계를 다루는 데에 자신이 있는 편이지만, 이렇게까지는 못 한다.
꽤나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 말 걸기 힘든 분위기가 노이즈를 감싸고 있다.
내심 감탄하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 노이즈가 갑자기 손을 멈췄다.
“……말도 안 돼.”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
“무슨 짓을 해도 전부 에러가 떠. 국가 네트워크라도 이 정도로 철벽인 경우는 없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상대가 토우에인지 아닌지는 별개로 쳐도…….”
“발신처가 오리무중이라는 것만은 확실해. 역시 함정일지도 모르겠군.”
“……진짜야?”
그렇게 선선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해도…….
노이즈가 내 코일을 돌려준다. 곱게는 아니고 휙 던져서.
“일단, 주의해두는 게 어때? 어쨌든 뭔가가 널 노리고 있다는 거잖아. 무차별 살인 라임도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것 같고.”
무차별 살인 라임인가…….
토끼 머리는 이 녀석이었지만, 두 번째로 무차별 살인 라임을 걸었던 건 모르는 녀석이었다.
“무차별 살인 라임은 누구든 할 수 있는 거야?”
“약간의 지식과 요령만 있으면 하고도 남아. 누구든 할 수 있다고, 너도 말이지. ……것보다.”
거기서 말을 멈추고, 노이즈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뭐야.”
“라임 해봤으면서, 모르는 거야? 우스이가 나오고 규제가 생긴 건 6, 7년 전 이야기야.”
“네가 라임을 했던 때……, 10년 정도 전에는 오히려 무차별 살인 라임 쪽이 레귤러였을 텐데.”
“난 몰라, 기억도 안 나고.”
노이즈가 입을 닫고, 노려보는 듯이 내 얼굴을 응시했다.
“네 그 어중간하고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얼굴, 이젠 보는 것도 신물이 나.”
“…………하!?”
일방적으로 그런 말을 남기고, 노이즈는 소파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라갔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그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눈으로 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뭐야 저 녀석.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건 내 쪽이라고.”
기분이 너무 언짢은 나머지 일부러 소리가 나게 소파에 앉고, 가방에서 렌을 꺼낸다.
“왜 저 녀석은 매사가 다 지가 상전인 거야. 행동도 말하는 것도 느닷없고, 제멋대로인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확실히 노이즈의 발언과 그 의도는, 약간 이해하기 어렵군.’
“그렇지? 상대가 나라서 그러는 건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는데, 생각이란 걸 좀 해줬으면 좋겠어.”
렌을 상대로 신나게 노이즈 욕을 하는 사이에, 몸이 소파로 가라앉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 소파, 뭔가 엄청나게 푹신푹신하다. 그 때문인지, 약간 졸음이 몰려왔다.
그러고 보니, 구 주민구에서 여기로 오는 동안 미친 듯이 계속 달리기만 했지…….
체력 회복을 위해서도 좀 쉬고 싶달까…….
피곤하네…….
서서히 밀려오는 졸음에 반항하지 않고,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알고 있잖아, 사실은. 인정하라고.
인정하면 편해진다. 무슨 일이든 생각대로 풀리게 된다.
그러니까, 인정해라.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그러는 편이 지금보다도 훨씬 즐거워진다. 이미 알고 있잖아?
이봐…….
………….
………….
……………….
“………….”
묵직한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몇 번 눈을 깜박인다.
……지금, 몇 시지?
팔을 들어 코일로 시간을 확인하니, 한밤중이었다.
분명 소파에 앉아서, 그대로 잠들어버렸었지…….
“…………윽.”
머리가 약간 지끈거린다.
뭔가 꿈을 꿨던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목이 마르네. 물이라도 마실까…….
소파에서 일어난 시점에서, 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라? 이 녀석 어디 갔지?
평소 같았으면 내 발치에 있었을 텐데.
……지금 이 소리.
2층인가?
계단을 올라가자, 소파에 앉아있는 노이즈의 뒷모습이 보였다.
2층은 계단을 다 올라가면 바로 나오는 공간에 거실이 들어서있고, 그 안에는 TV와 바 카운터가 있다.
복도 안쪽에는 방도 있는 것 같다.
것보다……. 노이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내가 2층으로 올라온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이쪽을 돌아보지 않는다.
집중하면 주변이 보이지 않게 되는 타입인가.
소파로 다가간 나는 뒤에서 노이즈의 손이 움직이는 쪽을 살짝 들여다보고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렌!
노이즈의 무릎에는 렌이 축 늘어진 채로 올려져있었다. 게다가 노이즈의 손에는 공구가 들려있다.
“무슨 짓이야!”
반사적으로 소리를 치자, 노이즈가 천천히 내 쪽을 돌아보았다.
“뭐야, 있었어?”
“있었어? 란 말이 나오냐고! 렌을 놔줘! 아니 이리 내!”
나는 소파의 등받이 너머로 몸을 내밀어, 노이즈의 무릎에서 파란 털 뭉치를 안아들었다.
황급히 렌을 기동시킨다. 평소보다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이내 깜박 하고 눈이 떠졌다.
‘아오바.’
“괜찮아? 어디 이상한 데 없어?”
‘이상 없다.’
“그래…….”
렌이 무사한 것에 마음 깊이 안도한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노이즈를 노려보았다.
“너……, 렌한테 무슨 짓했어.”
“아무 짓도 안 했어.”
“거짓말 하지 마. 분명히 무슨 짓 하고 있었잖아.”
“하고는 있었는데, 그 녀석한테 지장이 생길만한 건 안 했어. 것보다 너, 이상하다고.”
“어디가.”
“무차별 살인 라임에 걸렸을 때도 한 말이지만 말야. 기껏해야 올메이트일 뿐인데 왜 그렇게까지 열을 내는 거냐고. 촌스럽게.”
“윽, 너 말야……!”
나는 렌을 바닥에 내려놓고, 소파를 돌아서 정면으로 노이즈를 보고 섰다.
내가 아무리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해도 방금 그 말은 그냥 흘려듣지 못하겠다.
노이즈의 멱살을 움켜쥐려다……, 흠칫 놀란다.
……피다.
노이즈의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 너, 그거……, 다친 거야!?”
“아아. 공구가 스쳐서.”
혹시, 내가 억지로 렌을 안아들었을 때 그런 건가……?
생각해보니 그때 말고는 딱히 그럴 타이밍이 없다. 내가 뒤에서 들여다봤을 때는 상처 같은 거 없었고…….
그렇다는 건……, 내 탓이 되네.
순식간에 화가 무안함으로 변한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해도, 역시 다치게 만들어놓고 주먹을 날리는 짓은 못 하겠다.
“……미안해. 내 탓이야, 그건 사과할게. 다친 데 이리 보여줘 봐. 일단 지혈해둬야지.”
“괜찮아.”
“안 괜찮잖아. 보여줘 봐.”
“됐어.”
“안 됐다니까…….”
“만지지 마. 내가 알아서 해.”
“………….”
상처 난 곳을 보고자 뻗었던 손이 매몰차게 뿌리쳐졌다.
나는 깜짝 놀라서, 멍청하게 노이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노이즈는 소파에서 일어나, 복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 어이…….”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린다.
“………….”
화나게 했나.
……화가 난 거네, 저건.
멋대로 렌을 만지작거린 건 용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처를 입히는 게 용납되는 건 아니다.
피도 꽤 많이 났고…….
죄악감에 내몰리며, 렌을 본다.
“렌.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아아.’
“저 녀석한테 무슨 짓 당한 거야?”
‘내 성능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던 것 같아.’
“그것뿐?”
‘그리고 전번의 무차별 살인 라임에서, 웜 프로그램이 나한테 감염되었던 것 같아.’
“웜이라니……, 진짜야?”
‘아아. 공격을 받았을 때다. 현 상황으로서는 내버려 두어도 특별히 웜의 활동이 개시되지는 않는 상태였던 것 같지만, 그것도 노이즈가 치료해주었다.’
“그랬구나…….”
그 말인즉, 렌의 은인이라는 거잖아.
화를 내기는커녕 고맙다는 말을 했어야 했다…….
“………….”
……난감하네.
순간 이성을 잃었다고는 해도, 심한 짓을 해버리고 만 것에는 변함이 없다.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사과하고 싶지만……. 좀 전의 그 태도는, 완전 거부였지.
분명, 굉장히 화가 난 거다.
저 녀석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지금 섣불리 사과하러 간다고 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과는커녕 오히려 더 화를 돋우고 말 것 같다.
어떻게 하지.
사과하러 가야 하나, 단념해야 하나…….
나는 렌을 안은 채로 소파에 앉았다.
……노이즈. 저 녀석, 정말 모르겠어.
좋은 녀석인지 어떤지조차도, 전혀.
노이즈가 들어간 방의 문으로 시선을 돌린다.
……역시, 사과하는 편이 좋겠지.
노이즈의 방 앞에 서서, 가볍게 문을 노크해본다.
……대답이 없다.
역시 화난 걸까…….
“…………, 미안해.”
자그마한 소리로 그 말만을 남기고, 나는 옆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심플하고 아담한 침실로 꾸며져 있었다.
렌을 침대 위에 내려놓고, 나도 그 옆에 드러눕는다.
긴 한숨을 내쉬고 눈을 뜨니, 희미하게 두통이 일었다.
노이즈한테 미안한 짓을 해버렸네. 다친 것도 신경이 쓰이고…….
……내일, 제대로 사과하자.
그리고, 내일부터는 좀 더 토우에에게 접근할 실마리가 될 정보 같은 것도 모으지 않으면…….
띄엄띄엄 그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에 의식이 멀어져가고, 나는 거기서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오늘은 꽤나 가뿐하게 눈이 뜨였다.
침대에서 잔 탓인지, 숙면이 된 모양이다.
두통도 말끔히 가라앉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복도를 걸어서 거실로 나와, 커피라도 마실 작정으로 바 카운터로 들어간다.
선반에서 머그컵을 두 개 꺼내들고, 인스턴트커피 분말을 넣었다.
노이즈 것도 끓여서, 방으로 들고 가보자. 그리고는, 어제 일을 사과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커피를 끓이고 있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노이즈다.
어쩐지 긴장감이 들어서, 나는 컵에 뜨거운 물을 따르며 그것을 필요 이상으로 뚫어져라 응시했다.
노이즈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
……대답을 해줬다. 약간 안심이 된다.
노이즈가 소파에 앉아서, 나는 커피가 든 머그컵을 들고 소파 쪽으로 갔다.
테이블 위에 컵을 올려놓는다.
“커피. 끓였으니까 마셔.”
“땡큐.”
의외로 평범하게 대답이 돌아왔다. ……다행이다.
어쨌든 화가 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저기 있잖아. 어제 말인데.”
나는 약간 긴장을 풀고, 노이즈에게 사과를 하고자 입을 열었다.
“윽!”
“!?”
컵을 들고 입으로 가져간 노이즈가 갑자기 놀란 듯이 몸을 흠칫 떨었다.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다. 혀를 덴 건가?
나는 허둥지둥 다시 바 카운터로 가서, 찬물을 따른 컵과 티슈 곽을 집어 들고 소파로 되돌아왔다.
“미안, 뜨거웠어? 이거, 물.”
“………….”
“뜨거운 거 잘 못 먹어? 괜찮아?”
“……별거 아냐.”
노이즈의 손에서 쏟아진 커피를 티슈로 닦으려하다가, 깜짝 놀란다.
머그컵을 단단히 쥐고 있던 노이즈의 손 위로, 쏟아진 커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혀를 델 정도니 꽤나 뜨거울 텐데, 왜 이렇게 태연하게 컵을 그대로 든 채로 있냐고 이 녀석은……!
“너, 손! 손 빨리 식혀! 거기도 뎄잖아.”
“손? ……아아.”
노이즈가 내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는 듯한 얼굴로 커피에 흠뻑 젖은 손을 본다.
손바닥은 이미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해서, 보고 있는 내 쪽이 다 아프다.
빨리 식히지 않으면……!
노이즈의 팔을 붙잡으려는 순간, 어제 노이즈가 완전히 나를 거부했던 일이 떠올랐다.
너무 끈덕지게 간섭하지 않는 편이 좋은 걸까……?
[ 손을 식히라고 일러둔다 ]
[ 물이 나오는 곳으로 데려간다 ] → 선택
하지만 역시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다.
“컵 내려놔! 더 다치기 전에, 빨리!”
나는 노이즈의 팔을 붙잡고, 바 카운터 안에 있는 자그마한 싱크대로 데려가려했다.
“!”
“……내가 알아서 해.”
노이즈는 냉랭한 말투로 그렇게 말하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이상한 녀석. 혀를 뎄을 때는 당황했으면서, 손은 끄떡없는 건가?
아니면 일부러 아픈 티를 안 내고 있는 걸까. 센 척인가?
만약 그런 거라면 정말로 어린애랑 다를 게 없다.
그치만…….
어제에 이어서 또 내 탓이다. 다치게만 하고, 최악이다…….
죄악감이 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카운터 안의 노이즈를 바라보았다.
“……정말, 미안. 어제도……. 어제는 내가, 앞뒤 사정도 잘 안 살펴보고 네가 렌한테 뭔가 이상한 짓을 하는 거라고 멋대로 단정했었는데.”
“근데 실은 그게 아니라 렌한테 있었던 웜을 없애줬던 거잖아. ……고마워.”
“치료를 한 건 겸사겸사였지만. 사실 그보다는 네 올메이트한테 흥미가 있었던 거니까.”
“흥미?”
“네가 어떻게 나를 이길 수 있었는지. 올메이트한테 뭔가 있는 건지, 일단 조사를 해봤어.”
“……뭐야, 그거.”
“안을 열어본 것뿐이야. 그것 말고는 웜을 제거한 정도. 그런데 결국, 단순한 구형에 불과하다는 것 말고는 알아낸 게 없어. 왜 그런 걸 계속 쓰고 있는 거지?”
“……그건 네가 알 바 아니잖아.”
“네가 한창 라임을 하던 당시에는 별로 그런 거 못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네 올메이트, 꽤나 초기에 나왔던 녀석이잖아.”
“내가 이 섬에 와서 라임을 하기 시작한 건 3, 4년 전이지만, 그때도 그런 구식 모델을 쓰는 녀석은 없었다고.”
“………….”
“나는 내 멋대로 네 올메이트를 조사했어. 웜도 그냥 마음이 내켜서 멋대로 없앤 거야.”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사과할 필요 같은 거 전혀 없는데. 이렇게 마음 좋은 분이실 줄은 몰랐네.”
“윽, 어쩔 수 없잖아, 애초에 네가 좀 더 제대로 설명…….”
“근데 말야. 배 안 고파?”
“하??”
산에서 갑자기 바다로 가는 정도의 갑작스런 화제 전환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배가 고프다고? 지금 하던 이야기의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이어진 거지?
노이즈는 나 따위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척척 계단을 내려간다.
“어이, 어디 가는 거야.”
“밖.”
“잠깐 기다리래도.”
나도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간다.
노이즈는 재빠르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방금 전까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시종일관 참 꿋꿋한 마이페이스라고나 할까…….
진심으로 기가 질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노이즈의 뒤를 쫓아갔다.
“어이 기다려!”
성큼성큼 걸어가는 노이즈를 간신히 따라잡고, 그 옆에 선다.
불평이라도 한 마디 내뱉으려고 얼굴을 드니, 무언가가 시야 끄트머리에 스쳤다.
……뭐지?
지금, 저쪽의 어두운 곳에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새하얀, 유령 같은 느낌의…….
확인하기 위해 돌아봤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분 탓인가?
“………….”
……다시 얼굴을 돌리니, 이번에는 노이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저 녀석……!”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면서 주변을 살펴보자, 노이즈가 가게 앞에 멈춰서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 부근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듯, 비슷비슷해 보이는 가게들이 양옆으로도 늘어서있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배고프다고 했었나.
“어이, 노이즈!”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가자, 노이즈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손에는 어느 사이엔가 타코야키 같은 것이 들려있다. 저건 또 언제 샀니…….
노이즈는 내게서 다시 가게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옆쪽의 가게로 이동했다. 또 뭔가를 산다.
그리고는 또 옆 가게로 이동해, 또 또 뭔가를 샀다.
그리고는 또 또 옆 가게로 이동해, 또 또 또 뭔가를…….
………….
“대체 얼마나 사대는 거야!”
노이즈의 양손은 눈 깜짝할 사이에 먹을 것으로 가득 찼다. 당장이라도 뭔가 떨어질 것 같다.
“그 이상은 못 들잖아. 이리 줘.”
보다 못한 내가 노이즈에게로 달려가, 음식이 담긴 용기를 뺏어든다.
“너도 먹고 싶으면 먹어도 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너 말야. 이건 사재기 수준이잖아.”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게 뭔 말이야. 시급 센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거야?”
“라임 관련 정보 매매. 내 팀의 정보는 비싼 돈을 내서라도 얻고 싶다는 녀석들이 잔뜩 있다고. 우스이의 출현 장소 같은 건 거의 빗나간 적도 없고.”
“헤에…….”
그러고 보니 그런 걸 한다고 했었지.
하지만 게임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돈을 낸다는 감각은,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되네.
“것보다, 그거 뭐야.”
“……헤?”
노이즈가 진지한 얼굴로 내가 들고 있는 타코야키를 가리킨다.
“지금 네가 직접 산 거잖아.”
“그렇긴 한데, 이름이 뭔진 몰라.”
“……하?”
농담을 하는 건가 싶어 노이즈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노이즈는 신기한 거라도 보는 듯이 타코야키를 바라보고 있다.
……이 녀석, 진짜로 모르는 건가?
“장난치는 거야?”
“장난 아냐. 빨리 이름 대.”
“타코야키.”
“타코야키……. 흐-응, 이상해.”
………….
…………!?
“진짜냐……?”
“이건?”
노이즈가 자기 손에 들려있는 포장을 치켜들어 나에게 보여준다.
“크레이프.”
“이쪽은.”
“튀긴 도넛.”
“헤에. 이상한 이름뿐이네.”
“………….”
노이즈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본다.
하지만, 역시 날 놀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확실히 애초부터 별난 녀석이다 싶긴 했지만, 구 주민구에서도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 좋아하는 먹거리를 모르다니…….
노이즈는 손에 들고 있던 크레이프와 튀긴 도넛을 쳐다보고는, 튀긴 도넛을 덥석 베어 물었다.
“달아.”
“그야 당연하지.”
“그래도 나쁘진 않네.”
“거 참 다행이네……. 여태까지 뭐 먹고 산 거야, 너.”
“피자나 파스타 배달해서.”
“그것만?”
“그것만.”
“질리잖아, 보통.”
“별로. 맛만 있으면 계속 그것만 먹어도 문제없어, 난.”
“………….”
이 녀석은 약간 별난 정도가 아니다.
기인열전 내보내도 되겠네…….
묘한 피로감을 느끼고, 나는 들고 있던 타코야키를 하나 먹었다.
은근 배가 고팠었구나. 오랜만에 먹으니 굉장히 맛있게 느껴진다.
플라티나 제일은 고급 레스토랑밖에는 없을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의외로 이런 것도 있구나.
“붕어빵까지 있다니……. 어쩐지 감격스럽네.”
다른 가게들을 둘러보고 있으니, 갑자기 오른손이 휙 잡아당겨졌다.
“응? ……앗!”
내가 먹으려고 했던 타코야키가……!
“너, 뭐 하는 거야.”
“짜.”
“당연하지. 무슨 애도 아니고. 몇 살이니, 꼬마야.”
“열아홉.”
“흐-응, 열아홉이라고.”
“……엣!!”
열아홉!?
노이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나보다 아래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스물 아래일 줄은…….
“뭐야.”
“……아니, 젊구나- 싶어서.”
“넌 몇인데.”
“스물셋.”
“별로 차이도 안 나네.”
아니 충분히 나잖아!
것보다 지금까지 뭔가 이상하다 싶긴 했는데, 그 원인은 이건가? 연령인가?
냉정하고 침착해 보이는 겉모습과 그 내면의 갭이…….
그건 그렇고 나, 연하한테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한 거 아냐.
“……응?”
그때, 거리 이곳저곳에 걸려있는 광고 모니터의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특별 기념 이벤트.’
이게 할머니가 말했던, 토우에의…….
“어이 노이즈. 저거…….”
노이즈 쪽을 본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다.
……또 사라졌다…….
“이 녀석이……, 이번엔 어디로 튄 거야.”
나는 이제는 거의 미아가 된 아이를 찾는 부모의 마음이 되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