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너를 죽여도, 나는 너를 잊지 않아」
두 개씩 팔다리를 가지고,
각각 다섯 개의 손가락
두 개의 다리로 서서 걷는,
노래를 부르는 신이 있었다
귀와 꼬리를 지니며 날개가 달린,
리비카를 아내로 맞은 신
이윽고 리비카는 배가 불러, 홍색의 알을 낳았다
홍색의 알, 온 햇빛을 반사하여
너무나도 눈이 부셔, 리비카는 그만 눈을 돌리고
알은 그 틈에 굴러 떨어져,
구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다
알 속에서 굴러 나온 「씨앗」,
리비카의 노래로 눈을 떠
움튼 대지가 펼쳐지고,
흘러나오는 것은, 시작의 노래
이것은, 시작의 이야기
불리는 것은, 시작의 노래.
음유시인 고양이가, 선율에 맞추어 시를 자아낸다.
그 음성은 마치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와도 같이, 때로는 불꽃처럼 격렬하게 목청을 높여.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고양이들은 무의식중에 발을 멈추고, 홀린 듯 사로잡힌다.
매일의 분투를 잊고, 순간적으로 도취를 맛본다.
투명한 손톱이 지링 하고 악기의 줄을 탄다.
그때, 음과 겹쳐져 흘러나오는 시는, 길가에 앉은 음유시인의 주위로 반짝거리며 넘쳐흐른다.
반짝반짝, 반짝이며.
빛을 받아, 땅의 표면을 나긋나긋이 튕기며, 고양이들의 위로 흩어진다.
빛의 흔적이, 공기 중에 반짝이며 떠다닌다.
목소리와 음, 빛.
이토록 행복한 운명이 있을까.
이토록 가슴이 두근거리는 운명이 있을까.
고양이들의 입술에 한결같이 떠오르는 것은, 더없는 행복의 미소.
참자.
지금, 이 한때를 공유할 수 있었던 기쁨을.
그런 풍경을, 오후의 초록빛이 녹아든 햇살에 비춰 바라보며.
음유시인은, 연주한다.
종언을 앞에 두고 발하는, 무르고 덧없는 아름다움을.
슬프고도 장렬한 이 세계의, 시작의 노래를.
***
[ Opening Movie ]
음유시인은, 연주한다
시작의 노래를
시작의 이야기를
모든 것은, 이 숲에서 시작된다─
***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이 세계는 아름답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거짓이기 때문에.
이제 곧 죽게 되기 때문에.
선명하게 잎사귀를 퍼뜨리는 숲,
내리비치는 따뜻한 햇살,
끝없이 푸르고 맑은 하늘,
선명한 색으로 만발한 꽃들.
그, 모든 것이 ─ 거짓이다.
세계는 지금, 풀솜으로 목을 조르는 듯이
『공허』에 침식되어 있다.
종말은,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다.
죽음의 직전에 있는 것일수록, 더욱 더 빛을 발한다.
「아아아아아아악!!!」
하늘을 가르는 번개와 천둥소리.
귀청을 찢는 절규가 마을 안에 울려 퍼졌다.
비가 격렬하게 쏟아져 내린다.
하늘은 새카매져서, 당장이라도 땅으로 떨어져 내릴 듯한 정도로 낮게 내려와 있었다.
고양이들은 거처에서 몸을 떠는 수밖에는 없다.
귀는 숙여지고, 꼬리는 힘없이 늘어지고, 희미하게 털이 부풀었다.
방에 밝혀둔 불이 흔들려,
그림자가 불안하게 벽과 바닥을 기어 다닌다.
그런 가운데, 마을의 길을 흠뻑 젖은 채로 쉬지 않고 달리는 고양이가 있었다.
재빠른 발이 조용히 물을 튀겨 올린다. 똑바로 향해 간 곳은 물론 자신의 집이었다.
어깨에 짊어진 삼베 자루는 물을 흡수해 색을 바꾸어, 무겁게 달라붙어 있었다.
속에는, 그다지 무언가가 들어있지 않은데도.
흠뻑 젖은 꼬리도 무겁다.
평소엔 그 존재를 의식하는 일도 드문데, 지금은 어쩌면 이리도 성가신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비가 부딪쳐온다. 몸이 완전히 차가워진 상태였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따뜻한 잠자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번개가 내리친다.
하늘 전체가 하얗게 빛나, 달리는 고양이의 모습을 새카만 마을 위로 떠오르게 했다.
「음의 달」은 어둠으로 칠해져 보이지 않는다.
달리고 있던 고양이는 겨우 집에 다다라,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등 뒤로 문을 닫자, 귀를 덮고 있던 빗소리와 천둥소리가 거짓말처럼 멀어졌다.
몸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바닥이 젖어든다.
고양이──코노에는 푸르륵 고개를 흔들었다.
물방울이 벽과 가구로 튄다.
「……아아, 젠장」
방이 어둡다.
이제는 뭐가 젖든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에, 코노에는 지고 있던 자루를 내팽개쳤다.
문 옆에 놓아둔 작은 자루에서 잎사귀를 꺼내들어, 선반의 작은 접시에 넣었다.
안에는 얕게 물이 채워져 있다.
어렴풋한 빛이 방 안에 퍼진다.
고작 「어두움」에서 「조금 어두움」이 된 정도지만, 이것으로 충분했다.
불은 가능한 한 쓰고 싶지 않다.
코노에는 불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신 「길잡이의 잎」으로 빛을 취하고 있었다.
충분히 「양의 달」의 빛을 모은 잎이, 물에 젖으면 약하디약하게 발광한다.
길잡이의 잎이라는 것은, 오늘처럼 아주 캄캄한 비 내리는 날에 빛을 내는 나무의 잎이다.
길을 잃은 고양이를 인도해준다는 점에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엷은 빛에 비춰지는 집은, 고양이가 세 마리 들어가면 꽉 차는 넓이였다.
작은 선반과 식량을 저장하는 단지, 물을 담아둔 나무통, 침대.
최저한으로 필요한 것 밖에는 없는, 검소한 집이었다.
가까스로 제정신을 찾은 듯한 기분에, 코노에는 이불이 둥글게 말려있는 침대 위에 앉았다.
익숙한 감촉의 이불은 따뜻하다. 무심결에, 그르릉하고 목이 울린다.
신발을 벗고, 단검이 안에 들어간 벨트를 푼다.
코트도 벗어서 던져두고서, 코노에는 양 손을 앞으로 내밀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선조의 흔적인지, 코노에들과 같은 고양이──리비카라고 불리는 종족은, 눈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정도의 가느다란 털로 몸 전체가 뒤덮여있다.
온기를 띠고 뭉친 털을 세심하게 핥는다.
선조들처럼 엉덩이의 털까지는 아니지만, 팔과 꼬리, 귀는 털다듬기를 하는 습성이 남아있다.
까끌한 혀가 브러시 대용이 되어서, 기분이 좋다.
희미하게 목을 울리며, 코노에는 잠시 동안 계속해서 털다듬기를 했다.
때때로 울리는 천둥소리에, 귀의 방향을 바꾼다.
꼬리는 끝부분이 젖어서 한 다발이 되어버려, 푹신하게 부풀어 오른 탓에 이 이상 볼품없을 수 없었다.
바작바작 앞니로 세게 훑어, 털 뭉치를 만들고서는 풀어낸다.
귀도 손등으로 정성들여 닦는다.
손가락 끝을 핥으며, 코노에는 비가 세게 내리치는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깥에서 달리고 있었을 때 들렸던 비명.
그것은 대체, 누구의 것이었을까.
이번에는 누가──삼켜진 것일까.
한 마리, 또 한 마리씩 고양이가 사라져간다.
그것은 마물(魔物)의 탓도 악마의 탓도 아니다.
다름 아닌, 이 마을의 고양이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당연한 일이 되어 있다.
그렇지만.
「……………, 내가 고민한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야」
소리 내어 중얼거리고, 수렁으로 빠져들 것만 같은 생각을 떨쳐낸다.
말 그대로, 자신 하나가 생각해서 어떻게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공허』의 침식은,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것이기에.
던져놓은 채로 내버려 둔 자루가 생각나, 코노에는 침대에 납작 엎드려서 팔을 뻗었다.
길고 뾰족한 손톱으로 자루를 끌어당긴다.
젖어서 오그라진 자루는, 확실히 들어 있는 내용물이 없다.
사냥에 나가도, 손에 들어오는 것은 몇 개 정도의 나무 열매, 풀뿌리, 약초──그런 것들뿐이었다.
고양이들은 나무 열매나 과일도 좋아한다.
게다가, 며칠 먹지 않아도 몸이 버틴다.
그래서 먹는 것에 궁해지는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고기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 사냥에서 고기를 손에 넣는 것은 곤란했다.
코노에가 사는 마을, 카로우(火樓) 주위의 숲은, 그 대부분이 『공허』에 침식되어 있었다.
『공허』──
그것은 실로 불가해한 현상이었다.
언제부터냐 하면, 코노에가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최초로 『공허』를 발견한 것은, 약초를 따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던 어린 암고양이였다.
암고양이는 손을 새빨갛게 물들여 마을로 돌아왔다.
베인 상처투성이인 손가락에 눈물을 흘리며, 암고양이는 이렇게 말했다.
「풀을 딸 수 없어. 만질 수 없어. 만지면, 날붙이처럼 손을 베여」라고.
처음에는 모두, 암고양이가 말하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칼날풀이라는 식물이 있다.
잎이 연하고 가늘고 긴 탓에, 아무 생각 없이 만지면 손가락을 베여버리는 이름 그대로의 풀이다.
마을의 고양이들은, 암고양이가 착각해서 그 풀을 따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암고양이의 호소에도 진지하게 상대하지 않았다.
그것이 심각한 악몽이 되는 일 따위,
대체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머지않아, 마을의 고양이들은 잇달아 똑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
풀 뿐만 아니라, 숲에 생식하는 모든 것에 손을 댈 수 없는 것이다.
숲은, 언뜻 보기에는 어디도 변한 구석은 없었다.
그렇지만, 꽃과 초목, 새부터 시작해서 나비 등의 곤충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에도 손을 댈 수 없게 되었다.
마치, 물질 그 자체로부터 거절당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고양이들은 거부되고 있었다.
숲에서 숨 쉬는 모든 것이, 고양이들과는 양립하지 않는 「물질」로 변화하고 있었다.
여하튼 손을 대면 아픔이 스치고, 때로는 피부를 찢는다.
지금까지 식사로 먹어온 과일 따위도, 모두.
그러나, 그 현상이 일제히 일어난 것은 아니다.
몸을 좀먹는 병마와 같이, 조금씩, 조금씩 이 나라──시사(祇沙)는 가장자리부터 『공허』에 침식되어 갔다.
고양이들은, 막다른 곳에 몰려 있다.
나라의 중심부는 아직 그 정도로 피해가 나오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지만, 코노에들이 사는 카로우 일대는 살얼음판과도 같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음식물은 지금까지 모아둔 것을 먹어치우거나, 『공허』에 침식되지 않은 숲을 찾는 수밖에는 없다.
쥐나 새 따위의 작은 동물들은 위험하다.
작은 동물들은 그치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공허』에 침식된 숲으로부터 이동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덤벼든 순간, 고통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고양이가 그대로 죽어간 일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비축해두었던 음식물도 줄어들고, 배고픔에 시달리는 고양이들이 무엇을 먹을 것인가──.
「…………」
거기서, 코노에는 사고를 중단했다.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고 일어서서, 자루에서 꺼내든 작은 수확물을 음식물을 비축해두는 단지에 집어넣는다.
배는 고팠지만, 지금은 먹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목마름을 느끼고, 물통 쪽으로 다가갔다.
뚜껑을 열고 통 속으로 고개를 숙여, 물을 혀로 떠올려 마셨다.
다 마시고서, 통의 뚜껑을 덮는다. 또 한 번 기지개를 켰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빗속을 꽤 오래 달렸던 탓도 있을 것이리라.
오늘은 이만 자자.
물이 튄 입가를 손으로 훔치고, 코노에는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하다 만 털다듬기를 마치고, 이불에 둘러싸인다.
익숙한 집 냄새를 들이마시고, 코노에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꼬리를 몸에 휘감는다.
순간, 그 비명이 고막 안쪽에서 되살아났지만 곧바로 지워냈다.
비가 내리는 밤, 홀로 조용히 웅크린다. 그렇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고독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오늘은 춥다.
내일은 털이 부풀 정도로 개면 좋겠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코노에는 잠에 들었다.
다음날은, 코노에의 바람대로 쾌청했다.
코노에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기지개를 켜고, 아침의 털다듬기를 했다.
그리고, 젖은 채로 내던져두었던 자루와 코트를 볕이 잘 드는 곳에 걸어두었다.
가볍게 나무 열매를 집어먹으며 몸단장을 하고, 밖으로 나간다.
제 영역을 정찰하는 것이 일과다.
이 마을──카로우는 작은 취락으로, 시사의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소수의 백성으로 형성된 전투민족으로, 대부분의 수고양이를 어릴 때부터 철저히 전투기술을 수련시키며 키운다.
그렇지만, 『공허』의 문제가 심각해지고부터는, 살아남는 것이 고작인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카로우의 풍경은, 한산하다.
집은 띄엄띄엄 흩어져있지만, 주민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옛부터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생활하고 있다.
코노에가 제 영역의 정찰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즈음에는, 양의 달은 지평선으로 가라앉으려 하고 있었다.
「양의 달」과 「음의 달」──시사에는 태양이 없다.
어째서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고양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그저, 전해져 내려오는 것에 따르면 태양은 아주 먼 옛날, 바다에 가라앉아 버렸다고 한다.
시사는 섬나라다. 그 주변을 에워싸는 바다는 노랗고, 이는 태양이 가라앉은 탓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태양 대신에 달이 두개 있었다.
「양의 달」과 「음의 달」.
양의 달은 서쪽에서 떠서 낮 동안 걸려있고, 음의 달은 동쪽에서 떠서 밤 동안 걸려있는다.
이것도, 오래전부터 이런 식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태양이 바다에 가라앉아 세계는 어두워졌다.
신(神)인 『두 지팡이』의 아내였던 『리비카』의 세계를 밝히기 위해,
달은 두개로 나뉘었다」
「두 지팡이」는, 이 세계를 만들었다고 하는 전설상의 존재다.
두 개의 지팡이와도 같은 다리로 걸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평발」 등의 이름이 있었다.
「리비카」라고 하는 종족의 이름은,
「두 지팡이」의 아내인 여신 「리비카」에서 왔다.
여신 리비카는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고양이」라는 생물의 모습은, 「두 지팡이」의 문헌에 남아있는 그림으로 알 수 있었다.
리비카보다도 상당히 몸집이 작았지만, 귀와 꼬리가 꽤나 닮았다.
그래서, 리비카는 서로를 「고양이」라고 부른다.
「두 지팡이」의 모습에 대해서는, 자료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시사의 고양이들은 미미한 정보의 파편들만으로, 그 모습을 상상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해질 녘의 빛을 등에 받으며, 코노에는 마을의 입구를 향해 걷고 있었다.
오늘은 토키노가 오는 날이었다.
시사에서 가장 큰 도시인 란센(藍閃)에서 오는 행상 고양이다.
나이는 코노에와 같은 정도로,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다고 한다.
어머니는 토키노를 낳고 바로 돌아가신 듯하다.
코노에의 부모님은 두 마리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는 어릴 적에 병으로 돌아가셨다.
마을에 사이가 가까운 고양이는 없었지만, 그 편이 마음이 편했다.
마을의 고양이는, 싫다.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모두, 최후엔 자신을 지키는 일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라도 살아갈 수 있다.
지금까지 다른 고양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긴 적은 없는데다, 그런 마음이 드는 일이 생긴다면 깨끗하게 죽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토키노는 예외다. 처음 만났을 때, 왜인지 묘하게 마음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근심이 없고, 유연하고 의젓하다. 자신과는 정반대다. 그 점이 좋은지도 모른다.
토키노는 늘 번화가의 이야기를 해준다.
카로우에서 나온 적이 없는 코노에로서는, 그것은 은밀한 즐거움이었다.
슬슬 도착할 즈음인가.
걸음을 서두른다.
「어이」
갑자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명백하게 험악함을 띠고 있는 소리다.
「기다려, 코노에」
들은 기억이 있다.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다.
무시할까도 생각했지만, 낮게 으르렁대는 목소리에 코노에는 발을 멈췄다.
성가신 일이 될 것 같다.
돌아보니, 한 수고양이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 신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다.
석양의 역광으로 새카만 실루엣은, 귀를 숙이고 전투 태세에 들어가 있다.
「오늘이야말로 결말을 짓자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거긴 내 영역이다」
영역. 그 말에, 코노에는 혐오를 드러낸다.
신의 영역과 코노에의 영역은 서로 이웃하고 있다.
신은 이전부터, 코노에가 자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다고 트집을 잡아왔다.
확실히 영역은 겹치고 있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이다. 코노에로서는 어찌 되든 좋은 일이었다.
이런 싸움은 특별히 드문 일이 아니다.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어도, 카로우의 고양이의 투쟁심은 여전히 건재했다.
아니, 절박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신의 눈이 번쩍번쩍 즐거운 듯이 빛나고 있다.
영역 다툼을 핑계 삼아, 단순히 불안한 기분을 풀고 싶은 뿐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귀찮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더더욱 그렇게 여겨졌다.
토키노를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정말이지 질리지도 않는구나 너. 영역이라고 해봤자, 아주 조금 길이 겹친 것뿐이잖아. 그런 거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 없고, 흥미도 없어」
「그게 네 영역이라고 한다면 그걸로 됐으니까, 맘대로 해」
「그렇게는 못하지. 난 말야, 네 그런 콧대 높은 구석을 가차 없이 짓눌러서 뭉개주지 않으면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고」
신이 목구멍 안쪽으로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를 울렸다.
「……이 자식!!!」
고함과 함께, 신이 덤벼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물러서며, 코노에는 단검을 뽑아낸다.
연거푸 휘둘러지는 신의 칼날은 목 언저리를 노리고 있다.
동시에 코노에를 붙잡으려 덤벼드는 손을 피한다.
검을 검으로 튕겨내며, 왼쪽 반신에 힘을 모은다.
재빠르게 내지른 왼손으로, 신의 가슴을 할퀴었다.
「크윽!!」
날카로운 손톱이 의복을 가르고, 살갗에 파고든다.
신이 약간 비틀거렸다.
그 틈을 노려, 코노에는 단검을 쥔 신의 팔을 검으로 내리치려 했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참에 신이 몸을 당겨, 높게 무릎을 올려친다.
코노에가 뒤쪽으로 물러나자 동시에, 신도 거리를 둔다.
두 마리의 사이에, 살갗을 태우는 듯한 공기가 흐른다.
「이 자식, 코노에!!」
두 눈에 격렬한 살기를 띠고, 신이 외친다.
서로 노려보고, 낮게 으르렁댄다.
코노에의 귀도 어느샌가 숙여지고, 목에서 으르렁대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전신의 털이 곤두서고, 동공이 바늘처럼 팽팽히 조여진다.
리비카의 동공은, 극단의 흥분상태의 들어가면 가늘게 날카로워진다.
그래서, 아무리 평정을 가장한다 하더라도 눈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다시 한번 신이 기괴한 소리를 높이며 돌진해왔다.
이빨을 드러내고, 칼을 옆으로 휘두른다.
뺨에 날카로운 바람을 느끼며, 코노에는 상체를 낮추며 피한다.
동시에 몸을 비틀어, 신의 복부를 겨냥하여 발꿈치를 날렸다.
눈치 챈 신이 몸을 움직인다. 겨냥은 조금 빗나갔지만, 발꿈치는 옆구리를 포착했다.
「크읏……!」
신이 자세를 흐트러트린다.
기세를 몰아 몸을 웅크리고, 땅을 차고 뛰어올랐다.
재차 나무줄기를 차고 가속을 붙여, 웅크린 신의 곁으로 돌진한다.
신이 즉시 일어나, 재빨리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순간 코노에의 그림자가 빠르게 신을 덮친다.
「크아아악!!」
흩날리는 흙먼지 속, 신이 땅에 등을 갈고 넘어진다.
버둥거리는 몸을 한쪽 무릎으로 누르고, 코노에는 신의 어깨에 손톱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냈다.
왼손으로 검을 치켜든다.
신의 눈동자에 두려움의 색이 스친다.
얼굴 바로 옆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큭!!」
신이 눈을 크게 뜨고, 소리도 없이 몇 번 입을 뻐끔거린다.
완전히 뒤집어져버린 귀의 솜털을 간지럽히듯이, 코노에는 얼굴을 가까이 댄다.
바로 가까이에서 눈물이 고인 눈을 본다.
「더 할 거냐」
「아, 알았다, 알았어, 내가 졌어, 인정할 테니까, 이거 놔! 빨리 이것 좀 빼줘!」
방금 전까지의 위세는 어디로 갔는지, 신은 세차게 날뛰었다.
크게 뜨인 눈은 동공이 완전히 넓어져 있다.
코노에는 일어서서, 지면에 꽂았던 단검을 뽑아든다.
신이 허둥대며 일어나, 뒷걸음질 친다.
귀도 꼬리도 완전히 풀이 죽어있다.
코노에는 그런 신을 한번 흘낏 보고, 검을 칼집에 넣으며 발길을 돌렸다.
마을 입구로 서둘러 가지 않으면.
「제길……. ……고아 주제에」
걷기 시작하려는 참에, 코노에는 발을 멈췄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불이 붙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어째서 이 녀석은 일일이, 어떻게 되든 좋은 것들만 들춰대는 걸까.
돌아봄과 동시에, 코노에는 단검을 뽑아들어 내던졌다.
신의 발치에 단검이 꽂힌다.
히익 하고 한심한 비명이 터졌다.
「시끄러워. 그 이상 지껄이지 마. 빨리 꺼져버려, 너」
강한 어조로 내뱉자, 신은 문자 그대로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그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기 전에, 코노에는 이번에야말로 발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거친 숨으로 토해낸다.
고아.
어찌 되든 좋은 일이다.
다른 고양이들이 뭐라고 말해도 관계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도, 매도당하면 화가 난다.
코노에는 코노에 나름대로 부모님을 존중하고 있다.
지금, 이 세계에서 서로 사랑하며 아이를 낳는 것은 귀중하다.
기억 속의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 코노에를 낳은 것이라고 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런 질문을 받아도, 코노에는 설명할 수 없다.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실감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로 소중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코노에는 발을 멈추지 않고 주위를 둘러본다.
이 정도로 난동을 피워도, 다른 고양이들이 집에서 나오는 기색은 없다.
카로우의 고양이에게 있어선 늘 있는 일인 것이다.
싸움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희생자도.
오히려 죽어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녀석도 있을 테지.
왜냐하면──
내일의 굶주림을, 견뎌낼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하늘은 석양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몸 속 깊은 곳이 수런거린다.
오늘은 피를 들끓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입구로 향하던 도중에 코노에는 발을 멈췄다.
영역 다툼을 하고 있는 듯하다.
고양이들은 2:1로 싸우고 있다.
전부 세 마리.
아마도, 두 마리 쪽은 투아(鬪牙)와──
「……찬아(贊牙)」
무심결에 눈이 가늘게 좁혀진다.
찬아와 투아──노래하는 자와 싸우는 자.
투아는 이른바 전투 능력이 있는 고양이를 가리키며, 특별히 드물지는 않다.
카로우의 고양이는 대개가 투아에 해당한다.
그러나, 찬아는 이 세상으로 생명을 내려받는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
선천적인 소질을 지니고, 거기서 능력이 개화한 자만이 찬아가 된다.
찬아의 역할은, 특수한 「노래」로 투아를 지원하는 것이다.
노래라고 해도, 실제로 목소리를 내어 노래하는 것, 악기를 연주하는 것, 노래하지 않고 몸에서 선율을 발하는 것, 가지각색이다.
그 능력은 투아에게 있어선 대단히 강력한 것으로, 찬아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막대한 차이가 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코노에의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카로우에도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투아는 단검을 들고 자세를 취하고, 찬아는 양손을 가슴 앞에서 모아쥐고 눈을 감고 있다.
상대 고양이는 부들부들 떨고 있어, 옆에서 보기에도 겁을 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떨고 있던 고양이는 자포자기한 것인지, 목청을 높이며 찬아 쪽으로 뛰어나갔다.
찬아를 쓰러뜨리면 승률은 현격히 올라간다.
그 정도로, 찬아의 지원은 위협적인 것이다.
필사적인 칼날이 번쩍 쳐들어졌을 때, 찬아인 고양이가 눈을 떴다.
노랫소리가 흐른다.
그것은 목소리라기 보다는 음으로, 귀에서부터 지배되어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찬아의 몸이 희미하게 빛나고, 그 빛이 투아 쪽으로 흘러간다.
다음 순간, 「노래」를 받은 투아가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코노에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상대의 몸에 투아의 검이 깊숙이 박혀있었다.
실로 눈 깜짝할 새의 일이었다.
검으로 꿰뚫린 고양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저것이, 찬아의 힘.
고양이들은 원래부터 몸이 가볍지만,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정말로, 찬아의 유무가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찬아와 투아 고양이들은 시체에 눈도 주지 않고, 그 자리에서 떠나갔다.
꿈이라도 꾼 듯한 기분으로, 코노에는 숨을 토해냈다.
심장이 마구 뛰어댄다.
머릿속 깊은 곳이 열을 띠고 있다.
고요한 흥분이 소용돌이친다.
찬아의 「노래」를 받았을 때의 힘의 도약. 그것은, 어떤 감각인 것일까.
정신을 차리자 꼬리가 단단히 부풀어 있었다.
뒤에 남겨진 것은, 한 번 찔린 상태로 숨이 멎은 유체와 정적이었다.
피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회수될 테지.
식량으로.
그렇지만, 그냥 내버려 두고 가는 것도 망설여졌다.
결국, 코노에는 유체에 다가갔다.
그 표정에는, 편안히 죽을 수 없었던 자의 공포가 들러붙어 있었다.
얼굴에서 눈을 돌리고,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몸을 들어올린다.
그대로 숲으로 끌고 가려고 했지만, 관두었다.
「…………」
먼저 온 손님이 있다.
작게 혀를 찬다.
숲의 덤불에 가로누운 그림자가 있었다.
필시 살아있지는 않을 것이리라.
코를 킁킁거리니, 희미하게 고약한 냄새가 났다.
유체로 보이는 그림자의 주변에는, 어째서인지 비가 내린 뒤처럼 작은 물웅덩이가 나있다.
코노에는 눈썹을 찌푸린다.
그 부근은…… 『공허』에 침식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체가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녹기 시작한 조직은 흙에 배어들지도 못하고, 고이는 수밖에는 없다.
『공허』는 외견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코노에는 그곳에서 벗어나, 안고 있던 유체를 다른 장소에 놓아두었다.
어젯밤에 들었던 단말마의 비명이 귀에 되살아나, 유체를 바라본다.
이 고양이로서는 물론 의도하지 않은 죽음이었겠지.
그래도, 싸워서 죽은 것이라면 그나마 낫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산 제물이 되는 것보다는, 훨씬.
뿌리쳐내는 것처럼 등을 돌리고, 코노에는 달리기 시작했다.
꽤나 시간이 경과해 버렸다.
마을 입구를 향해 서두른다.
입구의 옆에 오도카니 서 있는 그림자를 보고, 코노에는 뛰기 시작한다.
무거워 보이는 짐을 발치에 두고 하늘을 올려보는 옆얼굴은, 틀림없이 토키노였다.
발소리를 알아챈 토키노가 쫑긋 귀를 세우고, 곧바로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코노에!」
「기다렸지. 미안」
「전혀. 한 바퀴 달 만인가.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너도」
정말로 상당히 기다렸을 터다.
미안한 마음을 품으며, 토키노의 밝은 공기에 코노에도 작게 미소를 띄웠다.
이 세계에서는, 시간과 월일을 세는 방법은 「두 지팡이」가 남긴 문헌 등을 참고하고 있다.
양의 달이 떠올라, 음의 달이 질 때까지를 하나의 날로 생각한다.
7일을 뭉쳐서 이렛달, 30일을 한 바퀴 달이라고 부른다.
어째서 7일과 30일인지는 불명이었다. 그러나, 「두 지팡이」로부터 배운 것이기에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토키노가 툭, 하고 어깨를 부딪쳐 왔다.
코노에도 되받아쳐 친애의 인사를 나눈다.
토키노는 작게 목을 울렸지만, 곧바로 의아한 듯한 얼굴을 했다.
「……어라. 코노에,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여기 오기 전에, 조금」
「싸운 거야?」
「영역 때문에, 무턱대고 달라붙는 녀석이 있어서」
「영역, 인가……」
약간 감이 잡히지 않는 듯한 얼굴로 토키노가 중얼거렸다.
토키노가 살고 있는 란센은, 시사에서도 가장 번창한 시가지다.
그렇다고 해도, 시사는 주변의 바다에 군생하는 거대한 산호초 때문에 외교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거의 독자적으로 발전을 이루어 왔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야기로 들은 한에는, 란센에는 늘 새로운 것이 모여들어, 낮도 밤도 없이 고양이들이 오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란센에 사는 고양이들은 영역의 의식이 옅어져 있는 것 같았다.
「싸움이라면, 물론 코노에가 이겼겠구나」
「응」
「다치거나 하지 않았어?」
「괜찮아」
「그래. 다행이다」
토키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장난스레 어깨를 움츠렸다.
「그래도, 우리집은 약 종류도 풍부하니까, 다쳐도 걱정 없어」
「나한테까지 장사 할 생각이냐, 너」
「글-쎄」
토키노가 몸을 웅크리고, 발치에 두었던 짐으로 손을 뻗었다.
그것은 튼튼한 나무 껍질로 엮인 뚜껑이 달린 커다란 바구니로, 짋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해 목제의 기다란 봉이 붙어있었다.
안에는 음식물부터 약까지, 다양한 물건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토키노는 언뜻 보기에는 코노에보다도 마른 체격이었지만, 팔과 어깨, 손가락은 울퉁불퉁하고 힘이 세다.
행상으로 단련된 것이리라.
그러나, 오늘은 지친 상태인 것인지, 바구니를 어깨에 지려고 하자 발이 휘청거렸다.
잘 보면 얼굴도 피로가 스며있다.
「비틀거리고 있잖아」
「아아, 응. 이제 곧 란센에서 큰 축제가 있으니까 말야, 그 준비로 지금 좀 바빠서. 그래도, 괜찮……, ……우왓!」
말을 채 마치지도 못했을 때, 토키노는 지면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구니가 쿵 하고 무거운 소리를 낸다.
「……아-아. 아하하, 일 쳤네」
토키노가 머리를 긁으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에, 코노에는 눈을 가늘게 뜬다.
특별히, 지금 정도는 약을 찾아도 괜찮겠지.
굴러다니는 바구니의 봉을 잡는다. 엉덩이를 털며 일어난 토키노가 당황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 괜찮아 코노에, 미안하게」
「피곤하잖아」
「그래도, 그거 무겁고. 게다가 나, 익숙하니까 말야. 신경쓰지 마」
「눈 앞에서 넘어지는 걸 보고, 신경쓰지 말라는 편이 무리야」
「으……」
토키노는 미안한 듯이 눈썹 끝을 내린다.
코노에는 바구니를 어깨에 짊어졌다.
묵직하게 몸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토키노는 귀를 숙이고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눈 앞에, 코노에는 세 손가락을 내민다.
「이걸로」
「뭐가?」
멍한 얼굴로, 토키노가 몇 번 눈을 깜박인다.
「그러니까, 세 개로」
「무슨 소리야」
「큄」
「……아아! 그 말이었구나!」
토키노가 꼬리를 세우고, 즐거운 듯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큄이라는 것은 새콤달콤한 나무 열매를 이르는 것으로, 리비카들 사이에서 자주 식사로 이용되고 있다.
코노에는 이 열매를 좋아했다.
대가 없이 바구니를 지는 것이 안된다면, 교환조건을 내건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늘 선물로 가져오고 있잖아. 코노에가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고」
「바구니를 들 구실이야」
「구실이라니……. 당당하게 말하지 말라고」
「아까 넘어졌을 때, 괜찮았어?」
「응? 아아, 완전 끄떡없음. 팔팔해」
두 발로 지면을 콩콩 밟고서, 토키노가 생긋 웃는다. 코노에는 약간 짓궂게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 김에 너도 업고 갈까」
「……하!?」
토키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표정이 우스워서, 코노에는 얼굴을 돌리고 웃음을 참았다.
「……너 말야-. 됐어, 그냥 웃으면 되잖아. 상관 안 해. 별로」
토키노는 삐친 듯 했지만, 바로 기분을 풀었다.
바구니는 확실히 무겁고, 나르는 데에도 요령이 필요했다.
그래도, 토키노와 이야기하며 걷는 귀로는 눈 깜짝할 새였다.
느긋이 꼬리를 흔들고 휴식을 취하며, 코노에는 토키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토키노는 행상용 바구니에서 다양한 먹을거리와 마실 것을 꺼내 주었다. 그 중에는 보기 드문 것도 있었다.
최소한의 예만 받아두고자, 코노에는 말린 큄 열매와 들풀을 골라집었다.
그릇에 담아서, 나무 막대로 갈아 으깬다.
「그거, 뭐야?」
얼굴을 들이밀고 살펴보는 토키노에게 그릇을 내민다.
「맛 좀 봐봐」
「이 가루?」
「……별로, 그릇 부분을 맛보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아냐아냐, 잘 먹겠습니다」
토키노가, 겉보기는 그다지 좋지 않은 가루를 손가락으로 집어서 입안에 털어넣는다.
처음엔 덤덤한 얼굴을 했지만, 곧바로 눈을 빛냈다.
「맛있어. 새콤달콤하고」
「같이 섞은 풀에 신맛이 있어. 건조시키면 풋내가 빠지니까, 이렇게 해서 먹으면 의외로 어울려」
이야기하면서, 코노에도 가루를 손가락에 묻혀 가볍게 핥았다.
미미한 새콤달콤함이 입 안에 퍼진다.
「헤에. 과일이랑 풀을 섞는다니, 이 쪽에선 그다지 들어본 적이 없네. 코노에는 이런 거 잘 알고 있네」
「……별로, 가끔 이래저래 시험해보거나 하니까」
「그렇구나」
그 외에도 먹을거리를 집어먹는 동안에, 배도 적당하게 불러왔다.
토키노의 이야기는 변함없이 흥미진진한 것이었지만, 조금 신경이 쓰이는 화제도 있었다.
최근, 란센 부근의 숲에서 마물이 모습을 나타내게 된 듯하다.
「돌아갈 때는?」
「그렇게 빈번하게 나타나지도 않는 것 같으니까. 습격당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고, 일단 장사하는 고양이들 사이에 전해지는, 안전한 루트라는 게 있어」
「그래도, 주의하지 않으면 말이지. 강도도 나오는 것 같고」
토키노는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코노에는 불길한 예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토키노는 밤이 깊어지기 전에 카로우를 떠난다고 한다.
「자. 약속했었지?」
집을 나가기 전에 자그마한 붉은 열매 네 개가 건네졌다.
큄이다.
「한 개 많아」
「하나는 내 마음. 다음에 올 때는, 더 가지고 올게」
「그래. 바구니를 들었던 보수기도 하고」
받아들면서 대답하자, 토키노는 어깨를 움츠리고 웃었다.
「알겠어. 고지식하구나- 코노에는」
「너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은 걸」
「아하하, 그래. ……아」
거기서 토키노는 뭔가를 떠올린 얼굴을 하고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자, 이거」
토키노가 내민 것은, 세키야미라는 붉은 꽃이었다.
「코노에, 이 꽃 향기, 좋아하지? 오는 도중에 피어 있어서, 따왔어」
「……별로, 좋아하는 정도까진」
간파당한 기분이 들어서, 코노에는 얼굴을 돌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꼬리는 흔들리고 만다. 토키노가 웃었다.
「꼬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자」
「…………」
코노에가 마지못해 꽃을 받아들자, 토키노는 다시 바구니를 짊어들었다.
「그럼, 또 올게. 다치거나 아프지 않게 몸 조심해」
「너야말로, 돌아가는 길은 조심하라고」
「응」
크게 손을 흔들며 꼬리를 세우고, 토키노는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뒷모습을 배웅하며, 코노에는 충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토키노와 만날 때는 늘 그랬다.
그러나, 동시에 자그마한 불안도 안고 있었다.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예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토키노에게 받은 큄을 하나 입에 넣고, 깨물어 먹는다.
달콤함 보다도 시큼함 쪽이 먼저 퍼졌다.
남은 열매를 느슨하게 쥐고, 하늘을 올려본다.
음의 달이 머리 위로 높이, 푸르게 식은 빛을 내리비치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다가, 코노에는 시야의 끄트머리에 걸리는 빛을 포착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마을에 불꽃이 흔들리고 있다.
어느 집 앞에 횃불이 내걸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 어젯밤의 비명을 떠올린다.
이번의 산 제물은 두 마리인 것이다.
또 하나의 희생자가, 그 집의 고양이다.
그것은 『공허』에 의해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고양이들의, 고육지책이었다.
만족스럽게 식량이 고루 미치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사자(死者)가 발생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만약 정상적인 정신 상태였다면, 유체는 정중하게 매장되었으리라.
그러나, 목숨을 이어나가기 위한 본능은 잔혹성을 정당화시켜버린다.
바로 지금, 마을의 고양이들이 그랬다.
굶주린 고양이들에게 있어 사체는──식량이다.
혼이 빠져나간, 일개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곤 해도, 그렇게 매일 빈번하게 죽는 것이 아니다.
사체를 먹어치우고, 다음으로 화살이 향한 것은──살아있는 고깃덩어리였다.
늙은 고양이는 살 날이 짧다.
암컷과 새끼들은 유약하다.
그런 이유로 한 때, 카로우는 지옥도와도 같은 악몽에 빠져들었다. 특히 암컷과 새끼들은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암고양이는 그렇지 않아도 『실구(失軀)』라는 돌림병의 발병률과 사망률이 높아서, 전체적으로 격감되어 있었다.
지금, 카로우에 암컷은 하나도 없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카로우의 촌장은 이런 결정을 내렸다.
「세 바퀴 달이 되는 날에, 혹은 기아가 심각해졌을 경우에는 두 바퀴 달이 되는 날에, 목숨을 이을 제물을 뽑는다」라고.
요컨대, 마을의 고양이로부터 산 제물이 선택되는 것이다.
같은 고양이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이것은 카로우에 제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마을에서도 실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제물을 먹는 것은 물론 강제가 아니다.
먹고 싶은 자가 먹는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야기지만, 희망자가 끝을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너무나도 잔인한 결정에 견디지 못하고, 마을을 떠나려는 고양이도 있었다. 그렇지만, 남쪽의 숲을 빠져나간 곳에는 높은 낭떠러지가 치솟아있고, 북쪽의 숲에는 『공허』가 만연해 있었다.
마을에서 나가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모두, 언제 자신이 산 제물로 선택될지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