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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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것으로 괜찮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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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더 생각해보자 ]
“……지지 마.”
“지지 말라고, 코우자쿠.”
“! ……아오바?”
“넌 이런 곳에 있어선 안 돼.”
“제대로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다는 사실을, 너도 알고 있잖아?”
“………….”
“내가 함께 있으니까. 가자, 코우자쿠. 진짜로 결착을 내자.”
“아오바…….”
……코우자쿠의 마음이 도피처로 삼고 있던, 거짓된 세계.
그곳에서 ‘과거’의 방으로 되돌아왔다.
시커먼 문신에 가슴까지 휘감긴 코우자쿠가 내 앞에 우두커니 서있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슬퍼 보이는 코우자쿠의 눈을 응시했다.
“……실은 너도 이미, 알고 있는 거지.”
“방금 너 스스로도 말했지만,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눈을 돌리려고 해도, 벌어지고 만 일은 바꿀 수가 없다는 걸.”
“………….”
“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처 입혔어. 어머니까지도……. 그건 지울 수 없는 사실이야.”
“말하지 마……!”
“말할 거야. 난 네게 말할 거야. 너는 네가 바란 일이 아니라고는 해도……, 죄를 저질렀어.”
“…………. ……알고 있어. 그런 내가 태평스럽게 살아있다니, 이런 일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 정도, 알고 있어.”
“확실히 죄를 갚는 방법으로, 죽는다는 선택지도 존재해. 하지만.”
“하지만, 죽으면 모든 것이 없어져버려. 네 죄도, 전부 다. 그 순간, 너는 너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거야.”
“……정말로 그래도 괜찮은 거야?”
“………….”
“그런 식으로 도망쳐도 괜찮은 거냐고.”
“……, 도망친다.”
“그래. 너는 그래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남겨진 녀석들은 어떻게 되냐고. 팀원 녀석들도 그렇고, 나도…….”
“팀원 녀석들은……. 그 녀석들은 괜찮겠지. 내가 없어도 새로운 보스를 뽑아서 해나갈 거다.”
“그럼, 나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너는…….”
“내가 없어도 괜찮다는 말 같은 거 하지 마. 내 답을 네가 멋대로 정하지 말라고, 전에도 말했지.”
“………….”
“전혀 안 괜찮아. 팀원 녀석들도 그래. 네가 생각하는 만큼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아.”
“네가 없어지면 슬프고 괴롭고, 마음에 상처를 입게 돼. 그런데도 너는 멋대로 괜찮을 거라고 단정을 짓고서, 주변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남길 거야?”
“마음의 상처는 희미해지는 일은 있어도, 없어지지는 않아. 몸에 나는 상처와는 달라.”
“너도 그렇잖아?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서 이 섬에 왔으면서, 류호를 보자 이성을 잃었어.”
“너는 그런 상처를 우리들에게도 남길 생각이냐고…….”
“……윽,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다른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
“네가 제정신을 잃었던 건 류호의 문신 탓이야. 하지만, 실제로 일을 저지른 건 너야. 그 사실은 변함이 없어.”
“그러니까, 너는 평생을 그 문신과 함께 살아가는 수밖에는 없어. 네가 코우자쿠로 있는 한……. 그래도.”
“우리들이……, 그리고 내가, 너란 녀석에 대해서 똑똑히 알고 있으니까.”
“…………, …….”
코우자쿠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인다.
목까지 올라와있었던 문신들의 기세가 약간 쇠퇴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가 어떤 죄나 숙명을 짊어졌다고 해도, 내가 아는 코우자쿠라는 인간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아오바…….”
“만일 네가 자기 자신을 잃게 될 것 같아지면, 내가 몇 번이고 말할 거니까. 내가 아는 코우자쿠가 어떤 녀석인지를.”
“그리고, 나는 그 녀석을 처음부터 끝까지 믿는다는 것을.”
“…………윽.”
“그러니까 지지 마, 코우자쿠.”
“그 문신과 과거에, 지지 마.”
코우자쿠의 얼굴에서 절망의 빛이 빠져나가고, 눈동자에 확실한 빛이 깃든다.
몸에 달라붙어있던 검은 문신도 뚝뚝 벗겨지고, 사라져간다.
“코우자쿠, 지금부터 네가 널 부술 거야. 네가 사로잡혀있는 과거의 너 자신을……, 부숴버리겠어.”
…………돌아왔다.
무사히 돌아왔다. 현실 세계로.
“…………윽.”
머리가, 아프다…….
눈이 핑 돈다. 토기가 치밀어 오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닥에 쓰러졌던 것 같다.
하지만, 몸이 무거워서 일어날 수가 없다.
──── 너는 이제, 끝이다 ────
──── 끝이다 ────
……목소리가 들린다.
계속해서 ‘부숴라’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나를 다그치는 목소리.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크랩의 힘을 사용했기 때문인가……?
“……아오바!”
몸이 누군가에게 안겨진 채로 일으켜져서 눈을 뜨자, 흐릿한 시야로 걱정스러워 보이는 코우자쿠의 얼굴이 비쳤다.
그 눈은……, 내가 잘 알고 있는 소꿉친구의 것이다.
다행이다……. 제대로 돌아왔구나…….
“……다행이다, ……윽, 으윽.”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 끝이다 ────
──── 이제 끝이다 ────
“……목소리가, 윽…….”
“목소리? 누구 목소리야, 어이!”
──── 포기해라 ────
──── 너는, 끝이다 ────
“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
…………알았다.
…………지금, 전부 보였다.
……모두 다.
스크랩의 정체…….
항상 내게 ‘부숴라’라고 속삭였던 것은…….
……그 녀석이다.
그 녀석은……, 바로 나다.
나의 본능. 내 의식의 일부분, ‘욕망.’
모조리 다 파괴하고 싶다. 남김없이 파괴해서, 없애버리고 싶다.
그렇게──모든 것에 죽음을.
그 녀석은 그런 열망을 지닌 나 자신인 것이다.
스크랩은 사람을 파괴하는 힘이다. 그 힘의 원천이 그 녀석인 것이겠지.
따라서, 내가 스크랩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 녀석의 존재가 커진다.
그리고, 지금.
무리하게 힘을 사용한 탓에, 나와 그 녀석 사이의 밸런스가 무너지고 말았다.
그 때문에…….
‘나’라는 의식이 그 녀석에게 먹혀들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내 의식을 완전히 소멸시켜, 내 몸으로 자기 멋대로 날뛰고자 하고 있다.
모든 것의 파괴. 모든 것의 죽음.
그것이 바로 그 녀석의 바람이다.
하지만…….
힘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코우자쿠를 현실 세계로 끌어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나 혼자서는 무리였다.
그러니까……, 이걸로 잘 된 거다.
“어이, 아오바. 왜 그래.”
“………….”
결국……, 나는 파괴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
최후에는 자기 자신조차도 파괴하게 되겠지.
그 녀석에게 몸을 뺏기면 ‘나’는 수많은 파괴와 살육을 이어나갈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파괴하고, 죽이고…….
소중한 사람도 무관계한 사람도, 모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토할 것 같다.
“……웁, ……으윽.”
머리가……!
──── 부수고 싶다 ────
──── 부수고 싶다 ────
“크, 악, …………윽.”
──── 부숴라, 부숴라 ────
──── 부숴라, 부숴라 ────
──── 모두 부숴라 ────
…………부숴라!!!
“아오바? 정신 차려! 아오바!”
“아아아아악……!”
‘긴급 사태 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타워 안에 계신 분들은 즉시 탈출해주십시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긴급 사태 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긴급 사태……!?”
“윽, ……뭐, 뭐야……!?”
“뭐, 뭔가 위험하다고!”
기절해있었던 베니시구레 멤버들이 눈을 뜨고는, 경보 안내 음성에 놀라서 허둥거린다.
“이, 이 타워, 무너지는 거 아냐!? 코우자쿠 씨, 아오바 씨도 빨리 도망치세요!”
“아아 아오바, 괜찮아? 날 잡아.”
“……나는, 괜찮아.”
“아……!?”
어깨동무를 해서 내 몸을 부축해주려는 코우자쿠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본다.
여하튼 간에 머리가 너무 아프고 토기가 치밀어 올라서……. 이젠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전부터 그 녀석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나는, 괜찮아. 너희들만이라도…….”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
“내 힘, 이대로라면……, 위험할지도. 폭주, 할지도……, 몰라.”
“스크랩이 말야?”
“아아……. 그렇게 되면 너희들도 모두, 부숴버릴지도……, 그러니까…….”
“……아오바!”
코우자쿠가 내 멱살을 움켜잡고 얼굴을 가까이 댔다. 절로 숨이 삼켜질 정도로 진지한 눈동자가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다.
“내 눈을 봐, 아오바. 이제 와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
“네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난 좁쌀만큼도 몰라. 엄청나게 힘든 상태겠구나 싶기는 해. 근데 말야, 난 널 여기에 두고 갈 생각은 추호도 없어.”
“네 그 힘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돌아올 수 있었던 거야. 네가 과거에 사로잡힌 나를 박살내줬기 때문에, 난 지금 여기에 있어.”
“그러니까 말야, 이제 와 새삼 네가 가진 그 힘이 무섭다는 생각 같은 거 나한테는 털끝만큼도 없다고. 폭주? 그딴 게 일어나면 내가 온힘을 다해서 막아주겠어.”
“코우자쿠…….”
“자, 됐으니까 얼른 일어나.”
코우자쿠가 억지로 내 팔을 잡고서 자기 어깨에 두르고, 내 몸통을 떠받치고서 일어난다.
“제멋대로 만들어낸 핑계를 이유로 사라지지 말라고 했던 건 너잖아. 그러니까 나도, 오기로라도 널 데리고 갈 거야.”
“나를 이쪽 세계로 다시 불러들인 책임, 확실하게 지게 할 테니까.”
코우자쿠가 내 얼굴을 보고 자신만만하게 웃는다.
그때, 나는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이 녀석은 역시 나의 히어로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가슴이 따뜻한 감정으로 넘쳐흘러서, 극심했던 두통이 누그러져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뇌리에 어른거렸던 그 녀석의 모습도……, 멀어져간다.
“꽉 붙잡아. 간다.”
“아아.”
나는 코우자쿠의 부축을 받으며, 계속해서 진동하는 홀 안에서 문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걸어가는 도중에 코우자쿠가 의아하다는 듯이 뒤를 돌아본다.
“왜 그래?”
“아니. 지금, 누가 보고 있었던 것 같아서…….”
“에? ……!”
코우자쿠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찰나의 순간에 사람의 형체 같은 것이 보였다.
지금 그건…….
“이 바닥, 무너지는 거 아냐!?”
“큰일 났어요 코우자쿠 씨! 어, 어, 어떻게 하죠!”
“허둥대지 마!!”
코우자쿠의 일갈에, 약한 소리를 하던 멤버들이 번쩍 정신이 든 듯한 얼굴을 한다.
“너희들, 베니시구레의 일원이면 베니시구레답게 똑바로 하라고!”
“옙!”
“좋아, 재빠르게 이탈한다!”
우리들은 건물의 진동에 휘청거리면서도 홀에서 복도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안 하니 이쪽으로 가시죠! 계단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앞서 나갔던 멤버들을 따라서, 계단을 향해서 복도 위를 달린다.
두통이 꽤나 누그러진 것도 있어서, 나도 전보다 훨씬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경보가 계속해서 울려퍼지는 가운데, 우리들은 계단에 도달해 쉴 틈 없이 재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어디까지 내려왔는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간에 입구를 향해 계속해서 전진했다.
“하, 하아, 하악…….”
“큭, ……윽, …….”
몸의 피로는 한계를 넘어서서, 잠시라도 멈췄다가는 움직일 수 없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에는 이상하게 힘든 것을 느끼지 못했다.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계속 빙글빙글 돌면서 내려가는 바람에 눈이 핑 돌 것만 같다.
모두 말은 없었고, 거친 숨소리만이 계단의 벽을 튕기고 울려퍼진다.
“하아, 하아, 이제 곧, 1층입니다!”
아래를 보니, 계단이 끝나고 복도로 이어져있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우리들이 계단을 다 내려가고, 복도로 나가려고 했을 때였다.
“어이!”
느닷없이 수많은 경비원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입구 부근에 모여 있었던 거겠지. 꽤 많은 수다.
“이런 때까지 수고가 많으시군.”
“너희들 방해된다고!”
“저리 비켜어어어어!!!”
골인 지점을 목전에 두고서 훼방이 놓인 일로 화가 부추겨져서, 모두 완전히 뚜껑이 열린 형상으로 경비원들에게 덤벼든다.
나와 코우자쿠도 경비원들에게 포위되었다.
그 사이에도 바닥은 계속해서 진동하고, 어디선가 폭발음이 났다.
“아오바, 잠깐 물러나있어.”
코우자쿠가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며 검을 손에 쥔다.
“어이, 코우자쿠…….”
“한 방에 끝내주지.”
말을 마치자마자, 코우자쿠는 싱긋 웃고는 검을 크게 휘둘렀다.
“이야아아아아아압!!!”
“우와앗!”
“뭐야!”
폭이 넓은 검이 경비원들의 몸통을 한꺼번에 후려치고, 날려버린다.
“너희들도 저리 비켜!”
“아, 네!”
“으라차!”
코우자쿠가 경비원들과 씨름을 하고 있던 멤버들에게 신호를 주고, 이번에는 그쪽을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경비원들이 인형처럼 픽픽 쓰러져간다.
“크악!”
“모두 한 번에 쓸어주지!! 죽지는 않으니까 안심하라고!!!”
“………….”
나는 넋이 나간 채로, 웃음 띤 얼굴로 경비원들에게 검을 휘두르는 코우자쿠를 쳐다보았다.
뭐랄까……, 굉장하네.
하지만 상황이 이런데도, 어쩐지 굉장히 코우자쿠답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코우자쿠는 여차할 때는 대범하게 판단하고 주저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그랬다.
내가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도 곧바로 달려와서는, 이런 식으로 크게 날뛰었다.
……변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좋아!”
제대로 서있는 경비원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자, 코우자쿠는 움직임을 멈췄다.
“어이 너희들, 가자고!”
“네!”
“아오바!”
“아아!”
점점 더 흔들림이 심해지고, 타워 안쪽에서 잇달아 폭발음이 울려퍼졌다.
우리들은 완전히 열린 채로 있는 입구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렸다.
“나, 나왔다!”
“바깥이다!”
타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
타워는 상층부가 무너져서 일그러지고, 그로부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밖에서 보아도 건물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여긴 위험해. 더 멀리 나가자.”
코우자쿠에게 팔을 이끌려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면서, 나는 어깨 너머로 타워를 올려다보았다.
오벌 타워가 무너지면, 플라티나 제일은 존속될 수 없다. 토우에의 흉계도 이걸로 끝이겠지.
어째서, 갑작스럽게 붕괴가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에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씩 ‘공주’로부터 왔던, 수수께끼의 메일.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견하는 듯한 게임의 송신.
처음엔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타워 안에 깃들어있던 어떤 의지가 우리들을 여기까지 이끌어준 것이 아닐까.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이 머릿속 한 구석을 스치기도 했다.
심장부인 오벌 타워가 붕괴된 후, 플라티나 제일은 일체의 기능이 정지되었다.
그러나, 본토의 신속한 개입 등으로 인해 혼란은 빠르게 종식되었다.
타워가 붕괴된 원인은, 플라티나 제일의 중추를 담당하는 시스템의 폭주라고 했다. 그 외의 자세한 사항은 불명이다.
당시, 타워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기적적으로 대피를 해서, 사망자나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타워의 상태가 이상해지기 전에, 대피를 권고하는 수수께끼의 메일이 타워 안의 사람들에게 전송되었던 모양이다.
단, 토우에를 필두로 한 일부의 관계자들은 행방불명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토우에가 꾸미고 있던 사람의 마음을 조작하는 연구와 그에 관련된 실험이 세상에 공표되었다.
구 주민구까지 끌어들여 실험을 행할 예정이었던 특별 기념 이벤트도 중지되고, 미도리지마는 가까스로 토우에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토우에 재벌의 관련 기업이 취급하고 있던 것은 모두 다른 기업으로 인수되었다. 올메이트도 그렇다.
그와 똑같이 라임도 관리 회사가 변경되고, 라임을 주재하는 것은 우스이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게, 토우에 재벌의 그림자는 미도리지마에서 조금씩 옅어져갔다.
지금, 섬의 주민들은 미도리지마를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 활기를 띠고 있다.
노이즈는 그 모습이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은 들리고 있다.
클리어는 가끔씩 ‘평범’에 불쑥 얼굴을 내민다.
밍크에 관해서는 소식불통이다. 그렇지만, 그 녀석이 그렇게 간단히 뻗어버릴 리가 없다.
미즈키는 의식을 회복했다. 아직 퇴원은 할 수 없지만, 문병하러 간 나를 보고는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나는 어떠냐고 하면, 그렇게 심했던 두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만지면 아팠던 머리카락의 감각도 서서히 희미해져갔다.
최근엔 ‘그 녀석’의 기척도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내 안에 있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다.
비유를 하자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깊게 잠이 들어있다. 그런 느낌이다.
그렇기에 솔직히 여전히 불안이 남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 전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평온했다.
타워가 붕괴된 후, 나와 코우자쿠, 그리고 베니시구레의 멤버들은 구 주민구로 돌아왔다.
코우자쿠는 도중에 의식을 잃어, 그대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문신이 폭주했던 것도 있고, 체력도 정신력도 한계에 달했던 것이겠지.
3일 동안 내리 잠만 자서 걱정이 들었지만, 눈을 뜨고서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조금씩 여느 때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1주일 후.
나는 또 전과 같이 ‘평범’의 카운터에 앉아있었다.
코우자쿠가 퇴원했던 날은 병원으로 마중을 나갔지만, 그 후로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 녀석, 잘 있을까.
지금은 일도 쉬고 있는 것 같다. 몸은 괜찮을까?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으니, 가게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나는 카운터에 대고 있던 팔꿈치를 떼고, 자세를 바로 고쳤다.
상품 진열대 쪽으로 가겠거니 싶었던 손님이 카운터로 다가온다.
뭐지. 뭐 주문할 거라도 있나?
그런 생각에 손님 쪽을 보니…….
“여어.”
“코우자쿠!”
가게로 들어온 것은 코우자쿠였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웃음을 지으며 카운터 앞에 선다.
“어쩐지 꽤 오래간만인 것 같은 느낌이 드네. 잘 있었어?”
“아, 아아. 너야말로 괜찮은 거야?”
“아아. 이제 완전히 원상 복귀했다고.”
“근데 지금은 일 안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 뭐, 그거에 관해서는……. 그렇지. 좀.”
“?”
역시 아직 완전히 컨디션이 회복된 건 아닌 걸까.
안 어울리게 조금 긴장하면서, 나는 코우자쿠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묘하게 서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뭐 그것보다, 말야. 오늘, 일 끝나고 시간 있어?”
“아아.”
“간만에 너희 집이 그리워져서.”
“우리 집이 그립다니……. 오는 건 괜찮은데, 오늘은 할머니 안 계셔. 동네 부녀회 모음이 있어서 늦게 온다고 했어.”
“아아, 상관없어.”
“? 할머니가 해주는 밥 먹으러 오는 거 아냐?”
“뭐랄까, 얘기를 좀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그……, 있잖아?”
코우자쿠가 동의를 구하는 듯이 내 눈을 본다.
그걸로 어렴풋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감이 왔다.
우리들은 무사히 구 주민구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래서 참으로 잘되었고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되긴 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다.
섬 전체뿐만이 아니라, 나와 코우자쿠 사이에도.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천천히 이야기하고 싶다는 마음은 나한테도 있었다.
“알았어. 그럼 일 끝났을 때 또 연락할게.”
“오우, 기다리고 있을게. 그럼, 이따 봐.”
“아아.”
코우자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 손을 휙 들어 올려 보이고서 가게에서 나갔다.
……이야기하고 싶다, 이 말인가.
나는 카운터에 팔꿈치를 괴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딱히 뭔가를 상상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쩐지 조금, 가슴이 두근거렸다.
“실례하겠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일이 끝나고 코우자쿠와 밖에서 만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가 집에 없어서, 적당히 멸치나 햄 같은 걸 뒤섞어서 밥을 짓고 코우자쿠에게 차려준다.
“맛있어.”
“할머니가 차려준 것보다는 맛이 떨어지지만.”
“아니, 이건 이것대로 괜찮은데.”
“아첨 같은 거 필요 없는데요.”
“아첨하는 거 아냐.”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들은 2층으로 올라갔다.
방 안 한 구석에는 렌이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쿠션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자고 있었다.
코우자쿠가 베란다로 발길을 돌린다. 식후땡인가.
내가 재떨이로 손을 뻗은 시점에서, 코우자쿠는 어째선지 베란다 창문에는 손도 대지 않고서 되돌아왔다.
“담배는?”
“오늘은 됐어.”
“아, 그래?”
단순히 그럴 기분이 아닌 건가?
내가 침대에 걸터앉자, 코우자쿠도 내 옆에 앉았다.
뭐지?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대화가 시작되나 했더니, 코우자쿠는 가만히 발치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입을 다물고 있다.
바닥이 어떻게 된 건가 싶어서 나도 발치를 내려다봤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없다.
……뭐지? 이 분위기. 왠지 좀 말을 꺼내기가 거북하네.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시간이 흘러가는 가운데, 곁눈으로 흘낏 코우자쿠를 본다.
기분 탓일까, 평소보다 굉장히 떨어진 위치에 앉은 듯한 느낌이…….
내가 지나치게 과민한 걸까? 허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마음이 불안해진다.
……어째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걸까.
혹시 뭔가 엄청나게 중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닐까.
그건 그것대로 빨리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애를 태우는 건 심장에 좋지 않다.
머리가 멋대로 이것저것 생각하기 시작해서, 나는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뭐든 좋다. 뭔가 화제를…….
“저, 저기 말이지.”
“……저기 말야.”
“아…….”
“………….”
동시에 입을 열어서, 또 침묵한다.
괜히 더 어색하게 되어버렸다. 타이밍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잖아…….
“미안, 겹쳤네. 먼저 말해.”
“아, 아냐. 뭐랄까, 에- 그게, ……뭐, 마실 거 가져올까?”
“아아, 아니. 괜찮아.”
“그래.”
………….
……대화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아니, 이래선 안 되지 않냐고.
“……근데 말야, 내가 과민한 건지도 모르겠는데. 너, 좀 떨어져있지 않아?”
“떨어져 있어?”
“아니, 이 거리가.”
검지를 펴들고 코우자쿠와 나의 사이를 왕복으로 가리킨다.
“응? 딱히 의미는 없는데.”
“……그래.”
………….
뭐야 이거.
대체 뭐냐고 이거.
이래서는 내가 엄청나게 의식하고 있는 것 같잖아.
……어쩐지 열 받네.
내가 엉덩이를 떼고, 코우자쿠와의 거리를 좁혀서 다시 앉았다.
“……오우.”
코우자쿠가 의미 불명의 추임새를 넣고, 어째선지 얼굴을 돌린다.
진짜로 뭐냐고, 이 분위기…….
약간 짜증이 나려던 시점에서, 코우자쿠가 불쑥 말을 뱉었다.
“……저, 미안했어.”
“에?”
“이것저것…….”
“아, 아니, 딱히 신경 안 써……. 전혀.”
“………….”
“………….”
……거북하다.
싸웠다든지 그런 것과는 또 다르게 묘하게 긴장이 된달까 두근두근거린달까……. 여기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내심 그렇게 애를 태우고 있으니, 코우자쿠가 내 쪽을 보았다. 그 표정은 진지함 그 자체다.
“……조금만, 내 이야기를 해도 될까.”
“플라티나 제일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거니까, 네 입장에선 떠올리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괜찮아.”
“그래.”
코우자쿠가 안심한 듯이 숨을 내쉰다.
플라티나 제일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라면 나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묵묵히 코우자쿠의 말을 기다렸다.
“플라티나 제일에 류호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말야.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붙잡아 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누구도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었어.”
“너도 내 동료들도, 절대로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다고. 뭐……, 결과적으로는 나 혼자서는 다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지만.”
“그, 뭐랄까? 새삼 또 말하는 것도 엄청 부끄럽지만……. 어렸을 때의 네 웃는 얼굴이 내 마음의 버팀목이 되었다고 했었잖아?”
“아아.”
“이 섬으로 돌아와서, 너랑 재회하고서 제일 먼저 결심한 게 있어. 이제 누구도 상처 입히지 않겠다는 거랑, 그리고…….”
“너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결국 널 배반하는 거나 다름없는 짓을 해버렸어. 지금은 엄청 후회하고 있어.”
코우자쿠가 미안한 듯이 눈꺼풀을 떨어트렸다. 허나, 나는 조금 의외의 기분이었다.
“……몰랐어.”
“응?”
“네가 그런 식으로 생각해주고 있었다는 거.”
“별 수 없지, 모르는 게 당연해. 나도 말을 안 했고. 말할 생각도 없었고.”
“나, 네가 나한테 뭘 숨기고 있다고, 그 생각만……. 내 생각만 잔뜩 하고 있었어. 형편없네…….”
“그건 이제 됐어. 서로가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아아…….”
“네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을 때 말야. 지금 돌이켜보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는데, 그때, 옛날 일이 떠올랐어.”
“자주 둘이서 같이 놀고 웃고, 가끔은 싸움도 하고.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나한테 있어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야.”
“너도 어렸을 적 꿈을 꿨다고 했었지? 우연이겠지만, 좀 재밌다 싶어서.”
코우자쿠가 그리운 듯한 얼굴로 웃는다. 그에 이끌리듯이 나도 경직되어 있었던 뺨을 약간 풀었다.
“지금은 서로 어른이 돼서, 완전히 변했다고 생각했었지만 말야. 그렇지도 않았지, 우리들. 어렸을 때랑 똑같아.”
“그러네. 아무것도 안 변했어. 아직도 젖비린내 나는 어린애 그대로야.”
“……그래서 말인데. 섬으로 돌아오고서부터 오늘까지의 일들을 이것저것 생각해봤는데.”
“응.”
“나, 머릿속이 네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싶어서.”
“……그, 떠올리는 것도 싫겠지만, 글리터에서 내가 제정신을 잃어버렸을 때, 있었지.”
“아아.”
“그때 일은 거의 기억이 안 나서, 그래서 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딱 하나,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게 있어.”
“이런 식으로 네 몸에 손을 대고 싶었던 게 아니라고……. 뭐랄까, 그렇게 생각했던 감각만이 남아있달까.”
“………….”
“난 평범하게 여자가 귀엽다고 생각하고, 여자가 좋아. 그러니까 너를 상대로 만지고 싶다든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텐데…….”
코우자쿠는 뭔가 난처한 듯이 앞머리를 한손으로 휘적휘적 흐트러트리고, 얼굴을 돌렸다. 귀가 약간 빨갛다.
왠지……. 나도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난 예전부터 널 알아왔고, 줄곧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해왔으니까. 그래서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퓨즈가 끊겨버리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플라티나 제일에 갔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금 이 순간까지 말야. 나, 줄곧 널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말이지. 좀 전에 있었던 일인데, 네가 방에서 음악 들으면서 누워있을 때, 그런 줄 모르고 네 방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때 네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서.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화내지 마?”
“뭐야…….”
“뭔가……, 야했달까.”
“………….”
“소중한 친구를 상대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 역시 이상하겠지.”
“……여자는? 요즘은 안 노는 거야?”
“플라티나 제일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전혀. 그럴 마음도 안 들고.”
“그, 래…….”
이거…….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 되는 거지?
“……뭐 솔직히, 내 안에서는 어렴풋이 답이 나와 있었어. 단지……, 계속 눈을 돌리고, 가능한 한 보지 않으려 했었지.”
“너랑 나는 남자고 친구 사이고……. 그래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계속 마음속으로 죽여 왔어. 하지만, 그래도 안 돼. 몇 번을 죽여도 다시 살아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건 죽일 수 없을 만큼 강한 마음이 아닐까 싶어서.”
“………….”
코우자쿠는 얼굴을 돌리고 있지만, 아까보다도 귀가 빨개졌다.
……어떻게 하지.
어쩐지 위험한 느낌이 든다.
이 이상, 이 이야기가 진전되면…….
“……저, 말야.”
코우자쿠의 손이 천천히 내 손 위로 포개어진다.
살결이 닿은 순간, 밖으로 소리가 들릴 듯할 정도로 심장이 뛰어올랐다.
“……나, 아무래도 그……, 너한테 반한 것 같아.”
“……윽.”
……아마 내 귀도 얼굴도 새빨갈 거다. 코우자쿠랑 같을 정도로.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급격하게 체온이 올라간다.
내 손 위로 겹쳐진 코우자쿠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강하게 움켜잡는다.
“…………, 좋아해.”
“어렸을 때부터 계속. 널, 좋아했어.”
“…………아.”
가슴으로 커다란 감정의 파도가 몰려와, 내 입에서 들뜬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떻게 하지……. 가슴이 가득 차올라서, 숨 쉬기가 힘들다…….
“……아오바, 너는?”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 나는.”
입술이 바싹 말라서, 혀로 가볍게 적신다.
나는 코우자쿠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소중한 친구? 허물없는 동지?
……아니다.
코우자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안에서도 답은 나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심장이 폭주할 리가 없다.
이렇게……, 얼굴이 뜨거워질 리가 없다.
“……나, 도.”
“나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 아마도.”
“똑같아?”
“널, 소중한 소꿉친구라고 생각했었어. 소중한 친구라고. 하지만, 달라. 어느 사이엔가 달라졌어. 아마도, 너랑 똑같이…….”
“……그, 좋아하는 것, 같아. 너를.”
“……아오바.”
“……!”
코우자쿠의 손에 붙잡혔던 나의 손이 끌어당겨지고, 코우자쿠의 얼굴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자……, 입술이 겹쳐졌다.
찌릿하고 전기 같은 자극이 몸을 스친다.
이제부터……, 여기서부터는 변해버린다.
우리들의 관계가.
만약 경계선이 눈에 보이게 존재한다고 하면, 우리들은 그것을 밟고 넘어가고자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일들, 전부를.
“……으응, …….”
“………….”
처음엔 서로 키스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입과 입을 꼭 붙인 채로 있었지만, 코우자쿠가 서서히 내 입술을 쪼기 시작했다.
도중에 키스를 멈추고, 코우자쿠가 내 얼굴을 바라본다.
“……괜찮은 거야?”
“……뭐가.”
“이젠 되돌릴 수 없어. 이 다음부터는……, 친구가 아니게 돼. 만일 그만둘 거라면 지금밖에 없어.”
“………….”
“나는 너한테 억지로 하게 할 수는…….”
“……시끄러워.”
나는 코우자쿠의 머리카락을 세게 움켜잡고 끌어당겨서, 이어지려는 말을 빨아들이는 듯이 입술을 틀어막았다.
코우자쿠는 놀란 건지 잠시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다시금 조금씩 입술을 쪼는 키스를 시작했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차례로, 이따금 양쪽을 동시에 빨린다.
귀와 얼굴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자신과 코우자쿠의 관계가 변화하는 것을 다시금 체감했다.
우리들은 방금 전까지 친구였다.
그것이 이런 식으로 바뀌게 될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아는 사람들 가운데는 남자끼리 사귀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도 가벼운 장난으로라면 키스 정도는 해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긴장했던 적은 없었다.
“음…….”
코우자쿠의 움직임에 맞추어 나도 코우자쿠의 입술을 쪼았다. 그러자, 코우자쿠의 양손이 내 어깨에 닿았다.
“아오바…….”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이며, 코우자쿠가 천천히 내 몸을 침대 위로 넘어뜨려간다.
“믿을 수 없어……, 이렇게.”
서서히 내 몸을 뒤덮은 코우자쿠가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우왓……!”
순간, 머리카락에 자극이 스쳐서 어깨를 움츠렸다.
코우자쿠가 내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고, 여자의 손에 키스하는 것처럼 입술을 대고 있었다.
아무리 통각이 희미해졌다고는 해도, 이런 식으로 다뤄지면…….
“윽, 뭐하는 거야……, 내 머리카락…….”
“미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줄곧, 줄곧 이렇게 네 머리카락을 만지고 싶었어.”
“에……, ……앗!”
이번에는 코우자쿠의 입술이 내 머리카락을 살며시 머금어서, 찌릿찌릿 스치는 자극에 숨을 삼킨다.
하지만, 코우자쿠의 손가락에 휘감긴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고서는…….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
코우자쿠의 소중한 장사 수단이기도 한 예쁜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다.
그것이 어쩐지 굉장히 선정적이어서…….
“후……, 응.”
“……아오바.”
코우자쿠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느낌으로, 다시 입술을 포개어온다.
코우자쿠가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혀로 내 이를 더듬어서, 방금 전과는 다른 오싹오싹한 감각이 등줄기를 간지럽힌다.
“응, 으음…….”
입을 조금 벌리자 코우자쿠의 혀가 안으로 들어와, 내 혀를 끌어낸다.
“후, ……음.”
“하, 아……, 응…….”
물기어린 소리가 귓속으로 질척하게 달라붙는 가운데, 혀를 휘감는 부드러운 감촉이 점점 기분 좋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아직 묘한 기분이 남아있었다.
소꿉친구로서, 소중한 친구로서 줄곧 가까이에 있었던 코우자쿠와 이런 걸 하고 있다니…….
아직 실감이 들지 않는다. 꿈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현실인 것이다.
코우자쿠가 내 T셔츠를 걷어 올리고, 손바닥으로 원을 그리듯이 배와 갈비뼈를 쓰다듬었다. 약간 간지럽다.
손끝이 가슴의 돌기에 닿고, 느릿느릿 문지르기 시작한다.
“우왓, 잠, ……흣, 하하.”
“왜 그래?”
“아니, 뭔가, 간지러워서.”
“간지러워?”
“아니 그게 뭔가……, 하하.”
상대가 코우자쿠여서 그런지 장난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좀처럼 남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기에,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다.
“안 되겠어, 미안……, 간지럽다니까…….”
“너 말야……. 됐어, 그렇게 언제까지 웃어댈 수 있나 보자고.”
“아니, 하하, ……응, 으음.”
코우자쿠가 내 입술을 틀어막고, 웃음소리를 빨아들인다.
코우자쿠는 이번에는 아까와는 다르게 약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며 혀를 휘감았다. 머리카락도 손끝으로 짓누르는 듯이 자극해온다.
“응, 으응, …….”
코우자쿠의 손이 아래로 뻗어나가고, 내 벨트에서 멈춘다.
“응……! 후우, 아, 잠깐……, ……으응.”
순간 당황해서 멈추려고 했지만, 코우자쿠는 허용해주지 않는다.
다시 깊은 키스를 받고 혀를 강하게 빨려서, 저항하고자 했던 힘이 빠져나간다.
이 녀석……. 노는 데 익숙해서 그런지 키스가 장난이 아니다.
좀 열 받네…….
코우자쿠의 손이 내 바지의 앞섶을 풀고, 속옷 안을 더듬는다.
반 정도 발기한 그것이 코우자쿠의 손에 붙잡혀, 몸이 흠칫 떨렸다.
……이 이상, 계속해도 괜찮은 걸까. 정말로.
이제 와 망설임이 고개를 든다.
코우자쿠도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입술을 떼어내고는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이젠, 돌이킬 수 없어.”
그 한마디는, 코우자쿠가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도 들렸다.
“………….”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나의 그것을 감싸 쥐고 있던 코우자쿠의 손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응! 하……, …….”
코우자쿠의 손이 움직이는 것에 맞춰, 허리에서 서서히 달콤한 자극이 배어나온다.
한숨이 새어나올 것만 같아서, 목 안쪽으로 눌러 죽였다.
어쩌지. 엄청 부끄럽다…….
코우자쿠는 나의 것을 문지르며 가슴에 얼굴을 대고, 그 위로 혀를 놀렸다.
“흐응, ……응, 하, ……응.”
혀가 유두를 이리저리 굴려서, 달콤함이 뒤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방금 전에는 간지럽기만 했는데, 아래도 만져지고 있는 탓에 묘한 기분이 든다.
“하, 아…….”
“………….”
코우자쿠가 기색을 살피는 듯이 눈을 위로 뜨고 나를 본다.
“……뭐야.”
“아직도 간지러워?”
“시, 끄러……. 윽, 물어보지 마. 그리고 너무, 이쪽 보지 마…….”
“어째서.”
“부끄럽잖아, 이상한 얼굴이나 목소리나…….”
“이런 상태에서 할 말이냐고.”
“솔직히……. 거시기 보이는 것보다 더 싫어…….”
“바보.”
코우자쿠가 살짝 웃음을 띠고서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한다.
입술 외에도 턱과 뺨, 코끝, 눈꺼풀 위로 키스가 내려온다.
“응, 읏, ……아, 후…….”
코우자쿠의 손에 애무를 받는 나의 그것은 완전히 서서, 쿠퍼액이 완전히 넘쳐흐른 상태였다.
코우자쿠는 키스를 하거나 가슴을 핥으면서, 계속해서 내 얼굴을 보고 있다.
보지 말라고 했는데도…….
부끄러움보다도 분한 감정이 강하게 솟아올라서, 나는 기세를 타고 코우자쿠의 하반신으로 손을 뻗었다.
“!”
코우자쿠가 조금 놀란 듯이 허리를 뒤로 뺀다.
“……뭐하는 거야.”
“나도 만지게 해줘. 나만 이래선 수지가 안 맞잖아.”
“……아니, 그래도.”
“괜찮으니까.”
코우자쿠는 조금 난처한 듯이 웃고, 내 손을 살며시 붙잡아 저지했다.
“지금은 위험하니까.”
“뭐가.”
“네가 만졌다가는……, 분명 오래 못 버틸 거야.”
내 귓가에서 그렇게 속삭이고, 코우자쿠가 의미심장하게 눈을 가늘게 좁힌다.
“………….”
그런 말을 들으면 아무것도 못 하겠잖아…….
오히려 내 쪽이 쑥스러워져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코우자쿠는 어쩐지 기쁜 듯이 내 뺨에 키스를 하고, 쿠퍼액으로 완전히 젖어버린 손을 내 그것에서 뗐다.
젖은 손이 뒤쪽으로 향한다.
“……앗!”
등줄기가 선뜩해지는 감촉에 약간 허리가 튀어오른다.
코우자쿠는 다른 한쪽 손으로 내 것을 다시 문지르고, 봉오리 안으로 천천히 손가락을 넣기 시작했다.
처음엔 입구를 문지르는 듯이 이리저리 어루만지고, 서서히 안쪽으로 나아간다.
“핫, ……하아, …….”
“아파?”
아픈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뭐가 어떤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몇 번 손가락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자, 딱딱하게 경직되었던 그곳이 부드럽게 풀어져가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코우자쿠가 내 반응을 보면서 안을 더듬는 듯이 손가락을 움직인다.
“손가락, 더 넣는다.”
“……아아, ……응.”
“………….”
“……?”
“네 안, 뜨겁네…….”
“! 시끄럽, 다니까……!”
꽤 진지하게 정색을 하고 그런 말을 하자, 코우자쿠가 두 눈을 가늘게 좁히고는 웃었다. 그 얼굴이 상당히 섹시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묘하게 에로한 순간이 있네, 이 녀석…….
처음엔 조금 힘들었던 손가락 두 개도 점차로 익숙해지고,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빠진다.
“옷, 벗긴다.”
“윽, 내가 할 테니까.”
“그래?”
나는 코우자쿠를 저지하고서,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간신히 옷을 전부 벗었다.
코우자쿠도 기모노를 크게 풀어헤치고 상반신을 드러낸다.
흉터와 문신으로 수놓인 다부진 몸을 보고서, 가슴이 조금 욱신거렸다.
생생하게 각인된, 코우자쿠가 그로 인해 몹시도 괴로워했던 지울 수 없는 상흔이다.
하지만……, 이것은 훈장이기도 하다.
코우자쿠가 이만큼의 시련을 끝까지 견뎌냈다는, 살아있다는 증표다.
손을 뻗어 흉터 하나를 만지자, 코우자쿠가 자그맣게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 아오바.”
“……응.”
“그런데, 여기서부턴 먼저 사과해둘게. 힘 조절 못하게 되면 미안. 가능한 한……, 주의할게.”
“……!”
코우자쿠는 약간 빠른 속도로 말을 끝내고, 내 무릎을 좌우로 크게 벌렸다.
“우왓……!”
남김없이 모든 걸 낱낱이 드러내는 듯한 자세에 허둥지둥 다리를 오므리려 했지만, 코우자쿠에게 허리를 단단히 잡혀버리고 만다.
“코우자쿠……!”
“미안…….”
코우자쿠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고, 확인하는 듯이 손가락으로 봉오리를 쓰다듬었다.
그 후……, 그곳에 뜨겁고 단단한 것이 닿았다.
“아아, 앗……! 으아……, 읏!!”
힘이 꽉 실리고, 좁은 입구가 천천히 벌려져간다.
코우자쿠가……, 들어온다.
어느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지만, 손가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박감과 찢기는 듯한 고통에 숨이 멎는다.
……이걸로 정말,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앗, ……괜찮아?”
“으, ……윽.”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필사적으로 몇 번 고개를 끄덕인다. 꽤나 버겁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공포와 망설임이 남아있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코우자쿠와 내가 하나로 이어지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우자쿠를 받아들이고, 나도 코우자쿠에게 돌려주고 싶다.
우리 둘의 사이에 소꿉친구라는 관계는 사라져버리고 말지만, 한층 더 깊은 관계가 생겨난다.
이것은 그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위해 필요한 행위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 ……하아.”
신경을 써주고 있는 것인지, 코우자쿠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내 안으로 전부 집어넣었다.
그 입술에서 뜨거운 숨이 흘러나온다.
“아, 하아, ……아읏.”
안쪽이 무리하게 벌려져서 숨을 쉬기가 힘들다. 얕게 헐떡이고 있으니, 코우자쿠가 살며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아파?”
“……괜찮아.”
“……믿겨지지가 않아. 설마 너랑, 이런 걸 하게 될 줄은.”
코우자쿠가 굉장히 행복한 듯이 미소를 짓는다. 그 표정에 가슴이 서서히 따뜻해졌다.
날 향한 코우자쿠의 마음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고, 기뻐진다.
그 기쁨을 전하고 싶어서, 나는 코우자쿠의 목을 끌어당기고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아오바…….”
코우자쿠가 눈을 가늘게 좁히고 짧게 목을 울리고서, 허리를 움직인다.
“앗……! 후우……! 아!”
안쪽 깊숙이까지 찔려, 큰 소리가 새어나온다.
코우자쿠는 내 안에서 움직이면서, 삽입의 아픔으로 시들어가고 있던 나의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하, 아, 크으, ……읏, 으응……!”
앞쪽에서 일어나는 쾌감이 섞여 들어서, 아픈 건지 괴로운 건지 좋은 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다.
“아오바, ……후, 아오바.”
“응, 아……, 읏, 아, 하아……!”
얼굴을 돌려 베개에 묻자, 코우자쿠의 손이 뺨에 닿았다.
“읏, ……얼굴, 보여줘.”
“싫어……, 읏.”
“안 돼, 보여줘.”
정욕으로 가득 차오른 목소리가 달콤하게 명령을 내린다.
“전부 보여줘. 네가 느끼는 얼굴, 전부……, 나한테.”
“……으읏.”
왜인지 그 목소리를 거스르지 못하고…….
나는 수치심을 억누르고, 코우자쿠 쪽으로 약간 얼굴을 돌렸다.
코우자쿠는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긋하게 웃었다.
“……귀여워.”
“바, ……으응.”
한 마디 쏘아주려고 했지만, 그것을 봉쇄하는 듯이 코우자쿠가 점점 더 세게 치고 들어와, 말이 한숨 속으로 녹아든다.
“후우, 응, ……아, 하아……, 읏!”
“하, ……아.”
나의 것을 문지르는 코우자쿠의 손이 젖어서 질척질척 물기어린 소리를 낸다.
안쪽이 몇 번이고 마찰되는 사이에, 점차로 고통이 옅어져갔다.
다음으로는 오로지……, 쾌락에 농락당할 뿐이다.
“아아, ……읏, 아, 으응……!”
“읏, 아…….”
코우자쿠가 치고 들어오는 대로 헐떡이고 있으니, 배 위로 무언가 따뜻한 것이 뚝뚝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코우자쿠의 움직임이 뚝 그친다.
“……?”
밀려드는 쾌감의 물결이 도중에 끊겨 눈을 떠보니, 코우자쿠가 손으로 코를 막고 있었다.
“……왜 그래?”
멍하니 시선을 배 쪽으로 돌리고는……, 흠칫 놀랐다.
배 위에 붉은 액체가 점점이 떨어져있다. 이거 설마, 피……?
“……헤, ……설마, ……코피?”
“………….”
코우자쿠는 고개를 숙인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당장 파악이 되지 않았다. 왜 코우자쿠가 코피를……?
“젠장, 스타일 구기게……. 머리로 피가 너무 많이 몰려서……, 네 탓이라고.”
“에……, 왜.”
코우자쿠가 나를 가볍게 노려본다. 그 얼굴은 피와 똑같이 새빨갛다.
“물어보지 마, 아니 알아서 파악하라고. 그만큼 흥분하고 있다는 거잖아……! 제길, 여자랑 했을 땐 한 번도 이런 적…….”
“………….”
코우자쿠는 꽤나 못마땅하다는 듯이 옆을 향하고는, 슥슥 코를 닦았다.
처음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점점 웃음이 솟아올랐다.
“……큭, 후후.”
“……웃지 마. 빌어먹을.”
“미안, 안 그럴게, 그치만…….”
우습다기보다는, 기뻤다.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코우자쿠를 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것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코우자쿠.”
“뭐야.”
“좋아해.”
“……윽.”
코우자쿠가 깜짝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 결에 코를 막고 있던 손이 떨어진다.
……코피가 번져서, 입 주위까지 희미하게 붉은 빛이 남아있다.
나는 가슴 가득 터져 나오는 사랑스러움을 깊게 절감하며, 코우자쿠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면까지 좋아해.”
“……제길.”
코우자쿠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짧게 혼잣말을 내뱉고, 느닷없이 깊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으응, 아, 하아……, 읏!”
코우자쿠가 내 사정을 전혀 봐주지 않고 안쪽 깊은 곳까지 치고 들어와, 곧바로 머릿속의 심지가 녹아들기 시작한다.
안쪽을 찌를 때마다 소리가 흘러나와, 목이 바싹 말라버리고 만다.
앞쪽도 아플 정도로 세게 문질러져서, 몸이 점점 한계로 내몰려간다.
이제 내벽을 도려내는 아픔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강렬한 쾌감만이 온몸을 뒤덮었다.
“응, 으응, ……아, 아앗!”
“……, ……읏.”
“으응, ……아, 코우자쿠, 이제, ……위험해.”
“아오바……, 좋아해.”
“아, 하아, 아앗, ……으응, 읏!”
코우자쿠가 눈썹을 찡그리고, 난폭한 움직임으로 내 몸을 뒤흔든다.
코우자쿠의 그것이 안쪽에 퍽퍽 닿는 소리가 체내로 울려퍼지고, 강한 전류와도 같은 충격과 쾌락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이제, 한계다.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내몰리고…….
“그만, 아, ……읏, 코우, 자쿠, 갈 것 같아, 아, ……아아앗!!”
몸이 흠칫흠칫 튀어오르고, 나는 코우자쿠의 손에 감싸인 채로 하얀 액체를 토해냈다.
“……읏, 후우……, …….”
내가 절정에 달한 후, 코우자쿠도 내 허리를 끌어안고서 이를 악물었다.
“흣……, …….”
“……아, ……하아, 아…….”
내 안에 정액을 쏟아낸 코우자쿠가 움찔 몸을 떨고서, 내 위로 쓰러진다.
그 무게를 기분 좋게 받아들며, 나도 호흡이 진정될 때까지 가슴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아오바, 괜찮아?”
잠시 후에 코우자쿠가 상반신을 일으키고, 아직 황홀함이 짙게 남아있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응. 그보다 너야말로, 코피 멈춘 거야?”
“……너 말야.”
일부러 그런 말을 하자, 코우자쿠가 약간 울컥한 듯한 얼굴을 했다.
코우자쿠의 얼굴에 코피가 문질러진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장난기가 발동해 그 위로 손가락을 놀린다.
“……헤헤.”
“하지 마.”
코우자쿠가 내 손을 붙잡고, 난폭하게 입술을 밀어붙이고서 내 옆에 누웠다.
“……정말, 꿈 같아.”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고, 코우자쿠는 정면에서 나를 끌어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특별히 신경을 써서 만지는 것인지, 아픔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기분이 좋다.
사정 후의 나른함도 있어서, 점점 졸음이 몰려온다.
“……있지, 아오바.”
“응?”
“부탁이랄까, 내 오랜 꿈 같은 게 있는데, 들어줄래?”
“말해봐.”
코우자쿠가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그 끝부분을 손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네 머리를 자르게 해줬으면 좋겠어.”
“……머리를.”
“아아. 네가 다른 사람이 머리를 만지는 걸 싫어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언젠가 만에 하나 네가 괜찮다고 하는 때가 오면, 반드시 내가 자를 거라고……. 줄곧 그렇게 생각했었어.”
확실히 여태껏 다른 사람이 내 머리를 잘랐던 적은 없다. 스스로 적당히 잘랐었다.
하지만, 코우자쿠라면…….
그것도 오랜 꿈이라고까지 말하니, 거절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좋아.”
“정말이야?”
“응.”
“……진짜로.”
“정말이라니까.”
“그래……. 그래, 아오바.”
코우자쿠는 들뜬 목소리를 내고, 기쁜 듯이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간지러워.”
“고마워,”
“오버는.”
“그런 거 아냐. 내 꿈이 이루어진 거라고? 솔직히, 반은 포기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해.”
“……아아.”
이렇게까지 기뻐하는 걸 보니, 어쩐지 나도 기뻐진다.
넘칠 듯이 차오른 마음으로, 나는 코우자쿠의 목 부근에 얼굴을 대고 눈을 감았다.
코우자쿠가 내 손을 잡고, 손가락을 휘감아 단단히 움켜쥔다.
나도 그에 화답하듯이, 뒤얽힌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아오바.”
“응, ……으응.”
“아오바, 일어나. 벌써 열 시라고.”
“으응~~~…….”
몸이 이리저리 뒤흔들려서, 희미하게 눈이 떠진다.
하지만……, 졸리다. 아직 깨고 싶지 않다.
“5분만 더…….”
“안 된다니까. 아까도 그렇게 말했잖아. 아니 항상 그렇게 말하고는 안 일어나잖아.”
“4분만, 더…….”
“안 돼.”
“1분…….”
“아-오-바. 안 일어나면 확 덮친다.”
“으-응…….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정말이지.”
코우자쿠가 질렸다는 듯이 웃는 소리가 들리고, 이불이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뭐지? 싶었더니…….
“아오바~. 일어나!”
“응, ……헤엣!? 아하, 아하하하, 잠깐, 코우자쿠!”
갑자기 옆구리가 간질간질 간지럽혀져서, 잠기운이 확 달아나버린다.
“아하하, 흐아, 알았어, 하지 마, 일어날 테니까, 일어날 테니까 하지 마!”
내가 몸을 비틀면서 항복을 외치고서야, 가까스로 코우자쿠의 손이 멈췄다.
막 잠에서 깬 사람한테 간지럼 공격은 비겁하잖아…….
씩씩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으니, 코우자쿠가 이불을 뒤집어쓴 내 몸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어깨에 코우자쿠의 턱이 걸쳐진다.
“진짜로 넌, 아침에 약하네.”
“그야 졸리니까. 어쩔 수가 없잖아.”
“뭐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 집에 오게 되고서는 더 심해지지 않았어?”
“그런가?”
최근, 나는 주에 3일 정도의 페이스로 코우자쿠의 집에 자러 오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게 귀찮은 거랑, 그리고는 뭐…….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있으니까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것도 있고 해서…….
우리들이 이런 관계가 되고서, 슬슬 세 달이 지나려했다.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기도 하고, 아직 그렇게밖에 시간이 흐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원래 친구였기 때문인지, 평소의 우리들은 지금까지와는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코우자쿠는 여전히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달라고 조르고, 미용사 일도 재개했다.
……우리들 일을 할머니가 눈치 챈 것 같은 느낌이 전혀 안 드는 건 아니지만.
“아~, 그건가. 너.”
“뭐야.”
“우리 집에 와서 아침에 잠투정을 하게 된 거 말야. 나한테 어리광을 부리는 건가.”
코우자쿠가 능글맞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입 밖에 내고는 나를 꼬옥 끌어안는다. 머리카락도 마구 흩뜨려놓는다.
“퍽이나.”
“이 손에 닿는 느낌, 정말 기분 좋다니까. 내가 했지만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다니까.”
“간지럽다고.”
내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코우자쿠의 바람을 받아들인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짧은 머리를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머리카락에 뭐가 닿으면 아픈 것이 당연했기에, 정말로 머리를 자르게 되기 직전에는 상당히 아플 것이라고 단단히 각오를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머리카락의 감각이 꽤 많이 없어진 것도 있어서, 약간 맥이 빠질 정도로 아프지 않았다.
그렇지만 역시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라, 어쩐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슥슥 가위가 움직이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있다.
아프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해도, 코우자쿠는 내 머리카락을 신중하게 다루었다.
덕분에 단순히 커트만 하는데도 두 시간이 걸렸다. 뭐, 코우자쿠가 엄청나게 만족스러워 보였으니 그걸로 됐지만.
덧붙여 말하자면 잘린 머리카락은 평생 가보로 간직하겠다며, 코우자쿠가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두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기분 나쁘지 않냐고 항의했지만, 코우자쿠로서는 꽤나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던 듯, 진지하게 설교를 하는 것을 꼼짝없이 듣고 있어야 했다.
결국, 내 쪽이 먼저 떨어져나가서 코우자쿠 좋을 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
“이젠 익숙해졌어? 짧은 머리.”
“목덜미가 휑-한 느낌이 아무래도……. 머리도 너무 가볍고.”
“곧 익숙해지겠지. ……후.”
“윽! 숨 불어넣지 마!”
“하하.”
목덜미에 퍼부어지는 공격을 막는 듯이 코우자쿠에게로 몸을 기대자, 코우자쿠는 기쁜 듯이 내 머리를 톡톡 쓰다듬었다.
“이래도 안 아픈 거지, 이제.”
“아아.”
“신기하네. 너, 그렇게 싫어했었는데.”
“그러게.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로선 네 머리카락을 맘대로 만질 수 있으니까 기쁠 따름이지만.”
“덕분에 항상 부스스하고.”
“늘 제대로 다시 정돈해주잖아. ……그러고 보니 말야, 전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물어봐도 돼?”
“응?”
“너, 그……. 내가 처음이었던 거지?”
“하? 뭐가?”
“그거 말야. 그쪽 경험 면에서.”
……이 녀석,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는 수상한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있는 힘껏 코우자쿠를 노려보았다.
당황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코우자쿠는 의외로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에, 도리어 이쪽이 압도된다.
“……뭐, 남자랑은 네가 처음인데.”
“……그래.”
코우자쿠가 명백하게 안심했다는 표정을 그대로 내보인다. 어쩐지 열 받네.
“뭐야. 왜 안심하는 거야.”
“아니,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잖아. 너, 날 어떤 눈으로 봤던 거야.”
“그게 아니래도. 너 말야, 어렸을 적엔 여자애처럼 귀여웠잖아? 내 안에는 그때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다고.”
“지금은 어디를 어떻게 봐도 남자로밖엔 안 보이잖아. 같잖은 소리 하지 마.”
“내가 보기엔 지금도…….”
“아?”
“아니아니, 농담이야. 다만, 예나 지금이나 귀엽다는 생각은 하지만.”
“하나도 안 기쁘거든요.”
코우자쿠가 우습다는 듯이 웃고는, 다시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나도 물어보겠는데, 그런 넌 어떤 거야.”
“나? 남자랑 말야?”
“그래.”
“없어. 남자랑은 물론 네가 처음이야. 안심해. 소중하게 대할게.”
“……바보. 코피 터트린 주제에.”
“윽, 너, 또 그걸……. 지금은 안 터트리잖아!”
보복으로 이전의 코피 사건을 다시 들추자, 코우자쿠는 분하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약간 마음이 풀린다.
“맞다. 너, 오늘 일은?”
“오후부터야.”
“그럼, 끝나면 ‘평범’에서 모이자. 오늘은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싶으니까.”
“알았어.”
“여자랑 놀고 오지 마?”
“안 놀아. 아니 이젠 여자 근처엔 얼씬도 안 한다고.”
코우자쿠는 나와 사귀게 되고서는 여자랑 노는 걸 일절 끊어버렸다.
여전히 팬을 자처하는 여자들이 있으니 적당히 상대는 해주는 것 같지만, 같이 자거나 데이트를 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나한테 의리를 지키는 거냐고 물어보았더니 진심으로 정색을 하고 화를 냈었다.
오랜 시간 품어왔던 사랑이 이루어진 지금,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전혀 안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이지 부끄러워서 두 번은 못 들어줄 이야기다.
“겨우 잠이 깼네. 아침밥 만들 테니까 비켜.”
“응.”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코우자쿠는 나를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있다.
“코우자쿠?”
“몸 상태는 어때? 두통 같은 건, 이제 괜찮은 거야?”
“……아아. 그러네. 요즘은 좋아.”
타워 붕괴 후, 두통은 완전히 없어졌다. 그 녀석의 목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감각으로 느끼고 있다.
그 녀석은 나니까……, 알 수 있다.
나는 지금껏 할머니와 함께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하지만 할머니와 떨어져서,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절망을 느꼈다.
내 힘은 사람을 부숴버리고 만다. 이런 힘, 없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녀석이 내 몸을 빼앗고자 했을 때, 그것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하지만. 코우자쿠가 말해주었다.
내 힘이 있었기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그때, 말라가기 시작했던 가슴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코우자쿠가 스크랩이라는 힘에 대한 절망에 사로잡혀있던 내 마음을 해방시켜주었다. 부숴주었다.
또 언제 그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할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두렵지 않다.
지금은 코우자쿠가 내 곁에 있다.
“만약 몸이 안 좋아지만 바로 말해.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까.”
코우자쿠가 나를 안은 팔에 힘을 싣는다.
“널, 진심으로 평생 소중히 지키겠다고.”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바보. 자 이제 잠 깼으니까 비키라고. 밥 할 거니까.”
“이대로 부엌까지 가자.”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래도!”
“아파!”
그렇게 장난을 치면서, 나는 코우자쿠가 내 곁에 있어주는 것에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느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있을 수 있는 것,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된다.
그러니까…….
‘오늘’이라는 별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에, 솔직하게 감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