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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와 아사토가 달려온다.
「코노에, 괜찮아?」
「아아」
「바로 이게 지옥도로군」
라이가 주위를 둘러보고 한숨을 쉰다.
「노래가, 없어졌어」
귀를 기울인다. 어느 사이엔가, 사악한 선율이 끊겨 있다.
「조종하고 있었지, 그 노래로 말야」
「노래하고 있었던 건, 누구지」
「아마도, 리크스다」
「리크스가……? 어떻게 된 일이지」
「본인에게 물어보라고. 찬아이거나, 아니면 동등한 능력이라도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지독하게 손에 잡히는 게 없군」
분한 듯이 꼬리를 흔들며, 라이가 괴멸적인 마을의 광경을 바라본다.
「완전히 농락당했군」
「…………」
코노에는 어금니를 악물고, 그럼에도 모자라 세차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만약, 리크스가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거라고 한다면.
바로 곁에서 보고 있었던 것인가.
마을 고양이들이 유해가 되어 배회하는 모습을.
그와 반대로, 울부짖고 있었던 마음을.
압도적인 힘을 지닌 자는 무엇을 해도 좋다.
……그럴지도 모른다.
무력한 자에게는 어차피, 저항할 수단 따위 없는 것이기에.
무엇을 당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카로우를 떠나기 직전, 산 제물의 통달이 행해진 날의 일을 떠올린다.
규칙에는 순종하라, 그것이 백성의 의무다──
흔들 하고, 몸에서 무언가가 피어오르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라이와 아사토가 의아한 빛을 띄운다.
새카만 충동이 몸 안쪽에서부터 치밀어 오른다.
머리의 심이 불규칙적으로 흔들린다.
시야도 연동해서 흔들린다.
몸의 중심에서, 사색의 뱀이 욱신거렸다.
「그만해, 코노에」
어깨를 붙잡혀, 코노에는 번쩍 정신이 든다.
눈 앞에, 걱정스러운 듯한 아사토의 얼굴이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좋지 않은 기운이 들었어. 괜찮아?」
「……아아」
어안이 벙벙한 채로 끄덕인다.
아사토가 눈썹을 찌푸리고 코노에를 본다.
「……뭐가, 잠들어 있어?」
「……잠들어 있어?」
「코노에 안에는, 뭐가 있는 거야?」
──뭐가, 있어?
의미를 모르겠다.
그러나, 지독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뭐가라니, 뭐가 말야……?」
매달리듯이 아사토의 어깨를 붙잡는다.
「뭘 느꼈어? 내 안에 뭐가……, 아사토」
「코노에……」
「어이」
라이의 목소리에 뒤돌아본다.
「보라고」
가리켜진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코노에는 경악한다.
보기도 무참하게 가로놓여 있었던 사체의 산이, 투명해져 있었다.
그것은 이윽고 환상처럼 흔적도 없이──사라졌다.
검붉게 얼룩졌던 피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살을 베고, 뼈를 부순 그 감촉은 무엇이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 일도 없는 마을의 광경이 그곳에는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시야가 돌연, 격렬히 흔들렸다.
「……크윽」
서 있을 수 없게 되어서, 코노에는 지면에 무릎을 꿇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회전한다.
「왜 그래, 어이……!?」
토기에 목이 메어 속을 게운다.
입술 끝으로 타액이 타고 흐르고, 입 안에 쓴 것이 차오른다.
머릿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낮게 높게, 비웃는 듯이, 즐거운 듯이.
눈꺼풀 안쪽에서 붉은 열이 점멸한다.
토기에 시달리며, 코노에는 희미하게 눈을 뜬다.
공중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아니, 공간이 일그러져 있는 것인가.
구멍은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검은 덩어리를 낳았다.
덩어리는 피륙처럼 펼쳐져, 그림자를 형성한다.
저것은──
누구지?
「즐거웠으려나, 여흥은」
차분한 저음이 긴장된 공기에 울려퍼진다.
허공에 떠오른 검은 그림자가, 땅에 내려섰다.
격렬한 오한을 느끼고, 코노에는 일어서려 했다.
아사토가 등을 받쳐준다.
부풀어 오른 꼬리가 아프다.
──위험하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이 존재는, 위험하다.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공기가 독을 머금고 있다.
「네 녀석……」
「약간 아쉬웠으려나. 알맞은 정도란 어려운 것이로군」
그림자가 우스운 듯이 목을 울린다.
「으잇차」
날카롭고 드높은 소리가 나고, 다시 허공이 일그러졌다.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고 나타난 것은, 휘리였다.
보이지 않는 계단을 내려오듯이, 휘리는 경쾌한 움직임으로 허공을 걸어서 지면에 내려선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검은 그림자의 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조금 늦어버렸어요. 죄송합니다, 리크스 님」
「…………, 리크스……?」
코노에는 휘리의 곁에 선 검은 그림자를 바라본다.
이 녀석이──
자신의 운명을 쥐고, 무력한 목숨을 장난감처럼 희롱하는 존재.
어둠의 자식이라 불리는 마술사, 리크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코노에는 이를 악문다.
공기가 무겁다.
몸 속에서, 온갖 감정이 폭주하고 있다.
발산하는 일도 할 수 없이, 그저 괴롭다.
「……설마, 스스로 나타날 줄은 말이지」
「조촐한 포상을 할 생각이다. 약속대로, 나를 즐겁게 해주었으니 말이지.
그래,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백만 분의 일 정도로는」
그림자…… 리크스가 희미하게 어깨를 흔들며 웃는다.
휘리가 양 손을 가슴 앞에서 탁 소리나게 모으고, 기쁜 듯이 날뛰었다.
「다행이다. 너희들도 다행이네. 리크스 님이 즐거워 해주셔서」
「……어째서, 이런 짓을」
「말했잖나, 여흥이라고. 너희들을 환영하는 인사, 라고 말해둘까」
「환영하는, 인사……?」
코노에는 혼신의 힘을 담아 리크스를 노려본다.
「빼앗기고, 부숴지는 것을 맛본 후에, 빼앗고, 죽이는 것은 필시 고통이었겠지」
「……웃기지 마. 이 마을의 고양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죽어갔는지……」
「……후후」
리크스는 코노에를 내려다보고, 조용히 목 안쪽으로 웃었다.
「리크스 님께서 몸소 노래해 주신 거야. 너희들, 좀 더 기뻐하라고」
「역시, 그 노래는 네 녀석이었나」
「마음에 들으셨으려나」
라이가 턱을 당기고, 리크스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한다.
「찬아인가」
「네!」
갑자기, 휘리가 한쪽 손을 든다.
「그건 나. 리크스 님의 찬아는 나. 그치만, 리크스 님은 스스로 노래를 만들어 내서, 노래하는 것도 가능한 거라고」
휘리는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젖혀, 자기 일인 양 자랑스러운 듯한 미소를 띄웠다.
「……사악한, 노래였다」
「찬아의 노래가 힘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면, 나의 노래는 복종시키기 위한 것이다.
죽은 자는 조종하기 쉽지. 강한 후회나 미련을 남긴 자는, 특히」
리크스가 코노에 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누구보다도 강하게 느꼈을 테지? 공감의 작용으로」
「……!」
코노에의 경악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는 듯이, 리크스는 웃었다.
「너에 대해서는, 전부 알고 있다」
「……무슨, ……큭」
추궁하려 하다, 둔탁한 두통에 얼굴을 찡그린다.
코노에의 몸을 가만히 손으로 제지하고, 아사토가 리크스를 노려본다.
「네가, 코노에를 괴롭히고 있는 건가. 저주도, 전부」
「괴롭히고 있다니 유감이로군. 이건, 시련이다」
「뭘 위해서」
「글쎄. 거기까지 밝혀버리면 재미없겠지」
「재미없다, 라고? 저주를 풀어 내!」
말과 함께, 아사토가 낮게 으르렁댄다.
리크스가 차분히 코노에를 가리킨다.
「열쇠는 너 자신이 쥐고 있다. 머지않아 찾아올 거대한 전환기를,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을지 어떨지. 모든 것은, 너에게 달려 있다」
전환기──?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듯한 아픔에 몽롱함을 느끼며 코노에는 리크스의 말을 듣는다.
「사색의 빛으로 가득 찬 땅. 열어야 할 문은, 그곳에 있다」
칠흑을 두른 리크스의 몸이 떠오른다.
「놓칠까보냐!」
라이가 리크스를 향해 장검을 내지른다.
붙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리크스의 몸은 허망하게 둘로 조각났다.
나누어진 몸은 검은 안개가 되고, 다시 뭉쳐서 구체를 형성한다.
「……칫」
「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니다」
웃음 섞인 목소리가 이중 삼중으로 울린다.
「유감이네요. 그럼 또 보자고」
높이 도약한 휘리가 공중제비를 돌고 모습을 감춘다.
「거기 서!」
부유하는 그림자의 구체를 쫓아, 라이가 달리기 시작한다.
구체는 마을의 안쪽──이제부터 코노에들이 향해 가려 했던 북쪽의 숲으로 들어간다.
몸의 통증을 참으며, 코노에는 아사토와 함께 그 뒤를 쫓았다.
숲에 발을 들이자, 다다른 곳에서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먼저 들어온 라이가 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녀석인지, 귀를 기울여도 판단할 수 없다.
리크스와 라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눠져서 찾자」
「몸은, 괜찮은 거야?」
「아아」
몸은 아직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신경 쓸 여유는 없다.
리크스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강한 일념만 있었다.
다행이도, 숲은 그렇게 넓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사토와 둘로 나뉘어, 코노에는 나무숲 속을 달리기 시작한다. 귀를 세우고 소리를 탐색하고, 주위로 구석구석까지 시선을 돌린다.
──그때.
「……!?」
돌연 심장이 크게 맥박치고, 눈 앞이 새카매졌다.
어둠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무엇도 보이지 않게 된다.
가냘픈 이명이 울고, 문득 귀의 바로 가까이에서 바람을 느꼈다.
아니다.
바람이 아니다.
날숨이다.
「인내력 싸움을 하자. 코노에──너와, 나의」
머릿속으로 직접, 속삭여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리크스.
「……윽」
코노에는 굳게 눈을 감았다가, 목소리를 뿌리쳐내는 듯이 눈을 뜬다.
시야의 어둠이 걷히고, 짙은 녹색의 숲의 광경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니 지면에 무릎을 꿇고, 양손의 손톱으로 거세게 땅을 헤치고 있었다.
코노에는 재빨리 비켜서듯이 일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나, 눈에 띄는 기척은 어디에도 없다.
이름을 불렸다.
인내력 싸움, 이라고 말했다.
환청이 아니라면, 그것은 확실히 리크스의 목소리였다.
대체, 어디에……
격렬한 살기를 느끼고 돌아본다. 나무숲 안쪽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뛰쳐나왔다.
그림자들은 웅크리듯이 착지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간다.
약간 때묻은 코트가 바람에 나부낀다.
얼굴은 깊숙이 눌러 쓴 후드에 가려져 있었지만, 코노에는 그 그림자들이 누구인지 한 눈에 알았다.
란센의 뒷골목에 있었던, 그 쌍둥이 고양이다.
고양이들이 제각기 후드를 벗고, 미소를 띄운 똑같은 얼굴을 내보였다.
「또 만났어」
「또 만났네」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가 이중으로 들려온다.
코노에는 두 마리를 노려보고, 손에 들고 있던 검을 양손으로 고쳐 쥐며 묻는다.
「어째서, 너희들이 여기에 있지」
「글쎄 말야-」
「글쎄-」
얼굴을 마주보고서, 두 마리는 동시에 코노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리크스 님의 명령이니까 말야」
「얌전히 굴지 않으면 말이지」
──이 녀석들도, 리크스의 부하인 건가.
전투의 예감에, 코노에는 희미한 초조를 느낀다.
상대는 찬아와 투아다.
혼자서 싸워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몸을 괴롭히는 정체불명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상태로 맞붙는 것은 절망적이다.
「오늘은 혼자인가」
「은색 고양이는 어디 갔지」
「혼자서 이길 수 있는 거야?」
「죽여버린다구?」
즐거운 듯이 말을 주고받으며, 키르가 검을 빼들고, 우르가 한쪽 팔을 쳐들었다.
──싸우는 수밖엔 없다.
등을 내보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정하고 검을 가로쥔다.
머릿속 안쪽에서는, 지금도 둔탁한 통증이 맥박치고 있었다.
우르의 손톱이, 검붉은 상처투성이 팔에 걸쳐진다.
또 뒷골목에서 맞붙었던 때와 똑같이, 피의 선율이 시작된다.
──바로 옆의 수풀이, 바스락 하고 흔들렸다.
[ 라이의 기척을 느꼈다 ] → 선택
[ 아사토의 기척을 느꼈다 ]
은색의 머리칼이, 시야에 비친다.
수풀 속에서 나타난 것은, 라이였다.
키르와 우르의 움직임이 멈춘다.
코노에도 어안이 벙벙해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런 때에 나타나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마음이었다.
라이는 쌍둥이 고양이를 매섭게 노려보며, 코노에의 곁에 섰다.
「또 이 녀석들인가」
「……리크스는」
「놓쳤다」
거기서 라이가 불현듯 눈썹을 찡그리고, 곁눈으로 코노에를 흘끗 보았다.
코노에는 번쩍 정신이 들어, 허둥지둥 눈을 돌린다.
무의식중에, 라이의 옆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안도하고 있는 것인가?
자신은.
라이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을 지우고, 코노에는 눈앞의 적에 집중했다.
「뭐야, 있었잖아」
「늦었네」
「빨리 하자고」
「하자고」
쌍둥이 고양이가 즐거운 듯이 들뜬 목소리를 낸다.
「노래할 수 있나」
질문을 받고, 한 순간 망설인다.
가능할 것인가, 자신에게.
그렇지만, 노래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이기기 위해서는──노래하는 수밖엔 없다.
코노에는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는다.
시야를 차단하기 직전, 우르가 다시금 팔에 손톱을 대는 것이 보였다.
그──공터에서 노래했던 때의 감각을 불러 일으킨다.
음유시인의 상냥한 선율.
몸을 감싸는, 거대한 하얀 빛.
찬아에게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니다.
투지도, 살의도 아니다.
투아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천천히 숨을 쉬고, 호흡과 고동을 일치시킨다.
그것들은 이윽고 리듬이 되어, 안쪽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선율이 만들어져 간다.
바라는 것은, 살육이 아니다.
함께 산다는 것.
살기 위해, 투아를 지킨다.
그것이, 찬아의 「노래」다.
경쾌한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몸의 가장 깊은 곳에 작게 점등된 붉은 불꽃이, 손 끝에서 꼬리 끝에 이르기까지, 미미한 열을 내보낸다.
그리고서, 몸에서 발하는 빛은 몇 줄기의 가느다란 다발이 되어, 투아──라이의 곁으로 흘러간다.
코노에는 희미하게 눈을 뜬다.
빛의 입자에 휘감긴 라이가, 양손에 검을 가로쥐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이 연주하는 선율에 대항해, 멀리서 들려오는 것은 어두운 피의 악곡이었다.
우르가 붉은 핏방울을 떨어트리며, 비명처럼 노래하고 있다.
키르의 몸에, 녹색의 빛의 물결이 감긴다.
「너, 찬아였던 건가. 몰랐다고, 불길한 고양이. 지지 않아, 너에게는. 나와 키르는, 절대적이다」
서로의 투아가 달린다.
멀리서, 칼날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그조차도 선율에 흥취를 더한다.
키르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일어나는 녹색의 빛으로, 바람이 도움이 존재함을 인식한다.
라이는 몸 전체에 옅은 빛을 두른 상태로, 하나 하나의 동작이 빠르다.
라이의 검이 끊임없이 공기를 가르고, 후퇴한 키르는 바람의 탄력을 빌어 탄환처럼 뛰어 들어간다.
서로 튕겨지는 칼날의 소리조차도 연속되어서, 하나의 흐름이 되어 귀청을 때린다.
키르가 땅을 차고 몸을 반전시켜 일격을 날린다.
그것을 라이의 단검이 튕겨내고, 동시에 장검을 후방에서부터 세차게 내지른다.
강한 풍력을 띤 키르의 팔이 방패가 되어, 라이의 공격을 막아낸다.
키르에 의해 움직임이 멈춘 장검에 무게중심을 실어 몸을 돌린 라이가, 단검을 옆으로 휘두른다. 키르가 발치에 바람을 일으키고, 등 뒤로 물러선다. 그곳으로, 라이는 광속의 공격을 걸었다.
라이가 공격을 받아들일 때, 코노에에게도 충격의 여운이 전해지는 일이 있었다.
찬아와 투아는 일체라는 것을 실감한다.
마음의 이어짐이 보다 깊어지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투아의 아픔은, 찬아의 아픔도 되는 것일까.
「제법인데, 네 찬아. 저주 받은 고양이 주제에, 꽤 하는데. 그치만, 우르는 지지 않는다고」
키르가 웃으며 소리친다.
갑자기, 우르가 연주하는 선율에 변화가 생겼다.
눈을 들어 보니, 우르의 팔은 어느 부분이 피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표정은 황홀에서 고통으로 변화되어 있다.
「나누어 주리라, 피와 비명과 아픔의 공명……, 가장 사랑하는, 투아에게」
우르는 팔의 상처를 늘리고, 쥐어뜯으며 노래하고 있다.
키르의 움직임에 한층 더 바람의 가호가 나타나, 라이를 조금씩 압도하기 시작했다.
찬아가 품는 마음의 강함이, 투아에게 힘을 부여한다.
키르가 휘두르는 칼날에 여러 개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가시가 돋아나, 라이를 덮친다.
「……윽」
틈이 보이지 않는다.
잇달아 전개되는 공격에 더하여, 검을 휘두를 때 일어나는 작은 진공의 칼날이 몇이고 라이에게 몰려든다.
방어전이 강요되는 상황이 되어, 코노에는 희미한 초조를 느꼈다.
그렇다면, 자신도 노래로 한층 더 지원을 더하면 된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해 보는 수밖엔 없다.
찬아가 흐트러지면, 투아는 패배한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코노에는 눈을 감는다.
눈꺼풀 안쪽의 어둠에서도, 라이와 키르가 싸우고 있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노래를 통해 이어져 있기 때문일까.
이윽고, 어둠 속에 녹색과 흰색의 빛이 일었다.
라이와 키르, 각자가 휘감고 있는 「노래」일 것이리라.
흘러넘칠 듯이 번쩍이는 녹색의 빛과는 반대로, 하얀 빛은 약하디약하게 사라지려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패배한다.
──지고 싶지 않다.
목 안쪽으로 소리 없이 웃는 리크스의 목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난다.
인내력 싸움이라고 말했다.
여하튼, 질 수는 없다.
다시, 하얀 불꽃이 몸 안쪽에서 솟아난다.
불꽃은 조금씩 속도를 더해 기세를 늘리고, 리듬을 형성해 간다.
고동이 포개어져, 선율이 격렬한 것으로 변한다.
고열을 수반한 강한 빛이, 코노에의 몸을 미어뜨리듯이 비어져 나간다.
둥실 하고 몸이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정도로 강한 빛이었다.
송두리째 기력이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 들어, 코노에는 고통에 이를 악문다.
의식도 사고도 온통 하얗게 메워지며, 정신을 차리니 입술은 무슨 말인가 자아내고 있었다.
희미하게 눈을 뜬다.
눈부신 빛의 다발이 라이의 곁으로 흘러가, 그 몸을 에워싸고 있다.
라이가 휘두르는 검에, 한층 더 강한 빛이 깃들었다.
「……크윽」
우르가 괴로운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팔을 할퀴는 손을 멈췄다.
뚝뚝, 하고 검붉은 피가 지면에 떨어진다.
거의 동시에 라이와 키르가 맞부딪쳐, 검이 엇갈린 순간, 격렬한 소리와 함께 빛이 흘러넘쳤다.
「크악……!」
신음 소리와 함께, 키르의 녹색 빛이 완전히 사라진다.
빛을 발하는 검에 비추어진 라이의 얼굴은──또, 웃고 있었다.
평소의 냉정한 표정과는 완전히 다르다.
몹시도 즐거운 듯이 잔혹한 미소를 띄우고 있다.
내질러진 라이의 단검이, 키르의 검을 강하게 튕겨낸다.
「……젠장」
「키르!」
라이가 사이를 두지 않고 다른 한쪽 손에 들고 있던 장검을 휘두른다.
그러나, 틀림없이 키르를 노릴 것이라 생각했던 칼날은, 완전히 예상 밖의 움직임을 보였다.
「!?」
은색의 머리칼이 나부낀다.
라이가 달렸다.──우르를 향해서.
「……우르!?」
「윽!」
투아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찬아를 노려라.
머릿속 한 구석에서, 냉정한 목소리가 중얼거린다.
은백의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날카로운 검의 끝은 공중에 머무르는 일 없이, 오로지 한 곳으로 내질러진다.
하얀 빛이, 작렬했다.
「……크악, ……」
뚝 하고, 검은 선율이 끊겼다.
우르의 눈이 그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벌려지고, 꺾일 듯한 정도로 목이 젖혀진다.
사냥감의 급소를 찌른 검은 배를 관통하여, 등에서 붉게 물든 날의 끝을 내보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춘 가운데, 라이가 우르의 몸에서 천천히 검을 빼낸다.
경련하는 우르의 입가에서 피가 넘쳐흐른다.
「…………, ……우르!!」
경직된 몸이 풀어진 키르가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는 분신(分身)의 곁으로 달려간다.
라이의 차가운 시선이, 그 모습을 조용히 좇는다.
「우르, ……우르, ……어이」
피를 흘리는 몸을 안아들고, 키르가 울 듯한 목소리로 부른다.
아직 스스로의 선율에 둘러싸인 채, 코노에는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쓰러진 찬아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투아.
떨리는 등은, 몹시도 조그맣게 보였다.
그 모습은…… 짝을 잃어가고 있는, 보통의 고양이다.
조금씩, 빛의 선율이 멀어져 간다.
노래의 발현 탓인지 몽롱해져 있던 의식에, 돌연 강한 감정이 밀려들어 왔다.
저 쌍둥이 고양이의 감정이다.
가슴이 으깨질 듯한 애달픔이 끝없이 흘러넘친다.
그러나, 곧바로 코노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열하는 키르의 등 뒤──
치켜올려진, 검이 보였다.
「그만해!!」
순간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움찔, 하고 몸을 떤 것은 키르였다.
라이는 몹시도 완만한 동작으로 검을 내리고, 천천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순간, 등줄기가 얼어붙을 것만 같아진다.
너무나도 차갑기 그지없는 눈동자였다.
「어째서 막는 거지」
「이만하면 됐잖아. 찬아가 쓰러지면, 투아는 싸울 수 없어」
「적을 도망치게 하는 건가」
키르가 귀를 숙이고,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라이를 노려본다.
「싸울 수 없으면, 패배를 인정한 거나 똑같아」
패자를 필요 이상으로는 궁지에 몰아넣지 않는다.
그것이 고양이끼리의 암묵적인 룰이다.
「어떨려나」
라이가 한쪽 눈을 가늘게 좁히고, 꿰뚫는 듯이 코노에를 바라본다.
날카로운 눈초리에 꼬리가 떨렸지만, 코노에도 눈에 힘을 실어 시선을 되받는다.
라이의 꼬리가 짜증스럽게 좌우로 흔들린다.
공기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 때, 수풀이 크게 흔들렸다.
시선을 돌리고, 놀란다.
뛰어나온 것은, 아사토였다.
「……아사토」
코노에와 라이의 의식이 다른 데로 돌아간 사이를 노려, 키르가 움직임을 보였다.
재빠르게 우르를 안아 일으키고, 나무숲 속으로 도약한다.
코노에는 반사적으로 쫓아가려 했지만, 그 자리에 멈춰섰다.
「괜찮은 거야?」
당황한 듯이 돌아보는 아사토에게, 고개를 끄덕여 답을 한다.
라이도 딱히 움직이려고는 하지 않고, 검을 칼집에 집어넣고는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정말로 물러빠진 바보 고양이로군」
「……네가 분별이 없을 뿐이잖아」
노려보면서도, 코노에는 내심 무언가가 마음에 걸리는 것을 느꼈다.
교전 중에 엿본, 라이의 웃음.
순수하게 싸움을 즐기고 있기 때문인 것이라고,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좀 더 냉혹하고, 악의조차 느껴지게 하는 것 같은 웃음이다.
마치, 목숨이 사라지는 순간을 즐기기라도 하고 있는 듯한──
그 찬아, 우르는…… 죽은 것일까.
「방금 전의 고양이……」
키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아사토가, 내버려진 키르의 검을 주워들고 눈썹을 찡그렸다.
「……역시, 메이기의 고양이야. 냄새로 알 수 있어」
메이기──키라와 사이가 나쁜, 마도의 일족이다.
「메이기? 녀석들은 악마의 광신자들이잖아. 왜 리크스 아래에 붙어 있지」
「그건 오래 전의 이야기야. 신앙의 대상이 변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어. 그치만, 최근엔 조금 동향이 바뀌어 가고 있었어. 키라와의 싸움 이외의 일로 밖으로 나온 일은, 없었어. ……이런 식으로」
복잡한 빛이 스민 아사토의 시선이, 다시 키르가 사라진 나무숲을 향한다.
「어디의 고양이든, 리크스의 부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안 좋은 예감이 들어」
귀를 내리고, 아사토가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그때, 돌연 코노에의 시야가 기묘하게 흔들렸다.
「……!?」
「코노에?」
갑자기, 무릎에서 힘이 빠져 지면으로 무너져 내린다.
느닷없이, 맹렬한 피로와 아픔이 덮쳐들어 왔다.
「새로운 노래를 발동시킨, 그 반동일 거다」
「……제길, 일일이……」
무언가를 할 때마다 욱신거리는 몸이, 거추장스러워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곡조가 변함과 동시에, 무기에 이르기까지 흘러넘치는 힘을 느꼈다」
「……그거, 강한 거야?」
「몰라. 찬아의 노래에 대해서는, 란센의 찬아장에게라도 물어보는 게 어때」
「찬아장?」
「그 도시의 영주에게는 대대로, 선택 받은 찬아의 혈통을 지닌 고양이가 수호자로서 붙어 있다. 때로는 나라의 행방을 좌우하는 결단을 맡는 일도 있는, 중요한 존재다」
「찬아의 혈통…… 그런 게 있는 건가」
「수련을 쌓아서 억지로 힘을 끌어내고 있는 찬아지만 말야. 순정(純正)한 찬아에 비한다면, 대단할 건 없다」
거기까지 말하고, 라이는 등을 돌렸다.
「좀 전의 노래, 사용감은 나쁘지 않았어」
「…………」
「뭐야」
「……아, 아냐」
라이가 어깨 너머로 매서운 눈빛을 보내와서, 코노에는 무심결에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몸의 통증도 한 순간,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아무래도 라이의 입에서 악담 이외의 말이 나오면, 당황하게 되고 만다.
「…………」
아사토가 라이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낮게 으르렁대며 털을 곤두세웠다.
라이가 한쪽 눈썹을 들어올린다.
「너까지 뭐야」
「아무것도 아냐」
「그러면 위협하지 마라」
「안 했어」
무뚝뚝하게 말을 내뱉고, 아사토는 갑자기 등 뒤의 나무 쪽을 돌아보고, 손톱을 득득 갈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바보 천지로군」
질렸다는 듯이 혼잣말을 내뱉고, 라이가 한숨을 내쉰다.
맹렬히 손톱을 갈아대는 건조한 소리만이, 저물기 시작한 숲의 하늘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피로가 심했던 코노에가 움직일 수 없게된 것도 있어, 그날 밤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양의 달이 뜨는 새벽녘, 목적의 장소로 향하게 된다.
다음날은 쾌청했다.
그러나, 분명히 맑게 개어 있는 하늘은 어딘지 무겁고, 왠지 폭풍 전의 고요함을 예감하게 했다.
털다듬기 따위의 몸차림을 한 차례 끝내고, 물과 식량을 가볍게 섭취하고, 코노에 일행은 마침내 숲 안쪽으로 향했다.
북쪽으로 계속 나아가자, 녹색으로 봉쇄되었던 시야가 갑자기 트였다.
생각지 못했던 밝기에 눈을 가늘게 좁힌다.
그곳에는, 환상적인 광경이 있었다.
[ 사색의 빛으로 가득 찬 땅 ]
면적은 그리 넓지 않은 풀숲에, 빛이 끝없이 흘러넘치고 있다.
희미하게 비쳐보이는 적색, 청색, 황색, 녹색이 서로 겹쳐, 한마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색채를 자아내고 있다.
각각의 빛은, 풀숲을 둘러싼 사방의 바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거울처럼 매끄러운 표면이, 양의 달의 빛을 반사하고 있다.
이야기로 들었던 대로다.
「신기한 곳이네……」
주변의 광경에 눈을 빼앗긴 채, 아사토가 불쑥 중얼거렸다.
그것은 아름답다고도 말할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코노에로서는 도리어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발을 들인 후 몸 속 깊은 곳…… 어딘가가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위 부근일까.
질척질척 하고 혈액이 욱신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나쁘다.
이 장소는, 무언가 이상하다.
보이지 않는 천으로 감싸여져 있는 듯한, 불쾌한 압박을 느낀다.
「사색의 빛으로 가득 찬 땅. 열어야 할 문은 그곳에 있다, 인가」
그것은, 리크스의 말이었다.
생각에 잠긴 것인지, 라이는 느릿하게 꼬리를 흔들며 발치의 지면을 노려보고, 이윽고 코노에를 향해 턱짓을 했다.
「거기에 서 봐라」
가리켜진 것은, 사색의 빛이 교차하고 있는 풀숲이었다.
달리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채, 코노에는 우선 풀숲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빛이 한 군데로 모이는 곳에 다다르자, 가득 찼던 물이 흘러넘치듯이 한층 더 강하게 반짝였다.
빛의 막 너머로 보는 세계는 옅게 색이 겹쳐져, 미미하게 일그러져 보인다.
몹시도 신비한 광경이었다.
잠시 동안 멈춰 서 보았지만, 무언가가 일어나는 기색은 없다.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냐?」
「뭘 말이지」
「……모르겠어. 의식이라던지」
코노에가 말을 우물거리자, 라이가 한숨을 쉬었다.
「속은 건가」
「이 바위, 희한하네. 이런 바위, 본 적 없어」
아사토가 네 개의 바위 중 하나에 다가가, 무언가를 알아챈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문장(紋章)?」
바위 위쪽에 각인 같은 것이 있었다.
낡아서 바래 있었지만, 크기가 큼직해서 코노에의 위치에서도 알 수 있다.
각인은, 네 개의 돌 모두에 있는 것 같았다.
「……잠깐」
돌연, 라이가 눈초리를 날카롭게 좁혔다.
「이 형상……」
코노에도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 순간──두근 하고, 심장이 맥박쳤다.
각인에, 눈이 못박힌다.
꼬리 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저것은 보통의 각인이다.
그렇지만──
라이가 험악한 표정으로 코노에를 본다.
아사토도, 깜짝 놀란 듯이 뒤돌아보았다.
「이거, ……이것도, 이쪽도. 전부──코노에의 반점이랑, 똑같잖아」
그러나, 그 말은 코노에에게는 닿지 않았다.
코노에는 완전히 다른 이유로, 바위의 각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뱀?」
──각인이, 아무래도 뱀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기분 탓이다.
문장 따위 엇비슷한 모양의 것도 많다.
그렇게 생각해도, 소용 없었다.
저것은, 뱀이다.
떨리는 손끝을 자신의 입술에 닿게 한다.
이 입 안으로 들어가, 목구멍을 미끄러져, 내장을 물어뜯은, 그──뱀.
매끈매끈한 비늘과 두툼한 살의 감촉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내막(內膜)이 질질 끌려간다.
「……윽, 크헉……」
갑자기 토기가 치밀어 올라와, 코노에는 손으로 입을 누르고 무릎을 꿇었다.
위 속에서 뱀이 난폭하게 날뛰고 있다.
그날 밤 삼켰던, 네 마리의 뱀이.
「……코노에? 왜 그래?」
누군가의 손이 어깨를 붙잡는다. 누구인지, 인식할 수 없다.
부얘지는 시야는 빛과 풀숲의 녹색 밖에 포착하지 못한다.
멀게 가깝게 핀트가 나가 있다.
괴로운 호흡을 헐떡이자, 타액이 뚝뚝 떨어져 넘쳤다.
위와 목구멍이 타오른다.
「크앗, ……핫……」
끝내 참아내지 못하고, 구토한다.
날카로운 귀울음.
무엇도 알 수 없다.
괴롭다.
심장 고동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흐릿해지기 시작한 코노에의 사고에, 목소리가 울렸다.
「기억하고 있는가, 이 감촉……」
「……!?」
목소리는, 몸 안쪽으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당황해서 일어서려 하다가, 코노에는 경약한다.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짙은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색의 판별조차 되지 않는다.
이따금, 라이와 아사토인 듯한 목소리도 들렸지만, 곧바로 멀어져버린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몸 안에서 날뛰는 뱀이다.
위가 열을 발하고 있다.
내리쳐지는 가느다란 꼬리의 감촉에 몸을 움츠리고, 신음한다.
무방비한 체내를 직접 세차게 뒤흔드는 아픔.
본능이 경종을 울린다.
정신을 놓지 마라.
손으로 더듬어 자신의 꼬리를 잡아끌어, 세차게 쥔다.
의식을 잃지 않도록, 손톱을 세운다.
「윽, ……크흑……」
「코노에……!」
급소에 파고드는 아픔에 이빨을 드러냈지만, 그럼에도 느껴지는 모든 것이 차츰 멀어져 간다.
최후의 의식에 매달린다.
손을 놓지 마.
놓으면, 더 이상──
뺨에 닿는 선뜩한 감촉에 눈을 뜬다.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차갑다고 느낀 것은,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이곳은──어디지?
일어나려 하다가, 위를 찌르는 아픔에 얼굴을 찡그린다.
아직, 뱀이 날뛴 위화감이 뚜렷이 남아있다.
옷 너머로 배를 쥐고, 한쪽 팔로 지탱하며, 코노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상태로, 털썩 하고 엉덩이를 붙이고 주저앉는다.
라이와 아사토는 어디에 있지?
다시금 둘러본 시계(視界)는, 흐릿하게 부예져 있었다.
눈이 흐려진 건가 싶어 몇 번 깜빡이지만, 아니다.
풀숲이나 네 개의 돌은 없고, 짙은 안개의 저편에는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손이 닿은 곳을 보자, 바닥이 없다.
아니, 확실히 손은 짚어져 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들여다 보아도, 아무것도 없다.
심장이 두근두근 하고 맥박치는 소리가 유달리 똑똑히 들려온다.
신경 구석구석까지 곤두세우며, 코노에는 숨을 죽이고 주위의 기색을 살폈다.
여기가 어디인 것인지, 무엇이 일어나려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타액을 넘기고 처음으로, 목이 말라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꼬리 끝만이, 긴장을 나타내듯이 작게 떨렸다.
두근, 두근.
별안간 들린 소리에, 흠칫 하고 코노에의 귀가 떨린다.
태동 같은, 무겁고 눅눅한 소리다.
긴장이 높아져, 무심결에 바닥에 손톱을 세운다.
보이지 않는 바닥은, 딱딱한 듯하나 손톱 끝이 희미하게 잠기는, 기묘한 감촉이 들었다.
이윽고, 음악이 들려왔다.
멀게 가깝게, 환상과도 같은 선율이 울린다.
거기서, 코노에는 문득 깨닫는다.
이것은, 그 꿈과 똑같지 않은가.
똑같다면, 이 뒤에 오는 것은──
「……윽」
마치 코노에의 사고를 읽어내기라도 한 듯이, 밀어닥쳐 오는 녹색의 빛이 사방으로 튀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되고, 아플 정도의 빛이 시야를 차단시킨다.
다음은, 뱀이 올 차례다.
스륵스륵 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시력을 뺏긴 사이에 휘감겨 오는 것이다.
방어 자세를 취한다.
그 감각만은, 싫다.
초조함이 목덜미를 훑고 내려간다.
꼬리의 털이 팽팽하게 부푼다.
눈부심을 견디면서도 코노에가 눈을 뜨려 하자, 다시 빛이 덮쳐왔다.
이번엔, 황색의 빛이다.
그 뒤로도 연이어 청색, 적색의 빛이 부딪쳐, 작렬했다.
아무리 굳게 눈을 감아도, 너무나 밝은 빛의 색이 눈꺼풀 안쪽으로 비쳐 보인다.
육체적으로 데미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코노에는 충격을 받았던 때처럼 이를 악물고, 숨을 죽였다.
녹색, 황색, 청색, 적색.
꿈의 뱀과 같은 색이다.
뱃속에서, 뱀이 꿈틀거리고 있다.
최후의 빛의 여운이 사라진 후, 정적이 찾아왔다.
소리도 기척도, 무엇도 없다.
수상하다는 생각에, 천천히 눈을 떠본다.
펼쳐진 것은, 새카만 어둠이었다.
주위로 시선을 돌려도,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짙은 어둠의 한가운데에, 코노에는 주저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유일한 소리처럼, 심장만이 몸 안에서 고동을 울리고 있다.
귀의 바로 근처에서, 맥동한다.
어둠이, 무겁다.
손바닥에 희미하게 땀이 스민다.
도망치려 해도, 이 상태로는 어디로 향하면 좋은지도 알 수 없다.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게 취하여, 가만히 숨을 죽인다.
긴장이 감도는 침묵 속, 정면에서 무언가가 흔들렸다.
폭발해버릴 듯한 심장을 내리누르고, 코노에는 지그시 시선을 모았다.
자연히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작은 불꽃이 전방의 상공에 켜져 있다.
녹색의 불꽃이다.
뱀의 혀끝처럼 어렴풋이 흔들리는 모양은, 어둠을 밝히기에는 너무도 불안하다.
불은…… 싫다.
무의식중에 뒷걸음친다.
손에 밴 땀이, 점점 심해져 간다.
등 뒤에서 소리가 나, 몸을 경직시킨다.
안 좋은 예감을 느끼며, 코노에는 천천히 돌아보았다.
역시──새로운 불꽃이 생겨나 있었다.
이번엔 노란 불꽃이다.
거기에 좌우의 어둠에도 청색, 적색의 불꽃이 일어난다.
사색의 뱀과 같은 색을 한 불꽃이, 코노에를 둘러싸듯이 떠올라 있다.
「……싫어」
눈을 크게 뜨고, 경직된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나치게 긴장된 신경이 파열할 것 같다.
눈을 깜박이는 것도 잊고, 네 개의 불꽃을 조급하게 둘러본다.
기댈 데 없는 꼬리가 부풀어, 전율한다.
──도망치지 않으면.
어디라도 좋다.
여하튼, 이 포위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어디를 향해도 불꽃이 있다.
돌파해 버리자는 기세로, 코노에가 달리기 시작하려던 때였다.
돌연, 네 개의 불꽃이 일제히 치솟아올라, 격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
놀라서 움직임을 멈추고, 조금 물러선다.
불꽃은 코노에를 위협하는 듯이 탁탁 튀는 소리를 내며, 그 끝을 흔든다.
불이──불이.
궁지에 몰린다.
원형의 진 중앙에서, 하릴없이 귀를 숙인다.
몸을 지탱하는 손이 미끄러져, 바닥에 어깨를 부딪쳤다.
그때, 코노에의 눈은 불꽃 속에서 무언가를 포착했다.
불에 타 무너져 내릴 듯한 이성이, 가까스로 비끄러매인다.
열에 얼굴을 찡그리며,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고 눈을 집중시킨다.
──그림자다.
네 개의 불꽃 각각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누군가 있다.
어안이 벙벙한 코노에의 귀에, 이질적인 소리가 울렸다.
「아- 아-, 귀도 꼬리도 쪼그라들어서는, 꼴사납네-」
「후후, 그렇게 겁내지 않아도 괜찮은데」
「악취미로군. 어서 끝내자」
「조급하게 굴지 않아도, 곧 끝난다」
그것이 목소리라고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몇 초 지나고 나서였다.
누군가가 낮게 입을 다물고 웃는 소리가, 선명한 색채의 불꽃과 함께 흔들린다.
자연히 목에서 위협의 소리가 새어나온다.
위험하다, 고 머릿속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두근 하고 뱃속 깊은 곳이 맥박쳐서, 코노에는 숨을 멈췄다.
곧바로 얼굴을 찌푸리고, 거친 숨을 몰아쉰다.
뱃속에서, 뱀이──환희에 크게 몸을 비비꼬고 있다.
동시에, 몸의 반점에 열이 일었다.
펄쩍 뛸 정도는 아니지만, 서서히 피부가 익는 것 같아, 뜨겁다.
「……큭」
「괴로워하고 있다」
「어쩔 수 없잖아-. 저 녀석 안에 있는 우리들의 분신이 반응하고 있다고」
「이제 곧이다. 과연 그는 흔들림 없는 마음의 소유자인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손에 타락하는 것일까…… 기대되는 걸-」
「내가 가지겠다」
「어머, 지나친 자신감이네」
「오래간만의 엄청난 사냥감이다. 놓치지 않는다고」
머리 위에서 가지각색의 목소리가 쏟아져 내린다.
그 사이에도 몸 안쪽에서는 끊임없이 뱀이 날뛴다.
반점은 계속해서 열을 발해, 코노에는 조금씩 희롱당하며 죽어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헐떡이고 있었다.
괴로워.
모든 감정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거대한 덩어리가 된다.
미쳐 날뛰는 일도 없이, 그렇다고 해서 가라앉는 일도 없이, 거품을 일으키며 멈춰 서 있다.
게워내는 일도 할 수 없는 채로, 얼굴을 찡그리고 이를 악문다.
「윽, ……크흑, ……」
「괴롭다네. 그럼 잽싸게 가볼까나. 전부, 이걸로 끝난다」
「재미있겠군」
「…………」
「어떻게 될까나」
희미하게 눈을 뜨고, 낌새를 살핀다.
부예진 시야 속, 황색의 불꽃이 한층 더 세차게 타오르고, 조금씩 잠잠해져 간다.
불꽃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던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 부분에 불거져 나온 실루엣에, 눈이 크게 벌어진다.
귀가 아니다.
저것은…… 뿔이다.
──악마다.
「여어, 들었겠지. 나는 베르그. 『쾌락』을 관장하는…… 정령? 신? 악마인가? 뭐 어찌됐건 상관 없지만 말이지」
보이지 않는 계단을 내려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공중을 딛고서, 악마…… 베르그가 코노에의 눈앞에 섰다.
은색의 짧은 머리칼에, 코노에보다도 훨씬 커다란 체구.
빈틈 없는, 예리한 눈빛.
잘 보니, 고양이와는 다른 철사 같은 꼬리가 흔들거리고 있다.
압도되어서, 숨을 삼킨다.
곁에 선 것만으로도 공기가 팽팽히 조여왔다.
이전에 싸웠던 「그림자」가 아니다.
비교가 되지 않는, 힘 있는 자의 여유가 피부에 전해져 온다.
이것이, 악마인가.
뱃속에서, 황색의 뱀이 기쁜 듯이 몸을 비꼰다.
「이렇다 저렇다 말이라도 하라고, 어이」
언짢은 듯이 미간을 찌푸린 베르그가 발을 뻗어, 웅크린 코노에의 턱을 발끝으로 들어올렸다.
반사적으로 혐오를 느껴, 코노에는 무의식적으로 세차게 뿌리치듯이 얼굴을 돌렸다.
고통을 눌러 죽이면서도 노려보고, 바싹 마른 목에서 목소리를 쥐어짜낸다.
「……어, 째서…… 무엇, 때문에…… 나, 에게…… 큭……」
베르그가 휘파람을 분다.
「어째서냐고? 그렇게 알아먹은 건가. 역시 고양이다. 품격이 높으셔. ……이봐. 너, 네 입장을 알고 있는 거야?」
장신을 구부려 웅크리고 앉은 베르그로부터 물러나려 하자, 한쪽 손으로 어깨를 붙잡혔다.
힘 조절을 하지 않은 손가락이 용서 없이 파고들어와, 얼굴을 찡그린다.
「반항적인 눈이로군. 열받는다고. 그치만, 그런 거 싫지 않아. 괴롭히는 보람이 있으니까 말야」
예리한 빛이 깃든 눈동자가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
그만 눈을 돌릴 뻔할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압도적이다.
모든 것이 다르다.
노려보아진 것만으로, 숨이 멈출 것 같았다.
그런 코노에의 심경을 꿰뚫어보듯이, 베르그가 웃는다.
어깨에 박힌 손가락에 한층 더 힘이 들어가, 이를 악물었다.
「자, 내 눈을 봐」
「……싫, 어……」
「싫기는-」
어깨가 끌어당겨져, 얼굴의 거리가 바싹 좁혀진다.
눈을 내리깔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베르그의 눈동자에 괴이한 빛이 흔들거린다.
「윽!! ……크악……!」
순간, 강한 전기 충격과 같은 통증이 꼬리부터 전신을 타고 흘러, 코노에는 무의식중에 등을 젖히고 소리를 질렀다.
뭐지, 지금 건──
스스로도 놀랄 만한 큰 소리에 수치심이 치밀어 올라, 손등으로 입가를 막는다.
그러나,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몸 구석구석에 노곤히 남아, 오히려 허리에서 한층 더 달콤한 파동이 끓어 올랐다.
강렬한 감각에, 온몸의 솜털이 단번에 곤두선다.
아플 정도로 부푼 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으핫, 윽……, 크……윽」
「오- 오-. 불쌍하게도, 귀가 납작해졌어. 너, 보통 녀석들보다 느껴버리는 거지? 고생이겠네-」
낮게 웃는 목소리가 귀의 솜털에 닿아, 무심결에 한숨을 흘린다.
내장 안에서 날뛰는 뱀과 발열하는 반점.
그것들의 고통도 파동에 휩쓸려 사라져 간다.
몸이 뜨겁다.
이런 것은, 모른다.
하반신이 욱신욱신 하고 쑤신다.
미지의 욕망이 출구를 찾아, 소용돌이치며 사납게 날뛰고 있다.
현기증이 난다.
눈이 크게 벌어지고, 희미하게 열린 입술에서 타액이 흘러넘친다.
조급한 자신의 호흡에조차 반응해버릴 정도로, 원한다.
──무엇을.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다.
혼란스러움에, 겁이 난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무엇이──
「알겠나. 선택하는 건 너다」
[ 애욕을 ] → 선택
[ 금욕을 ]
「받아들였다. 그럼-」
꿈을 꾸었을 때와 똑같이, 자연히 떠오른 말을 필사적으로 사고 속에서 선택해 간다. 그러자, 무언가가 빠져나간 것처럼 몸에서 충동이 가시고, 베르그의 모습도 연기처럼 싹 사라졌다.
후에는, 뱃속에서 뱀이 꿈틀대는 위화감과 반점의 열만이 남는다.
흐트러진 숨에 가슴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코노에는 경직되었던 사지를 내뻗었다.
「…………」
눈을 크게 뜬 채로, 마음을 놓는다.
머릿속은 새하얘져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경악과, 굴욕과, 분노와, 공포가 모조리 뒤섞여, 사고의 허용량을 초과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야에 비치는 광경에, 깜짝 놀란다.
어둠의 천장에서 황색의 불꽃이 사라지고, 다음으로 불타오른 것은 녹색의 불꽃이었다.
──또, 오는 건가.
불쾌한 달콤함의 여운이 남아있었지만, 코노에는 입가를 훔치고 곧바로 몸을 일으켜, 낮게 웅크리고 자세를 취한다.
베르그의 때와 똑같이, 악마가 조용히 내려섰다.
「이제, 내 차례다. 베르그를 상대하는 건 힘들었겠지. 성적인 충동 따위 피로해질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광택 있는 검은 옷으로 호리호리한 몸을 둘러싼 악마가, 겉보기와는 반대되는 가벼운 목소리를 낸다.
얼굴의 윗부분 반절은 가면 같은 것으로 덮여 볼 수 없었지만, 입술이 뚜렷이 크게 미소짓는 모양을 하고 있다.
등 뒤에는 역시, 방금 전의 베르그와 똑같은 꼬리가 있었다.
저것이, 악마의 꼬리인 것이겠지.
이번에는, 녹색의 뱀이 뱃속에서 몸을 비틀며 뒹군다.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프라우드. 관장하는 것은 『희열』이다. 이미 알고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내 것도 선택받지 않으면 안돼」
「……어째서, 무엇 때문에 당신들이, 나를……」
삐걱이는 몸을 필사적으로 지탱하며, 코노에는 털을 곤두세우고 프라우드를 노려본다.
온몸이, 지나친 통증으로 감각이 마비되기 시작하고 있다.
어디가 아프고 뜨거운 것인지, 이미 알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프라우드가 양 팔을 크게 벌리고, 기쁜 듯이 고개를 기울인다.
「아아, 좋은데. 그런 모습은 솔직히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걸-. 자그마한 털뭉치 같은 존재가 필사적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털을 곤두세우고 있어. 정말로 기특한데」
「……윽, 리크스의, 명령인가……?」
「리크스? 그런 이야긴 어찌 되든 상관 없잖아. 지금, 네 눈앞에 있는 건 나니까. ……자」
미소를 띤 채로, 프라우드가 상체를 가볍게 구부려, 벌리고 있었던 양 팔을 천천히 가슴 앞에서 교차시켰다.
「나의 『기쁨』을, 너에게도 맛보게 해주지」
속삭이는 듯한 말꼬리로 말을 전하고, 프라우드의 미소가 무자비한 것으로 변한다.
교차된 프라우드의 팔이 기세 좋게 펼쳐지고, 날카로운 녹색의 바람이 스쳤다.
정면으로 맞아, 코노에는 양 팔로 머리를 감싸며 얼굴을 돌린다.
「……윽, ……!?」
심장이 세차게 맥박치고, 눈이 크게 벌어졌다.
목소리가 들려온다.
환청인가 하고 귀를 흔들지만, 아니다.
목소리는 확실히 머릿속에서 반향하고 있다.
──비명.
절규.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
울음 소리.
그것들이 조금씩 늘어나, 이윽고 커다란 물결이 되고, 덩어리가 되어 밀려들어 온다.
눈꺼풀 안쪽에서, 이마 안쪽에서, 귀 안쪽에서, 무수한 목소리가 소리치고 있다.
어른과 아이, 수컷과 암컷이 한데 섞인 최고의 불협화음에, 정신이 이상해져 버릴 것 같다.
그러나 기묘한 것은, 그것들에 대한 코노에 자신의 감정이었다.
혐오나 공포 따위, 티끌만큼도 느끼지 않는다.
느껴지는 것은──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이다.
목소리가 거칠게 휘몰아치면 휘몰아칠수록, 몸의 심지가 녹아드는 듯한 흥분을 느껴, 코노에는 당황한다.
「후후. 생명 있는 자가 가장 극한에 도달하는 순간은, 뭐라고 생각해?」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목숨을 빼앗기는 때야. 그때, 영혼은 소리치지. 살려고, 죽음이라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려고」
「이 순간이야말로, 생명의 불꽃은 불타오르지. 그것을 맛보다니, 극상의 기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목숨을 빼앗기는 순간?
그렇다면, 이 목소리들은.
가슴을 간지럽히는 흥분에서, 흉폭한 충동이 탄생된다.
심장이 다시 크게 뛰어올랐다.
충동은, 혈액이 되어 몸 속을 질주한다.
──산산이 부서뜨리고 싶다, 이 손으로 모든 것을.
흩날리는 피는 달콤하고, 속이 드러난 내장은 사랑스러운 고동을 새긴다.
일상에서는 절대 드러나지 않는 피부 밑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다.
웅크린 채로, 바닥을 향해 내뱉어지는 거친 숨은, 뜨겁다.
나는,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은 건가……?
「──아니야……!!」
「즐겨주고 있는 것 같네. 그럼 실제와 비슷한 거긴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서비스 하지」
프라우드가 한 손을 쳐들고 손가락을 튕겼다.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나고, 직후.
「……으흑, 크……악……!!」
오들오들 떨며, 코노에는 몸을 경직시켰다.
등에서부터 배에 걸쳐, 무거운 충격이 있었다.
마치, 커다란 날붙이에 꿰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설마──?
웅크린 채 배 부근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경악의 다음으로 뒤늦게 아픔이 찾아왔다.
예리한 것에 내장을 도려내지고 있는 감각이, 확실히 있다.
호흡도 뜻대로 되지 않는 코노에의 뺨을, 사뿐히 바람이 스쳐 지났다.
「자. 나를 위해서 선택해 줘」
[ 희열을 ] → 선택
[ 죄악을 ]
「받아들였어, 고마워」
잡아 찢기는 듯한 통증 속에서 어떻게든 말을 선택하자, 모든 것이 빠져나가, 해방되었다.
프라우드의 모습도 배를 꿰뚫는 감각도,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다.
녹초가 되어 바닥에 가로누우며, 코노에는 공허한 시선을 상공으로 돌린다.
녹색의 불꽃이 사라진다.
앞으로, 둘.
어째서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친 가운데, 온갖 악의 근원인 그 이름을 확신한다.
──리크스.
정체된 사고에 분노만이 선명한 색을 떠올린다.
이번에는 파란 불꽃이 타오르고, 다른 악마가 내려선다.
이제, 도망치는 것은 무리라고 몸이 호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상체만은 일으키고서, 코노에는 악마를 노려본다.
이번 악마는 왜인지 슬픈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잠시 동안 코노에를 바라보았다.
낯빛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고, 묵직해 보이는 의상에 몸을 감싼 모습은 모든 것을 거절하는 분위기가 풍긴다.
「나는, 카르츠다. 『비애』를 관장하지. 고통을 안겨주고 있군. 어서, 끝내도록 하지.」
차분한, 그렇지만 어딘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카르츠라고 이름을 밝힌 악마가 코노에 앞에 무릎을 꿇는다.
곁으로 다가오니 역시 본능적으로 경계가 먼저 일어나, 코노에는 털을 곤두세우고 작게 으르렁댔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팔이 뻗어져 와, 너무도 하얀 손이 머리에 닿았다.
파란 뱀이, 몸 속에서 크게 날뛴다.
「만지지 마……! ……윽!?」
곧바로 몸을 빼려 하다가, 흘러드는 감정에 움직임을 멈췄다.
이것은──잘 알고 있는 감각이다.
이제껏 공감했던 때에도 여러 번 느껴 왔다.
가슴이 으깨지는 듯한 슬픔에 차올라, 코노에는 세차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저 슬퍼서, 긴장을 늦추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리고, 소리쳐버릴 것 같았다.
「너도, 슬픈 운명을 짊어지고 있군. 좋아서 이런 곳에 있는 게 아니겠지」
「……어째서, 당신이…… 윽, 그런 걸……」
「세상사는, 때로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굴러가지. 우리들 또한 그렇다. 이런 방법은 본의가 아니지만…… 하는 수 없다」
카르츠의 손이, 머리카락에서 뺨에 걸쳐 살며시 어루만져 간다.
손이 지나간 장소로부터 슬픔이 스며들기라도 한 듯이 눈구석이 뜨거워져, 마침내 코노에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미안한 듯이 카르츠가 미간을 모은다.
「미안하다. 선택해다오」
[ 비탄을 ]
[ 기도를 ] → 선택
「확실히, 받아들였다」
말을 고르자 곧바로 비통한 감정은 가시고, 카르츠의 모습도 사라졌다.
몸의 감각이 마비되었었던 것도 있어, 베르그나 프라우드의 때와 비교하면, 맥이 빠질 정도로 간단히 끝이 났다.
묘한 공기를 지닌 악마였다.
남은 것은, 앞으로 하나.
머리 위에서 파란 불꽃이 사라지고, 붉은 불꽃이 타오른다.
마지막으로 내려선 악마는, 등 뒤에서 흔들거리는 불꽃으로 착각될 정도의, 진홍색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끝이다. 꽤나 기다리게 했군」
천천히 다가선 악마가 무릎을 꿇고, 코노에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지칠대로 지친 몸은 방어 태세를 취할 기력도 잃어버렸지만, 억지로라도 어금니를 악물고, 적어도 눈만은 강한 의지를 담아 되받아보았다.
붉은 머리칼의 악마는 품평이라도 하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코노에의 턱에 손을 대고 얼굴을 위로 들어올렸다.
「……윽」
──뜨겁다.
턱에 닿은 손의 생각지 못한 온도에, 희미하게 귀가 떨린다.
「나는 라젤. 『분노』를 관장한다. 분노는, 모든 힘의 근원이다. 분노를 가지지 않은 자 따위는 없다. 네 눈에도, 깃들어 있군」
차분한 음성임에도 자신감이 엿보이는 확실한 어조로, 라젤이 희미하게 웃는다.
두 눈도 미소도 평온함이 깃들어 있고, 끝을 알 수 없는 기백이 전해져 온다.
몸 속에서, 최후의 붉은 뱀이 크게 꿈틀거린다.
「……선명한 분노다. 불꽃처럼, 선명한. 기력도 끈기도 소진되고, 그럼에도 마음은 포기하지 않아」
노래하듯이 말이 내뱉어지고, 턱에서 손이 떨어져 간다.
「네 안의 불꽃을 부추기겠다. 분명, 아릅답게 타오를 테지」
전방으로 내밀어진 라젤의 손이, 작고 붉은 불꽃을 켜올렸다.
시야에 포착한 순간, 홀린 듯이 눈이 떨어지지 않게 된다.
일렁일렁 흔들리는 혀와도 같은 움직임에, 심장이 크게 맥박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밝은 적색으로 눈동자가 물들여지는, 그런 착각을 느낀다.
끓어오르는 것은, 격렬한 분노의 충동이었다.
눈앞이 적에서 흑으로 캄캄해지고, 거친 호흡이 입술에서 흘러나온다.
동공은 바늘처럼 뾰족해지고, 꼬리에 힘이 실린다.
──파괴하고 싶다.
귓속에서, 머리가 깨질 듯이 지독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고조되는 어두운 흥분에, 웃음을 터뜨리고 싶어진다.
「네가 좋을 대로, 선택해라」
[ 업화를 ] → 라젤 엔딩
[ 구화를 ] → 바르도 루트 계속
「알았다」
라젤의 모습과 함께, 마침내 최후의 붉은 불꽃이 사라졌다.
불이 튀어오르는 소리가 끊기고,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조용해진 어둠에, 흐트러진 코노에의 호흡만이 녹아들어 간다.
머리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끝난, 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위 속에서 뱀이 꿈틀대는 위화감이 사라지고, 반점의 열도 식어 있었다.
지금의 자신은 눈물도 타액도 아무렇게나 흘러넘친 채로, 참담한 꼴이었다.
한심스러움에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하나의 산을 넘은 기분에, 이제 외견 따위는 어떻든 상관 없었다.
몸이 위로 향해진 채로 양 팔을 눈앞으로 들어올리고, 코노에는 깜짝 놀란다.
시선을 모으고, 아머의 자락을 들어올렸다.
미간에 힘이 실린다.
──사라져 간다.
반점이, 저주의 증표인 반점이, 사라져 간다.
빗물에 씻겨내려가듯이, 칠흑색이 투명해져 간다.
「어째서……」
중얼거림과 동시에, 돌연 어둠이 갈라졌다.
새하얀 빛에 휘감겨, 아플 정도의 눈부심에 눈을 감는다.
쿠웅, 하고 으르렁대는 듯한, 높다고도 낮다고도 할 수 없는 굉음이 나고,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
팔을 얼굴 앞으로 들어올리고 숨을 멈춘다.
그 정도로 격심한 풍압이었다.
돌연, 바람이 뚝 하고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