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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난다 ] → 선택
[ 당혹감을 느낀다 ]
“……농담도 정도껏 하라고, 웃기지 마!”
나는 소리를 지르며, 여하튼 간에 나를 붙들고 있는 팔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쳤다.
재미있는 거라느니 편한 거라느니……. 이 녀석들, 말하는 게 엉망진창이다.
이런 녀석들일 줄은 몰랐다고……!
“참 애쓰네. 조금 조용히 해주시지 않겠어요? ……시작해.”
“큭!”
“죽지 않을 정도로 해.”
검은 파카 무리 중 한 명의 무릎이 배에 꽂히고, 숨이 턱 막힌다.
[ 힘을 사용한다 ]
[ 힘을 사용하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한다 ] → 선택
이렇게 되면 사용하는 수밖에는 없는 건가. ……힘을.
나는 얼굴을 들고, 의식을 집중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역시 그럴 순 없다.
힘을 사용하면 ‘그 녀석’이…….
그런 망설임이 나를 방심하게 만들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트립이 눈앞으로 바싹 다가와 있었다.
“윽!”
“왜 그러시는 거죠? 아오바 씨. 뭔가 망설이고 계신 건가요? 움직임이 산만해졌어요.”
“너무 그렇게 갈팡질팡하고 있다가는…….”
“아오바.”
“!”
“윽, 커헉…….”
“묵사발이 된다고?”
트립의 주먹이 명치로 박혀들고, 무릎이 힘없이 꿇린다.
“윽, 으윽……!”
그 상태에서 등까지 차이고, 나는 꼴사납게 바닥에 엎어졌다.
아픔과 토기를 참으며 고개를 들자, 유리구슬처럼 공허한 수많은 눈동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모르핀.
녀석들의 눈은 나를 보고 있는 듯하면서도 보고 있지 않다.
그저 충실하게 명령을 따를 뿐인, 기계와도 같은 인간의 눈이다.
얼굴을 차이고, 입 안으로 피 맛이 가득 차오른다.
그 밖에도 온몸 이곳저곳이 욱신거려서, 나는 스스로의 몸을 지키는 것처럼 잔뜩 웅크렸다.
몇 번이고 충격이 가해지는 동안, 의식이 천천히 페이드아웃 되어간다.
“벌써 끝인가?”
“그럴지도.”
“어떻게 하지?”
“응?”
“아오바 씨.”
“아아…….”
[ 이제 저항할 기력도 없다 ]
[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 → 선택
“……웃, 기지, 마……. 이런, 데서…….”
나는 남은 힘을 전부 쥐어짜내, 후들거리는 두 팔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정말로 애쓰네. 과연 아오바 씨.”
“그러네.”
“어디까지 애를 쓸 수 있는지, 끝까지 지켜봐드릴 테니까요.”
……젠장. 정말로,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아오바!”
멍해지기 시작한 귀에 몹시도 낯익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목소리…….
“모르핀인가.”
“성가신 녀석들.”
“마스터!”
“아-, 아.”
“……방해꾼들이 납셨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확인할 기력도 없이…….
나는 간신히 붙잡고 있었던 의식에서 손을 놓았다.
……눈을 뜨자, 제일 먼저 가스마스크가 보였다.
가스마스크…….
……클리어?
“아! 여러분! 마스터가 깨어나셨어요!”
“아오바!”
만면에 웃음을 띤 코우자쿠의 얼굴이 시야로 들어온다. 그 건너편에는 하얀 천장이 보였다.
“클리어, 코우자쿠……. 둘 다, 왜…….”
“나머지도 저기 있다고?”
몸을 일으키려는 내 등을 받쳐주면서, 코우자쿠가 검지로 뒤쪽을 가리킨다.
밍크와 노이즈가 거리를 두고서 벽에 기대어있었다.
“……윽.”
상반신을 다 일으킨 시점에서 온몸으로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을 찡그린다.
아야야…….
그러고 보니, 모르핀 녀석들한테 흠씬 두들겨 맞았었지…….
주변을 둘러보니, 지금 있는 곳은 좀 전의 연구실 같은 방이 아니었다.
실내가 좀 더 좁고 크기가 다양한 케이스들이 선반 위에 질서정연하게 놓여있다.
비품을 놓아두는 방인 것 같다.
“다들, 어떻게 여기까지…….”
“구 주민구에서 플라티나 제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잖아.”
“거기를 통과해서, 그 다음엔 이 녀석이 인증 모니터에 페이크를 걸어서 들어왔어.”
“버려진 ID를 슬쩍한 거니까 이번 한 번 뿐이지만 말야. 플라티나 제일의 ID는 위조하기가 어려워서, 해석하고 싶어 하는 해커들이 꽤 있어.”
“그 녀석들한테 정보를 사서, 내가 좀 더 손을 봤지. 입장만 하는 정도라면 그럭저럭 할 수 있어.”
“남은 건 한시라도 빨리 토우에 녀석을 해치워서……. 엣, 우옷!”
“죽을힘을 다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말 힘들었어요, 마스터!”
클리어가 나를 덥석 끌어안고 매달렸다.
“우왓, 아야야.”
“어이 거기 떨어져! 아오바는 지금 만신창이라고!”
“으아아, 죄송해요 마스터!”
“하하……, 괜찮아.”
클리어의 허둥대는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만다. 이런 식으로 웃는 건 참 오랜만이다.
코우자쿠,
클리어,
노이즈,
밍크.
모두 무사했던 것이다.
네 명의 얼굴을 보니, 잔뜩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어져간다.
“그 둘, 모르핀이었지.”
“……아아.”
바이러스와 트립…….
“그 녀석들, 이전부터 수상쩍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어라?”
클리어가 뭔가를 찾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본다.
“그러고 보니 렌 씨는 어디 있는 건가요? 안 보이는 것 같은데요…….”
“………….”
“어이, 왜 그래?”
내 얼굴을 보고, 코우자쿠가 눈썹을 찡그린다.
렌은…….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머뭇거리고 있으니, 가방이 부스럭부스럭 움직였다.
“……!”
렌?
혹시 기동된 건가?
조급하게 날뛰는 마음을 억누르며, 나는 가방을 열고 렌을 밖으로 꺼냈다.
“어이, 렌. 괜찮아?”
렌을 안아들려고 하다가……, 손을 멈춘다.
‘크르르르르르르.’
렌은 내게서 거리를 두고서 꼬리를 아래로 늘어트리고, 이빨을 드러낸 채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렌……!”
‘너…….’
‘크아아!’
내가 손을 뻗으려 하자, 렌은 몸을 부르르 떨며 크게 짖어댔다.
“렌 씨?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한데요.”
“……이 녀석, 뭔가 전이랑 다르지 않아?”
“AI칩이라도 바꿔 낀 건가.”
“……앗!?”
“라임……? 무차별 살인 라임인가? 그치만 누가…….”
정면에 나타난 대전 상대를 보고……, 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렌……!?”
설마…….
나에게 무차별 살인 라임을 걸어온 상대는 렌인 건가?
그렇지만 올메이트가 무차별 살인 라임을 벌인다는 이야기 같은 건 들어본 적이 없다.
애초에 올메이트한테 그런 게 가능한 거냐고……!?
내가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해야 할지 헤매고 있는 사이에 렌이 내게 덤벼들었다.
“렌! 잠깐만, 어이!”
렌의 돌격을 피하는 중에, 문득 어떤 의문이 떠올랐다.
렌은 어째서 개 모습 그대로인 거지? 라임을 할 때는 인간 형태로 바뀔 텐데…….
“크윽!”
내가 잠시 딴 생각에 잠긴 근소한 틈을 노리고, 렌이 내 팔로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이빨에 그만 깨물리고 말 것 같아서, 렌의 머리를 누르고 버틴다.
본격적으로 힘을 쓰면 떼어낼 수 있겠지만, 렌에게는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다. 할 수 없다.
“렌, 저리 떨어져, 어이, ……우왓!”
팔에 극심한 통증이 스친다. 깨물렸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렌에게 깨물린 곳으로 무언가가…….
흘러들어온다……?
뭐지?
따뜻하고 슬픈 감정의 소용돌이가……, 아픔과 함께 내 의식을 빼앗아간다.
크게 벌려진 안구의 안쪽으로, 여러 가지 영상이 번뜩인다.
이 영상…….
이건, 뭐지?
내 기억?
……아니다.
혹시 이건…….
렌의 기억인가?
렌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인가?
내 기억인가 싶을 정도로, 대부분 내가 본 적이 있는 것들뿐이다.
마치 렌이 줄곧 나와 같은 시점에서 세상을 보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렌?
…………!
…………그런가.
그런 거였나…….
“!”
순간, 시야가 어둠으로 봉쇄된다.
……다음으로 보인 것은, 내 팔을 물고 늘어졌던 렌을 내가 힘껏 던져버리는 장면이었다.
저 녀석……!
지금, 멋대로 렌을……!
“렌!”
내팽개쳐진 렌에게 달려가, 그 몸을 안아든다.
……어째서 렌이 라임에서 인간 형태로 변하지 않은 것인지.
그 이유를 알았다.
렌에게 깨물리고, 그것을 통해 렌의 기억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와, 기억을 공유하고서……,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리고, 어째서 내가 렌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었는지도.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것은 올메이트라는 형태를 지닌 ‘그릇’으로서의 렌이다.
애초에, 이 개 모양 올메이트는 렌이 아니었다.
나와 쭉 함께 있으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보거나 느끼며,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시간을 공유해온 렌의 ‘의식’은…….
렌이라는 존재는…….
……내 안에 있다.
내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였을 때, 나는 언제나 머릿속에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렴풋이 그런 기억이 남아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턴가 그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게 되었고, 그대로 그 존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이야기 상대가 돼 주었던 머릿속의 ‘누군가.’ 그것이……, 렌이었다.
렌은 예나 지금이나 줄곧,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올메이트로서의 렌은, 내 안의 렌이라는 의식이 조종했던 인형, 내지는 화신과도 같은 것이다.
렌의 의식이 어떻게 올메이트를 조종했던 것인지, 어째서 그런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렌의 의식은 이 올메이트 안에는 없다.
지금은…….
내 안에 있다.
내 머릿속에.
스스로도 믿기 힘들지만……, 어쨌든 그럴 것이라는 확신만이 있었다.
렌과 만나고 싶다. 제대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이야기조차 할 수 없다.
렌은 올메이트로서 존재하는 것을 포기하고, 원래 있던 곳에 틀어박히고 말았다.
그렇다면…….
라임은 체내로 전류를 통하게 해, 대전자가 서로의 의식을 공유하고 투영하는 게임이다.
라임의 퍼블릭 필드는 참가자의 의식과 직접 연결되어있다.
그 말은 곧, 라임을 이용하면 의식 안에 도달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물론 이전에 해본 적도 없고, 실패하면 예삿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 쪽이 높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리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스크랩하는 것이다.
“!”
알람이 울리고, 공간이 일그러진다.
방어 태세를 취한 내 앞에 나타난 것은, 노이즈였다.
“노이즈!?”
“어쩐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됐군.”
“너, 어떻게.”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그거.”
노이즈가 작게 웃고, 이쪽을 향해 걸어온다.
“일단, 이 필드를 강제적으로 오픈했어. 다른 녀석들도 곧 올 거야. ……다른 녀석들 외에도 말이지.”
“다른 녀석들 외에도?”
“아오바!”
“마스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알람이 울리고, 코우자쿠, 클리어, 밍크가 차례로 나타났다.
알람은 그 후로도 그치지 않는다.
“온다.”
노이즈가 그렇게 말을 내뱉자, 이번에는 경비원과 올메이트가 나타났다.
한 쌍뿐만이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공간이 일그러지고 거기서 녀석들이 튀어나온다.
“뭔가 점점 늘어나는데…….”
“무차별 살인 라임의 필드를 억지로 연 거니까, 흡인력이 있는 가느다란 관을 넓게 벌린 것 같은 상태가 된 거지.”
“그래서 현실 세계에서 유효 범위 내에 들어온 녀석은 무조건적으로 무차별 살인 라임 속으로 튕겨지는 거야.”
“엉망진창이잖아.”
“천천히 생각할 시간 같은 거 없다고.”
경비원들은 허수아비처럼 휘청휘청 흔들거릴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올메이트들 쪽이 이쪽을 향해 명확하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
올메이트들은 그렇다 쳐도, 경비원들이 멍하니 있는 건 왜지?
“뭔가……, 이상하지 않아?”
“올메이트 특유의 버그 탓이야.”
“버그?”
“이전부터 올메이트에는 가벼운 버그 같은 게 있었어. 근데, 그 증상이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강하게 표출됐지.”
“원인은 올메이트에게 감염해 증식하는 웜이야. 그걸로 버그가 상당히 악화되지. 지금 뉴스에서 엄청 떠들어대고 있다고.”
“버그가 악화되면, 올메이트가 난폭하게 날뛰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제어불능이 되지. 게다가 감염된 올메이트의 주인은 무슨 이유에선지 의지박약 상태가 되는 것 같아.”
“올메이트를 등록할 때, 주인의 체내에 있는 개체인식 칩으로 온라인에 접속하잖아. 그것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온라인에서 올메이트랑 의식을 공유하니까, 그 경로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올메이트가 인간의 의식을 파괴하는 건가.”
“아마도. 올메이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형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그런데도 무슨 연유에선지 최초의 버그는 줄곧 제거되지 않고 있지.”
“이렇게 될 걸 예측하고서 처음부터 올메이트에게 버그를 내장시킨 거라면, 토우에도 말기 변태 자식이로군.”
“그럼 설마, 렌도 그 버그에…….”
“버그가 일어난 올메이트는, 눈에서 수정 결정 모양의 부스러기가 나온다.”
“!”
수정 결정 모양의 부스러기. 렌의 눈에도 그런 증상이 나타났었다.
“버그 때문이었던 건가…….”
“렌한테도 나타났던 거야? 그 증상이.”
“아아…….”
“어이. 어떻게든 렌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
“뉴스에서 버그를 제거하는 백신을 만들고 있다고는 했지만. 글쎄, 어떠려나.”
“렌 씨…….”
“………….”
렌…….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을 굳히고, 네 명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렌을 구할 방법은, 있어.”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겠지만, 렌을 구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나 자신을 스크랩할 거야.”
“……하?”
“………….”
“마스터…….”
“스크랩? 자기가 자기를? 그런 게 가능한 거야?”
“해보지 않으면 몰라. 잘 될지 어떨지도……, 전혀. 그래도 그것밖에는 없어. 지금 여기서 하지 않으면 안 돼. 아마도.”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건 그렇고 여기서 스크랩 같은 걸 했다가는, 의식이 도중에 끊겨서 패배한 걸로 처리되고 강제로 로그아웃될 텐데. 의미가 없잖아.”
“그렇습니다, 마스터. 너무 위험해요.”
“나도 알아. 그러니까, 다들 협력해줬으면 좋겠어. 도와줬으면 좋겠어.”
“내가 스크랩을 하는 사이에, 날 지원해줬으면 좋겠어.”
“………….”
미묘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코우자쿠가 내게 강한 눈빛을 보내왔다.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정말로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 거지?”
“내 생각이 미치는 한에서는, 그것밖에 없어.”
“그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는 알고서 말하는 거지?”
“아아. 만약 너희들이 없었더라도, 나 혼자서 했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렌을 구하고 싶으니까.”
“위험하다고 해서 포기하는 건……. 나는 못해.”
“…………, 알았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난 막지 않겠어.”
“코우자쿠…….”
“알겠어? 너희들도 아오바를 도와줘.”
“물론입니다!”
“뭐 여기까지 와서 빼는 것도 맥 빠지는 일이고.”
“한시라도 빨리 이 뒤숭숭한 곳에서 나가자고.”
“………….”
모두가 나를 도와준다는 것에, 불현듯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만……, 지금은 솔직하게 기쁜 마음이 든다.
“어이……, 온다!”
좀 전까지 제자리에서 어슬렁거리던 경비원들과 올메이트들이 이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이 마니아. 넌 이 녀석이 스크랩을 하는 동안, 로그아웃되지 않게 해.”
“마니아 아니라고.”
“빨간 녀석이랑 가스마스크는 이 녀석 옆에 있으면서 가까이 오는 것들을 처리해라.”
그렇게 말하고, 밍크는 경비원들과 올메이트들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즉시 가장자리서부터 때려눕히기 시작한다.
“그럼, 시작해볼까.”
노이즈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코일로 키보드와 모니터를 불러내고 조작하기 시작한다.
“어이, 자기 자신을 스크랩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거야?”
“나도 몰라. 그냥 해보는 수밖엔 없어.”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서 집중하고자 했다.
하지만……, 주변의 소리가 신경 쓰여서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윽, 틀렸어. 주변이 신경 쓰여서…….”
“귀 막아도 안 돼?”
양손으로 귀를 막아본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소리가 들려온다.
집중이 안 되는 건 잔뜩 긴장된 탓도 있겠지.
“안 돼…….”
“주변의 소리죠. 신경이 쓰이는 건.”
“아아.”
나랑 같이 몸을 수그리고 있던 클리어가 일어서서, 양팔을 벌렸다.
뭘 하는 건가 싶었는데……, 이윽고 맑은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클리어가……,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는 갑자기 주위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소리가…….”
“이거……, 설마 노래로 주변의 소리를 상쇄시키고 있는 건가? 이런 게 가능한 거냐고…….”
“윽, 이리 오지 말라고!”
클리어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내 주변에까지 다가온 경비원들과 올메이트들에게 코우자쿠가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두른다.
“아오바, 이번엔 할 수 있겠어?”
“해볼게.”
나는 한 번 더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시켰다. 이번엔 잘 될 듯한 느낌이 든다.
“……윽.”
“이얍!”
코우자쿠가 경비원들을 쫓아내준다.
하지만…….
……안 된다. 아직 완전히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안 돼?”
“조금만 더…….”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는 거야?”
“집중력을……. 그러네, 눈을 볼 수 있으면.”
“눈……, ……거울 말인가.”
코우자쿠가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고, 곧바로 싱긋 웃음을 띠었다.
눈앞까지 몰려온 경비원들을 날려버리고서는 내 앞으로 몸을 수그리고, 등에 지고 있던 검을 뽑아 지면에 꽂아 세운다.
“이건 어때.”
검의 표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고마워. 해볼게.”
나는 검에 비친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입 밖으로 내기 시작했다.
“나는 네 안으로 들어간다. 네 안으로…….”
“네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받아들여라. 나는 네 안으로……, 내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나를 받아들여라.”
조금씩, 시야가 페이드아웃 되어간다.
클리어의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고, 심장소리만이 내 세계의 모든 것이 된다.
거기에 희미한 파도소리가 겹쳐진다.
언젠가, 어디선가…….
먼 옛날에 들었던 것 같은, 파도소리가…….
이곳이…….
내 머릿속……?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한다.
돔 형태의 공간 한가득,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어마어마한 수의 내 모습이 들어차있었다.
라임의 퍼블릭 필드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다.
이곳은 내 머릿속이면서도, 그렇지 않다.
필시……, 렌의 ‘의식’이 숨겨져 있는 장소일 것이다.
“!”
정면을 향해 돌아서니, 어느 사이엔가 렌이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인간 형태의 렌이다.
“렌……!”
“………….”
렌은 나를 노려본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렌의 몸은……, 상당히 변해버리고 만 상태였다.
버그 때문이겠지. 몸 이곳저곳에 에러에 의한 균열이 일어나 있고, 팔도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일그러진 형태로 변했다.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파온다.
어째서……, 더 빨리 구해주지 못했던 것일까.
이런 모습이 되기 전에…….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렌이 지면을 차고 돌진해왔다.
“윽!”
재빨리 옆으로 튀어서 바닥 위를 굴러, 가까스로 렌의 공격을 피한다.
몸을 일으키려 한 시점에서, 렌이 두 팔에서 튀어나온 칼을 내게 휘둘렀다.
“……앗!”
한 쪽씩 번갈아 내질러지는 칼을 피한다. 그러나, 일말의 망설임이 없는 렌의 공격은 몹시도 빨라서 단순히 피하는 것만으로도 금세 벅차진다.
“크윽……!”
공격을 채 피하지 못하고, 나는 렌의 팔에 주먹을 날려 방어했다.
얼마나 세게 힘을 실었는지, 손등이 찌릿찌릿 저려온다.
렌은……, 정말로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렌의 눈동자에서는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 없다.
“……미안.”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온다.
그 순간, 렌이 나를 들이 밀쳤다.
“……윽!”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몸이 지면에 세게 부딪힌다.
바닥에 쓰러진 채, 나는 이쪽으로 걸어오는 렌을 보았다.
렌…….
몸의 통증 같은 것보다, 렌을 이렇게 만들고 말았다는 사실이 괴롭고 분하고……, 슬펐다.
“……렌, 미안해. 정말로……, 괴로운 거지.”
“………….”
“눈치 채지 못해서, 미안……. 너에 대해서, 무엇 하나 제대로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
나는 아픔을 참고 일어나, 정면에서 렌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알았어. 네가 누군지, 기억이 났어. 렌, 너는……. 줄곧 내 안에 있었지. 나를, 줄곧 지켜봐주었지.”
“그런데도 난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너한테 의지하고 응석부리기만 하고……. 정말, 미안.”
“………….”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으려 하자, 렌이 한층 더 세차게 나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눈앞에서 탁 하고 불꽃이 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발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부딪힌다.
이건…….
……거부당하고 있는 건가?