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루트 완료. 마지막에 등장하는 선택지로 루트가 나누어집니다.
코노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곧바로 양손으로 목을 눌렀다.
거친 호흡에 어깨가 크게 오르락 내리락 한다.
땀에 젖은 살갗이 미끈미끈하게 손을 빠져나간다. 그것만으로 혐오가 치밀어 올랐다.
──뱀, 뱀이.
이 몸 속에?
그런…… 바보 같은.
터무니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쪽 손은 위 부근을 더듬는다.
목구멍을 지나가는 긴 몸통, 비늘의 감촉……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들어간 건가, 네 마리나.
몸 속에.
뱃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린 느낌이 들었다.
등골에 오한이 스친다.
오한은 차츰 심해져, 격렬한 토기로 변했다.
「……욱!」
잇달아 입 속으로 사라져가는 뱀을 떠올린다.
꿈이라든지, 현실이라든지, 그런 건 어찌 되든 상관 없다.
배를 마구 쥐어뜯고 싶다.
떨리는 손으로 입가를 누르며, 코노에는 침대에서 기어나왔다.
집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한 발 늦어, 바닥에 푹 엎드려 구토한다.
위장이 텅 비어도 토기는 그치지 않는다.
전신을 사로잡는 혐오와 공포가,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라온다.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가 이상하다.
몸이?
아니, 좀 더 모호한…… 마음, 의식, 감정.
「으, 으…… 윽」
괴로워.
……괴로워.
위액밖에 나오지 않게 되자, 비참함에 눈물이 흐른다.
바닥에 뺨을 대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코노에는 계속해서 속을 게웠다.
흙 냄새에, 코노에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바로 아래에 바닥이 있다.
엎어진 채로 정신을 잃은 것 같다.
머리를 들자 두통이 스쳤다. 얼굴을 찌푸린다.
머리가 흐리멍덩하고 무겁다.
사고는 진흙탕처럼 둔탁했다.
일어서려고 하다가, 몸이 이상하게 경직되어 있는 것을 깨닫는다.
위 부근이 찌릿찌릿 하고 경련한다.
흙의 냄새, 그 속에 섞여 있는 이질적인 냄새를 맡고, 가까스로 어젯밤의 일을 떠올렸다.
어젯밤의 일.
어젯밤의…… 꿈.
「…………」
순간 불쾌한 느낌이 온몸에 퍼져, 코노에는 입술을 깨물었다.
꿈인지 뭔지도 알 수 없다.
끝에 가서는 결국 정신을 잃을 때까지 구토했다는 따위──이유가 뭐였든, 한심스러웠다.
코노에는 천천히 일어났다.
다리가 의지할 데 없이 휘청거린다.
움직일 때마다 울리는 두통에 이를 악물고,
코노에는 벽에 손을 대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신이 토해낸 것은 바닥에 스며 있었다.
자잘한 나무 껍질을 그러모은 빗자루로 처리를 하고, 흰모래를 덮는다.
통에서 물을 퍼올려, 입을 헹구고 손으로 얼굴을 닦는다.
창 밖은 이미 저녁놀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대체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것인가.
코노에는 침대 위에 앉는다.
그대로 바닥으로 깊숙이 가라앉아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몸을 옆으로 누이고, 멍하니 방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도 저것도, 모든 것이 최악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털다듬기를 하자. 그런 생각이 들어, 느릿느릿 팔을 뻗는다.
습관이 된 그것은, 거기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기분을 가라앉히는 효과도 있었다.
혀를 내밀었으나 거기서 코노에는 움직임을 멈췄다.
의아한 느낌에, 팔을 다시 바라본다.
그 상태로──말을 잃었다.
「…………, ……무, 슨……」
팔에, 무언가가 떠올라 있다.
살갗 위에서 검게 춤을 추는 그것은, 반점처럼 보였다.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어, 손으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어느 사이에, 이런 것이.
어제까지는 분명히 없었다.
의식하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있었다면 반드시 알아챘을 것이다.
문양은 손목부터 물결이 흐르는 듯이 이어져 있었다.
좌우의 팔, 어느 쪽에도.
심지어는──다리에도.
세차게 맥박치는 심장이 아프다.
몸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뺨에 식은땀이 번진다.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흐릿해져, 귀울음과 함께 멀어져 간다.
「……윽」
코노에는 발작적으로 주저앉아 흰모래를 손에 집고, 팔과 다리에 문질러댔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피부가 빨개져도 비벼댄다.
그럼에도, 반점은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었다.
「……제기랄」
움켜집었던 흰모래를 바닥에 있는 힘껏 내던진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인데, 혼란함이 가중되어 한층 더 사나워진다.
아무데고, 가구든 뭐든 달려들어 물어뜯고 싶은 기분이었다.
손톱으로 바닥을 세게 긁는다.
코노에는 안절부절못하고 집 안을 돌아다녔다.
꼼짝 않고 있을 수가 없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게다가, 이 상태로는 밖에 나갈 수 없다.
카로우 같은 작은 마을은 고양이끼리의 교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합은 의외로 깊고 공고하다.
그 점이, 코노에가 카로우의 고양이들과 친숙해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더욱이, 카로우의 고양이들은 관용적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마을과 똑같이 폐쇄적이다. 설령 동포라고 해도, 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철저하게 배제한다.
더군다나 지금은 극도의 빈곤상태라, 모두가 정신적으로도 궁지에 몰려 있다.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다지, 마을의 고양이들과의 관계나 생활에 관해서는 어찌 되든 상관 없었다.
멀어지기 어려운 관계를 맺고 있는 고양이도 없는데다, 딱히 머물 곳이 없어도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집은 어머니와 살았던 추억 그 자체였다.
어머니의 기억은 어릴 적의 것 밖에는 없다. 그렇기에, 이곳은 유일하게 선명하게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라 소중했다.
마을을 떠난다는 것은, 어머니의 기억을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자신 안에서 「따뜻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것.
가능하다면, 잃고 싶지는 않았다.
집 안을 돌아다니던 코노에는 문득 발을 멈췄다. 문 쪽을 돌아다본다.
고양이의 기척.
평소엔 손님 따위는 거의 없는데, 하필이면 이런 때에.
경계하는 코노에의 귀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코노에, 있어?」
이 목소리……
아마도, 신이다.
지난번, 영역 싸움을 걸어왔던 혈기 왕성한 고양이.
「나, 신인데. 안에 있지?」
없는 척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기색을 감춰도 늦다.
자신이 안에 있다는 것은 이미 들통나 있다.
코노에는 문 옆으로 다가서서, 얼굴을 들었다.
「……지금, 일이 있어서 손을 놓을 수 없어. 나중에 와 줘」
목소리가 잠긴다.
목이 말라있는 것이 느껴졌다.
귓속에서는 심장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부탁이니까 돌아가 줘.
그렇게 빌었건만, 당치 않게도 문에 손을 대는 기척이 들어,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중요한 이야기다」
「열지 마」
「뭐야. 몸이 안 좋기라도 한 거야?」
「…………」
움켜쥔 주먹에 땀이 밴다.
벽에 머리를 대고 굳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서, 살짝 눈을 뜨고 어두운 방 안을 바라본다.
막다른 곳에 몰린 사냥감이 도망치고 있을 때, 이런 심경인 것일까.
자신의 호흡이 몹시도 거칠게 들린다.
고조된 감정을 덜어내려고, 세차게 꼬리를 흔든다.
그 끝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코노에는 무심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윽!」
순간적으로 한쪽 손으로 입가를 덮는다.
자신의 꼬리는, 끝 부분이 갈색을 띤 흰색이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은──새카만 꼬리였다.
눈을 의심한다.
꼬리를 쥐고서 가까이 잡아당긴다.
쓱쓱 문질러 봤지만, 당연히 색이 지워지는 일은 없었다.
밤이 스며들기라도 한 것 같은, 불길한…… 흑색.
그때, 어깨너머로 신의 한숨이 들려왔다.
「알았어. 그래도 중요한 이야기니까, 여기서 말할게」
이 초조함을 들켜서는 안된다.
코노에는 숨을 가다듬는다.
「촌장님으로부터 통달(通達)이 있었어. ……이걸로, 알겠지」
신의 목소리는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촌장으로부터의 통달.
시야가 크게 흔들린다.
그것은 즉……
「제물」로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전신이 경직되고, 손발이 마비되어 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시야가 한층 더 어둡게 좁혀진다.
──「제물」.
산 채로, 먹히는 것.
살아있는 채로, 살을 마구 찢기는 것.
굶주린 고양이들의 이빨에 찔리고, 뼈까지 빨린다.
「…………」
「규칙에는 순종하라, 그것이 백성의 의무다──그렇게 전하라고 들었어. ……그것 뿐이다. 확실하게, 전했으니까」
신은 도망치는 것처럼 떠나갔다.
그것은 죽음의 선고와 다름없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는다.
「제물」로 선택됐다.
이런 때에.
하필이면, 이런 때에.
몸을 정결히 한 후에는, 어디부터 먹힐까?
손가락부터일까.
배부터일까.
목부터일까.
그런 생각을 하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규칙에는 순종하라? 그것이 백성의 의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팔의 반점에 시선을 떨어트린다.
모래로 문지른 탓에, 팔은 새빨갛게 살이 벗겨져 있었다.
그리고, 시야의 끝에서 흔들리는 꼬리.
역시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실구가 발병해 자신에게 무턱대고 덤벼들어 왔던 고양이의 마음을, 지금이라면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것도 저것도, 어찌 되든 좋다. 차츰차츰 물밀듯이 절망이 다가오고 있었다.
멍한 시선으로, 코노에는 검게 물든 꼬리를 바라본다.
밤이 찾아온 하늘은 어둡고, 불도 켜지 않은 집은 더더욱 어두웠다.
자신의 꼬리도, 이대로 어둠에 뒤섞여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꼬리뿐만이 아니라, 몸도.
──귀는?
퍼뜩 정신이 든다.
귀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무언가에 자신을 비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거울 파편의 존재를 떠올리고, 코노에는 선반으로 손을 뻗었다.
「두 지팡이」의 유적에서 주운 것으로, 들여다 보면 자신의 모습이 비춰지는 불가사의한 파편이었다.
거울을 얼굴 앞에 든다. 어두운 방을 배경으로,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비친다.
그 속에 묻혀있는 것은──
새카만, 두 개의 귀였다.
「……어떻게 된 거야……」
무심결에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탈력감에 뒤덮혀, 코노에는 느린 손놀림으로 거울을 선반에 돌려놓았다.
눈의 초점이 안정되지 않는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하얗게 흐려져, 모든 것이 멀어져 간다.
칠흑의 귀와 꼬리──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귀와 검은 꼬리, 검은 반점을 지닌 자가 나타나는 때,
이 세계는 재앙에 삼켜진다──
이 세계는 재앙에 삼켜진다──
시사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전설이 있다.
음유시인들도 자주 소재로 삼아 노래하고 있다. 코노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검은 귀와 꼬리를 가진 고양이는 드물다.
그래서, 시사에서는 불길함의 상징으로서 몹시 꺼려지고 있었다.
그것이──
반점까지 나타난 지금의 코노에의 상태는, 바로 내려오는 전설 그대로였다.
카로우의 고양이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끝장이다. 확실하게 살해당한다.
재앙을 가져오는 고양이를 이 세상에서 없애기 위해, 그리고…… 카로우에서 그런 고양이가 나왔다는 사실을 없애기 위해서.
천애고아로 경원시되고 있는 코노에를 상대로, 망설임 따위를 느낄 리도 없다.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듯한 초조함에 내몰린다.
얼마만큼 숨을 내뱉어도, 뱃속에 쌓인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윽」
감정에 맞추어 크게 흔들리는 검은 꼬리가 보기 싫다.
마치 거무죽죽한 뱀 같다.
잡아 뜯어 버릴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뱀──
이제는 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어젯밤의 꿈과, 이 일련의 사건들.
그것들이 서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지금의 코노에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뱀, 꿈, 반점. 귀와 꼬리…… 그것들이 한꺼번에 덮쳐온다.
코노에는 물통으로 다가가, 물보라가 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얼굴을 박았다.
그 기세로 물을 마신다.
미지근한 물이 위에 온통 스며들자, 조금 진정되었다.
꿀꺽 하고 목을 울릴 때마다, 끓어오른 사고가 냉정함을 되찾아가는 듯했다.
얼굴을 들고, 흔들리는 수면을 바로 가까이에서 바라본다.
당면의 문제는, 이 모습으로 밖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지?
지금 이 상태로는 어찌할 수도 없다.
선택지는 하나 밖에 없었다.
손가락 끝을 물 속에 넣는다.
미지근할 온도가 몹시도 차갑게 느껴졌다.
굽히고 있던 몸을 일으켜, 통에 등을 기댄다.
허공의 한 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떠나자, 이 마을을.
서로 잡아먹지 않으면 내일을 살아갈 수 없는 고양이들에게, 지금의 코노에를 받아들일 여유 따위는 없다.
이곳에 있어도, 길은 두 가지 밖에는 없다.
먹히거나, 살해되거나.
이 두 가지 뿐이다.
추억 깊은 이 집이 마음에 걸리지만, 언제까지고 거기에 매달려있을 수는 없다.
──적어도, 똑똑히 눈에 새겨두자.
설령 기억이 희미해져도, 잊어버리지 않도록.
코노에는 집 안 곳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천장도, 벽도, 바닥도, 몇 안되는 가구도, 침대도…… 철이 들었던 때부터 줄곧 봐왔던 것이다.
꽤나 더러워졌다.
그렇지만, 기억은 바래지 않는다.
눈을 감고, 지금 보았던 광경을 확실히 마음에 새겨넣는다.
언젠가──비록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돌아오자.
자신이 떠난 후, 만약 이 장소가 쓰레기 더미가 되었다고 해도, 돌아오자고 다짐했다.
천천히 눈을 뜨고, 바닥에 가로놓인 꼬리를 본다.
살랑살랑 움직여본다.
「……기분 나쁘네」
자조적으로 중얼거린다.
그렇지만, 자신의 꼬리다.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게 현실인 것이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데다, 혐오감이 사라진 것도아니었다.
그럼에도 받아들여, 끌어안는 수 밖에는 없다.
한숨을 내쉬고, 코노에는 남김없이 밤으로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을을 떠난다면 심야가 좋겠지.
어둠에 뒤섞여 있는 편이 움직이기 쉽다.
마을을 떠나──어디로 갈까.
목적지는 없다.
이웃의 마을은, 어디든 카로우처럼 자신들의 일로 다른 여유가 없겠지.
게다가, 역시 이 모습도 보일 수 없다.
그렇다면 갈 곳은, 란센인가.
시사에서 가장 큰 번화가.
『공허』의 피해도 없고, 산 제물의 제도도 없다.
가지각색의 고양이가 모여든다는 란센이라면, 이 증상의 원인과 치료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 문제는 거리였다.
최근까지도 카로우에서 란센을 목표로 길을 떠났던 고양이가 있었지만, 무사히 도착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만만치 않은 것은, 카로우와 란센의 사이에 가로놓인 숲이다.
남쪽의 숲은 『공허』의 침식도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쪽은 다르다.
초목이 빽빽하게 우거진, 미혹의──환혹(幻惑)의 숲.
한번 길을 잃으면 몇 번이고 같은 장소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한다.
남쪽에 비해 『공허』의 침식이 빨라, 『공허』의 숲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란센은 절대로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최근 요괴가 나타나게 되었다고도 하고, 북쪽의 숲에 들어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과 똑같을 것이다.
그럼에도──갈 수 밖엔 없는 건가.
그 외에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는 것이다.
절망적이라고는 해도,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는 없다.
어두운 집 안에서 힘 없이 물통에 기대어, 코노에는 창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의 달이 창백한 빛을 번쩍번쩍 내리비치는 심야.
잠깐 눈을 붙여두려고 침대에 누워봤지만, 결국 한잠도 잘 수 없었다.
거듭되는 예상 밖의 일들에, 신경이 완전히 과민해져 있었다.
코노에는 자는 것을 포기하고, 기지개를 켜서 나른함을 쫓았다.
길잡이의 잎으로 불을 켜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가끔, 시야의 끄트머리에 검은 형체가 스쳐서 깜짝 놀란다.
자신의 꼬리지만, 역시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오래 쓴 탓에 닳아 헤진 삼베 자루에 식량을 가득 채워넣는다.
역시 풀뿌리와 나무 열매 뿐이었다.
그것과, 물을 넣은 나무 대롱도 두 개 정도 넣는다.
만약을 위해 그것도 가져가자.
문득 생각이 나서, 코노에는 선반 가운데에 매여 있던 자루를 끄집어냈다.
안에는 타원형으로 깎인 이색의 돌이 잔뜩 들어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동안에 사용했던, 시사의 화폐다.
지금까지 돈은 소모품을 보충하는 정도 외에는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나, 번화가라면 여러 모로 필요하겠지.
자루에는 그것 말고도, 고이 접힌 편지가 들어 있다.
쓰여 있는 것은 짧은 단어의 나열이다. 노랫말을 적어놓은 것이라고 어머니가 이야기했다.
노래를 좋아했던 아버지가 자주 불렀다고 한다.
「두 지팡이」의 언어로 쓰여 있어서, 코노에는 읽는 것이 불가능하다.
모두 채워 넣고, 삼베 자루의 부리를 묶는다.
그 뒤엔 몸차림을 가다듬었다.
이 몸의 반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양 팔을 앞으로 내밀고, 복잡한 기분으로 코노에는 이리저리 궁리한다.
불길한 전설과 전부 합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태로는 밖을 거닐 수 없는데다, 란센에도 들어갈 수 없다.
생각한 끝에, 코노에는 의복 선반에서 코트를 꺼내들었다.
쳐박혀 있던 그것은, 완전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가볍게 털자 먼지가 흩날려, 얼굴을 돌린다.
약간 더운 느낌이 들었지만, 차려 입으니 전신이 가려졌다.
머리부터 푹 후드를 뒤집어쓰면, 귀도 감춰진다.
이제 곧 겨울이 오니까 시기적으로도 딱 좋다.
일년 내내 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생활하기 좋은 기후의 시사도, 「두 지팡이」의 달력에서 이르는 11월, 12월에는 기온이 내려간다.
이걸로 채비는 모두 끝났다.
무언가 잊어버린 것은 없을까 하고, 코노에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물을 담은 작은 그릇에 놓아두었던 붉은 꽃이 눈에 들어온다.
토키노로부터 받은 꽃이다.
토키노의 얼굴이 눈에 떠오른다.
발열했을 때, 굉장히 걱정스러운 듯한 얼굴을 했었다.
조만간, 다시 상태를 살피러 올지도 모른다.
갑자기 코노에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면 놀랄 테지.
──그러나, 그걸로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상태의 지금의 자신에게는 관여하지 않는 편이 좋다.
이대로 멀어져 버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역시 마음에 걸린다.
무언가, 티를 내지 않고 현재의 상황을 전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한 끝에, 코노에는 돌 화폐를 선반에 두고 가기로 정했다.
토키노는 코노에가 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언가 사정이 있었다는 것은 헤아려 줄 것이리라.
삼베 자루를 어깨에 지고, 여러 해 동안 지내왔던 집을 다시 둘러본다.
정말로 검소하고 아무 것도 없는 집이었지만,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마지막으로 길잡이의 잎을 한 장 손에 들고, 물을 담은 작은 접시에 띄웠다.
따뜻한 빛의 흔들림을 잠시 바라보고서, 코노에는 천천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희미한 달빛에, 마을의 길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떠올라 있다.
코노에는 눈을 엷게 뜨고, 그 광경을 주시했다.
가끔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뺨을 어루만지고 간다.
흙과 바람, 숲의 냄새.
이런 것들은 어디를 가도 똑같을 것이라 모두가 생각하지만, 아니다.
카로우에는, 카로우 밖에는 없는 냄새가 있다.
이런 마을 따위 빨리 떠나고 싶다. 늘 머릿속 한 구석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그렇게 되자 망설이는 자신에게 놀란다.
이곳은 확실히 코노에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었다.
지금까지 보내왔던 시간 하나 하나가 아로새겨져 있는 것을 실감한다.
더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광경.
눈꺼풀 안쪽에 봉하듯이 눈을 감고 나서, 코노에는 마을의 입구로 향했다.
마을의 길을 신중히 걷는다.
이윽고, 전방에 울창한 숲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발을 멈추고 올려다본다.
여기까지 왔다면, 모든 것은 흘러가는 대로 되는 수밖에는 없다.
겁 먹고 있어도 별 수가 없다.
다른 길은 없는 것이다.
움직여볼까 하고, 코노에는 어깨를 움츠렸다.
수많은 나무들의 틈에 어른거리는 빛이 있었다.
──불꽃?
그것은, 누군가가 내걸고 있는 횃불처럼 보였다.
이런 시간에 숲에 들어온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더 자세히 확인하려고 시선을 모았을 때, 한 덩이로 몰려든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후드를 젖혔다.
허둥거리며 후드를 다시 쓰려고 했다.
그러나, 코노에는 흠칫 놀라 등 뒤를 돌아봤다.
막 불어온 바람에서 고양이의 냄새가 났다.
「……칫」
집의 그림자에 누군가 있다.
기척을 억누르고 있다.
숲에서 어른거리는 수상한 불꽃에 정신이 팔려, 눈치채지 못했다.
형형하게 번득이는 두 개의 눈이 똑바로 코노에를 보고 있다.
고양이는 천천히 일어서서, 낮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코노에, 너, 뭐야, 그 귀……, 꼬리 색도」
──들켰다.
「그런 색이 아니었잖아. 그 색, 설마, 불길한……. 설마, 코노에, 너는……!」
자기가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말에 흥분된 것인지, 고양이는 언성을 높이고 이빨을 드러냈다.
최악의 사태였다.
싸움은 피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서 다른 고양이들이 모여들면, 도망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선──
코노에는 훌쩍 몸을 돌려, 숲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 서!」
뒤쫓아오는 발 소리가 들려왔다.
등 뒤를 돌아보지 않고, 여하튼 달렸다.
역시 숲 속까지는 쫓아오지 않겠지.
오로지 달리고 또 달려, 그대로 숲으로 뛰어들었다.
「거기 서, 코노에!」
고양이는 얼마 동안 뒤쫓아오는 듯했지만, 코노에를 부르는 소리는 이윽고 들리지 않게 되었다.
역시 숲에는 들어오지 않았겠지.
얼마나 달렸을까, 코노에는 발을 멈추고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그 고양이는 분명 곧바로 촌장에게 보고하겠지.
그러나, 이곳은 한 번 길을 잃으면 두 번 다시는 나올 수 없다고 전해지는 숲이다.
역시 지금 당장 쫓아올 리는 없을 것이다.
가까스로 숨도 가라앉아서, 코노에는 주의 깊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울창한 나무들은 모두가 똑같이 보인다.
달빛은 겹겹이 겹쳐진 가지와 잎에 막혀서,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바람이 없는데도, 풀이 발치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소문과 다르지 않게, 정말로 을씨년스러운 숲이다.
이 정도라면 확실히 요괴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래도 마을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어찌됐건 이미 제물로 선택된 상태였다. 카로우에서 살 길은 없었다.
여하튼, 숲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길바닥에서 쓰러져 죽을 생각도 없다.
코노에는 우선 자신이 입고 있는 코트를 세심하게 확인했다.
딱히 찢어진 곳은 없다.
초목에 스쳤어도 무사했다는 것이다.
즉, 이 부근은 아직 『공허』에 침식되어 있지 않다.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고, 나무 밑동에 걸터앉았다.
숲 속을 스쳐지나는 바람은 차갑다. 코트를 입고 있어도 옷 너머로 추위가 스며든다.
귀 끝을 떨면서, 코노에는 한쪽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안았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기세 반으로 여기까지 와버렸지만, 의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단은 양의 달이 뜨면, 나무에 흠집을 내어 표시를 해두고서 나아가 볼 생각이었다.
그런 일을 해도 헛수고일지도 모르지만,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요괴──이 근처에서도 나오는 것일까.
카로우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숲으로 들어오기 전에 봤던, 그 횃불 같은 불꽃은 뭐였을까.
역시, 누군가가 숲에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일부러 심야에 숲으로 들어온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코노에는 어둠으로 빈틈없이 칠해진 나무숲을 바라본다.
흔들흔들 표류하는 것처럼 불타고 있었던, 그 불꽃.
딱 저런 식으로 떠 있었다.
저런 식으로──
「!?」
……불꽃이다.
눈의 착각도, 환영도 아니다.
확실히 전방에서 불꽃이 흔들리고 있다.
신경이 전율했다.
코노에는 즉시 몸을 굽혀, 경계하며 귀를 숙이고 낌새를 살펴보았다.
불꽃은 횃불과도 같았다.
장작을 움켜쥔 손이 어렴풋이 보인다.
고양이인가…… 아니면 요괴인가.
만일 고양이라 하더라도, 누구인 걸까.
횃불의 불꽃은 조용히 이동하고 있었다.
코노에는 불꽃의 움직임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가능하다면, 이대로 멀어져 갔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바람에 반하여 긴장은 고조되어 간다.
설마라고는 생각하지만──
다가오고 있다?
코노에와 불꽃 사이에는 그런대로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접근당한 것인가.
온몸의 털이 곤두서기 시작한다.
고양이인지 요괴인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맞서는 수밖엔 없나.
허리춤의 검으로 손을 뻗고서, 코노에는 움직임을 멈췄다.
나무숲을 빠져나오는 그 모습이 낯익은 듯한 기분이 든 것이다.
확실하게는 알 수 없지만, 긴 천을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노에의 뇌리에 어느 고양이의 모습이 스친다.
「아……」
눈 앞의 형체와 기억 속의 형체가 겹쳐진다.
거리가 가까워짐과 함께, 코노에는 확신한다.
역시──음유시인이다.
이번에는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무의식중에 꼬리를 좌우로 흔든다.
음유시인은 횃불을 손에 들고, 천천히 코노에 쪽으로 다가온다.
코노에는 경계하는 것도 잊고서 일어섰다.
잘 생각하면, 누구라 할지라도 심야의 숲에 있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나, 왜인지 그런 의문은 들지 않았다.
음유시인을 감싸는 공기에는 불가사의한 평온함이 있었다. 차분한 동작은 코노에에게 안도감을 준다.
이전에 만났을 때부터, 줄곧 신경이 쓰였다.
신원도 알 수 없는, 그렇지만 몹시도 이끌리는 존재.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음유시인의 공기를 접하면, 굉장히 애달픈 기분이 되는 것이다.
또 만났다.
그 생각만이, 지금의 코노에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코노에가 다가가려 했을 때, 음유시인은 발을 멈추고 악기를 지면에 내려놓았다.
숲이 수런거린다.
음유시인의 주위만, 숲의 어둠이 고요해진다.
「당신은, 대체……」
대답은 없이, 음유시인은 그저 입술로 미소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코노에는 봇물이 터진 듯이 의문을 입 밖에 내었다.
「어째서 숲에? 어떻게, 여기에 내가 있는 걸 안 거야. 우연인 거야? 당신은…… 누구인 거야」
역시 대답은 없다.
천에 가려진 눈가는 짙은 그림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그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음유시인은 등 뒤의 숲을 뒤돌아보고, 느긋한 몸짓으로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뭐야?」
음유시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뭔가 있는 건가, 그쪽에」
음유시인은 코노에에게 등을 지고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긴 천 자락이 희미하게 흔들린다.
꿈을 꾸는 느낌으로, 코노에는 눈을 가늘게 떴다.
노래 이외에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 고양이.
마치, 노래 이외는 필요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말로 불가사의했다.
음유시인이 다시금 어깨 너머로 돌아본다.
눈이 마주쳤다──실제로는 그림자에 가려져 알 수 없지만, 확실히 그렇게 느꼈다.
질문을 던지듯 바라보자, 음유시인은 얼굴을 돌리고 걷기 시작한다.
──따라오라는 것일까.
따라가도, 괜찮은 것일까.
코노에가 망설이는 사이에도, 음유시인은 걸어나간다.
……뭘 망설일 것이 있을까.
어차피 혼자다.
게다가 필시──음유시인은 적이 아니다.
따라가자.
코노에는 앞에 가는 등을 바라보며, 울창하게 우거진 밤의 숲을 걷기 시작했다.
그림자의 형체를 한 요괴가 덤벼들어 온다.
흔들리는 가지와 잎을 올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숲은 정말로 어두웠다.
풋내가 코에 닿는다.
온기가 솜털에 달라붙어서 불쾌했다.
음유시인과 횃불의 불꽃을 놓치지 않도록 뒤를 쫓는다.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음유시인은 허공에 떠있기라도 한 것처럼, 미끄럽게 나아간다.
어디선가 기묘한 신음소리가 울린다.
숲 전체가 숨을 죽이고, 코노에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음유시인은 유일한 이정표였다.
어둠과 수풀에 완전히 묻혔던 시야가 돌연 탁 트였다.
작은 공터 같은 장소가 나왔다. 안쪽에는 바위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 듯한 돌이 있다.
음유시인은 돌 옆에 다다르자, 코노에를 부르는 듯이 돌아본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간다.
거기에는 몇 개의 큰 돌이 있고, 키가 큰 풀이 우거져 있었다.
코노에의 체격이라면, 작게 웅크리면 틈새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코노에는 음유시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작은 끄덕임이 되돌아온다.
그러면 돼, 라는 것일 테지.
코노에는 자세를 낮추고, 돌의 틈새로 들어갔다.
안은 약간 따뜻해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옷 너머로도 선뜩함이 느껴졌다.
비어져 나온 꼬리와 삼베 자루를 끌어당겨, 다리 사이에 우겨넣는다.
좁고 어두운 장소는 마음이 가라앉아서 좋았다.
돌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고, 음유시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
코노에는 몸을 일으켜, 곧바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없다.
방금 전까지 확실히 있었던 음유시인이, 환영처럼 사라져 있었다.
「…………」
코노에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느릿느릿 하게 돌의 틈새로 다시 들어갔다.
뭐에 씌인 걸까──아니면, 꿈이라도 꾸고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코노에는 돌의 틈새에서 기어나갔다.
함정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수풀에 몸을 숨기고 기색을 살핀다. 그러나, 나무숲의 수런거림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돌의 틈새로 돌아가면서, 코노에는 곰곰히 생각한다.
의심은 들었지만, 역시 음유시인은 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숲에서 헤매는 자신을 일부러 인도해준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눈을 감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카로우의 광경이 되살아났다.
이 모습을 마을의 고양이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 무서운 것을 보는 듯한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욱신 하고 가슴에 아픔이 스친다.
정말로, 더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으니, 조금씩 졸음이 몰려왔다.
요즈음,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
몸이 노곤했다.
잠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어느샌가 코노에는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의 공기에 둘러싸여, 코노에는 눈을 떴다.
시야가 뿌연 색으로 가려져 있다.
의식이 또렷해짐과 함께, 그것이 안개라는 것을 깨달았다.
[ 미혹의 숲 ]
기대고 있던 돌에서 일어난다.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있던 탓에, 몸이 삐걱였다.
돌 틈새에서 기어나와, 크게 기지개를 켠다.
꼬리로 시선을 향하고는, 검게 변화한 색에 흠칫 놀란다.
환한 하늘 아래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팔과 다리의 반점도 확인한다.
검게 새겨진 반점은, 밤에 보았을 때보다도 한층 더 불길하게 보였다.
가볍게 문질러 보지만, 역시 지워지지 않는다.
귀도 분명 새카만 그대로일 것이다.
어찌할 수도 없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이제 와서 침울해져도 별 수 없다.
코노에는 코트와 옷의 소맷자락을 걷어올려, 털다듬기를 시작했다.
눈을 치뜨고 아침의 숲을 둘러본다.
하늘이 환해진 만큼, 밤과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털다듬기를 끝내자, 코노에는 삼베 자루를 손에 들고 일어섰다.
문득, 음유시인이 뇌리에 떠오른다.
아직까지도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다.
어젯밤의 이상한 느낌이 발을 질질 끄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코노에는 숲 속으로 걷기 시작했다.
숲은, 아침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공허』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코노에는 주기적으로 나무 줄기에 손톱으로 흔적을 남기며 걸었다.
양의 달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신중하게 숲을 나아간다.
시야가 환해서 밤보다는 나았지만, 어쩐지 으스스한 분위기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코노에는 도중에 발을 멈춰, 공기의 냄새를 맡았다.
온기와는 다른, 물의 냄새가 난다.
가까이에 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수풀을 헤치고 빠져나간 끝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나뭇잎이 몇 장 떠있지만, 물이 맑다.
샘물인 것 같았다.
급격한 갈증을 느껴, 코노에는 그 자리에 몸을 수그리고 얼굴을 박았다.
물은 살갗을 베이는 듯이 차가웠지만, 오히려 그 편이 기분 좋다.
질끈 눈을 감는다.
기세 좋게 얼굴을 든다. 물보라가 햇볕에 흩어졌다.
몇 번 머리를 털고서, 혀로 물을 떠마셨다.
마비될 듯한 차가움이 달콤하다.
다 마시고 나서 옷자락으로 얼굴을 훔치고, 나무 대롱의 내용물을 버리고 새 물을 긷는다.
신선한 물을 맛보았다는, 그것만으로도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일어서려 했을 때, 시야의 끝에 무언가 빛나는 것을 포착했다.
시선을 집중시킨다. 나무 밑동에 팔찌 같은 것이 떨어져 있다.
잘 닦인 듯, 햇빛을 반사하고 있다.
누군가가 떨어트리고 간 것일까.
이런 곳에?
반짝반짝 빛을 내는 팔찌는 몹시 예뻐서, 코노에는 기어가는 듯이 손을 뻗았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팔찌가 손 끝에 닿자마자, 충격이 스쳤다.
당황해서 손을 움츠렸지만, 심장이 찢어질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귓속에서 고동이 뜨겁게 맥박친다.
마치 안쪽에서부터 세게 내려쳐지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읏……」
코노에는 이를 악물고 웅크린다.
시야가 어질어질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흔들리는 느낌이 드는 것인지, 자신이 흔들리고 있는 것인지, 지면이 흔들리고 있는 것인지…… 판단이 되질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격렬한 고동은 그치지 않고, 헐떡이듯이 숨을 잇는다.
관자놀이를 타고 땀이 흘러내린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격렬한 감정에 닿아서, 완전하게 공감해버린 때와──
「크……윽」
이마를 지면에 문지른다.
시야와 마찬가지로 뒤흔들리는 사고에, 녹색의 색채가 떠오른다.
웅성대고 있다. 나아가고 있다?
점차로, 녹색의 색채는 숲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뇌리에서 멋대로 영상이 재생된다.
누군가의 시야를 빌리고 있는 듯한, 기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이것은, 자신의 기억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영상은 확실히 이 숲 속이었다.
소리까지는 들리지 않는다.
들리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귀울음에 뒤섞여 잘 알 수 없다.
가끔, 화면이 아래쪽으로 흔들려서 지면의 흙이 비친다.
어딘가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어디로 갈 생각인 걸까.
그러나, 그 사이에도 코노에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었다.
견디지 못하게 된 몸이, 삐걱삐걱 하고 비명을 지른다.
코노에의 정신에 동조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영상이 크게 흔들렸다.
「읏, 크악……」
거기서 녹색의 영상은 끊겼다.
눈을 뜬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코노에는 잠시 망연하게 있었다.
몸을 괴롭히는 고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지금 본 것은……꿈?
아니, 다르다.
꿈이 아니었다.
지금, 확실히 의식이 있었다.
숲이었다.
숲 속을 걸어가는 영상.
코노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나무 밑동에 떨어져 있던 팔찌를 보았다.
언뜻 보기엔 전혀 별다를 것 없는 팔찌다.
그러나, 손가락이 닿자마자 충격이 스치고, 그리고서…….
「보였구나, 그 녀석의 기억」
돌연,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노에는 바로 황급히 일어나, 그 자리에 낮게 몸을 숙였다.
주위의 나무숲으로 시선을 움직인다.
그러나, 짙은 녹색 이외에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딜 보는 거야. 완전 틀렸다고」
약간 높은 톤의 목소리는 웃음기가 섞여 있어, 사방으로 울려퍼진다.
어디에서 말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자신의 호흡조차도 시끄럽게 느껴져서, 코노에는 숨을 죽인다.
「여기라니까」
등 뒤에서 기다림을 못 견딘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코노에가 돌아보자 동시에, 그림자 하나가 뛰쳐나왔다.
그림자는 빙글 하고 허공에서 회전하고서, 코노에의 앞에 착지했다.
흩뜨려진 나뭇잎이 뒤에서부터 몇 장 내려앉는다.
코노에는 즉시 뒤쪽으로 물러섰다.
「아하하, 너무하네-. 그렇게 도망칠 것까진 없는데」
그림자의 정체는, 이상한 모습을 한 소년이었다.
투명하게 비칠 듯한 정도로 하얀 피부에 독특한 붉은 의상을 몸에 걸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다.
코노에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상대를 응시하며, 공기의 냄새를 맡았다.
소년으로부터 감돌아 오는 것은, 고양이의 냄새가 아니다.
게다가, 다리 사이에서 흔들리는 꼬리는 털이 없고 기묘한 광택을 띠고 있었다.
고양이가 아니다. 코노에는 한층 더 몸을 굳힌다.
소년은 양손을 뒤로 깍지끼고, 놀리는 듯이 가볍게 상체를 굽혔다.
「엄청 사리네. 리비카들은 다 그런 거야? 근데 걱정 안 해도, 아무것도 안 하니까 안심하라고」
「새카매진 고양이 씨」
「……!」
그 말에, 코노에는 꼬리부터 귀 끝까지 전율하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어째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소년이 알고 있는 것인가.
「……너, 대체 누구야」
코노에는 귀를 숙이고 소년을 노려봤다.
소년은 한 손을 허리에 대고, 다른 한 손을 가슴에 댔다.
「그러면, 먼저 자기소개부터. 나는 휘리. 앞으로 잘 부탁해. 뭐- 적인지 아군인지 묻는다면, 아군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네」
휘리라고 이름을 댄 소년이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어째서 날 알고 있지」
「어째서라고 생각해?」
짓궂은 태도에 화가 더해진다.
당장이라도 덤벼들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코노에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말해」
「아아, 무서워 무서워.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내가 왜 너를 알고있는지, 그런 거 어찌 되든 상관 없잖아」
휘리가 과장스레 어깨를 움츠린다.
「그치만 세상은 넓으니까 말야. 나는 너한테 있어선, 아무리 봐도 수상한 녀석. 그렇겠지?」
「…………」
「그럼, 수상쩍은 내가 널 알고 있다고 해봤자, 이상한 것도 아무것도 아냐. 틀려?」
「……닥쳐」
듣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다.
코노에는 날카로운 손톱을 세운 손가락 끝에 힘을 싣는다.
검이 아니라, 직접 이 손으로 찢어발기고 싶다.
코노에의 살기를 알아차린 것인지, 휘리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오오 겁 나라. 그런 것보다도 말야, 좀 더 알고 싶은 게 있는 거 아냐? 예를 들면, 방금 전의 팔찌라든지」
──팔찌.
코노에의 얼굴색이 변한 것을 보고, 휘리는 의기양양한 듯이 웃었다.
지면을 차고 높게 뛰어올라, 코노에의 키보다 조금 높은 가지에 앉는다.
「신경 쓰이겠지? 그 팔찌…… 그걸 만지니까 이상한 게 보였으니까」
휘리가 팔찌를 턱으로 가리킨다.
「벌써 눈치 챘는지도 모르겠지만, 네가 본 건 기억…… 그 녀석의 기억이야」
「……기억?」
「그래. 팔찌의」
휘리가 나무 위에서 무언가를 던졌다.
떨어진 것은 펜던트였다.
치밀한 장식이 달려있지만, 꽤나 오래된 것이다.
「만져보라구」
휘리가 느릿하게 발을 앞뒤로 움직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만져보라니깐. 아니면 무서운 거야? 그럼 관둬. 별로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도발하는 거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화가 난다. 코노에는 반은 기세로 펜던트에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닿자마자, 두근, 하고 심장이 맥박친다.
「……앗……!」
또, 다.
팔찌를 만졌을 때와 똑같은 감각.
심장의 폭주와 달아오르는 몸, 두통.
서 있을 수 없게 되어서, 코노에는 지면에 무릎을 꿇는다.
머릿속에서, 기억의 자동 재생이 시작된다.
영상은 어딘가에 있는 방 같았지만, 어둑해서 분명하지는 않다.
인정사정없이 화면이 흔들린다.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돌연, 화면을 그림자가 덮는다.
호흡이 괴로워진다.
숨을 쉴 수 없다.
「……윽, 으, 큭……」
코노에는 이를 악물고 견뎠다.
날카로운 귀울음과 함께 사고가 하얗게 마비된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기 직전, 강렬한 일념이 사고를 관통했다.
──죽는다.
「…………크윽!!」
눈이 크게 떠졌다.
땀투성이가 된 손으로 펜던트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거친 숨에 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코노에는 머리 위로 시선을 돌렸다.
희미하게 미소를 띤 휘리가 코노에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보였어?」
휘리가 가지에서 뛰어내린다.
「그 펜던트는 말이지, 어느 소녀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거야. 그렇지만 어느 날, 소녀는 집에 침입해 들어온 강도에게 살해당했지」
「펜던트는 소녀의 가슴에서 흔들리면서 보고 있었어. 소녀의 목숨이 짓뭉개질 때까지의, 자초지종을 말야. 너는 그 일부분을 공유해서, 슬쩍 훔쳐본 거지」
살해당한 소녀의 기억.
목을 틀어막는 숨막힘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코노에는 눈썹을 찌푸렸다.
사물을 만지는 것으로, 사물 그 자체의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인가.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런 일……, 한번도 없었어」
게다가, 사물의 기억이 보여봤자 대체 어떤 소용이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타자의 감정에 공감한다는 불가해한 체질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물의 기억을 볼 때의 충격은, 감정에 공감하는 때와 거의 똑같았다.
이 이상, 부담이 될 만한 것은 필요 없다.
휘리는 그런 코노에를 비웃는 듯이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그야 당연하다고? 그러니까 그건, 네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힘이란 말야」
「힘?」
「그래. 불가항력이라는 거. 애당초, 네 희망으로 이러니저러니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란 말이지. 다만……」
휘리는 코노에를 중심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걷기 시작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매끈매끈한 꼬리가 흔들거린다.
「만지면 뭐든지 간에 다 알 수 있다는 게 아냐. 기억을 볼 수 있는 건, 그 나름의 마음과 세월이 쌓인 것 뿐이야. 게다가, 보는 게 싫다면 의식하지 않도록 하면 돼. 즉」
거기서 휘리는 멈춰 서서, 도발하는 듯한 눈으로 코노에를 응시했다.
「다른 녀석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등의 솜털이 거꾸로 쓰다듬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물건의 기억을 읽어내는 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 물론, 우연히 그렇게 된 건 아냐. 네 몸도, 이것도 저것도 말야」
「……무슨 의미지」
「무슨 의미일까나」
휘리가 어깨를 으쓱한다.
「까불지 마. 넌 뭘, 어디까지 알고 있지. 전부 말해」
「싫은 걸. 가르쳐줘 버리면 재미 없잖아? 그러니까, 인생은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편이 즐거운 거니까」
「……윽」
「너희들이 무-지 좋아하는 선조, 『두 지팡이』였나. 그 녀석들도 그랬잖아? 고민하거나, 괴로워하거나 하기 위해서 굳이 위험한 곳으로 가거나, 싸움을 일으켰던 거 아냐?」
「지금의 넌 의문투성이지. 난처한데다, 어떻게 해야 좋을 지 알 수 없어. 그렇지만,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발버둥쳐 보라고. 그걸 보고 있는 분이 계시다」
「……보고 있어?」
「그래. 보고 있단 말야. 네 녀석을, 줄-곧」
──누군가가, 보고 있다.
오싹 했다.
「이것은 하나의 시련.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아」
「시련?」
「그래. 시련이다. 있는 힘껏 그분을 즐겁게 해보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뿐이다」
「무슨 말이야, ……어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휘리는 땅을 차고, 뒤쪽의 가지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한쪽 손을 가슴에 대고, 연극 같은 동작으로 천천히 머리를 숙인다.
「나는 개연하는 무대의 막을 올리러 온 거야. 코노에, 앞으로 자-알 부탁해. 그럼」
「거기 서! ……!?」
코노에도 뒤를 쫓아 나무에 뛰어올라가려 한다. 그러나, 휘리의 몸이 공중에 뜬다.
휘리는 우아하게 회전하고서, 꼬리를 둥글게 말고──그대로 사라졌다.
마치 공기에 녹아든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감각으로, 코노에는 휘리가 서 있던 가지를 바라봤다. 가지는 휘청휘청 하고 흔들리고 있다.
──코노에.
마지막에 그렇게 불렸다.
이름까지 알고 있는 것이다.
상대는 자신을 알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에 관해, 뒤에서 손을 쓰는 누군가가 있는 것인가.
화가 부글부글 치밀어 온다.
그분을 즐겁게 해?
웃기지 마.
어째서 자신이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있는가.
무엇을 위해서. 왜──
코노에는 이를 악물고, 지면에 있는 힘껏 손톱을 세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에 내몰려, 앉지도 서지도 못하게 된다.
팔을 치켜들어, 주변의 나무를 손톱으로 엉망진창 긁어댔다.
모조리,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젠장」
손톱이 줄기를 도려낼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무함이 가슴에 번져갔다.
그런 허무함마저 찢어내듯이, 코노에는 난폭하게 날뛰었다.
줄기에 몇 개고 상처를 내고, 잎을 찢었다.
한바탕 날뛰고 나서, 코노에는 가까스로 움직임을 멈췄다.
거친 호흡을 반복하면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충동은 가라앉았지만, 격렬한 자기혐오가 엄습하고 있었다.
날뛰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찌할 수도 없다.
다만, 용서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우연이라면, 차라리 체념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이 절망적인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그 휘리라는 소년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제 3자가 엮여있다는 것만은 알겠다.
이때까지──고향을 버리고 죽을 각오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설령 상대가 어떤 녀석이라 해도 용서할 수 없었다.
코노에는 작게 숨을 내쉬고, 양 손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혹사시킨 탓에 손톱이 여기저기 흠져 있었다.
위로하듯이 손등부터 손가락 끝에 걸쳐서 혀를 놀린다.
핥아내면서, 코노에는 방금 전 날뛰던 때에 느낀 허무함을 떠올렸다.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분노를 끓어오르게 한다고 해도, 무엇도 변하지는 않는다.
이대로 사는 것 이외에, 길은 없다.
그것은, 체념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
아니, 조금 전의 자신이라면 확실히 「체념」으로서 같은 것을 생각했겠지.
그러나, 코노에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자신을 이런 상황에 빠트린 자의 정체를 밝혀내고 싶다.
밝혀내서, 손톱과 이빨로 갈기갈기 찢어주고 싶다.
그러니까, 나아가는 수 밖에는 없다.
──질까보냐.
자신의 안에서 새로운 불이 켜진 것을 느끼며, 코노에는 천천히 일어섰다.
시선을 방금 전의 펜던트로 돌린다.
체인 부분을 집고, 눈높이까지 들어올려 바라본다.
그 기억을 본 후인 까닭에 매몰차게 다루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팔찌의 옆에, 가만히 펜던트를 내려놓는다.
펜던트에서 팔찌로 시선을 옮긴다.
팔찌의 기억에 닿았을 때, 고통 속에서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다.
기척은 새로운 것이었다. 최근 이 부근을 통과한 자가 있는지도 모른다.
팔찌는 버려지고서 그렇게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만져볼까.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그것은, 그 고통을 다시금 맛보는 것이기도 하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귀가 절로 숙여지지만, 무언가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망설임 끝에, 작게 숨을 삼킨다. 코노에는 마음을 정하고 팔찌로 손을 뻗었다.
희미하게 떨리는 손 끝이, 딱딱한 표면에 닿는다.
두근, 하고 심장이 크게 울린다.
다시, 그 극심한 고통의 소용돌이로, 휩쓸려 간다.
「……윽, ……」
나무 줄기에 손을 대어 몸을 지탱하며, 코노에는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영상에 의식을 집중했다.
조각조각 흩어진 흐릿한 녹색의 빛이, 조금씩 또렷한 상을 맺기 시작한다.
옷 같은 것이 가장자리에 비친다.
이 기운…… 역시, 고양이다.
이동 중인 것이다.
이윽고 영상의 정면에 작은 물웅덩이가 나타났다.
──지금 코노에가 있는 장소다.
영상은 얼마 동안, 커다란 자루 속을 들어갔다 나갔다 했다.
잘 보이지 않지만, 뭔가 물건이 잔뜩 들어 찬 자루인 것 같았다.
자루 속을 몇 번 왕복하고서는, 영상이 강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다음으로 비친 것은 지면이었다.
순간, 지면에 코트의 자락 같은 것이 보인다.
그 뒤를 좇으려 했지만, 기억은 거기서 툭 하고 끊어졌다.
팔찌에서 손을 뗀다.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코노에는 숨을 내쉬었다.
고개을 들어, 물웅덩이 쪽을 돌아본다.
팔찌의 주인은, 아무래도 저쪽 방향으로 간 듯하다.
──가볼까.
코노에는 삼베 자루를 다시 끌어안고, 양의 달의 위치를 확인하고서 걷기 시작했다.
나무숲에 발을 들인다. 거기서부터 앞쪽은 계속 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마치 미로 같다.
양의 달은 구름을 붉게 물들이며 가라앉아, 하늘에는 창백한 음의 달이 떠 있었다.
밤이 되자, 몇 번이고 같은 장소를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불안해졌다.
헤매면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다──그 의미를 실감한다.
『공허』에도 주의하며 신중하게 걷고 있자, 전방에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줄기가 다른 나무들보다 두껍고, 뿌리가 울툭불툭 땅 위로 튀어나와 있다. 기대기에는 딱 좋을 것 같다.
낮 동안의 피로감이 꼬리를 질질 끌고 있어서, 슬슬 쉴까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도 있었지만, 오늘밤은 이 커다란 나무의 밑동에서 자기로 결정했다.
다가가서, 몸을 감추듯이 주저앉는다.
쌀쌀한 밤 공기를 실컷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는다.
켜켜이 쌓인 정적에 귀를 기울이니, 기묘한 울음과 소리가 들려왔다.
발치에서는 온기를 강하게 띤 흙 냄새가 올라온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계속 귀를 기울여 주위의 기색을 살피며, 코노에는 아침이 올 때까지의 시간 동안 얕게 눈을 붙였다.
숲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
눈을 뜨자, 몸이 끼웃 하고 삐걱인다.
무리하게 몸을 움츠리고 있던 탓에 잔 것 같지가 않다.
나무 밑동에서 천천히 일어선다.
희미하게 두통이 일었지만, 뿌리치듯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양 팔과 귀, 꼬리의 털다듬기를 재빠르게 마친다.
삼베 자루에서 나무 대롱을 꺼내들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건조시킨 풀뿌리를 먹었다.
갈증은 있었지만, 공복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하고 있는 탓이겠지.
양의 달의 위치를 확인하고서, 코노에는 안개가 자욱이 낀 아침의 숲 속을 신중하게 걷기 시작했다.
란센까지, 앞으로 얼마 정도 걸리는 것일까.
그리고, 카로우의 추격자는 숲에 들어와 있는 것일까.
그런 불안을 머릿속 한쪽 구석에 품으며, 여하튼 움직인다.
오늘도 나무 줄기에 손톱으로 마킹을 하며 걷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양의 달은 어느 사이엔가 머리 위에 떠올라 있었다.
작게 숨을 내쉬고, 발을 멈춘다.
문득 기척을 느끼고, 코노에는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다.
가지를 딛는 소리, 옷이 스치는 소리.
공기가 희미한 진동을 전한다.
두 마리, 세 마리, 아니──그 이상인가.
필시, 포위되어 있다.
이쪽의 기색을 살피고 있다.
강도인가.
복수의 거친 호흡이 나무숲에 포개어져 울려퍼졌다.
코노에는 허리의 검으로 손을 뻗어, 자세를 낮추었다.
나무에 등을 바싹 댄다.
「헤헤헤……」
짙은 녹색의 틈으로 복수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 중에서도 유독 커다란 그림자가 몸을 흔들고 웃었다.
「이런 숲 속에까지, 애송이가 무슨 용건인가? 위험하다고, 수컷이든 암컷이든, 혼자 여행하는 건」
그 말에 연동하듯이, 주위의 그림자가 일제히 웃음 소리를 낸다.
천박한 소리가 초목을 뒤흔든다.
그림자의 무리를 노려보며, 코노에는 머리를 굴린다.
대충 봐서는 열 마리 정도인가.
일일이 상대했다가는, 이쪽이 버틸 수 없게 된다.
그림자는 모두 몸집이 커서, 민첩함으로는 이쪽이 유리할 것 같았다.
달려서 빠져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거기서, 코노에는 눈 앞의 광경에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나무숲에 숨은 그림자들이, 서서히 다가온다.
「……!?」
에워싸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고, 코노에는 숨을 삼켰다.
「쫄아서 목소리도 안 나오는 거냐. 헤헤헤……」
그것은, 확실히 강도 고양이들이었다.
어깨를 크게 부풀리고, 눈을 번뜩이며 웃고 있다.
그렇지만, 무언가가 이상하다.
뭔가……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열기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금세 전신의 털이 부풀어 오른다.
오싹 하고 오한이 스쳐지나갔다.
위험하다.
공감의 전조다.
자제하는 것보다도 먼저 흘러들어온 감정의 일부분이, 코노에의 심장을 스륵 어루만졌다.
마치──뱀의 혀처럼.
「……윽, 크으……!」
그 순간, 사나운 감정의 분류(奔流)가 자제의 벽을 뚫고,
가슴으로 밀려들어왔다.
이를 악물고, 무릎을 꺾는다.
「……아, ……크흑!」
이대로 숨이 멎어 죽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감정의 고조였다.
──아니, 다르다.
역시 이상하다.
안구의 안쪽에서 몇 개의 불빛이 튀고는, 사라져간다.
강렬한 망상, 선명한 영상.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증오의 얼굴이 허물어져,
한 데 섞여, 비스듬하게 일그러진다.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간다.
강도들이 천박한 웃음을 흘리며,
쓰러진 코노에를 둘러싼다.
흘러들어 오는 감정의 농도도 짙어져, 사고가 격렬한 점멸을 반복한다.
그때, 문득 어떤 형체가 코노에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좌우로 구불구불 나아가는, 매끈매끈한 궤적.
윤기를 띤 비늘. 그것은, 뱀이다.
꿈에 나왔던, 그──녹색의 뱀.
그것이 어째서인지 지금, 다시 생각난 것이다.
동시에,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강도들에게는, 뭔가가 있다.
그러나, 거기서 사고는 중단됐다.
「으아아아아아!!!」
강도 중 하나가 도끼를 치켜들고, 코노에에게 덤벼든다.
순간적으로 옆으로 굴러, 일격을 피한다.
지면에 도끼가 꽂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또 한번 등 뒤에서 일격이 내려쳐져 황급히 일어난다.
꼬리의 털을 미미하게 잘라내고, 도끼가 지면에 처박힌다.
덩치가 큰 고양이들의 틈새를 시선으로 확인한다. 생각할 여유도 없이, 코노에는 달리기 시작한다.
뛰어들어 가듯이 굴러서 강도의 포위에서 빠져나온다.
사냥감이 사라졌다는 것을 안 강도들은, 느릿느릿 하게 몸을 흔들며 코노에 쪽을 돌아본다.
한층 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겹겹이 겹쳐진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가 땅을 긴다.
「……윽……」
가슴이 짓눌러져 으깨질 것처럼 괴롭다.
어마어마한 분노의 감정에, 몸이 산산조각 나버릴 것 같다.
머릿속 한편에선, 혀를 내민 뱀이 웃으며 몸을 구불대고 있다.
무릎이 고꾸라질 듯한 것을 필사적으로 견딘다. 이대로라면,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고통을 참으며, 코노에는 강도들을 따돌리기 위해 뛰기 시작한다.
시야를 가로지르는 거칠게 깎인 돌칼을 피하고, 꼬리를 잡으려는 수고양이의 턱을 발꿈치로 걷어찬다.
신음과 성난 포효를 등 뒤로, 코노에는 오로지 달렸다.
어디를 달리고 있는 것인가, 양의 달은 어느 각도에 있는가, 그런 걸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강도들은 어디까지고 쫓아온다.
심장이 찢어질 듯이 세차게 빠르게 고동친다.
그에 더해, 강도들의 분노에 공감하는 가슴이 찌르듯이 아프다.
민첩함으로 말하면 코노에 쪽이 위다.
그럼에도 따돌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탓도 있었다.
생각만큼 힘이 나오지 않는다.
공격을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앗!」
돌연, 몸이 뒤로 이끌린다.
꼬리를 잡혔다.
어떻게든 빠져나왔지만, 바로 뒤에서 거친 숨이 들려왔다.
확실히 달리는 속도가 떨어져가고 있다.
오른쪽 팔에 희미한 아츰을 느꼈다.
등 뒤로 다가온 고양이의 손톱이 스친 것이다.
상대는 코노에를 붙잡을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인지, 양 손의 손톱을 계속해서 무턱대고 뻗어왔다.
아슬아슬하게 피하지만, 점점 숨이 달리기 시작한다. 검을 빼들 여유 따위 없다.
몇 번 공격을 빠져나가, 타이밍을 가늠한다.
상대 고양이의 팔의 움직임이 끝났을 때의 희미한 틈을 노린다.
오른쪽 다리를 축으로 해서 상체를 비틀어, 그 기세를 타고 오른손의 손톱을 뻗었다.
「크아악!」
고통스러운 소리와 함께, 상대 고양이의 얼굴에서 새빨간 핏방울이 뿜어져 나온다.
코노에의 다섯 손가락이 눈부터 코에 걸쳐 썩둑 하고 파고들어, 살을 찢었다.
얼굴을 가린 고양이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다른 고양이가 다가와 있었다.
코노에는 오른손에 피의 흔적을 묻히고, 질주한다.
다리의 근육이 삐걱이며, 아픔을 호소한다.
이제는 몸의 어디가 아픈 건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달렸다.
조급한 호흡이 귓속에 부딪쳐 울린다.
뺨을 가르는 바람조차, 점차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발치가 비틀거려, 세차게 지면을 딛는다.
그때, 심장에 날카로운 아픔이 스쳐 지나갔다.
「……크윽」
완전히 제어하지 못해, 발이 엉켰다.
불거져 나온 나무 뿌리에 채여서, 몸이 비스듬히 기울어진다.
다시 일어서려 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로 곁의 숨소리.
등 뒤가 아닌──옆에서였다.
나무숲에서부터 강도 고양이가 다가왔다.
그 입가가, 사냥감을 찾아냈다는 생각에 미소로 일그러진다.
강도 고양이가 돌도끼를 쳐든, 그때.
「어엇!?」
순간적으로 그림자가 스치더니, 강도가 바람에 날아가듯이 쓰러졌다.
엇갈리는 그 순간은,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캬아아아악!!!」
「으아아악!?」
잇따라서, 비명이 공기를 가른다.
코노에는 발을 멈추고 돌아본다.
등 뒤에 있던 강도 고양이가, 흰자를 드러내고 쓰러져 있었다.
입에서는 피의 거품이 뿜어져 나와, 경련하고 있다.
잘 보면, 목에는 싹둑 하고 일직선의 붉은 선이 새겨져 있었다.
또 하나, 방금 옆에서 코노에에게 똑바로 덤벼들려 했던 고양이는──
그 몸이 긴 검에 꿰뚫려 있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몸으로부터 솟아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무방비한 모습으로.
혀가 늘어진 입가에서, 갑작스레 한 줄기의 피가 방울져 떨어진다.
「…………」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망연하게 그 자리에 박혀있는 코노에의 앞에, 낯선 고양이의 등이 있었다. 강도들과는 다르다.
순백색처럼도 보이는, 긴 은색의 머리칼.
둥그스름한 약간 작은 귀와 폭이 넓은 꼬리는, 대형종의 혈통에서 전해져 오는 것이다.
양 손에 쥔 검, 그 가운데 한쪽은 강도의 몸에 묻혀 있다.
은발의 고양이는 검을 뽑아내 피를 털어내고, 느긋하게 돌아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코노에를 꿰뚫는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은발의 고양이는 애꾸눈으로, 다른 한쪽의 눈에는 안대가 쓰여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눈동자는 하나뿐이었지만, 그것은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비치며, 강렬하고 고요한 빛을 담아내고 있었다.
순간, 경계하는 것을 잊는다.
지나가는 바람에, 은백색 머리칼이 희미하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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