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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코노에는 라이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환한 하늘 아래에서 보는 란센은, 밤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어수선했다. 큰길에는 고양이와 노점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주술사를 찾아간다」
「주술사?」
「란센 근처의 숲에, 미래를 예견하는 주술사가 살고있다는 소문이 있어. 상당한 고령에 지식도 꽤나 깊은 모양이다. 너에 대해서도,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몰라」
「그 주술사가 있는 장소는, 알고 있는 거야?」
「자세하게는 몰라. 물어보면서 다니거나, 감으로 숲을 뒤지는 수 밖에 없겠지」
태연하게 되돌아온 대답에 입을 연다.
「닥치는 대로잖아, 당신」
「네 일이 예정에 없이 끼어든 거잖아」
그것은 확실히 말 그대로였다.
「될 대로 되는 수밖에는 없어. 나도 그다지, 란센을 잘 알고 있는 게 아냐. 일단, 술집을 찾는다」
라이의 뒤를 따라, 코노에도 발걸음을 옮긴다.
떨어져선 안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만 눈이 노점 쪽으로 향하고 만다.
요란스러운 장식물이 몹시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여관의 주인…… 바르도가 축제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가게 앞에 늘어서있는 것은 축제에 대비한 물건인 걸까.
한번 느긋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오고 가는 고양이의 물결에 휩쓸리며, 얼마 동안 길을 걷는다.
처음에는 시야에 정보량이 흘러넘쳤지만, 차츰 인식하지 않게 된다.
그저 잿빛의 광경만이 스쳐지나가게 된다.
그 속에서 돌연, 강렬한 색채…… 존재를 느꼈다.
시선을 되돌린다.
골목 안쪽에 고양이가 서 있었다.
──아니, 고양이가 아니다.
머리 쪽에 불거져 나온 것은 귀가 아니다.
저것은──뿔이다.
그 순간의 시간만이 천천히 흐른다.
심장이 크게 고동을 친다.
뇌리에서는 뱀이.
스륵스륵 꼬리를 매끄럽게 움직이며, 너울거리기 시작한다.
동공이 팽팽하게 조여진다.
발을 멈춰, 코노에는 골목 안쪽을 돌아본다.
「어이. 어디에 가는 거야. ……어이!」
라이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에는, 달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잿빛의 인파를 헤치고 골목 안쪽으로 향한다.
어둑하고 좁은 입구에 발을 들인다.
고양이 아닌 것은 통로의 깊숙한 곳에 멈춰 서 있었다.
아지랑이 같은 빛이 하늘하늘 흔들거리고 있다.
틀림 없다.
저것은, 악마다.
「……저건」
뒤쫓아온 라이가 곁에 서서, 골목의 안쪽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악마는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온다.
「……?」
지난번과 다르다.
눈앞의 악마에 감도는 아우라는 금색이다.
악마가 천천히 팔을 들어올린다.
또, 그 충격파인가.
이대로라면 큰길에 들어맞아 소란스러워진다.
「기다려!」
코노에는 검을 빼들고, 금색의 악마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빛도 충격도 없었다.
금색의 그림자가 치켜든 팔에 가느다란 전류가 흐른다.
그것은 불이 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팔 전체를 완전히 뒤덮는다.
다음 순간에는, 그림자도 코노에 쪽으로 돌진해왔다.
코노에는 곧바로 검을 휘두른다.
검의 끝은 단박에 그림자의 팔을 비스듬하게 갈랐다.
손에 와닿는 느낌이 없다. 타닥타닥 하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그림자의 움직임은 전과 다름이 없다.
아픔을 느끼지 않는 건가……?
전류에 감싸인 팔이, 내려쳐진다.
「……윽」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다.
그러나, 코노에의 귀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얼굴을 든다.
코노에의 등 뒤에서 튀어나온 장검이, 금색의 그림자의 미간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림자의 얼굴은 바로 옆에서 보아도 애매해서, 웃고 있는 입가 이외에는 특징이 잡히지 않는다. 지독하게 으스스하다.
이윽고, 검이 꽂힌 미간에서 작은 균열이 일어났다.
균열은 그림자 전신으로 퍼져간다.
똑같다.
숲 속에서 보았던 붉은 그림자와.
라이의 장검이 빼내지자 동시에, 금색의 그림자는 여리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이번에도 또, 허망하게 끝을 맞이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파편이 골목길의 어둠에 흩날린다.
「정말 바보로군, 너는」
라이의 질렸다는 듯한 목소리에 울컥하며 돌아본다.
「앞뒤 생각 안 하고 뛰어들지 마. 죽는다」
「어쩔 수 없잖아. 큰길까지 피해가 나면 소란스러워진다고」
「지금 것은……」
악마의 분신이라 말하려는데, 라이가 먼저 입을 연다.
「본체가 아니군」
「……알고 있는 거야?」
「마물류를 노리는 현상금 사냥꾼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어」
그렇다는 것은, 라이도 그쪽의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쓸데없이 체력을 소모했다」
검을 칼집에 넣고 코트를 나부끼며, 라이는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라이의 뒤를 쫓아가며, 코노에는 골목을 돌아본다.
어째서, 악마의 분신이 시가지 안에까지 나타난 것인가. 숲이라면 그런대로 이해하겠다.
역시 자신이 목적인 걸까.
불안을 가슴에 품으며, 코노에는 큰길로 향했다.
큰길의 변두리로부터 나있는 한 길에 들어간다.
좁고 어두운 뒷골목과는 다르게, 약간 폭이 넓은 길이다.
점차로 떠들썩한 혼잡함은 멀어지고, 쇠퇴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길가에 누더기를 걸치고, 웅크리고 앉은 부랑자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로 가는 거야」
「술집이다. 바깥쪽보다 안쪽에 있는 술집이 여러 모로 정보를 입수하기 쉬워」
명백하게 눈빛이 이상한 고양이와 엇갈린다.
한쪽 팔이 없었다──실구 발병자겠지.
그러고 보면, 토키노가 란센에서도 실구의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큰길에서는 발병자를 찾아볼 수 없다.
발병한 자는, 안쪽……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가지의 불결한 부분으로 숨어들어 가는지도 모른다.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큰길과는 다른 조악한 가게가 늘어나, 코노에는 무의식적으로 경계하며 털을 곤두세운다.
전방에, 벽에 기대어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다.
두 마리 모두 전신을 약간 때가 묻은 코트로 뒤덮어 감추고 후드를 쓰고 있다. 자연히 그쪽으로 눈이 향한다.
두 마리는 술인 듯한 병을 손에 들고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라이와 코노에가 마침 그곳을 지나가자 말을 걸어왔다.
「어이」
라이와 함께 발을 멈추고, 돌아본다.
두 마리의 얼굴은, 어느 쪽도 후드의 그림자가 져서 보이지 않는다.
「뭐야」
「어디로 가지?」
「상관 없잖아」
라이가 냉랭하게 받아치자, 두 마리는 얼굴을 마주보고 킥킥거리며 웃었다.
「야단맞았어」
「야단맞았네」
「상관 없다고」
「상관 없는 걸까」
몹시도 비슷한 말투의 목소리가 번갈아 말을 나눈다.
「……기분 나쁘네」
「신경쓰지 마. 간다」
재촉 받고, 다시금 걷기 시작하려 한다.
「까만 고양이 데리고, 어디 가는 거야」
「저주 받은 고양이 데리고, 어디 가는 거야」
연속해서 들린 말에 발을 멈췄다.
지금, 뭐라고 했지?
돌아보자, 두 마리의 고양이가 나란히 서 있었다.
두 마리는 각각 손에 들고 있던 병을 기세 좋게 치켜들고, 지면으로 내던진다.
병이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린다.
「까만 고양이는, 까맣게 된 거지」
「까만 고양이는, 원래는 다른 색이었지」
「어쩌다 까맣게 된 거야?」
「어쩌다 까맣게 된 걸까나?」
「……너희들, 뭐야」
코노에는 두 마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도발이다. 걸려들지 마」
라이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도발──그렇겠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물러설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두 마리의 고양이가 얼굴을 마주보며, 경쾌하게 웃는다.
「가르쳐줄까, 우르」
「가르쳐주자, 키르」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듯이 끄덕이며, 두 마리가 다시 이쪽을 향했다.
각자 후드를 벗는다.
똑같은 얼굴이 두 개, 나타났다.
쌍둥이인가.
머리카락 색 이외에는 분간이 되지 않는다.
라이가 경계를 드러낸다.
코노에도 마찬가지였다.
두 마리로부터 흔들 하고 검은 아우라가 피어오른다──그런 환영을 본다.
평범한 부랑자가 아니다.
「네놈들, 누구냐」
「뭐라고 생각해?」
「뭘까나」
「알아봤자 허사다」
「허사라고」
「너희들 여기서」
「죽을 거니까」
엷은 웃음을 띄운 채, 우르라고 불린 쪽의 고양이가 코트를 제끼고 한쪽 팔을 치켜든다.
그 팔에 눈을 빼앗겼다.
몇 개고 붉은 선──상처 자국이 종횡무진으로 뻗어 있었다.
뒤이어 우르가 취한 행동에 코노에는 눈을 크게 뜬다.
다른 한쪽 손의 손톱으로 어떤 망설임도 없이, 상처 자국의 무리를 할퀴었다.
피가 스멀스멀 번진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프다.
「……칫」
라이가 혀를 차며 장검을 뽑아든다.
우르를 향해 칼을 치켜들고 덤벼들지만, 옆에서 휘둘러진 검에 저지당한다.
「그렇게는 못 하지」
검을 가로쥔 키르가 막아 섰다.
오싹해지는 미소가 떠오른다.
라이가 재빨리 물러서서, 코노에 곁으로 되돌아온다.
「성가시군」
「뭐 하는 거야, 저 녀석」
코노에의 눈은 우르의 기묘한 행동에 못 박혀 있었다.
라이가 분한 듯이 입을 연다.
「찬아다」
「찬아? ……저 녀석이?」
「아아」
다시 우르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상처 자국에 손톱을 박고, 우르는 황홀하게 도취된 듯이 눈을 감았다.
「아픔이 울려 퍼져. 아픔이 소리쳐. 온몸의 아픔이, 연주해」
순간, 진흙처럼 묵직한 무언가가 복부로 몰려왔다.
「……읏」
몸으로 절실히 느낀다.
이것은──선율이다.
무겁고, 무거운 선율.
노래하고 있다. 저 고양이가.
「『아픔』으로 노래하는 찬아인가」
「아픔으로……」
「보통의 찬아는 악기나 마음, 목소리로 노래하지만, 저 녀석의 경우는 아픔을 느낄 때 반응하는 감각을 선율로써 발산하고 있다.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만큼, 질이 나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건가.
믿을 수 없는 마음으로 우르를 바라본다.
「튀어오른다, 튀어오른다, 피의 선율. 내 몸이 낳는, 우리들을 위한 노래」
상처 자국에 미끄러지는 손톱은, 마치 현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경쾌하다.
아픔을 느끼지 않는 건가. 그러나, 잘 보면 우르의 뺨에는 땀이 스며 있다.
눈앞의 두 마리를 대면하고서부터, 줄곧 기묘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 있었다.
어느 쪽에서도 감정의 고양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얼굴은 웃고 있다.
즐거운 듯 행세하고 있다.
그러나, 광기나 분노 같은 감정이 전혀 없다.
이 녀석들은 마치──모조품 같다.
그, 악마의 분신처럼.
우르의 상처에서 흘러 넘치는 선혈이, 팔꿈치를 타고 지면으로 떨어지다.
이윽고, 그 몸에서 가느다란 빛의 줄기가 나타나 키르에게로 흘러간다.
「노래할 수 있나」
빠른 어조로 라이가 물어와, 고동이 세차게 맥박친다.
그렇다.
자신은 찬아인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노래하라고 해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다.
「……아직, 잘 모르겠어. 나랑 당신이 같이 싸워도 무리인 건가」
「무리다」
뱃속을 도려내는 듯한 무거운 선율은 계속되고 있다.
우르의 발치에는 새빨간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간다, 우르」
「가라고, 키르」
두 마리의 얼굴에, 동시에 불쾌한 미소가 떠오른다.
「온다」
키르가 몸을 앞으로 날린다.
바람이 스쳐갔다고 느낀 순간.
그것은 정말로 눈 깜박할 정도의 시간이었다.
귀청을 찢는 소리가 울린다.
키르가 머리 위에서 내려친 검을, 라이의 검이 막고 있었다.
찬아의 노래의 효과인지, 키르의 양 팔은 팔꿈치 부근까지 울혈이 생긴 것처럼 검붉게 물들어 있다.
그 얼굴에는 광기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미소가 번져있다.
「죽어」
「……윽」
라이가 이를 악물고, 조금씩 검을 되밀어 간다.
라이가 밀리고 있다. 당치도 않은 힘이다.
반대로 즐거운 듯이 검을 맞대는 키르의 시선이 코노에를 포착한다.
「네 녀석인가, 저주 받은 고양이. 재앙의 고양이. 재앙을 가져오는 고양이. 너 따위는, 필요 없는 고양이」
「……뭐라고」
「네가 있어도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빨리, 죽는 게 어때」
낮은 신음 소리가 코노에의 목에서 새어나온다.
손이 멋대로 검을 뽑아든다.
「바보가! 도망쳐!」
코노에의 낌새를 눈치챈 라이가, 키르의 검을 튕겨내며 외친다.
라이의 목소리는 들리고는 있었지만, 와닿지는 않았다.
찬아의 노래를 멈추면 된다.
그렇게 하면, 투아의 기세 역시 멈춘다──분노에 눈에 먼 코노에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것 뿐이었다.
우르 쪽으로 돌진하려고 하는데, 돌연 시야가 막힌다.
──방금, 라이와 경합을 벌이고 있었던 키르의 미소에.
「……!」
「죽자?」
검의 날에 손을 대고, 머리를 감싸듯이 치켜올린다.
시야의 암전, 뼈의 골수까지 저미는 듯한 충격이 팔에 스치고, 몸이 공중에 떴다.
등이 딱딱한 지면에 갈린다.
일어서려 하자, 팔이 힘껏 잡아당겨졌다.
「뛰어!」
「그치만……!」
「죽고 싶은 거냐, 바보 고양이!」
라이에게 팔을 붙잡혀 어떻게든 달리기 시작한다.
피로부터 만들어진 검은 노래가 뒤쫓아온다.
좁은 길을 달려나간다.
부랑자나 떼지어 모인 고양이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부릅뜨고 귀를 숙인다.
때때로 다가오는 키르의 검을 라이가 튕겨내, 거리를 넓힌다.
그때마다, 눈부신 빛이 번쩍였다.
뒷골목을 빠져나와, 그 여세를 몰아 큰길로 뛰쳐나온다.
떠들썩한 소리가 났다.
노점의 유객 소리가, 혼란의 외침에 흐트러진다.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켜!」
주변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할 여유는 없다.
고양이의 물결을 헤치고 오로지 달리기만 한다.
검은 노래는, 그럼에도 역시 뒤쫓아왔다.
폭발할 듯한 심장 소리, 고막을 울리는 숨소리.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에 차갑다.
그런 중에 이질적인 소리가 뒤섞인다.
「코노에!」
돌아본다.
수런거리는 고양이들의 얼굴 가운데 딱 하나, 잘 알고 있는 얼굴이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저건──
「……토키노?」
「여기!」
코노에는 자신의 팔을 붙잡은 라이의 손을 뿌리치고, 거꾸로 라이의 팔을 잡았다.
「……!?」
「괜찮으니까!」
이해불능이라는 얼굴의 라이를 잡아 끌며, 코노에는 토키노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한다.
토키노는 곧바로 등을 돌리고 달려서, 뒷골목으로 들어간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 뒤를 쫓았다.
골목은 고양이 두 마리가 나란히 서서 걸어갈락말락하게 좁았다.
게다가 갈림길이 엄청나게 많다. 토키노는 몇 번이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리저리 쏠리는 꼬리를 벽에 스치우며, 코노에는 라이의 팔을 붙잡은 채로 달린다.
가까스로, 조금 넓은 길이 나왔다.
토키노가 아담한 집 앞에 멈춰 선다.
코노에와 라이도, 발을 멈추고 곧바로 등 뒤를 확인했다.
쌍둥이 고양이는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듯했다.
「여기. 들어와」
문을 열고 재촉 당해, 코노에와 라이는 안으로 들어갔다.
토키노는 문을 닫고는 기대어 서서, 잠시 동안 어깨를 오르락내리락 하고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아……. 이 정도로 달린 건 오래간만이야」
「……여기는?」
「우리집. 아버지는 지금 행상으로 나가 계시니까, 나 혼자야」
얼굴을 들고, 코노에는 다시금 실내를 둘러본다.
딱히 이렇다 할 무언가는 없지만, 간소하고 따스한 맛이 있는 방이다. 비교적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다만, 천으로 둘러싸인 짐이나 커다란 바구니가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광경은, 장사꾼 고양이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들여 온 물품인 걸까.
「깜짝 놀랐어. 그러니까 큰길이 소란스러워서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느닷없이 코노에가 보였으니까 말야. 설마 란센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지난번, 행상으로 카로우에 가니까 코노에는 없지, 마을 고양이들은 과민해져 있지. 왠지 코노에에 대해서 나한테 막 물어보지」
「……그래」
그만 목소리가 어둡게 가라앉는다.
토키노가 윗도리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화폐다.
──화폐.
그러고 보니, 토키노에게 보내는 메시지로써 카로우의 집에 놓아두고 온 것이다.
「이거, 두고 갔지. 코노에가 돈을 손에 드는 거, 거의 본 적이 없으니까 말야. 아마 무슨 일이 있었던 거구나 싶긴 했지만…… 그래도, 만나서 정말로 다행이야」
「방금 전에는 도망치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어떻게 된 거야?」
「…………」
코노에는 입을 꾹 다문다.
『공허』의 숲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마음이 괴로워진다.
도저히 곧바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라? ……그거, 귀. 꼬리도」
얼굴을 들자, 깜짝 놀란 토키노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무심결에 머리를 만진다.
후드가 벗겨져 있었다.
전력질주했던 탓이다.
귓속에서, 조용히 핏기가 가시는 소리가 났다.
토키노의 시선이 귀에서부터 발치로 옮겨 간다.
의미가 없다고 알고 있어도, 검은 꼬리를 감추듯이 둥글게 만다.
「그런 색이…… 아니었, 잖아」
어쩌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토키노가 이 모습을 보았을 때──어떻게 생각할지 따위는.
기분 나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땀이 스민 손바닥을 천천히 움켜쥔다.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문다.
일 초 일 초가 바늘처럼 꽂힌다.
이윽고, 토키노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뭐어, 됐어. 이래저래 사정이 있는 거겠지.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뭐하니까 말야. 급한 일이 있거나 한 게 아니라면, 이리 들어와. 만약 괜찮다면,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어」
「아……」
토키노를 본다.
무엇도 변하지 않은, 평상시와 같은 웃는 얼굴이었다.
꼬리의 밑동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코노에는 꼬일 듯한 혀를 움직인다.
「아니, 그래도……. 갑자기, 폐가 되잖아」
「전혀. 혼자서 심심해하고 있었으니까」
토키노가 어서 들어오라고 방 안쪽으로 손을 내민다.
토키노를 신뢰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기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느슨한 안도에 잠긴다.
코노에는 귀와 꼬리를 세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이인가」
그때까지 침묵하고 있었던 라이가 입을 열었다.
무덤덤한 목소리는, 반대로 토키노를 경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 안녕하세요. 토키노라고 합니다」
토키노는 꾸벅 머리를 숙였다.
긴장하고 있다.
코노에가 처음으로 라이를 보았을 때의 위압을 느끼고 있는 것일 테다.
그 푸른 눈동자의 응시를 받으면, 한 순간 숨이 멎는다.
「토키노, 이 녀석은……」
「신용할 수 있는 건가」
소개하려고 하는 코노에를 무시하고, 라이가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을 뱉었다.
무의식적으로 코노에는 눈을 부릅뜬다.
「뭐야, 뜬금없이」
「신용할 수 있는 건가, 라고 묻고 있다」
싸늘한 시선이 토키노에게, 이어서 코노에에게로 향해진다.
토키노는 궁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공연히 화가 나, 코노에는 시선을 고정시킨다.
「토키노는 카로우에 있었을 때부터의 친구야. 신용이라면, 당신 보다 훨씬 더 할 수 있어」
「어떠려나」
「싫으면 나가면 되잖아」
「저, 저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기에 토키노가 허둥거린다.
「쌓인 이야기도 있겠지만, 일단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시겠어요?」
쌓는다기 보다는 터트리고 있는 것이었지만, 곤혹스러워 하는 토키노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코노에는 입을 다문다.
라이도 마지못해서란 느낌으로 눈을 내리깔고 한숨을 쉰다.
「……미안. 이 녀석은 라이야. 짜증 나면 무시해도 되니까」
「…………」
라이의 내리꽂히는 듯한 시선을 그 자리에서 무시한다. 더욱더 허둥대는 토키노에게 이끌려, 코노에와 라이는 방 안으로 이동했다.
코노에는 지금까지의 일을 토키노에게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토키노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야기를 마쳤을 때에는,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코노에는 천천히 숨을 내쉬고, 토키노가 준비해준 나무 열매를 베어 먹었다.
눈앞에는 물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다.
이것도 토키노가 준비해준 것이다.
「……지금 말한 거, 전부 사실이야?」
「이런 일로 거짓말 해도 득 될 게 없어」
「그건 그렇네……, 응」
토키노는 아직 믿을 수 없다는 기색으로,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실은 몇 가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우선, 그 휘리라는 도화사와 악마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둘에 대해 이야기해버리면, 본격적으로 토키노를 말려들게 만들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그리고──자신이 「찬아」로서 각성했다는 것.
이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데다,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휘리에 대해서는, 라이에게도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함께 행동하는 이상은 알려주는 편이 낫다.
코노에는 코트와 신발을 벗고, 토키노에게 보여주기 위해 손의 아머를 끌러냈다.
토키노가 꼬리를 흔들며, 팔의 반점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건 그렇고, 귀도 꼬리도 까마니까 꼭 다른 고양이 같네-. ……전설의 저주, 인가. 내가 카로우에 우연히 들렀을 때 말야, 코노에, 열이 나서 쓰러졌던 적 있었지. 몸에 변화가 일어난 건 그 다음 날?」
「아아」
「그럼, 전조였을지도 모르겠네. 꿈도, 발열도.
그치만, 키라나 강도 이야기라든지, 최근 출몰하게 된 마물도 그렇지만 말야. 역시, 뭔가 이상하네」
「뭐가」
「잘은 말 못하겠는데, 시사(祇沙)가 전체적으로 말야. 뭔가, 그…… 공기가 무겁달까, 이상하달까.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전에도 그런 말 했었잖아」
「그랬던가. 그치만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
한탄하는 듯이 중얼거리고, 토키노는 그릇을 손에 들고 물을 핥았다.
숲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 코노에는 아사토를 떠올리고 있었다.
무사히 있는 것일까.
희미한 죄악감에 괴로워진다.
「주술사가 있는 곳을 알고 있나」
털다듬기를 끝낸 듯한 라이가, 갑자기 그렇게 질문을 꺼냈다.
이 고양이는 늘 느닷없다.
토키노는 불쾌해하는 기색도 없이, 끄덕였다.
「아아, 들어본 적은 있어요. 숲 속의 사당에 살고 있다는……」
「자세한 위치는 알고 있나」
「위치까지는 좀……. 주술사에게, 무언가 용건이 있나요?」
「이 녀석의 일을 물으러 간다」
라이가 코노에를 턱으로 가리킨다.
불끈 했지만, 일단은 입을 다물었다.
「저주를 풀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저도 실제로는 본 적 없지만, 미래를 볼 수 있다던가 했던 녀석이네요. 확실히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토키노는 천천히 숨을 내쉬고 천장을 올려본다.
「하-. 뭔가 굉장하네. 전설이라든지 그런 건, 어딘가 먼 세계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어. 이렇게 가까이에서 일어나다니, 신기하네」
순수하게 감동하고 있는 것인지, 토키노는 희미하게 목을 울리고 있다.
길에서 이 모습을 드러내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질 테지.
세계에 재앙을 가져오는 존재를──정확하게는, 그렇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고양이들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그래도, 토키노는 이런 모습을 보아도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어준다.
그것이 가슴에 깊이 스며드는 듯이 기뻤다.
「……고마워」
「뭐가?」
「아니……」
토키노는 멍하니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미소를 띄우고 코노에의 어깨에 코 끝을 내리눌렀다.
「고맙단 말 하지 마. 놀랐지만, 코노에랑 만나서 기쁘기도 했고, 안심했어. 어때? 처음으로 본 란센은」
「고양이 수가 엄청나네. 노점도 많고, 이상한 모양의 건물도 많아. 북적거리는 느낌이 들어」
「시골뜨기의 감상이로군」
「……시끄러워」
코노에는 반사적으로 꼬리로 라이를 쳤다.
「하하하」
밤도 깊어졌을 때, 코노에와 라이는 토키노의 집을 뒤로 했다.
만약을 위해 바깥의 낌새를 살펴본다. 그 쌍둥이 고양이가 아직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지만, 특별히 낌새가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연습을 시켜준다고 하는 라이와 함께, 코노에는 번화가의 변두리에 있는 공터로 향했다.
돌아갈 무렵, 토키노가 연습을 하기에 좋을 것이라며 가르쳐준 것이다.
공터에는 썩은 석재의 흔적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고, 그것들을 뒤덮어 감추듯이 풀이 무성하게 나 있었다. 필시 「두 지팡이」의 건물이 있었던 땅일 것이다.
공터의 한 가운데에서, 코노에는 라이와 마주본다.
싸늘한 밤 바람이 두 마리의 사이를 스쳐 지나간다.
「쌍둥이 고양이들과 맞붙었을 때에 뼈저리게 느꼈을 테지만, 찬아에게는 찬아가 아니면 대항할 수 없어. 한시라도 빨리, 그 능력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 전에,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뭐지」
달빛을 받아 투명하게 비치는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며, 코노에는 한 차례 입술을 굳게 닫는다.
「나는 당신에게 몇 가지, 이야기해두지 않으면 안되는 게 있어」
「말해 봐라」
「…………, 이야기하면, 되돌릴 수 없게 돼」
「호오」
코노에는 발치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내 몸, 이 저주는 분명……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의 복잡한 무언가가 있어. 뭔가 꾸며져 있다고.
……나는, 시험 당하고 있어」
「누구에게」
「모르겠어. 보이지 않는 뭔가가…… 그렇지만, 거대한 존재다. 내 목숨 따위는, 한손으로 간단히 으스러트릴 수 있을 정도의.
당신은 내, 찬아로서의 힘이 필요할 뿐인지도 몰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 무언가가 나에게는 일어나고 있어」
거기서 말을 멈추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폐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공기가 차갑다.
발치에 두었던 시선을 라이에게로 돌린다.
「그러니까, 만약 진심으로 내게 관여할 생각이라면, 당신에게도 그걸 떠맡게 할 수밖에 없어.
아마, 성가신 일이 될 거야. 그 쌍둥이 고양이들도 분명 그래. ……그래도」
──그래도.
왜인지, 거기서부터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코노에는 다시 고개를 떨군다.
라이로부터의 대답은 없었다.
침묵이 고요히 쌓여 간다.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코노에는 라이의 발치를 본다.
흰 꼬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걸로 만약, 거절 당하면 어떻게 하지?
……특별히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헤어져, 내일부터는 다른 길을 갈 뿐이다.
원래 그런 것이었다.
만나기 전에는 서로가 혼자다.
그것이 원 상태로 돌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왜인지 두려워하고 있었다.
「얼굴을 들어라」
라이의 꼬리가 풀썩 하고 흔들린다.
그만 과민하게 반응해버려서, 귀가 미미하게 숙여진다.
얼굴을 든다. 라이가 조용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전에도 말했을 텐데. 저주 따위, 호들갑 떨 정도의 일도 아니라고. 그게 얼마나 크고 작은지도 상관 없어. 이제 와서 그런 걸 걱정해서 어쩔 거지. 전부, 이미 시작된 일이잖아」
작게 끄덕인다.
「그러면 뒤를 돌아보지 마. 그러지 않으면 발을 붙잡혀서 목숨을 잃는다. 너를 찬아로서 양성하겠다고 결정한 시점에서, 내가 가야할 길도 시작되고 있다. ……알겠나」
라이가 다가온다.
푸른 눈동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눈을 피할 수가 없다.
달을 등지고, 라이가 조용히 말을 꺼낸다.
「쓸데없는 걸 생각할 틈이 있다면 앞을 봐라. 진정한 적은 저주도, 거대한 존재도, 비극적인 운명도 아냐. 그렇게 스스로에게 헤매는 너 자신이다. 지고 싶지 않다면, 강하게 있어라」
──강하게 있어라.
뚜렷하게 울려퍼지는 확신에 찬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친다.
그러자, 그때까지 느끼고 있었던 불안이나 공포가 미끄러져 나가듯이, 사라졌다.
뒤에 남은 것은, 놀라움이었다.
라이는 강하다.
힘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받아들여, 이겨내는 강함이 있다.
타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함이.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알아들었다면 시작한다. 이야기는 여관에 돌아가서 듣지」
꿈에서 깨어난 듯이, 코노에는 다시금 라이를 보았다.
라이는 등을 돌리고 코노에로부터 거리를 두어 떨어지고는, 돌아보고서 팔짱을 끼었다.
「노래를 터득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찬아는 반드시 자신만의 노래가 있다고 한다」
「자신만의 노래?」
「아마도, 찬아로서 자연스레 몸에 배는 것이겠지. 우선은 노래를 불러일으켜 봐라」
「어떻게」
「노래가 발현되었을 때의 상태를 가능한 한 상세하게 떠올려 봐라」
그런 말을 들어도, 알 수 없다.
반발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코노에는 처음으로 노래를 감지했을 때의 상황을 떠올리려 했다.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내쉰다.
시야를 덮는, 기억의 어둠.
보이지 않는 손을 뻗어 더듬거린다.
분명, 그때는──
라이의 사업 경쟁자라는 고양이들이 이성을 잃고 흥분해서, 한꺼번에 덤벼들어 왔던 것이다.
온몸 이곳저곳에 아픔이 스쳐, 비명을 질렀다.
여하튼간에 달려들어 할퀴고, 서로 얽히며 싸웠다.
그렇게 고통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빠져들었다.
탁류에 떠내려져, 숨을 쉴 수 없게 되었다.
이대로, 감정 속으로 가라앉아가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 음악이 들렸던 것이다.
그, 선율.
그──
「…………, ……안되겠어」
눈꺼풀을 벗겨내듯이 해서 눈을 떴다.
팔짱을 낀 라이가 조용히 이쪽을 보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마에는 땀이 배어 있고, 숨이 차올라 있었다.
확실히 그 순간, 자신은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렇지만, 그것을 떠올리려 하면 몸이 움츠러든다.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송두리째 무언가를 빨아올려져 가는 듯한 감각에, 공포를 느낀다.
「조급하게 굴지 마. 정말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건가?」
「아니……」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느꼈다면, 다음은 그 감각을 따라가 봐라」
라이의 말을 믿고, 다시금 눈을 감는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방금 전의 감각의 여운을 뒤쫓는다.
손을 뻗어, 기억의 꼬리를 붙잡는다.
고통의 소용돌이, 탁류.
들려오는 음악과 선율.
거기에 뒤덮이는 듯이 번져가는 공포.
도망쳐버릴 것 같다.
감고 있는 눈을 뜨고 싶어진다.
기억은 유달리 선명했다.
마치, 그 장소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대로는 삼켜져버린다.
「……큭, 으흑……」
달구어져 끊어질 듯한 신경의 고양까지 재현되어서, 무릎이 꺾일 것만 같다.
전신이 땀으로 젖어있다.
타오르는 하얀 불꽃.
그것이 끊어지고, 무언가가 보였다.
하늘거리는 기다란 옷은──음유시인, 고양이?
그 순간,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하얀 불꽃에 둘러싸였다.
그렇지만, 뜨겁지는 않다.
빛과 비슷한 하얀 불꽃이다.
요란스럽게 흐르고 있었던 탁류의 소리가 멀어져, 대신에 그치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던 음악이 세차게 울려퍼진다.
음유시인이 연주하고 있다.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알 수 있다.
마음이 따뜻함으로 채워져 간다.
안도가 번진다.
숨을 쉴 수 있다.
그 순간 문득, 아아 알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라는 것은──찬아의 노래라는 것은, 힘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강제적으로 무언가를 보내는 것도 아니다.
위 부근이 따뜻해진다.
몸을 감싸는 하얀 불꽃이 안쪽에서부터 태어난다.
격렬한 불꽃은, 몸의 구석구석까지 힘을 보내준다.
띄엄띄엄 울리는 선율은, 지금까지 들려오고 있었던 것과는 달랐다.
이것은, 나의──
「……!」
눈을 뜸과 동시에, 몸에서 흘러 넘친 빛의 줄기가 라이에게로 흘러간다.
라이의 몸이 강하게 빛난다. 그러나, 곧바로 공기가 튀는 듯한 소리가 나고 빛은 사라졌다.
하얀 불꽃도 선율도 사라져,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변은 조용해진다.
다만, 몸의 안쪽에는 어렴풋한 열이 남아, 고동은 묘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라이는 조용히 코노에를 응시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네가 눈을 감고 있을 때, 도중에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어. 아주 잠깐이었지만, 노래가 흘러들어 왔을 때, 힘이 가득 차오르는 걸 느꼈다」
「……성공, 한 건가」
「그런 게 되겠군」
그 순간, 스르르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릎이 흔들거려서, 서있을 수 없게 된다.
무너져 내릴 것처럼 되었을 때, 무언가가 등을 받쳐준다.
시선을 들자, 눈앞에 라이의 얼굴이 있었다.
표정이 없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무심결에 얼굴을 돌리려 하다가, 지금의 상황을 깨닫는다.
안겨있는 것이다. 라이에게.
「……난 괜찮아, 이거 놔」
당황해서 떨어지려고 하자, 라이가 입을 열었다.
「찬아와 투아는 신뢰가 깊으면 깊을수록, 능력이 높아진다. 서로의 마음이 합쳐지지 않으면, 각자의 능력이 얼마나 높다고 해도 의미가 없어. ……인연, 이라는 거다」
어미에 희미하게 뒤섞인 조롱과 비웃음에, 코노에는 약간의 분노를 느낀다.
「내가 상대라면 무리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네가 아냐. 내 이야기다」
「……?」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코노에는 눈썹을 찌푸린다.
라이는 코노에에게서 몸을 떼놓고 등을 돌렸다. 묘하게 거북한 공기가 흐른다.
그 등을 바라보며, 코노에는 당황한다.
라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곤혹스러워하고 있자, 돌연 라이가 뒤를 돌았다.
「특별히 문제가 없으면, 오늘은 이쯤에서 됐겠지. 다음은 검술 연습이다」
「검술?」
「찬아니까 검은 불필요, 한 건 아니겠지. 싸울 수 있다면, 실력을 쌓아두는 것보다 더 나은 건 없다」
그것은, 코노에로서는 더 바랄 나위 없는 것이었다.
라이가 어떤 고양이든, 역시 그 강함에는 순수하게 이끌리는 부분이 있다.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찬아의 연습보다 검술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러나, 그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까, 어떤 노래였어?」
「네 노래 말인가」
「아아」
「특별한 변화는 느끼지 못했다. 투아에게 힘을 부여하는, 말하자면 가장 기본적인 노래랄까」
「……그래」
그만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그다지 좋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라이가 말을 잇는다.
「기본이야말로 중요하다. 특성이 없는 만큼, 사용하기 쉬워. 게다가, 노래는 앞으로도 늘어갈 거다. 늘려주지 않으면 곤란해. 처음 치고는 잘한 셈이겠지」
「…………」
그 말에, 코노에는 조금 놀라서 라이를 보았다.
잘한 셈…… 설마, 라이에게 그런 식의 말을 들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뭐야. 그 밖에 묻고 싶은 건. 없으면 시작한다」
라이가 장검을 뽑아들고 가로쥔다.
똑같이 검을 뽑으면서, 코노에는 라이에 대한 인상이 바뀌어져 가는 것을 실감했다.
처음엔 정말로 오만하고 싫은 고양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확실히 제멋대로에 융통성이 통하지 않는 점도 있지만,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 나름대로 챙겨주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챙겨주는 방법 또한, 꽤나 제멋대로긴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며, 잠시 동안 검을 휘둘렀다.
검술 연습을 끝냈을 무렵에는, 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되어 있었다.
이제 곧 아침이 온다.
공터에서 여관으로 향하는 도중, 코노에는 문득 발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무언가, 소리가 들린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등 뒤에는 새까맣게 우거진 숲이 펼쳐져 있다.
그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빛을 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유달리 뚜렷이 눈에 비친다.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도록 가늘게 좁힌 시야에 포착된 것은…… 음유시인 고양이다.
코노에는 귀를 세우고, 몸은 완전히 그쪽으로 향했다.
묘한 고양감에 꼬리가 흔들린다. 음유시인은 긴 옷자락을 나부끼며, 악기의 현을 타고 있었다.
띄엄띄엄 선율이 귀에 닿는다.
달려서 다가가려 했을 때, 노래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별들의 그림자 비탄까지도
모든 것을 내다보는 그 눈동자
끝내는 마음도 들여다보는가 밤 보다도 깊고 짙은 어둠
슬픔에 이운 마음에는 샘물로 이르는 길을
분노에 지친 마음에는 풀 우거진 언덕으로의 길을
가리키는 것은 숲 속 깊숙한 곳
사당에 사는 현자여
목소리는 부드럽게, 신비한 투명감을 동반하여 울려퍼진다.
희미한 도취의 가운데, 시(詩)가 흩날린다.
이미지가 펼쳐져 간다.
모든 것을 내다보는──숲 속 깊숙한 곳, 사당에 사는 현자──
음유시인이 악기의 현을 타던 손을 멈추고, 숲을 가리킨다.
숲?
숲 속 깊숙한 곳, 사당에 사는……
모든 것을 내다보는, 눈동자.
현자.
──어쩌면.
「어이」
어깨를 두드려서, 코노에는 펄쩍 뛰어오를 정도로 놀랐다.
전신의 털이란 털은 전부 곤두서서, 세차게 휘두른 꼬리에 무언가가 걸린다.
돌아보자, 라이가 미간을 찌푸리고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꼬리로 쳐 버린 것 같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지금……」
숲 쪽을 돌아보고, 코노에는 다시 놀란다.
음유시인의 모습이 없다.
「꿈이라도 꾼 거냐」
「……아냐」
말은 그렇게 했으나, 코노에도 꿈이나 환상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간다」
걷기 시작하며, 코노에는 몇 번 뒤를 돌아보았다.
음유시인 고양이. 현실감이 옅은, 불가사의한 존재.
대체 어떤 고양이인 것인가.
게다가, 방금 전의 노래는 아마도──
여관에 도착하고서, 코노에는 라이에게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주로 휘리에 대한 일 같은 것을 간결하게 이야기했다.
라이는, 그저 「알았다」라며 끄덕일 뿐으로, 그 다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느껴졌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필시 라이의 안에서는 무엇도 변하지 않은 것이겠지.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자리에 웅크리고서도, 머릿속에서 계속 그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 환상 같은 음유시인의 노래.
가사와 선율을 몇 번이고 더듬으며, 코노에는 짧은 밤 동안 잠에 들었다.
다음날.
해는 높이 떠서, 창문에서는 산뜻한 햇살이 들이비치고 있다.
잠에서 깬 후에도, 역시 어젯밤의 노래가 마음에 걸렸다.
이제 몇 번째가 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머릿속에서 되풀이하고 있다.
콧노래라도 흥얼거릴 것 같다.
줄곧 생각해봤지만, 그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게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짚이는 구석은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것을 라이에게 알리자는 생각이 들어, 코노에는 침대에 앉은 채, 몸차림을 갖추고 있는 하얀 등에 말을 걸었다.
「……주술사에 대한 건데」
「뭐야」
코트의 쇠장식을 고정시키며, 라이가 돌아본다.
「어제 갔던 공터에, 있었잖아. 그 곳의, 시내와는 반대 쪽에 있는 숲. 거기에 아마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하얗고 두꺼운 꼬리가 크게 흔들린다.
라이가 똑바로 코노에를 응시했다.
「어떻게 그걸 알지」
「어제, 공터에서 돌아올 때에 노래를 들었어」
「노래?」
「내가 자주 마주치는 음유시인 고양이가 있어서, 그래서…… 이렇게 노래했었어」
「모든 것을 내다보는, 그 눈동자. 가리키는 것은 숲 속 깊숙한 곳, 사당에 사는 현자여, 라고. 그리고는, 음유시인은 숲을 가리켰어」
「그 녀석은 그 다음에, 어쨌지」
「몰라. 당신이 나한테 말을 거니까, 사라졌어」
「…………」
라이는 시선을 발치로 떨어트리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이 침묵했다.
하얀 꼬리만이 바쁘게 몇 번이고 흔들거린다.
「믿을 수 없군」
「그치만, 난 그 녀석을 몇 번인가 봤어. 카로우에서도, 란센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증거라도 있는 건가」
「그건……」
말문이 막혀서, 이번에는 코노에가 시선을 발치로 떨어트린다.
사실, 자신도 믿을 수 있는 것 같기도 믿을 수 없는 것 같기도 한, 묘한 심경인 것이다.
그렇지만.
코노에는 얼굴을 든다.
「증거는 없어. 그치만, 난 그 녀석이 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직감으로, 그렇게 느껴져」
「그저 그렇기를 바라는 게 아니냐」
「아냐」
싸늘한 눈초리가 내려다본다.
코노에도 지지 않을 작정으로 매섭게 쏘아보았다.
창 밖은 밝은데도, 방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는다.
맞부딪치는 시선은, 피하는 쪽이 지는 것이다.
무심결에 손이 주먹을 곽 쥐고, 땀이 스미기 시작했을 무렵, 라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집불통이군」
질린 듯한 목소리에, 싸늘해졌던 공기가 풀린다.
무의식중에, 코노에도 가슴 속에 고여 있던 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어찌 됐든, 주술사가 있는 곳은 모르는 거잖아」
「그렇다」
「그럼, 닥치는 대로 찾는 것보단 훨씬 나아」
「함정이라면」
「그때는 그때야. 지금 생각할 일이 아냐」
「……흥」
라이는 턱을 가볍게 젖히고, 코웃음을 쳤다.
「역시 너는 일찍 죽겠군」
「당신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말을 받아치자, 라이는 왜인지 우스운 듯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 뒤, 결국 음유시인의 노래대로 숲으로 가기로 결정해, 코노에는 라이와 여관을 나와 번화가의 변두리──공터가 있는 쪽으로 나아갔다.
밤에 걸었을 때는 길게 느껴졌던 거리도, 해가 높이 떠 있으니 왜인지 그렇게 길지도 않았다.
공터도, 좀 더 풀이 깊게 우거져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지금은 그 정도도 아니다.
그러나, 공터를 지나서 눈앞에 치솟은 숲만큼은, 역시 한낮에도 밤의 그림자를 지고 있는 듯한 박력이 있었다.
지금까지 이미 지나치게 충분할 정도로 숲에서 헤매고 또 헤맸기 때문에, 솔직히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라이와 함게, 짙은 녹음 속으로 발을 들였다.
겹겹으로 수풀이 겹친 숲은 약간 어두웠지만, 역시 카로우의 북쪽──란센의 남쪽에 있는 『공허』의 숲과는 다른 듯하다.
그렇게 넓지는 않은 외길이 길게 이어져 있어서, 어지간히 엉뚱한 곳으로 새지 않는 한은 헤매는 일도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분위기도 약간 다르다.
『공허』의 숲 쪽이 좀 더 무겁고, 항상 무언가에 감시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당, 인가」
「아아」
좌측의 안쪽에는 이끼가 낀 벼랑이 이어져 있어, 풀이나 나무들이 줄지어 선 광경은 어디까지고 똑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주위를 경계하며, 말 없이 잠시 동안 계속 걸어나갔다.
라이가 어느 한 점을 보고는, 갑자기 멈춰섰다.
「어이」
라이의 시선을 쫓아, 코노에도 얼굴을 돌린다.
녹색 암벽의 한 모퉁이가 뚝 하고 도중에 끊겨 있는 장소가 있었다.
그것을 뒤덮어 감추듯, 주변에는 키 큰 풀이 우거져 있다.
「길이 있군」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그 모퉁이로 발걸음을 돌렸다.
풀이 무성하게 나 있는 주변은 발치가 묘하게 질퍽거려서, 불쾌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얼굴 부근까지 닿는 풀을 헤치며 나아간다.
도중에 끊긴 암벽의 좁은 틈새를 빠져나간 곳에서, 라이의 흰 꼬리가 꼿꼿이 섰다.
물론, 코노에의 꼬리도 마찬가지다.
시선은, 눈앞에 나타난 광경에 못박혔다.
──사당이다.
[ 사당 ]
암벽에, 도려내기라도 한 듯한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은 주술적인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여긴가」
「아아」
부들부들 하고 꼬리의 밑동에 전율이 스친다.
기묘한 흥분과 긴장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가까스로 하나의 목적에 당도했다──그런 느낌이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둬라」
라이가 장검의 자루에 손을 올린 채로, 발을 내딛는다.
이어서, 코노에도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어두웠지만,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이럭저럭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공기는 축축하게 온기를 띠고 있지만, 그에 반해 벽의 감촉은 메말라 있다.
어느 쪽도 차게 식어있어서, 불쾌한 느낌은 아니다.
발소리가 좁은 공간에 반향된다.
어떤 사소한 소리도 흘려 듣지 않도록 귀를 세우고, 경계하면서 걸었다.
무언가가 있는 낌새는 전혀 없다.
아니, 안에 누군가 있을 것이겠지만, 일부러 기색을 감추고 있다.
그렇게 느끼고, 코노에는 더욱더 경계를 높였다.
잠시 후, 전방에 희미한 등불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등불의 반사광이다.
막다른 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자 곧바로 나타난 벽에, 횃불이 걸려 있었다.
정면에는 제단 같은 물건이 있고, 그 옆에는 고양이가 서 있다.
라이도 코노에도, 모퉁이를 돈 지점에서 발을 멈췄다.
바로 앞에 쭉 뻗은 등이 보인다.
「네가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주술사인지 하는 녀석인가」
또렷이 울리는 목소리가, 푹 가라앉은 공기를 진동시킨다.
제단 쪽을 향하고 있던 고양이가, 옷깃이 스치는 소리와 함게 천천히 돌아보았다.
「호오……. 용케도 여길 알았구먼」
태평스러운 말투와는 전혀 다른 차분한 저음이 울린다.
고양이는, 라이와 같은 나이이거나 조금 연상으로 보였다.
장식품을 걸치고, 옅은 녹색의 눈을 가늘게 좁히며 미소를 띄우고 있다.
귀와 꼬리는 각각 짙은 회색으로, 끝 부분이 하얗다.
횃불의 빛을 받아, 그 얼굴은 짙은 음영이 드리워져 있다.
「여기를 아는 자는, 지금은 거의 없을 터인데」
우아하다고도 할 수 있는 몸짓으로 고양이는 꼬리를 느릿하게 흔들며, 라이와 코노에의 정면으로 나가서는, 두 마리의 얼굴을 거리낌 없이 번갈아 보았다.
눈동자는 실로 즐거운 듯이, 반짝반짝 하고 짓궂은 빛을 가득 띠고 있다.
「이거 재미있구만. 어젯밤의 점괘에 별난 일이 일어날 거라 나왔었지만…… 과연, 이거였던 겐가」
「대답해라. 네가 주술사인가」
「불손한 수컷이로고. 그리 서둘지 말게. 안달복달 하면 무슨 일이든 잘 풀리지 않게 되네. 확실히, 세간에서는 그리 부르는 자도 있는 것 같구먼. 나는 모르겠지만」
고풍스러운 말씨 탓일까.
자신에 가득 차 있으면서, 그럼에도 어딘가 종잡을 수 없는 인상을 받는다.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던 시선이, 코노에 위에서 멈췄다.
주술사가 두 눈동자를 스윽, 하고 가늘게 좁힌다.
「특히 자네가 유쾌하구먼. 정말이지, 이것 참……」
「……뭔가, 아는 거야?」
「알고 말고 할 것도. 후후후」
너무 빤히 쳐다봐 와서, 그만 얼굴을 돌린다.
훤히 간파당하는 듯한, 아니, 필시 정말로 간파당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더는 배길 수 없어진다.
그러자, 갑자기 주술사가 팔을 뻗어, 있는 힘껏 코노에의 후드를 벗겼다.
「……!」
무의식적으로 검에 손을 올린다.
그러나, 주술사는 코노에의 살기 따위는 개의치 않고, 분위기를 일변시켰다.
재미있다는 듯이 가늘게 뜨고 있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친다.
라이의 그것과는 또 다른, 무수한 바늘을 연상시키는 느낌이다.
오히려, 코노에 쪽이 숨을 삼켰다.
「……흠. 과연 그렇구먼. 자, 다른 것도 있을 터. 이리 내보게」
그 밖에, 라는 것은 꼬리와 반점을 말하는 것이겠지.
주술사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백에 저항감을 느꼈지만, 본디 이 몸에 대해 물어보러 온 것이다.
코노에는 묵묵히 꼬리를 몸 앞으로 내밀고, 손의 아머도 끌러내어 팔을 내보였다.
「호호오」
주술사에게 팔과 꼬리를 붙잡힌다.
팔은 둘째치고 꼬리는 소리를 내버릴 것 같았지만, 목 안쪽에서 억눌러 참았다.
라이는 일이 되어가는 모양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틀림 없이, 예로부터 전해오는 저주의 발현이로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술사는 얼굴을 들었다.
방금 전의 날카로움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대체 무엇을 하러 여기까지 온 겐가」
「그 저주를 풀 방법이다」
「저주를 풀 방법?」
말꼬리를 튕겨올리고, 주술사는 몹시 즐거운 것과 조우하기라도 한 듯이 웃었다.
「이것은 또 꽤나 유쾌한 발상이로고. 저주를 풀 방법인가. 재미있구먼. 후후후」
「방법은, 있는 건가」
「모른다네. 애당초 풀 수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구먼」
「헛걸음을 쳤다는 건가」
주술사가 라이에게 어이없는 듯한 시선을 보낸다.
「그러게 그리 서둘지 말라 했거늘. 참으로 성급한 수컷이로고. 뭐, 자네들이 여기에 왔을 때부터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말이네」
말꼬리가 사라지기 전에, 맹렬한 기세로 주술사의 얼굴이 코노에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번뜩 하고 빛나는 눈에, 한 순간 말을 잃는다.
「자네의 등 뒤에, 커다란 그림자가 보이네」
「……그림자?」
「그렇네. 터무니 없이 거대한 힘…… 그것이, 자네의 혼을 손 안에 붙들고, 우리처럼 가두어 놓고 있네. 짚이는 데가, 있는 게 아닌가?」
질문을 듣고, 제일 먼저 휘리의 얼굴이 뇌리에 떠올랐다.
휘리가 그 분, 이라 불렀던 존재.
「어째서…… 나를, 뭘 위해서」
「글쎄. 다만, 자네는 다소 보통 것과는 다른 별 아래에 태어난 것 같구먼. 미래가 어둠에 싸여있네」
주술사는 코노에의 미간 부근을 노려보며, 팽팽하게 조이는 듯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보이지 않는구먼……, 아니, 보이지 않는 것보다, 없어. 미래 그 자체가 없어」
「……미래가, 없어……?」
코노에에게서 떨어져, 주술사는 유연한 미소를 띄우며 끄덕였다.
「죽는 건가」
「그게 아닐세. 모든 것은 자네의 행동에 달려있다는 것이네」
더욱더 혼란스러워진다.
미래의 일 따위, 지금가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보다도 내일을 어떻게 살 것인가, 제물로 선택되는 것은 아닌가…… 그런 것으로, 늘 머릿속이 꽉 차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미래가 없다고 내몰려지니, 슬금슬금 뱃속에서부터 초조함이 끓어오른다.
죽는다, 고 선고 받는 것보다도 애매하고 불쾌한 감각이었다.
시야가 흔들리고 몸이 휘청거려, 제단에 손을 짚었다.
놓여있던 장식품 같은 것에 손가락이 닿자,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친다.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꽃.
이것은──기억.
물건의 기억이다.
「……윽」
당황해서 손을 뗀다.
라이가 근소하게 눈을 좁힌 것이 시야의 끄트머리에 비쳤다.
「……호호오」
주술사의 시선이, 제단에 놓여있던 장식품과 코노에의 얼굴을 천천히 어루만져 간다.
「뭔가 보인 겐가」
「……!」
「후후후, 유쾌하군 유쾌해. 어디, 좀 더 보여줄까나」
주술사는 코노에의 정면에 서서는, 싱긋 하고 미소를 띄우며 양손을 내밀어 왔다.
코노에는 반사적으로 손을 움츠렸다.
주술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전혀 읽을 수 없다.
겉모습이 온화한 만큼, 으스스하게도 느껴졌다.
「뭐지, 귀를 숙이고. 나쁜 짓은 하지 않네. 더 자세히 볼 뿐일세. 저주를 풀 방법은 무리라고 해도, 헛걸음이 되어서는 안되잖나」
주술사의 가느다란 시선이 흘끗 라이에게 던져진다.
라이는 표정을 허물어뜨리지 않고 말없이 있다.
주술사가 다시 코노에의 손을 잡으려 한다.
그때, 눈앞에 바람이 스쳤다.
주술사와 코노에의 사이를 가르듯이, 장검이 튀어나와 있었다.
겁내는 기색도 없이, 주술사는 곁눈으로 라이를 흘끗 보았다.
그 눈동자에, 날카로운 빛이 깃든다.
「무슨 셈인가」
「지금까지의 이야기, 사실인가」
「거짓말이란 겐가?」
「신뢰할 수 있는 증거가 없어」
「……하」
내질러진 검을 검지손가락으로 쯧쯧, 하고 누르며 한 발짝 물러나고는, 주술사는 실소했다.
「그러면, 자네는 뭐가 있다면 신뢰하겠는가?
눈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되는 겐가? 아니면 많은 고양이들의 찬동인가?
역으로 묻지. 자네가 자네로서 있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고?
이 현실이 현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고?」
「…………」
「어쩌면, 자네는 줄곧 잠자리에 웅크리고는, 길고 긴 꿈을 꾸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네.
세계는 이미 『공허』에 완전히 먹혀들어서, 황폐해져 있는지도 모르네.
그러나, 이 세계가 자네의 꿈이라 할지라도, 자네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되는 걸세」
「……알겠나. 무엇을 이유로 신뢰할 것인가,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을 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일세. 주변이 아니네」
얇은 얼음과도 같은, 싸늘한 공기가 얼어붙는다.
횃불이 튀는 메마른 소리가, 이질적인 무언가처럼 이따금 울려퍼진다.
라이도 주술사도, 눈동자에 상대의 모습만을 비추며 조용히 서로 노려본다.
「……알겠으면, 검을 거두게」
저음이, 살얼음 같은 공기를 살그머니 깨뜨렸다.
라이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로, 잠깐의 사이를 두고서 검을 물렸다.
「본래, 정하는 것은 자네가 아닌가. 안 그런가」
「나는……」
정신이 들자, 코노에의 시선은 라이를 포착하고 있었다.
라이는 고의인 건지, 눈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방금 전 주술사가 입 밖에 낸 말은, 옳다.
라이도 그것을 알고있을 것이다.
의심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밀쳐내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무수한 요소들의 가운데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
가려내는 것은 자신 밖에는 없다.
신뢰할 수 있는 증거──그 증거조차도 끝까지 파고들면, 결국은 무수한 요소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뭔가 보이는 거라면, 알고 싶어. 가르쳐줬으면 해」
「후후, 그 기세로고.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놓치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말이지」
만족스러운 듯이 웃으며 끄덕이고는, 주술사는 코노에의 양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순순히 따른다.
주술사의 손은 촉촉하고, 몹시도 차가웠다.
「자아, 눈을 보려무나. 가만히, 바라보는 게야」
녹색의 눈동자가 들여다봐 온다.
묘한 박력에 얼굴을 뒤로 뺄 뻔했지만, 거스르지 않고 정면에서 되받아보았다.
「옳지……, 가만히, 가만히 말이야」
속삭이는 저음이 날개처럼 부드럽게, 귀의 솜털을 간지럽힌다.
녹색의 눈동자는, 점차로 동공이 가늘고, 가늘게 좁혀져 간다.
그 모습에 왜인지 눈이 끌려, 오싹오싹 하고 오한마저 느껴진다.
이끌리듯이, 자신의 동공도 좁혀져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뾰족하게 선 손톱으로 전신의 털을 하나씩 거꾸로 쓰다듬어 가는 듯한, 기묘한 간지러움.
이윽고, 시야를 완전히 메우고 있던 녹색이 번져나가, 다른 생물처럼 꿈틀거리고는, 시야를 뛰쳐나와 코노에 전체를 에워쌌다.
「……!」
놀라서 눈을 크게 뜬다.
녹색의 막은 걷히고, 미소짓는 주술사의 모습이 비친다.
붙잡혀있었던 양손이 해방된다.
손바닥에, 희미하게 땀이 배어 있었다.
「흠」
「뭔가, 보인 거야?」
「네 개의 그림자」
「네 개의 그림자……?」
「자네의 혼을 둘러싸는 듯한, 네 개의 그림자가 보였네. 그것은…… 고양이가 아냐」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코노에의 뇌리에 싫은 것이 지나간다.
주술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다.
「그것은, 고양이 아닌 것. 좀 더 사악한, 좀 더 순수한 염(念)을 품은 혼일세. 필시……」
「……악마, 아닌가」
마음이 앞선 나머지, 코노에는 몸을 내미는 듯이 말을 내뱉고 있었다.
「……말 그대로」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라이가,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그런가.
코노에는 확신한다.
그렇지만, 네 개의 그림자라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설마, 악마가 네 마리나 있다는 건가」
「지금으로선, 그런 셈일세. 사색(四色)의 각각 다른 거대한 혼이, 자네를 둘러싸고 있네」
쭈뼛, 하고 꼬리의 털이 곤두선다.
코노에가 싸웠던 것은, 붉은색의 그림자와 금색의 그림자다.
그 외에도, 더 있다는 말인가.
「악마가 하나의 혼에 달라붙는 것 따위, 드문 일이로고. 그것도 넷이 한꺼번에라니, 거의 있을 수 없네.
자네의 존재가 다소 특수한 것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역시, 뒤에서 조종하는 존재가 있네.
그것 또한, 자네의 혼을 붙들고 있는 커다란 그림자의 소행이로고」
「그 녀석은 어떤 녀석이지……」
「그것은 나도 알 수 없네」
대체 누가, 뭘 위해서.
머릿속을 선회하는 것은, 단지 그 의문 뿐이었다.
어질어질 하고 현기증이 난다.
「그렇지만, 보인 것은 안 좋은 것만이 아닐세. 자네를 가호(加護)하는 것도, 역시 있는 것 같구먼」
「가호?」
「아아. 그리 크지는 않지만, 강한 힘을 지닌 혼이네. 여기저기서 인기가 있어서, 자네도 큰일이로고」
「악마는, 저주에 뭔가 관계가 있는 건가」
「없다, 는 건 아닌 것 같구먼」
「본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나」
「설마, 싸울 생각인고?」
「그 커다란 그림자인지 하는 것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 아는 것부터 처리해 나갈 수밖에 없다. 분신 같은 그림자는 본 적이 있다. 본체도 어딘가에 있을 거다」
「진심으로 말하는 겐가?」
「거짓말을 해서 어쩔 거지」
「악마를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알고 있다」
「……후후후]
무심결이라는 느낌으로 주술사가 입가를 손으로 누르고, 웃음을 흘린다.
「후후, 후후후후」
「……뭐가 우습지」
으스스한 웃음소리에, 라이가 험한 표정을 짓는다.
「후후, 으하하하하. 이야, 유쾌하군 유쾌해. 재미있구먼. 으하하, 무모함에도 정도가 있네. 악마를 상대로 덤비겠다니 말일세. 마음에 들었네」
주술사가 목청을 높여 웃자, 라이의 심기가 더욱 언짢아지는 것이 절절히 느껴졌다.
그대로 칼을 들고 덤비는 것이 아닌가 하고, 코노에는 내심 걱정이 되어 마음을 놓지 못한다.
주술사는 코노에와 라이가 들어왔던 쪽을 향해 팔을 뻗었다.
「이 숲을 빠져나가면, 작은 마을이 있네. 그 마을을 지나서 숲으로 들어가, 안쪽으로 나아가면 사색의 빛으로 가득 찬 땅이 나오네. 나에게 보이는 것은, 그 장소로고. ……헌데」
주술사는 녹색의 눈으로 잠시 라이를 응시하고는, 다음으로 코노에를 보았다.
「이 무뚝뚝한 수컷은, 자네와 가까운 사이인 겐가? 꽤나 헌신적인 것처럼 보이네만」
「아니……」
「그 녀석은 찬아다」
「호오」
들뜬 소리를 내며, 주술사는 놀란 듯이 코노에를 다시 보고는, 웃었다.
「후후후, 과연, 찬아일 줄은. 참으로 진묘한 별의 운명을 타고났구먼」
코노에의 심경은 복잡해져서, 얼굴을 돌리고는 의미도 없이 제단 위의 장식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주술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이 저주의 수수께끼에는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수수께기는 커다란 어둠 속으로 굴러가, 코노에를 삼켜버리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 악마를 상대로 어떻게 싸우라는 것인가.
「그리 염려하지 말게. 자네의 노래는 분명, 이 세계를 뒤흔들 걸세」
돌아보자, 주술사는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한 타이밍이었다.
세계를 뒤흔들어?
자신의, 노래가.
주술사의 시선이, 훌쩍 라이 쪽으로 향해진다.
「그건 그렇고, 자네의 진중함이 과도한 그 성격……, ……과연 그렇구먼」
라이의 얼굴빛이 희미하게 변한다.
「……본 건가」
「보였구먼. 뭐, 빛이 있으면 그림자 또한 반드시 있네. 누구에게나 있는 일일세」
「…………」
라이의 표정에 처음으로 분노가 깃든다.
강한 시선이 주술사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대체, 라이의 무엇이 보였다는 것일까.
과거인가, 아니면.
알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묻는 것은 꺼림칙했다.
「자, 이 이상 알려줄 건 이제 없네. 갈 거라면 냉큼 가는 게 좋을 걸세」
한쪽 손을 팔랑팔랑 흔들고는, 주술사는 희미하게 피로가 스민 한숨을 내쉬었다.
말투고, 태도고, 이 고양이는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의 외견이 아닌 듯이 느껴진다.
실제로는, 몇 살인 것일까.
「간다」
라이는 이미 나가려 하고 있다.
그 전에, 코노에는 다시 주술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돈은」
「돈? 아아, 필요 없네. 이 사당에 산 지, 이미 꽤 긴 시간이 흘렀네. 돈 따위 보물을 가지고 썩힐 뿐일세. 게다가, 후후」
주술사는 즐거운 듯이 웃고는, 꼬리를 흔들며 희미하게 목을 울렸다.
「솔직히, 기나긴 시간에 무료해 하던 참이어서 말이네. 재미있는 걸 보았구먼. 이쪽이 감사를 표하고 싶을 정도일세」
「……그런가」
「이제부터, 가무러칠 듯한 재난이 내리닥칠지도 모르네. 길을 잃고, 불안에 빠져드는 일도 있을 터로고.
그러나, 흔들림 없는 것이 반드시 있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네」
녹색의 눈동자가, 그때만큼은 진지한 빛을 띠었다.
똑똑히 되받아보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코노에는 라이의 뒤를 쫓아 사당을 뒤로 했다.
사당에서 밖으로 나오자, 짙은 녹음의 냄새가 코를 스쳤다.
해는 저물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빛은 눈이 부셔서, 코노에는 눈을 가늘게 떴다.
주술사가 있는 곳에서 꽤나 오래 머무른 듯한 느낌이 든다.
번화가로 돌아가는 길 도중, 숲속을 걸어가며 라이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주술사가 말했던 장소로 간다」
「신뢰할 수 없었던 거 아닌가」
「그 밖에 실마리가 있는 것도 아냐」
「함정이었다면」
「그때는 그때다. 그렇게 말한 건 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