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자리를 비워서 죄송합니다...ㅠ.ㅠ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
잠에서 깨어나, 허둥지둥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다.
……나, 얼마나 자고 있었던 거지?
코일을 보니 15분 정도밖에는 지나지 않았다. 조금 안심한다.
클리어의 노래가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두통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고 보니, 클리어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렌도 없네. 1층인가?
소파에서 일어나자, 아래층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 당신은 마스터를 마스터라고 부르지 않는 겁니까?”
‘무슨 말이지?’
난간에서 1층을 들여다본다.
클리어와 렌이다. 두 명이서……, 한 명과 한 마리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당신은 마스터의 올메이트죠. 다시 말해 당신을 소유하고 있는 건 마스터라는 게 돼.”
‘그렇다.’
“그렇다면 마스터라고 불러야하지 않습니까?”
‘관계성으로 보면 지금 말한 것에 오류는 거의 없지만, 아오바는 아오바다. 딱히 마스터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그렇습니까? 그래서는 마치 당신과 마스터의 위치가 대등한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건 아니잖아요?”
‘호칭에 관한 것은, 내가 아니라 아오바의 관점의 문제다. 나는 아오바의 생각에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아.’
“그렇습니까. 저는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아오바에게는 아오바라는 이름이 있다.’
“하지만 마스터는 마스터입니다.”
……어쩐지 상당히 무익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클리어가 나를 마스터라고 부르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 나를 마스터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그 말인즉슨, 마스터이기만 하면 굳이 내가 아니어도 다른 누구든 상관없다는 것이 되는 걸까.
뭐……. 예를 들자면 하가 씨도 내 입장에선 점장님이 되고, 클리어에게 있어 내가 마스터여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
아래층에서는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저러다간 끝이 나지 않겠다 싶어, 나는 1층으로 내려갔다.
“너희들, 무슨 시시한 이야기를 하는 거야.”
“마스터.”
‘아오바.’
“지금 했던 이야기, 듣고 계셨나요?”
“뭐, 듣고 있었달까, 들려왔달까.”
“그렇다면 마스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와 렌 씨의 마스터에 대한 호칭에 대해.”
“좋을 대로 하면 될 것 같은데.”
“좋을 대로?”
“네가 나를 마스터라고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부르면 돼. 나로서는 이름으로 불리는 편이 좋지만 말야.”
“그렇습니까.”
“반대로 내가 묻겠는데, 너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마스터여도 마스터라고 부를 거야?”
“그건…….”
클리어가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듯이 움직임을 멈춘다.
“……그러네요. 애초에 마스터 말고 다른 사람이 마스터가 된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는 않습니다만.”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경우에는, 마스터라고 부를 겁니다.”
“……그렇겠지.”
“제가 뭔가 이상한 말을 했나요?”
“아니, 있잖아.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내 이름은 아오바잖아?”
“네.”
“마스터라는 건 다른 누구한테도 쓸 수 있는 말이고. 그게 조금 서운하다 싶었을 뿐이랄까”
“서운, 하신 겁니까?”
“아아. 그래도 신경 쓰지 마. 너는 너대로 항상, 착실히 내 생각을 해주니까 말야.”
“물론입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해. 자, 준비하고 슬슬 나가보자고.”
“……네.”
클리어는 제대로 납득이 되지 않은 듯이,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만 말참견을 해버리고 말았지만,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다.
클리어도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나는 렌을 안아들고, 채비를 하기 위해 2층의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서 외출 준비를 하고 있으니, 1층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뭐지?”
방문을 열고 낌새를 살핀다. 문틈으로 렌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오바. 클리어가 밖으로 나간 것 같다.’
“에?”
나는 렌을 안아들고서 가방에 넣고, 방에서 나갔다. 클리어의 방을 들여다본다.
……아무도 없다.
“뭐하는 거야, 이 녀석.”
희미한 초조를 느끼고, 나는 계단을 내려가 글리터 밖으로 나갔다.
이 녀석, 어디로 간 거야……?
순간, 습기를 띤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저쪽에서 소리가 들린다.’
가방에서 얼굴을 내민 렌이 귀를 씰룩씰룩 거린다. 글리터의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이어지는 골목 쪽이다.
나는 골목으로 들어가, 곧바로 좁은 길 위를 달렸다.
모퉁이가 보이고, 거기서 왼쪽으로 돈 지점에서 발을 멈춘다.
“………….”
골목길의 어둠을 차단하는 듯이 은발의 그림자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클리어인가?……싶었지만, 한 사람이 아니다.
똑같은 체격의 사람이 세 명. 이쪽에 등을 지고 있는 것이 한 명, 반대쪽에 두 명.
반대쪽에 서 있는 두 명의 얼굴을 보고, 나는 자신의 눈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어느 쪽도 다, 아는 얼굴이다.
양쪽 모두 맨얼굴의 클리어다. 복장만이 다르다…….
“어떻게 된 거야……?”
내 목소리를 알아차린 것인지, 이쪽에 등을 지고 있던 인영이 돌아보았다.
……이 녀석도 클리어다.
그 클리어는 나를 보고는 안색을 바꾸고 달려왔다.
“마스터!”
똑같은 얼굴이 세 명……?
당최 영문을 알 수 없어 혼란에 빠져있자, 안쪽의 두 명이 웃음소리를 냈다.
“마스터래. 들었어? 저게 저 녀석의 마스터라는데.”
클리어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두 명이 서로 마주보며 우습다는 듯이 킥킥거린다.
“마스터, 죄송합니다. 마스터를 말려들게 할 생각은…….”
내 곁에 있는 클리어가 미안한 듯이 눈꺼풀을 내리깐다.
그 얼굴을 보고서, 이쪽이 진짜 클리어라는 확신이 들었다.
표정도 태도도 그렇고, 무엇보다 턱에 두 개의 점이 있다.
그럼, 저 히죽히죽 웃고 있는 두 명은……?
“어이, 이제 좀, 눈을 뜨라고.”
두 명의 클리어 가운데, 한 명이 질렸다는 듯한 태도로 허리에 손을 댔다.
“방금도 말했잖아. 마스터는 그 녀석이 아냐. 우리들의 마스터는 토우에라고.”
“……토우에?”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에 약간의 긴장을 느낀다.
클리어는 세차게 미간을 좁히고, 똑같은 얼굴을 지닌 두 명을 노려보았다.
“아냐. 내 마스터는 이 사람……, 아오바 씨뿐이다.”
“핫, 이 녀석 진짜로 망가졌네.”
클리어 2인조는 얼굴을 마주보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번에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망가졌으면 회수해서 수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지.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
“저 인간, 저 녀석을 물들여버리면 이야기가 빠르지 않을까 해서.”
“……윽, 안 돼. 용서하지 않겠어.”
“시끄러워, 입 다물어.”
2인조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그 입술이 열리고, 가슴이 공기를 들이마시고 살짝 부풀어오른다.
“그만해!!”
클리어의 비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서울 정도로 맑고……, 날카로움마저 느끼게 하는 목소리로, 날이 선 음계가 고막에 꽂힌다.
“……윽, 제길, 또……!”
TV에서 흘러나왔던 노래를 들었던 때와 똑같다……!
격렬한 두통이 덮쳐와,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귓속으로 들어온 음이 소용돌이치며,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크게 흔들린다.
멀미라도 난 것처럼 기분이 나쁘다.
“윽, 크윽 ……커헉!”
“마스터!”
‘아오바!’
나는 어느 사이엔가 땅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날카로운 선율로 뇌가 갈기갈기 찢겨지는 것만 같다…….
“지금 당장 그 노래를 멈춰!!”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고, 클리어와 똑같은 얼굴을 지닌 녀석이 즐거운 듯이 노래한다.
렌이 필사적으로 내 옷을 물고 잡아당겨서, 내가 의식을 잃는 것을 막고자 한다. 하지만…….
노랫소리가 귓속에서 갈라져 쿵쿵 울려대고, 사고에 훼방을 놓고서 의식을 삼키려한다.
이것이, 다이 뮤직…….
‘아오바! 포기하지 마라!’
“……윽, …….”
“윽!”
지면을 차는 듯한 소리가 나고, 바람이 움직였다.
흐릿해진 눈에 초점을 모으니, 클리어가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노래하는 녀석을 클리어가 들이 밀쳐, 노래가 도중에 끊겼다.
……에!?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지금……. 클리어의 팔에서 불꽃이 튄 것 같은데…….
“……큭.”
“어-라라, 일 쳤네.”
노래를 부르던 녀석이 어깨를 으쓱하며,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내쉰다.
노래가 멈춘 덕분에, 두통은 조금 남았지만 의식이 또렷해졌다.
클리어가 한쪽 팔을 붙들고, 그 몸이 뒤쪽으로 휘청휘청 거린다.
“클리어! ……윽.”
‘아오바.’
내 등을 밀어주는 렌에 의지해 몸을 일으키고, 클리어의 곁으로 다가갔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클리어의 어깨를 양손으로 떠받친다.
……코트의 오른팔 부분이 타들어갔다.
역시 방금 전의 불꽃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클리어, 괜찮아!?”
“마스터,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이봐 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겠지?”
“………….”
클리어의 눈동자에 격렬한 분노가 일렁인다.
“굳이 말 안 해줘도 자기 몸으로 확실하게 느낀 건가. 어쩔 거지, 이제 멈출 수 없다고? 정말 바보로군. 후훗.”
“네 노래를 멈춰서 마스터를 구할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됐어.”
“바보네. 정말 완전히 망가졌어.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후훗.”
노래를 불렀던 쪽이 목을 울리며 웃고, 다른 한 명 쪽으로 돌아간다.
“뭐, 이걸로 널 회수해서 수리한다는 것도 없던 일이 되어버렸고, 우리들은 슬슬 가보지.”
“그 가짜 마스터님도 말야, 어차피 이제 곧 열리는 이벤트에서 물이 들고 말 테니까. 지금 구해준 것도 헛수고일 뿐이라고.”
“이벤트…….”
할머니가 말했던 이벤트 말인가…….
그 이벤트에서 다이 뮤직을 트는 건가? 어쩌면 그것 말고도 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
“물이 들어버리면 너희들 인간은 모두 우리들의 심복이 되니까. 기대되는 걸.”
“어이 잠깐!”
클리어와 똑같은 얼굴을 지닌 2인조는 나와 클리어를 한 번 흘낏 보고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골목길 안쪽으로 사라졌다.
‘아오바. 뒤를 쫓을까?’
“아니, 괜찮아.”
2인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보이지 않게 되어, 나는 클리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클리어는 부상을 당한 팔을 감싸는 듯이 부여잡고,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그 팔을 보고서,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손끝에서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다.
……피다.
“너 그거……!”
손을 뻗자, 클리어는 피하는 듯이 몸을 뒤로 뺐다.
[ 클리어의 상태를 살펴본다 ] → 선택
[ 그래도 손을 잡는다 ]
“……!”
설마 피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나는 조금 놀란 상태로 클리어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안 괜찮잖아. 얼굴색도 안 좋고, 몸도 휘청거리고.”
“………….”
“클리어?”
클리어는 팔을 부여잡은 채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는 발치로 시선을 던져두고 있다.
물기를 머금은 공기가 밀도를 더해, 물방울이 얼굴 위로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클리어의 목소리는 약하디약해서,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비의 소리에 묻혀버리고 말 듯한 정도였다.
“방금 그 녀석들, 정체가 뭐야. 너랑 똑같은 얼굴이었어.”
“그 녀석들은…….”
클리어가 말을 머뭇거리고, 이내 입을 닫는다.
빗소리가 점차로 기세를 더해갔다.
“……마스터. 이미 눈치 채셨겠죠. 제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
“저는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생명체입니다. 제품 번호가 있고, 원형도 있죠. 즉, 그 녀석들은 저의 동료들입니다.”
……이전에, 어쩌면 클리어는 인간이 아닌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방금 전 클리어의 팔에서 불꽃이 튀었을 때에……, 거의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본인의 입으로 직접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는 건 무게감이 다르다.
“저희들은 토우에의 연구로 인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에 그 녀석들이 했던 ‘마스터는 토우에’라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게다가…….”
“토우에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시죠. 사람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기 위한 연구입니다. 그러니까, 저희들은 그 일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방금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다이 뮤직을 노래했습니다만, 그것이 저희들의 주된 능력입니다.”
“마스터가 지니고 있는 목소리의 특성과 거의 같은 성질의 것입니다. 저희들의 경우는 인공물입니다만.”
“혹시, 너도 그래서 노래를……?”
“네. 다만 제가 방금 불렀던 것은, 다이 뮤직을 상쇄하는 작용이 있는 노래입니다.”
“물론 저도 다이 뮤직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
“……믿지 못하게 되셨겠죠, 저를.”
클리어가 슬퍼 보이는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빗방울이 그 뺨을 때리고, 표정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내 위로도 쏟아져 내려, 피부의 온도를 빼앗아가려 한다.
“……그런 걸, 여태 말 안하고 있었던 거야?”
“아뇨. 이런 말을 해도 못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도 여태껏 잊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기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품고 있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의문을 품을 필요도 없었으니……. 하지만 방금 전 그들이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얼굴을 마주본 순간, 인식했습니다.”
“저는 그들과 똑같은 존재라고.”
“………….”
“저희들은 마스터에게 있어, 적이 개발한 도구입니다.”
“저도 어쩌면 스파이일지도 모르고, 지금까지도 감시하고 있었던 거라고 의심을 하셔도 별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의심받을 것을 감안하고서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진실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전달한 상태에서 마스터와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머리카락에 묻은 빗방울을 흐트러뜨리고, 클리어가 다시금 나를 바라본다.
색이 침울하게 가라앉은 풍경 속에서, 그 두 눈은 강한 의지의 빛을 담고 있었다.
“제가 당신을 마스터라고 인식했던 것은, 그 목소리 때문입니다. 저희들이나 토우에와 똑같이,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을 지닌 목소리라…….”
“단, 저희들이나 토우에의 목소리는 인공의 산물입니다. 마스터와는 다릅니다.”
“묘하네요. 인간이면서도 목소리로 인간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을 지닌 마스터는 저희들과 다른 것일까요? 같은 것일까요?”
“제가 마스터에게 수많은 질문을 했을 때, 마스터는 답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제가 알지 못했던 답을 주셨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생각이나 답을 주는 것. 그 점은 저를 키워주셨던 할아버지도 똑같았습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면, 눈앞에 빛이 들이비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좀 더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마스터는 역시 인간이고, 저는 인공물입니다.”
“하지만, 제가 마스터와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거짓이 아닙니다. 저의 진짜 마스터는 토우에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역시 저의 마스터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인식하게 된 지금도, 그런 저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들은 제가 망가졌다고 했습니다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당신을 속이는 일은 일체 하지 않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그것만큼은……, 제발 믿어주세요.”
……마지막 말은 지면을 때리는 빗소리와 겹쳐져, 몹시도 슬프게 들렸다.
가슴이 괴로워져서, 나는 무의식중에 윗옷의 가슴께를 한쪽 손으로 세게 움켜쥐었다.
클리어가 토우에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확실히 충격을 받았다.
머릿속 한구석으로 클리어가 방금 말했던 것과 같은 의혹……. 여태껏 나를 속였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스쳤다.
……그래도.
내 눈에는 아무래도 클리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 뿐만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클리어가 인공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필사적으로 마음을 전하려고 하는 모습은……, 어디를 어떻게 봐도 인간이다.
“………….”
“……클리어, 너 바보구나.”
“마스터…….”
“너, 날 그렇게 매정한 녀석으로 보는 거냐고.”
클리어가 눈썹을 찡그리고 입술을 굳게 다문다.
그리고 뭘 생각한 것인지, 갑자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무언가를 부스럭부스럭 꺼내들었다.
그 속에서 꺼낸 것은, 우산이다.
“우왓.”
“비에 젖으면 감기에 걸립니다, 마스터.”
“…………, 하하.”
그 엉뚱한 행동이 너무나도 클리어다워서, 조금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런 때조차 나를 생각해, 우산을 펼쳐서 내밀어준다.
역시 이 녀석은……, 내가 잘 알고 있는 클리어다.
“저, 당신이 마스터여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무슨 위인이라도 된 것 같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마음입니다.”
“……너무 확실하게 말하니까 좀 부끄럽네.”
“아, 맞다.”
무언가를 생각해낸 것인지, 클리어가 다시금 부스럭부스럭 주머니 속을 뒤진다.
“마스크, 마스크…….”
주머니 안에서 꺼내진 것은 가스마스크다.
저 주머니, 정말 어떻게 되어있는 거지……?
무엇이든 다 들어가는 수수께끼의 주머니에 놀라고 있으니, 클리어가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응?”
“마스터. ……아, 저기, 그게.”
클리어는 곧바로 시선을 돌리고, 우물우물 말을 얼버무렸다.
“왜 그래?”
“……저, 딱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게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응.”
“저, 방금 무심결에 그만 마스터의 이름을 부르고 말았습니다만.”
“……에?”
불렀었나? 그 2인조와 이야기했던 때를 말하는 건가?
상황이 상황이었던 탓에,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다.
“그……, 한 번 더, 이름을 불러도 좋습니까? 마스터가 아니라, 이름을.”
“……아니, 부르게 해주세요.”
그 말에, 나는 글리터에서 들었던 클리어와 렌의 대화를 떠올렸다.
클리어는 마스터를 마스터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말을 했었다. 렌이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도.
그 클리어가 나를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이거, 엄청나게 중대한 일 아닌가?
클리어가 나를 ‘마스터’가 아니라 ‘아오바’로 인식한다, 그 의미는…….
“안 될까요?”
“……전혀. 안 될 거 없어.”
“정말로?”
“응.”
“……감사합니다.”
클리어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아오바 씨. ……좋아합니다.”
“!”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눈이 크게 벌어진다.
“너, 무슨 말을…….”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자연스레 이 말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제 마음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클리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이 닿았다.
“………….”
“………….”
분명, 실로 몇 초밖에는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훨씬 길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클리어가 입술을 떼어냈다.
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서로의 입술에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키스, 해버리고 말았어요.”
클리어가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 말 때문에 더욱더 부끄러워졌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죄송합니다.”
“사과 안 해도 되니까.”
“네.”
서로 작은 소리로 불쑥불쑥 중얼거리기만 하고, 좀처럼 얼굴을 들 수 없다.
키스도 상당히 놀라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클리어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것에 놀랐다.
“……있잖아. 나도 물어봐도 돼?”
“네.”
“방금 좋아한다고 했던 거……. 그거, 어떤 의미야.”
“그건…….”
클리어는 말을 멈추고, 눈꺼풀을 가볍게 내리깔고서는 나를 보았다.
“소중한 사람으로서의 의미입니다.”
“마스터로서?”
“그것도 있습니다만, 아오바 씨라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라는 의미 쪽이 강합니다.”
“지키고 싶은 사람. 잃고 싶지 않은 사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람. 계속 곁에 있고 싶은 사람. 그런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물어봤으면서도 그 대답에 쑥스러워진다.
클리어의 ‘좋아한다’는 말에는 적잖이 놀랐다.
그렇지만, 클리어에게 있어서는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좋아한다’는 것과 똑같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
나는 솔직히, 자신이 클리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직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키스를 당해도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도……,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약간의 주저를 느끼며, 불안해 보이는 클리어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는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자, 클리어는 기쁜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저야말로……. 곁에 있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정말로 감사합니다.”
“………….”
거짓 없는 말에 가슴이 욱신거린다.
클리어는 보상이라고는 조금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순수하게 내가 좋다는 마음을 전해준다.
그것이……, 어쩐지 애처로웠다.
그런 클리어에게 무언가 보답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아직 자신의 마음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이기에 확정적인 말을 해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말 대신에 클리어를 끌어안았다.
“……앗.”
클리어는 약간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체중을 맡겨왔다.
밀착된 부분에서 온도가 생겨난다. 인간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따뜻함이다.
……인간이 아닌 기계라느니, 그런 건 전혀 상관없다.
나는 한층 더 강하게 클리어를 끌어안고서, 몸을 떼어냈다.
방금 전까지 세차게 내렸던 비는 조금씩 그 기세가 약해지고 있었다.
“……이제, 괜찮은 것 같네요.”
클리어가 우산을 접는다.
“그러네.”
어쩐지 멋쩍은 분위기가 감돌아, 서로 고개를 떨어트렸을 때였다.
코일에서 착신 음이 울려 퍼졌다. 메일이다.
“……초대장?”
메일에는 화려한 데코레이션이 가해져있고, ‘Invitation’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게 수놓아져있다.
오벌 타워로 초대한다는 내용이다.
“타워로 초대를 한다니…….”
“함정이겠죠, 토우에의.”
클리어의 표정이 험악해진다.
“방금 만났던 그들이 저에 대해 보고한 것이겠죠.”
‘아오바, 갈 거야?’
클리어의 말대로, 분명 이건 함정이다.
그 2인조가 클리어와 똑같다면, 내 목소리에 내재된 힘에 대해서도 눈치를 챘을 가능성이 있다.
내가 스크랩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토우에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 직접적인 방법이 목소리라는 사실마저 들통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토우에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함정에 발을 들여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함정에 발을 들여놓든 안 들여놓든, 토우에가 무슨 일인가를 꾸미고 있을 이벤트가 열리게 되면 그 시점에서 다 끝이다.
“……가보자.”
“함정일지도 모르지만, 거꾸로 말하면 토우에와 만날 수 있는 찬스이기도 해.”
‘알았다.’
“렌 씨, 걱정 마세요. 제가 반드시 아오바 씨를 지킬 테니까.”
클리어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가슴을 두드린다.
‘…………, 그래.’
“뭡니까, 그 침묵은.”
‘신경 쓰지 마.’
“흐음.”
“그럼 가자.”
“네, ……윽.”
“!”
클리어가 얼굴을 찌푸리고, 팔을 붙들며 휘청거렸다.
조금 전 불꽃이 튀었던 쪽의 팔이다.
“괜찮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가죠.”
“못 견디겠으면 바로 말해.”
“네.”
클리어의 상태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우리들은 타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날이 밝지 않는 밤거리의 한가운데, 오벌 타워는 고요하게 빛에 휘감긴 채로 우뚝 서 있었다.
타워는 참으로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이 지나쳐서 도리어 기분이 나쁠 정도다.
우리들은 타워의 입구 앞에 서서, 말없이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나와 클리어 가운데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입구에는 경비원이 서있었다.
“통행증 및 초대장을 인증 모니터에 대주십시오.”
나는 방금 전에 전송받은 초대장을 코일로 띄우고, 입구의 인증 모니터로 다가갔다.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오벌 타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입장해주십시오.”
입구가 조용히 열린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완전히 토우에의 손 안이 된다.
나는 클리어와 얼굴을 마주보고서, 타워 안으로 발을 들였다.
타워 안은 외관과 똑같이, 대부분이 흰색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거울처럼 반질반질하게 닦인 바닥과 벽은, 그곳을 지나가는 모든 것을 차갑게 반사한다.
타워 안에는 일반인에게 개방된 에리어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뒷문으로 들어온 탓인지 손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희미하게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그 부근을 순찰하는 경비원이 있는 것이겠지.
고요하고 숨이 막혀오는 공간 속, 우리들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긴 복도 위를 걸어갔다.
잠시 동안 걸어가니, 정면에 엘리베이터가 보이기 시작했다. 경비원 두 명이 서있다.
우리들은 그 앞까지 와서 발을 멈췄다.
“초대장에는 제일 높은 층까지 와달라고 쓰여 있어.”
“제일 높은 층에는 토우에의 집무실이 있습니다.”
“……점점 더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경비원의 무기질적인 시선을 받으며,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탄다.
제일 높은 층을 표시하는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윽.”
클리어가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 얼굴이 괴로운 듯이 일그러져있다.
“……힘들어?”
“……괜찮습니다. 조금 쉬면 문제없습니다.”
“그치만.”
“괜찮습니다. 그보다도 어서 토우에를 만나지 않으면.”
“………….”
클리어의 팔에서 튀었던 불꽃을 떠올린다. 정말로 괜찮은 걸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도달하고 문이 열렸다.
그곳은 1층과는 느낌이 달랐다.
1층은 손님을 의식하여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지만, 이 층은 그에 비하면 살풍경하다.
“여기에 토우에가 있는 건가?”
“아뇨, 여기는 연구 에리어입니다. 토우에의 집무실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는 이 에리어 안쪽에 있습니다만, 여기서부터는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초대장이 있으면, 아마도 괜찮겠죠.”
“연구 에리어……. 여기서 연구를 하는 거야?”
“네. 그렇지만 이곳은 그 일각에 불과할 겁니다. 토우에의 연구시설은 본토에도 있으니까 말이죠.”
긴장이 고조되어가는 것을 느끼며, 우리들은 살풍경한 복도 위를 걷기 시작했다.
묵묵히 복도를 걸어 나가자, 이내 통로를 가로막는 문에 맞닥뜨렸다.
문에는 인증 모니터가 달려있다.
나는 다시금 코일로 초대장을 띄우고, 모니터에 가져다댔다.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입장해주십시오.”
문이 열리고, 복도의 막다른 곳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엘리베이터로 제일 높은 층까지 갈 수 있는 거겠지.”
“네.”
우리들은 조금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이 초대장을 인증 모니터에 댄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최상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곧바로 멈추고, 문이 열렸다.
연구 에리어와는 또 다른 층이다. 눈앞에 새빨간 문이 보인다.
복도를 걸어가, 붉은 문 앞에 선다.
문이 열리고, 그 건너편에는 널찍한 방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 중앙에 서있는 것은, 토우에와…….
클리어와 똑같은 얼굴을 한 2인조다.
이 녀석이 토우에…….
TV나 인터넷을 통해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말투가 온화하다느니 행동거지가 고상하다느니, TV에서는 신사로 표현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확실히 기품 같은 것은 있다. 그렇지만, 눈이 웃고 있지 않다.
날카롭고, 마치 매 같다.
“용케 와주었군. 제조번호 R-2E-054……, 지금은 클리어였던가. 그리고 자네는 아오바 군이지.”
“!”
“………….”
내 이름을……. 역시, 저 둘의 소행인가.
“보고는 받아보았지. 클리어는 자네를 마스터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군.”
“그럼. 어째서 내가 아오바 군, 그리고 클리어를 이곳으로 초대했는지에 대해서 말인데……. 우선 클리어 이야기부터 해보지.”
토우에가 나에게서 클리어에게로 천천히 시선을 옮긴다.
클리어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토우에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클리어는 말이네, R-2E 타입의 불량품으로 폐기처분된 개체 중 하나일세.”
“! 폐기처분……?”
“그래. 그러나 처분을 담당한 남자가 무엇에 판단력을 상실한 것인지, 클리어를 가지고 사라져버렸지.”
“그 남자는 클리어를 개조해 개체 식별번호를 바꾸고, 이쪽에 발견되지 않게끔 클리어의 얼굴을 감추고, 자기가 죽을 대까지 함께 생활했네.”
“마치 클리어가 정말로 피가 이어진 아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지. 그는 친족도 없고, 독신의 고령자였기에 외로웠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클리어가 말했던 ‘할아버지’인가.
할아버지가 클리어의 얼굴을 감췄던 것은, 토우에 측에 발견될 것을 염려해서 한 일이었겠지.
“클리어는 불량품인데다, 마스터가 아오바 군이라고 인식하고 있네. 뿐만 아니라……, 동료인 그들을 거역하는 일을 저질렀어.”
“………….”
토우에가 뒤쪽에 있던 2인조를 흘끔 돌아본다.
“자신의 마스터는 내가 아니라 아오바 군이라고,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클리어에게 흥미가 생겼네.”
“본디, 어떤 개체에든 마스터는 나라는 인풋이 되어있지만, 클리어는 그것을 부정해서까지 자신이 인식한 내용을 우선했지.”
“어째서 그런 식으로 인식하게 되었는지……, 실로 흥미로워.”
“……윽.”
“클리어……!”
클리어가 토우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조용히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호오.”
토우에가 두 눈을 가늘게 좁히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렴.”
“저의 진짜 마스터라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가르쳐주십시오.”
“저희들이 실제로 인간이 되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까?”
“……인간이?”
토우에가 즐거운 듯이 미소를 띤 입 꼬리를 더 끌어올린다.
“그 말은 살아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까나?”
“네.”
“후후, 재미있군. 기계가 인간이 되고 싶다고.”
“………….”
“대답은 NO다. 그건 너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 너는 기계다. 인간이 될 수는 없어.”
“……그럼, 당신은 어째서 저를, 저희들을 인간을 쏙 빼닮은 모습으로 만든 겁니까.”
“이것 참 놀랍군. 기계가 자신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가지다니. 실로 흥미로워.”
“대답해주십시오.”
“이유는 간단해. 그쪽이 편리하기 때문이야. 나는 말이지, 미래에는 너희들을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내보낼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간인 척하고 인간의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자기 주변의 인간들을 영속적으로 조종한다. 너희들이 인간을 쏙 빼닮게 만들어진 이유는 그것을 위해서지.”
“좀 더 개발이 진행되면, 연령이나 얼굴, 신장이나 체형 같은 것도 가지각색으로 갖출 수 있겠지.”
“……결국, 저희들은 지극히 인간과 비슷하지만, 취급으로 보면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게 받아들여도 어쩔 수 없겠지. 나로서는 너희들을 소중한 자식처럼 여기고 있다.”
“그러나, 얼마든지 대용품이 있을 뿐이지.”
“그래서, 정확하게는 너희들이라는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구나. 너희들은 나의 계획에 필요하니까 말이지.”
“………….”
“그러면, 하나 더. 저의 진정한 마스터에게 묻습니다.”
“마스터는, 자신이 지금 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 질문은……, 전에 나에게 물어보았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왜 살고 있는가, 말인가.”
“나에게 있어 산다는 것은 게임이다. 인생이라는 장대한 보드 위에서 펼쳐지는, 운명과의 도박이다.”
“내 신념이 맞다면, 앞으로 어떤 트러블이 찾아오더라도, 최후에는 반드시 내가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
“그러나 만약 어딘가에서 좌절을 하게 되면, 그때는 내가 운명과의 도박에서 패배한 것이 되지.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 전략 싸움을 즐긴다.”
“그것이 산다는 것이다.”
“………….”
클리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하얀 장갑을 낀 손이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스터에게 있어,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 말한 대로, 운명과의 도박에 패배하는 것이지. 나라는 인간의 신념이 이 세계로부터 거절당했을 때, 그 순간이야말로 죽음 그 자체다.”
“…………, 아냐.”
억지로 쥐어짜낸 듯한 목소리와 함께, 클리어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아냐, 완전히 틀렸어. 당신의 대답은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맞지 않아. 그리고 이해 할 수도 없어.”
“당신의 인생이 게임이라고 한다면, 저희들은 대체 무엇인 겁니까……?”
“장기말이지. 물론, 나 자신도 포함해서 말이네. 우리들은 보드 위에 놓인 장기말과도 같은 것이지.”
“……아냐! 장기말 따위가 아냐! 인간은 물론, 우리들한테도 의지가 있고 감정이 있고 사고 능력이 있고……, 버젓하게 살아있다고!”
“우리들은……, 누군가에게 조종당할 뿐인 장기말이 아냐!”
“그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야. 실제로 내가 만들어낸 너는, 이렇게 내가 생각한 대로 이 장소에 와있지. 아닌가?”
“…………윽. ……역시 당신은, 나의 마스터가 아니야.”
“저는 아오바 씨와 함께 있으면서, 소중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저는 인간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아오바 씨의 말에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아닌 나조차도 아는 것을 당신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그런 상태에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려고 하다니……. 오만한 것도 너무 정도가 지나쳐.”
“……클리어.”
클리어가 내 말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후후후.”
토우에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이번에는 격분인가. 클리어, 너는 정말로 재미있군. 처분하지 않고 일부러 여기로 불러낸 보람이 있다는 말이다.”
“네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분석해보고 싶군.”
토우에가 오른손을 들어올린다. 그것을 신호로 뒤쪽에 있던 2인조가 앞으로 나왔다.
“이 아이들은 너의 동생에 해당하는 R-2E의 SP 시리즈다. 당연한 말이지만 R-2E 시리즈인 너보다도 성능이 높고, 거의 완전체에 가깝지.”
“네가 보기에 오른쪽에 있는 것이 알파, 왼쪽에 있는 것이 알파2다.”
“자, 형제간의 감동적인 재회의 장을 펼쳐보는 게 어떤가.”
알파라고 불린 쪽이 클리어 앞으로 다가온다. 그 얼굴에는 오만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아- 아. 솔직히 상대하기에 하찮지만, 마스터의 명령이라면 어쩔 수가 없네.”
“그건 그렇고 말야. 너, 우리들이랑 싸워봤자 이쪽에는 손을 대지 못하잖아?”
“키 록 장치를 거역한데다, 오토리페어(자동 회복 기능)도 정지되었지? 몸이 붕괴되는 거, 괴롭지 않아? 지진아 형님.”
“……윽.”
“몸이 붕괴된다고……?”
“이 아이들의 몸에는 마스터와 동료에게 반역하는 것을 금지하는 키 록이 장치되어있지.”
“보통의 경우에는 프로그램에 반하는 행동을 일으키지 않지만, 클리어는 특별한 것 같으니 말이지.”
“프로그램에 반하는 행동을 저지른 경우, 폭주를 제어하는 조치로 오토리페어가 기능을 멈추고, 브레이크다운(자동 붕괴 프로그램)이 작동하네.”
“다시 말해, 몸은 멋대로 붕괴되어가지만, 회복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네. 복구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손이 필요하지.”
“그런…….”
좀 전부터 클리어가 힘들어보였던 것은 그 때문이었던 건가…….
토우에의 말을 뒷받침하는 듯이, 클리어의 팔에서 피부 같은 파편이 벗겨져 떨어졌다.
“클리어!”
“클리어의 동생에 해당되는 그들에게도 키 록이 장치되어있지만, 지금은 해제해두었지. 반역의 죄를 저지른 동료를 처벌하기 위해서 말이네.”
“……윽!”
“간다고, 형!”
알파가 클리어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윽!”
눈 깜짝할 사이에 클리어의 가슴께로 돌진한 알파가, 잇달아 주먹과 발을 휘두른다.
클리어가 방어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알파의 움직임은 압도적으로 빠르다. 공격의 일부가 그대로 먹혀들고 만다.
애초에 키 록 같은 게 있어서는, 클리어는 반격을 할 수 없지 않냐고……!
“……, ……윽.”
“당하기만 해서는 금방 움직일 수 없게 돼버린다고? 그런 건 시시하지.”
“윽……!”
알파의 발이 클리어의 옆구리에 명중해, 몸에서 파편이 뚝뚝 떨어진다.
“……클리어!”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나는 무의식중에 클리어에게 달려가려 했다.
“오지 마세요!!”
그 목소리에,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오지 말아주세요, 아오바 씨. 부탁입니다…….”
“……윽.”
“약하네, 형. 좀 더 놀아주려나 싶었는데 기대가 어긋났어. 실망인데.”
“윽, ……큭.”
“클리어!”
“괴롭겠지, 고통스럽지? 반격하고 싶은데도 할 수 없으니까. 그게 우리들 모두가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더할 나위 없는 증거지.”
“우리들, 인간이 아니니까 말야.”
“……윽.”
“……어이.”
클리어와 알파와 싸움을 보고 있던 토우에가 알파2에게 눈짓을 했다.
알파2가 이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윽!”
순간 뛰쳐나가려 했지만, 팔을 붙잡히고 만다.
“이거 놔!”
“아오바 씨!”
……젠장.
알파2의 손가락이 내 팔을 단단히 붙잡는다. 강철로 된 사슬에 붙들린 것만 같다.
“클리어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나는 자네에 대해서도 확실히 파악을 하고 있네. 아오바 군.”
“자네는 그 목소리에 특별한 힘이 있다고 하지만, 자네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 늦어진 탓에 그 이상의 정보는 손에 넣지 못했네.”
“그러니, 이제부터 찬찬히 조사해보도록 하지.”
“웃기지 마……!”
“아오바 군을 다른 방으로 안내해라.”
알파2가 내 팔을 잡아끌고 이동하려 한다.
“하지 마, 이거 놔!”
“아오바 씨에게서 떨어져!!”
“한눈팔고 있을 상황인가?”
“크흑……!”
알파가 있는 힘껏 클리어의 얼굴로 주먹을 날렸다.
클리어는 이미 온몸이 너덜너덜해져서, 서있는 것이 고작인 상태다.
알파가 웃으며 스텝을 밟고, 클리어의 빈틈을 노려 공격을 건다.
“윽……, 크윽.”
“클리어!”
알파의 발차기를 배에 맞고, 클리어가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그 입에서 새빨간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피부의 파편이 흩어졌다.
찡하게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난다.
이 냄새, 피가 아니다. 오일인가……?
“그럼, 이제 슬슬 끝을 내볼까. 내 손으로 완전히 기동을 멈춰주지.”
“………….”
“그렇게 되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바이바이야. 그렇지? 형.”
궁지에 몰아넣은 사냥감을 괴롭히는 사냥꾼의 얼굴로, 알파가 클리어 앞에 선다.
클리어는 말없이 알파를 노려보고…….
입 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뭐야. 완전히 망가진 건가?”
“……나는 실패작이니까, 너희들이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이제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어. 나 자신이 너희들에게 있어 예상 밖의 존재라는 건, 이제부터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잖아.”
“그러면 나는……, 누구의 지시도 따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어.”
클리어가 코트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저건……, 나이프?
“……뭘 할 생각이지?”
“너희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야.”
입가에 대담한 미소를 띠고, 클리어는 나이프의 끝을 자신의 머리에 들이댔다.
“………….”
저 녀석, 어쩔 작정인 거야…….
“……호오.”
토우에가 감탄하는 목소리를 흘리고, 나를 붙들고 있는 알파2를 제지하는 듯이 한쪽 손을 들어올렸다.
나를 데리고 나가려 했던 알파2의 움직임이 멈춘다.
“키 록에 접속하는 회로는, 분명 이 부근이다.”
“! 설마……. 그런 짓을 하다니 바보에 불과하다고. 이해가 안 돼.”
“이해받지 못해도 상관없어. 너희들 따위에게 말이지.”
클리어가 곁눈으로 나를 본다.
그 눈동자 안에는 다정함과 슬픔이 한데 섞인 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오바 씨. 저,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반드시 당신을 지켜낼 테니까.”
“그만해, 클리어…….”
“괜찮습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그건 아냐, 안 된다고!”
“당신을 지키는 것이, 제가 처음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해내고 싶다’고 생각한 저 자신의 의지의 발현입니다.”
“그러니까, 지키게 해줘.”
클리어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미소를 짓고, 나이프의 손잡이를 천천히 고쳐잡는다.
그 손이 망설임 없이……, 옆으로 움직였다.
“클리어!!”
클리어를 말리고 싶은 마음에, 나는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목소리를 전부 쏟아내어 외쳤다.
그 슬퍼 보이는 눈을 필사적으로 응시한다.
“……!”
머리가, 아프다. 쪼개지는 듯이…….
이 감각은…….
“그리고 네가 상대방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싶다거나, 혹은 상대방이 깊은 곳까지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면, 너는 상대방의 머릿속에 자신의 의식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
어쩌면…….
스크랩이…….
여기는…….
어디지? 어째서 이런 곳에…….
분명, 스크랩과 비슷한 감각이 들고는…….
맑고 온화한 음색이 들려온다.
어디가 천장이고 어디가 지면인지 알 수 없다.
나는 묘한 공간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이따금, 음색이 불안정하게 뒤틀리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불꽃이 튄다.
타는 냄새와 열의 여운. 그것들이 뺨을 스치고 간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음색이 흐른다.
[ 이제 쉬어도 좋다 ] [ 이제 그만두는 편이 좋다 ]
→ 두 선택지가 모두 부서질 때까지 기다리면 트루 엔딩으로
→ 두 선택지 중 아무 선택지나 하나를 선택하면 배드 엔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