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부는 아사토 루트랑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아예 아사토 루트를 미리 긁어다가 놓고 대조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참 말도 안 되는 오탈자들이 많이 있었네요...^^;
※ 번역 초고입니다. 오탈자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발견하시면 아낌없이 지적해주세요.
감은 눈꺼풀 너머로, 주위가 밝아진 것이 느껴진다.
조금씩 눈을 뜬다. 시야에 비치는 것은 푸른빛이었다.
울창하게 우거진 신록이다.
뒤늦게 흙과 풀의 냄새를 맡는다.
어렴풋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린다. 다음으로 포착한 것은 잘 알고 있는, 감청색의 눈동자였다.
「코노에……?」
「……아사토」
「괜찮아?」
굉장히 걱정스러운 듯한 얼굴로, 아사토가 들여다본다.
그로 인해 처음으로, 자신이 위를 향한 채로 누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공터의 중앙, 빛이 겹쳐진 풀숲에 코노에는 가로누워 있었다.
손발이 무겁고, 약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몸이 삐걱인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다.
「정신이 든 건가」
수풀을 흔드는 소리와 함께 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체, 무슨 일이」
「갑자기 쓰러졌었어」
「……쓰러져?」
「많이 괴로워하고 있었어」
「…………」
가까스로 작동하기 시작한 머리로 생각한다.
──꿈이었던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터무니없는 피로감은 무엇인가.
손은 무의식적으로 배 부근을 더듬고 있었다.
악마들, 닥쳐왔던 고통, 충격…… 지금도 여운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어이」
돌연, 코노에를 보는 라이의 표정이 험악한 것으로 바뀌었다.
시선이 귀에서 꼬리로 재빠르게 옮겨가고, 팔을 강하게 붙잡힌다.
「큭……」
「……어떻게 된 거냐」
라이의 말에 이끌리듯이 팔을 본 아사토도, 눈썹을 찡그린다.
「반점이, 없어졌어」
그 말에, 코노에는 곧바로 팔을 본다.
「아……」
──없다.
검은 반점이 사라져 있다.
역시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귀와 꼬리는?
시야에 들어오는 위치까지 꼬리를 치켜올린다.
경종을 울리는 심장이 크게 날뛰었다.
「……돌아왔어……」
꼬리가, 본래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대답을 구하듯이 아사토와 라이를 본다.
「귀도, 돌아와 있는 건가?」
「아아」
「…………」
믿을 수 없는 마음에, 잠시 망연히 꼬리를 바라보았다.
선단을 움직여 본다.
확실히, 자신의 것이다.
꿈이 아니다.
그런데도, 너무나도 갑작스러워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은 놀라움만으로, 기쁘다거나 안심했다거나, 그런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도 계속 꿈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든다.
「저주가 사라졌다는 건가?」
「그건……」
불가사의한 체험을 이야기하려 하다, 코노에는 움찔 하고 귀를 떨었다.
격렬한 오한이 스친다.
아사토도 라이도 귀를 세우고, 주위의 소리를 살핀다.
이 기운──
상공에 검은 불꽃이 나타났다.
불꽃은 높게 타오르고, 이윽고 하나의 그림자를 형성했다.
묵직한 피륙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나타난 형체에, 코노에는 이빨을 드러내고 낮게 으르렁댔다.
「리크스……!」
「호오. 무사히 악마들의 어둠을 빠져나간 건가」
「무슨 말이냐……!」
「이도 저도 아니다. 녀석들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리크스가 손을 내뻗는다.
공터를 에워싼 네 개의 바위에 불꽃이 일었다.
적색, 청색, 황색, 녹색.
뱀과 똑같은──악마와 똑같은 색의 불꽃.
사색의 불꽃이 타오르고, 그 안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흔들렸다.
──설마.
코노에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뜬다.
베르그, 프라우드, 카르츠, 라젤이, 제각각의 불꽃이 인 바위 앞에 나타났다.
라이도 아사토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악마들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다.
악마와 리크스가 나란히 서서, 코노에들을 둘러싼다. 불길한 공기가 공터를 자욱이 메웠다.
「아주 먼 옛날, 이 장소에는 마력(魔力)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완전히 시들어 버렸지만」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이야기하고, 리크스는 네 마리의 악마들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결국, 누구의 손으로도 떨어지지 않은 건가. 유감이로군. 악마로서 경외되는 너희들의 힘도, 이 정도인 것인가」
프라우드가 어깨를 움츠린다.
「변명은 하지 않는다고」
「당연하다」
「저 고양이가 그만큼 흔들림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라는 것도 된다」
라젤이 도전적으로 고개를 기울인다.
리크스는 라젤을 흘낏 보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보상으로 너희들의 힘, 내가 받겠다」
「뭣……!」
악마들의 낯빛이 변한다.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 없다」
「이건 계약이다. 실컷 자신의 실패를 개탄하라고」
「횡포로군」
「훗훗」
리크스가 다시 팔을 내뻗는다.
「내버려둘까 보냐, ……크앗!」
베르그가 빛을 휘감은 손을 내리쳤다.
빛은 번개와 같이 공기를 찢고, 리크스를 향해 질주한다.
그러나, 리크스에게 도달하기 직전에 빛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둘러져 있기라도 한 듯이.
「……젠장」
「헛수고다」
리크스가 내뻗은 손을 천천히 움켜쥔다.
악마들의 등 뒤에서 일렁이고 있던 사색의 불꽃이, 끌어당겨지듯이 흔들렸다.
「……당신과는 오래 전부터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우연이로군. 나도 그렇다」
악마들이 괴로운 듯이 얼굴을 찌푸린다.
사색의 불꽃은 그 끝을 리크스 쪽으로 나부끼고, 조금씩 빨려들어 간다.
코노에들은 그저 망연히 보고 있을 수밖엔 없다.
「……윽」
카르츠가 눈을 감고, 견뎌낼 수 없다는 듯한 기색으로 무릎을 꿇었다.
다른 악마들도, 차례로 몸을 구부린다.
리크스의 곁으로 모여든 사색의 불꽃은 작은 구체가 되어, 그 손 안으로 들어갔다.
확인하듯이, 리크스가 구체를 움켜쥔다.
「받아들였다」
「……큭, 이, 자식……」
괴로운 듯이 숨을 쉬는 악마들의 모습이 투명해져 간다.
「처음부터, 그걸 목적으로……」
「글쎄. 목적이라고 한다면, 확실히 그 중 하나일 것 같군. 지금은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설령 너희들 중 누군가가 그 고양이를 타락시켰다고 해도, 문제는 없었다」
「……우리들은 이용당했다는 건가」
「듣기에 좋지 않군」
리크스가 깔보는 듯이 고개를 기울인다.
「그럼, 미안하지만 너희들의 용무는 끝이다. 슬슬 사라져 주시지」
리크스가, 불꽃의 구체를 움켜쥔 주먹을 가슴께로 끌어당긴다.
다시금 그 손을 펼치자, 구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순간, 투명해졌던 악마들의 몸이 흐늘흐늘 하고 기묘하게 일그러지고, 순식간에 새하얀 재로 변했다.
재는 눈처럼, 망연해진 코노에들의 위로 쏟아져 내린다.
하늘에 시선을 둔 채, 라이가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괴물인가」
리크스가 흩날리는 재를 손바닥으로 받아 움켜쥔다.
가면의 얼굴이, 눈 아래 쪽을 향했다.
「……큭」
위압감을 느끼고, 코노에가 이를 악문다.
압도적인 힘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공기로 전해져 온다.
「……대체 뭐가 목적이야. 나하고 악마하고, 무슨 관계가 있지」
코노에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리크스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너는 꽤나 날 즐겁게 해줄 것 같다. 딱 하나, 충고해두지」
「너와 깊게 관계되는 자는 결국,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
「……!? 무슨 말이지」
「글쎄. 그럼, 다음에 만날 때까지 잠시 안녕이다」
목 안쪽으로 낮게 웃고, 리크스는 두르고 있던 천을 크게 펼쳤다.
천이 바람에 나부끼고, 리크스의 모습이 검은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진다.
「거기 서!」
외침과 동시에 몸을 웅크리고, 코노에는 높이 도약한다.
몸의 통증도 피로도 어딘가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팔을 뻗어보지만, 리크스의 그림자는 검은 구체가 되어, 한층 더 높이 떠오른다.
그대로, 밤으로 변하기 시작한 하늘에 녹아든다.
「……제길」
사냥감을 붙잡지 못하고, 코노에는 풀숲에 착지한다.
라이와 아사토가 달려온다.
「빨리도 내빼는 녀석이로군」
코노에는 리크스가 사라진 하늘을 올려보았다.
리크스가 남기고 간 말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돈다.
너는 꽤나 날 즐겁게 해줄 것 같다.──그렇게 말했다.
「……이걸로, 끝날 리가 없어」
낮게 중얼거리고, 손을 꽉 쥔다.
그렇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저주가 풀리고, 악마들도 리크스도 사라졌다.
뒤에 남은 것은 기쁨도 안도도 아닌, 납득이 되지 않는 허무함이었다.
문득 시선을 느끼고 돌아본다.
라이가 험악한 표정으로 코노에를 보고 있었다.
「의식을 잃고 있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
「왜, 저주가 풀렸지. 말해」
저주가, 풀렸다?
팔을 본다.
반점은 없다.
꼬리도 귀도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정말로, 저주가 풀린 건가?」
라이가 의아한 얼굴을 한다.
코노에는 의문을 품는다. 겉모습이 원래대로 돌아간 것뿐이 아닐까.
상대는 그 리크스다.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것은 꿈이 아닐까.
어쩌면, 내일이면 돌아오는 게 아닐까.
어쩌면, 어쩌면──
갑자기 무서워졌다.
격렬한 초조와 불안에 내몰린다.
저주가 풀렸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지?
현기증이 났다.
무엇을 믿어야 좋을지 알 수 없다.
차단하고 있었던 자기자신의 감정이 한꺼번에 흘러 넘친다.
매달리듯이, 눈앞에 있는 라이의 양 팔을 붙잡았다.
「어이……」
「저주가 풀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지? 확실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아직, 풀리지 않은 채인지도 몰라」
「그런 거,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는 거야. 넌 알고 있는 거야? 어떻게 하면……」
「코노에」
어깨에 따뜻한 것이 닿았다.
아사토의 손이다.
「오늘은 쉬고, 내일 다시 생각하면 돼. 이 장소는, 좋지 않아. 이동하는 게 좋아」
시선을 돌린다. 온화한 푸른 눈동자가 있었다.
파도치던 감정이 가라앉아 간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진정해.
지금은 마음이 흥분됐을 뿐이다.
진정해──
「……미안」
세게 움켜쥐고 있던 라이의 팔을 놓고, 자기혐오에 내몰려 고개를 숙인다.
라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오늘밤은 이 숲에서 보낸다. 날이 밝으면 란센으로 돌아간다」
「……또, 거리 한복판에서 습격당하거나 하면」
「거기서 어정어정 나돌아다닐 생각이냐. 리크스가 말 하는 걸 봐서는, 곧바로 싸움을 걸어오지는 않겠지」
「그래도」
「지금도 죽이려 마음 먹으면 죽일 수 있었을 거다. 녀석에겐 녀석의 계획이 있어. ……정말 맘에 안 드는 걸로 말야」
확실히, 말 그대로인지도 모른다.
악마들이 지극히 간단하게 없어진 것이다.
리크스로서는, 자신들 따위는 하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리크스의 의도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만뒀다.
지금은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알았어」
공터를 나오기 전에, 코노에는 네 개의 바위를 올려다보았다.
빛의 반사는 양의 달이 저물어감에 따라,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네 개의 바위는 침묵하고 있다.
낮에는 그토록 환상적이었는데, 지금은 더없이 초라하게 보인다.
악마들이 태어났다고 하는, 마력이 고갈되어버린 장소.
──그들은 정말로 소멸한 것일까.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마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손이, 뻗어 온다.
붙잡힐 것 같아, 곧바로 몸을 돌려 피한다.
그럼에도, 수없이 손이 뻗어 온다.
어둠 속, 어디가 지면인지도 알 수 없다. 코노에는 오로지 달리고, 피한다.
잘 보니, 손은 이곳저곳 상처투성이에 피부가 헐고, 거무튀튀하게 색이 바래, 뼈가 노출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시선으로 팔을 더듬어 가니, 비통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눈물에 젖은 뺨은 거무스름한 빛을 띠고, 입을 열고 매달리듯이 뒤쫓아온다.
「……윽!」
등골이 얼어붙는 느낌에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돌연, 꼬리가 붙잡혔다.
충격이 스쳐, 그만 소리를 지를 것 같다.
몹시도 미끈미끈하고 차가운 감촉이었다.
끌어당기는 힘이 점차로 강해진다.
어떻게든 벋디디어 서면서 뒤를 돌아보고, 코노에는 숨을 삼켰다.
네 마리의 악마들이, 코노에의 꼬리를 붙잡고 있었다.
모두 똑같이 엷은 미소를 띄우고, 눈을 어둡게 번뜩이고 있다.
압도될 듯한 박력도 위엄도 없다.
모조품처럼 똑같은 얼굴로, 웃고 있다.
「……, ……이거 놔!」
정체불명의 공포를 느끼고, 날뛰었다.
그런데도, 꼬리를 붙든 손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갗을 파고들어 온다.
마치, 뱀처럼.
──갈기갈기 찢어진다.
꼬리 밑동에서 몸 안쪽으로 삐걱삐걱 하고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프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무엇보다 무서웠다.
꼬리가 떨어져 나간다면, 다음으론 몸이 찢어발겨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느낌이 들어,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갑자기,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어둠 속에 빛은 전혀 없지만, 확실히 그런 기운이 들었다.
고통에 혀를 내밀고 헐떡이며, 흐릿한 시야로 올려다본다.
리크스가 웃고 있었다.
소리 높여 웃으며, 코노에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걸치고 있던 천이 꿈틀대고, 한쪽 손이 치켜올려진다.
움직임은 너무나 선명하게, 안구의 안쪽에 새겨진다.
팔에 열이 스쳤다.
시선을 돌리자, 무수한 검은 반점이 떠올라 있었다.
반점은 구불거리며 코노에의 온몸을 완전히 뒤덮으려 한다.
시야의 끄트머리에 비치는 꼬리도, 칠흑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경악을 금치 못한다.
저주가, 전부 돌아왔다.
뜨겁다.
이 열이 끊어질 듯한 꼬리의 아픔에서 오는 것인지, 반점의 열인 것인지, 이젠 알 수 없다.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감겨붙은 반점에 목이 타 갈라진 숨 밖엔 나오지 않았다.
리크스가 빈정대듯이 웃는다.
만족스러운 듯이, 더러는 불쌍히 여기듯이.
우득우득, 하고 꼬리가 끊어져 가는 감각이 가속되었다.
──싫어!
「…………!」
눈을 뜬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하늘에 뜬 양의 달과 빛에 투과된 잎사귀였다.
심장 고동이 빠르다.
위가 압박된 것처럼 괴롭다.
시선을 좌우로 돌린 후에, 코노에는 손을 허리 뒤쪽으로 넣어 꼬리의 감촉을 더듬어 찾았다.
끊어져 있지 않은 것에,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쉰다.
──꿈인가.
그러나 거기서, 갑자기 몸이 경직되었다.
반점은, 어떻게 되어 있는 걸까.
귀와 꼬리의 색도.
어젯밤, 저주의 증표는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일시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하룻밤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돌연 심장 소리가 빨라진다.
한기가 들고, 온몸에 희미하게 불쾌한 땀이 밴다.
확인하고 싶다.
그렇지만 만약 반점이 있다면──그런 생각이 들자, 어찌할 수도 없이 무서웠다.
꿈 속의 일을 떠올린다.
아니, 그것은 정말로 꿈이었던 걸까?
이 손으로 잠재운 마을의 고양이들, 악마들. 그리고──리크스.
웃고 있었다.
똑똑하게 떠올릴 수 있다.
여유있게 미소짓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질 수 없다, 절대로.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리크스는, 겁에 질린 자신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공포심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버렸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멈춘다.
양 손을 눈앞으로 치켜들었다.
──반점은, 없었다.
「…………」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멈추고 있던 숨을 내쉰다.
다행이다.
「몸은 좀, 괜찮아?」
목소리에 얼굴에서 손을 뗀다. 부드러운 햇살을 가리고, 아사토의 눈동자가 코노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옆에는 팔짱을 낀 라이가 앉아 있다.
「꽤나 괴로워하고 있었다고」
「귀」
「……귀?」
「내 귀. ……무슨 색이야?」
의미를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던 아사토가, 작게 웃는다.
「까맣지 않아. 하얀색에, 약간 갈색을 띠고 있어」
「……그래」
정말로, 본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다시금 작게 숨을 내쉰다.
문득 시선을 돌리니, 아사토가 코노에의 발치로 지그시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왜 그래」
「……아니. 꼬리도, 이런 색이었나, ……싶어서」
「? 이런 색인데」
「…………」
그걸로 입을 다물고 꼬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사토에, 코노에는 눈썹을 찡그린다.
「아사토?」
「아, 아냐」
「그렇게 이상한가, 내 꼬리」
「아니야. ……원래대로 돌아온 꼬리도, 예쁘니까」
「…………」
입술이 ㅅ자로 구부러진다.
무의식적으로, 감추듯이 꼬리를 휙 둥글게 말았다.
창피한 것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키라라는 우물 속에서 자라와 세상 물정에 어두운 때문일까.
본인은 코노에의 반응에 눈을 깜박거리고 있다.
아무래도 자각이 없는 것 같다.
「너, 란센의 시내라든지 나가보라고. 인기 있는 거 아냐?」
「? 어째서」
「글쎄」
진심으로 의아한 듯한 아사토에게 고개를 까딱 기울여 보인다.
말 없이 두 마리가 주고 받는 말을 듣고 있던 라이가, 희미하게 입 끝을 올리고 코웃음을 쳤다.
「뭐야」
「유치한 색이로군」
깔보는 말씨에 울컥 한다.
「이런 색 고양이, 나 말고도 얼마든지 있잖아」
「다른 고양인 상관 없어. 난 네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너 말야」
「성격과 외모에 맞는 색이다」
「코노에를 나쁘게 말하지 마」
「사실이잖아」
「…………」
아사토가 으르렁대며, 곁눈으로 라이를 노려보지만, 라이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코노에는 여봐란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고서 일어섰다.
아직 노곤함은 남아있었지만, 몸은 어느 정도 편해져 있었다.
「슬슬 출발한다」
라이와 아사토가 일어선다.
코노에도 몸차림을 가다듬고, 두 마리의 뒤를 따랐다.
「어제. 의식을 잃고 있던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지」
숲 속을 걷고 있을 때였다.
돌연 던져진 라이의 질문에, 코노에는 고개를 들었다.
「……악마들을, 만났어」
「의식을 잃고 있던 때에 말인가?」
「꿈인지 현실인지, 확실하지 않은 느낌이었어」
그렇지만, 그것은 현실이다.
육체가 아닌, 마음의 현실.
「본체였나」
「아아」
「확증은」
「없어. 그치만, 그림자가 아니었어. 그건 절대로, 본체야」
틀림없을 것이다.
적어도, 코노에가 봤던 그림자와는 달랐다.
말에 힘을 싣자, 라이는 그 이상 추궁해 오지는 않았다.
「저주의 증표가 사라진 거랑, 관계 있는 거야?」
「……모르겠어」
몸에 나타난 반점과 네 개의 바위에 새겨져 있던 문양은, 완전히 똑같았다.
사색의 뱀도 악마와 관계가 있는 것이겠지.
여기저기로 이어진 예감은 있는데도, 전체적인 상을 알 수 없다.
답답한 기분에 내몰린다.
자신이 표적이 된 이유도, 알 수 없다.
베르그는 코노에를 「사냥감」이라 말했다.
그것도,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일뿐이다.
손톱갈기라도 해서 울적함을 덜고 싶어졌을 때, 끝없이 이어지던 녹색의 풍경에 틈이 생겨났다.
그 마을이다.
그, 시체 고양이들이 있던 쓸쓸한 마을. 이제 곧 다다르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유도 없이 심장이 마구 뛰어댔다.
마을에는, 당연하게도 아무도 없었다.
새삼 그 쓸쓸함에 고개를 숙인다.
사체도 없다.
혈흔도 없다.
이미 오래 전부터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마을은 이전보다도 한산하게 보였다.
꿈에 나왔던 마을의 고양이들을 떠올린다.
저주가 풀렸다 해도, 고양이들이 절멸해버렸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직접 손을 쓴 것은 리크스지만, 그렇다 해도 죄 없이 말려든 것이다.
사실은, 죽지 않아도 됐을 일이었다.
이 마을의 고양이들은, 바지런히 평온한 나날을 지냈을 것이다.
자신이라는 존재 하나로 많은 생명이 사라져 버렸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새삼 통감한다.
쥐어짜내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감상에 빠져있을 여유 따윈 없다고」
마을 안을 걸으며, 라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한다.
「결과가 전부다」
──알고 있다.
최후에는 그렇게 되겠지.
그렇다고 해도.
찌르는 듯이 아픈 가슴을 한 손으로 내리누르며, 코노에는 걸음을 옮겼다.
자책의 마음을, 리크스에 대한 분노로 바꾸는 일도 할 수 없었다.
란센 시내로 돌아왔을 때에는, 양의 달이 머리 위로 높게 떠올라 있었다.
큰길은 변함 없이 고양이의 무리로 붐벼, 그 사이로 섞여 들어가면 커다란 흐름의 일부로서 삼켜져 버린다.
란센을 떠나고서 이렇다 할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굉장히 오래간만인 듯한 느낌이 든다.
코노에는 일시에 피로가 몰려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사토는 역시 도시의 혼잡함이 거북했는지, 나무 위나 지붕 위라든지, 어쨌든 그 부근을 옮겨 다니며 따라오고 있는 것 같았다.
큰길에 발을 들이고서, 약간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깨닫는다.
노점에는 기묘한 의상이나 가면이 진열되어 있고, 먹을 것도 다소 공을 들인 진기한 과자류가 여럿 보인다.
현관 부근이나 창 등, 건물의 도처에 꽃 장식이 달려 있고, 란센의 문장을 그린 깃발이 내걸려 있다.
단, 주술의 문양 같은 장식이 있기도 해서, 색채는 전체적으로 약간 어둡고, 화려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즉흥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이 끊이지 않고 흐르고 있다.
「『암동(暗冬)』이로군」
「『암동』?」
「란센에서 거행되는, 시사 최대의 겨울 축제다. 겨울을 악마에 비유해서, 내쫓아 버리려는 의식 같은 거지」
확실히, 축제라기보다는 의식처럼 보인다.
시사 최대의 축제라 한다면, 다른 도시나 마을에서 관광차 방문하는 고양이도 많은 것이 아닐까.
「숙소, 못 구하는 거 아냐?」
「전에 갔던 여관으로 간다」
「그러니까……」
「그 여관에는 받아야 할 빚이 있잖아」
그 말을 듣고, 코노에는 그러고 보니 하고 생각해 낸다.
주인 대리의 고양이가 올 때까지, 비게 되는 접수처를 보는 일을 맡았던 것이다.
맡았다, 라기보다는 억지로 떠맡겨졌다는 쪽이 맞지만.
바르도는 「언제든 와」라고 말했다.
담보로 삼을 생각은 없었지만, 별다른 수가 없다.
「……얘기해 볼게」
썩 내키지 않으면서도, 코노에는 라이와 함께 바르도의 여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정도일 줄이야 싶을 정도로 넘쳐나는 고양이의 물결을 헤치고, 어떻게든 여관 앞에 다다른다.
아사토가 아니어도 이건 싫어진다는 따위의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전과는 다르게, 대합실에는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숙박객으로 보이는 고양이의 모습이 있다.
접수처로 시선을 돌리자, 종이에 펜을 놀리며 눈썹을 찡그리고,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 줄무늬 고양이가 있었다. 바르도다.
「……저기」
「기다려」
다가가서 말을 걸었지만, 바르도는 고개도 들지 않고 코노에를 한 손으로 제지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눈치다.
「아-, 여기가 이거지, ……그래서. 아? ……아---, 관둬 관둬. 이딴 거, 아무리 고민해봤자 헛물이네」
펜을 내팽개치고,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바르도가 나른하게 중얼거린다.
「이래서 축제철은 싫다고. 손님이 너무 많아서 엉망이야. 뇌가 꼬이기 전에 빨리, ……응?」
거기서 바르도는 가까스로, 코노에가 카운터 앞에 서있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아-……, 아-, 누구였더라. 당신 그거다, 요전번 가게 봐달라고 부탁했던, ……뭐지. 쿠누기?」
「……코노에」
「그래, 그거. 요전에는 폐를 끼쳤네. 근데, 오늘은 뭐야. 숙박하러 온 건가」
그것 말고 어떤 용무로 여관에 오겠는가.
끄덕이자, 바르도는 어쩐지 잘난 체하듯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축제 시기는 고난이라고. 원래 란센은 시사에서 가장 큰 주제에, 여관이 별로 없으니까 말야. 그래서, 묵고 갈 건가」
「혹시 방이 비어있으면, 묵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아. 좀 전에 딱 캔슬이 난 참이야. 당신 혼자인가? 일행은」
「세 마리야. 지금은 여기에 없는 녀석 한 마리하고, 나하고, ……」
라이 쪽을 돌아보고서, 깜짝 놀랐다.
라이는 이빨을 드러내고, 그렇지 않아도 두꺼운 꼬리를 더욱더 두껍게 곤두세우고 으르렁대고 있었다.
주변의 고양이들이 뒤로 물러설 정도의 살기가 배어나오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냉정했을 푸른 눈동자는 동공이 조여져, 사나운 빛을 띠고 있다.
지금껏 전혀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어이」
「……왜 네 녀석이 여기에 있지」
사나운 으르렁거림 가운데, 땅을 기는 듯한 목소리는 틀림없이 바르도를 향해 내뱉어졌다.
시선을 바르도에게로 옮긴다.
바르도는 딱히 놀란 기색도 없이, 나른한 분위기 그대로 팔짱을 끼고 라이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도, 코노에로서는 의외였다.
「왜냐니 그거야, 여긴 내 여관이니까 말야. 내가 없는 게 이상하잖아. 그것보다, 오래간만인데 인사가 지나치네」
「닥쳐」
「코노에의 일행이였나. 세상은 좁군」
아는 사이인 것일까?
코노에는 어안이 벙벙한 채 두 마리를 바라본다.
바르도는 카운터에 팔꿈치를 대고, 입꼬리를 수상쩍은 느낌으로 끌어올렸다.
「……그 나쁜 버릇, 아직 낫지 않은 건가?」
「……큭!」
순간, 하얀 빛이 번쩍였다.
날카로운 바람이 스치고, 다음으로 딱딱하고 무거운 소리가 났다.
이어서, 뒤늦게 온 공기가 스윽 하고 지나간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한 채, 코노에는 바람의 흐름대로 시선을 돌렸다.
단검이, 카운터에 꽂혀 있었다.
칼 끝이 팔꿈치를 댄 바르도의 눈앞에 있다.
그럼에도 바르도는 흔들리지 않고, 눈을 치뜨고 라이를 응시했다.
「날뛰지 마. 다른 손님에게 피해잖아」
「……어이, 가자」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것인지, 험악하게 서슬 퍼런 얼굴로 라이가 잘라 말한다.
바르도는 아직 카운터에 한쪽 팔꿈치를 댄 채로, 꽂혀있는 단검을 태평하게 손가락으로 튕기고 있었다.
「다른 덴 어딜 가도 꽉 찼어. 별로 잡아 먹는 것도 아니고. 얼굴 보기 싫으면 접수처 앞 지날 때는 눈 꽉 감으면 되잖아」
「그렇게 발끈하지 말라고. ……머리에 피가 몰리기 쉬운 고양이는, 일찍 죽는다고」
「…………」
──머리에 피가 몰리기 쉬운 고양이는, 일찍 죽는다.
라이의 입으로도, 이전에 같은 말을 들었다.
이 두 마리는, 어떤 관계인 것일까.
[ 라이의 얼굴을 본다 ]
[ 바르도의 얼굴을 본다 ] → 선택
[ 바르도의 얼굴을 본다 ] → 선택
코노에는 무심결에 바르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응?」
시선을 눈치 챈 바르도가, 검을 튕기는 손을 멈추고 코노에의 시선을 되받는다.
「뭐야」
「……아냐」
당황해서 시선을 돌렸지만, 그만 멀뚱멀뚱 응시하고 말았다.
어쨌든 그 라이가 낯빛을 바꾸는 상대인 것이다.
넘쳐흐르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하더라도, 별수 없는 것이겠지.
「내 얼굴에 뭐가 붙어 있었나?」
「……그런 게 아니라」
횡설수설하는 코노에를 향해, 바르도는 여유롭게 눈썹을 들어올리고 고개를 기울인다.
「그럼, 그건가」
바르도가 천천히 히죽 하고 웃어서, 코노에는 순간 경계했다.
잘 생각해보면 경계할 이유 따위 어디에도 없지만, 어째서인지 반사적으로 그러고 있었다.
어쩐지, 바르도에게는 틈을 보여서는 안 될 듯한 느낌이 든다.
재빠르게 헛점을 비집고 들어올 것 같다.
「나한테 흥미라도 있는 건가」
「하?」
어디를 어떻게 하면 그런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 채로, 코노에는 얼이 빠진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면, 무시할 수가 없단 말이지」
「……누가 그렇게 봤다고」
「농담이야」
산뜻하게 그 말을 남기고, 바르도는 카운터에서 한쪽 팔꿈치를 떼고는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그거겠지. 저 녀석이 저렇게까지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내가 어떤 고양이인지 생각하고 있었다든가, 그런 느낌이겠지」
완전히 말 그대로였다.
바르도가 허리에 양손을 댄다.
안 그래도 커다란 몸집이 더욱더 커진 듯한 착각이 든다.
「알고 싶다면 알려줄 수도 있지만…… 비싸다고, 나는」
농담으로 얼버무리는 건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말투로, 바르도가 웃는다.
왜인지 묘한 박력을 느끼고, 코노에는 무심결에 눈을 돌린다.
그러자, 척척 계단을 올라가는 라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더는 같이 못 있겠다고 그 등에 쓰여 있다.
「뭐야. 이러쿵저러쿵하면서도 여기에 묵는 건가, 저 녀석도」
바르도가 질렸다는 어조로 혼잣말을 내뱉는다. 코노에도 놀라면서 똑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 허둥지둥 뒤를 쫓는다 ]
[ 역시 바르도가 신경 쓰인다 ] → 선택
[ 역시 바르도가 신경 쓰인다 ] → 선택
허둥지둥 라이의 뒤를 쫓으려 하다가, 어깨 너머로 접수처를 돌아본다.
「네네, 부디 편히 쉬시죠」
그렇게 말하고, 바르도는 한쪽 손을 휙 들어올리고는 카운터에 한쪽 팔꿈치를 괴었다.
뭘 할 마음이 없는 것을 그림으로 그린 듯한 태도에 놀라움마저 느끼며, 코노에는 계단 쪽으로 발을 돌렸다.
라이의 뒤를 쫓아가려 하다가, 문득 발을 멈춘다.
그리고 망설이면서도, 코노에는 바르도를 올려다보았다.
「응?」
노곤한 듯한 얼이 빠진 얼굴이 코노에를 마주 바라본다.
역시,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어찌할 수가 없다.
이런 타입의 고양이는, 카로우에는 없었다.
결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등을 돌리려 하면 왜인지 귀 끝이 잡아당겨지는 듯한 감각이 들어서, 결심이 서지 않는다.
자신은──흥미가 있는 것일까.
바르도에게.
「왜 그래. 저 녀석을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무언가 말을 하려 해도, 자신도 자신의 생각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코노에는 꼬리를 바쁘게 흔들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게 아니면, 설마 정말로 나한테 흥미가 있는 건 아니겠지」
「…………」
「……어이어이」
한결같이 입을 다물고 있자, 바르도는 허리에 대고 있던 손을 떼고서 괘사를 부리는 듯이 눈썹을 들어올렸다.
「이거 곤란한데. 내가 아무리 대단했다고는 하지만, 설마 이 나이에 이런 쬐그만 고양이한테 인기가 있을 줄은 말이지」
「……그러니까, 그런 게……」
「농담이라고. 누군가에게 흥미를 가진다는 건 이상한 일도 아무것도 아냐. 흥미가 있으면 있는 대로, 좋은 거 아닌가. 그걸로」
어딘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도 들리는 말투로, 바르도는 가볍게 입술에 미소를 띄운다.
「뭐, 모처럼의 만남이라는 거지.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아아」
이래저래 어찌 되든 상관 없는 듯한 태도로 보이는 것은, 바르도가 지닌 어딘지 나른한 분위기 때문일까.
「세 마리라고 했나, 너희들. 방은 거기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보이는 오른쪽 구석의 두 개야. 지금, 그것밖에 비어있는 게 없어. 어느 쪽에 두 마리가 들어가든지 해서 참아달라고」
「알았어」
「그리고……, 이 녀석도 가지고 가라고」
그렇게 말하고, 바르도는 카운터에 꽂혀있던 단검을 빼내어, 손잡이 쪽을 코노에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들면서, 바르도의 팔로 시선을 쏟는다.
이 단검은 그렇게 무게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나 간단하게 빼내는 몸짓은 검을 취급하는 데에 숙달된 자의 그것이었다.
「……당신, 검을 쓴 적이 있었지」
「응? 아아. 꽤나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말야」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한 얼굴로 바르도가 답한다.
이른바 변경의 지역에서 생활하는 카로우 같은 마을에서는 전투술을 배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시가지의 고양이는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
시가지에 있으면 대체로 손톱과 이빨만으로도 몸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호신을 위해서라며 검술을 배울 고양이도 없을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바르도가 검을 다루는 데에 숙달되어 있다고 해도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었찌만, 왜인지…… 평범한 여관 주인답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 녀석을 잊지 말라고. 방 열쇠야」
바르도가 내민 두 개의 열쇠를 받아들면서, 코노에는 말없이 가만히 바르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바르도가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코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돌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2층으로 올라가니, 복도에 라이가 서 있었다.
여전히 언짢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아까보다는 평상심이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이거, 네 검」
코노에가 단검을 내밀자, 라이는 말없이 받아들고 칼집에 집어넣었다.
「……저기」
입을 열었다, 닫는다.
라이가 의아스럽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어쩐지 좀처럼 말을 꺼낼 수가 없어서 망설인다.
「뭐야」
「……어째서, 안 나갔던 거야. 싫은 거잖아, 그 주인」
「………….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은 참이다. 그치만, 네가 여기에 남는다면 하는 수 없지」
라이는 작게 숨을 내쉬고, 꼬리를 흔들며 팔짱을 꼈다.
「너는 귀중한 찬아다. 떨어져 있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곤란해」
「…………」
──귀중한 찬아.
확실히 말 그대로였다.
그렇지만, 왜인지 가슴 속이 개운치 않았다.
어떻게 대답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는 채, 코노에는 고개를 숙이고 적당한 말을 찾는다.
라이도 말이 없었다.
실은 바르도와 어떤 관계인지도 묻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약간 초조해져서, 얼버무리듯이 입을 연다.
「방은 오른쪽 구석의 두 개야. 어느 쪽에……」
그때, 콩콩 하고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고, 놀란다.
똑바로 이어진 복도의 막다른 곳, 큼직한 창문 건너편에, 거꾸로 매달린 검은 고양이의 상반신이 보였다.
「……아사토?」
「도마뱀인가. 저 녀석은」
라이가 눈썹을 찌푸리고 중얼거린다.
창문을 열자, 가벼운 몸놀림으로 아사토가 안으로 들어왔다.
바깥의 공기도 함께 흘러들어와, 코끝을 스친다.
「방은, 구한 거야?」
「지금, 마침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그쪽의 방 두개야. 어딘가에 두 마리가 들어가서……」
「나는, 코노에랑 같이 있는 게 좋아」
말을 끝내자마자, 아사토가 라이를 노려보았다.
라이도 그에 맞서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노예가 주인과 같은 방에 들어갈 생각인가」
「너는 코노에에게 상처를 줘. 그러니까, 같이 있게는 못 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잖아」
시작되고 말았다.
이 두 마리는 코노에가 어쨌다기보다는, 얼굴을 마주하면 일단 서로 고집으로 맞붙고 싶어지는 것 같다.
중재에 들어가야 하겠지만, 방금 전의 바르도와 라이의 일도 있어, 코노에는 반쯤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 되어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연다.
「……나는 됐으니까, 너희들이 같이 쓰는 게 어때」
「싫어」
「농담 치고는 웃기지 않는군」
「…………」
지친다.
「난 어느 쪽이든 상관 없어. 어찌 되든 상관 없어」
적당히 바로 앞의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라이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뭐야」
「너는 나랑 같은 방이다」
억지로 밀어붙이는 듯한 말투에, 약간 화가 치민다.
확실히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고 말은 했지만, 명령을 받으면 그에 대항하고 싶어진다.
「퍽이나 당연하다는 그 말투, 그만둬」
「바보가. 찬아 훈련과 검술 연습이 있잖아. 같은 방을 쓰는 편이 편하다」
「……아아」
확실히 그것은 일리가 있다.
실은 조금 더, 아사토와 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코노에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라이가 미간을 좁혔다.
「내가 그런 시시한 일로 싸울 리가 없잖아. 노예랑 똑같은 취급하지 말라고」
「……죽인다」
「……일단, 알았으니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라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던 아사토가 슬픈 듯이 귀를 숙였다.
무심결에 쓴웃음이 새어나온다.
「딱히, 계속 따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잖아. 여관에 있는 동안만이야」
「……아아」
「언제든 이쪽으로 오면 돼」
「……그렇네」
가라앉은 목소리와는 정반대로, 아사토는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낸 날카로운 눈빛을 라이에게로 내던졌다.
라이는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는,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로, 어찌 되든 상관 없는 일로 일일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필시, 이 두 마리는 정말로 마음이 맞지 않는 것이다.
「두 지팡이」의 말을 빌자면, 「견원지간」이라는 것이겠지.
언젠가 피를 보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아사토에게 열쇠를 건네고, 코노에도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방은 이전에 묵었을 때와 거의 같은 구조와 내부 장식으로 되어있었다.
모든 방이, 그렇겠지.
날이 저물고서, 코노에는 홀로 떠들썩한 큰길로 나갔다.
다른 두 마리에게도 말을 걸어봤지만, 라이는 검을 손질한다고 하고, 아사토는 혼잡한 것이 싫다고 말하고는 혼자서 어딘가로 가버렸다.
코노에도 어느쪽이냐고 하면, 소란스러운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카로우에서도 축제 행사가 있기는 있었지만, 정말로 조촐한 것이었다.
그러나, 축제다운 축제를 본 적이 없는 코노에로선, 잔뜩 들뜬 번화가의 모습에 호기심이 드는 것은 억제할 수 없었다.
여관에서 나가려 하다가, 순간 망설였다.
조급하게 주위로 시선을 돌리고, 무의식중에 다른 고양이의 눈을 신경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렸다.
──이제, 반점은 사라진 것이다.
귀도 꼬리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지극히 평범한, 이라고 말하는 건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외견은 아니다.
아무것도 신경 쓸 일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가벼워도 괜찮을 터인 기분은 왜인지 개운치 않았다.
저주의 반점이 있어도 없어도, 알맹이는 똑같이──자신임에도.
그런 생각이 떠올라, 머리를 흔들어 털어낸다.
자신답지 않은 감상이다.
황혼에 물든 거리는 고양이도 물건도 너무나 많아서, 서로 밀치락달치락 하며 북적대는 것으로 보인다.
오렌지색의 빛을 받은 노점의 가면과 의상은 아름답고, 축제 무드의 음악이 비현실적인 정취를 더하고 있었다.
가능한 한 큰길의 가장자리로 걸어가며, 주위를 바라본다.
악단의 연주에 맞춰 춤추는 고양이들과, 힘이 넘치는 소리로 손님을 불러들이는 노점상들.
축제는 내일부터 삼 일 간 개최된다고 한다.
거리를 메운 고양이들의 들뜬 모습에서, 모두 이날을 마음 속으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지금만큼은, 코노에도 이 번잡함의 일부로서 녹아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는 않았다.
자신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란센의 고양이들에게도 위험을 초래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만큼은.
멈춰 서서, 천천히 눈꺼풀을 감는다.
고양이들의 목소리, 목소리, 노랫소리.
음악, 웅성거림.
성원하는 소리.
잡담.
신발 소리.
화려한, 공기.
자신도, 그 일부다.
코노에는 눈을 뜨고 조용히 숨을 내쉬고서, 걷기 시작했다.
거리로 나온 것에는, 토키노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러 간다는 목적도 있었다.
계속 마음에 걸렸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무사한 것일까라는 생각 뿐이다.
고양이의 물결에 휩쓸려 가면서도 뒷골목까지 도달해, 기억에 의지해 길을 빠져나간다.
이윽고, 토키노의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가게가 열려 있다.
가지각색의 도구에 둘러싸여, 가게라기보단 곳간으로 보인다.
각지에서 사들여오고 있는 것이겠지.
항아리나 나무 상자가 쌓여있는 틈으로, 흔들거리는 꼬리가 살짝 보였다.
이어서, 조금씩 그 뒷모습이 드러난다.
나타난 것은, 가슴 가득 짐을 껴안은 토키노였다.
토키노는 짐을 털썩 하고 바닥에 두고서 숨을 내쉬고, 손을 털며 얼굴을 들었다.
시선은 곧바로 코노에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놀란 듯이 그 눈이 동그랗게 벌어진다.
「……어라? 코노에?」
토키노가 가게에서 뛰어나왔다.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이 코노에를 향한다.
「벌써 돌아온 거야? 좀 더 긴 여행이 될 거라고만 생각했었어」
「생각보다, 빨리 결말이 나서」
「무사해서 다행이야. 어서 와, 코노에」
그릉그릉 하고 목을 울린 토키노가, 어깨에 코 끝을 부딪쳐 왔다.
언제나의 온화하고 상냥한 목소리에, 후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코노에도 토키노의 어깨에 코를 가볍게 부딪쳤다.
「무슨 일이 있거나 하진 않았어?」
「특별히는. 코노에야말로 아까부터 신경쓰였는데, 그 꼬리, 염색한 거야?」
손가락으로 꼬리를 지적당해, 가슴이 철렁한다.
말없이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에? 그렇단 건……」
손등 아머의 자락을 들추어 팔을 보여주자, 토키노는 놀란 듯이 몇 번 눈을 깜박였다.
「반점이, 없어졌어? ……코노에, 설마」
「아아. ……아마도」
「잘 됐네!」
토키노는 부들부들 꼬리를 떨고, 진심으로 기쁜 듯이 입술을 귀에 걸리게 벌리고 웃었다.
그 모습에, 이번에는 코노에 쪽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째서 그렇게 기뻐하는 것일까.
마치 자기 일처럼.
코노에의 생각을 읽어낸 것인지, 토키노가 약간 쑥스러운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이제, 힘들지는 않은 거지?」
「아아」
「소중한 친구가 고통에서 해방된 거야. 기쁜데다,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래」
「응」
숨김 없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토키노의 말은, 가슴 깊은 곳을 아련히 따뜻하게 만든다.
어쩐지 부끄러웠기에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고, 코노에는 희미하게 입술을 벌려 미소지었다.
「여기서 성대하게 축하를,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야…… 축제 동안은 아버지가 행상으로 안 계셔서 말야. 가게 보는 걸 부탁받았어. 미안」
축 하고 귀를 내리는 토키노에, 좌우로 고개를 젓는다.
「아, 코노에는 란센의 축제는 처음이겠네」
「그렇네」
「축제는 겨울이랑 봄에 두 번, 있어. 겨울 축제는 봄이랑은 다르게 밝은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즐겁다고 생각하니까」
「아아」
「그렇지, 그리고 이거」
토키노는 등 뒤에 두었던 항아리를 돌아보고, 손을 집어넣어 무엇인가 꺼내들었다.
내밀어진 손바닥에는, 건조시킨 큄이 세 개 정도 얹혀 있었다.
「적이나마 축하 선물로, 가지고 가」
「파는 거잖아」
「괜찮으니까」
토키노가 코노에의 손을 잡고, 큄을 건낸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혀, 꼬옥 손에 쥐게 되고 말았다.
짓궂은 얼굴로 토키노가 눈웃음을 쳤다.
「잔뜩 먹고, 얼른 커야 돼」
「……바보」
말을 내뱉고서, 얼굴을 마주보고 솟아오르는 웃음을 억눌렀다.
실로 한 순간, 이 잠깐 동안만큼은, 카로우에서 지냈던 평온한 나날이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체류중인 여관이 있는 곳과, 그리고 잠시 동안은 그곳에서 머문다는 것을 알리고, 코노에는 토키노와 헤어져, 다시 여관으로 돌아갔다.
양의 달이 저물기 시작해, 밤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현관을 빠져나가 여관에 발을 들이자, 좋은 냄새가 감돌았다.
아무래도 대합실 안쪽에 식당이 있는 듯하다.
들러볼까 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향하고는, 울려퍼진 왁자지껄한 웃음 소리에 머뭇거린다.
당연히, 다른 숙박객들이 모여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타관의 고양이들과 접촉하는 것은 내키지 않아서, 코노에는 결국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접수처에 바르도의 모습은 없고, 숙박장 위에는 「식사 준비 중. 용무가 있는 분은 잠시 기다려 주시길」이라는 푯말이 놓여져 있었다.
바르도 자신이 요리를 하고 있는 걸까.
어찌 되든 좋은 듯한 태도와 나른한 듯한 눈빛을 떠올린다. 의외였다.
코노에는 2층으로 올라갈 작정으로 계단을 오르려 했지만, 문득 발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동안 골똘히 생각하고는, 결국은 몸을 돌려 다시금 여관 밖으로 나갔다.
어쩐지,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정확하게는 보고 싶지 않았다──라이도, 아사토도.
현관을 나와 뒤쪽으로 돌아 가, 코노에는 여관 건물 옆에 나 있는 나무에 재빠르게 기어올랐다.
거기서 여관 지붕으로 뛰어올라가, 가장자리까지 다가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휘잉 하고 세찬 바람이 뺨을 만지작거리고는, 지나갔다.
눈 아래에는 밤의 란센이 펼쳐져 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까만 숲이 도시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축제 전이기 때문인지, 불이 환하게 켜진 란센의 거리는 어두워져도 어딘지 활기가 있었다.
낮에 있었던 싸움의 여운이, 공기로도 느껴진다.
작게 숨을 내쉬고, 코노에는 어디까지고 펼쳐진 숲과 하늘의 경계를 확인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라이도 아사토도 보고 싶지 않다.
그것은, 싫어졌다든지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은 지극히 평범한, 카로우에서 살아온 지금까지대로의 보통의 고양이다.
이대로 있고 싶다.
이대로, 이것도 저것도 다 잊고서, 지금까지의 일도 전부 없었던 것으로 해버리고 싶다.
돌연, 그런 생각에 내몰렸다.
그렇지만, 알고 있다.
이 생각은──그저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필시,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왜냐면, 코노에를 둘러싼 수많은 수수께끼들은 그 어느 것도 전혀 풀려있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엔드 마크가 찍혀버리면, 실로 말끔하게 끝맺어지지 않은 기묘한 이야기가 된다.
그렇기에 분명……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무언가가.
그런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코노에는 크게 꼬리를 흔들었다.
반쯤은 확신에 가까운 직감을 품으면서도, 기우였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문득, 방금 전 토키노로부터 큄 열매를 받은 것을 생각해 내고, 삼베 자루에서 꺼내들고는 한 알을 입으로 날랐다.
서서히 혀끝에 스미는 새콤달콤함이, 코노에에게 약간의 안도와 용기를 준다.
도망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결국, 최후에는 맞서서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언제나 몸으로 느껴왔던 것이다.
눈을 돌렸던 분만큼, 소중한 무언가가 자신의 손을 빠져나가 흩어져간다.
그러니까──
천천히 깊게 숨을 내쉬고 일어서서, 코노에는 방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여관으로 돌아와, 계단 쪽으로 가기 위해 접수처를 지나치던 참에, 코노에는 문득 발을 멈추었다.
바르도가 몹시도 노곤해 보이는 얼굴로 카운터에 한쪽 팔꿈치를 괴고 있었다.
축제를 앞둔 여관의 성황으로 보아, 결코 한가하지는 않을 것인데도, 그 모습이 왜인지 신경이 쓰였다.
코노에가 있는 것에 눈치를 챈 바르도가 시선을 보내왔다.
「여어. 왜 그러지, 그런 데 멈춰 서서.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아니……, 바쁜 것 같은데, 한가해 보이네 싶어서」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바쁘다고. 워낙 바빠서 마구잡이로 일을 했더니, 할 일이 없어졌어. 뭐, 이제부터 또 저녁식사 준비지만 말야」
대답하면서, 바르도는 카운터에 대고 있던 한쪽 팔꿈치를 떼고 양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 김에 꼿꼿이 선 가느다란 줄무늬 꼬리가 작게 떨린다.
「너는 마을 관광이라도 다녀온 건가. 활기가 넘쳤겠지」
「아아, 굉장했어」
바르도는 작게 웃고서, 이번에는 좀 전까지 괴고 있던 쪽의 반대쪽 팔꿈치를 괴었다.
정말로, 언제 보아도 나른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상태에서 대화는 끊기고, 무언의 시간이 찾아든다.
대합실에서는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바르도는, 어딘지 먼 곳을 보는 듯이 시선을 공중으로 던져두고 있었다.
그대로 그 자리에 있기가 거북해져서, 코노에는 의미도 없이 지니고 있던 자루를 뒤적였다.
어쨌든 무언가 하지 않으면 어색한 침묵을 견딜 수가 없다.
자루 안을 들여다본다.
몇 개의 큄 열매가 서로 밀치락달치락 하고 있는 것이 보여서, 그러고 보니, 하고 생각해낸다.
토키노에게 받은 것이다.
꺼내들고서, 바르도 쪽으로 내밀어보았다.
「응?」
바르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밀어진 나무 열매를 본다.
「주는 거야?」
「받은 거야」
「너는 안 먹는 거야?」
「더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자, 바르도는 나무 열매를 받아들었다.
「그래, 그럼 사양 않겠어. 그건 그렇고, 깜짝 놀랐네」
「뭐가?」
「난 나무 열매 중에는 이 녀석이 제일 좋아. 그래서, 네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걸까 싶어서」
손에 든 큄을 베어 먹으며, 바르도는 뭔가 깊은 의미를 함축한 듯한 거동을 취하며 곁눈으로 코노에를 보았다. 그 시선에 조금 움츠러든다.
「……우연이겠지」
「그럴까나」
「나도 그걸 제일 좋아해서, 친구가 준 거야」
「그럼 나랑 너는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게 되네」
바르도가 도발적으로 입술 끝을 들어올린다.
「기분 좋네」
「……알 바 아냐, 그런 거」
「쑥스러워하지 마라고, 꼬맹이」
「……!」
그만 발끈 화가 치밀어, 덤벼들려는 코노에의 머리를 카운터에서 뻗어나온 팔이 툭 하고 가볍게 쳤다.
올려다보니, 바르도는 눈가를 가늘게 좁힌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살짝 놀린 것뿐이라니까.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그때까지의 바보 취급을 하던 태도나 표정과는 전혀 달라서, 무턱대고 반발도 할 수 없이, 코노에는 바르도의 손을 뿌리치고는 얼굴을 돌렸다.
아무래도 톱니바퀴가 어긋나버린다.
방심하면 발목을 붙들려서 넘어지고 말 듯한 느낌이 든다.
말없이 그 자리에서 떠나가려 하자, 다시금 목소리가 귓가에 전해져왔다.
「내일은 축제 첫날이야, 맘껏 즐기라고. 설령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더라도, 다 잊고 즐기는 게 축제의 룰이지」
막 한 입 베어 먹은 나무 열매를 가볍게 흔들어 내보이면서, 바르도는 그렇게 말했다.
「……다 잊고 즐기는 것 따위, 무리야」
「뭐, 그렇게 생각한다면 무리겠지만 말야」
한 입 베어 문 자국이 남은 나무 열매를 바라보며, 바르도는 말을 잇는다.
「우물쭈물 고민하고 있어봤자 뭔가가 바로 바뀌는 것도 아냐. 오히려, 시간은 그 상태로 멈춘 채라고.
축제라는 건 그런 의미에서, 모두의 기분을 한꺼번에 전환시켜주는 좋은 장치라고. ……그러니까 가능하면, 너도 그렇게 해」
그 말끝은 타이르는 것처럼 부드럽게 전해졌다.
코노에는 그만 눈을 돌린다.
놀림을 당했다는 것에 대한 화와 곤혹감이 뒤섞여, 복잡한 기분을 가슴에 품으면서도 등을 돌린다.
「……뭐,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나도 무리지만 말이지」
등 뒤에서 바르도가 무언가를 중얼거렸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되물을 마음도 들지 않아서, 코노에는 그대로 계단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내일은 축제의 첫날──란센의 축제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코노에의 안에서도 기대나 호기심과 같은 것이 적잖이 생겨나 있었다.
자연히 바르도의 말이 귓가에 되살아난다.
확실히 보이지 않는 미래와 돌아오지 않는 과거를 한탄하고 있어도, 무언가가 변하는 것도 아니다.
상심한 상태로 있어도, 어쩔 수 없는 건가.
모든 것은 되는 대로 되는 수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더욱, 커다란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방금 전까지의 막연한 불안과 혼란이 조금씩 걷혀가는 듯했다.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에, 코노에는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접수처에는 큄 열매를 베어 먹으며, 바르도가 여전히 카운터에 한쪽 팔꿈치를 괴고 있었다.
이상했다.
놀림을 받고 화가 난 데다, 방금 전의 말도 단순한 변덕이었을 것인데도, 왜인지 싫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기분에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며, 코노에는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