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만 하는 줄 알았더니 본격 치유계 캐릭터네요. ^q^
※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다음날.
그렇다곤 해도 바깥은 밤이지만, 시간으로 따지면 정오쯤.
나는 잠에서 깨어나, 렌을 안고서 방에서 나왔다.
거실로 가서, 뭐라도 좀 마실까라는 생각에 바 카운터의 냉장고를 연다.
냉장고 안에는 식재료와 과일이 몇 개 들어가 있었다.
클리어가 어제 슈퍼에서 얻었다고 했던 것들이겠지.
그러고 보니, 클리어는 어디 있는 거지? 벌써 일어난 걸까?
나는 아침 식사 대신에 과일을 베어 먹고는, 클리어의 방에 들르기로 했다.
……아무도 없다.
계단의 난간에서 1층을 살펴본다. 그렇지만,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 간 거야? 그 녀석.”
‘클리어라면 조금 전에 밖으로 나간 것 같다.’
“밖으로 나갔다고?”
어제 야쿠자랑 한 판 한 일도 있고,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어쨌든 연락을 해볼까 생각한 참에, 코일에서 착신 음이 울려퍼졌다.
클리어다.
“여보세요? 마스터신가요?”
들려오는 목소리의 음량이 작다. 일부러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클리어, 너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제 말을 잘 들어주세요 마스터. 저는 지금, 오벌 타워 안에 있습니다.”
“……에?”
“잠입에 성공했습니다.”
“들어갈 수 있었던 거야?”
“네. 지금부터 루트를 표시한 지도를 보내드릴 테니, 마스터도 이쪽으로 와주세요.”
“발각되면 위험하니까, 바로 끊겠습니다. 그럼.”
“에? 잠깐, 어이 클리어.”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기고, 곧바로 메일이 도착했다.
-
클리어 / 여기입니다
-
……첨부된 이미지는 어떻게 보아도 어린애가 한 낙서였다.
“이런 걸 보내도…….”
그건 그렇고, 오벌 타워에 들어갔다는 건 사실일까.
것보다, 그렇게 간단하게 들어갈 수 있는 건가?
그렇지만 그 클리어니까 말이지…….
어떤 방법을 썼는지도 모르고, 그것이 점점 더 불안을 부추긴다.
“어쨌든 가볼까.”
나는 렌을 가방에 넣고, 글리터에서 나왔다.
클리어로부터 받은 지도대로 메인스트리트를 쭉 걸어간다.
……어라? 방금 그건.
낯익은 무언가가 시야에 스쳐, 확인하기 위해 발걸음을 조금 되돌린다.
‘아오바, 왜 그래?’
“응? 아니, 지금 클리어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구부정한 등허리와 부스스한 머리카락은 분명 클리어다.
그렇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다.
“방금 그건 분명히 클리어인 줄 알았는데. 잘못 본 거려나.”
‘클리어는 오벌 타워에 있는 거잖아?’
“그렇네, 잘못 봤나보지.”
마음을 추스르고,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
클리어의 지도를 따라서 계속 걸었지만, 역시 뭔가 이상하다.
“있지, 렌. 이거 오벌 타워 방향이랑 다르지 않아?”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지금, 오벌 타워는 내 오른쪽으로 보인다. 우리들은 왼쪽을 향해서 걷고 있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됐는데.”
의아하게 여기며 걸어가는 사이에, 클리어의 지도에 표시된 골인 지점에 도달했다.
그렇지만, 어디서 어떻게 봐도 여긴 오벌 타워 앞이 아니다.
“뭐 하는 거야, 그 녀석…….”
“마스터.”
“어이 클리어. 네가 보낸 지도, 잘못된 것 같은데.”
“아뇨,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위쪽입니다!”
“위?”
클리어의 말대로 시선을 위로 향하고는……, 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눈앞에 있는 빌딩의 창문에서 가스마스크가 나타나서는,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저 녀석……!
클리어가 있는 빌딩의 정면에는 ‘오버르 타워’라는 문자가 태연스레 잔뜩 멋을 낸 디자인으로 내걸려있었다.
………….
“저 바보…….”
‘아무래도 타워를 착각한 것 같군.’
“어떻게 하면 그런 걸 착각할 수 있냐고.”
‘그것에 대해서는 원인 불명이다.’
나는 클리어를 노려보고, 코일을 향해 숨을 훅 들이마셨다.
“바보! 냉큼 내려와!!”
“마스터! 그런! 쉬-잇! 쉬-잇!”
“이 타워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빨리 내려와!!”
“에?”
허둥지둥 거리던 클리어의 움직임이 딱 멈춘다.
“그것은 사실입니까?”
“그래!”
“그, 그런.”
“충격 먹는 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빨리 내려와!”
“네…….”
마침내 가스마스크가 창문에서 사라진다.
잠시 후, 힘없이 고개를 숙인 클리어가 오버르 타워 입구에서 나왔다.
“죄송했습니다…….”
“……어쨌든, 일단 글리터로 돌아간다.”
“네…….”
나는 클리어를 데리고, 넌덜머리를 내며 방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글리터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일부러 뒷길로 들어가 먼 길을 돌면서 조금 엄하게 클리어를 타일렀다.
클리어는 불쌍해 보일 정도로 풀이 죽어서, 내 뒤를 따라왔다.
“……정말로 죄송했어요.”
“부탁이니까 주의해달라고.”
가능한 한 온화한 말투로 대답했지만, 나는 내심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이런 콩트 같은 짓을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토우에가 있는 곳까지 다다를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네. ………….”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을 한 후, 클리어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것을 늦게 눈치 채서, 나는 몇 걸음 앞으로 나가고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
클리어는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인지, 말없이 가만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마스터.”
“응? ……에?”
클리어는 갑자기 내 팔을 붙잡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재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어이, 무슨 일이야.”
“마스터, 도망가죠.”
“도망가? 어째서…….”
“누군가가 뒤를 쫓아오고 있습니다.”
“뒤를 쫓아와?”
클리어의 손에 이끌려가며 뒤를 돌아본다. 좁은 길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잖아.”
“거리는 조금 떨어져있습니다만, 구두 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나 둘이 아닙니다. 꽤 많은 숫자입니다.”
“잠깐, 기다리라니까!”
나는 클리어의 팔을 뿌리치고, 발을 멈추었다.
바로 직전에 호쾌한 기세로 타워를 착각한데다, 아무래도 순순히 클리어의 말을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거 진짜야? 착각인 거 아냐.”
“아닙니다, 정말로 들립니다. 믿어주세요.”
클리어가 필사적으로 호소한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이상하게 귀가 밝았지.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이번엔 괜찮은 건가?
만약 또 이것마저 착각이면, 진심으로 화가 날 것 같다.
“이제 쓸데없이 힘 빼는 건 사양이니까 말야.”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빨리……!”
클리어가 번쩍 정신이 든 듯이 뒤를 돌아보고, 다시 내 팔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윽, 어이!”
“도망칩시다!”
둘이서 어둡고 좁은 길을 달린다.
“아.”
중간에 클리어가 멈춰 서서, 방향전환을 하려다가 다시 멈췄다.
“왜 그래?”
“……틀렸어요. 머릿수가 많아. 포위당했습니다.”
클리어의 말을 뒷받침하는 듯이, 수런대는 공기가 전해져왔다.
골목의 좌우로 사람의 그림자가 떠오르고, 조금씩 거리를 좁혀온다.
연이어 나타난 것은 인상이 안 좋은 남자들이었다. 열 명은 될까.
선두에 있는 저 녀석……. 클리어에게 호되게 얻어맞았던 그 안경 쓴 남자다.
“여어.”
안경 쓴 남자가 얼굴이 파랗고 빨간 멍을 덕지덕지 달고서 비굴한 웃음을 띤다.
“당하고만 있는 건 성미에 안 맞아서 말야. 정중하게 답례를 할까 싶어서. ……어이.”
안경 쓴 남자가 이쪽을 향해 턱을 까딱하자,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윽, 하지 마, 만지지 마!”
“얌전히 굴라고!”
“윽,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제길! 어이 좀 거들어!”
“마스터!”
“윽, 이거 놔!”
몇 명 정도 발로 차서 날려버렸지만, 머릿수를 당해내지 못하고 뒤쪽에서 쑥 들이밀어진 팔에 꽉 붙잡히고 만다.
“마스터!”
“어이쿠. 소중한 마스터를 구하고 싶다면 얌전히 있으라고. 그러면 손은 대지 않겠어.”
“……정말입니까.”
“아아.”
“클리어, 듣지 마!”
“그렇지만, 제가 가만히 있으면 마스터에게 해가 가지 않습니다.”
“바보!!”
결국, 클리어도 나랑 똑같이 단단히 몸을 붙들리고 말았다.
“그럼. 나한테 제일 화려한 선물을 준 건 가스마스크 군이었지.”
안경 쓴 남자가 클리어에게 다가가, 바싹 달라붙을 정도로 가스마스크에 얼굴을 가까이 댄다.
“우선 그 같잖은 마스크를 벗어주실까.”
“싫습니다.”
“아직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르는 것 같군. 어이, 단단히 붙잡아둬.”
안경 쓴 남자가 가스마스크 쪽으로 손을 뻗고, 가장자리를 붙잡고 벗기려 한다.
“싫, 다니까!”
“윽, 크윽!”
클리어가 무릎으로 안경 쓴 남자의 배를 걷어찼다.
남자는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괴로운 듯이 침을 내뱉고는 클리어를 노려보았다.
“……이 자식!”
안경 쓴 남자가 격분하여 클리어의 머리를 붙잡고,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클리어!!”
안경 쓴 남자가 인정사정없이 클리어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다른 패거리도 가세해서, 수많은 발들 틈으로 몸을 웅크린 클리어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거 놔, 제길, 이거 놓으라고! 클리어!!”
저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면……!
“이 정도면 됐겠지. 여기서 더 했다간 죽여 버리고 말 테니까 말야.”
안경 쓴 남자가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로 차는 것을 멈추고, 발로 클리어의 몸을 굴려 똑바로 눕게 한다. 클리어의 두 팔과 두 다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살아있는, 거지? 괜찮은 거겠지?
“클리어!”
“우리는 토우에 씨랑 꽤나 사이가 좋으니까 말야. 대접으로 따지자면 특권계급이라고. 그러니까 약간은 거칠게 굴어도 형벌 면제다.”
“싸움 상대를 잘못 골랐군.”
안경 쓴 남자가 턱을 들고 비웃음을 날린다.
“젠장…….”
클리어가 이 녀석들의 발소리를 알아들었을 때…….
그때 클리어를 믿고서 곧바로 도망쳤더라면, 붙잡히지 않고 끝났다.
클리어가 한 말은 옳았다.
내 탓이다…….
쓰디쓴 후회가 가슴에 번진다.
“마무리를 해주지. 그 뭣 같은 마스크를 안 벗고는 배길 수 없게 해주지.”
안경 쓴 남자가 품속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그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담겨있다.
“이거, 뭘 것 같아? ……황산이다. 마음껏 즐기라고.”
“!!”
병 속의 내용물이……. 클리어의 가스마스크를 향해 뒤엎어졌다.
액체를 뒤집어쓴 클리어의 머리에서 무언가가 타는 듯한 소리와 연기가 피어오른다.
“하하…….”
“………….”
두려움에……, 숨을 쉴 수가 없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클리어……, 그런……!
머리카락이나 피부가 타들어가는 불쾌한 냄새가 감돈다.
클리어의 몸은 위를 향한 채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정말로 괴로울 텐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클리어!! 이런 건 싫어, 클리어! 일어나!!”
“클리어!!!”
“네, 마스터.”
…………에?
뭉게뭉게 연기를 뿜어내면서, 클리어가 벌떡 일어선다.
“………….”
“어이, 뭐야 이 녀석. 어떻게 된 거야…….”
“이제 슬슬 괜찮겠습니까. 마스터를 놓아주십시오.”
클리어가 흔들림 없는 발걸음으로 안경 쓴 남자에게 다가간다.
방금 전까지 자기 위로 아무도 없는 양 펄펄 날뛰던 안경 쓴 남자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어지고, 뒤쪽으로 비틀거렸다.
“오, 오지 마! 이 괴물이!”
“괴물이다!!”
저마다 비명을 지르고, 야쿠자들이 앞을 다투는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흐트러진 발소리가 멀어져가는 가운데,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릴 듯한 감각을 느끼며 클리어를 바라보았다.
지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너무나도 불가해해서, 기력만으로 어떻게든 간신히 서있는 듯한 상태였다.
“……클리어?”
“네.”
“괜찮아? 너…….”
클리어에게서는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고……, 긴장과 공포로 목소리가 잠긴다.
“너……, 왜 그렇게 태연하게 있는 거야. 물로 씻어내든지, 어떻게 하지 않으면……. 어쨌든…….”
“괜찮습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연기 난다고, 빨리…….”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그런 말 할 상황이냐고!? 적당히 좀 내 말 들어, 너…….”
“그건, 명령입니까?”
“하……?”
“아무리 마스터로부터의 명령이라고 해도……, 그것만큼은 들을 수 없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클리어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에? 어이 기다려! 클리어!”
어째서지!? 도망친 건가? 아니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전혀 영문을 알 수 없는 채로, 나는 즉시 그 뒤를 쫓아갔다.
저 녀석,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머리에 황산을 맞았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니, 미친 짓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게다가 갑자기 도망을 치고…….
“……윽.”
클리어는 의외로 발이 빨라서, 중간에 놓쳐버리고 말았다.
“어디 갔어……?”
그 자리에 멈춰서니,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조금 앞으로 나아간 곳의 왼쪽에 좁은 옆길이 있어서, 거기서부터 물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곳은 약간 넓은 공간으로, 벤치와 분수가 놓여있었다.
그 분수 앞에 둥그런 형상이 있다.
……그것이 몸을 웅크리고 앉은 클리어의 등이라는 것은 보자마자 바로 알았다.
갑자기 접근했다가는 또 도망칠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천천히 클리어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클리어.”
은색의 머리카락이 순간 작게 흔들린다.
클리어의 머리카락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머리 위로 물을 뒤집어쓴 것이겠지.
“너……, 얼굴이랑 머리랑, 괜찮은 거야? 물로 씻은 거지? 연기가 엄청 났으니까, 걱정이 되어서…….”
“지금 씻어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괜찮습니다.”
클리어가 내 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로 대답한다.
나는 그 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시선을 모아 클리어를 보았다. 아직 가스마스크를 쓴 채다.
“왜 이쪽을 보지 않는 거야?”
“………….”
“정말로 괜찮은 거야? 아프진 않은 거지?”
“네. 아프진 않습니다.”
“마스크, 왜 안 벗는 거야? 틈새로 스며들거나 하면 큰일이잖아.”
“괜찮습니다. 나중에 벗어서 씻을 테니까.”
“나중에?”
“네.”
……역시 이상하다.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로 황산을 뒤집어쓰고는, 물로 씻어냈으니 이제 괜찮습니다, 라니. 내가 안 괜찮다고.
“아픈 걸 억지로 참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그럼 왜 지금 여기서 마스크를 벗어서 씻지 않는 거야.”
“………….”
“클리어…….”
“마스크를 벗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구한테.”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전에 같이 살았다는 분인가.”
“네.”
“할아버지는 왜 그런 말을 하셨던 거야?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니.”
“………….”
클리어가 침묵을 지킨다.
거리에 흐르는 배경음악과 물 흐르는 소리만이, 조용히 귓가에 울린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저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사람들과 달라?”
“네. 제 얼굴은 사람들과는 다르니까 보여주어선 안 된다고. 저는 분명 굉장히 이상한,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야말로 방금 전 그 녀석들이 말했던 괴물처럼. 평범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부탁입니다, 마스터. 제 얼굴을 보지 말아주세요. 마스터에게만은 미움 받고 싶지 않으니까,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
나는 조용히 클리어와의 거리를 좁히고, 그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클리어의 몸이 크게 흔들린다.
“……별로, 네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든 싫어하게 되는 일 따위 없을 거야.”
“……어떻게 단언할 수 있습니까?”
“마스터는 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싫어하게 될지 어떨지는 미지수일 겁니다.”
그때까지 어딘지 약하디약한 느낌이었던 클리어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진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마스터라고 해도 그건 안 됩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확실히 나는 네 얼굴, 본 적이 없어. 그렇지만 그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얼굴 같은 거 관계없이 너랑 같이 있다는 게 돼.”
“얼굴을 보지 않아도 네가 어떤 녀석인지는 알고 있고. 그러니까, 이제 와서 새삼 네가 어떤 얼굴이든 싫어하게 되는 일 같은 건 없을 거야.”
“………….”
“넌 이상한 구석이 있고 촐랑거리고, 일부러 그러나 싶을 정도로 바보 같은 짓을 해대는 구석도 있지만, 나는 그런 거 싫지 않아.”
“그러니까 새삼 네 얼굴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해도, 그 속에 있는 건 내가 알고 있는 클리어인 거잖아? 싫어하게 될 이유가 없어.”
클리어의 고개가 흔들리고, 아주 약간이나마 이쪽을 돌아본다.
“……그것은, 정말입니까?”
“아아.”
“제가 어떤 얼굴이어도 싫어하게 되지 않을 거라는 말, 정말입니까?”
“그래.”
“……믿어도, 좋습니까?”
“아아.”
나는 클리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가스마스크 안쪽에서 깜박이고 있을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나는 네 마스터잖아?”
“네.”
“그러면 믿으라고. 이런 때만 마스터를 못 믿겠다니, 그런 건 슬프잖아.”
“………….”
클리어는 잠시 침묵하고서, 천천히 몸 전체를 내 쪽을 향해 돌렸다.
“……네. 저는, 마스터를 믿습니다.”
긴장된 목소리로 작게 말하고, 클리어는 마스크의 가장자리에 손을 얹었다.
하얀 장갑이 끼워진 손가락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다.
“정말로, 싫어하지 말아주세요?”
“안 싫어해.”
“…………, 알겠습니다.”
연약하지만 각오를 굳힌 목소리로 말하고, 클리어는 천천히 가스마스크를 벗었다.
“………….”
“………….”
처음으로 눈으로 본, 클리어의 맨얼굴.
그 얼굴에는 상처 하나 없어서, 나는 빨려들어가는 듯이 클리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황산에 상처를 입거나 하진 않았구나…….
것보다…….
사람들과는 다른, 이상한 얼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렇기는커녕…….
남자를 상대로 이런 표현을 쓰는 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예쁘다.
내가 넋을 잃고 보고 있는 것을 나쁜 의미로 받아들인 것인지, 클리어가 몹시 겁을 먹은 얼굴이 되어 눈을 돌렸다.
“……역시, 이상하죠.”
“아니야.”
“이상하지 않아, 전혀.”
“제대로 있습니까?”
“에?”
“제 얼굴……, 제대로 있습니까? 마스터나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은 것이, 제게도 있습니까?”
“………….”
나는 말 대신에 클리어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앗.”
“괜찮으니까.”
몸을 뒤로 빼려는 클리어에게 부드럽게 말하고, 그 뺨에 살며시 손을 댄다.
“제대로 있어. 눈도, 코도, 입도……, 전부, 나랑 똑같아.”
말을 이어나가며, 내뱉어진 말을 따라 손끝으로 클리어의 눈과 코와 입을 덧그린다.
티 없이 맑은 눈동자, 콧날, 얇은 입술.
턱 부분에 점이 두 개 있다.
“……똑같아?”
“똑같아.”
클리어는 쭈뼛쭈뼛하면서도 내 쪽으로 손을 뻗어, 뺨을 만졌다.
클리어의 손가락이 내 눈가로 미끄러진다. 눈꺼풀을 내리자, 손끝이 그 위를 어루만졌다.
손가락이 거기서 더 움직여, 콧날, 입술로까지 내려간다.
클리어는 감개무량한 듯이 숨을 흘리고, 이번에는 어린아이처럼 손바닥으로 내 뺨과 턱을 찰싹 만졌다.
“똑같아……. 마스터랑, 똑같아.”
“완전히 똑같은 얼굴이라는 의미가 아니니까. 구조가 똑같다는 거야.”
“마스터…….”
클리어는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물기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좀 더 말해주세요. 저랑 마스터가 똑같다고. 부탁입니다. 말해주세요.”
“똑같아. 너는 어디도 이상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과 다른 데도 없어. 나랑 완전히 똑같아.”
“정말로?”
“정말로.”
“…………, 감사, 합니다.”
클리어는 울 듯한 얼굴을 한 채로 미소를 짓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몸짓이 어쩐지 불안해보여서, 나는 가만히 클리어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부들부들한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너, 마스크 벗었으니까 얼굴도 제대로 씻어야 돼? 겉으로는 별 이상 없어 보이지만……, 만약 나중에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네…….”
클리어가 고개를 끄덕인다.
한편으로는, 어떤 의문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스마스크가 황산이 피부에 직접 닿는 것을 막은 탓인지, 다행스럽게도 클리어의 얼굴엔 상처가 없었다.
그럼, 다른 부분은?
방금 야쿠자에게 그렇게 심하게 마구 걷어차였는데도, 클리어가 어딘가 아파하고 있는 듯한 낌새는 전혀 없다.
참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한다면…….
……거기서, 나는 터무니없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보통 같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듯한 일이다.
그런 일, 있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클리어를 보면 가능성 없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어쩌면…….
……클리어는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후, 우리들은 글리터로 돌아갔다.
나는 클리어를 곧바로 욕실로 보내, 만약을 위해 몸을 잘 씻어내도록 일렀다.
클리어 다음으로 나도 목욕을 했지만, 완전히 피로에 절어있었던 탓에 곧바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날.
“…………, ……?”
“! 으악!”
눈을 뜨자, 시야에 갑자기 가스마스크의 정면 클로즈업이 비쳤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클리어…….”
클리어는 어째선지 나를 보고 안심한 듯이 숨을 내쉬고, 꾸벅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방에서 나갔다.
“……?”
뭐지? 지금…….
것보다, 눈을 뜨니 거기에 있었다는 건 내 자는 얼굴을 보고 있었다는 건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정말로 이상한 녀석이라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렌, 가자.”
‘아아.’
렌을 안아들고서 방에서 나온다.
복도에는 맛있는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또 클리어가 아침밥을 만들고 있는 거겠지.
지난번의 너무 호화스러운 아침 식사에 대해 반성을 한 것인지, 이번에는 토스트와 샐러드라는 비교적 수수한 메뉴가 거실의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아, 마스터.”
알몸도 에이프런 차림도 아닌 클리어가 바 카운터에서 얼굴을 내민다.
“지금 마실 것을 들고 가겠습니다. 마스터는 앉아계세요.”
“……오우.”
나는 그 말대로 소파에 앉아, 클리어를 눈으로 쫓았다.
……저 녀석, 또 가스마스크를 쓰고 있다. 어제는 맨얼굴을 보여줬는데도.
하지만 역시 하루 만에 달라지는 건 무리인가. 얼굴을 보여주는 것, 엄청나게 무서워했었지.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잠시 후, 우유가 담긴 두 개의 유리컵을 든 클리어가 카운터에서 나왔다.
테이블 위에 컵을 내려놓고, 내 옆에 앉는다.
“자 마스터, 맛있게 드세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얼굴 앞으로 합장을 하고서, 나는 버터가 발린 토스트를 입으로 날랐다.
바삭바삭한 것이 딱 적당하게 구워졌다.
“맛있어.”
“다행이네요.”
클리어가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만, 그 뒤로는 침묵이 이어졌다.
오늘의 클리어는 묘하게 얌전하다. 역시 어제 일이 있었기 때문인가?
내가 맨얼굴을 봐서……?
“………….”
아침 식사를 마치고서, 나는 다시금 클리어를 보았다.
클리어는 조금 고개를 숙인 자세로, 머뭇머뭇 양손을 모으고 있다.
“클리어, 저기 말야.”
“네.”
“……아, 에-, 그게. 어제, 미안했어.”
“뭐가요?”
“야쿠자들한테 쫓겨 다녔을 때 말야, 너는 바로 도망치자고 했었잖아? 그때 빨리 도망쳤으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고 끝났을 거야.”
“그러니까, 정말로 미안했어.”
“그 일에 대해서는 마음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사과는 하지 말아주세요.”
“마스터가 다치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클리어…….”
이 녀석, 어딘가 조금 핀트가 어긋나있긴 하지만, 뭐라고 할까……. 안쓰러운 구석이 있다.
항상 열심인 것은 내게도 바로 전해져온다. 어제, 맨얼굴을 보여주었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맨얼굴…….
……마음먹고 물어볼까.
“그리고……, 뭐 좀 물어봐도 돼?”
“네.”
“역시 맨얼굴 보여주는 건, 싫은 거야?”
“!”
클리어가 더더욱 안절부절못한다.
“싫다면 억지로 그러라고는 말 못하지만……. 또 네 얼굴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 될까?”
“………….”
클리어는 꽤 긴 시간을 두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보여드리겠습니다.”
각오를 굳힌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클리어가 가스마스크의 가장자리를 양손으로 잡는다.
“짜자-안.”
“………….”
가스마스크의 아래에서 나타난 것은, 또 오카메의 가면이었다.
맨얼굴을 보기 전이었다면, 바로 태클을 걸었겠지만…….
……결국, 무리라는 것일까.
“마스터?”
“아니……, 미안. 괜찮아.”
“앗, 저기, 아뇨, 그게! 아닙니다, 마스터!!”
내가 낙담한 것을 감지한 것인지, 클리어가 당황하며 얼굴 앞으로 양손을 저었다.
“죄송합니다……. 아주 조금만 농담을 칠 생각이었어요. 역시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그렇게 말하고, 클리어는 무릎 위에 양손을 올려놓고 힘없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저는 마스터를 믿고 있고, 어제 마스터가 해주신 말도 정말로 기뻤습니다.”
“그렇지만, 제 안에는 자신의 얼굴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할까요……. 줄곧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왔으니까요.”
“그래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봐주세요. 저의 얼굴. ……부탁드립니다.”
진지한 어조로, 클리어가 오카메 가면에 손을 올린다.
천천히 벗겨진 가면의 아래에는…….
이번에야말로, 어제 보았던 것과 똑같은 맨얼굴이 있었다.
“………….”
“저…….”
클리어가 난처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 모습이 작은 동물 같아서, 나는 조금 웃으며 클리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대도. 널 싫어하게 되는 일 같은 거 없다니까.”
“정말입니까?”
“응.”
“……다행이다.”
클리어가 안심한 듯이 미소 짓는다.
“마스터.”
“응?”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질문해도 괜찮겠습니까.”
클리어가 자세를 바로하고,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괜찮아.”
“그러면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하겠습니다. 저, 계속 궁금했습니다만……, 잠들고 있을 때, 두근두근 거리지 않습니까?”
“……잠들고 있을 때? 사람이 자고 있을 때 말야?”
“아, 아뇨, 잠에 들기 바로 직전이라고 할까요……. 잠들어있는 사이에 혹시 숨이 멎어버리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본 적은 없으십니까?”
“만약 다음날 눈이 떠지지 않고, 잠든 채로 죽어버린다면……, 하고.”
“………….”
갑작스런 질문에 조금 벙찐다.
“없는 건 아니지만, 가슴이 두근두근할 정도로 진지하게 생각한 적은 없으려나.”
“그렇습니까? 어째서?”
“어째서라니……. 으-응. 뭐 보통은 그렇게까지 생각 안 할 것 같은데.”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
“사람의 목숨, 인생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끝이 정해져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생각해보면,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되지 않습니까?”
“……클리어?”
“살아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신 적은 있습니까?”
“마스터는, 자신이 지금 어떻게 해서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밀 듯이 밀어닥치는 클리어의 질문에, 나는 말을 잃었다.
[ 조금 지나친 생각이다 ]
[ 무언가 두려운 거야? ] → 선택
“……너, 뭔가 불안한 거야?”
“불안?”
“지금 네 말을 듣고 있으니까, 네가 굉장히 무서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무서워 해? 제가?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
클리어의 뺨 위로 섬세한 속눈썹의 그림자가 떨어진다. 스스로도 어째서 이런 질문을 한 것인지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은 결국 죽습니다. 그렇기에 그때까지 자신의 인생을 있는 힘을 다해서 구가하고 싶다고,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겠죠?”
“그렇지만 무슨 짓을 해도 결국, 죽음을 향해서 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죠.”
“최종적으로는 모두가 죽어버리고……. 죽으면 기계나 물건과 똑같아져.”
“그럼에도 살아있는 동안에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며 애를 쓰죠.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해서 남기고 싶은 것이란 무엇일까요?”
“자신이 살아있었다는 증거입니까? 하지만 그 증거라는 건, 무엇을 위해서 남기는 것일까요.”
“그건 단순한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
나는 클리어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클리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왜 살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인가.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녀석이 있을까.
죽은 인간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건 불가능하고…….
사후의 세계는 극락정토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사후의 세계는 지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걸 본 적이 있는 녀석은 아무도 없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따위, 누구도 알지 못한다.
“……뭘까나. 나도 잘 모르겠어. 아니, 애초에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녀석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나는 살아간다는 것은 많든 적든 간에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군요.”
“개중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인생을 최고의 것으로 만들자고 생각하잖아.”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건, 역시 죽은 뒤의 일이 상상되지 않으니까 무서워서라는 이유도 있는 거 아닐까.”
“상상되지 않으니까?”
“아아. 자신이 죽은 뒤, 이 세상에서 소멸된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서 어떻게 될지 따위는 모르는 거잖아?”
“상상은 할 수 있어도 확인할 수는 없어. 이미 죽었으니까 말야.”
“그래서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살아있는 동안에 자신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남기려 하지. 자신이 사라져버린 후에도, 자신이 살았던 증거가 남을 거라고 믿으면서.”
“그건 결국, 죽음이 상상 불가능한 공포스러운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사는 것에 필사적이게 되지.”
“하지만, 죽음이 두렵다는 것도 사람에 따라 다른 거라고 생각해. 산다는 건, 특별히 매일 즐거운 일만 잔뜩 있는 것도 아니고 말야.”
“죽고 싶어질 정도로 싫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럴 때, 죽음이라는 건 사람에 따라서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어.”
“해방, 입니까.”
“아아. 지옥의 앞잡이 같은 죽음이, 천국에서 온 구세주처럼 보이는 일도 있지 않을까, 라는 거지.”
“그러니까 결국은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에 달린 거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지, 그걸 결정하는 건 한 사람 한 사람의 뇌 속 이야기니까 말야.”
“뭐 그렇지만, 나는 살아있는 동안엔 조금이라도 즐거운 일을 해두자는 생각이야. 내일 갑자기 사고로 죽어버릴지도 모르고.”
“………….”
클리어는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잠시 침묵했다.
내가 말한 것을 온 힘을 다해 이해하려는 것 같다.
“……그 말은 즉, 마스터도 저와 함께 있는 편이 죽는 것보다는 즐겁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괜찮겠습니까.”
“……어쩐지 이야기가 엄청 멀리까지 날아가 버렸네. 근데 뭐 틀린 말은 아냐.”
“싫은 녀석이랑 계속 같이 있을 정도로 나는 성미가 느긋하지 못해.”
“그렇습니까……, 알았습니다.”
가까스로 납득한 것인지, 클리어가 몇 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마스터는, 제가 몰랐던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
“마스터?”
“……아.”
그만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클리어의 의아한 듯한 목소리에 정신이 든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봤구나- 싶어서.”
“……죄송합니다, 이상했나요?”
클리어가 불안한 듯이 눈썹의 양쪽 끝을 축 늘어트려서, 나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전혀.”
“그렇습니까, 다행이다.”
클리어는 안심한 듯이 다시 웃고서, 무언가를 살피는 듯이 나를 보았다.
“저, 마스터. 부탁이 있습니다만.”
“응?”
“노래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노래?”
“네. 제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신 마스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아아.”
어떤 노래를 불러줄까.
클리어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입술에서 흘러나온 것은, 몹시도 온화한 멜로디였다.
청아한 노랫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선율을 맛보는 듯이 심호흡을 하고, 나는 잠시 동안 클리어의 노랫소리에 몰입했다.
그러고 있으니, 자연스레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나, 네 노래, 좋아.”
클리어가 노래를 멈추고, 기쁜 듯이 나를 본다.
“할아버지께서도 제가 노래를 하면, 늘 기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스터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제 노래를 듣고 기쁘셨다면, 그 이상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클리어가 다시 노래하기 시작한다.
내 옆에는 렌이 기분 좋은 듯이 눈을 감고, 가끔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고 있다.
어제, 내가 클리어에 대해 품었던 의문.
어쩌면, 클리어는 인간이 아닌 게 아닐까.
클리어의 노래를 듣고서, 그것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렇지만, 이내 어찌 됐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나도 이런 힘……, 목소리로 사람을 조종하고, 머릿속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는 입장이고.
클리어가 어떤 녀석이든 상관없다.
클리어가 무엇이 됐든, 나는 클리어의 노랫소리가 좋다.
그러니까, 그걸로 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잠깐 동안의 평온한 시간.
지금 이 시간만큼은, 나는 모든 것을 잊고서 노래 속에 몸을 맡겼다.
클리어의 노래로 약간 긴장을 푼 후, 나는 무언가 토우에의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TV를 켜보았다.
그렇지만, TV는 변함없이 잘 알 수 없는 내용의 방송들뿐이었다.
“이렇다 할 방송은 안 하네.”
“그렇네요…….”
TV를 끄려고 했을 때, 묘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화면에는 플라티나 제일을 찬양하는 방송이 나오고 있다.
“……!?”
……갑자기, 눈앞이 크게 흔들렸다.
몸을 지탱할 수 없어서, 소파의 등받이를 붙잡고 매달린다.
“마스터!? 괜찮습니까? 왜 그러시죠?”
“……윽, 머리가, ……!”
머리가 아프다. 쪼개질 것 같아……!
시야에 비치는 것이 이중 삼중으로 부옇게 흔들려,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다. 기분이 나쁘다.
“! 이 곡…….”
클리어가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TV를 껐다.
“괜찮습니까? 마스터. 일단 휴식을 취해주세요.”
“……윽.”
식은땀이 스며 나올 정도로 강한 두통에 이를 악물고, 나는 클리어의 부축을 받으며 소파에 누웠다.
혈관이 철사가 되어서 머릿속에서 마구 날뛰고 있는 것 같다…….
“아파……, 윽.”
“방금 그 곡……. 그건 ‘다이 뮤직(dye music)’입니다.”
“다이……?”
“그것을 들은 인간의 귀에서 뇌로 침투해, 말 그대로 물을 들여 버리는 음악을 말합니다.”
“뭐야, 그거…….”
“보통의 인간은 다이 뮤직의 존재를 눈치 챌 수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어느 사이엔가 물이 들어있죠.”
“……윽, 물이 든다니, 무엇에.”
“그 음악을 흘려보낸 자의 의지에, 입니다.”
“…………, 토우에인가.”
“네. 단, 마스터에게는 특수한 힘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로, 다이 뮤직에 대한 거부반응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TV에서까지 그런 음악을 틀어놓다니…….
분명 음악뿐만이 아니라, 온갖 것들에 토우에의 덫이 설치되어 있는 거겠지.
보통의 인간이 눈치 채지 못한다면, 어쩌면 이곳에 있는 인간들은 이미 토우에의 꼭두각시인형들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한 가지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너, 어째서 그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는 거야.”
“그건…….”
클리어가 당황한 듯이 말을 머뭇거린다.
“……어째서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입에서 저절로 그런 말이 나왔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가르쳐주셨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할아버지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었냐는 말이지…….
하지만, 클리어의 표정은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 이상 깊게 파고들지 못하고, 나는 아직 멈추지 않는 두통에 숨을 내뱉었다.
“……아야, 제길, 아직 아프네.”
“음악 자체는 청각에서 체내로 들어갔으니, 효과가 약간 남아있는 거겠죠.”
“마스터의 기분이 빨리 나아지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눈을 감고, 편하게 계세요.”
나는 클리어의 말대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 몸에서 힘을 뺐다.
그러자, 노랫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왔다.
클리어가 노래하고 있다.
아이를 달래는 듯한, 어딘지 달콤함이 녹아든 목소리로 선율을 연주하고 있다.
그것을 듣고 있으니, 점점 두통이 누그러져갔다.
기분도 편안해져서, 꿈속을 둥실둥실 떠다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클리어의 목소리, 예쁘다…….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얕은 잠 속을 헤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